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 소설이 발전하면서 영화라는 매체와 만나 웹 소설에서 소재를 얻는 것은 유행 이 되었고, 이러한 상황은 흥행에도 큰 영향을 미치면서 영화 업계에 막대한 이익을 창출하게 해 주었다. 특히 웹 소설의 낮은 저작권료와 높은 수익이 이루어지는 특성 은 많은 방송사의 주목을 받았다. 이러한 뉴미디어가 대중의 생활과 밀접해지면서 영상 전파방식도 크게 달라졌고, 이런 생활방식이 영화로 표출되는 것은 바로 시청 방식의 변화에 따른 것이다. 최근 들어 다양한 분야에 인터넷이 널리 보급되면서 중 국 웹 소설이 영상으로 각색되는데 십여 년간의 발전 단계를 거치면서 중국 영화 업 계에 웹 소설 각색의 변화를 일으키는 새로운 문화전파 현상으로 자리 잡았다. 웹 소설의 자유화와 개방성이라는 특징이 독자의 관심을 모으고 영화 창작자의 주목을 받았으며, 영화 각색에 신선한 자양분을 제공하고 있고, 인터넷이 문화를 주도하는 시대에서 웹 소설 각색 영화는 대세가 되고 있다.
러시아 형식주의자 쉬클로프스키는 ‘낯설게 하기(defamiliarization)’ 개념을 최초로 제시하였다. 이는 자동화(automatization)된 인식을 돌파하고 새로운 심미적 감각을 자극하는 수단으로 건축, 패션 디자인, 미디어, 미술 등 시각적 연구 분야에서 활발 하게 논의되었을 뿐만 아니라, 문학계에서 ‘문학성(literariness)’, 문학작품 비평에 대 한 검토도 꾸준히 이어져 왔다. 기존의 ‘낯설게 하기’ 연구방향에 따라 각 학자들은 음성학적, 어휘적, 통사적, 문체적 구조 등 다양한 언어적 위계에 초점을 두고 의미 가 있는 관점을 밝혔으나 이를 통합하여 전체적 텍스트를 분석하는 기준과 방법을 세우지 않았다. 따라서 본고는 중국 당대소설 ‘낯설게 하기’의 범위를 규명하고 체계 적인 분석 기준을 수립한 다음, ‘낯설게 하기’의 구체적인 변형 수단과 연구소설 「레 닌의 키스(受活)」의 ‘낯설게 하기’ 양상을 검토하고자 한다.
20세기를 통틀어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으로 스펙트럼의 반대편 극단에 위치하였던 미국에서의 화인들의 삶을 두 문화를 동시에 경험한 작가들의 작품을 통해서 살펴볼 수 있으며 변화된 시대의식을 가시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중요도가 높다. 哈金의 경우 20세기 말 미국 이주 화인의 삶을 화려하지 않지만 담백한 문체로 은유된 재현의 방식을 통해 문학에 구현해냈으며 한국에서의 학술적 외연 확장의 중국문 학이라고 범주화했을 때 인지도가 있는 작가다. 여기서는 哈金의 단편소설집을 중심으로 상상된 중국이라는 이미지를 미국 사회와 문단에서 두드러지게 재현할 수 있었던 소설의 특징적인 요소를 주로 살펴보게 된다. 나아가 뉴욕 퀸즈 플러싱이라는 주요 배경이 된 장소에 대해서 그 공간적 의미를 살펴본다. 장소로서의 특수성에 은유된 화인 디아스포라들의 정체성에 관한 문제로부터 상상된 중국과 미국 내 특수한 로컬의 결합이 어떻게 트랜스문화적 공간 속에서 글로컬 정체성을 만들어내는지의 과정을 진단한다. 결국 이러한 과정들을 통해서 哈金의 문학의 지향점이 코스모폴리타니즘을 향해 있다고 가정되는 세계문학 속의 하나의 지점을 만들어낼 것이라는 가설을 검증하고자 한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중국의 문학, 예술 개념의 관념을 형성하는데 위력을 발휘하고 있던 전통적 ‘文’의 역할을 재탐색하고, 이에 따른 전통적 문화의식의 영향이 문학예술의 방 면에서에서 근대 중국의 근대성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담론을 구축해나갔는지를 밝히고자 하 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근거하여 당시 남사(南社) 계열의 문인으로 화가로서 천부적인 재능 을 지녔으며, 서구 문학을 번역하여 소개한 개척자의 한 사람이며, 현대적 소설의 선구적 작 가의 한 사람인 소만수(蘇曼殊)를 통해 근대시기 변혁기를 살아가는 중국지식인의 사유적 기 반을 천착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탐색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사실은 이들 문사들은 자신들이 훈련받은 전통적 학문을 토대를 매우 적극적으로 근대적 학문과 사상과 습합하 려는 노력을 견지하였다는 점이다. 일례로 소만수의 화제를 살펴보면 소만수의 그림과 연관 된 문사들의 의식적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우국충정의 전통적 사대부의 이상이 어김없이 표현되고 있다. 그들은 중국화가 담고 있는 관습적 장치를 통해서도 자신들의 지향 점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려 하였다. 소만수 그림의 화제에 인용된 화제시(畫題詩)의 대개가 이 민족의 침입으로 멸망해 가는 왕조의 비극을 담은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의 소설 『단홍영안기斷鴻零雁記』 또한 이러한 징후를 찾아 볼 수 있다.
19세기 말에서 20세기 초에 중국의 문학, 예술 개념의 관념을 형성하는데 위력을 발휘하고 있던 전통적 ‘文’의 역할을 재탐색하고, 이에 따른 전통적 문화의식의 영향이 문학예술의 방 면에서에서 근대 중국의 근대성을 어떻게 재구성하고 담론을 구축해나갔는지를 밝히고자 하 였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근거하여 당시 남사(南社) 계열의 문인으로 화가로서 천부적인 재능 을 지녔으며, 서구 문학을 번역하여 소개한 개척자의 한 사람이며, 현대적 소설의 선구적 작 가의 한 사람인 소만수(蘇曼殊)를 통해 근대시기 변혁기를 살아가는 중국지식인의 사유적 기 반을 천착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이러한 탐색을 통해 확인할 수 있었던 사실은 이들 문사들 은 자신들이 훈련받은 전통적 학문을 토대를 매우 적극적으로 근대적 학문과 사상과 습합하 려는 노력을 견지하였다는 점이다. 일례로 소만수의 화제를 살펴보면 소만수의 그림과 연관 된 문사들의 의식적 특성을 발견할 수 있다. 그들에게는 우국충정의 전통적 사대부의 이상이 어김없이 표현되고 있다. 그들은 중국화가 담고 있는 관습적 장치를 통해서도 자신들의 지향 점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려 하였다. 소만수 그림의 화제에 인용된 화제시(畫題詩)의 대개가 이 민족의 침입으로 멸망해 가는 왕조의 비극을 담은 내용들이 주를 이룬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그의 소설 단홍영안기斷鴻零雁記 또한 이러한 징후를 찾아 볼 수 있다.
본 논문은 청대 만주어로 번역된 중국 소설의 전체적인 상황과 그 특징을 파악해 보기 위 한 목적으로 쓰여졌다. 만주족이 문자를 가지게 된 것은 1599년의 老滿文과 1632년의 新滿文 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만주족은 정권 초기부터 한족 문화와 제도를 적극 수용하였고, 그로 인 해 한문 서적의 만주어 번역이 중요하게 부각되었다. 文館으로부터 內三院, 內閣 기구에는 滿 文 번역 부서가 마련되어 있었고, 內翻書房과 같은 전문번역기구가 설치되기도 하였다. 科擧 에는 飜譯科가 신설되었고, 啓心郞, 筆帖式과 같은 통번역 업무를 전담하는 관료 계층도 생겨 났다. 國子監과 八旗 교육기관에서는 만주어문 교과과정이 개설되어 만주어 학습을 장려하였 고, 만문을 사용할 수 있는 인재 양성에 힘썼다. 청대 만주어 번역 소설의 출현은 이런 독특 한 시대적 배경과 관련이 있다.
만문 도서는 크게 抄本과 刻本으로 구분되며, 각본은 官刻本과 坊刻本으로 나뉜다. 청대에 나온 만문 도서는 수도 北京의 황실 중심의 관각본이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반면 에 지방 관서의 각본은 주로 만주어문 학습에 필요한 교과서나 공구서가 중심으로, 지극히 작은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상업적인 이윤을 목적으로 하는 만문 坊刻本 역시 北京에 집 중되어 있었다. 방각본 만문 도서는 대부분 만한합벽이고 순수 만문으로만 된 것은 극소수이 다. 당시 書坊들에게 만문 도서의 간행은 주력 사업이 아닌 부차적인 아이템이었다. 내용적으로 四書 등과 같은 유가경전, 사전류, 만주어문 학습서 등이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였고, 『삼국연의』, 『요재지이』 등과 같은 문학 작품은 극히 일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필자의 불완전한 통계에 따르면, 현존하는 만주어로 번역된 중국 소설은 대략 48종이다. 이 가운데 90% 정도는 만문으로만 번역되어 있고, 10%는 만문과 한문이 병렬되어 있는 滿 漢合璧으로 되어 있다. 내용적으로 볼 때 연의류 소설과 재자가인류 소설이 거의 80% 정도 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사대기서’는 만주족 사이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던 소설 로, 『삼국연의』는 多爾袞의 명으로 순치7년(1650)에 간행되었고, 사대기서 나머지 작품들도 비교적 이른 시기인 강희 연간에 만문으로 번역되어 각본, 혹은 초본의 형태로 유통되고 있 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볼 때 청대 만주어로 번역된 중국 소설의 규모와 유통 범위는 크지 않았고, 주 로 북경을 중심으로 하는 만문 식자층을 대상으로 하고 있었다고 추론해 볼 수 있다. 그 식 자층은 대부분 ‘旗人’에 속해 있던 사람들로 만주족을 비롯하여 일부 몽고족, 한족 등 만주어 문화권에 속해 있던 사람들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역본 소설은 만주어 문화권에 속해 있던 蒙古族, 錫伯族, 達斡爾族 등 북방 소수민족들을 비롯하여 글자를 알지 못하던 훨씬 더 많은 만주족들에게 ‘烏勒本(ulabun)’과 같은 說唱 예술의 형태로 전파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였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이상의 논의를 종합해 보면, 현대문예이론의 기준으로 梁啓超의 소설이론을 평가하면, 梁啓超의 소설에 대한 인식은 수준이 높다고 할 수는 없다. 매우 분명한 논리적 허점이 있어, 수많은 이론상의 오해와 논리상의 허점에도 불구하고, 당시의 객관적 현실을 감안하면 그의 이론이 시대의 최선봉에 선 것임은 분명하다. 심지어는 문장 속의 어떤 오해와 과장에는 말살할 수 없는 역사적 소명의식이 들어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梁啓超가 제창한 소설이론은 중국근대문학의 발전에 특별한 공헌을 했다. 첫째, 소설과 사회의 관계에 대한 그의 이론은 그때까지 볼 수 없었던 이론의 최고 수준이었다. 둘째, 줄곧 그 지위가 낮았던 중국의 소설을 “文學之最上乘”의 지위로까지 끌어 올렸다. 셋째, 그는 형식면에서, 신문이나 잡지에 이론을 발표함으로서, 중국의 문예비평방법인 評點이나 序跋로부터 완전히 벗어나서 근대이론으로 발전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 넷째, 그 결과 소설이론이 구체적 작품으로부터 분리되어 문학의 일반론이나 서사방법 등 이론성 문장을 자유롭게 전개할 수 있는 방법론면에서 근대소설이론으로 발전하는 획기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소설계혁명”의 실제효과를 보면, 梁啓超이론의 부정적 효과도 너무나 분명하여 간과할 수는 없다. 첫째, 소설과 사회의 관계만을 일방적으로 강조하여, 소설이 그 본래의 독립적 품격을 상실하고 정치선전의 도구로 전락하고 말았다. 둘째, 소설과 사회라는 외부관계만을 일방적으로 중시하여 서사방법·인물의 전형화이론·사건의 형상화이론 등과 같은 소설내부의 예술문제 등을 홀시하여 중국의 고전소설이 근대소설로 정상적인 발전하는 것을 방해하였다. 청말(만청)에 이렇게 많은 창작이 쏟아져 나와 소설의 전성기를 구가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시기의 소설에 대한 평가는 그다지 높지 않다는 것이 문학연구자들의 공통된 평가이다. 이러한 양과 질의 불균형 현상은 여러 가지 복합적인 원인이 있겠지만 그 가운데 가장 큰 이유 중의 하나는 갑작스런 양의 증대현상이 질적 향상을 담보할 수는 없었으며, 이런 양적 증가의 원인이 비문학적 요소인 사회변혁운동의 일환으로 전개되었다는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사회변혁운동의 중심에 梁啓超와 그의 소설이론이 자리 잡고 있었다. 양계초는 자신이 주장한 “소설계혁명”이론을 바탕으로 하여 그의 유일한 소설창작인《新中國未來記》를 창작하였으나, 겨우 5회를 쓰고 나서 스스로 중단하고 말았다. 그의 이러한 실패는 서언에서 제기했던 문제에 명확한 답을 제시해 주고 있다. “실천만이 이론을 검증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Novels in China were recognized as the humble literature style and remained on the periphery for a long time. Getting to modern ages, novels were understood by the ways a save-the-nation drive and the Enlightenment and began to be written actively. Also novels occupied the central part of literature due to their diverse theories. Although the process was fairly unnatural, it aroused unprecedented development. Later it led to the birth of new novels of China after 4th May. It tried to study Zhuboshi; such as the social reality, wishes and anguish which they wanted to include by exploring novel theories and real creation of short stories which were actively discussed at that time.
This thesis studied the situation of the platitude novels in the changing literature environment in the 1950s. Especially it noticed the effect which in the modern have on the creation and distributions of platitude novels. It regarded it as the restraint of distributions and development of platitude novels that there were big changes of the publishing regulations and system after the 1950s. In this context, we need to notice the activities of Beijing popular literature creation society established in the early 1950s. They wanted to supply with works expressing revolutions in which the uneducated, could easily understand and agree. But the mainstream at that time needed to show more high-level socialistic ideas than popular literatures. The uneducated could not satisfy their needs, interest, and entertainment which were critical subjects. At last the position of platitude novels oblige themselves to be trifling and inferior to realism literature. Also writers in platitude novels could not hold the leading positions from the literature in those day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