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여학교 설립을 통한 중국 근대 여성교육의 변화를 고찰하였다. 특히, 기존의 자료 중심 연구를 토대로 여학교의 설립과 이를 통한 여성교육 의 변화가 갖는 의미와 가치를 파악하는 데 주안점을 두었다. 먼저 여학교 설 립 과정에서 국내적 요인과 국외적 요인으로 구분하여 고찰하였다. 태평천국 운동, 양무운동과 같은 국내적 요인과 선교사들의 선교활동을 위한 국외적 요 인의 상호작용과 영향 속에 여학교가 설립되고, 여성교육이 경전중심의 전통 교육에서 서구학문 중심의 근대교육으로 변화했음을 알 수 있었다. 여기에는 교육 외에도 정치, 종교, 국제관계 등이 다양하게 얽혀 있다. 여성교육의 변화 에서는 여성교육의 확대와 여성지위의 변화를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여성 인 재 배출, 여성 능력의 향상, 해외 유학과 여성 교육, 남녀공학의 탄생에 주목 했다. 또한 여학교가 여성의 사회적 지위 향상에 구심점이 된 점, 여성 문제 를 공유하고 개선하며 신문물과 새로운 인식의 확산에 기여한 점, 국가 발전과 여성교육을 연계하여 여성교육의 발전을 재촉한 점 등에 주목하였다. 근대 여성교육의 의미에서는 여학교 설립과 여성교육의 변화가 외부의 영향에 의 한 변화였고, 그럼에도 새로운 변화를 창출하지 못하고 있음을 지적하였다. 나아가 중국 근대 여성교육은 중국 스스로의 노력 발굴, 전통교육에서는 여성 교육의 긍정적 요소 발굴과 계승을 제안하였다.
메리 F. 스크랜턴 선교사는 조선 말엽 개화와 개혁을 추구하는 시대의 요구를 이해하고 이를 선교에 접목시킨 선교사였다. 특히 그녀는 교육과 의료선교를 통해 사회 변혁을 꾀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여성들에게 기독교교육을 통해 인권을 회복하고 여성의 가치를 고양시킨 여성교육의 선구자적 삶을 살았다. 스크랜턴은 기울어가는 조선의 운명을 바라보면서 조선의 여성들에게 조선인으로의 긍지와 자부심을 갖도록 했으며 조선의 미래를 당당하게 세워갈 수 있도록 교육을 통해 계몽시켰다. 그녀의 선교적 열정과 헌신, 그리고 용기는 어둠에 쌓여 있던 조선에 한줄기 빛이고 희망이었다. 또한 복음의 불모지 조선 땅에 개신교의 여명이 밝아오게 만드는 장본인이었다.
이 연구의 목적은 결혼이주여성들이 다문화교육 실천을 통해 다문화역량을 증진함으로써 교육의 주체가 되어가는 과정을 분석하는 것이다. 이로써 한국 사회에 필요한 대안적 다문화교육은 어떠한 방식으로 가능할지 모색하고자 한다. 이에 본 연구는 결혼이주여성 강사 10명을 대상으로 수업 참여관찰과 심층인터뷰를 함으로써 이들이 한국의 지배담론에 맞서 어떻게 갈등을 극복하며 주체성을 형성해 가는지 살펴보았다. 연구 결과 첫째, 결혼이주여성들은 문화다양성과 인권인식에 기반하며 협소한 다문화 개념을 재해석하고 문화번역능력을 통해 단순한 지식습득을 넘어 실천을 강조하는 다문화교육을 수행한다. 둘째, 결혼이주 여성 당사자 관점의 다문화교육 커리큘럼은 공사영역의 해체를 핵심 내용으로 하며, 젠더, 계급성, 에스니시티 등을 규합해내는 교차성의 지식 체계를 구성함으로써 차별의 당사자로서 대안적 사회를 지향하는 변형적 지식을 구축해낼 가능성을 보여준다. 셋째, 다문화교육을 실천하는 결혼이주여성 강사들의 다문화적 변환과정은 성취와 실패, 정체와 극복 등 복잡성을 띤다. 이는 대안적 다문화교육을 지속하기 위해 보다 장기적 관점의 지원 및 공동체를 근간으로 한 시민사회 혹은 지역사회와의 결합이 중요함을 시사한다.
스크랜튼은 기숙제 학교인 이화 학당과 보구여관이라는 여성 전용 병원 그리고 공옥여학교를 비롯한 수많은 여자매일학교를 세우고 여성교회와 부인성경학교를 세워 여성을 교육하고 여성지도력을 개발했다. 이것은 여 성교육 활동이었을 뿐만 아니라 개화기의 한국 여성들에게 ‘여성의 공간’ 의 창출이었고, ‘여성 주의’ 의식의 개발이기도 했다. 특별히 그녀가 설립 한 이 나라 최초의 여성 교육 기관이었던 이화 학당은 스크랜튼이 뿌린 ‘여성주의’ 의식이 싹을 틔우고 태동하는 중요한 묘판이 되었다. 이화학당 이라는 기독교적 여성 고등 교육 시설 안에서 개화기 한국 여성들은 사물 을 규정하고 명명하며 자신과 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여성주의 의식’에 각성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자기의식을 현실화하여 당당한 사 회적 전문인으로서 혹은 민족 독립 운동가라는 정치적 주체로서 자립해 가 게 되었다. 이화라는 공간 안에서 여성들은 무지로부터 해방되었고 가정이 라는 공간에서 해방되었고, 아내, 딸, 어머니라는 전통적인 역할로부터 해 방되었으며, 무엇보다도 여성을 자신의 삶과 역사의 주체로 세우고 사회적 존재로 확장해 가는 의식해방을 이루었던 것이다. 개화기 이화학당에서 태동된 ‘여성주의’ 의식이 가부장제적 성적 위계질서를 완전히 청산하지 못 했다는 점에서 한계가 있으나, 개화기의 ‘여성주 의’ 의식은 자유주의적 ‘여성주의’ 의식이나 사회주의적 ‘여성주의’ 의식을 가능하게 하는 저변을 이룬 우리 나라 ‘초기 여성주의’로서의 의의가 크다. 그러한 의미에서 스크랜튼은 이 나라 여성 교육의 개척자임과 동시에 ‘여 성주의’ 의식의 개척자이자 여성 운동의 개척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