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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2020.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의 주요 목적은 T. S. 엘리엇의 신학사상에 대한 최근 연구들 을 엄밀하게 검토함으로써 그의 신학사상의 올바른 이해를 위한 ‘지도’ 를 그리고자 한다. 검토 대상이 된 연구서들은 『“종교는 앵글로-가톨 릭”: T. S. 엘리엇과 기독교, 『T. S. 엘리엇과 기독교 전통』, 『신에 대한 지도 제작』, 『모더니즘 시대의 시와 신학』이다. 스퍼의 연구서는 엘리엇의 기독교 사상에 끼친 앵글로-가톨릭주의의 지속적인 영향을 최초로 세밀하게 분석하고 있지만 성육신과 같은 앵글로-가톨릭주의의 교리 라는 ‘고정된 눈’을 가지고 지나치게 좁게 엘리엇의 작품들을 들여다보는 경향이 있다. 『T. S. 엘리엇과 기독교 전통』의 경우에는 지금까지 간과되었던 프랑스 작가들과 신토마스주의 영향을 해명하고 있지만 엘리엇의 신학사상의 형성에 있어서 칼 바르트와 다른 개신교 신학자들의 중요성을 놓치고 있다. 도메니스코는 칼 바르트의 신정통주의에 대한 엘리엇의 증대되는 관심에 대해 통찰력을 지니고 설명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엘리엇의 기독교사상의 ‘지도’에서 이를 정확히 자리매김하는데 실패하고 있다. 도메니스코와 달리 수드는 엘리엇의 『네 사중주』에서 바르트 신학의 흔적의 파고들지만 이 지난한 탐사는 설득력 있는 분석이 결여된 채 두 사상가를 기계적으로 병치하는데 머무르고 있다.
        82.
        2020.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게론티온」은 엘리엇이 『황무지』의 서시로 사용하려는 의도였다는 점에서 기독교적 시각으로의 감상이 가능하다. 본 연구에서는 기독교의 『성경』에 나타난 내용을 「게론티온」에 적용하여 감상해 보았다. 엘리엇 은 「게론티온」의 첫 도입부터 종결부까지 『성경』에 나타난 내용을 사용하고 있다. 첫 도입부에는 장기간 가문이 계속되는 장면이 연출된다. 이것은 인간이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희망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으며 인간이 하나님의 뜻을 외면하고 우상숭배에 몰입한 장면을 4명의 외국인들의 모습을 통해 전달한다. 특히 인간이 기독교를 도외시한 결과 사랑과 자비로 상징되는 예수 그리스도가 호랑이 예수 그리스도로 변환되어 출현하기 계기를 맞이하게 되며 급기야는 지상 밖으로 퇴출당하는 모습이 등장한다. 종합하면 「게론티온」 전체는 도입부부터 종결부에 이르기까지 『성경』의 내용을 엘리엇이 적절히 인유하여 기독교적 의미를 효과적으로 전달함을 알 수 있다.
        83.
        2020.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엘리엇의 제국이 언제나 “이상”이었다는 커모드나 마샬의 주장과는 달리, 엘리엇의 제국은 “현실”이었음을 증명하기 위해, 엘리엇이 중요하게 여긴 두 명의 작가, 러디어드 키플링과 조셉 콘래드에 대 한 그의 평가를 살펴보고자 한다. 키플링은 엘리엇이 평생 좋아했던 작가였으며, 콘래드는 『황무지』와 「텅 빈 사람들」의 제사를 제공했던 작 가였다. 엘리엇은 이 두 작가가 제국주의에 대해 다른 입장을 갖고 있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젊은 시절의 엘리엇은, 제국주의와는 전혀 관계없이, 두 작가를 문학의 잣대로만 평가를 했다. 그는 키플링을 가까스로 위대한 작가로, 콘래드를 위대한 소설가라고 평가했다. 그러나 노년의 엘리엇은 반제국주의자였던 콘래드에 대해서 거의 언급하지 않았으나, 제국주의자였던 키플링의 시 선집을 출판하고, 그를 옹호하는 글을 썼다. 그리고 이 글에서 엘리엇은 키플링이 대영제국에 대해 취한 입장의 의미와 의의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위 사실에 근거하여, 본 연구는 엘리엇이 제국주의에 대해 상반된 입장을 취한 키플링과 콘래드 를 어떻게 이해했는지, 그가 두 작가와 제국주의에 대한 평가가 어떻게 변했는지 살펴보고, 그 의미와 의의를 살펴보고자 한다.
        84.
        2020.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은 T. S. 엘리엇의 시와 에세이 분석을 통해 그의 글이 담고 있는 반민족주의적 사상을 그가 꿈꾸던 유럽의 문화적 통합과 관련하여 연구한다. 이를 통해 그의 반민족주의는 일종의 확장된 민족주의이며, 그의 이러한 범민족주의는 민족주의의 원초적인 관점과 도구적 관점에 기반하였음을 밝힌다. 엘리엇은 제1차 세계 대전 후 유럽 국가들 간의 전쟁을 강하게 반대했고, 유럽은 평화를 위해 연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가 민족주의를 반대한 이유는 민족주의가 유럽의 문화 통일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지 민족주의 자체의 논리에 결함이 있기 때문이 아니었다. 따라서 유럽 문화 통일을 주장하는 엘리엇의 반민족주의가 민족주의의 기반 위에 세워졌다는 것은 전혀 모순되지 않는다. 그의 반민족주의는 민족주의에서 중요하게 취급되는 민족 구성원의 “의지”와 민족국가의 형성과 유지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전통”에 관한 개념을 민족주의와 공유하고 있다. 이는 민족의 동질성 회복이라는 민족주의적 관점에서 남북통일을 생각함과 동시에 세계 평화를 위해 각 국의 민족주의를 경계해야 하는 한국 독자들에게 의미하는 바가 크다. 인류는 언제나 과거를 통해 배우기에 한국에서 엘리엇 읽기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한 것이다.
        85.
        201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실상 우리는 과거, 현재, 미래라는 세 종류의 시간 속에 익숙한 채 살 아가지만 엘리엇이 『네 사중주』를 통하여 정의한 시간은 우리의 그것과 는 대조를 보인다. 그 차이는 엘리엇이 신학적 관점에서 시간에 접근하 기 때문이다. 그래서 엘리엇의 경우 과거, 현재, 미래 모두가 순간의 연속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연구에서 집중한 과거 역시 현재와 밀 접한 관련이 있다. 그래서 엘리엇은 현재의 시각에서 과거를 재조명할 필요성을 역설한다고 볼 수 있다. 엘리엇은 자신이 네 장소에서의 체험을 현재의 시각에서 재조명되기를 소망하면서 이를 보는 시각 역시‘초 탈’을 강조한다. 즉, 자기 자신과 타인과 역사적 사건 등에 대하여 ‘초 탈’의 자세 유지를 우리에게 요구한다.
        86.
        201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노래로 만들어진 가사가 매우 뛰어난 시적, 문학적 성취를 보여주는 사례는 매우 많다고 할 수 있다. 밥 딜런(Bob Dylan)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그런 대표적인 경우라고 할 수 있고, 딜런 만큼 노래의 문학성을 인 정받고 있는 톰 웨이츠(Tom Waits)의 가사 역시 문학적인 성취가 매우 높다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이 외에도 죠니 미첼(Joni Mitchell), 레오나 드 코헨(Leonard Cohen), 루 리드(Lou Reed)와 같은 가수들은 종종 시인 으로 여겨지며 그들의 노래 역시 훌륭한 시로 평가받기도 한다. T. S. 엘리엇의 많은 작품들은 음악과 매우 밀접한 관계를 갖고 있다. 헬렌 가드너에 의해 엘리엇의 『네 사중주』가 음악적 구성을 갖고 있다 는 사실이 지적된 후로, 많은 연구들은 엘리엇의 작품이 갖고 있는 음악적 요소에 많은 관심을 가져왔다. 하지만 반대로 엘리엇의 작품이 음악에 영향을 준 것도 충분히 고려해 볼 만한 이유가 될 수 있을 것이 다. 엘리엇과 대중문화의 관계를 생각해 볼 때, 엘리엇의 몇몇 시들은 1960년대 이후 대중음악에 산발적인 영향을 주었던 것이 명확해 보인다. 그런 면에서, 엘리엇의 문학이 현대 대중음악에 어떤 영향을 주었고, 또 그 문학적 영향이 어떻게 남아 있는지를 1960년대 이후 대중적 으로 널리 알려진 노래의 가사를 중심으로 살펴볼 것이다.
        87.
        201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의 목적은 20세기 영국 모더니즘 최고 시인 엘리엇과 프랑스 상징주의 최고 시인 발레리의 1926-1929년 사이의 관계를 전기비평 관점에서 조명하는 것이다. 이 논문은 주로 『T. S. 엘리엇의 서한집』 3권 (2012)과 4권(2013)에 수록된 서신들에 나타난 『크라이티어리언』 편집인 이자 페이버앤가이어 이사인 엘리엇이 1927년 런던의 리셉션 식장에서 발레리와의 짧은 조우로 불쾌한 감정을 느꼈지만, 발레리의 친구 윌리 엄 맥코즈랜드 스튜어트와 스튜어트의 친구 토마스 맥그리비의 발레리 산문과 운문 번역문 출판에 크라이티어리언출판사 대신에 페이버앤가이어, 호가스출판사, 조나산케이프출판사가 협조하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 면서 중재하고 있다. 엘리엇의 서신을 통한 집요한 노력 덕택으로 맥그 리비의 번역본 『레오나르드 다빈치 방법 입문』이 1929년 존 로드커에서, 스튜어트의 번역본 『건축가 에우팔리노스』가 1932년 호가스출판사 가 아닌 옥스퍼드대출판부에서 출간된다. 요컨대, 4년 기간에 걸친 엘리 엇과 발레리 번역가들, 호가스출판사의 레너드 울프 출판인, W. B. 예이츠와 엘리엇의 상호 친구인 토마스 스터지 무어 시인이자 비평가 및 기 타 문인들과의 수많은 영불(英佛) 서한들은 특히 발레리 작품의 세계적인 보급을 위한 영역(英譯) 출판에서 엘리엇과 발레리 이 두 거장들의 신뢰할 만하고 존경스런 우정을 강력히 제시하고 있다.
        88.
        2019.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1920년 이전의 엘리엇 시의 두 가지 심리적 특징은 환상과 좌절이며 여기에 원인과 과정으로 여성(성)이 깊이 개입하고 있다. 이 시기의 화자들은 여성들의 반응과 그들과의 관계에서 의해 자기를 이해하고, 스스로에 대한 가치를 매기며, 이 태도는 여성들과 관계없는 일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이들은 저항할 수 없이 여성들에게 끌리지만 예민한 자의식속에서 여성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없을 것이라고 예단하며 더 이상의 관계를 추구하지 못하는 나약한 모습을 보인다. 이 같은 정체감은 화자들이 의식하고 있는 보다 근본적인 문제에 대한 접근 노력을 사전에 차단하는 효과를 보이기도 한다. 화자들이 겪는 이 같은 곤경은 당시 시인이 겪었던 성적인 욕망과 좌절, 보다 근본적으로는 시인에게 작용하는 어머니 원형과 아니마의 경쟁관계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아니마의 유혹과 어머니의 세계에 머물고 싶은 충동이 충돌하는 양상이 시에 반영되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황무지』를 거쳐 『재의 수요일』에 이르면 시인은 활발하게 여성성과 활발하게 교류하며 종교적 행로를 모색하게 된다. 이 글에서는 엘리엇의 초기시 몇 편에 나타난 환상과 좌절을 여성과의 관계라는 측면에서 추적해 보았다.
        89.
        2019.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의 주요 목적은 T. S. 엘리엇의 비평에세이인「종교와 문학」을 면밀히 점검함으로써 문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한 그의 견해를 해명하는 것이다, 1935년에 발표된 중요한 이 에세이에서 엘리엇은 자신이 시대를 세속화가 전면적으로 이루어진 시대로 진단하며, 동 시대의 신학자인 폴 틸리히의 ‘궁극적 관심’과 주목할 정도로 의미적인 유사성을 지닌 것으로 엘리엇이 ‘근원적 관심’이라고 불렀던 것은 이 시대에는 거의 완전히 잊어져버렸다. 엘리엇은 세속화의 주요 원인으로 오락의 명에 따라 고급문화를 탈구를 이끌고 있는 대중문화의 파과적인 힘을 지적하고 있다. ‘근원적 관심’의 회복을 추구하는 엘리엇은 문학 작품의 윤리적 종교적인 가치를 명확히 하는 것뿐만 아니라 대중문화와 오락에 탐닉하는 일반 사람들에게 ‘근원적 관심’을 파종시키는데 있어서 문학 비평이 주도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90.
        2019.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네 사중주』의 주제는 매우 단순하다. 그것은 인간과 하나님 사이의 바람직한 관계설정으로 요약된다. 간단한 주제임에도 불구하고 『네 사중주』의 핵심 내용을 파악하기란 결코 쉽지 않다. 그 어려움 중의 하나가 시간에 대한 엘리엇의 정의이다. 엘리엇은 시간을 우리가 생활기준으로 삼는 물리적 기준과는 달리 형이상학적으로 정의한다. 그는 물리적 시간에 익숙한 인간에게 시간에서 해방되는 방법으로서 하나님의 시간에 인간의 그것을 맞출 것을 제안한다. 이것이 곧 과거, 현재, 미래에서 해방되어 무시간에 접근할 수 있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은 이를 부인하고 시간을 물리적이나 과학적으로 측정하려고 애쓴다. 그 결과 하나님이 아닌 다른 일종의 점술 행위에 의존함으로써 구원에 이르지 못한다.
        91.
        2019.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 S. 엘리엇의 초기 시 「서곡들」은 향후 엘리엇의 시의 세계를 미리 알려주는 척도로서 그 의미를 지니며, 반복되는 도시의 저녁과 밤 그리고 다시 아침을 맞이하며 인간의 영혼이 도시의 길에 나타나는 파편화 된 이미지와 상징적 관계를 보여준다. 그리고 「서곡들」에서 인칭대명사의 병존을 통해서 주체와 객체의 경계가 무너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이는 과거와 미래가 현재에 공존할 수 있다는 베르그송의 시간적 개념에서 설명될 수 있다. 음악에서 악기의 테스트나 기술적 어려움을 극복할 때 서곡의 즉흥연주 기법을 사용하듯 시인은 이 시에서 시적 즉흥 연주를 보여준다. 본 논문은 시간의 다양한 가면성이 어떻게 몰개성화 된 도시의 거리를 서곡처럼 연주하게 되는지를 증명한다.
        92.
        2019.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의 목적은 20세기 영국 모더니즘 최고 시인 엘리엇과 프랑스 상징주의 최고 시인 발레리의 1920-1925년 사이의 관계를 전기비평 관점에서 조명하는 것이다. 이 논문은 주로 『T. S. 엘리엇의 서한집』 1권 (2009)과 2권(2009)에 수록된 서신들에 나타난 『크라이티어리언』 편집인 엘리엇이 발레리의 「뱀」(1922)의 마크 워들 번역시를 출판인 리처드 콥든-샌더슨과 후원자 로더미어 여사의 협조로 1923년 동지(同誌)에 최초로 출판하고, 이어서 워들의 번역시와 엘리엇의「뽈 발레리의 기법 소서(小序)」가 수록된 『뽈 발레리의 뱀』(1924)의 출판에 사무적으로 중재 하고 있다. 엘리엇의 『황무지』(1922)에 대한 발레리의 호평은 발레리의「영혼과 무도(舞蹈): 소크라테스의 대화술」(1921)에 관한 엘리엇의 혹평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찰스 휘블리와 존 헤이워드는 엘리엇과 발레리의 상호 절친한 친구들로서 그들의 존경스런 우정을 강화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요컨대, 6년 기간에 걸친 엘리엇과 발레리의 수많은 영불(英佛) 서한들은 엘리엇과 발레리가 편집인-투고자 관계로부터 예찬할만한 거장들의 국제적인 우정에 이르기까지 상호 강력한 영향력을 시사하고 있다.
        93.
        2019.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엘리엇의 『네 사중주』는 그의 어느 다른 작품보다도 우리의 깊은 사고를 요구하는 작품이다. 그래서 다양한 별칭이 붙어 있으며 특히 우리가 간과할 수 없는 점은 엘리엇 개인의 추억과 체험에 의존하여 창작된 작품이다. 그래서 엘리엇 역시 자신이 느낀 체험을 문자화(언어화)시키려고 부단히 노력했으며 독자들은 그의 추억과 체험에 의존해서 출현된 언어화를 적절히 이해하는 것이 본 작품에 대한 이해의 최대 관건이다. 그래서 본 연구는 『네 사중주』의 창작과정에서 ‘추억’과 ‘체험’의 중요성을 간략하게 살펴보았고 이어서 그 ‘추억’과 ‘체험’을 구체화시키려고 노력하는 엘리엇의 모습과 함께 인간의 삶의 바람직한 자세를 시간으로 부터의 구원이라는 시각으로 살펴보았다.
        94.
        2019.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운명에 대한 인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많은 문학작품에서 다루어 졌다. 특히 T. S.엘리엇의 대표적인 작품인 『황무지』와 『네 사중주』에는 이러한 운명에 대한 인식이 매우 통찰력 있게 나타나 있다. 운명에 대 한 인식은 단순히 인간 삶에 있어서 피할 수 없는 어떤 사건이나 비극적인 인연이라기보다는 매우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차원으로 추상화된 삶과 운명에 대한 철학적인 통찰이라고 할 수 있다. 엘리엇의 작품을 운명에 대한 인식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은 기존 엘리엇의 작품에 대한 철학적, 종교적 성찰의 연장된 선상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엘리엇이 자신의 중요 작품을 통해 간헐적으로 드러내고 있는 운명에 대한 인식은 상당부분 명리학적 운명의 인식과 비슷한 양상을 띠고 있으며, 이러한 운명에 대한 인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비슷한 형태를 띠고 있다는 사실은 매우 주목할 만하다. 이러한 사실은 『황무지』와 『네 사중주』 에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운명과 관련된 이미지, 상징, 그리고 부분적으로 다뤄지고 있는 주제의식에서 확인될 수 있다. 이런 맥락에서 엘리엇이 고찰하고 있는 인간 운명에 대한 인식은 많은 측면에서 명리학적인 운명의 인식과 비교될 수 있다.
        95.
        2019.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인류 보편적인 관계형성이 어떻게 이루어 질 수 있는지를 그리스도교의 구원론을 기본으로 T. S. 엘리엇의 작품 『가족의 재회』에 서 탐색한다. 특히 본 연구는 『가족의 재회』의 현 시대에 인간 사회뿐 아니라 신과 관계를 형성하려는 이들에게 어떤 새로운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지를 초기 그리스도교 시대의 메타노이아와 아가페의 상호관계를 통해 규명하고자 한다. 엘리엇의 작품은 많은 그리스도적 전통을 제 시하는 데, 특히 초기 그리스도교의 파레시아 개념은 가족의 재회에 드러난 원죄인식과 인간구원의 관계를 명확하게 드러낸다. 특히 개심의 메타노이아와 신의 은총인 아가페의 개념은 본 작품의 해리와 아가사의 관계에서 드러난다. 따라서 본 연구는 개인과 외부의 관계의 상호성을 바탕으로, 비록 개인의 의지만으로 관계를 회복할 수 없지만, 개인이 사 랑을 실천하는 것이 외부의 은총과 관심과 결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 수 있다고 강조한다. 새로운 관계회복은 자기방기와 같은 외부세계에 대한 열린 태도와 개인의 속죄로 더욱 강화될 것이다.
        96.
        2019.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 S. 엘리엇은 20세기 현대 문학 이론과 비평의 큰 분기점이 된 「전통과 개인의 재능」에서, 몰개성화 과정을 통한 유기적으로 통합된 문학적 전통 질서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러한 시론을 바탕으로 그는 『D. H. 로렌스와 인간 존재』라는 책의 서문에서, 로렌스가 작가로서의 자질 뿐만 아니라 그의 작품에 대해 변덕스럽고 논리적이지 못하다고 혹평한다. 즉 로렌스는 제대로 교육을 받지 못하고 그로 인한 “무지와 편견”으 로 인해서 작가로서의 임무나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의 위험에 빠져 있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엘리엇의 로렌스 비판과는 대조적으로, F. R. 리비스와 레이몬드 윌리엄스는 로렌스가 당시 학계의 주류를 이 루던 교육의 편협함에서 벗어나 오히려 탁월한 내면적 통찰력과 “우월한 지성”으로써, 당시 영국의 사회와 앞으로의 미래 그리고 그 이면의 본질을 포착하여 작품 속에 훌륭히 형상화하고 있다고 극찬한다. 본 논문은 이들의 의견에 공감하면서, 엘리엇의 「전통과 개인의 재능」의 문학적 전통과 몰개성화 이론을 바탕으로 엘리엇과 로렌스의 사상과 문학 이론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조금 더 심도 있게 고찰하고자 한다.
        97.
        2019.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푸코가 『말과 사물』에서 논증한 에피스테메와 “인간의 사 라짐”에 근거하여 모더니즘과 엘리엇의 시의 본질을 재평가하고자 한다. 에피스테메는 역사적이지만 비-시간적인 선험으로서, 어떤 특정한 시대에 특정한 담론들이 가능한 조건으로서 작동한다. 18세기 중엽부터 19세기 말까지 지속되었던 근대의 에피스테메 내에서 인간이란 개념은 생물학, 경제학과 언어학에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 개념은 철학의 영구 적인 주제가 아니라, 근대 과학의 발전에 기반을 둔 역사적인 해설이거나 역사적으로 구성된 허구에 불과하다. 푸코는 근대의 에피스테메가 갑자기 변화하면, 인간이란 개념도 쓸모없어지며, 따라서 근대 주체인 인간도 사라진다고 보았다. 본 논문은 푸코의 에피스테메와 근대 주체로서의 인간에 대한 이론에 근거하여, 모더니즘을 “새롭게 하기”라거나 “재현의 위기”라거나 “내면 탐구”라는 문학적 운동에 불과한 것이 아니 라 새로운 시대의 에피스테메이며, 모더니즘을 대표하는 엘리엇의 시는 근대 주체인 인간의 죽음과 새로운 인간의 출현을 그려내고 있다는 것 을 밝히고자 한다.
        98.
        2019.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 S. 엘리엇의 네 사중주는 4 편의 시들로 구성돼 있으며, 각 시의 제목은 특정한 장소의 이름이다-「번트 노튼」(“Burnt Norton”), 「이스트 코우커」(“East Coker”), 「드라이 샐베이지즈」(“The Dry Salvages”) 그리고 「리틀 기딩」(“Little Gidding”). 본고는 네 개 제목들의 첫 글자들을 순서대로 결합하면 ‘B-E-TH-L’ 또는 ‘B-E-THE-L’이라는 단어가 만들어지고, 이는 ‘Bethlehem’ or ‘Bethel’ 이라는 낱말을 이루게 된다는 가설을 제안 한다. 히브리어로 ‘beth’는 ‘집’을 뜻하므로 ‘Bethlehem’은 ‘빵의 집’을, ‘Bethel’은 ‘하나님의 집’을 의미한다. 본고는 엘리엇의 집필과정을 상세히 탐구함으로써 이 가정을 뒷받침해줄 근거를 찾아간다. 본고는 이와 같은 시인의 은밀히 감춰진 의도에 대한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받아들임으로써 『네 사중주』를 신이 인간이 된 역사적인 사건, 즉 성육화가 일어났던 독특한 지상의 공간인 한 특별한 ‘집,’ 즉 베들레헴을 향해가는 여정으로 이해하는 시도를 한다. 특히 메를로-퐁티와 같은 현대 현상학자들에 의해 전개된 공간에 대한 이론을 원용하여, 이 작품을 현상학적인 관점에서 공간적 경험으로서 분석한다. 『네 사중주』의 순례자에게 공간은 실존적이며 존재는 공간적이다. 베들레헴은 구원에 대한 희망을 위해 기억될 수 있도록 인류에게 허락된 유일한 장소이다.
        99.
        2019.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의 목적은 20세기 모더니즘 최고 시인 엘리엇과 모더니즘 최고 소설가 조이스의 1923-1927년 사이의 관계를 전기비평 관점에서 조명하는 것이다. 이 논문은 주로 『T. S. 엘리엇의 서한집』 2권(2009)과 3권(2012), 『제임스 조이스의 서한집』 1권(1957)과 3권(1966)에 수록된 서신들에 나타난 크라이티어리언 편집인 엘리엇이 조지 세인츠베리에 게 조이스의 『율리시즈』 비평문 원고 청탁, 『율리시즈』에 관한 엘리엇 의 비평, 조이스의 눈수술과 가족 숙소에 관한 엘리엇의 관심, 조이스의 『황무지』 패로디시, 조이스의 엘리엇 부부에 관한 안부 등을 탐색하고 있다. 아울러 엘리엇이 「『율리시즈』, 질서와 신화」(1923)에서 리처드 알딩턴의 『율리시즈』 혹평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와 『율리시즈』의 병행 구조의 “신화적 기법”의 수월성 제시, 엘리엇의 사무엘 로스의 『율리시즈』 해적판과 자신 시의 무단 출간에 대한 비판과 공방(攻防), 실비아 비치 주도 조이스의 로스 소송 일환의 국제적 항의문에 엘리엇의 서명 등을 심도 있게 천착하고 있다. 요컨대, 5년 기간에 걸친 엘리엇과 조이스 및 파운드의 수많은 서한들은 엘리엇과 조이스가 친밀한 관계에서 『율리시즈』 비판과 불법적인 판권 침해에 대해 공동 대처를 모색하는 모더니스트 문학 거장들의 협조 관계로 이르기까 지 상호 강력한 영향력을 시사하고 있다.
        100.
        2018.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눈과 눈물의 존재론적 의미를 깊이 있게 파고들었던 앤드 류 마블과 T. S. 엘리엇의 시들을 면밀히 검토하고자 한다. 논문의 전반부는 이의제가 앤드류 마블의 눈과 눈물에 시적으로 어떻게 극화되 었는지를 해명한다. 이 시에서 눈은 자아중심적인 주체와 인식론적인 시각이 높이 평가되는 존재론적인 영역이다. ‘눈/나의 정권’에 비판적인 마블은 이를 해체하는 신체적인 증표이자 알레고리적인 아이콘으로 눈 물을 전경화한다. 마블에게 눈물을 흘리는 것은 단지 이타성을 지향하는 수행적인 행위일 뿐만 아니라 더 중요하게는 절대타자를 향하는 하나의 영적 기도이다. 이 논문의 후반부는 눈과 눈물의 존재론이 다른 형태로 극적으로 제시된 T. S. 엘리엇의 눈물 흘리며 내가 전에 봤던 눈과 텅 빈 사람들 을 꼼꼼히 분석한다. 엘리엇의 시들은 ‘눈/나’의 헤게모니적인 권력에 대해 시인의 비판적인 목소리를 등재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 시에서 죽음의 다른 왕국으로 묘사된 초월적인 세계에 대한 절절한 염원과 자신의 영적 구원에 대한 뿌리 깊은 회의 사이에서 끊임 없이 동요하는 엘리엇의 페르소나는 허무주의자이며, 그가 영적으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눈물을 흘리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절대타자에게만 시선이 늘 고정된 “부릅뜬 눈”을 지녀야 한다. 하지만, 기독교로 개종하기 2년 전에 쓴 이 시는 시인 자신의 죽음의 왕국에는 이 눈이 부재하다는 고통스러운 자기고백을 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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