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에서는 오사카 긴타로(大坂金太郞, 1877~?)의 저작 경주의 전설(慶州の傳說) (1927년 초판)을 중심으로, 석굴암(石窟庵) 본존불 여래좌상과 조선의 민간신앙이 일제강 점기에 근대적 관점에서 어떻게 관계 지어지고 해석되었는지 고찰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아들을 내려주는 불상’으로 이미지화된 석굴암 본존불이다. 글에서는 경주의 전설에 기술 된 석굴암 본존불 전설을 확인하고, 이것이 일제강점기 석굴암 본존불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 하는 데에 어떠한 영향을 미쳤는지 살핀다. 오사카 긴타로는 경주의 전설에서 석굴암 본존불과 관련된 전설로 삼국유사(三國遺 事) 「경덕왕충담사표훈대덕(景徳王忠談師表訓大徳)」조의 혜공왕(惠恭王) 탄생 전설을 인 용하고, 이를 당대 조선인의 ‘극단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수준’의 남아 선호와 연관시켰다. 그리고 석굴암 본존불이 조선인들에게 아들을 내려주는 부처로 신앙되고 있다고 묘사하였다. 이러한 기술은 일제강점기 일본 지식인들이 석굴암에 대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데 적지 않은 영향력을 행사하였다. 이처럼 석굴암을 타자 조선인의 우상으로 폄하하는 인식은 그것을 동양 의 걸작으로 극찬하는 시선과 공존하고 있었다. 이러한 모순은 동양은 하나라는 태도와 조선은 비문명이라는 태도가 공존하던 근대기 일본의 복잡한 정치적, 사회적 배경과 연관된다. 이 글 은 식민지 시기 석굴암에 대한 태도를 확인하기 위해 기존에 연구된 석굴암의 미술사학적 위상 과 더불어, 비문명화된 타자의 우상으로서의 석굴암 이미지를 새로이 확인하고자 한다.
이 논문은 일제강점기 조선에 세워진 젠코지(善光寺)와 그 불상의 특징을 살핀 것이다. 전설에 의하면 일본의 젠코지 아미타삼존상은 백제 성왕이 전해준 일본 최초의 불상이다. 젠 코지 상에 대한 연구는 전근대기 일본의 상황을 중심으로 구미와 일본에서 여러 차례 진행되 었으나, 그 모각상이 일제강점기 조선에도 봉안됐음은 주목되지 않았다. 이는 조선 젠코지와 그 상이 현존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는 일제강점기 조선에 유입된 일본 불교 미술의 일면을 확인할 수 있는 사례다. 또한 백제와 일본의 미술사적 교류 사실이 근대기에 어떻게 정치적으로 해석되었는가를 살필 수 있는 사례이기도 하다. 논문에서는 조선에 들어온 젠코 지의 사례로 1916년에 창건된 진해 젠코지와 1942년에 승인된 공주 젠코지를 제시한 후 각각의 특징을 고찰했다. 이를 통해 첫째로 젠코지 상은 조선 내에서 그 내력이 재발견 되었 으며 이에 따라 동일한 상이 모각됨에도 모각 시기와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성격을 갖게 되었음을 확인했다. 둘째로 조선에서 젠코지식 상은 나가노 젠코지의 분신으로 여겨졌으며 상의 모각이 나가노 젠코지의 엄격한 통제 하에서 이루어졌음을 확인했다. 본 논문은 이를 살핌으로써 일제강점기 조선 내 일본 불상의 연구 범위를 확장하고자 했다.
울릉도 독도는 6세기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 시기부터 고려, 조선을 거쳐 대한 제국기인 1905년까지 강원도 관할 하에 있었다. 강원도 지역민들은 고대 때부터 육안으로 '울릉도 독도'를 바라보며 '우산국' '무릉도 우산도'라 불러온 같은 생활 권역에 있다. 일제 침략과정에서 울릉도 독도와 지리적, 역사적, 생활문화적으로 연속선상에 있던 강원도를 배제하고 부산, 포항으로 해상교통 거점을 의도적으로 바꾸면서 행정의 연속성을 흔들어놓았다. 1906년 행정구역 편제로 강원도 관할에서 경상남도로 이관되었으며, 1914년엔 경상북도로 변경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울릉도 독도가 타 시도로 이관된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교류 양상이 어떻게 전개되고 인식되었는지 1920~30년대 신문 기사를 통해 살펴보았다. 1920~30년대 동아일보에 실린 울릉도 관련 기사 164건을 대상으로 강원도 부분이 어떻게 서술되어 있는지 분석한 결과 행정 및 민원 관련 기사는 강원도와 무관하였으나 실생활과 역사성을 다룬 기사에서 서술되고 있었다. 첫 번째는 울릉도 입도 과정, 해상 조난 등 사건 사고, 태풍과 같은 기상, 경제 활동 등 실생활과 밀접한 뉴스에 나타나고 있다. 1920~30년대 경상도 부산항이나 포항항, 함경도 원산항에서 울릉도를 입출항할 때 강원도 울진 앞 바다까지 북상 내지 남하하여 동쪽으로 선회하고 있어 최단거리 항구인 울진 죽변항이나 삼척 임원항은 여전히 중요 항구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두 번째는 역사, 전설을 다룬 기사에서 강원도 관련 내용이 풍부하게 서술되고 있다. 울릉도 역사 서술의 첫머리에 하슬라군주 이사부 활약 및 고려 때 강원인의 이주 시도, 삼척영장과 월송만호 수토, 개척령 시기 강원인 이주 등 강원도 역사와 중첩돼 환기되고 있다. 울릉도 태하리 성하신당 전설은 강원도 수토사를 수행 해왔다가 풍랑으로 익사한 강원도 하급관리의 희생을 기리는 공간이었으나 이후 울릉도사람들의 무사안전을 기원하는 신앙처로 윤색되어 전승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울릉도가 강원도 행정관할에서 타도로 이관되면서 각종교류도 위축되었으나 1920~30년대 울릉도 관련 신문기사를 통해 실생활 차원의 교류는 지속적으로 확인되고, 역사성도 언론을 통해 수시로 환기되고 기억되고 있다. 현재 강원도는 울릉도 독도와 행정구역을 달리하고 있지만 최근 인적교류가 가장 활발한 곳으로 위치를 다시 점하며 교류거점으로 재부상되는 역사성이 발휘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