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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2.
        2019.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 S. 엘리엇의 네 사중주는 4 편의 시들로 구성돼 있으며, 각 시의 제목은 특정한 장소의 이름이다-「번트 노튼」(“Burnt Norton”), 「이스트 코우커」(“East Coker”), 「드라이 샐베이지즈」(“The Dry Salvages”) 그리고 「리틀 기딩」(“Little Gidding”). 본고는 네 개 제목들의 첫 글자들을 순서대로 결합하면 ‘B-E-TH-L’ 또는 ‘B-E-THE-L’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고, 이는 ‘Bethlehem’ or ‘Bethel’ 이라는 낱말을 이루게 된다는 가설을 제안 한다. 히브리어로 ‘beth’는 ‘집’을 뜻하므로 ‘Bethlehem’은 ‘빵의 집’을, ‘Bethel’은 ‘하나님의 집’을 의미한다. 본고는 엘리엇의 집필과정을 상세히 탐구함으로써 이 가정을 뒷받침해줄 근거를 찾아간다. 본고는 이와 같은 시인의 은밀히 감춰진 의도에 대한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임으로써 『네 사중주』를 신이 인간이 된 역사적인 사건, 즉 성육화가 일어났던 독특한 지상의 공간인 한 특별한 ‘집,’ 즉 베들레헴을 향해가는 여정으로 이해하는 시도를 한다. 특히 메를로-퐁티와 같은 현대 현상학자들에 의해 전개된 공간에 대한 이론을 원용하여, 이 작품을 현상학적인 관점에서 공간적 경험으로서 분석한다. 『네 사중주』의 순례자에게 공간은 실존적이며 존재는 공간적이다. 베들레헴은 구원에 대한 희망을 위해 기억될 수 있도록 인류에게 허락된 유일한 장소이다.
        43.
        2019.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의 목적은 신임교수로서 겪은 플립드러닝 강좌 개발 및 운영 경험을 정리하고 이를 사례연구 형태로 제시하여 다른 교수자들과 공유하는 것이다. 연구자는 J대학교에 임용 직후 플립드러닝 강좌를 개발해야 했다. 플립드러닝에 대한 지식과 노하우가 교수자와 학생 모두에게 전무한 상황이었지만, 효과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플립러닝 학습효과에 대한 교수자의 의심, 낯선 수업운영 방법에 대한 학생들의 의심, 교수자와 학생 서로 간의 의심 이상 세 가지의 장벽을 극복해야 했다. 각각의 수업은 교과목의 특성 및 기대 하는 바가 고려된 고유한 수업 설계 형태로 제작되어야 한다는 플립드러닝 선행연구의 내용을 토대로, 연구자는 성공적인 수업 운영을 위해 일부 학생이 주도하는 수업이 아니라 모든 학생들이 참여하여 학습하고 토론하는 수업을 만들고자 여러 가지 시도를 진행 하였다. 예를 들면, 토론학습 중심의 플립드러닝 수업 운영의 구조를 개발하기, 토론학습을 촉진하는 평가전략을 개발하기, 매력적인 콘텐츠를 개발하기, 토론학습에 익숙해지도록 토론주제의 난이도를 점진적으로 조절하기 등과 같은 주요 전략들을 개발하고 활용했다. 수업 운영 결과, 교수자의 정답과 의도에 과의존했던 학생들이 자유롭고 협력적으로 토론학습에 참여하는 방향으로 학습태도의 변화가 있었으며, 사전사후 만족도 평균 역시 4.24에서 4.47로 향상되었다. 이러한 연구자의 경험은 성공적인 플립드러닝 교과 운영을 위해서는 정형화된 설계·운영이 아니라 상황적 맥락 하에서 고유한 접근을 시도해야 함을 제시하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있다. 마지막으로 연구자의 경험을 바탕으로 교과목 성격 및 기대를 고려한 최적의 설계 지원과 다양한 수업사례 발굴·공유, 교수자 경험 중심의 지원 방안 마련 필요 등의 시사점을 제시하였다.
        44.
        2019.03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고는 기해통신사 사행록인 『扶桑紀行』의 내용상의 특징 및 저자 鄭后僑의 일본 인식에 대해 고찰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정후교는 숙종대 김창흡, 신정하를 비롯한 노론 계열 문인들 사이에서 뛰어난 시인으로 인정받은 인물이다. 그는 1719년 부사 황선의 자제 군관으로 사행에 참여하였으며 제술관 및 서기들과 함께 일본인들과의 시문창화를 담당하였다. 그에게 일본 사행은 詩材를 제공해주는 일종의 유람이었으며, 이에 따라 그의 사행록 역시 견문이나 정보 전달보다 는 유람의 체험을 곡진하게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구체적인 내용상의 특징으로는 감각적인 풍광 묘사와 독특한 유람 체험의 전달을 위주로 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일본 문사들과의 필담 교류를 일기와 시문을 통해 구체적으로 재현하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특히 고래사냥이나 시문창화의 현장 등 다른 사행록에서 발견되지 않는 다채로운 경험을 실감나게 전하고 있다는 점이 돋보인다. 한편 『부상기행』에 나타나는 저자의 일본 인식은 다음 세 가지 측면에서 분석이 가능하다. 첫째는 일본의 법도와 국력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나타난다는 점이다. 두 번째로 감성적인 공감을 통해 일본인의 성품과 습속에 대해 재평가하고 있음을 지적할 수 있다. 세 번째는 화이론적 사고의 변용을 통해 일본 문명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조선 지식인이 기존 관념의 전제를 유지한 상태에서 그것의 변용, 혹은 우회적 방식을 통해 새로운 인식을 창출해가는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히 흥미로운 사례이다. 이상 『부상기행』에 대한 검토를 통해 사행록 연구에 있어 몇 가지 중요한 분석의 지점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 동시기 및 다른 시기의 일본 관련 기록과의 비교를 통해 본고의 논의를 더욱 확장해 나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45.
        2018.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의 목적은 1927년 엘리엇의 개종 이후 출판된 「동방박사들의 여행」을 시적 화자인 동방박사의 종교적 명상이라는 주제로 살펴보는 것이다. 이 시는 동방박사가 자신의 과거 경험 즉 아기 예수 탄생을 목격했던 경험을 회상하고 그 의미를 생각하는 종교적 명상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제목을 이루는 “여행”은 신비주의적 관점에서 하느님과의 만남을 추구하는 영적 여정 혹은 과정을 의미한다. 비평가들은 아기예수 탄생을 목격했던 경험에 대한 동방박사의 반응이 부적절하다고 평가했지만 그 경험 이후 구체제에 대한 그의 불편함과 새로운 믿음에 대한 그의 관심을 지적하였다. 이것은 스미스나 기쉬 등과 같은 비평가들이 이 작품에서 신비주의적 요소를 지적하게 하였으며 스미스는 동방박사를 십자가의 성 요한의 『가르멜의 산길』에서 묘사된 구도자와 비교하기도 하였다. 엘리엇의 후기 작품들에는 기독교 신비주의자들의 작품에서 나온 인용이나 제사들이 자주 등장하며 1926년에 행해진 클라크 강연에서도 그의 작품에 주로 인용되었던 십자가의 성 요한을 포함한 스페인 신비주의자들에 대한 내용이 나온다. 비평가들이 이 작품을 십자가의 성 요한의 작품과 비교했다면 필자는 같은 스페인 신비주의자로서 이냐시오 성인의 『영신수련』의 종교적 묵상을 동방박사들의 여행과 비교해 보았다. 필자는 이냐시오식 묵상의 한 단계인 장소구성이 엘리엇의 이 작품에 적용될 수 생각하는데, 이 장소구성은 종교시에 중요한 요소이고 또 엘리엇의 작품 중 특히 1연에서 표현된 화자의 힘들고 고통스러운 여행 묘사에 적용될 수 있다.
        46.
        2016.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편입학을 경험한 두 대학생이 살아낸 그들 삶의 이야기를 ‘교육 전환의 여 정’ 관점에서 탐구하였다. 연구 참여자의 편입학 경험이 그들이 살아낸 ‘전환의 여정’ 이 야기(stories to live by in their transition journey)와 어떻게 관련되어 있는지가 연구의 퍼즐이었으며, ‘4 S 시스템’(Schlossberg, 1984)의 관점에서 제시하는 연구의 결과는 다 음과 같다. Situation: 경제적 어려움과 학벌주의, 취업은 참여자의 전환 경험 형성에서 가장 두드러진 상황 요인이었다. Self: 참여자가 살아내는 이야기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가장 돋보이는 것은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과 확신이었다. Support: 전환 경험 구성에 있어 드러나는 지원 요소는 가족, 친구, 만남의 인연 등 다양하지만, 가장 돋보였던 지원 요소는 현수의 경우 ‘자신감의 고양’, 만수의 경우 자기 성찰에서 비롯된 ‘자신감과 주체 의식의 성장’이라는 ‘자기-지원(self-support)’요소였다. Strategies: 전환 경험 형성에서 작동했던 전략은 현수의 경우 ‘자기 가치의 적용’으로, 만수의 경우 ‘지속적인 자기 성찰’ 로 해석될 수 있다.
        47.
        2014.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동방박사들의 여정 에 나타난 동방박사들의 육체적·영적 여정은 단순히 아기예수의 탄생을 맞이하기 위한 긴 여정일 뿐만 아니라 이교도로서 영적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 고행이다. T. S. 엘리엇은 복음서의 내용과 렌슬럿 앤드류의 설교를 극적 독백 형식을 통해 병치시킴으로써 화자, 청자, 사건 등이 여정에 잘 녹아 있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동방박사들이 기독교에 동화되어 이교들의 삶을 정리하기까지의 육체적·영적고통을 여정에 투영시켜 개종의 고통을 알레고리적으로 묘사한다. 화자의 회상에 따르면, 그들이 아기 예수 탄생의 장소에 도착했을 때 탄생의 고통과 죽음의 고통을 구별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이 논문에서 는 화자가 느끼는 죽음·탄생의 복합적 고통들을 서로 분리하지 않고 공시적으로 의미를 분석해 그 고통의 순간이 엘리엇의 주장하는 정점의 순간으로 보고자한다. 나아가서 그 고통의 감정 속에는 다층적인 의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알레고리적 읽기로 영적·육체적 여정이 하나의 정점에서 동시에 발생할 수 있음을 입증해 보려한다.
        48.
        2012.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It is appatent that Kyung-Chik Han was an eunormously influential person in the history of Korean Christianity, especially in the era since 1945. Nevertheless, historical studies on his life and thoughts hame not been as vigorous as those of Park Hyeongryong, Kim Jaejun and Han Sangdong who lived contemporaneously as Han. Historians have paid a little attention to Han in a sense that he preferred a life as pastor rather than as a professor, school founder, or a social reformer. Han lived through the turbulent times of the Greater Korean Empire, the Japanese colonization, the United States Military Governance in Korea, and the Korean Government thereafter. Encountering the national turmoil of Korea, he lived to fulfill the calling given by God. Although Han was not born into a Christian home, he attended Sunday school and grew up learning theology taught by the church. He was truly a pioneer in leading the first generation of Christian education in Korea. Through the teachings of the Christian patriots, Han was able to learn not only theology but patriotism; the love for his country. Passion for evangelism was also instilled in him by the missionaries in Korea. The warm welcome and the sharing of Jesus’ love by Christians in the U.S. lead a young foreign student, who had lost a country, to encounter the saving love of God during the most devastating time in his life to devoting his life to God. Upon his return to Korea, he did not stop proclaiming the love for Jesus, the love neighbors, and the love for one’s nation even though he was under severe surveillance of the Japanese government. Moreover, he lived his live an he proclaimed. He believed that transformation of the mind could pave a way to a solid nation and this transformation can only be achieved by the Christian belief. Hence, he poured all his energy into evangelism. During his ministry at Youngnak Presbyterian Church, Han triggered movements for the national evangelism and the spiritual transformation. He also participated in various evangelization movements in Asia and in the world as a representative of Korea. Although he kept his distance from the communists’ government of North Korea, he continued to send rice of love to aid the North Koreans from malnutrition. His ministry drew the attention of religious societies in the world and he was awarded the Templeton Prize. Kyung-Chik Han indeed is the only Korean religious leader whom the world respectively acknowledg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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