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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4.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글로벌 게임시장의 성장에 따라 국내 게임이용자도 손쉽게 다양한 국가에서 접할 수 있게 되 었다. 그리고 이러한 글로벌 경쟁 속에서 현실의 다양한 문화 창의적으로 반영한 게임이 점증 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의 호요버스가 개발한 해제 월드 형<원심>으로, 해당 콘텐츠는 캐릭터와 공간디자인에 다양한 국가의 문 것이 특징이다. 이때 의상디자인은 캐릭터의 성격과 매력을 효과적으로 이국적인 특색을 드러내는 기호라는 점에서 특히 중요하다. 이에 이 글은 먼저 캐릭터 의상과 의상 기호에 관한 검토하고, <원심>의 문화 활용 전략을 간단히 살펴보았 다. 이후 퍼스의 기호학을 활용해 중국의 문화적 특색을 반<원신> 캐릭터 ‘운근’을 분석하였다. 분석 결과, <원신>의 캐릭터 디자인전략은 중국의 풍부한 문화적 문맥을 중심 코드를 적극적으 로 빌리는 한편, 캐릭터 성을 부각하는 방향으로 의상 구성요소를 변형 시 나타났다. 이후 분 석 결과를 바탕으로 차후 연구를 위한 발전 방향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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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022.0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근대 고등교육 사립 연희전문학교의 설립·운영에서 실무자로 직접적인 영향력을 보여준 에비슨(Oliver R. Avison)의 교육행정가적 인 특징과 상호문화성의 관련성을 고찰하여 현대적 시각에서 조명해 보고자 하였다. 에비슨의 교육행정가적인 네 가지 특징은 상호소통 능력, 협업능력, 추진력, 통합능력이다. 이들은 상호문화성의 중핵적 요소들이 내재되어 실제적으로 교육 현장에서 개방성, 가능성, 공공성, 현재성의 네 가지 상호문화성으로 발현되었다. 따라서 에비슨의 교육행 정가적인 특징들은 곧 상호문화성으로 호환 가능한 자기 번역 능력을 가졌으며, 그 상호문화성이 곧 사립 연희전문학교 설립·운영을 주도한 숨은 공로자였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호문화성이 내재된 에비슨의 교육행정가적인 특징들에 관한 연구는 한국의 다층적 삶을 살아가는 모든 구성원의 상생적 삶을 위한 대안적 모색임과 동시에 선교현장에서 교육행정가의 모범으로써 선용할 만한 또 하나의 모델을 발굴하는 일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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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19.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作名(작명)’은 사람의 사회문화적 의식을 언어적인 형태로 담고 있는 대표적 사회언어학 연구 대상이다. 본고는 전통문화를 기본으로 한 중국인의 작명 문화 속에서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새롭게 출현한 현대인의 작명문화 특징에 대해 고찰하는 것을 연구 목적으로 한다. 2장에서는 중국의 전통 작명 문화의 주요한 특징인 종교와 사상의 영향, 시대적 사건과 분위기의 영향, 경전과 문학작품의 인용, 小名(아명)과 금기에 대해 살펴보았다. 3장에서는 현대 중국 작명문화에 새롭게 나타난 특징인 인터넷 작명 서비스 이용의 증가, 대중문화 콘텐츠의 인용, 그리고 전통 姓, 名 관습의 변화에 대해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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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16.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study investigated the characteristics of cotton production of Damyang-gun & Hwasun-gun, Yeongsan River compared with that of Gurye-gun, Seomjingang River in modern times. To do this, research method was both literature and fieldwork research, results were as follows. First, as for cotton fiber cultivation in Damyang-gun & Hwasun-gun, Chinese cotton (在來綿) has been cultivated during Japanese Colonial era unlike Gurye-gun. Especially, Yellow cotton (黃綿) has been cultivated in Hwasungun. Second, as for spinning in Damyang-gun, Hwasun-gun and Gurye-gun, some of cotton spinning process have been gradually changed to mechanization by market shop equipped with mechanized cotton gin and cotton whipping tool since Japanese colonial era. Third, the loom types also, like spinning tools, have been changed from the traditional Korean back-strap loom to the treadle loom in Damyang-gun, Hwasungun and Gurye-gun. Chemical dyeing with chemical dyestuff also has been done since Japanese Colonial era. Fourth, since the 1970s, the outputs of cotton production have been reduced in both Damyang-gun & Hwasun-gun. For Damyang-gun, this has been connected with bamboo craft since the Joseon Dynasty period. So, Damyang-gun has more concentrated on bamboo craft than cotton production. For Hwasun-gun, since Japanese Colonial era, sericulture has been very important. So, Hwasun-gun also has more concentrated on sericulture than cotton production. The main reason to discontinue cotton production in Damyang-gun, Hwasun-gun and Gurye-gun was related to the local choice like economic added val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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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13.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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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12.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문화콘텐츠는 기획에서 출발하여 창조산업으로 점차 고도화되고 글로벌화 되면서 사회커뮤니케이션 욕구를 충족시켜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다. 이 중 하나인 애니메이션산업이 해외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갖추기 위한 방안으로써 동. 서양 사상과 문화적 요소를 살펴보고, 이를 검증하기 위해 미국과 한국 대학생 100명을 대상으로 실험, 설문하여 관점의 차이를 살펴보았다. 그 결과를 토대로 동. 서양 애니메이션의 특징을 제시 하였다. 본 연구결과는 향후 한국 애니메이션의 글로벌 마케팅을 위한 애니메이션 제작 및 개발에 대한 근거가 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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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2011.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호남지역의 청동기시대 전기 문화는 아직까지 조사예가 많지 않다. 그러나 최근 자료가 증가하고 있고, 유구의 밀집도는 떨어지지만 호남전역에서 확인되고 있다. 호남지역 청동기시대 전기 문화는 미사리유형을 비롯하여 가락동유형, 역삼동유형, 흔암리유형 등이 모두 확인된다. 이들 각 유형은 분포양상에 있어 차이를 보이는데 미사리유형은 현재 순창 원촌과 담양 태목리에서 확인되었으며 미사리유형의 한 요소인 미사리식토기는 익산 영등동, 섬다리에서도 확인된다. 가락동유형은 대체로 북서부지역과 중서부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나, 중부내륙지역에서도 확인된다. 역삼동유형과 흔암리유형은 북서부지역과 중서부지역에서는 거의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대체로 동부내륙과 동남해안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중부내륙지역에서도 확인된다. 호남지역에서 조사된 전기유적은 주거지와 출토유물을 통해 모두 3기로 분류하였다. Ⅰ기는 각목돌대문토기를 특징으로 하는 미사리유형과 이중구연단사선문을 특징으로 하는 가락동유형으로 미사리유형은 동부내륙의 순창 원촌유적에서 확인되며, 가락동유형은 북서부지역과 중부내륙지역에서 확인된다. Ⅱ기는 가락동유형이 북서부지역은 물론 주변지역으로 확산되고 새롭게 역삼동유형과 흔암리유형이 등장하는 시기이다. 가락동식토기는 이중구연의 요소가 퇴화되지만 아직까지 이중구연의 요소는 남아 있다. Ⅲ기는 (세)장방형 주거지의 비율이 현격하게 줄어들고 방형으로의 평면이 정형화된다. 전기의 특징적인 노지는 설치되지만 Ⅲ기 후반의 가장 늦은 단계에는 일부 지역에서 새로운 형태의 원형 송국리형주거지가 등장하고 그 영향으로 방형주거지에 설치된 노지가 사라지고 원형 송국리형주거지의 특징인 타원형구덩이가 설치되는 등 주거지의 변화가 확인되고 토기의 문양은 대부분 사라지고 무문화된다. 그러나 동부내륙지역과 동남해안지역과 같이 일부지역에서는 역삼동식토기의 특징인 공열문 요소가 늦은 시기까지도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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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0.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경상도의 송국리문화는 발생지로 추정되는 충청지역과는 문화요소의 측면에서 相似點과 相異點이 존재한다. 그리고, 경상도내에서 內陸과 南海岸地域간 차이가 존재하며, 그 차이는 南海岸지역을 다시 東部의 洛東江下流域과 西部의 晉州圈域의 두 권역으로 나누어서도 확인된다. 남해안지역의 경우 두 권역의 가장 큰 차이점은 松菊里住居型에서 진주권역은 평면方形의 大坪里型, 낙동강하류역은 圓形의 梧谷里型이 절대 우세하다는 점이다. 또한 많은 勞動力의 동원과 이들에 대한 組織的인 制御力이 필요한 大形의 墓域支石墓가 梧谷里型과 關聯되었을 가능성으로 보아 주거형이 곧 時間性을 말해주는 증거일 가능성도 있다. 경상도 남해안은 송국리문화라는 그 자체만 보았을 때, 최종적으로는 바다를 건너 타 지역으로 전해졌을 가능성이 높은데, 현실적으로 남서쪽에 위치한 제주도보다는 남동쪽의 日本九州地方과의 聯關性이 크다. 실제 많은 연구에서 일본 야요이문화의 開花에 송국리문화의 영향이 컸음이 밝혀지고 있는데, 그 기본적인 바탕에는 송국리문화가 곧 農耕文化라는 점이 중요한 증거가 되었다고 생각된다. 또한 무엇보다 송국리문화의 대표적인 요소인 송국리형주거지의 同型이 그곳에서도 그대로 수용되었다는 점에서 더욱 확실한 증거로 볼 수 있다. 즉 일본 야요이문화 초기에 확인되는 송국리형주거지의 형태가 경상도 남해안지역에서 많이 확인되는 일명‘梧谷里型’이라는 점에서 더욱 이 지역과의 관련성을 대변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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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2014.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은 지리산과 한라산의 명산문화를 이루는 요소를, 산천제, 명산·진산, 삼신산, 여신설화, 풍수문화와 백두산래맥설의 주제를 들어 역사지리적으로 비교하여 특색과 정체성을 도출한 것이다. 지리산은 신라 때부터 남악으로서 국가적 제의 대상이었고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에도 지속되었다. 반면에 한라산 제의는 17세기 후반에 본격화되고 18세기 초에나 祀典에 등재되어, 지리산에 비해 시기도 늦었을 뿐더러 格도 고을 제의로서 낮았다. 지리산은 조선초·중기에 도(전라·경상)의 명산이자 고을(구례)의 진산으로 지정된 바 있었다. 상대적으로 한라산은 줄곧 고을의 명산이자 진산이었다. 한라산은 제주목의 진산에서부터 주변 고을의 진산으로까지 확대되었다. 조선후기 지식인들에게 지리산과 한라산은 공히 동국의 명산으로 인식되었다. 특히 조선후기에 와서 한라산이 나라의 명산으로 격상된 것은 국가·사회적으로 고양된 영토·영역 의식, 중앙정부의 통치지배력 강화, 그리고 삼신산으로의 위상 변화 등과 관련이 있다. 삼신산으로서 지리산과 한라산도 시기와 대상에서 차이가 났다. 방장산은 조선초기부터 거의 단일하게 지리산으로 지칭되었으나, 영주산은 조선초기에는 변산으로 지칭되다가 17세기 초반 무렵부터 한라산으로 굳어졌다. 한라산이 삼신산의 하나로 알려지면서 명산으로서 위상은 크게 제고되었다. 지리산의 성모천왕과 노구, 한라산의 설문대할망은 모성의 상징이미지를 지니지만, 각각 어머니신과 할머니신으로 상징적 의미에 차이가 났다. 이는 지리산과 한라산에 대한 지형경관 및 생활터전의 특성이 반영된 결과라고도 해석될 수 있다.지리산권역에서 풍수의 영향력은 깊고 컸지만, 한라산권역에서는 조선중기까지 미약하였다. 지리산권역의 마을에는 풍수형국론이 문화생태적인 영향을 크게 미쳤지만, 한라산권역에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조선후기에 지리산과 한라산의 白頭山來脈說은 조선후기적 명산문화의 한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