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자연미술가’로 평가돼온 임동식의 작품세계를 포스트휴머니즘과 페미니즘의 복합 적 관점에서 비평한다. 그가 야외현장에서 풀과 꽃, 떠내려온 나무 등 자연물을 이용해서 펼친 행 위예술은 기존의 자연주의 관점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자연을 행위 주체로 보는 포스 트휴머니즘적 사유와 함께 서구 대지미술과는 다른 탈남성적 태도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이후 그 가 회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탈남성적 성격은 진화한다. 즉, 그의 풍경화는 중심-주변을 가르는 이분법의 해체, 시각 우위를 전복하는 촉각적인 화면, ‘남성적’인 힘찬 붓질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섬세한 붓질 등에서 여성주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인간/비인간, 남성/여성의 이 분법적 경계를 허무는 임동식의 미술적 실천은 페미니스트 도나 해러웨이가 경계 해체, 양성성을 가진 이미지로 제시한 사이보그의 혼종성을 연상시킨다.
전 세계인류는 코로나 바이러스와 사투를 벌이고 있다. 그것이 자연의 반작용인지, 조물주의 분노인지 알 수는 없다. 단지 인간은 그것에 대응하기 위하여 노력할 뿐 그것의 정체와 끝을 알아낼 수가 없다. 여태 인간이 알 수 있는 것은 근본적인 것이 아니라 증상적이고 현상적인 것이다. 인간은 르네상스 이후 계몽주의 기획의 일환으로 자연의 법칙을 하나씩 알아내어 불로장생의 수단으로 삼아가고 있는 중 이다. 르네상스의 시대정신인 휴머니즘은 600년이 지난 지금 포스트-휴머니즘으로 변경되었다. 그것은 인간과 기계가 결합된 세상을 의미한다. 인간의 아침은 각자 디지털 디바이스의 접속, 즉 컴퓨터와 스마트폰을 열고 하루의 일과를 구상한다. 그래서 포스트-휴머니즘은 인간존재의 조건이 된다. 이러한 점에서 포스트-휴머니즘을 전조한 영화들『불로(不老)의 묘약』, 『터미네이터』, 『매트릭스』를 예이츠의 시작품에 적용해 본 결과, 인간들은 스스로의 편의와 안락을 추구하기 위해 신성의 일환으로서의 사고의 결과로 스스로 창조한 기계에 의해 사멸할 운명에 처한다. 그리고 영화와 시는 현실의 상황을 영상과 문자로 현실을 반영하는 징후적 텍스트에 불과하다.
본 논문의 목적은 철학적이고 기독교적 인간학의 입장에서 트랜스휴머니즘 안에서 논의되고 있는 사이보그를 통한 생명 연장의 문제에 대하여 분석하고 비판하는 것이다. 트랜스휴머니스트들이 추구하는 사이보그 기술을 통한 영원에 가까운 생명의 획득은 데카르트의 영육이원론과 인간 정신이해에 기초해 있으며, 자유 시장 경제의 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이에 반해 기독교의 부활과 영생에 대한 가르침은 인간의 정신에 대한 깊은 이해를 담고 있으며, 정신과 몸에 대한 전인적인 이해를 담고 있다. 더욱이 기독교의 부활과 영생의 관념은 오랜 역사적 경험을 통하여 인간 욕망의 위험성에 대한 충분한 반성을 품고 있으며, 그 반성을 기초로 인간의 욕망을 극복한 새로운 미래의 가능성을 제시해 왔다. 이러한 점에서 기독교의 부활과 영생에 대한 사상은 사이보그 기술을 바탕으로 한 트랜스휴머니즘의 생명 연장에 도전을 받기보다는, 오히려 트랜스휴머니즘의 사이보그 기술을 통한 영생추구를 비판하고 인도하는 오래된 지혜로서 기능할 수 있을 것이다.
魯迅은 초기부터 전기까지 휴머니즘과 개성주의 사상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것은 옌푸와 장타이옌의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똘스또이와 니체의 휴머니즘과 개성주의 영향도 받았다. 그러나 옌푸와 장타이옌을 초월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魯迅 초기 사상 중의 휴머니즘과 개성주의 역시 똘스또이나 니체의 것과는 다른 성격을 보인다. 魯迅의 초기 자연관은 유물론이었지만 세계관은 사적 관념론이었다 할 수 있다. 일본 유학 시절에 아나키즘과 맑스주의를 접촉한 적이 있었지만, 대상을 경솔하게 믿지 않는 魯迅의 특질로 인해 그것들에 대해 유보하는 태도를 취하였다고 보여 진다. 따라서 後期에 정식으로 맑스주의를 수용하기 전 魯迅이 신봉할 수 있던 정식 이론은 여전히 초기에 《천연론》과 자연과학에서 수용한 다윈의 진화론뿐이었고, 자연과 생물, 인류와 사회가 필연적으로 진화한다고 믿었다. 진화론은 결코 魯迅 사상의 전체를 개괄하거나 대표할 수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주 그것을 언급하였다. 魯迅의 사상과 작품은 초기의 혁명적 로맨티시즘, 전기의 비판적 리얼리즘, 후기의 맑스주의 등의 중요한 발전을 거쳤다. 발전이란 止揚으로, 그 속에는 부정도 있고 계승도 있다. 그러나 농민에 대한 동정과 관심, 상층 사회에 대한 증오와 투쟁은 초기와 전ㆍ후기에 연속되는 魯迅사상의 특색이라고 단언할 수 있다.
하버드대학교의 로만스 언어학과 교수였던 어빙 배빗(Irving Babbitt)은 1924년에 민주주의와 지도력이란 저서를 출간하였다. 이 저서는 배빗이 오랫동안 주창해왔던 휴머니즘에 관한 사상을 이론적으로 정립한 것인데 출간 즉시 배빗의 대표작으로 주목을 받았다. 특히 당시 영미문단에서 비평사상을 주도하기 위해 출발한 크라이테리언이란 계간지는 배빗의 제자였던 T. S. 엘리엇이 런던에서 편집을 하고 있었는데, 배빗의 휴머니즘 사상을 쟁점화하여 점검하는데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본 논문은 배빗의 민주주의와 지도력이 출간된 이후 10여 년에 걸쳐 지속된 그의 주된 사상인 휴머니즘에 관한 논쟁에서 배빗이 주창한 핵심사상이 무엇이며, 크라이테리언지를 통하여 이 논쟁에 참여한 기고자들이 배빗의 휴머니즘에 대하여 어떤 입장을 취하였는지를 추적한 것이다. 특히 본 논문은 배빗의 휴머니즘에 대하여, 그의 제자였던 엘리엇이 어떤 견해와 입장을 취하였지를 고찰하여 엘리엇의 휴머니즘에 대한 사상의 일면을 드러내는 데 초점을 두었다. 부연하면, 엘리엇이 그의 사상을 형성해 가는 초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배빗의 사상은 엘리엇이 영국의 철학자 F. H. 브래들리와 특히 T. E. 흄의 사상을 전폭적으로 공감하여 수용하고, 자신의 인생에 결정적인 전환의 계기가 된 영국 국교로의 개종과 뒤이어 영국 신민으로 귀화함으로써 배빗의 휴머니즘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취한다. 따라서 엘리엇의 배빗에 대한 비판은 그의 종교적․신학적 입장에서 배빗의 불가지론적 입장에 기초한 휴머니즘과 상이함을 드러낸다. 그렇다고 엘리엇이 근본적으로 휴머니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며, 배빗이 주장했던 것처럼 윤리적 가치에 기초한 휴머니즘을 높이 평가한다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