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중국의 현대소설이나 영화에서 주제의식을 드러내는 서사적 전락기제로서 빈번하게 표출되는 ‘고향’ 이미지가 현실화된 유토피아 장소인 헤테로토피아로 전환 되고, 미래의 좀 더 나은 세계를 지향하는 고향유토피아 의식으로 승화되는 동양적 인 근대의 특징을 살펴보았다. 선행적으로 미셀 푸코의 미완성된 개념인 헤테로토피 아의 이론적 특징을 살펴보고 고향유토피아의 개념을 정리하였다. 김사량의 「향수」 와 루쉰의 「고향」에서 헤테로토피아와 고향유토피아는 과거를 이상화해 현실을 비판 하고 좀 더 나은 미래의 모습을 지향하고 있다. 이창동의 「초록물고기」와 지아장커 의 「샤오우」는 도시화라는 격변하는 현실에서 변하는 것과 변할 수 없는 것 사이에 서 방황하는 유동하는 헤테로토피아라고 할 수 있다.
신과 인간의 관계는 김동리 소설의 핵심이며 여신적 인간 창조를 통해 구현된다. 여신적 인간은 인간 내부의 신성을 발현시켜 한계상황을 외재적 신에 의지하지 않고 극복하는 인간이다. 여신적 인간의 초월적 성격은 만유재신론을 기본으로 하고, 외재하는 신을 인정하는 동시에 인간 내부에 잠재된 신성을 강조 하는 김동리의 의도를 보여준다. 박현수의 ‘너머-여기’ 사유에 대한 정리는 이 연구의 주요 대상이 되는 「무녀도」, 「사반의 십자가」, 「등신불」을 분석하는 좋 은 방법이 된다. 소설 「무녀도」의 모화, 「사반의 십자가」의 사반, 「등신불」의 만적은 각각 ‘너머-저기’ 또는 ‘오직-여기’ 사유를 극복하고 ‘너머-여기’ 사유를 실현한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유 방식은 동학 인내천 사상과의 연결 가능성을 시사한다.
『테스』와「약한 자의 슬픔」은 발표된 시기와 문화적 배경이 다름에도 불구 하고, 근대화 시대의 상징 권력에 의해 희생당하는 여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근대의 상징 권력 하에서 여성은 여전히 쉽게 타자로 간주 된다. 주체적 존재로서의 여성의 삶은 사랑과 종교 담론에 밀접한 관련성을 갖게 된다. 두 작품 속에 나타나는 주인공인 테스와 엘리자베트가 꿈꾸는 낭만적 사랑은 근대화 시대의 상징 권력에 직면하게 됨으로써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궁극적으로 사회의 상징 권력에 대한 개인적 태도에 따라서 미래의 삶에 대한 양상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두 작품의 비교는 과거를 통하여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기획 하는데 문학적 지혜를 제공한다. 위기에 놓인 인간의 주체적인 삶에 대한 모색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전근대, 근대화, 탈근대라는 역사의 진행 과정에서 각 시대의 상징 권력을 뛰어넘음으로써 참된 사랑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때 사회적 상징 권력에 종속되거나 패배하지 않고 개인의 행복을 꿈꿀 가능성이 담보될 수 있다는 점을 두 작품은 보여준다.
대개 작가의식은 작가라는 주체의 통일된 의식으로 규정된다. 작가의식이 이전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날 때 그것은 ‘작가의식의 변화’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 관점으로는 상호 모순적으로 드러나는 작가의식들을 설명하기가 어렵다. 김동리의 경우 무녀도 개작 과정이나 기독교 소재 소설들에서 작가의식의 균열이 나타난다. 자아의 모순성이 단순한 병리적 현상이 아니라면 원래부터 자아는 하나로 단순화할 수 없는 주체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각 텍스트는 그 나름의 특징을 가진 것으로 비춰지는데, 그것은 하나로 통일된 작가의식으로 보기 어렵다. 이 글은 텍스트 창작 과정을 작가의 정체성을 점유하기 위한 조각 작가들의 경합 과정으로 본다. 조각 작가는 작가의 경험을 통해 각기 다른 조각 작가들로 생성되고 작가의 자아 내부에서 먼저 생성된 조각 작가들과 합치되거나 갈등을 일으킨다. 이러한 현상의 근본 원인은 인간이 자신이 원하는 방향으로만 경험할 수는 없다는 사실에 있다.
이 글은 김동리의 『을화』와 치누아 아체베의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를 대상으로 한다. 두 작품은 모두 기독교와 토착 신앙이 충돌하는 모습을 보여 준다는 점에서 공통점이 있으나, 차이점 또한 확연하다. 을화 에서 기독교는 서구 제국주의와 동의어가 아니며, 기독교를 긍정적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토착 신앙과 가치체계를 고수하는 부모 세대와 기독교적 가치체계를 받아들인 아들 세대는 서로 충돌하게 된다. 그 결과 을화에서는 아들 영술이, 『모든 것이 산산이 부서지다』에서는 아버지 오콩코가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영술의 죽음은 기독교가 토착 신앙화되고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에 결합하면서 일어난 것이었다. 오콩코의 죽음은 기독교로 대표되는 서구 제국주의 세계의 폭력 때문이었다. 그러나 두 작품의 결말에서, 기독교와 지배 이데올로기의 양 면성을 읽을 필요가 있다. 젊은 세대를 희생양으로 삼은 가부장제 이데올로기와 존중받아야 할 문화를 삭제하는 제국주의가 모두 폭력적으로 드러나기 때문이 다. 종교가 지배 이데올로기와 결합하면서 빚어진 죽음을 그려낸다는 점에서 두 작품을 재독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작업을 기반으로 종교 간의 갈등이 문학작 품에서 그려지는 조건과 인물형을 유형화할 수 있을 것이다.
Dong-gang Kim, U-ong (1540-1603) who was born in Sung-ju, Kyungsang-bukdo, studied under the guidance of Namm-yung Jo, sik as well as Toe-gye Yi, whang. However, as he himself professed, his main influence was from Mam-myung, for he often attended his seminars for Chinese Classics from the age of 24 to 33, before he went into politics. He complied and wrote Nam-myung's Lessons and Anecdotes(言行錄), and Biography(行狀), which attested to his status as the foremost disciple of the Nam-myung school. Before attending Nam-myung's lectures, Kim, U-ong was well acquainted through his father with the study of Kyung(敬), the cultivation of self as the center of the universe, and also had the Confucianist principle of employing himself in politics(出處). He advanced these studies under Nam-myung's instruction. He received a bell called Sungsung-za(惺惺子), which Nam-myung had always carried with himself as a reminder of constant awakening, and established the discipline and the practice of the study of his own mind. All of these experiences became an important qualification in the field of politics, and he clearly showed this discipline in deciding when he should go into or out of a political world, accept or decline government services. His study of Kyong, which was consistent in his achievements, characteristically put an emphasis on the study that preserves the clarity of mind, and it was a succession to Nam-myung's study of mind. It also was a little different from the study of Kyung conducted by Toe-gye school, in that Toe-gye focused on the maintenance of reverent and cautious state of mind. Kim, U-ong read books in neo-Confucianism, such as The Reflections on Things at Hands(近思綠), as well as Ju-hi's Epistle Anthology(朱書節要) edited by Yi, whang. On the basis of his interpretation of neo-Confucianism, he developed his own unique perspective in seminars of Chinese classics at the royal palace, and won a reputation as one of the best scholars of the time. Especially, his theory on the right and the wrong(辨異端) differed from that of Nam-myung, and it showed that he was influenced rather by Toe-gye. In conclusion, U-ong Kim established his own philosophical perspective through harmoniously integrating both Nam-myung's view and Toe-gy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