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1890년대부터 1930년대까지 한국 선교 현장에서 전도부인 들이 직면했지만 밝혀지지 않은 일상의 어려움을 밝혀내어, 토착 교회의 자립을 도모하는 개신교 선교정책인 네비어스 방법(Nevius Methods)의 포괄적인 이해를 목표로 한다. 통상적으로 지배적인 학계의 시점이 전도부 인들의 수고와 업적을 인정하는 것과는 달리, 본 연구는 전도부인들이 겪은 역경이 토착 교회의 자립을 장려했던 네비어스 방법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주장한다. 네비어스 방법은 토착 교회가 자립하도록 토착 교회가 스스로 토착 교회 사역자를 세우고 생활비를 부담해야 된다고 주장했다. 이 선교정책은 선교사들에게 한국 교회가 빠르게 성장하는 핵심 으로 여겨지고 있었지만 교회가 재정적인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때 교회 계층의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전도부인들이 종종 불리한 처우를 받게 되었다. 본 연구는 1차 원자료에 의존하여, 전도부인들의 경험을 철저하게 조사함으로써 토착 교회의 빠른 성장에 대한 선교사들의 열망과 가난한 선교현장의 혹독한 현실과의 격차에 대해 다룬다.
최근 코로나-19 팬데믹(pandemic) 시대가 지속하고 계속해서 새로운 변이 바이러스가 발생하면서 전 세계적으로 위기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하지만 교회의 선교적 사명은 어떤 상황에서도 지속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선교사의 사역에 지장이 없도록 선교사 멤버케어에 더욱 집중해야 할 시점이다. 그러나 이번 코로나-19 팬데믹이 도래하 여 국경이 폐쇄되자 한국교회와 파송 단체에서는 코로나-19에 감염된 선교사와 그 가족의 건강에 대해 어떤 특별한 대책이 거의 없었다. 실제적인 도움도 주지 못하고 건강하기만을 기도할 뿐이었다. 그동안 진행되었던 선교사 멤버케어의 의미가 무색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 연구는 선교사 멤버케어의 당위성을 전제로 그 정의와 필요성을 먼저 짚어본 후 그 한계까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그 한계를 극복하 기 위한 대안으로 선교사 자신이 총체적 치유의 개념을 가지고 어떤 곳이든지 돌발적인 상황이 벌어져도 실천할 방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이를 통해 포스트 코로나(Post Corona) 시대에 새로운 전염병이 창궐 (猖獗)한다고 할지라도 자기(自己) 케어 즉 자신의 건강을 자기 스스로 돌보고 지키며 선교사역에 매진할 수 있도록 구체적인 실천 방안을 모색하고자 한다. 또다시 선교사가 건강문제로 선교지를 포기하는 상황이 벌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본 연구의 목적은 선교적 성경 해석학의 방법론을 고찰하는 것이 다. 최근까지, 학자들은 성경 본문 중심의 해석과 독자 중심의 해석에 따라 각기 다른 선교적 해석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그러나 선교적 해석은 신앙 공동체 내에서 통합적인 성경 해석 방법론을 사용해야 한다. 이 글에서, 필자는 단계별 해석을 제안한다. 첫째, 선교의 본질과 형태를 이해하기 위해, 독자는 신·구약의 문학 세계 속에서 다루는 하나님의 선교 이야기를 탐구한다. 둘째, 선교적 공동체의 '자기-정의' 를 위해, 독자는 독특한 상황에서 성경 내의 공동체와 현대의 기독교 공동체의 선교적 성경 읽기를 탐구한다. 셋째, 독자는 신앙 공동체 내에서 자신들의 주관적 해석을 대화와 담론의 장으로 불러와서 보편적 해석의 의미를 만들어간다. 이 단계적 해석은, 각각의 해석적 국면에서, 독자들이 하나님의 선교를 이해하고, 그 선교에 참여하도록 하는데 목표를 둔다.
윌리엄 캐리는 기독교 선교역사에서 ‘위대한 세기’로 알려진 19세기에 세계적인 선교운동을 촉발시켰다. 본 연구는 『이교도 선교방법론』 (1792)과 『세람포어 선교협약문』(1805)에 나타나 있는 캐리의 선교사 상을 비교 분석한다. 『이교도 선교방법론』에서 캐리는 기독교 역사상 최초로 통계자료와 정보를 활용하여 선교의 필요성을 호소하며, 현지인을 유럽인과 동등하게 영혼을 가진 사람들로 대우할 것을 주장하였다. 영국 내에도 불신자가 많은데 왜 해외까지 나가 선교해야 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하며, 극단적 예정론을 극복하고 선교 대위임령을 회복시켰다. 『세람포어 선교협약문』에서 캐리는 현지인들의 종교관, 구원관을 연구할 것과 힌두교도들이 신성시하는 동물을 학대하거나 그들의 종교를 비판해서는 안되며, 선교사들이 현지인들을 자신과 동등하게 대할 것을 제안한다. 교육선교와 성서번역과 말씀의 반포가 중요하며, 인도 복음화에 있어 현지 기독교인들의 역할을 강조한다.
시간과 지리, 문화, 제도, 언어의 장벽을 넘어 초월적 선교가 가능한 오늘날 그 기회와 방법은 너무도 많지만, 그에 적합한 선교의 혁신이 절실히 필요하다. 새로운 선교 패러다임을 받아들여 첨단 과학 기술의 발달과 그에 따라 급변하는 시대적 상황을 올바로 이해하고 그에 적합한 선교사 교육 훈련으로 대처해야 한다.
이 연구의 목적은 스마트 선교훈련 시스템의 중요성과 특성들을 알아 볼 뿐만 아니라, 이 방법이 선교 현장에서 스마트하게 활용 될 수 있는 지 알아보는 것이다. 이 연구는 새로운 선교사 교육 패러다임으로서의 스마트 선교사 훈련이 어떻게 세계 선교의 효과를 높일 수 있는지 검토하고, 혁신적 IT 방법을 활용한 스마트 선교전략들을 소개하면서 Semi-O2O 미션 퍼스펙티브의 유의미한 훈련 효과 및 그 이점을 검토하였다. 인공지능이 아닌 인간 선교 사역자의 노력을 중심으로, 아날로그와 디지털을 균형 있게 조화시켜 온-오프라인 등의 여러 채널들을 오가며 그 장점을 극대화 하여 이 모든 것을 선교지에 적용하는 훈련이다.
이 연구를 통해 온라인과 오프라인 세계 사이의 차이점을 인식 하고 상호 통신 및 상호작용을 활성화하기 위해 두 세계를 자유롭게 통합하거나 각각을 개별적으로 구분하여 탄력적으로 활용 하면 글로벌 선교에 도움이 됨을 발견하였다. 또한 첨단 과학기술과 관련하여 그에 적합한 퍼스펙티브 쉬프트를 통한 지성, 감성, 진정성을 담은 혁신적 IT 선교사 훈련이 선교 사역의 효율성을 높여 줌을 알게 되었다. 이 접근법은 앞으로도 파송 전 선교사 훈련에 큰 도움이 되어 시대적으로 더욱 스마트한 선교가 가능하게 할 것이다.
한국 선교단체는 1960년대에서 1980년대에 크게 활약하여 한국 교회 전도에 영향을 미쳤다. 본 논문은 ‘선교한국 88’에 참여한 한국 선교단체들을 중심으로 전도유형과 방법에 대한 고찰을 통하여 한국 미래의 전도전략을 모색하고자 한다. 전도유형을 현존유형(간접적 방식),선포유형(직접전도와 대중매체), 설득유형(양육과 제자훈련), 능력전도유형(상담과 치유), 선포공동체형성유형(교회개척과 전도특 공대)의 다섯 가지로 분류하여 볼 수 있다. 선교단체들을 그 유형에 따른 분석에 의하면, 대학생 선교단체의 전도유형은 선포, 설득, 선포공동체형성유형에 속한다. 선포유형은 복음전도 훈련을 통한 개인전도, 설득유형은 양육과 제자훈련, 선포공 동체형성 유형은 해외에 교회개척을 하는 것이다. 해외파송선교단체의 전도유형은 선포공동체형성유형과 현존유형이다. 예를 들면, 한국 OMF와 한국OM은 선포공동체형성유형에 속한 단체로서 교회개척의 비전을 가지고 있다. 바울선교회와 GP선교회 역시 미전도 지역에 교회를 세우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현존전도유형의 예로서 한국 국제기아대책기구(KFHI)는 재난 지역, 오병이어선교회(FNGN)는 영양불량 지역, 한나선교회(HA NNAH)는 비개발지역을 돕고 있다. 선교적 관점으로 한국 선교단체를 평가하면 다음과 같다. 대학생 선교단체의 개인전도는 전도의 소명을 학생들에게 불러일으키는 데 기여했지만 다양한 전도방법을 개발하지 못하고 전도에 대한 좁은 시각을 대중화시켰다. 제자훈련과 양육은 교회성장에 기여했지만 개인 구원과 사회적 책임성을 포괄하는 통전적 선교신학을 반영하지 못하였 다. 해외파송 선교단체는 주로 교회개척에 비중을 두며 간접적 전도방 식의 사역을 하였다. 그러므로 한국선교단체가 미래의 전도전략을 위해 더욱 전문성, 다양성, 통전성이 요구된다. 오늘날의 선교단체들은 과거의 선교단체들보다는 더 조직화되었 다. 그런데 한국선교단체는 주로 선포, 설득, 선포공동체유형에 속한 다. 제자훈련과 양육은 성령이 함께하지 않으면 지적 추구에 머물게 된다. 한국기독교의 전도유형은 능력전도와 현존전도로 보완되어야 한다. 한국 기독교를 성장시키려면 통전적 전도를 기초로 삶으로 보여 주는 변화인 현존전도와 능력과 치유를 포괄하는 능력전도 유형을 활성화해야 한다.
본 논문의 목적은 N세대의 문화적 형태를 사용하여 그들을 향한 선교 방법을 연구하는 데 있다. 먼저 N세대의 정체성을 이해하기 위하여 그들의 특징과 ‘사이버스페이스’(Cyberspace)에 활동하는 N세대의 사이버 문화가 직면한 현실적 과제를 설명하고자 한다. 사이버 문화 속에서 활동하는 N세대에게 효과적으로 선교하는 방법을 찾고자 시도하였고 이를 실천하기 위한 대안을 제시하였다.
인터넷으로 연결된 웹은 사이버스페이스를 만들어 문명의 영역을 확장해 나가고 있다. 그 사이버 세계는 현실 속에서 존재하지 않는 ‘가상’이지만 오히려 현실보다 더욱 사실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사이버스페이스에는 다양한 정보들이 무제한으로 만들어져 공급되고 있다. 그 중심에는 사이버스페이스와 함께 자란 N세대(Net Generation)가 있다. 그들은 전자문화를 통하여 그들 자신의 생활양식, 가치관, 세계관의 획기적인 변화를 주도하는 세대이다. N세대는 지역과 인종, 성별과 나이를 넘어 지구촌에 형성되었다. N세대의 활동 무대인 사이버스페이스는 국경, 민족, 세관, 입국과 출국 절차가 없다. 따라서 그들을 위한 선교도 사이버스페이스에서 자유롭다. N세대의 이슈와 그들의 안고 있는 현실적 과제를 고려할 때 그들을 위한 선교는 매우 시급하다. 본 논문은 N세대를 위한 선교방법으로 비거주 인터넷 선교와 인터넷 네트워크 선교, SNS를 통한 선교방법을 제시하였다. 특히 SNS를 활용하는 방법은 링크드인(linkedIn), 유튜브(YouTube), 미투데이(me2day), 네이버 밴드(naver band), 구글 플러스(Google+), 사이월드(Cyworld) 등 다양하고 각기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여기서는 트위터(twitter), 페이스북(facebook), 카카오톡(kakaotalk)을 중심으로 그 가능성을 살펴보았다.
본 논문은 N세대의 선교를 위하여 네 가지를 제안하였다. 첫째로 무엇보다 N세대의 사고방식과 문화를 이해하려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둘째로 사이버스페이스 사역이 웹사이트의 콘텐츠 변화를 통해 N세대들이 자발적으로 접근할 수 있도록 성육신화 되어야 한다. 셋째로 교회 홈페이지가 모든 교인들이 콘텐츠의 생산자라는 의식의 전환으로 콘텐츠 구성을 과감히 변화를 시도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교회는 교인들에게 자신에게 적합한 SNS 방법을 통하여 선교 의식을 깨워 선교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SNS를 활용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N세대뿐만 아니라 모든 세대를 위하여 교단과 선교 전문기관들은 사이버 담당과 SNS 사역을 담당할 전문 인력을 육성하고, 교인들에게 SNS사역의 인식전환과 훈련을 시행해야 한다.
본 논문은 선교적 교회론이 이론뿐만 아니라 사역 현장에서 가시적인 결과를 도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현장 연구 방법론에 관한 연구이다. 본 연구는 그동안 사용해 오던 현장 연구 방법들이 갖는 한계들을 알아보는 데서 출발한다. 그리고 그에 대한 대안으로 두 가지 이상의 현장 연구 방법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혼합 및 활용할 수 있는 통합 방법론(mixed methodology)을 소개한다. 선교적 교회론이 존재론, 실존론은 물론 상황화적 적용에도 활용이 가능해지기 위해서는 현장에 대한 이해와 또 그에 바탕 한 사역 전략의 수립이 필수적이다. 또한 가시적이고 정확한 현장의 자료를 수집하기 위하여서 설계 과정에서부터 정확한 목표, 표본과 모집단의 선정, 자료수집 방법, 현장에 대한 현실적인 이해, 자료의 정리 방식 등을 정확히 설정해야 한다. 기존의 양적 연구와 질적 연구의 특성과 그것들이 갖고 있는 철학적 배경을 이해할 경우 각 방법들이 갖고 있는 장점과 한계를 이해할 수 있다. 통합방법론은 이런 방법들의 한계를 최소화한 것으로 선교적 교회론의 실현에 좀 더 현실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선교적 교회론을 가시화하기 위하여서는 사역의 단계마다 수행해야 할 현장연구들이 조금씩 달라야 한다. 그리고 각 단계들의 현장 조사의 성격이 다른 만큼 사용하는 자료 수집 방법들, 그들의 배합, 그리고 방법들의 순차는 다양하게 선택할 수가 있어야 한다. 통합하는 방식에도 두 가지 방법들을 단순하게 합하는 삼각화 설계법을 필두로 리서치의 목적에 따라 순차성과 동시성, 리서치의 성격에 따라 탐색적, 설명적, 그리고 내재적 접근들을 고루 사용할 수 있다. 본 논문은 이 중에서도 선교적 교회론에 적용이 비교적 용이해 보이는 6가지 통합방법의 유형들을 소개할 것이다. 각 유형별로 적절한 현장 연구의 예들로 어떤 것이 있는지도 소개할 것이다.
2010년 STCW 마닐라 수정안은 항해사에게 선교자원관리에 대한 지식 및 기능에 관한 해기능력을 강제적인 사항으로 포함하고 있다. 본 연구는 선교자원관리의 관점에서 STCW 2010 개정안에 토대를 둔 국내 교육 프로그램의 적절한 방향을 제안한다. 선교자원관리 프로그램과 관련하여 그 내용 및 교육방법이 국내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설문조사를 통하여 분석되었다. 그 결과로서 본 연구는 현재의 선교자원관리 교육 프로그램을 개선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을 한다.
This article discusses and evaluates the ministry of an American laywoman missionary Mary Fletcher Scranton and her son William Benton Scranton, who founded the JungDong Hospital, SangDong Hospital, AhHyun Church, SangDong Church, and DongDaemoon Church. The writer first starts with the following questions: “How did they define their identity as a missionary?” The writer answers it in terms of their motive to apply for missionary and their direction for mission. Second, “What was their motive, method, and purpose of mission?” Third, “What was the heritage that they bequeathed to us and what lessons can we learn from?” Answering the above questions, the writer concludes missiological implications based on his research. In particular, he provides evidence supporting that Mary and William Scranton, as apposed to other western missionaries during that time era, did not try religious colonialization and did not intend to ingrain the western civilization into Korean society. In spite of the dangers they faced, they entered into Korea with strong aspirations of missions and in concretely have contributed to building the foundation for the evangelization of Korea by planting local churches and hospitals. The biggest contribution of Mary Scranton's ministry was to challenge the sexual discrimination imposed by Confucianist beliefs, by first starting a new school for women, and thus implanting a spirit that women can work cooperatively with men, not as an inferior, but as a partner, with equal rights. With the love of Christ, William Scranton also did his best to care for the poor and the weak by building new hospitals and pharmacies. In a word, Mary and William Scranton chose Korea to actualize their vision for world mission, and lived a successful life as the Christ’s disciples by understanding the history and culture of Korea and by serving for the poor people in Korea. In spite of their just and healthy motives, method, and purpose for their mission, they, like other western missionaries in that era, lacked to provide the missional church model to Korean Christianity. We cannot learn simply out of their deep dedication and desire to develop the missional church in Korea, enlarging the kingdom of God on earth and adapting to the Korean indigenous culture. This deficit came from their lack of missional theology, being simply lay missionaries, the Scrantons lacked the proper educational background in theology. Despite their deep passions, well intended will, and endless love of Christ, they were not able to grasp the bigger picture of the missional theology, thus falling short in accomplishing God's purpose for the Korean people and the world mission.
Matteo Ricci’s missionary work in China was a remarkable cross-cultural mission in the 16th Century. Matteo Ricci introduced Christian teaching to the Chinese literati. By adopting the Chinese language and culture, he was able to enter the center of the Chinese society which was normally closed to foreigner. His missionary approach was effective. Ricci did not approach the Chinese culture with superiority like other Western missionaries. He behaved that he came to China to learn. Ricci made notable sacrifices to study the language―he had learned to speak, read and write Chinese, the habits and customs of the Chinese, as to make them his own. Ricci’s second cultural approach is to conform life-style with the socio-ethical system. When Ruggieri and Ricci first entered China together in 1583, they were dressed as Buddhist monks. Later, Ricci found that the monks he met were neither learned nor well respected. Ricci decided to carry his religious testimony to the very heart of the society, and for this, he adopted the life style and dress of educated Confucians. Ricci had grown his hair and beard and put on the scholar’s robes. Ricci’s third approach was to write many moral writings. It was an academic approach. Ricci’s moral writings had attracted the Confucian literati, even by those did not sympathize with his religious ideas. In T’ien-chu shih yi, Ricci mentioned that T’ien-chu [Lord of Heaven] in Christianity was same as Shang-ti [Sovereign Lord] in Confucianism. Ricci’s fourth cultural approach was the introduction of Western science and technology. Ricci displayed world map, western clocks, Venetian prism, European paintings and books. Ricci was accepted widely among the literati by his knowledge of mathematics and other sciences; by the curious objects he had brought, and even by his alleged knowledge of alchemy. Ricci’s fifth cultural approach was to respect Chinese rites and customs. Through discussion with the Chinese literati, Ricci indirectly introduced the Christian point of view on the various problems and matters. His Chinese disciples demonstrated that to accept the Christian faith did not imply abandoning one’s own culture, nor mean diminishing loyalty to one’s own country and traditions, but rather that the faith offered them to serve their country. By this reason, Jesuit missionaries allowed to worship at a shrine of Confucius and to perform a religious service in an ancient rite. In fact, an ancient rite was very delicate and sensitive issue at that time. It requires careful approach through theological reflection and evaluation because cultural accommodation may change to relativism or syncretism. As a missionary, Ricci never forgot his ultimate goal: the preaching the Gospel and the conversion of China. Ricci’s missionary work in China is still a model of Asian missionary work. Ricci’s missionary method through cultural accommodation was vital and actual as ever. It is necessary for the effective missionary works to understand the social structure of the field. Without destroying or ignoring their own culture and customs, we can carefully make a connection between Christianity and culture and customs of the field.
The article is to find out the task and orientation in Christian missions toward North Korea. First of all, it subscribes the various approaches of Christian missions toward North Korea such as the emic approach, the epic approach, and the holistic approach. Then, it describes the historical changes of the paradigm in the society of North Korea. North Koreans have evaluated Christianity negatively as the spy of the american imperialism. From the end of 1980s, however, they have changed their minds that Christianity must have been a religion of charity for the national unity. Finally, the article concludes that the task and orientation in Christian missions toward North Korea should be cooperative between South and North Korean Christians and future-oriented finding felt-needs of North Korean Christian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