본 연구는 광주광역시에 거주하는 국제결혼 이민여성을 대상으로 원예활동이 대인관계에 어떠한 효과가 있는지 알아보고자 실시하였다. 4월 27일부터 8월 3일까지 매주 1회씩 실시하였고, 8명을 대상으로 대인관계 측정지와 원예활동 평가표를 이용하여 프로그램 실시 전과 후에 원예활동의 효과를 측정하였고, 매회 관찰평가를 하였다. 대인관계 변화는 대상자 8명 모두 프로그램 실시 후 향상되었으며, 프로그램 실시 전보다 최소 13점에서 최대 34점까지 모두 높아졌다. 따라서 원예활동이 국제결혼 이민여성의 대인관계를 향상시킴을 알 수 있었고, 통계적으로도 매우 유의하였다. 원예활동 평가에 있어서 참여성, 관심 및 조력성, 언어소통능력, 자아개념 및 주체성, 욕구 충동적응력, 대인관계능력, 인지 및 문제해결력, 운동지각능력, 숙련도와 직업적응력 등 9개 항목에서 프로그램 실시 후가 실시 전보다 크게 향상되었다.
이 글은 19세기 江右地域의 대학자 晩醒 朴致馥의 남명학 계승양상에 초점을 맞추어 살펴본 것이다. 본고는 만성의 학문이 定齋 柳致明을 통한 퇴계학파의 학설을 수용한 점과 性齋 許傳를 통해 근기 남인계 星湖學의 實用主義를 수용 한 점에 주목하여, 만성이 이 두 학문을 겸함으로써 전통의 학설을 바탕으로 하 면서 시대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응하는 致用의 학문을 한 것으로 평가하였 다. 이런 점에서 그의 학문성향은 寒洲 李震相의 心卽理說이나 蘆沙 奇正鎭의 主理論이 전통의 성리설을 바탕으로 새로운 설을 전개한 것과 다르다. 또한 양 자를 兼取하였다는 점에서 퇴계학파나 성호학파의 학문성향과도 변별된다. 그 리고 학문이 침체되었던 강우지역에서 새로운 학문을 선도하였다는 점에서 학 술사적 의의가 크다. 본고에서 논한 만성의 남명학 계승양상은 크게 다섯 가지로 정리된다. 첫째, 만성의 南冥遺蹟 探訪과 追崇事業으로는, 山天齋・白雲洞 등 남명유적을 찾아 추모한 것과 산해정 중건 기문을 지은 것을 들 수 있다. 둘째, 南冥의 文廟從祀 를 위한 노력으로는, 만성이 1888년 疏頭가 되어 상소문을 올린 것을 들 수 있 다. 셋째, 만성은 許眉叟의 문집 記言에 남명을 사실과 다르게 폄하한 「答學 者書」를 삭제해 줄 것과 「德山碑」의 개정을 요청하였고, 南冥集 重刊을 위해 교감을 보는 등의 노력을 하였다. 넷째, 만성의 現實認識의 측면에서 본 南冥精 神 繼承으로는, 「上時弊疏」에 나타난 현실인식과 민생구제정신이 남명의 상소 와 유사하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다섯째, 만성의 南冥에 대한 認識 및 論評으로 는, 남명을 소미성으로 상징되는 처사로만 보지 않고 傅說・富弼처럼 賢相名丞 의 자질을 가진 인물로 평가했고, 남명의 학문을 程子・朱子를 계승한 正學으로 보았으며, ‘秋霜烈日 千仞壁立’으로 일컬어지는 남명의 기상에 대해 敬義學을 전제함으로써 伯夷와 다른 성향으로 재평가하였고, 山海亭의 山海에 대한 해석 을 통해 남명의 정신지향을 泰山보다 높고 瀛海보다 크다고 평했다.
이 글은 만성이 그의 시에서 어떠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그러한 관심은 그의 어떠한 생각이 반영된 것인가를 살펴본 것이다. 만성은 그의 시에서 역사와 현실 속에 놓여 있는 인간의 참모습을 찾으려 애 를 쓴 흔적이 역력하다. 이러한 것은 그의 도문일치에 입각한 그의 문학관에 기 초하고 있다. 일반 사대부들도 문학에 대하여 그와 비슷한 생각을 피력한 바 있 다. 그러나 그들의 문학관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매우 단편적이거나 편의적 인 경우가 많다. 예컨대, 잡록 부분에서 잠간 언급하거나, 청탁에 의해 짓는 개인 의 문집 서와 발에서 이에 대해 언급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매우 체계적으로 문 학론이나, 문론 혹은 시론이라는 글을 지어 체계적이고 종합적으로 문학에 대한 견해를 정리한 경우도 있으나, 대부분의 경우는 또 생각에만 머물고 그의 문학 세계에서 그의 문학에 대한 생각을 구현한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고 할 수 있다. 만성은 문학관에 대해 피력한 글이 많지는 않으나, 최장한・곽종석에게 보낸 편지에는 그의 문학관을 일목요연하게 사적 체계를 세워 정리한 것을 볼 수 있 으며, 이러한 문학관은 그의 많지 않은 시작품 속에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그의 올바른 인간에 대한 관심과 수양은 그의 몇 몇 잡저들 예를 들면, 「명덕 설」, 「위인론」, 「입지설」 등에서 확인할 수 있으며, 이러한 것은 그의 시 속에서 나란히 읊어진 한유한, 정여창 등 선현에 대한 그의 생각과 남명에 대한 생각, 그리고 당대의 어진 사람들과의 교제를 읊은 시 등에서 발현되어 있다. 그가 매 화에 대해 관심을 가졌던 것, 특히 납매에 대한 그의 특별한 관심과 이를 바탕 으로 지은 「납매설」은 그의 참된 인간의 모습을 탐구하고 현시하려한 의도를 읽기에 충분하다. 그리고 그가 그러한 인간이 속해 있던 그리고 속해 있는 시간과 공간에 관심 을 가지는 것은 또한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는 역사를 회고하고, 또 시사를 걱정하고, 민속에 관심을 기울이는 등 그가 속해 있는 현실의 과거와 당대에 깊 은 관심을 기울였던 것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만성의 시문학에는 자신의 시대와 그 시대를 열어가는 당대의 바람직 한 인물들과 깊은 교유를 하였는데, 이러한 것은 바로 그의 과거와 과거의 인물 에 대한 깊이 있는 탐구를 바탕으로 이루어진 것이라 하겠다. 그래서 만성이 바라보는 현실은 없어져야할 대상이 아니고, 보존하고 안존하 고 싶은 곳이다. 시사를 걱정하는 것도 현재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미래를 걱정 해서이다. 그래서 그의 현실에 대한 인식은 심각한 문제를 찾아볼 수 없다. 다 만 미래의 불안과 걱정이 있을 따름이다. 미래의 불안과 걱정은 바로 굴욕적이 고 처참했던 과거를 돌아보며, 예측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의 과거는 현재를 보 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시점에서 미래를 보는 거울인 것이다. 인물의 경우에도 사람을 평가하는 바람직한 기준이 무시되는 현실을 매화를 통하여 비유적으로 이야기하고, 현실 속에서 그러한 인물들을 모색하였으며, 과거에서는 그러한 바람직인한 인물들이 어떻게 살았던가를 인식하고, 현실의 인물들에 교우를 유지하였다.
慶尙右道에서 활발한 敎學 활동을 벌였던 晩醒 朴致馥은 定齋 柳致明과 性齋 許傳의 학문을 계승하여 理學과 禮學에 조예가 깊었다. 이 논문에서는 만성의 문집에 수록된 그의 禮說을 禮本質論, 經禮 해석 관점, 變禮 조처의 경향으로 나누어 살펴보았다. 그는 각종 變禮를 논함에 있어서 대체로 家禮에서 수립 된 典範을 준수하여 원칙에 입각한 조처를 강구하였다. 그는 예의 본질이 忠信 質素에 있다고 하여 소박한 인정의 진실성을 중시하였으며, 人情의 편안함을 전제로 하여 廬墓의 관습과 묘소가 없는 선조의 壇享과 影幀을 모시는 生辰祭 를 긍정하는 논리를 세웠다. 經禮의 해석에 있어서 桑主와 栗主의 차이를 喪과 慄의 의미로 해석한 것이나, 春秋左傳과 周禮에 근거하여 爲人後者에 대한 새 로운 해석을 제안한 것, 影幀과 神主의 의미를 生事와 死事의 도리로 구분한 것 등은 모두 그의 독특한 創見이다.
晩醒 朴致馥은 定齋 柳致明과 性齋 許傳, 두 문하에서 수학하여 江右(慶尙右 道) 지역을 대표하는 퇴계학파의 학자의 한 사람이 되었다. 그래서 그는 당시에 유행하기 시작하던 한주학파의 새로운 학설로부터 師門을 보위할 것을 자임하 였다. 한주와 만나 太極動靜의 문제를 토론하고 만성은 바로 그 이듬해인 무인 년에 太極動靜辨을 저술, 한주의 태극설을 반박하였다. 여기서 만성은 태극이 홀로 동정할 수 없고 반드시 음양이 함께 있어야 하니, 음양을 떠나서 태극의 동정을 말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따라서 氣를 떠나서 理를 말하면 理가 공허하 고 추상적인 것이 될 우려가 있다고 반박했는데 이는 퇴계학파 전통의 心說인 合理氣說의 논리적 근거가 되는 것이다. 만성의 명덕설은 스승 정재의 설을 그대로 이어받아 한주의 설을 반박한 것이 다. 만성의 명덕설에서 중요한 특징은 氣의 역할을 매우 강조하고, ‘맑고 밝은 것도 명덕이요 맑혀서 다시 밝게 하는 것도 명덕’이라 하여 明明德까지 명덕의 개념 속에 포함시킨다는 점이다. 이는 만성만의 매우 특이한 것이라 아니 할 수 없으며, 工夫論의 차원에서 나온 견해로 이해된다. 태극설, 명덕설을 이어서 心說에서도 만성은 理와 氣의 불가분의 관계를 강조 하였으며, 특히 氣의 역할을 매우 강조하였는데 이는 역시 理만으로 심을 정의한 한주의 心卽理를 논박하기 위한 것이다. 만성의 心說 전반을 관통하는 심의 主槪念은 시종 合理氣일 뿐이다. 즉 합리기를 근간으로 삼은 위에서 경우에 따 라 즉기·즉리를 말할 수는 있지만 심의 개념 자체를 달리 정의할 수 없다고 생 각했던 것이다.
咸安은 학문의 고장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데, 함안에 본격적으로 학자가 배출 되어 학문이 시작된 것은 조선 건국 이후부터이다. 高麗末 琴隱 趙悅과 茅隱 李 午의 咸安 정착이 咸安의 학문 興隆에 있어 하나의 큰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각 성씨가 함안에 기반을 잡아 번성함으로 인하여 그 후손 가운데서 많은 학자들이 나왔다. 朝鮮 宣祖朝에 寒岡 鄭逑가 咸安郡守로 부임하여 학문을 일으키고 교육을 장 려하고 咸州誌를 편찬한 것이 함안의 학문 수준을 높이고, 학문의 저변을 확 대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특히 咸州誌를 통해서 그 당시 함안의 지식인들 에게 그 때까지의 함안 문화의 전모를 알게 하여 함안의 문화적 전통에 대한 자 부심을 느껴, 앞으로 문화를 가꾸어 나가야 하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만들었다. 仁祖反正으로 침체되기 시작한 咸安의 학문은, 澗松 趙任道의 노력으로 급격 한 쇠퇴를 막고 현상을 유지할 수 있게 되어, 仁祖反正 이후에도 江右의 다른 고을과는 달리 학문이 단절되지는 않게 되었다. 澗松은 南冥學派와 退溪學派의 융합을 위해서 평생 노력한 학자인데, 간송의 노력으로 인해서 함안 지역은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퇴계학파나 남명학파 두 학파의 장점을 골고루 섭취하 는 이점을 갖게 되었다. 인조반정 이후 함안에서 저명한 학자나 비중 있는 저술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 때 함안의 학자들은 書院 건립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尊賢과 講學을 통해 서 학문적 전통을 이어나갔다. 咸安에서 스승으로 삼을 만한 대학자가 나오지 않자,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함안에서 학문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사람들은 慶尙左道나 畿湖地方으로 유 학을 가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어, 자연히 대부분의 선비들이 향촌의 小儒로 침 체됨을 면하기 어려웠다. 조선말기 性齋 許傳이 金海府使로 부임하여 관아에서 講學을 하자, 배움에 목 말랐던 함안의 선비들이 구름처럼 몰려가 가르침을 들었다. 500여 명의 성재 문인 가운데서 90여 명이 함안 사람이고, 그 가운데서 문집을 남긴 문인만 해도 27명에 이르니, 함안의 학문은 성재의 敎導로 말미암아 완전히 중흥을 이루었 다고 말할 수 있다. 性齋의 문인들은 지금까지 간행하지 못했던 조상의 문집이나 實紀에 성재가 지은 序文을 얻어 간행하여 반포하고, 조상의 재실이나 정자에 성재가 지은 記 文을 붙이고, 조상의 산소에 성재가 지은 碑文을 얻어 새기는 등 先賢들의 學問 과 德行을 선양함으로 인하여, 묻혔던 함안의 학문이 단시일내에 다시 빛을 발 하게 되었다. 性齋의 문인 집단에서 좌장격인 晩醒은 性齋의 學統을 전수받아, 스승 性齋의 문집 간행과 성재를 享祀할 麗澤堂을 지어 성재의 학덕이 천추에 전할 수 있도 록 기반을 마련하여 敎恩에 보답하였다. 그는 또 定齋 柳致明의 제자이기도 한 데, 近畿南人學派의 실학적인 학문과 정통 嶺南退溪學派의 성리학적 특성을 잘 조화시켜 함안의 학문 경향을 정통을 지키면서도 실용적인 방향으로 가도록 했 고, 退溪와 南冥의 학문이 잘 조화를 이루도록 만들었다. 1937년을 하한선으로 할 때, 咸安의 학자들에 의해서 지어진 文集은 기록에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약 200여 종에 이르고, 專著는 30여 종 되는 것으로 파 악되었다. 이 정도로 풍성한 著述이 나온 것은 咸安이 學問의 고장이라는 것을 확실히 증명하는 것이다. 이들 저술 가운데는 아직 간행되어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것이 많고, 개중에는 전란으로 인하여 간행되기도 전에 자취를 감춘 것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앞으로 함안 학자들의 저술을 대대적으로 발굴하여 간행 보급하면, 함안에서 나온 文集과 專著를 현대의 많은 학자들이 본격적으 로 연구할 수 있게 되어, 함안의 역사와 문화가 새롭게 밝혀질 것이다. 특히 지 금까지 거의 방치하다시피 해온 朝鮮時代 咸安의 漢文學이 새롭게 조명되어 각 광을 받게 될 것이다.
동양에서의 사물의 존재에 대한 생각은 원래 있는 그대로를 중시한다.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어떤 무엇에 의하여 생성된 것이 아닌 원래 시작도 없이 그냥 존재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그 존재하는 것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모든 사물이 어떻게 생성되고 소멸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떻게 되어 가느냐가 관심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소위 서양철학에서 발달한 형이상학의 문제가 동양적 사고방식의 문제에서는 관심이 적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형 이상학보다는 인간의 삶의 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볼 수 있다. 물론 불교 · 성리 학 · 도가의 형이상학도 있지만 무엇보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한 문제에 더 관심이 많은 것이다. 인간의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자연에 있어서의 인간의 위치가 어떠한지를 파악하여야 한다. 바로 인간의 사유능력과 삶의 문제를 해결하는 실천능력을 중시하는 인간본위의 측면에서 접근하기 때문에 신의 측면에서 바라보는 인간관과 는 전혀 상이한 것이다- 동양의 사상을 대표한다고 볼 수 있는 유가, 도가, 불교에서 주장하는 이상적 인간상이 어떠한 것인가를 고찰할 필요가 있다. 각 사상에서 강조하는 이상적 인간상의 특정을 살펴봄으로써 앞으로 추구하여야할 실천방법이 다를 수가 있는 것이다. 각 사상의 이상적 인간상의 실현을 위하여 수반되는 구체적 수양방법이 뒤따라야 한다. 유가 · 도가 · 불교에서 주장하는 많은 수양방법 중에서 대표적인 것을 살펴봄으로써 각 사상의 수양론의 특정도 알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결국 동양에서 내세우는 이상적 인간관의 특정이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유가는 인간의 욕망의 절제를 내세우고 인륜을 중시하여 도덕적인 삶을 통하여 궁극적인 천인합일의 경지에 도달하고자 하는 것이다. 도가는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을 버리고 순수한 인간의 마음을 지켜나감으로서 자연과 합일되는 경지의 인간이 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끝으로 불교는 언간의 욕망을 끊어버리고 원래 우리의 마음속에 내재하는 순수한 본성을 되찾음으로써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하고자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이와 같이 동양의 이상적 인간관은 인간의 이기적인 욕망을 제거하고 우리의 마음에 내재한 순수한 본성을 되찾아 언제나 그 마음이 나타나도록 노력하여야 함을 강조하는 것이다.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identify the controlling factors to construct tidal flat ecosystems having similar characteristics as natural ones. We transplanted the soil in a constructed tidal flat to a natural one and vice versa. Parameters monitored after these transplantations were silt content, organic matter, bacterial population and oxidation-reduction potential. Moreover, the relationship among silt content, organic matter and bacterial population was investigated by laboratory column experiment.
The silt content, organic matter, bacterial population and vertical profile of oxidation-reduction potential in the soil transplanted from the constructed tidal flat to the natural one changed to similar values to those in the natural one. On the contrary, all the parameters for the soil transplanted from the natural tidal flat to the constructed one changed to similar values as those in the constructed one. The silt contents in these two transplanted soils were in proportion to the organic carbon contents and bacterial population. Similarly, the bacterial population in laboratory column experiment increased with the increase in silt and organic matter contents.
It seemed to be important to select a place to enhance accumulative of silt and/or to maintain the silt content by hydrodynamic control of seawater in order to construct a tidal flat having similar characteristics as natural one.
This study has been conducted to investigate the mating behavior, time sequence of mating and time limit with which female can fulfill spawning and brooding after pre-spawning molting in the giant fresh-water prawn, macrobrachium rosenbergii reared in the laboratory. the results obtained were summarized as follows. Mating happened spontaneously as the following sequences: courting gesture, seizure of female by male, mounting, turning of female, copulation. The entire mating lated approximately seven minutes. The endopodite of 2nd pleopod of male bore the appendix masculins whcih are male's secondary sex characteristic. cinciulli was formed at the distal portion of appendix interna which are on the upper portion of appendix masculins and helped stabilizing the connection of each side of 2nd pleopod during mating. After the connection of each side of 2nd plepod was fixed on the posterior portion of the thoracic sternum in female, a gelatinous spermatophore that emitted at the basipodite of 5th pereiopod during courting gesture was deposited on the ventral groove of 2nd, 3rd, 4th and 5th pereiopod. time limit which female can fulfill copulation and brooding was from 3 hours to 15 hours after pre-spawning molting.
This study has been conducted to investigate the molting behavior and the effects of rearing temperature and day length on molting in the behavior and the effects of rearing temperature and day length on molting in the giant freshwater prawn, Macrobrachium rosenbergii reared in the laboratory. The results obtained were summarized as follow: 1. After pre-spawning molting, the protopodites of 1st, 2nd, 3rd, and 4th except 5th pleopod bore new breeding setae which conserve eggs in the brooding chamber and the basis of 3rd, 4th, and 5th pereiopods bore new breeding dresses which transport the ovulated eggs into the brooding chamber. 2. Adult females reared in 27.5- molted 10-12 times per year at interval of 27-35 days, of which four or six moltings were common molting for growth and another four or five moltings were pre-spawning molting for spwaning and brooding. In winter season, pre-spawning molting did not happen to most of adult females in spite of the same temperature. 3. Duration of intermolt cycle was 31-38 days and 26-30 days at 25.3- and 28.7- of rearing temperature, respectively.
First, We classified man-made lakes in Korea as 4-type lakes, that is, there were River-run lakes, Dentritic lakes, Reservoir-lakes, River-mouth lakes, We studied on the environmental factors of 3-type lakes except River-mouth lakes, compared these lakes with natural lakes in foreign country. Environmental factors were watershed area, lake storage, mean depth, hydraulic retention time. As a results, 3-type lakes in Korea had remarkable differences one another according to above-mentioned environmental factors. First, We recognized that River-run lakes had higher nutrient loading according to having wider watershed area than natural lakes, and had lower algal growth rate according to shorter hydraulic retention time than natural lakes. Dendritic lake had higher nutrient loading than natural lakes, longer retention time than River-run lake. Reservoir-lakes had environmental factors between Dentritic lakes and River-run lakes. Therefore, If this studies had no quantitative results about various factors, We recognized that man-made lakes in korea had different environmantal factors as compared with natural lakes, and had clear classification among 3-type lak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