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제15차 생물다양성협약 당사국총회(COP15)에서 채택된 쿤밍-몬트리올 글로벌 생물다양성 프레임워크 (GBF)와 2030 실천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공익용 산지로 지정된 사찰림의 잠재적인 기타 효과적 지역 기반 보전수단 (OECMs) 등재 가능성을 평가하였다. 연구 대상인 사찰림은 주요 보호지역과 중첩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따라 사찰림과 기존 보호지역 간의 중첩 현황을 분석하고, OECMs 후보지로 추가할 수 있는 잠재적 면적을 산출하였다. 사찰림과 보호지역의 중첩 면적은 426.27 ㎢ (65.50%)이며, 중첩된 보호지역은 자연환경보전지역, 국립공원, 야생생물 보호구역 등이 있다. 보호지역과 중첩되지 않아 OECMs 후보지로 등록 가능한 면적은 224.54 ㎢ (34.50%)로, 이는 국토 면적의 약 0.22%에 해당한다. 또한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서 제시한 글로벌 지침을 바탕으로 사찰림의 OECMs 개념 부합 정도를 5점 척도로 평가하고, 그 세부 내용을 고찰하였다. 그 결과 기존 보호지역과 중첩되지 않은 사찰림은 OECMs 등재가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일부 항목의 추가 확인과 개별 사찰림에 대한 지역 수준(site-level)의 평가가 필요하다. 향후 사찰림의 OECMs 등재 및 확장을 위해서는 관리 매뉴얼 구체화, 개별 대상지 에 대한 지원, 법률적 대책 등이 필요하다.
Digital restoration of non-verbal expressions is difficult to trust unless the documentation.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a new documentation methodology that can intuitively confirm the basis for restoration. The technical method utilized the BIM program function by referring to Italia's VRIM and Korea's HBIM cases. And the direction of documentation distinguishes between 'positivism' based on archaeological data and 'interpretivism' based on hypotheses. Specifically, it was applied to the 'Mireuksa Restoration Project' and tried to document it experimentally. This documentation proposed a framework for recording evidence according to sources based on the context of regions. Technically, the data organized in the Excel DB were directly input into the 3D model using the BIM program function. So, the user was able to intuitively review by matching the absence of the model and document information. The documenting method of this study is flexible to modify the restoration information whenever new evidence is found. And it has the advantage of being able to easily inform by converting it to IFC format.
예로부터 불교의 ‘사원경제’는 불교의 발전 동력을 확보하였다. 사원은 불교의 전파와 실천의 중요한 장소로서 종교활동의 중심지일 뿐만 아니 라 문화전승, 사회봉사, 경제생산 등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불교 사원은 사회적 존재일 뿐만 아니라 다른 조직이나 단체와 마찬가지로 경 제적 문제도 관련이 있다. 불교문화의 특수성과 세속적인 보편성을 모두 가지고 독특한 경제시스템을 형성하여 불교경제학의 이론을 초보적으로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사원경제는 불교의 발전과 함께 점차 대두되는 불교경제 현상의 일종으로 불교의 풍부한 생산 자원과 중요한 영향력을 형성하며 불교 발전에 중요한 힘이 되었다. 불교경제는 예로부터 불교 연 구의 중요한 과제였다. 이는 불교의 장기적인 지속 가능한 발전을 달성하 고 불교경제 시스템의 운영과 발전을 연구하는 것과 관련이 있으며 세속 사회에서 불교의 역할과 기여를 분석하고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본고는 현대 경제학과 불교경제학의 새로운 관점에서 불교경제와 사원 경제를 연구하고 사원경제에서 불교경제학의 중도 경제관의 응용을 중심 으로 한다. 역사 문헌 연구와 사례 실증분석을 통해 불교경제학과 중도 경제관 이론을 깊이 해석하고 불교 사원경제의 형성과 발전 과정을 검토 하여 전통 사원경제와 현대 사원경제 모델을 비교 분석하고 사례 실증분 석을 통해 사원경제에서 중도 경제관의 응용을 분석하고, 사원경제 발전 에서 중도 경제관 응용의 역할, 현대 사원경제 모델의 우세 및 불교경제 학이 현대 경제학에 미치는 긍정적 영향을 분석한다. 현대 사회에서 불교 경제학과 사원 경제의 연구 내용을 풍부하게 하고 불교 경제학과 사원 경제의 현대 이론적 기반을 확장한다.
본 논문은 완도 신흥사 목조약사여래좌상의 복장 기록인 중수 원문(1865년)의 해석과 불 상 양식의 비교분석을 통해 불상의 제작 시기가 1628년임을 밝힌 것이다. 중수 원문의 기록 에 의하면, 완도 신흥사 목조약사여래좌상은 1628년에 조성되었고, 1802년ㆍ1845년ㆍ 1865년에 걸쳐 중수되었으며, 원 봉안처는 해남 대흥사 대광명전이었고, 1845년과 1865 년에 불상의 중수를 주도한 승려는 초의 의순이었음이 확인된다. 초의 의순은 19세기 전라 도와 경상도 지역에서 활동한 화승 원담 내원(1845년)과 용완(원) 기연(1865년)과 함께 신 흥사 목조약사여래좌상을 개금ㆍ중수했다. 특히 초의 의순은 선교(禪敎)와 학예(學藝)에 뛰 어난 자질을 가졌으며 19세기의 대흥사 불사를 이끈 승려이다. 두 화승(내원과 기연)은 초의 의순이 주도한 대흥사 불화 제작에도 참여했다. 완도 신흥사 목조약사여래좌상이 1628년에 조성된 사실은 중수 원문의 기록과 17세기 전반에 조성된 불상들과의 양식 비교를 통해 파악했다. 초의 의순이 쓴 「대둔사신건광명전상 량문(大芚寺新建光明殿上樑文)」, 「대둔사비로전신건화연소(大芚寺毘盧殿新建化緣疏)」, 「불상개금모연문(佛像改金募緣文)」에 의하면 신흥사 목조약사여래좌상은 1628년에 조성 된 후 대흥사 대광명전 비로자나삼불상 가운데 좌존으로 봉안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대흥 사 대광명전은 화재로 소실되어 1841년에 새로 건립되었다. 신흥사 목조약사여래좌상의 양식 특징은 조각승 태전이 조성한 대흥사 목조약사ㆍ아미타불상(1612년)을 계승했고, 현진이 1610년에서 1630년 사이에 제작한 불상과 친연성이 강 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외에도 응원ㆍ인균파 및 수연파 불상의 특징도 일부 반영되어 있다. 신흥사 목조약사여래좌상은 17세기 전반에 조성되어 19세기 대흥사 현창 운동 과정에서 새로 건립된 대광명전에 봉안되어 개금ㆍ중수된 불상으로, 교학과 학예면에서 뛰어난 자질을 가진 초의 의순이 불상의 개금ㆍ중수 불사를 주도한 사실을 알려준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불교사 및 불교미술사를 연구하는데 자료의 가치가 매우 크다.
전라남도 곡성군에 위치한 대안사(大安寺)는 적인선사(寂忍禪師) 혜철(慧徹, 785~861) 이 창건한 사찰이다. 태안사지(泰安寺誌)에 수록된 「동리산태안사사적(桐裡山泰安寺事蹟) 」에 따르면 대안사(현 태안사)에는 두 구의 약사철조불상이 조성되었다고 한다. 다만 현재는 조성 당시의 온전한 형태의 불상이 아니라 ‘철로 만든 손, 즉 철제(鐵製) 불수(佛手)’ 1점만이 전한다. 이 철제 불수는 남아있는 형태와 선종사찰의 사적기, 일제강점기 공문서 등을 고려할 때, 손바닥을 앞쪽으로 뻗은 수인, 즉 시무외인을 결한 오른손으로 판단된다. 동시기에 창건된 실상사, 삼화사, 성주사의 주존불처럼 대안사 철불도 동리산문의 개창 당시에 조성된 노사나불 로 추정된다. 대안사 금당의 노사나철불은 후대에 사적기를 엮는 과정에서 세속의 통념에 따라 약사철조불로 기록된 것으로 보인다. 동리산문 대안사는 사역 내 금살당(禁殺幢)을 설정하는 등 예영계 왕실의 후원을 받아 사세 를 확장해나갔다. 혜철은 막대한 경제력을 토대로 841년 장보고 사후 급격하게 피폐해진 지방 의 민심을 위무하고 교화하기 위해 철불을 조성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이는 실상사, 성주사 등의 지방 선종사찰을 후원하여 승려를 포섭한 문성왕의 지방통치책의 일환이며, 대안사 철불 은 잦은 전쟁으로 고통받던 지역민들의 민심을 결집하는 존상(尊像)으로 인식되었을 것이다.
Bunhwangsa Stone Brick Pagoda, constructed in 634, is Korea's oldest stone pagoda. As a prototype of the Silla Stone Pagoda, the pagoda was constructed using flagstones. Since it was constructed with flagstones, it has been known to be a pagoda that replicates the brick pagoda until now. The latest research suggests that it copies the India Stupa or the Stacked Stone Pagoda more than the Brick Pagoda. However, the Bunhwangsa stone brick pagoda has a significant difference in terms of construction technique and shape compared to Brick Pagodas, India Stupas, and Stacked Stone Pagodas. Therefore, it is worth paying attention to the stone building technique used in Silla. Through this study, I would like to clarify that the Bunhwangsa stone brick pagoda is a stone pagoda that creatively reflects the existing Silla stone building techniques such as stone fortresses and stone chamber tombs.
Phayathonzu temple in Myanmar was made of masonry bricks, and so it was vulnerable to lateral load such as earthquake. Especially, it has many difficulties in structural modeling and dynamic analysis because the discontinuous characteristics of masonry structure should be considered. So, it is necessary to provide the seismic performance evaluation technology through the inelastic dynamic modeling and analysis under earthquake loads for the safety security of masonry brick temple. Therefore, this study analyzes the seismic behavior characteristics and evaluates the seismic performance for the 479 structure with many cracks and deformations. Through the evaluation results, we found out the structural weak parts on earthquake loads.
Buseok Temple in Yeongju was established by Uisang of Silla at the end of the Three Kingdoms period in 676 under the order of the king. In 1849, An jeong-gu recorded in Sunheung-eupji that 'Galang Mountain : To the north of Bonghwang Mountain. Originally, it was the old site of Buseok Temple'. According to these records, the current Buseok Temple is not the Buseok Temple established by Uisang of Silla.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investigate and analyze ancient documents related to the relocation of Buseok Temple based on the records of Sunheung-eupji and to conduct an on-site survey based on them to find out the truth about the old site of Buseok Temple. As a result of the study, the records of the relocation of Buseok Temple were confirmed in the old literature. As a result of the on-site investigation, a basin of about 75,000m² was found in Mt. Gaegot, which is located north of Mount Bonghwang. And here, roof tiles of the late Goryeo Dynasty and early Joseon Dynasty were found. These findings suggest the possibility that this place is the old site of Buseok Temp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