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은 지난 1995년 공동체 또는 사회적으로 제공되는 형태의 삶을 보장하고자 사회보험 방식에 수발보험 을 도입하여 2025년 현재 30년의 시간을 맞이하였다. 수발보험 시행 20년 이후 소위 수발강화법 (Pflegestarkungsgesetz I, II, III)을 통해 발생되는 문제점들을 나름 해결해 왔기에, 본 연구는 독일의 공적 수발보험 개혁에 초점을 맞추고 수발보험의 형성 역사와 발전에 대한 개요를 인구 변천과정에서 살펴보면 서 다양한 수발급여와 등급판정 및 수발인력의 고용관계 상황을 파악해 보았다. 특히 2023년 최신 수발보 험 개혁을 비판적 시각에서 분석하여 독일의 경험을 통한 우리의 개혁과제를 제시해 보았다.
북송 애도시는 당대(唐代)와는 다른 방향으로 애도 주제가 활용된다. 오대십국을 통일한 건국 초 기존 질서의 재배치라는 명목 아래 상당히 제한적인 모습을 보인다. 대표적으로 애도 대상의 축소, 절제된 감정 표출, 친분 중심의 교류, 특정 인물 중심 의 애도 등을 들 수 있는데, 본 논문에서는 이를 절제, 교제, 흠모의 세 층위로 나누 어 애도 주제의 활용 양상과 그 변천의 일면을 살펴보고자 한다. 북송의 애도 주제 활용 양상을 살피는 작업은 북송 애도시 고유의 특징을 도출하는 것은 물론 이를 기 반으로 애도 주제가 관습의 영역을 넘어 ‘변화’의 전진 과정에 놓여있음을 증명하려 는 데 있다. 이는 추후 예정된 남송 애도시와의 비교 연구 및 고대 중국의 애도시사 (哀悼詩史)를 구축하는 데 있어 중요한 시사점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된다.
Purpose: This review study analyzes the impact of the Korean Society for Customized Visiting Health Care on the development of Home Visiting Care in public health centers since its inception in 2007. It also suggests potential future directions for both the Korean Society for Customized Visiting Health Care and Home Visiting Care in public health centers. Methods: The investigation scrutinized various sources including the white paper detailing the activities of the Korean Society for Customized Visiting Health Care, academic conference materials, minutes from general meetings, research papers from the Ministry of Health and Welfare, and the Korea Health Promotion Institute. Results: The Korean Society for Customized Visiting Health Care has been actively involved in advancing and assessing home-visiting health care services. The society has been focused on developing and evaluating the effectiveness of home visit health care services offered by public health centers. Conclusions: The Korean Society for Customized Visiting Health Care has achieved progress by continuous interaction with field staff, rigorous personnel training, technical assistance, field research, and policy recommendations. In 2024, the home visit health care sector could be advanced and improved using AI technology.
거제 옥산성은 문헌 기록에는 조선 말 거제부의 산성으로 축조된 것으로 되어 있지만, 발 굴조사 결과 신라 때 이미 축조되어 대체로 고려 시대까지 활용된 것으로 나타났다. 발굴조 사에서 나타난 산성의 하부 구조는 전형적인 신라 산성에 해당하는 것으로 역사적으로 다음 과 같은 중요성을 갖는다. 1) 옥산성은 7세기에 신라가 거제도를 직접 지배하고 또 이를 통 해 거제도 서쪽 방면에서 백제와 왜의 연결을 방지하기 위해 축조한 산성이다. 2) 문무왕 때 거제도에 군을 설치하면서 이 성은 상군 매진이현(경덕왕 때 거제군 명진현으로 개명)으로 편제되었다. 옥산성은 통일 신라 시대를 지나 고려 중기까지도 명진현의 성으로 활용되었을 것이다. 3) 조선 후기 거제현의 치소가 마침내 옛 명진현 인근에 정해지게 되었는데, 여기에 는 읍성을 축조하지 않았고, 조선 말 인근 고성을 수축하여 활용하고자 하였다. 이것은 전통 시대 산성을 축조한 거의 마지막 사례라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앞으로 거제도의 다른 신 라 유적과 함께 체계적인 조사와 관리가 필요할 것으로 생각된다.
이 글은 석성에서 토성으로 개축 시 양상을 설명하기 위해 작성된 것이며, 행주산성을 대 상으로 하였다. 이 산성은 삼국시대에 테뫼식 석축산성-석성 1-으로 축조된 이후 다양한 부 속시설이 설치되었다. 고려시대에는 토성-토성 1-으로 개축되었으며, 이후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지만, 석성-석성 3-으로 개축되었음이 밝혀졌다. 행주산성의 석성 1은 덕양산과 서쪽 사면의 8~9부 능선을 두르는 테뫼식 석축산성으로 축성되었다. 외벽에는 1~2차례의 수축이 이루어졌으나 적극적인 생활면의 변화는 확인되 지 않는다. 이후 북서벽에 치 1이 가축되었다. 서벽 북쪽의 트렌치 토층을 분석하면 석성 1 외부를 단상으로 굴착한 부분과 외황이 매몰되고 일정 부분 대지가 조성되었다. 보축성벽과 치 2가 가축되면서 북동쪽 성우과 서벽 외부에는 비교적 넓은 평탄지가 조성 된다. 성 내부는 구지표를 절개한 후 1열의 내벽이 축조되었다. 이와 연동하여 생활면은 2차 례 정도 높아졌고, 각각의 상면에는 기와와 점토를 혼합하여 다졌다. 이후 남서벽에 석성 2 와 치 3이 축조되었으나 성 내부의 생활면 변화는 알 수 없다. 석성이 폐기된 이후 서쪽과 남쪽으로 확장된 포곡식의 토성이 축조되었다. 북동쪽 성우 의 성벽은 석성 1의 붕괴와 자연스럽게 연결되면서 마감된다. 이 부분의 남쪽은 토성벽이 보이지 않다가 동벽에서 토성 1이 확인되는데, 토성으로 개축된 이후에도 석성을 활용하였 음을 알 수 있다. 일정 기간이 지난 후 북동쪽 성우와 남동벽에 치가 가축된다. 기저부의 양 상으로 보아 토성 1과 공정상의 차이로 보기 어렵고, 당연히 생활면의 변화가 감지된다. 토 성 2가 축조되는 시점에는 생활면이 상당히 높아졌으며, 성 외부의 지형은 굴곡을 이루고 있었다. 이후에는 토성이 폐기된 이후 퇴적층 상부에 석성 3이 축조됨으로써 생활면의 변화 를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행주산성은 테뫼식 석성으로 축조된 이후 포곡식 토성, 마지막으로 석성으로 개 축되었다. 이에 연동하여 생활면은 지속해서 높아짐을 알 수 있다. 한편, 토성에 대한 기왕의 연구는 성벽을 축조한 이후 유지가 어려우므로 내ㆍ외피 토루 를 설치해야만 붕괴를 방지할 수 있다고 알려져 왔다. 하지만 토성 1의 성벽은 초축 당시 최 소 300㎝ 이상이었다. 내ㆍ외피 토루 없이 유지되었음이 밝혀졌으므로 토성에 대한 개념을 재검토해야 하는 자료를 확보하였다. 이 글의 대상인 행주산성 성벽의 구조와 구지표의 변 화는 다른 성곽 조사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성곽에 대한 조사를 진행할 경 우 성벽의 구조와 더불어 경관의 변천(성벽의 수·개축과 구지표의 변화 등)을 파악하는데, 중점을 두어야 할 것이다.
파주 덕진산성은 임진강 북안에 위치하는 산성이다. 현재까지 6차례에 걸쳐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발굴조사를 통해 확인된 성벽 및 시설의 축조양상을 파악하여 경관의 변화과 정에 대해 살펴보고, 수축에 대한 특징들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덕진1기는 고구려가 처음 덕진산성을 점유한 시기로 북상하는 신라군을 방어하기 위해 임진강유역의 성곽들과 함께 축조하였다. 덕진2기는 고구려 멸망 신라가 덕진산성을 확보 하고, 나·당전쟁 중 전쟁에 이용하기 위해 성벽과 부대시설 등에 대한 대대적인 개·보수 를 실시하였다. 덕진3기는 신라가 북쪽의 방어선을 강화하고, 지방행정을 정비하면서 덕진 산성을 지방행정에도 이용하기 위해 성벽과 시설물을 정비하였다. 덕진4기는 조선시대에 다시 고쳐 쌓아 이용하였다. 덕진산성은 고구려-신라-조선시대까지 지속적으로 성곽이 이용되는 과정이 명확하게 확인되고 있어, 다른 성곽과 비교를 통해 성곽의 축성법과 운영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유용 한 자료이다. 분석 결과, 수축을 통해 확인된 특징점들은 ①성벽을 덧대어 그대로 이용하였 다. ②좁은 성 내 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려고 한 노력들이 확인된다. ③성의 운영목적에 따른 구조적 변화가 확인되었다. 시기별로 목적에 따른 변화가 확인되고, 조선시대에는 외 성의 축조를 통해 삼국시대와는 다른 공간활용이 주목되었다. 덕진산성의 시간변화를 구체적으로 파악함으로써 덕진산성이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까 지 지속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또한 성곽의 운영에 대한 기초자료가 확보되어 다른 성곽과의 비교·검토에 앞으로 활용될 것으로 기대된다.
Chinese as a foreign language education is one of China's crucial national and governmental strategy. Over the past 70 years of development, Chinese as a foreign language education has made remarkable achievements, but it faces great challenges. In China, the term Chinese as a Foreign Language Education is the last in a series of terms from Teaching Chinese as a Foreign Language to Teaching Chinese to Speakers of Other Languages and then to International Chinese Language Education, and in its development has passed from the 1.0 era to the 4.0 era. This article aims to present new goals by examining the achievements and characteristics of Chinese as a foreign language education step by step from the perspective of governance and drawing out their implications, identifying the causes of its development, and forecasting future tasks
본 챕터는 과거 50년 연구개발정책의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한국 산업과 경제의 성장과정에서 연구개발정책이 어떤 역할을 수행했는가를 조명한다. 1960년 초 경제개발 5개년계획을 추진하기 시작하던 때부터 1970년 대 말까지 연구기반 구축기, 1981년부터 2000년까지 연구역량 축적기, 2001년부터 2020년 현재까지 연구개발 도약기 등 3단계로 나눠서 살펴본다. 연구기반 구축기간 중에는 연구개발 투자의 증가와 함께 본격적인 연구와 우수 연구 인력을 양성하기 위하여 여러 국책연구기관을 설립하였으며 연구 단지를 조성하는 등 연구기반을 구축하는 정책을 추진하였다. 다양한 분야의 전문 연구기관의 설립 필요성이 제기되자 주요 분야 연구조직을 KIST 부설 형태로 발족한 후 독립 연구기관으로 분리하는 것이 주요 정책이었다. 연구역량 축적기에는 정부가 연구개발 사업을 기획하여 추진하였고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대학의 연구 잠재력을 조직화함으로써 연구역량을 축적하였다. 수출 고도화와 수출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향상해야 하는 기업들의 절박한 기술혁신의 필요성에 기인하여 기업의 연구개발 투자가 급속도로 증가했다. 2000년대에 이르러서는 우리나라 연구개발투자가 절대규모에서도 세계 5위국으로 부상했고, GDP대비 연구개발투자 비중에서는 세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이렇듯 연구기반 구축기, 연구역량 축적기, 연구개발 도약기를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매 20여년의 주기로 연구개발 시스템을 시대 상황에 맞도록 정책을 혁신하여 추진함으로써 오늘에 이르렀다. 과학기술의 혁신은 산업과 기업의 성장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였다. 정부의 도전적인 연구개발 투자는 정밀한 정책 기획과 추진이 병행되면서 그 효과가 발휘되었고 산업과 기업의 성장을 견인할 수 있었다.
대륙이동설로부터 시작되었고 이후 고지자기 및 해저퇴적물 등의 증거들에 의한 해저확장설을 통하여 정립된 판 구조론은, 지각의 운동을 몇 개의 강체 판들이 비록 느리지만 수억 년 이상의 긴 시간 동안 꾸준히 일어나는 움직임으로 서 설명하였다. 초기에는 지각판의 속도를 주로 수백만 년 동안의 고지자기 역전의 잔류 기록에 의거하여 판들 간의 상 대적 운동으로 추산하였는데, 1980년대 이후에는 우주측지 기법들을 이용하여 현재 시점의 판운동을 직접적으로 조사할 수 있게 되었고, 일부 지역에서 판의 변형이 일어나는 것도 확인하게 되었다. 본 해설에서는 (1) 초기의 상대적인 판운동 을 나타내는 모델들을 돌아보고, (2) 무회전 좌표계의 이론과 절대판운동 모델들을 요약-기술하며, (3) 판내부의 변형을 포함하는 최근의 모델을 소개하는 한편, (4) 국제 지구 기준계에 채택된 판운동 모델을 간략히 기술하였고, 끝으로 (5) 근 래에 보고된 남미, 남극, 유럽 등 몇 지역과 (6) 한반도 및 동북아의 지각판 움직임 연구를 각각 소개하였다.
본 논문은 사람들의 도시 이해와 도시의 변화 발전이 교회의 사역에 어떠한 영향을 미쳐왔고 또 교회가 변화하는 도시에 대한 이해와 적응 여부가 교회의 시대적 사명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를 연구했 다. 본 논문은 시대별로 사람들이 관념 속에 있던 도시에 대한 이해와 관점을 사회학적 이론으로 정리하였다. 나아가 그 합의된 도시 이해가 당시 교회들의 사역 방향과 범위에 어떤 식으로 표현 되었는지를 살펴보 았다. 도시 이해에 관한 이론 연구로는 근대 서구 사회학 중에서 도시학 (urbanology)의 변천과 발전 과정 가운데 탄생한 이론들을 주요 해석 적 방법으로 다루었다. 그 결과 근대의 도시 학은 당시 사회와 교회들의 도시에 관한 인식을 적어도 네 가지 단계-공간적, 그룹들의 집합체, 변화의 과정중, 글로벌 네트워크의 일원- 에 걸쳐 변화 하도록 영향을 미쳤다. 찰스 벤엥겐(Charles Van Engen)의 이론에 기초하여 본 논문은 선교 학의 주요 구성 영역인, 말씀, 교회, 현장 중에서 현장의 이해에 중점을 둔 글이다. 이 논문을 통해 교회들은 자신의 사역 철학이 이 네 가지 관점 중의 어디에 멈춰 있는지를 돌아 볼 수 있을 것이다.
중국 동북지방의 조선족 전통민가는 함경도와 평안도, 그리고 만주 지방형을 토대로 다양한 평면구성형태를 구성하고 있 다. 특히 길림성, 흑룡강성, 요녕성 내륙지역과 중-러 국경지역에 산재된 조선족 민가는 두만강, 압록강 등 집중거주지역에 분포된 조선족 전통 민가와는 달리 이문화의 갈등과 동화 속에서 지역특성에 알맞은 공간형태의 변형을 돋보이고 있다. 그 중 띠캉 공간의 출현이 가장 대표적이다. 바닥을 원형으로 조성된 한족, 만주족 전통민가의 단순공간변형과는 대조적으로 조선족 전통민가의 띠캉은 마루방을 원형으로 주생활 행위의 계절성 변용에 집중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띠캉(地炕) 공간을 중심으로 조선족전통민가의 공간변형과 주생활 양식의 변천에 대한 고찰을 통해 주문화의 전통지속과 농촌주거의 진흥에 도모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