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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5.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Chinese philosophy has its profound exploration of the understanding of life, and most of the literary works are presented with the life consciousness of the literati as their own feelings, among which the vigorous life consciousness in Li Bai’s poems in the Tang Dynasty is particularly prominent. Taking his Yongxia poems as an example, the life consciousness of being positive and high-spirited and free of merit runs throughout, but from the high-spirited and willful heroes of his youth to the frustration of middle-aged officialdom and then to the tossing and turning of his later years, these life experiences have brought great changes in Li Bai‘s thinking and creative style to the creation of Yongxia poems. Li Bai’s life consciousness and creative focus have gradually developed from focusing on individuals to more in-depth thinking in society, from expressing youthful and high-spirited ideals to showing more dual thinking of ideals and reality, showing the continuous enrichment of Li Bai‘s life consciousness. As an important type of Li Bai’s poems, Yongxia poetry shows the unique life consciousness of Li Bai and Confucianism and Taoism, which is of great value for the study of Li Baixia‘s personality and the formation of his romantic poetic style. At a time when utilitarian thought is prevalent, Li Bai’s chivalrous spirit and vigorous life consciousness also have important reference value for the growth of individual personality and the shaping of national spirit.
        6,400원
        2.
        2024.09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1949년 선충원은 오랜 기간 누적된 안팎의 억압을 견디지 못하고 생명을 단절시키 려 했으나 미수에 그치며, 광증과 실어의 상태를 거쳐 끝내 문학창작을 중단한다. 본 논문은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분석함에 있어, 여기에 내재한 선충원의 생명의식을 5· 4 계몽사상의 자장 안에 공존한 루쉰의 그것과 비교함으로써, 선충원이 좌익문단과 분기하게 된 지점을 추적하고자 했다.
        5,500원
        3.
        2019.06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현대 사회에 들어와 우리는 기술의 발전에 따른 다양한 혜택을 누리며 풍요롭고 안락한 삶을 영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지나친 개발로 인해 생명경시 태도와 인격체에 대한 경시 사상 또한 함께 퍼지게 되었고, 이는 정서지능이나 인성에 대한 가치관이 확립되는 아동기에 좋지 않은 영향을 준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동물매개교육 프로 그램이 초등학교 3학년 아동의 생명존중 의식과 인성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고자 하였다. 본 연구의 대상자는 J도 I시 소재 초등학교 3학년 아동 24명을 대상으로 사전‧사후 점수 비교법을 통해 결과를 얻었다. 동물매개교육 프로그램은 2019년 3월 29일 부터 2019년 5월 31일까지 주 1회씩 총 10회기를 실시하였다. 연구 결과로 동물매개교 육이 대상 아동의 생명존중 의식과 인성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실시한 생명존 중 의식 척도와 인성 척도 사전‧사후 검사를 통해서도 유의한 차이가 있었다. 따라서 본 연구를 통해 동물매개교육이 초등학교 3학년 아동의 생명존중 의식과 인성 향상에 긍정적인 효과가 있음을 알 수 있다.
        4,200원
        4.
        1996.05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Generally, the culture of dietary life in a country is closely related to the heritage of racial culture, and it is very important to inherit and develop the culture of the traditional dietary life. This research is to investigate consciousness and behaviors of dietary life using a questionnaire survey for 521 housewives living in Seoul and Kyonggido. The data was analyzed with frequency, percentage, T-test, 2 (Chi-square)-test, dispersion analysis, Pearson's correlation and hierarchical multiple-regression analysis. The results of the survey are summarized as follows; 1. Consciousness of Traditional Foods. They thought that traditional foods were Sinsollo, sorts of beverage, Dduk (Korean cake), Kim-chi, Hankwa (Korean cookies), and Kujolpan, and that traditional foods were proud for its various tastes. But they thought the cuisine of the traditional food is very complicated, accordingly the frequency of traditional food was decreased. Therefore they thought that its tastes was important to develop and spread traditional foods. 2. Dietary Life Behaviors for Traditional Food. They take traditional foods on big holidays and religious service days. It is their mother who taught them the traditional cooking method. Most ftequently used cooking method is boiling. They gave their children a traditional snack such as 'Dduk (Korean cake), noodles, and fried food. Frequency of taking beverage, Hankwa (Korean cookies), Juk (guel) and Dduk (Korean cake) have been decreased. 3. The Correlation of General Environment and Consciousness, Knowledge, Dietary Life Behaviors of Traditional food. The older they are, the more eager to teach traditional food cooking, to preserve the traditional table setting, to give their children traditional snack and the more traditional dietary life behaviors are.
        6,700원
        5.
        1986.09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우리나라 장수자(長壽者)의 생활(生活) 및 의식조사(意識調査) 연구(硏究)의 일환(一環)으로, 우리나라 장수자(長壽者)의 과거(過去)의 사회생활(社會生活)과 일상생활습관(日常生活習慣)에 대해서 분석(分析) 비교(比較)한 결과(結果)는 다음과 같다. 1. 장수자(長壽者)의 40~60세경의 기상(起床) 및 취침시간(就寢時間)이 「대체로 일정했다」고 대답한 사람이 전체의 81.8% 및 63.1%였으며, 장수자의 59.4%가 6시전에 기상했으며, 또 61.3%가 오후 9시~11시 사이에 취침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녀별(男女別) 차이(差異)는 발견할 수 없었다. 2. 장수자(長壽者)의 최장직업(最長職業)중에서 농업(農業), 어업(漁業), 가사종사(家事從事) 등 자영업(自營業)이 전체의 86.3%로 가장 많았으나, 경영관리직(經營管理職)(0.8%), 소기업경영(小企業經營)(0.8%), 공무원(公務員) 및 회사원(會社員)(1.8%) 등은 아주 적었다. 따라서 장수자(長壽者)의 노동정도(勞動程度)도 육체적(肉體的) 노동(勞動)이 95.7%로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반면 정신적(精神的) 노동(勞動)은 2.8%에 지나지 않았다. 이러한 사실은 이들 장수자(長壽者)의 교육정도(敎育程度)와 밀접한 관계(關係)가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3. 장수자(長壽者)가 직장(職場)이나 가사(家事)에서 은퇴한 년령(年齡)은 전체의 58.3%가 70세 이상이었으며, 그들 중의 24.3%는 80세 이상에서 은퇴한 것으로 나타났다. 4. 장수자(長壽者)의 57.2%가 직장(職場)이나 가사(家事)에서 은퇴한 후 가정에서 어떤 역할(役割)을 분담하고 있었던 반면, 그들 중의 35.9%는 아무 일도 하지 않고 있었다. 또 가정에서 역할(役割)을 분담하지 않은 경우 소일(消日)하는 방법은 「집에 그냥 있었다」(50%)가 가장 많고, 그 다음은 「노인정(老人亭)에 갔다」(30.9%) 「침대에 누워 있었다」(10.3%), 「양로원(養老院)에 갔다」(8.8%)의 순이었다. 5. 장수자(長壽者)가 직장(職場)이나 가사(家事)에서 은퇴하기 전의 교제상태(交際狀態)를 비교하여 보면 교제(交際)가 「빈번했다」가 38.5%, 「보통이다」가 38.0%, 「거의 없었다」가 19.0%로 나타났으며, 또 직장(職場)이나 가사(家事)에서 은퇴한 후에도 계속 교제상태(交際狀態)를 유지한 경우도 56.5%나 차지하고 있었다. 6. 장수자(長壽者)가 직장(職場)이나 가사(家事)에서 은퇴한 후 취미(趣味)나 오락생활(娛樂生活)을 한 사람은 38.5%로 낮은 반면 취미(趣味)나 오락(娛樂)을 갖고 있지 않은 사람은 53.0%나 되었다. 이들 장수자(長壽者)의 은퇴 후 취미(趣味) 및 오락활동(娛樂活動)의 내용(內容)을 보면 TV 시청(視聽)(79.2%), 손자(孫子)와의 대화(對話)(54.2%), 집안에서 잔손질(35.4%), 신앙생활(信仰生活)(25.0%)의 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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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1986.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우리나라 장수자(長壽者)의 생활(生活) 및 의식조사연구(意識調査硏究)의 일환(一環)으로, 우리나라 장수지역(長壽地域)의 특성(特性)을 조사(調査).비교(比較)한 결과(結果)는 다음과 같다. 1. 80세 이상 장수자수(長壽者數)는 171,449명(名)으로 전인구대비(全人口對比) 0.46%였으며 이 중 남자가 42,842名(0.23%)이고 여자는 128,607名(0.69%)이었다. 2. 시(市)(도(道))별(別) 장수율(長壽率)을 보면 제주가 1.03%로서 가장 높았고, 그 다음이 전남(0.79%), 전북(0.66%), 경북(0.65%), 경남(0.61%)의 순으로 감소하였고, 인천(0.22%), 서울과 부산(0.23%), 대구(0.28%)등 대도시는 농어촌보다 장수율(長壽率)이 현저히 낮았다. 3. 장수율(長壽率)이 1.0% 이상인 장수지역(長壽地域)은 전국(全國)에서 17개군(個郡)으로, 전남이 10개(個) 지역(地域)으로 가장 많았으며, 그 밖에는 경북과 경남이 2개(個) 지역(地域), 전북, 경기 및 제주가 1개(個) 지역(地域)씩이었다. 4. 전국(全國) 장수지역(長壽地域)중에서 장수율(長壽率) 북제주가 1.65%로서 가장 높았으며, 그 다음이 남해(1.56%), 승주(1.24%), 보성(1.22%), 곡성(1.20%)의 순으로 감소하였다. 최장수지역(最長壽地域)인 북제주의 남(男).여별(女別) 장수율(長壽率) 각각 0.71%, 2.51%였다. 5. 우리나라 장수자(長壽者)의 성별(性別) 구성비(構成比)를 보면 여(女)/남비(男比)가 3.0이었다. 따라서 여자가 남자보다 3배(倍) 정도 장수율(長壽率)이 높음을 알 수 있었다. 6. 장수지역(長壽地域)을 분류(分類)하여 보면 해안(海岸).농어촌지방(農漁村地方)이 7개 지역, 도서지방(島嶼地方)이 3개 지역, 산간벽지농촌지방(山間僻地農村地方)이 7개 지역으로 나눌 수 있었다. 따라서 장수지역(長壽地域)은 탈도시화(脫都市化) 현상(現象)이 두드러진 곳이다. 7. 우리나라 장수지역(長壽地域)의 기상현황(氣象現況)은 연평균(年平均) 기온(氣溫)이 11.2~14.8℃, 연평균(年平均) 강우량(降雨量)이 878.5~1585.9mm의 범위내에 있었으며 대부분 북위(北緯) 38도(度) 이남(以南)에 위치하고 있었다. 8. 우리나라 장수자(長壽者)의 교육정도(敎育程度)는 무학(無學)이 전체의 71.5%로 가장 많았고, 그 다음이 서당(書堂)(15.8%)이었으며, 보통학교 졸업 이상이 4.8%에 불과했다. 그러나 남자의 경우는 50.4%가 어떤 형태(形態)든 교육(敎育)을 받았다는 사실은 흥미있는 일이다. 9. 장수자(長壽者)의 일상생활기능(日常生活機能)에 의한 건강상태(健康常態)를 비교하여 본 결과(結果), 지금도 상당히 활발히 활동(活動)하거나 노동(勞動)을 하고 있는 사람이 53.0%로 가장 많고, 그 다음이 집안에서 가벼운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23.5%로서, 비교적 활동적인 장수자가 전제의 76.5%나 되고 있으므로 장수자의 현재의 건강상태는 매우 만족스러움을 알수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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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17.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蒼崖 許萬璞(1866~1917)은 진주 지역에서 활동한 한말의 유학자 이다. 武科에 급제하여 잠시 武人으로 살았으나, 외세의 침략과 문란한 정치 현실에 비분강개하여 스스로 관복을 벗어던지고 고향인 진주 지 수 승산마을로 낙향하였다. 그리고 세상을 마칠 때까지 은둔하다시피 하면서 經史를 탐구하고 스승을 찾아다니며 도학을 강론하였다. 본고 는 그 동안 연구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진주 지역의 한말 유학자 창애 허만박을 주목한 것이다. 이 글에서는 허만박의 문집을 토대로 그의 삶을 보다 세밀하게 추적해보고 그 자취를 담고 있는 한시를 검토 분석 하여 그의 내면의식을 따라가 보고자 했다. 52세의 나이로 비교적 짧은 생을 살다간 허만박은 선조들의 행적이 그러하듯 젊어서부터 은거 지 향적 면모를 보이다가 무과 급제 후 관직에 진출해 서울 생활을 시작했 다. 그러나 서울에서 보고 겪은 외세의 침략과 국가적 위기에 그는 절망 하고 스스로 사직하였다. 그리고 고향으로 내려가 승산 마을의 염창강 가에 은둔하면서 도학의 근본 탐구에 골몰하며 절의를 실천하고자 하 였다. 1905년 을사조약의 체결로 인해 스승 송병선을 잃은 허만박은 이후 송병순과 최익현, 전우를 차례로 스승으로 모시며 도학을 강론하 고 자제와 후진 교육에 힘을 쏟았다. 이 시절 그는 상소문과 편지 또는 제문에서 혼란하고 무력한 정치 현실과 일본의 침략에 대해 비분강개 하며 통탄과 憂國의 심정을 드러내기도 했지만 그와 동시에 거듭되는 집안의 불행으로 위축된 모습과 하루하루 견디는 심정을 표출하기도 했다. 삶의 이력으로 볼 때 그는 폭넓은 교유 관계를 형성하기는 어려웠 던 것으로 보인다. 허만박은 자신이 살았던 智水 勝山 마을의 山水를 대상으로 삼아 시를 많이 지었다. 더불어 인근 주변 지역의 승경이나 또는 자연 속의 구체적인 사물들에 대해서도 시적 감수성을 발휘해 시를 짓는 계기로 삼았다. 물론 한시에 묘사된 산수 자연은 허만박의 삶의 흐름과 그에 따른 정서가 스며들면서 시기에 따라 다른 느낌과 이미지를 전달하고 있다. 허만박은 자신의 삶 대부분을 아름다운 고향의 산수에서 은둔하 며 조용하게 보냈지만, 당시 나라의 형세가 혼란하고 위급했던 만큼 그에 대한 심정과 감성도 시의 소재나 때에 따라 드러내기도 하였다. 1910년을 전후해 지은 시에서는 나라 잃은 분노와 비통함의 시적 정서 가 점점 고조되고 있었으며, 더불어 체념과 자조적 한탄도 뒤섞여 표출 되었다. 또 현실과 차단한 채 은거의 즐거움만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는 의식도 담아내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