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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색결과 236

        221.
        2019.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연구는 제국주의 일본이 불법적으로 독도편입을 시도한 1905년 전후 일본 사료에 나타난 울릉도·독도에 대한 지리적 인식을 검토하고, 이를 통하여 일본의 왜곡된 독도영유 권 주장의 실태를 재확인하고자 한다. 1905년 일본의 불법적 독도편입 조치와 함께 지금까지 이어져 온 일본의 독도영유권 주장의 본질은 그 출발점이 일본제국주의의 침략과 침탈 야욕에서 발생하였다는 점이다. 즉 1904년 발발한 제국주의 국가인 러.일 양국 간의 전쟁 수행과정에서 일본이 독도를 불법적으로 편입하였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근 세.근대기 일본 고문서에 나타나는 혼란된 지리적 인식은 1905년을 전후한 시기에 눈에 띄게 줄어든다. 이미 서양의 근대적 과학기술을 앞서 수용한 일본은 근대적 측량법 덕택으로 경위도나 거리를 큰 오차 없이 정확히 측정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위도 위치나 거리 측정은 울릉도·독도에 대한 지리적 인식을 보다 정확하게 가질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러나 문제는 이러한 지리적 인식의 정확도보다 울릉도·독도의 명칭을 어떻게 확정할지가 더 큰 관건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러일전쟁은 이러한 명칭혼란을 종식시키고 독도를 죽도(다케시마)라는 명칭으로 부를 수 있도록 하는데 기여하였다. 그것은 일본이 러일전쟁에 승리하기 위해 전략적 필요성에 의해 독도를 불법 편입해야 하는 상황이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결국 독도는 제국주의 일본의 영토팽창 정책 속에 ‘죽도(다케시마)’라는 원치 않는 이름으로 불법적으로 편입된 일제강점기의 첫 번째 희생물이 된 것이다.
        222.
        2018.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his study aims to measure the emotional effects of pet plants, which have become popular in recent years. A questionnaire regarding perceptions of these indoor plants was administered to 78 university students. Thirty of these students took care of two species of pet plants for 90 days, and the emotional effects of this exercise were determined based on the type of words used in their daily records. The questionnaire results showed that the general recognition of emotional effects was low, though awareness of the term "pet plants" was high. However, after gardening for 90 days, participants began to consider their pet plants friends or family members, noting feelings of affection and sympathy in their daily writeups. These participants also experienced positive changes in their emotional well-being, including feelings of joy, hope, relaxation, confidence, and accomplishment. This study argues that pet plants can have positive effects on emotional stability and suggests that their adoption would be beneficial to humanity at large.
        223.
        2018.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연구는 근대 일본의 대표적 관찬사료인 『조선국 교제 시말 내탐서』, 『죽도고증』, 『태정관 지령』에 나타난 울릉도·독도 인식에 관한 연구이다. 19세기 후반 일본정부에서 발행한 이 사료들은 울릉도⋅독도가 역사적⋅지리적으로 한국의 영토였음을 잘 보여주고 있으며, 17세기말 안용복사건에 의해 촉발된 울릉도쟁계(죽도일건)를 통해 확인된 ‘울릉도와 독도는 조선영토’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확인해주는 사료들이다. 먼저 『조선국 교제 시말 내탐서』13항 ‘죽도와 송도가 조선의 부속이 된 경위’에 대한 검토를 통해 일본 외무성이 “울릉도(죽도)는 물론이고 독도(송도)에 관해서도 기록된 서류가 없다”고 인정함으로써, 울 릉도와 독도가 하나의 세트로 인식되었으며, 역사적·지리적으로도 조선의 영토였음을 확인 할 수 있다. 다음으로 􋺷죽도고증』에서 기타자와 마사나리는 울릉도에 대해서는 한국의 영유권을 인정하면서 독도에 대해서는 일본의 영유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렇지만 1860년대 이후로 당시 일본이 울릉도와 독도의 명칭과 지리적 인식에 대해 매우 혼란스러웠음을 보여 주고 있다. 이것은 당시 울릉도와 독도에 대한 일본의 역사적⋅지리적 인식이 매우 부족했 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태정관 지령』에 대한 검토에서는 “죽도 외일도는 본방 과 관계없음”을 확언한 태정관지령과 첨부지도 ‘기죽도약도’를 통해 독도가 역사적·지리적 으로 한국의 고유한 영토임을 확인할 수 있다. 기죽도약도에서 표기된 조선동해-울릉도-독도-오키섬 간의 지리적 거리도 현재의 거리와 수치적으로 거의 일치하고 있으므로 ‘외일도 =송도(독도)’는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인 것이다. 결국 근대 일본의 대표적 관찬사료인 『조선 국 교제 시말 내탐서』, 『죽도고증』, 『태정관 지령』을 검토해 봐도 울릉도⋅독도가 역사적 ⋅지리적으로 한국 영토임을 확인할 수 있으며, 17세기 중반 이래 독도에 대해 실효적 지배를 해왔다는 일본의 ‘고유영토론’은 조작된, 허구적 주장이라는 사실이 한층 더 명백해 졌다.
        224.
        2018.01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최근 집중호우로 서울 강남구(’12), 부산(’13), 울산(’16), 인천, 부산(’17) 등 대도시 지역의 침수 피해가 증가하고 있다. 도시침수는 하천유역의 홍수 피해와는 달리 매우 짧은 시간에 피해가 발생하며, 시설물의 파괴보다는 주택, 차량, 상가 침수로 인한 재산 피해가 높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호우에 대한 예 ․ 경보는 기상청에서 발표하는 호우 주의보 및 경보에 의존하고 있지만, 기상청의 호우 주의보 및 경보는 전국공통 지표를 사용함으로써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서울과 울산지역을 대상으로 지역별로 피해이력 기반의 한계강우량을 추정하였으며, 피해이력이 없어 한계강우량 추정이 불가능한 지역에 대해서는 유역특성이 반영된 Neuro-Fuzzy 모형을 통해 한계강우량을 예측하였다. 추정된 한계강우량을 통해 도시침수 위험기준을 설정하고 실제 침수사상에 적용한 결과 추정된 한계강우량은 실제 한계강우량과 1.8~20.4%의 오차를 보이고 있으며, 최소 28분에서 최대 70분의 대피시간을 확보 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도시침수 예 ․ 경보를 위한 위험기준으로 활용가능 할 것으로 판단된다.
        225.
        2016.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his study reviews the definition of false preparation and alteration in the crime of false preparation or alteration of public electromagnetic records(Article 227-2 of Criminal Act). Article 227-2 of Criminal Act protects the trustworthiness of the general public concerning the authenticity of public electromagnetic records, not the accuracy of information processing with electromagnetic record. Additionally in view of the fact that electromagnetic record crimes(Article 227-2 and Article 232-2 of Criminal Act) was enacted by following the form and contents of document crimes, the stand of Criminal Act which takes formalism(punishment of unauthorized preparation of document) on document crimes in principle, materialism(punishment of preparation of false document) exceptionally should be accomplished. So false preparation means to make an electromagnetic record without authority and alteration means to change the contents of a ready-made electromagnetic record without authority. This interpretation results from the systematic analyses of the penal clauses of crimes concerning documents and electromagnetic records, not from the mechanical identity of document with electromagnetic record. So I don’t agree with this judgement of the Supreme Court(2013do9003). Although we can not deny the necessity and worthiness of punishment of the preparation of false public electromagnetic record, the act of defendant cannot be punished by Article 227-2. In order to punish the preparation of false public electromagnetic records, it’s necessary to legislate a new clause. I think the terms of false preparation and alteration of public electromagnetic records are not appropriate, because these are very unfamiliar and confused with counterfeit or alteration of official document(Article 225 of Criminal Act) and private document(Article 232 of Criminal Act). So I recommend “to make an electromagnetic record without authority and to change the contents of a ready-made electromagnetic record without authority, instead of false preparation(falsification) or alteration of public and private electromagnetic records(Article 227-2 and Article 232-2 of Criminal Act). And as a result it needs to legislate a new clause that punishes the preparation of false public electromagnetic records.
        226.
        2016.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사숙재(私淑齋) 강희맹(姜希孟, 1424-1483)이 편찬한 진산세고(晉山世 稿)를 보면 이 집안에서 대대로 많은 인물들이 문과에 급제하고 문집이 편찬되 었음이 확인된다. 이를 보면 진주강씨 공목공파가 고려말 조선초의 대표적인 문벌임이 확실하다. 공목공파(恭穆公派) 선조 가운데 문장으로 가장 뛰어난 인물이 강희맹인데, 그가 1483년 2월 18일에 세상을 떠나자, 성종이 곧바로 그의 문집을 편찬하라 고 명하였다. 『사숙재집(私淑齋集)』을 어명으로 편찬케 한 것만 보아도 조정에 서 그의 문장을 어떻게 평가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조선왕조는 사대교린(事大交隣)을 외교의 근간으로 하였으므로, 과거시험을 통해 사대교린에 필요한 문장가를 선발하였다. 강희맹의 활동과 문학의 특성 가운데 하나는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오면서 많은 시를 지었고, 문화교류에 앞장섰다는 점이다. 중국 문인들이나 조선 문인들이 그의 조천시(朝天詩)에 많이 차운하여 문화교류의 전범을 보였다. 더군다나 대를 이어서 중국에 다녀오고 그 체험을 기록으로 많이 남긴 것은 다른 집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진주 강 씨 문중의 특징이기도 하다. 조선 초기의 문벌인 공목공파 문인들의 한시가 한 시의 고향인 중국에서 그 진가를 발휘했던 것이다. 진주강씨 문인들이 북경에 갈 때에는 선조의 조천록이나 연행록을 가지고 가서 참조했으며, 선조의 시에 차운하여 시를 지었다. 선조가 길을 안내하며 함께 시를 주고받는 동반자가 된 셈이다. 강희맹은 형 강희안 덕분에 시를 짓기 전부 터 명나라 문인들에게 인정받았으며, 사행에도 성공하여 상을 받아가지고 돌아왔다. 그는 농사와 원예에 관심이 깊었으므로, 중국에서 연꽃 씨와 버드나무 가지를 들여와 조선에 퍼뜨렸다. 오백년이 지난 지금도 그의 조천 활동의 자취가 남아 있는 것이다. 진주강씨 종친회에서 선조들의 조천록과 연행록 10여종을 모두 번역하여 진주강씨 연행록집성을 출판하면 학계의 연구에 도움이 될 뿐만 아 니라, 국제적으로 활동했던 진주강씨 선조들의 문장과 업적이 널리 선양될 것이다.
        227.
        2015.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은 지리산유람록에 나타난 지리산지 주민생활사의 자료 가치에 주목하여 역사지리적인 재구성을 시도한 것이다. 지리산유람록은 지리산지 주민의 생활사에 대한 풍부한 1차적 자료를 시계열적으로 제공한다. 지리산유람록이 여타 유산록과 다른 특징은 이 점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이 연구는 지리산유람록에 수록된 주민들의 생활사를 정리하여 재구성함으로써, 지리산유람록에 어떤 내용적 특색이 있는지를 드러낸 연구사적 의의가 있다. 지리산유람록에 나타난 주민생활사는 환경과 생태, 취락과 주거, 토지이용과 농경, 생업과 산물, 시장과 유통, 신앙 풍속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지리산유람록에서는 지리산지의 기후 조건이 주민들의 거주와 생활사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사실을 적었다. 겨울철 산지 기후는 산간 주민들의 주거와 이동 패턴도 규정했다. 지형 및 토양 조건에 관해서는 수질, 토양, 비옥도 등이 경작 조건을 관련해 언급됐고, 관련하여 토지생산성, 장수요인, 사회적 피난지대 등이 표현됐다. 삼림식생의 수직 분포와 경관에 대한 표현도 있었고, 천연림과 인공림을 포함한 수종들 및 장소 정보가 많이 나타났다. 지리산유람록에서 읍취락의 주거생활사는 하동의 입지지형과 가구 수, 주민생활사에 대한 약간의 정보가 언급되었다. 마을의 경우에는, 지리산권 산촌의 형성 및 사회적 변동과 관련한 자연적·사회적 배경, 변동의 역사적 계기, 인구의 유입과 유출, 지리산권 주거지역 평가 등의 언급이 다수 있었다. 마을의 자연적·지형적 입지유형, 마을경관, 마을 형태와 규모 등에 대한 표현들도 나타났다. 지리산유람록에서는 주민들의 토지 이용과 농지 개간에 대한 언급이 여러 차례 나왔다. 고도대에 따른 토지이용, 화전 개간 및 일제강점기의 사회적 축소, 벼농사와 관련한 관개 기술 및 모내기 등의 내용이 있었고, 주요 농업지역에 대한 표현도 나타났다. 주민들의 생업과 산물로서 임산물 채취, 농작물 및 닥나무 재배, 기타 공산품 제조와 관에 바치는 공물 등이 있었다. 화개장터의 장날 풍경도 생생하게 묘사되었고, 매매 품목, 물산의 규모와 유통 범위 등이 기록됐다. 지리산유람록에는 지리산의 여러 민간신앙소와 풍속이 기록되었는데, 이를 통해 조선후기까지 지리산지의 민간신앙이 번성했음을 알 수 있었다. 신앙소의 지리적 위치 및 모습, 신당의 관리 및 운영주체 사실 등도 기록되었고, 특히 천왕봉에 있었던 성모사의 시계열적 변화 모습도 파악할 수 있었다.
        228.
        2014.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남명의 연보는 无悶堂 朴絪이 1628년 덕산에서 남명의 둘째 아들인 칠원 군수을 지낸 慕亭 曺次磨로부터 부탁을 받고 1636년 편찬을 하였 다. 그 후 謙齋 河弘度, 澗松 趙任道, 林谷 林眞., 寒沙 姜大遂 등 私淑人들의 수정 보완을 거쳐 1700년 발간된 .南冥先生別集.에 실려 처음 으로 세상에 널리 알려졌다. 그 후 1814년 무민당의 후손들이 .무민당 집.을 발간하면서 집안에 전해오던 무민당 手稿本이라고 추정되는 .남 명연보.를 저본으로 삼은 연보를 수록하여, 3종류의 연보가 전하고 있 다. 연보가 발간된 후 내암관련 문자 삭제, 구암과의 절교 문제 등으로 논란이 있었는데 내암 관련 문자는 삭제하는 것으로 정리한 반면 구암 과의 절교 문제에 있어서는 상세하게 기록해야 한다는 무민당의 견해 가 수고본에 그대로 기술되어 있으며, 반면 .남명선생별집.과 후에 발 간된 .무민당집.에는 내용은 대동소이하나 그 분량은 현저하게 줄어들 었다. 1800년대 들어 남명학파 학자들의 문집이 이 지역에서 많이 발간돼 남명 생애에 대한 자료가 많이 발견되어 보충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또 연보의 내용도 일부분 거칠고 오류가 있다고 생각해 1897년 남명 선생편년을 간행했다. 남명편년은 그동안 제기되었던 연보의 오류들 을 바로 잡았을 뿐 아니라 대체로 연보의 기술 내용을 보충하고 있다. 특히 연보에는 덕계 수우당 한강 등 소수 문인들의 受學에 관한 기사가 있는데 반해 편년에는 남명 문인들의 受學에 관한 기사가 현저하게 늘었다. 이는 남명의 遺文들이 전해지지 않은 것이 너무 많아 당시 지역 선비들의 문집에서 관련 자료들을 구해 이를 보충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보인다.
        229.
        2014.09 KCI 등재 SCOPUS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In this paper, we report the analysis of Korean historical records on the periodic Halley’s comet according to the period (i.e., the Three Kingdoms, Goryeo Dynasty, and Joseon Dynasty) using various sources such as the Samguksagi (The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Goryeosa (The History of the Goryeo Dynasty), and Joseonwangjosillok (The Annals of the Joseon Dynasty). With regards to the apparition time of the comet for each return, we referred to the works of Kronk. For the Three Kingdoms period, we could not find any record relevant to Halley’s comet from the Samguksagi. Furthermore, we examined the suggestion that the phenomenon of “two Suns” which appeared on April 1, 760 (in a luni-solar calendar), as recorded in the Samgukyusa (The Legends and History of the Three Kingdoms), indicates an instance of the the daytime appearance of Halley’s comet. In contrast with the Three Kingdoms period, we found that all returns of Halley’s comet are recorded during the Goryeo Dynasty, although others have questioned some accounts. We also found that the appearance of Halley’s comet in 1145 is mentioned in a spirit-path stele made in 1178. For the Joseon Dynasty period, we found that all apparitions of the comet are recorded, as with the Goryeo Dynasty, except for the return of 1910, at which time the former dynasty had fallen. In conclusion, we think that this study will be helpful for understanding Korean historical accounts on Halley’s comet.
        231.
        2012.06 KCI 등재 SCOPUS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his paper will introduce and overview in general the Seongbyeon Deungrok issued by the Gwansang-gam, the Astronomical Board in the Joseon Dynasty of Korea. All the Chinese characters in the 1668 Seongbyeon Deungrok was deciphered at first and these were translated into Korean and English. With these translations and the word ‘white vapor’ in particular we discuss the nature of the main object in this Deungrok. Lastly, names of observers who engaged in the observations of this 1668 celestial, which are made as a by-product of this research, are introduced.
        232.
        2011.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에서는 가뭄지수들의 적합도와 가뭄의 변동특성을 파악하기 위하여 보고서 등 각종 문헌과 신문기사를 통해 수집한 실제 가뭄발생 기록을 정량화하고 1973년부터 2009년까지 전국 69개 기상관측소의 강수 및 기온 자료를 이용하여 산정한 기후변수와 각종 가뭄지수를 행정구역 별로 산정하여 비교 분석함으로서 기상학적 가뭄지수의 실제 가뭄에 대한 표현정도를 평가하였다. 평가를 위하여 ROC 공간상의 각 지수의 위치정보를 검정통계량으로 이용하였다. 분석결과
        234.
        2006.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글은 조선조 말엽 유행한 명현록에 나타나는 명현가의 전국적 현황과 도별 양상, 경상도 지역 명망 문중 및 그 현조에 대해 고찰한 것이다. 명현록은 처음 ‘道學’의 계보에 연결되는 인물을 수록하는 것에서 비롯되었으나, 점차 道學 뿐 만 아니라 忠節이나 여러 방면의 업적으로 현저한 국가적 공헌이 있는 인물로 수록 범위가 확대되고, 이후 각 성관별로 이를 정리, 수록하는 형태로 진전되었 다. 각 성관별 명현을 수록한 명현록은 뒷 시기로 가면서 명현 후손의 세거지와 사승 관계를 명시하는 것이 기록상 중요시 되고, 뒤이어 이를 경상도라는 일정 권역에 한정해서 명현가와 그 현조의 휘·호·본 정도를 간략히 명시 수록하는 경 우로 나타난다. 한편 이 단계에 이르면 명현록에 등재된 인물은 조선조의 수많 은 명현들 가운데 그들의 후손이 동족 마을을 형성하고 있는 인물만을 대상으 로 하게 된다. 전국의 각 성관별 명현의 후손 거주지를 볼 때 서울이 압도적 다수를 점하여 조선조 말엽에 있어서 서울은 여러 명현가의 소굴로 나타나며, 경상도가 타도 에 비해 많은 등재 인물수를 보임이 주목된다. 고을로는 청주, 진주, 양주, 안동, 성주 등의 순으로 등재 인물의 후손 세거지가 많은 것으로 나타나, 명현가가 지 방 행정의 중심지에 비교적 많이 집중되어 있는 점도 주목된다. 경상도 각읍 명현가를 등재 수록한 수종의 명현록을 통해서 특정 성씨 앞에 특정 촌명을 冠하여 ‘○○金氏’와 같이 불리워진 5백 수십여 문중의 존재가 조 선조 말엽 경상도 지역에서 확인되며, 이들 가운데는 200여 내외의 숫자에 달 하는 명망 문중의 존재도 추측된다. 경상도 각읍 가운데 진주는 도내에서 가장 명현가의 수가 많은 고을로 나타나며, 우도가 좌도에 비해 2배나 등재 인물이 많은 것으로 나타난다. 이는 이들 지역에서 특정의 현조를 중심으로 동성의 씨 족이 결집되는 움직임이 활발하였음을 반영하는 것으로 본다. 명현록에 등재된 경상도 각읍 명현가의 현조는, 단성 지역을 중심으로 살필 때, 주로 남명학파가 형성되고 당쟁이 전개되던 선조-인조 년간의 시기에 즈음 하여 지역 사회에서 주목되는 활약을 보였던 유명 인사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 들 유명 인사의 후손은 17-18세기에 걸쳐 향권을 지속적으로 장악하는 유력 씨족으로 자리를 잡았고, 이후 19세기 말엽에 이르러서도 문집을 남기는 인사 를 많이 배출하는 등으로 해서 여전히 명망을 유지하는 씨족으로 나타난다. 이 같은 제조건을 충족하는 유력 씨족이 조선조 말 명현가로 알려져 여러 명현록 에 기록되어 나타나는 바, 이는 비단 단성 지역만이 아니라 경상도내 다른 고을 의 경우도 마찬가지였을 것으로 본다.
        236.
        1996.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his study investigated the correlation of physique factor( standing height, body weight, chest girth, body surface ) and vital capacity upon records of swimming discipline at sea water. The subjects are 194 sophomore students of Korea Maritime University who participated in the swimming discipline. The swimming records were divided into three groups - higher, middle and lower group. The results from this investigation are as follow ; 1. The standing height was above the average on the A, B+ record, body weight was above on the A+, A record, and vital capacity was above on the A+, A, B+, C record respectively. 2. The standing height, body weight, chest girth, body surface, vital capacity was significantly correlated between record P < 0.05 and P < 0.01. Therefore the higher record group has better physique factor and vital capacity than the middle or lower record group. 3. The standing higher of the higher record group was significantly correlated with body weight(0.514), body surface(0.768) and vital capacity(0.427), and body weight was significantly correlated with chest girth(0.525), body surface(0.940) and vital capacity. This standing heiht of the middle record group was sigificantly correlated with body weight(0.509) and body surface(0.779), and body weight was significantly orrelated with chest grith(0.618) and body surface(0.927). The standing height of the lower record group was significantly correlated with body weight(0.595), chest grith(0.363), body surface(0.802) and vital capacity(0.250), and body weight was significantly correlated with chest grith(0.678) and body surface(0.9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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