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예이츠와 엘리엇에 대한 연구로서 이 두 시인 각각의 시적 화 자에 대한 표현 방법을 살펴 본 것이다. 예이츠의 경우, 비교적 시적 화자가 곧 예이 츠 자신과 일치하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데 그는 주로 상징에 의하여 시적화자의 의도 를 드러내고 있다. 반면에 엘리엇은 작품창작과정에서 그 자신을 드러내지 않기 위해 서 시적 화자를 다른 인물들로 설정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두 시인에게 공통점은 시적 화자를 드러내거나 감추고 있지만 객관성을 추구한다는 점에 있어서는 서로 유 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 글은 예이츠가 정의하고 있는 문명과 인간의 모습을 고찰하기 위한 것이다. 예이츠는 하나의 문명이 중심은 분명 존재하지만 영구적으로 변함없이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탄생과 성장 및 소멸과정을 경유한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리고 인간의 삶 역시 항구적일 수 없으므로 예이츠는 인간의 사고를 문제의 핵심으로 설정하면서 실재 추구를 강조하고 있다.
예이츠와 엘리엇 사이의 관계 규명을 위한 시도는 있었지만 좀처럼 그 해답을 찾지 못하는 것처럼 보인다. 이 글은 이 두 시인 사이의 관계 규명을 위해 기획된 것이다. 그래서 먼저 엘리엇과 예이츠 비교 연구의 의의와 이 두 시인 사이의 첫 만남에서 시작하여 예이츠와 엘리엇 상호 간의 평가와 마지막으로 엘리엇 작품 속 예이츠의 투영 모습을 고찰했다.
이 연구는 예이츠의 재림 과 순례자 를 기독교 경전인 『성경』에 나 타난 내용과 비교한 것이다. 예이츠는 이 두 작품에서 『성경』에 나타난 내용을 다양하게 사용하고 있다. 그들 중에는 지난 2000년 동안 지속된 기독교 세계가 세계령에서 나온 이미지로 대치될 것이며 기독교의 성지로 일컬어지는 베들레헴에 사나운 짐승이 출현하거나 예수의 40일간의 금식 장면을 시적 화자의 기도 모습에 비유하고 있다. 이를 통하여 예이츠는 『성경』의 내용을 인유 형식으로 사용하여 시의 의미를 좀 더 강화시키고 있다.
사실, 현대 영미시사에서 예이츠와 엘리엇을 제외한다면 그것을 정확히 진단할 수 없을 정도로 그 두 시인의 영향력은 대단하다. 흥미롭게도 이 둘은 다르게 보일 것처럼 느껴지지만 유사한 맥락으로 평가될 필요가 있다. 또한 이 둘 사이에 창작 방법 또한 유사한 측면이 많다. 이른바 상징을 기점으로 엘리엇은 객관적 상관물을 추구했다면 예이츠는 흔히 정의하는 낭만주의적 기질을 구조했다는 논점이 매우 이채롭다. 예이츠는 결코 단순한 낭만주의자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번 연구의 주된 목적은 예이츠와 엘리엇의 시적 자아가 추구하는 최종 목적(방향)을 찾아보는 것이다. 그 목적에서의 차이를 발견함으로써 시적 자아의 이상향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 본 연구의 장점이다. 그 결과 예이츠는 시적 자아의 “개인적 해방”을 추구하는가 하면 엘리엇의 경우 “자아비우기”를 통해 절대자 수용을 강조 한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본 연구는 예이츠와 엘리엇의 시에 나타난 중심 사상의 차이점을 살펴 본 것이다. 이 두 시인은 이 세계의 현 상태에 대한 불만을 분명히 가지고 있으며 여 기에서 탈출하고자하는 욕구가 그대로 나타난다는 것이 공통점이라 할 수 있다. 그러 나 흥미로운 점은 예이츠는 주로 마음/심령의 정화를 통한 이상세계를 갈구한 반면에 엘리엇은 마음의 정화를 통한 하나님과의 교감을 원한다는 점에 차이가 있다는 것이 다. 결국 현세계 존재 그대로에서 벗어나 더 높은 이상을 추구한다는 것은 두 시인 모두에게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이글은 예이츠의 비잔티움으로의 항해 를 인도경전인 우파니샤드에 적용해 보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비잔티움으로의 항해 에서 시인은 변화무쌍한 이 세 계에서 벗어나서 모든 것이 조화롭고 통일되며 변화가 없는 비잔티움으로 가기를 갈 망한다. 그러데 이러한 모습은 우파니샤드에 나타난 브라만과의 소통의 경지와 유사 하다고 볼 수 있다. 영육간의 조화 및 지상계와 천상계 사이의 조화가 이루어지면 브 라만과 하나가 될 수 있다.
This paper studies Yeats as imagist, which demands that the poet make use of ordinary and conversational words; different subject-matters, concise and accurate imagery and avoid abstraction. Interestingly he exhibits all the characteristics Imagist poets usually show.
예이츠와 엘리엇은 동시대 시인이면서도 별개의 시인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유사성이 매우 많음을 알 수 있다. 그들은 시의 대상 표현에 있어서 “시적 숭고성”을 얻어내고 있다. 먼저 예이츠는 이를 위하여 고대의 도시 중에 하나인 “비잔티움”을 선택하는 가하면 엘리엇은 “시간”의 이동이라는 개념에 의지하고 있다. ‘숭고성’이라는 롱기누스의 정의에 어울리게 시적 표현의 탁월성과 우수성을 이 두 시인 모두 잘 보여주고 있다.
이니스프리의 호도 는 예이츠의 초기시로서 그의 대표작 중 하나이다. 12행으로 구성된 단시임에도 불구하고 이 시는 여러 가지 특징이 동시에 혼재하고 있으며 또한 이 사실이 그 매력이라고 할 수 있다. 먼저 이 시는 특유한 음의 통일성을 지니고 있다. 바로 그 음의 통일성으로 인해 동요로 감상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예이츠가 이 시를 창작하면서 멜로디를 심중에 유념했음을 알 수 있다. 게다가 이 시는 일관된 전원적 이미지들과 함께 시각, 청각 등의 감각적 이미지 그리고 다양한 색채이미지들로 구성되어 있다. 단시이지만 이니스프리의 호도 가 지닌 의미 또한 여느 시 못지않다. 즉, 시적 화자의 개인적 이상향의 추구임과 동시에 20세기 물질만능주의에 서의 탈피라는 좀 더 광의적 의미로 해석된다.
예이츠와 엘리엇은, 비록 동시대 작가들이지만, 다른 시인들로 간주된다. 그러나 우리는 문학적 차이를 간과해서는 안 된다. 엘리엇은 현대인과 사회를 현실적으로 다루고 있으며, 이것은 여러 학자들에 의해 많이 논의 되고 있다. 본 논문은 이점을 예이츠의 것과 비교하고자 한다. 왜냐하면 예이츠도 어떤 면에서는 엘리엇과 비슷하게 이 주제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두 작가의 인간관은 정신적 불모성, 불안, 맹목성, 공허함으로 특징지어진다.
예이츠와 엘리엇은 둘 다 작품을 통하여 현실 또는 현 상태에 대한 원망을 토로하고 영원을 갈망하는 모습이 공통적으로 보인다. 이 모습이 예이츠에게는 존재의 통일이라는 개념으로 나타나는 반면에 엘리엇에게는 정점으로 나타난다. 예이츠는 대립과 갈등의 상태에서 벗어나기 위해 비잔티움이라는 도시를 성(聖)화 시켰으며, 자연생물인 백조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다. 반면에 엘리엇은 정점을 나타내기 위하여 로고스—만물의 중심점—를 사용하거나 춤의 이미지로 형상화 시키고 있다. 전후 시대상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기 위해 현실의 상태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는 점에서는 이 둘 모두가 공통적인 입장을 지양한다고 볼 수 있다.
본 논문은 예이츠와 엘리엇의 관계를 자신들의 평가로 대비한다. 엘리 엇은 예이츠를 “우리 시대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 평가 했고 예이츠는 엘리엇은 “시에 있어서 가장 혁명적인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또한 엘리엇은 예이츠를 지적 우 수성은 물론 도덕적 우수성을 겸비한 작가이며 젊은 시인들이 예이츠를 존경심을 가 지고 배워야한다고 평가한다. 특히 예이츠의 표현기법상의 명료함, 정직성, 활력, 끊임 없는 소재의 개발 등을 높이 평가한다. 또한 예이츠의 대표적인 문학창작 이론 중에 하나인 마스크 이론은 작가의 객관적인 관점을 표현해 내기 위한 도구라는 점에서는 엘리엇의 몰개성이나 객관적 상관물이론과 유사하다고 볼 수 있다.
This paper shows scheduling methods to utilize heat pump systems as demand response resources in the smart grid environment. The heat pump system has a partial thermal storage tank which could be used at any time according to the consumer behavior based on the real time electricity tariff system. Some scheduling methods are proposed and an optimization basis is established considering areas, insulation conditions, heating set temperature, minimum heating maintaining period of thermal storage, maximum size of tank, etc.
엘리엇은 자신이 대학의 학생이었을 때 예이츠는 이미 대단한 시인이었다고 고백한 바 있다. 두 시인들의 상징주의적인 표현기법은 매우 밀접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으며, 특히 엘리엇은 몰개성을 두 가지로 나누어 평가하면서 예이츠가 이 두 가지 모두를 실현해 내기 위해 노력한 시인으로 평가한다. 그리고 그들은 지적인 작품 창작 태도를 견지하거나 음악성을 강조하고 있는 점도 흡사하다. 예이츠의 예술 세계는 “작곡된”것이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예이츠가 작품 창작과정에 심혈을 기울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지나친 감상적 표현을 삼가려는 그의 창작 태도는 엘리엇의 객관적 상관물의 원칙과 상통한다.
예이츠는 낭만주의자, 신비주의자, 상징주의 시인 등으로 불린다. 이 논문은 영국 낭만주의를 태동시킨 워즈워드의 시 이론으로 예이츠의 시를 읽는다. 예이츠는 워즈워드의 “즉흥적인 강한 느낌의 넘침”이라는 개념과 비슷한 시의 이론으로 아름답고 리듬감을 살려 자신의 시를 창작하고 있으며, 또한 자신의 시의 이론도 정립한 시인이다. 본 논문은 예이츠의 낭만주의 시학에 초점을 맞추어 예이츠 시에 대입한다.
실상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세 종류의 시간 속에 익숙한 채 살 아가지만 엘리엇이 『네 사중주』를 통하여 정의한 시간은 우리의 그것과 는 대조를 보인다. 그 차이는 엘리엇이 신학적 관점에서 시간에 접근하 기 때문이다. 그래서 엘리엇의 경우 과거, 현재, 미래 모두가 순간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연구에서 집중한 과거 역시 현재와 밀 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엘리엇은 현재의 시각에서 과거를 재조명할 필요성을 역설한다고 볼 수 있다. 엘리엇은 자신이 네 장소에서의 체험을 현재의 시각에서 재조명되기를 소망하면서 이를 보는 시각 역시‘초 탈’을 강조한다. 즉, 자기 자신과 타인과 역사적 사건 등에 대하여 ‘초 탈’의 자세 유지를 우리에게 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