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조선시대 수장과 수장가에 대해 그동안 단편적으로 논의되었던 수장가의 개념과 수집행위로부터 파생된 여러 양상을 종합적으로 정리하고 그 의미를 탐색하는데 중점을 둔 것이 다. 조선시대 사람들이 생각한 진정한 수장가란, 수집을 이용해 재력이나 인맥을 과시하는 사람 이 아닌 작품의 가치를 분별할 줄 아는 진정한 감식가이자 작품의 훼손을 방지하는 보존가로 해 석된다. 당시 수장가들은 작품의 보전을 위해 별도의 보관처인 장서루나 수장처를 마련하였고, 수장인을 찍거나 수장목록을 작성해 수장품의 소유를 증명하고 출납과 현황을 파악하였다. 이러 한 현존 수장목록은 개인의 취미를 보여주는 사례를 넘어서 한 시대의 지성사와 예술사의 흐름을 보여주는 또 다른 자료라는 점에서 미술사적 의의가 있다.
2000년대 이후, 우리나라에서는 공립미술관이 대거 개관하면서 그 중요성을 새롭게 재인 식하는 시대를 맞이하였다. 이와 함께 공립작가미술관도 계속 증가해가며 그 입지를 더욱 강화해 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요제프 슘페터는 새로운 것들의 끊임없는 결합과 적용을 통해 기존 의 것들을 혁신해나가는 ‘창조적 파괴’의 개념을 고안해냈다. 따라서 이 연구는 ‘이응노의집’에 초점을 맞춰 우리나라 공립작가미술관의 현황을 점검해보고, 창조적 파괴의 개념을 통해 이응노 의 예술세계를 기념하는 이응노의집의 미래경영 방안을 제언해 보고자 한다. 특히 이 연구는 근 대미술관이 부재한 한국의 미술관 현황을 고려하여 이응노의 예술세계를 핵으로 하는 근대미술 관으로 자리매김하는 이응노의집의 미래경영 전략과 방안을 구상해 보여주고자 한다.
본 논문은 미국의 미학자이자 미술비평가인 아서 단토가 2005년 기획한 전시 《9/11의 예 술》을 바탕으로 ‘예술의 종말’에 관한 그의 유명한 이론이 문화적 패러다임의 종말을 암시하는 현 실 정치의 상황 속에서 어떻게 재해석될 수 있는지 분석해 본다. 이를 위해 논자는 단토의 이론을 전기와 후기로 나눌 것이다. 전기는 주로 1980부터 2000년 사이에 이루어진 예술의 분석적 정 의와 헤겔적 역사주의에 입각한 ‘예술 종말론’의 시기이다. 후기는 2000년 이후, 칸트에 대한 재 해석을 통해 종말 이후 예술의 주관적 보편성과 숭고한 비형식적 특성을 강조하는 ‘종말 예술론’ 의 시기로 볼 수 있다. 본 논문은 단토의 이론에 내재하는 예술 종말과 종말 예술의 유의미한 대비 를 통해 예술 종말론의 논점들–포스트 내러티브적 예술, 일상의 변용, 지각적 식별불가능성, 의 미의 육화 등이 9/11과 같은 대재난에 의해 야기된 동시대 문화의 종말적 상황 속에서 어떻게 재 해석 될 수 있는지 살펴본다. 이를 통해 본 논문은 단토의 예술 종말론이 간과한 종말 예술의 형식 적 특수성을 규정할 것이며, 이러한 종말적 형식들이 어떻게 재난적 (동)시대성을 반영하고 치유 해 가는지 논증할 것이다.
빈 미술사박물관의 중세 소장품 중 인상적인 작품의 하나는 ‘덧없음의 알레고리’를 내용으 로 하는 소위 <바니타스 그룹>이다. 세 인물이 쌍을 이룬 조각상은 젊음의 아름다움과 나이 듦의 노쇠함이 명백하게 대조를 이룬다. 노파의 몸은 처진 가슴, 주름진 얼굴 등 노화의 사실적 묘사를 통해 강조되는 반면 젊은이의 피부는 매끄럽고 팽팽하다. 서양미술사에서 노인을 소재로 다룬 경 우는 드물지 않다. 그러나 1500년경 독일 남부에서 벌거벗은 노파를 소재로 한 미술품의 증가는 주목할 만하다. 본 연구는 주름과 불거진 뼈 등 육체적 노쇠함의 징후를 강조하는 ‘추한 여성’을 주제로 다룬다. <바니타스 그룹>과 같은 조각상의 유행과 의미는 인문주의 교육을 받은 사람들과 관계가 깊다. ‘추한 여성’을 다룬 작품이 당대 지식인과 인문주의자의 서재나 쿤스트캄머를 위해 주문됐을 것으로 추정하는 이유이다.
본 연구는 1970년대 중반의 한국 미술 현장에서 두드러진 ‘새로운 평면’에 주목해 형식주의 관점에서 일반화할 수 없는 평면 작업의 개별성을 확인하고자 한다. 이때의 새로운 평면은 국제 무대의 새로운 아방가르드 기획으로, 68혁명 이후 후기구조주의 맥락에서 회화 요소를 통해 회 화 매체를 전복하고자 한 미술 양상으로 설명된다. 국제 조류에 민감하게 반응했던 한국 미술계 역시 1973년의 제8회 《파리비엔날레》를 주요 통로로 동시대 전위를 수용했고, 양식적으로 차용 했다. 구체적으로 이우환의 <선으로부터>(1973), 박서보의 <묘법>(1973), 그리고 이건용의 <신 체 드로잉>(1976)에서 동시대 평면 경향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들은 1970년대 중반 을 배경으로 반복적 행위가 표상된 평면 드로잉이라는 유사성으로 유비된다. 특히 ‘한국적 모더 니즘’이라는 회화 중심의 서사에서 동시대 전위의 맥락이 굴절된 채 단일 매체로 범주화되기도 한다. 이에 본 논문은 이우환, 박서보, 이건용의 각기 다른 작업 기반을 살펴 형식적 유사성만으 로 일률적으로 규정할 수 없는 평면 작업의 개별성을 논증하고자 한다.
이 글은 ‘자연미술가’로 평가돼온 임동식의 작품세계를 포스트휴머니즘과 페미니즘의 복합 적 관점에서 비평한다. 그가 야외현장에서 풀과 꽃, 떠내려온 나무 등 자연물을 이용해서 펼친 행 위예술은 기존의 자연주의 관점으로만 설명하는 것은 불충분하다. 자연을 행위 주체로 보는 포스 트휴머니즘적 사유와 함께 서구 대지미술과는 다른 탈남성적 태도가 감지되기 때문이다. 이후 그 가 회화 작업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탈남성적 성격은 진화한다. 즉, 그의 풍경화는 중심-주변을 가르는 이분법의 해체, 시각 우위를 전복하는 촉각적인 화면, ‘남성적’인 힘찬 붓질을 의도적으로 거부하는 섬세한 붓질 등에서 여성주의적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인간/비인간, 남성/여성의 이 분법적 경계를 허무는 임동식의 미술적 실천은 페미니스트 도나 해러웨이가 경계 해체, 양성성을 가진 이미지로 제시한 사이보그의 혼종성을 연상시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