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study investigated optimal extraction conditions for applying Capsicum annuum L. leaf as a functional food resource. Capsicum annuum L. leaf was extracted at different extraction solvents (water and 95% ethanol), extraction temperatures (80oC and 100oC), and e xtraction times ( 30, 60, and 9 0 min), a nd t he extracts were e valuated for extraction yield, luteolin content as a major flavonoid component, antioxidant activity, and α-glucosidase inhibitory activity. The extraction yield, luteolin content, DPPH and ABTS radical scavenging activities, and α-glucosidase inhibitory activity of the hot water extract were higher than those of the ethanol extract. In evaluating the extraction temperature of Capsicum annuum L. leaf, the antioxidant activities were similar, but the extraction yields, luteolin contents, and α-glucosidase inhibitory activities were higher at 100oC extraction. In evaluating the extraction time of Capsicum annuum L. leaf, extraction yield increased as the extraction time increased, but antioxidant activity and α-glucosidase inhibitory activity were the highest at 60 min of extraction. These results suggest that the optimum extraction conditions of Capsicum annuum L. leaf are hot water for 60 min at 100oC, and the extracts can be used as a functional food resource.
울산지역 청동기시대 종말기의 양상을 검토하였다. 검단리유형의 마지막 단계 유적과 초기철기시대 유적을 검토하여 울산지역의 양상이 한반도 다른 지역과 어떤 공통점과 차이점이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검단리유형은 새롭게 유입된 점토대토기문화와 함께 와질토기 등장시점까지 존속한다. 울산지역은 지역적인 특성상 한반도 점토대토기의 종착지이다. 달천철장에서 알 수 있듯이 철광상을 발견하여 이용하였으며, 그 철을 매개로 낙랑, 일본 등과 활발한 대외교류 활동을 하였다. 점토대토기인의 생활터전이 이미 무문토기인들의 점유지였던 것으로 볼 때 양 집단의 갈등이 상대적으로 미약했다고 할 수 있다.
무문토기인들이 와질토기 등장시점까지 원래의 생활방식을 유지하면서 새로운 점토대토기문화를 자연스 럽게 받아들였다. 우리가 청동기시대의 유구라고 인식하였는데 실제 초기철기시대에 존속하였던 것이 많 을 것이다.
초기철기시대의 청동기시대적 요소는 목관묘 문화가 자리 잡으면서 완전히 소멸한다. 이때야말로 청동기 시대 종언하고 새로운 시대가 열리는 시점이다. 한반도 남부지역이 동아시아 질서에 편입되는 시점이라고 할 수 있다.
청동기시대 진주 대평리유적 중 옥방 1지구를 10개의 권역으로 구분하여 검토하였다. 충적지에 형성된 유적으로 당시의 생활면이 그대로 잔존하는 곳이다. 옥방 1지구 검토대상구역은 하촌리식주거지 단계, 휴암리식주거지 단계, 송국리식주거지 단계로 구분된다. 휴암리식주거지 단계가 대평리유적의 중심시기이며 세부적으로 세 시기로 구분이 가능하다. 대평리유적의 중심시기는 비파형동검를 패용하고 돌을 이용한 대형묘역지석묘가 축조될 정도의 강력한 지도력이 나타나기 직전이지만 남강 일대 최대의 거점취락이다. 이러한 에너지가 이후 송국리식주거지 단계에 대형 묘역지석묘나 대형굴립주 등이 등장 확산되고 비파형동검을 패용하는 유력개인이 등장하는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대상유구(帶狀遺構)는 구와 노지가 결합된 세트로 파악하여야 하며 내부에서 공동 취사가 이루어진 의례 행위의 장소로 파악하였다. 검토대상구역에는 약 28~32세트가 분포한다. 무덤은 25기가 조사되었는데 검토대상구역에는 약 2그룹으로 분리되어 분포한다. 야외노지는 약 30~40기가 분포하는데 개별 주거의 야외 취사시설로 파악하였다. 가마는 대상유구가 폐기된 이후에 전용된 예도 있으며 직경 2m내외의 수혈을 굴착하여 사용하기도 하였는데 52기가 분포한다. 굴립주는 8기가 분포한다. 동시기에 10동 내외의 주거에 거주하는 사람들이 5기의 무덤을 축조하고 5세트의 대상유구에서 의례활동을 하였다. 가마는 개별 주거별로 사용하였고 창고로 이용된 굴립주는 3주거당 1기를 이용한 것으로 파악하였다. 송국리문화분포권은 비분포권에 비해 취락에서 개별 가옥의 범위를 벗어난 공동행위가 더 많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