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이츠는 헤르네의 알에 고대 아일랜드의 전설과 신화를 극 형식으로 각색하여 소포클래스처럼 신 중심 사회가 인간 중심 사회로 전환되는 과정과 인간의 자아 완성을 노래한다. 코노트 왕 콘갈과 타라 왕 이드는 헤르네의 알을 놓고 전투를 벌이며, 이후 타라 왕궁에서 열린 연회에서 콘갈 왕은 이드 왕을 죽이고 헤르네의 알과 헤르네의 신부인 어트랙타를 차지한다. 헤르네의 알은 피지배국가가 아닌 지배국가가 갖는 제국의 힘과 왕권을 상징한다. 또한 콘갈 왕은 아폴론 신탁과 같은 그레이트 헤르네의 저주에 따라 바보 톰에게 죽임을 당하지 않고 자기 의지대로 죽음을 맞이한다. 그래서 예이츠는 콘갈 왕의 삶과 죽음을 통해 아일랜드 영웅문화를 재조명하면서 현대인들에게 인간의 삶의 가치를 깊이 숙고해 보게 한다.
예이츠는 켈트 신화를 초기 시의 소재로 사용하여 아일랜드에서 문예부흥 시대의 지평을 열 개 된다. 켈트 신화는 고대 아일랜드 지역과 현재 아일랜드를 연결하는 매개물로 작용하여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역사, 문화, 민족 정체성, 독립의 중요성을 계몽하기에 이른다. 이에 골 왕, 퍼거스 왕, 쿠훌린과 같은 신화적 인물은 아일랜드 사람들에게 전형적인 인간의 원형이 된다. 그래서 예이츠는 아일랜드에서 고대 켈트 시대의 문화가 새로운 문예부흥으로 복원되어 고대사 연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는 계기가 되게 한다.
예이츠는 평생 동안 점성술에 관심을 가졌으며, 그 점성술의 구조와 핵심 으로 그의 사상체계를 정립한다. 『고양이와 달』은 이 작품의 주인공들, 맹인 거지와 절름발이 거지의 행동에서 점성술적 요소를 드러낸다. 맹인 거지는 초승달의 어두운 부분을, 절름발이 거지는 초승달의 밝은 부분을 의미한다. 맹인 거지가 절름발이 거지를 등에 업은 것은 한 개의 초승달을 상징한다. 또한 고양이 미나로우쉬의 두 눈동자에서 변화되고 있는 달은 달의 힘이 고양이의 삶에 미치고 있는 점성술적 요소를 재현한다. 이처럼 예이츠는 이 극작품에서 달의 상들이 인간의 운명과 성격뿐만 아니라 자아와 반자아, 육체와 영혼 사이의 갈등과 조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점성술을 노래하고 있다.
본 논문은 이미 많은 학자들이 이런저런 방법으로 『갈보리의 언덕』을 읽었지만 주요 평론가들의 평가를 평가하여 예이츠의 『갈보리의 언덕』에 대한 평가를 바로잡는 것이 목적이다. 사실 대부분의 읽기가 불충한 것처럼 보이는데, 아마 이 작품의 중요성을 과소평가해서 그런 것 같다. 최고의 예이츠 학자인 헨렌 벤들러의 영향도 있었던 것 같은데, 그녀는 이 작품에 대한 결론을 “별 알맹이 없는(negligible)” 작품이라고 내린다. 본 논문은 이 작품을 피상적이거나 빠르게 읽어 내려가기 보다는 가능한 한 면밀하게 읽고 음미하려고 한다. 본 논문은 이 극이 예이츠의 최고의 중기작 품으로 평가한다. 학자들은 이 작품에 대한 소개든, 주제 분석이든 간에 작품 자체를 충분히 이해하고 음미하려고 한 노력이 부족했었다. 벤들러의 짧은 논의는 한마디로 “알맹이 없는”이라 요약되는데 이 평가가 본 논의를 촉발했다. 그녀의 경우 아마 학위 논문의 주제와 연관해서 8장 “죽음, 정죄, 그리고 부활”에서 『갈보리의 언덕』을 짧게 논한다(이 장이 다루는 다른 극은 『부활』이다). 아마 주제에 한정해서 논하다보니까 이 극의 가치를 간과한 것이지 모른다.
블레이크는 초기시의 『앨비언의 딸들의 환상』에서 신화적 상상력을 발휘하여 신화세계를 사실적으로 체계화를 최초로 단행한 작가이다. 그의 신화적 창작기 술은 이전의 영국시인들 가운데 최초로 시도된 것이다. 그리스 신화와 켈트신화와 같은 특성과는 전혀 다른 구성과 내용으로 영국의 기원을 묘사한 독특한 점이 돋보인다. 역사상, 서양 역사에서 제국을 형성한 많은 국가들은 그 나름대로 특이한 신화를 지니고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그가 영국신화를 창조한 것은 영국이 제국으로 번성할 것을 예측한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그의 시는 예언적이며, 영국의 기원을 노래한 신화적 특성이 두드러진다.
예이츠는 정신자동현상과 자동기술을 사용하여 새로운 시 창작 모형의 시 세계를 연다. 정신자동현상은 시인이 의식이 아닌 무의식의 상태, 다시 말해서 대 립자아에서 전달자와 의사소통할 수 있는 의식의 상태이다. 자동기술은 대립자아 상태에서 뮤즈 신과 의사소통한 것을 기록한 것이다. 그는 이러한 상태를 「모든 영혼들의 밤」에서 죽은 사람의 영혼을 불러내어 그들과 대화하는 기법으로 새로운 시 창작의 기법을 제시한다. 요컨대 그는 시 창작에서 시인의 심리적 상태의 변화를 구체화하여 시 창작에 대한 그의 시학의 원리를 체계적으로 주장함으로써 현대시의 새로운 시 창작 원리를 제시하려고 시도한다.
블레이크는 『천국과 지옥의 결혼』에서 선인과 악인의 구별, 인간의 본 질의 대립, 지옥, 선지자들과 시인들의 예언, 지옥과 천국에 대한 환상, 천사와 악마의 논쟁, 역사의 순환 등과 같은 대립의 조화를 다양한 주제들로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그의 대립개념은 선인과 악인, 천국과 지옥, 그리스도 시대와 에돔 시대, 이성과 에너지, 영혼과 육체, 지배자와 피지배자 등이다. 이 대립개념은 이원론의 개념을 떠올리듯 각 개체가 별개로 공간을 구성하는 것이 아니라, 예이츠의 가이어처럼 한 개체가 다른 개체에 포함되어 상호작용한다. 그때에 어떤 개체가 그 공간에서 힘을 지배하느냐에 따라서 그 개체가 공간을 지배한다. 그래서 이러한 시의 구성방법은 그의 시 세계가 의도한 방향을 암시하면서 낭만주의의 새로운 파장을 예시하고 있다.
파운드와 단테는 시, 지옥편을 상징적 매체로 사용하여 인간 세상에서 절대선의 추구를 강조하고 있다. 파운드는 런던의 현대사회를 지옥으로 묘사하여 현대 문명의 타락과 현대인들의 비도덕적 삶을 질타한다. 반면에 단테는 성경에 토대를 두고 지옥을 설정하여 사후세계의 지옥을 설명한다. 파운드는 플로티노스의 안내로 지옥 여정을 시작하고 끝내지만, 단테는 베르길리우스의 안내로 다양한 지옥을 여행한다. 요 컨대 두 시인은 지옥을 인간의 심리적 상태로 묘사하여 거기서 벗어나기 위하여 절대선을 실천하는 것이 현대인들이 가야할 여정임을 강조하고 있다.
예이츠는 『연옥』에서 자신의 내세관을 구체적으로 재현하여 로마 가톨릭교회보다 더욱 체계적으로 영혼들이 어떻게 정화되는지를 제시하고 있다. 그 영혼의 정화 과정은 『비전』의 꿈으로 돌아가기와 회귀이다. 영혼들은 이 과정을 여러 번 반복하여 그들의 업을 정화하고 있다. 단테는 『신곡』의 “연옥”에서 교만, 질투, 분노, 나태, 탐욕, 탐식, 방탕의 삶을 살았던 영혼들이 자신들이 지은 업을 정결하게 하기 위하여 끔찍한 고통을 당하면서 그들의 죄를 정화하는 장면을 세밀하게 제시한다. 그래서 예이츠와 단테는 영혼들이 연옥에서 어떻게 그들의 죄 혹은 업을 정화하는지를 묘사하여 윤리적 삶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예이츠는 『모래시계』에서 현자와 바보 사이의 양의성, 현자와 천사의 갈등, 현자와 학생들 사이의 대립을 재현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현자의 삶보다 바보의 삶의 중요성을 더욱 강조한다. 특히, 현자가 죽어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내면의 갈등과 그가 죽은 후에 어떻게 될 것인지에 대한 윤회에 대한 묘사는 포스트 운명극의 특징을 보여준다. 그러므로 이 극작품은 『오이디푸스 왕』과 같은 서구의 운명극의 구조를 뛰어넘어 포스트 운명극의 영역을 새롭게 열어 놓았다.
이 글은 예이츠가『캐슬린 니 훌리한』에서 아일랜드의 통렬한 역사를 극작품의 형식으로 재현하여 아일랜드의 독립과 자유를 얼마나 열망했는지를 분석한다. 필자는『캐슬린 니 훌리한』이 아일랜드의 정치적 사건을 다룬 정치극이 아닌 역사극이라고 주장한다. 이는 그가 관객들에게 아일랜드의 역사적 뿌리의 근원은 어디이며, 과거에 아일랜드의 왕들과 민중들이 아일랜드를 지키기 위하여 그들의 귀중한 생명을 얼마나 많이 희생시켰는지를 인식하도록 만들어 미래의 아일랜드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그려보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극작품은 이 시기 이후에 창작된 극작품과 시들에서 아일랜드의 역사적 인물들과 장소들 작품의 배경이나 상징적 인물로 전환되는 새로운 길을 열어주는 주춧돌이 된다.
예이츠는 버클리를 시의 이미지로 사용하여 아일랜드의 낭만적 전통을 부활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는 “Blood and Moon”과 “The Seven Sages”에서 휘그주의에 탐닉하고 있는 아일랜드 사람들의 삶을 조롱하면서, 버클리의 유심론을 찬양하고 그를 아일랜드의 현자의 반열에 올려놓았다. 또한 탑은 현실과 꿈, 현실세계와 이상세계, 현재와 과거, 속인과 현자를 연결하는 교차로로 사용되어 아일랜드의 전통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이처럼, 그는 꿈과 현실이라는 이원론적 시야로 낭만적 아일랜드를 갈망했을지 모른다.
예이츠는 플라톤 사상과 자신의 사상을 시의 이미지와 상징으로 중첩시 키거나 병치하여 그의 사상에 보편성을 부여하고 구체화한다. 그는 초기시기에 예술의 개념, 미의 개념, 다이몬(Daimon) 등과 같은 여러 가지 개념들을 플라톤에게서 차용하 여 자신만의 독창적인 개념으로 발전시켰다. 그러나 그는 후기시기에 플라톤의 형식의 이론, 혹은 이데아 사상, 영혼불멸사상, 우르(Ur.)의 순환과 방추와 같은 이미지를 사 용하여 자신의 윤회사상, 사랑의 필연성, 관용, 역사의 순환 등과 같은 자신의 사상을 명확하게 확립하여, 결국 궁극적 실재의 추구의 시스템을 완성한다. 그래서 그는 초기 의 다양한 종교단체의 활동으로 획득된 자신의 사상체계를 그리스 철학, 특히 플라톤 철학에 중첩과 대조를 통해서 세계적 시인으로써 갖춰야할 인류의 보편적 지혜인 궁극적 실재의 완성을 성취했다고 선언한다
소포클레스는 트라키스 여인들에서 비극적 사랑에 의해서 야기된 인 간의 고통에 대한 전형을 제시한다. 그는 이 주제를 통해서 중용지도의 지혜를 강조한 다. 예이츠는 이 지혜를 조화라고 말했으며, 자사는 중용이라고 설명했다. 이 작품의 주인공 헤라클레스는 12과업을 완성하는 영웅의 삶을 살았지만 결국 아내, 데이아네 이라의 질투심에 의해서 비극적 죽음을 맞이하였다. 이러한 비극은 데이아네이라의 혼 자만의 잘못이 아니라 헤라클레스의 부조화를 이루는 삶에서 기인한 당연한 결과이다. 그 연인은 남성과 여성이라는 주체와 객체로써 서로 조화를 이루는 삶을 살지 못하고 주체와 객체가 분리된 삶을 살다가 두 에너지가 충돌하여 비극을 자초한 것이다. 이는 주체와 객체, 정신과 육체, 인간과 우주,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추구하는 중용의 지혜를 강조한 것이다. 데이아네이라와 헤라클레스는 질투와 분노 때문에 중용의 부재로 바른 삶을 살지 못한다. 두 주인공은 조화를 이루지 못해서 고생하며, 죽음으로써 자 신들을 정화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