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최근까지 세계적으로 주목 받고 있는 타이완의 영화감독 허우샤오시엔의 영화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다. 그중에서도 1989년 작품 《비정성시(悲情城市:A City of Sadness : 1989)》 를 재조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의 시점에서 그의 영화를 다시 보면서 작품 속에서 그의 영화 가 갖고 있는 특성과 그 영화들이 가지는 시대적 배경의 모습, 그러한 것들과 인간적 환경에 대 하여 주목한다. 이는 그가 말했듯이 영화를 만드는 일은 결국 역사와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일 것이다. 그는 인간의 삶이 의지적인 것과 결코 의지적이지 않은 반대의 면이 있다는 것을 표현하 고자 했다. 특히 인간이 가지는 원초적 진실함이 어떻게 넓은 중국 속에서, 타이완이라는 중국의 한 부분 지역에서, 그리고도 극히 일부분에 불과한 지역에서 겪는 상황에 대해서, 그리고 시대의 변화가 많은 변곡점과 마주치면서 겪는 인간의 한계를 영화의 매개체를 통하여 특히, 그가 만든 스크린을 통하여 어떻게 비추어내는가 하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그의 영화가 유명하거나 많은 상을 받아서가 아니라 그가 감독하였거나 제작한 영화들은 시대가 바뀌어도 항상 재조명되고 관 객들로 하여금 다시 감상되어야 할 필요가 크므로 우리는 그의 작품에 대해서 특히 그의 8년만의 역작이며, 아름답지만 슬픈 《悲情城市》를 다른 작품과 더불어 재조명 하고자 한다.
본고는 1810년 유배지에서 지은 李學逵의 「城市全圖詩」가 현전하는 다른 8종 의 「성시전도시」와는 그 성격을 크게 달리한다는 점에 착안하여, 이 장편시의 창 작 배경과 특성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이학규는 규장각에 출입하며 「성시전도」와 관련된 전고와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으며, 또한 화가 김홍도와 교유하고 명청의 화론서에 식견이 풍부하였으므로, 「성시전도시」 창작이 용이하게 이뤄질 수 있었 다. 특히 평소 친분이 있었던 박제가의 「성시전도시」를 보게 된 것이 이 장편시 창작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고 판단된다. 이학규의 「성시전도시」는 크게 보아 전반부의 서울 도성의 사실적 묘사와 후반 부의 자기고백적 悲歌로 구분된다. 그는 이 시의 후반부에서 현실을 상상으로 이 상화시켜 이해하거나 과거의 고향을 회상함으로써, 불우한 문인의 정신적 고뇌와 우수의 정감을 망상과 상상의 방식으로 해소하는 모습을 보였다. 이학규는 관각문장의 성향이 굳어져 그 표현의 길이 극히 제한된 「성시전도시」 양식을 차용하여, 거기에 자기고백적 서정성을 담아내는 새로운 성취를 이루었다. 이 점에서 이학규의 「성시전도시」는 박제가․신택권의 시와 동일한 층위에 놓일 수 없는 보다 고유한 영역을 확보했다고 평가된다.
낙동정맥 구간 중 성시골 지역의 식생구조를 파악하기 위하여 총 9km 구간을 대상으로 10m×10m(100m2) 방형구34개소를 설치하여 주요 환경인자 및 식생구조를 조사하였다. 낙동정맥 성시골 지역의 식물군락은 소나무군락, 박달나무군락, 굴참나무군락, 졸참나무군락, 신갈나무군락, 일본잎갈나무군락의 6개 유형으로 구분되었다. 단위면적(100m2)당 군락별 평균 출현 종수는 8.5~10.5종이었고, 출현 개체수는 평균 27.5~175.6개체이었다. 종다양도지수는0.6061~0.8736로 나타났으며 소나무군락이 가장 낮았고 박달나무군락이 가장 높았다. 유사도지수는 10.03~39.72로비교적 낮았으며 소나무군락 및 신갈나무군락과 일본잎갈나무군락의 유사도가 가장 낮았고 굴참나무군락과 신갈나무군락의 유사도가 가장 높았다.
본 연구는 조선시대에 제작된 <태평성시도>에 나타난 간판디자인의 조형성에 대한 연구이다. 한국간판문화의 형성은 개항 기에서 시작되어 일제강점기에 주로 영향 받은 것으로 보여 지며, 간판이라는 단어가 우리 문헌에서 보편적으로 나타나는 시기는 1907년 대한학회월보를 시작으로 보고 있다. 당시에도 간판에 대한 크기나 색상 등 조형적 문제를 이슈로 다루 었던 기사가 나타난다. 이 당시 시작되었던 간판의 크기나 지나친 표현 등의 문제는 현재까지도 사회적문제로 지속되고 있 는 사안이다. 이러한 인식을 기반으로 본 연구는 전통기의 간판 사용과 그 조형성을 살펴보고 특성을 제시하고자 했다. 연 구대상으로는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시대 <태평성시도>를 선택하였다. <태평성시도>는 성시의 여러 생활상 을 담고 있는 일종의 풍속화로 당시의 상업시설과 상행위를 중심으로 그려진 그림이다. 이 그림에는 간판으로 불리어지는 초패와 등간이 나타나는데, 초패란 나무판에 글자를 쓴 것이고, 등간은 상품이나 업종을 형상화한 상징물을 장대에 걸어 놓은 것이다. 연구방법과 연구기준은 <태평성시도>에 나타나는 초패 총63개, 등간(燈竿) 총285개를 대상으로 구조, 형태, 색상, 내용, 서체를 중심으로 조형성을 분석하였다. 초패의 크기측정은 비슷한 시기에 지어진 양동민속마의 ‘대성헌’을 잣 대로 하였다. <태평성시도>에 나타난 간판디자인의 조형성을 분석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1. 형태적 측면에서는 건축물에 적용되는 면적이 작아 간판이 건축물의 원형미에 최소한의 범위에서 개입하고 있다. 2. 언어적 측면에서는 상호나 상품에 대한 직접적 표현보다는 유교적 의미에 부합하는 글귀로 대신해 언어적 품위를 보이고 있다. 3. 수량적 측면에서는 좌우 두 개만 설치되어 있어 건물과 균형적 조형미를 느끼게 한다. 4. 윤리적 측면에서는 초패로 인한 교통 불편을 최소화 해 상반상생의 디자인윤리의식이 드러나 있다. 5. 색상에서는 시각적 혼란이나 자극적 색상을 줄이여 보는 이로 하여금 정서 적 안정감을 주고 있다. <태평성시도>에 나타나는 간판디자인은 현대사회의 간판디자인과 조형의식에 한국적 간판의 원형 적 가치가 담긴 유용한 사례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본 연구는 향후 조선시대 간판 연구를 위한 이론적 단초를 제공한다 는 점에서 의의를 가진다.
Started in early 2011, China’s new round of real estate regulation policy, aiming to bring down housing price to a reasonable level, suppressed the speculative and investment housing demand remarkably. Under the purchase control policy, housing prices in some cities fell in 2012 compared to a year ago, but housing prices in a number of megacities still remained in high level. Through introducing the housing price income ratio, the article talks about the algorithm for calculating reasonable housing price and price income ratio, thus determines the upper limit of reasonable price income ratio for different kinds of cities. It also calculates the degrees of exceeding the upper limit of the reasonable price income ratio, on the basis of which, the control standards of housing price are determined and the housing price control strategy model is established for the first time. At the end of this article, effective long-term measures for stabilizing the housing price after the reasonable return of housing prices are also presen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