說文解字卷七下 「疒」부에 나타난 질병과 관련 있는 글자는 모두 103개 글자로 다수가 질병과 유관한 글자로 “고대 중국인의 질병 발생의 근본 원인과 질병관, 질병의 종류와 증상, 질병의 쾌유”에 대하여 기술하고 있다. 본 연구는 說文解字「疒」부에서 22개의 글자를 통해 ‘고대 중국인의 질병 발생의 원인’을 6가지로 나누어서 기술하였다. 첫째, 氣의 과다로 인한 질병. 둘째, 외상으로 인한 질병. 셋째, 악물 오용으로 인한 질병. 넷째, 역병으로 인한 질병. 다섯째, 과로로 인한 질병. 여섯째로 선천적인 장애로 인한 질병으로 說文解字의 「疒」부의 글자들을 통해 고대 중국인의 질병 발생의 원인을 살펴보았다. 그 외 說文解字에서 기술된 뜻을 좀 더 명확하게 서술하고자 출토문자들과 대조해 보고, 방증으로 중국 고대 자서와 의 학에 관한 문헌을 참고하여 “고대 중국인의 질병 발생의 원인”을 탐구하며 전개하였다.
본 연구는 고대 중국 醫學氣功의 발전과정을 시대별 특징과 상호 연관성에 대해서 살펴 보고자 하였다. 그래서 先秦시대와 兩漢시대를 중심으로 醫家와 기타 諸家의 기공 특징을 알아보고 현대의 中醫氣功에 미친 영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하였다. 秦漢시기 과학문화가 크게 발전하면서 중국 의학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특히, 각종 질병과 장기간 투쟁하는 과정에서 점차 형성, 발전한 독특한 자기 심신 수련법인 중의기공에도 많은 영향을 주었다. 春秋戰國시대에는 諸子百家 등장하고 경쟁하는 과정에서 醫家, 儒家, 道家, 佛家를 중심으로 기공학 발전하였다. 특히, 道家는 三调 이론을 최고 수준으로 상승시켰으며, 후세의 ‘小周天 功’, ‘踵息’, ‘坐忘’, ‘心斋’ 등의 기공법에 영향을 주었다. 儒家는 ‘止于至善’의 방법을 통해 기 공의 수련 과정과 기공이 지적 잠재력을 개발할 수 있다고 하였으며, 静坐의 초기인 坐忘 을 제시하였다. 그리고 諸家의 이론과 수행 방법이 醫學氣功의 이론과 실제에 그 내용이 내포되어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본 연구를 토대로 醫學氣功을 원류를 이해하고, 현대의 치유기공학 발전에 조금이나마 기여가 되길 희망한다.
본 논문은 애도의 글쓰기가 공개적이고 공식적인 가족 서사를 보장한다면 고대 문 인들의 가족에 대한 인식 내지 변화된 감정구조를 어느 정도 추론해낼 수 있을 것이 라는 가정하에 기획되었다. 이는 일차적으로 애도 문학 변천의 한 단면을 탐색하는 작업이면서 당시 공동체가 소유했던 가족에 대한 감정구조의 실태 및 변화의 흐름을 구축하는 실마리가 될 수 있으리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연구 결과 고대 중국인들의 가족 서사는 탈관습의 성질을 강하게 드러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비록 애도 시문은 죽음이 전제되는 면에서 그 고유의 특수성이 고려되어야 하지만, 글쓰기 활 동을 통해 가족에 대한 언급을 공식화한 시도는 가족 구성원의 존재를 감추지 않고 나름의 방식을 통해 공개하려던 당시 문인들의 진전된 감정 구조가 반영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본고에서는 고대 중국에서 ‘술수, 방기(術數, 方技)’의 내용과 변천을 검토하고 ‘술 수, 방기’가 백제(百濟)에 전파된 사상적 배경, 시대적 배경 그리고 전파 경로를 중심 으로 살펴보았다. ‘술수, 방기’가 백제에 전해지기 전에 우리나라는 이미 ‘술수 방기’ 가 뿌리 내릴 수 있는 사상적 배경과 토양을 가지고 있었다. 고대 중국의 ‘술수, 방 기’는 당시 일종의 선진문화로서 직접 및 간접적 경로를 통해 백제에 전파되었다. 백 제는 중국에서 들여온 ‘술수, 방기’의 문화를 흡수하고 자국 상황에 맞게 변용하고 적용했을 뿐 아니라, 더욱 발전시켜 일본에도 전파하였다.
본 논문은 먼저 공자의 언행록인 『論語』에 보이는 배움에 관한 기록들을 분석한 결과, 크게 다른 사람으로부터 배워야한다는 내용과 문헌을 통해 배워야 한다는 두 부류의 기록으로 나뉨을 알 수 있었다. 사람으로부터 배운다는 것은 기본적으로 다 른 사람의 장단점을 통해 장점은 따르고 단점을 보았을 때는 스스로를 반성해야 한 다는 생각과 不恥下問의 자세를 언급한다. 그리고 역사 속의 인물들 특히 문왕이나 무왕 그리고 주공과 같은 성인들을 통해 통치의 도를 배우고, 뿐만 아니라 다른 많 은 현인들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는데, 그들의 장점은 따르고 단점을 보았을 때는 스스로에게 돌이켜보고 고쳐나가며 배울 것을 희망했을 것이다. 유가 전적으로부터 배워야 한다는 내용은 공자가 『詩』를 통해 말하는 능력 즉 정신적 사유능력을 기를 수 있고, 『禮』를 통해 남과 더불어 원만하게 교류할 수 있는 행동능력을 배양할 수 있다는 주장과 같은 유가전적들의 효용에 대한 언급에 힘입어 전국시기 이후 점차 ‘六經’이라는 유가경전의 틀이 형성되었을 것이며, 그 과정을 논술하였다. 끝으로 유가가 주장하는 이상적 군자의 형상이 어떤 모습인가를 잘 드러내기 위해 군자와 소 인을 비교하여 설명하였다. 그리고 군자는 궁극적으로 현인이나 성인의 경지에 이르기를 희망한다. 그 방법에 대한 언급은 맹자에 보이는데, 즉 마음을 다해야 性을 알 수 있다는 언급으로부터 그 열쇠를 찾을 수 있다. 인간은 心을 통해 性을 부여해준 천명을 알게 되고, 천명을 앎으로써 인간의 도와 세상에 필요한 가르침 즉 배움을 알 수 있고, 인간은 배움을 통해 현인이나 성인의 경지로 나아갈 수 있게 된다. 유가 사상은 한 인간에게 있어 배움의 궁극이 성인에 이르는 길이라면, 배움을 통해 달성하려는 사회적 이상은 『大學』에서 그려지고 있는 內聖外王의 실현에 있음을 논술하 였다.
작품과 본인의 뜻이 완전하게 부합되는 경우는 引詩 본연의 존재의의이자 주된 목적이라 고 할 수 있다. 또한 그러한 引詩의 목적이 자신의 말에 설득력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논리적 인 측면이나 이해도 측면에서도 모두 문제가 되지 않는다. 하지만 『論語』에서 孔子와 그의 제자들은 자신의 뜻을 보다 명확하게 피력하기 위하여, 다소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도 있지 만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의 응용을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전혀 맥락이 상통하지 않는 즉 앞뒤가 서로 통하지 않는 斷章取義나 牽强附會의 방법까지도 쓰고 있다. 여기에 더욱 더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공자는 그러한 제자의 모습을 보고 극찬을 아끼 지 않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論語』의 引詩 용례들을 먼 저 살펴보고, 그 본연의 의도를 구체적으로 파악해보고자 한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나아가 引詩 용례와 중국 고대의 수사학과의 관계에 대해서도 살펴보고자 한다.
This paper aims to explore the understanding and evolution of the concept of ‘truth’ (眞 理) in the earliest stages of Chinese history on the basis of oracle bone script zhen (貞) and the inscriptions zhen (眞). It further aims to prove that zhen (貞) and zhen (眞) are cognate words.
‘Truth’ in English is commonly translated as zhen (眞) in Chinese. However, it is not easy to find an intersection between two notions of ‘truth’ in the early stage of Eastern and Western culture in spite of a great deal of controversies over the notions in sinological studies, since there was almost no cultural exchange between the East and the West before the modern era.
After the nineteenth century, with the expansion of the Western power, Westerners attempted to understand the manifold ways of Eastern thought. Thus, many concepts that were dominant in Western thinking were transplanted in many areas of Eastern thinking; the concept of ‘truth’ (眞理) is such a case. The Western concept of ‘truth’ (眞理) pursues correspondence theory, based on the dichotomy of true and false. Based on this idea, many Western scholars still claim that the notion of ‘zhen’ used in Chinese classical texts can not be equated with “truth” used in Europe and Anglo-American dominant philosophy.
Therefore, I would like to return to the primitive sense of truth in the oracle bone script, explore the pre-theoretic understanding of truth before concrete forms of knowledge such as Confucianism and Buddhism were introduced, to show the interconnectedness of zhen (眞) and zhen (貞).
Traditional interpretations of zhen (眞) can be roughly classified into three types: ‘a Daoist ascetic with miraculous powers’ (神仙)(see Xu Shen, Duan Yucai, et al.); ‘treasure’ (see Tang Lan, Ma Xulun, Zhou Fangfu, He Linyi, etc), and ‘death as unchanging status’ (see Shirakawa). Among these, the first version of zhen has been considered most authentic, because Shuowen Jiezi《說文解字》, the first authoritative dictionary of Chinese characters, defines zhen (眞) as “a Daoist hermit transforming shape and ascending into Heaven ( 僊人變形而登天也)” with Daoist connotations. Such interpretations, though dominent, were based on Xiaoshuan and did not seem to include closer investigations of zhen (貞), the older form of zhen (眞), based on recently unearthed literatures. Though contemporary archaeological studies provide evidence of more ancient origins, it is difficult to extract the original sense from the primitive script of zhen (貞), because it was only used as the name of a place or a person.
This paper thus follows several hypotheses: 1. zhen (眞) is cognate with zhen (貞); 2. zhen (貞) in oracle bone script means ‘to ask Heaven questions from signs or omens obtained by burning tortoise shells or animal bones’ and a person in charge of performing a divination rituals’ is known as a diviner(zhenren ‘貞人’); 3. zhen (貞) was specified into zhen (眞); 4. Under the influence of Daoism during the early Han Dynasty, zhen (眞) was defined as ‘a Daoist hermit’ (神仙), and then acquired the meaning of truth after the introduction of Buddhism.
The strategies of the paper are as follows: firstly I will analyze zhen (眞) by breaking it into its component characters and trace back its original forms and senses of zhen in oracle bone scripts; secondly, I will examine its usage in the ancient literatures based on phonetic and semantic patterns; finally I will try to place possible coordinates of ‘truth’ among constellations of various meanings of zhen (貞) and zhen (眞).
본고는 청동 치(觶)를 중심으로 심도 있게 연구한 후에 중국 고대 청동기의 저록과 연구과정을 3단계로 구분할 수 있었다. 북송에서 청 말기까지 중국 청동기는 기본적으로 금석연구의 범주에 속하였다. 대부분은 저록을 위주로 하며, 극소수는 글자 의 고석과 연대구분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민국에서 20세 기 70년대까지는 고기물학(古器物學)이 흥행함과 동시에 고고 학도 중국에 진입하였다. 청동기의 저록은 촬영과 탁본 기술을 활용하여 자료들을 수록하기 시작하였다. 고고학에서 제공하는 배경지식을 저록의 내용에 새롭게 추가하였고, 고고학 방법도 청동기 연구에 활용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중국의 전통적인 학술에 영향을 받음으로 인해 이 시기에 여전히 전통적인 연구 는 중요한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 일례로 명문고석, 청동 기 연대고증, 역사문제 연구 등을 들 수 있다. 20세기 70연대 말에 진입하면서 중국 고고학은 급속하게 발전하였다. 중국 내 학자들은 청동기의 연구에 대해 정식으로 전통적인 금석학과 고기 물학의 영역을 벗어나 고고학 중심으로 전환하여 청동기 연구의 새로운 단계에 진입하게 되었다. 저록 방면에서도 고고 학에서 제공하는 새로운 정보가 중요한 내용이 되었다. 그 활 용된 기물의 그림과 사진 등도 청동기 저록 중에서 광범위하게 사용하게 되었다. 이외에 수집 성격의 저록들이 대량으로 출현 하게 되었고, 일부 집대성적 저작들도 출현하였다. 총괄적으로 말하면, 중국 고대 청동기의 저록과 연구는 금석학에서 고고학 으로 전환된 뒤에 새로운 절정을 맞이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중국 불탑은 불교 전래와 함께 인도 불탑이 서북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전해지면서 시작되었지만 인도 불탑과는 전혀 형태를 달리 하는 목조 중층누각형의 모습이어서 그 기원이 주목된다. 중국의 불교 건축은 東漢代불교 전래와 함께 불탑 건축으로 시작되었으며 3세기 이전의 불탑은 3층 이하의 규모로 불사리를 모신 탑묘, 불상을 모신 佛殿, 불교 강연과 행사를 하는 강당, 승려들이 머물 수 있는 승방의 기능을 함께 하는 탑 중심 사찰로 건축 형태와 배치는 전통적인 祠堂과 예제 건축과 닮아 있었다. 탑의 모습도 笮融의 부도사, 四川省昇邡화상전의불탑 형상으로보아 처음부터 중국 전통 목조 건축으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도 역시 초기 중국 불교의 격의적인 성격과 불탑의 祠廟적 이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중국에서의 불탑은 전혀 새로운 모습을 띠고 출발하게 되었다. 4세기 이후 중국은 불교 전래가 본격화되고 많은 대, 소승의 경전들이 번역되면서 격의 불교적인 수준을 벗어났으며 불교가 국가에 의해 장려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佛事에도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이루어지고 특히 아육왕경의 번역과 유포에 따라 아육왕탑의 조성과 사리 신앙이 고조된다. 이러한 불교의 질적, 양적 확산에 힘입어 아육왕탑의 등장, 불탑의 고층화라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며 사찰도 강당, 불전, 탑, 대문 그리고 승방 등의 다양한 부속 건물을 갖춘 모습으로 정비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 사찰은 규모가 커지고 불탑은 고층화된다. 5-6세기 남북조시대는 서역을 통해 전래된 간다라 탑의 영향으로 목조누각형 다층탑으로 발전하게 된다. 작리부도로 알려진 카니슈카 대탑을 비롯한 간다라, 서역의거대한다층탑과 전통목조 중층누각탑 형식이 결합하여 고층화, 각층 탑신의 상부가 곡선형 尖拱이나 梯形으로 표현되는 감실과 불상장식, 그리스와 페르시아풍 기둥장식 등의 외래적 요소가 나타나는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하였다. 이렇게 간다라 양식이 짙게 반영되었던 북위시대 목조 중층 누각형 불탑은 수, 당대를 거치면서 점차 외래적인 요소들이 사라지고 각 시대의 중국적 건축 요소가 강화되면서 중국 고유의 목조 누각식 다층탑 양식으로 완성되었다.
In this study, we investigate the changes in the equatorial lodge degrees and polar distance degrees of determinative stars in the ancient Chinese archives. Confirmed is the fact that the coordinate values of those determinative stars defined in B.C. 104 had been used until the 8th century but were modified by the observations of Li Chunfeng (李淳風) in the early 7th century and Yixing (一行) in 723 A.D. The results of this study are compared with those in History of Chinese Astronomical Observations of Pan Nai. By applying the results of comtemporary astrodynamical calculations, their reliability is checked, and the corrected catalogues of Shi Shi (石氏) and Yixing are provided. The positional accuracy of those observations is estimated to be one degre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