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사회에서 미술교육과 미술작품 제작 현장은 정보와 이미 지를 비롯한 폭발적인 성장 속에서 새롭게 전개되고 있다. 이 러한 사회·문화적 방향성의 모색이 필요하고 새로운 관점의 재정립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인간과 교육을 둘러싼 사회에서의 미술교육에 대한 새로운 방법론적 접근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 나라 미술교육현장에서 수채화는 점점 도태되어 간다. 화랑가 의 유화 선호, 재료와 도구 사용에 대한 인식, 기법의 난이도 등으로 인해 다른 장르의 그림보다 소외되고 있다. 그 이유 중 가장 큰 문제점은 기초과정을 넘어선 작품 만들기 과정에서 드 러나는데 그것이 바로 보조재료 사용에 대한 미숙함이다. 수채화 제작은 기름을 사용하는 유화와는 달리 물을 사용함으 로 예술의 표현형식과 감상 효과에서 동양인의 체취에 더 친근 감을 주는 매체이다. 수채화 물감을 이용한 작업은 그 자체로 하나의 도전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렵지만, 보조재료를 이 용한 기법을 활용한다면 더 수준 높은 작품성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다. 수채화에서 중요한 점은 수채화 물감이 투명체 매체라 는 것인데 미세한 입자로 이루어져 있어 어두운색 위에 밝은색 을 덧칠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작품제작 시 상당한 난관에 부 딪혀 쉽게 작업을 포기하게 되는 것이 현실이다. 본 연구에서는 그런 점을 개선하기 위해 현대미술에서 수채 화 채색작업을 중심으로 <마스킹 액(Masking fluid)> 보조재 료의 활용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마스킹액을 이용한 여러 가 지 수채화 채색방법과 보조재료의 활용법을 제안함으로써 현장 에서 갖는 문제점에 대해 논의하고, 더욱 질 높은 미술교육과 작품제작에 이바지할 방안을 새롭게 모색하고자 한다.
클리포드 스틸은 1904년 노스다코타의 농부 집안에서 태어났다. 그는 어린 시절 을 알바타, 케나다, 스포켄, 위싱턴의 거친 사막과 높은 산맥, 황량한 대초원과 오래 된 메사 지역에서 보냈다. 이러한 경험을 통한 그의 초기 작품은 지역주의 관점에서 태곳적부터 이어온 성장, 투쟁, 소멸을 포함하는 날씨와 땅의 자연적 순환을 정확하 게 직접 다룬 것이었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 자연과 문화, 환경과 자아의 구분은 무의미한 것일 수밖에 없었다. 즉 그의 미학은 이러한 원시적인 최초의 감동에서 저 절로 진화한 것이었다. 이로써 스틸은 제2차 세계 대전이 도래하고서야 본격적으로 신화적 주제에 의존하게 된 뉴욕의 도시적인 추상 표현주의자들보다 먼저 경험을 바 탕으로 예술을 형성하는 데 앞장서게 되었다. 스틸은 1943년 후반부터 1945년 초반 버지니아의 리치먼드 교사 시절, 그곳에 서 그는 처음으로 지금 우리가 추상표현주의라고 생각하는 작품을 만들었다. 그리고 페기 구겐하임 미술관(1946)과 베티 파슨스 갤러리(1947, 1950)와 같은 뉴욕에서의 세 번의 개인전 전시는 스틸을 가장 독창적이고 높이 평가할 수 있는 작품인 추상표 현주의의 계통의 초기 예술가이자 세계 최고의 살아 있는 화가 중 한 명으로 급부상 시켰다. 그러나 스틸은 문화 기관에 대해 가장 의심이 많았고 비평가, 딜러, 수집가, 박물 관에 대한 그의 불신은 전설적이었다. 특히 스틸은 자신의 작품 이해를 위한 미술사 를 거부하고 미술계 관계자들의 중재 노력에 적대적이었다. 마찬가지로 그는 추상표 현주의와 같이 그의 예술에 있어서 일반적인 비판 또는 해석적 범주에 맞추려는 시 도조차 거부함으로써 연구의 어려움을 가져왔다. 그리고 추상표현주의자들과 달리, 스틸의 예술적 업적은 실제로 그들과 학문적으로 연구되고 출판되는 카탈로그 연대 기적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뉴욕화단에서 벗어난 자발적인 그의 은둔은 학문적 성과 에도 영향을 미쳤다. 이에 본 논문은 스틸의 위상을 재고하고자 하는 의의가 있다.
본 논문은 미술가 정규(鄭圭, 1923-1971)의 미술비평에 나타난 시대의식을 통해 그가 구 상한 전후 새로운 한국 현대미술을 분석하여 규명하는 데 목적을 둔다. 창작 활동 이외에도 비평, 교육, 행정 등 미술의 다방면에서 활약한 그의 예술관 중심에는 전전(戰前)에 대한 종합적 반성을 토대로 전후(戰後)라는 새 시대에 적합한 한국 현대미술의 모색이 있었다. 전후 한국미술계는 거 대한 흐름을 형성한 한국 앵포르멜을 중심으로 실존주의의 불안과 부조리를 내적으로 탐구했다. 반면 정규는 실존주의의 휴머니즘에 주목하여 극복의 징후로 이해한 뒤 동시대 한국의 현실에 반응 한 미술을 모색하고자 했다. 이러한 지점은 그가 회화를 중심으로 재편되어가던 한국미술계에서 낮은 장르로 취급되던 판화, 도예 등 독자적인 활동을 펼치게 추동했다. 본 연구는 초기 한국 현대 미술이 형성되어 가는 과정을 다각도로 이해하기 위하여 전후 시기 새로운 차원의 미술을 시도한 정규를 주목하면서 시작됐다. 이에 전후 시기 주요 논객으로 활동했던 그의 저술을 분석하여 그가 궁극적으로 정립하고자 했던 한국 현대미술을 체계화하고자 했다. 이를 통해 한국 현대미술의 형성 기인 전후 시기 미술에 관해 보다 입체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을 제안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이 논문은 베트남전쟁기 게릴라 화가들의 활동을 추적하기 위해 먼저 베트남 근대미술 의 형성과 베트남전쟁기 저항미술이 나타난 경위를 고찰한다. 전쟁에서 경험할 수 있는 폭력적인 참상에도 불구하고 게릴라 화가들은 적에 대한 적개심보다 근거지에서의 평범 한 일상을 표현하는데 주력했다. 게릴라이자 화가였으므로 옻칠회화나 유화보다 연필이 나 펜으로 그린 스케치와 수채화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에 이 드로잉들은 거의 일기와도 같은 것이었다. 전쟁의 현실을 직접적으로 그려낸 이 드로잉을 통해 게릴라화 가들이 파악하던 베트남전쟁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는 소중한 참고가 될 것이다. 또한 자신들이 겪고 있는 현실을 미화하거나 과장하지 않고 표현했다는 점도 중요하다. 이 논문의 의의는 베트남 근대미술과 저항미술의 형성과정을 고찰하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베트남전쟁기 게릴라 화가들의 활동과 작품을 고찰한 것에서 찾 을 수 있을 것이다.
본 논문은 비디오 아트에서의 투영된 이미지의 발전과 스크린-매개 설치 미술에서 최근의 프로젝션-기반 뉴 미디어 아트로의 프로젝션 개념의 전이와 관객성의 변모된 양상을 분석했다. 스크린-매개 설치미술에서의 관객성의 공간은 디지털 테크놀로지에 의해 다원화되었고 컴퓨터 네트워크에 의해 가능해진 새로운 공간적 관계성과 함께 복잡하고 잠재적으로 불안정한 관람 유형이 초래되었다. 디지털 프로젝션의 개념은 이미지 투영을 넘어서 데이터 투영을 통한 다중적 감각을 공유하는 것으로 전이, 확장되며 상호작용성을 재고하게 한다. 또한 프로젝션 기반 뉴 미디어 아트는 스크린-접속 영역에서의 공동체 형성에 관한 논의를 유도하며 사회적 문맥을 취하는 예술적 실천으로 집단적인 의미를 정립해내는 관계적 논리에서의 관객성을 촉진한다.
본 연구는 르네상스 초부터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던 해부학에 대한 문화적 관점과 1490년대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이탈리아에서 출간된 해부학 서적의 삽화들을 토대로 미술과 의학의 상호 연관성을 분석한다. 의학 분야는 해부학을 통해 경험을 보편적인 지식으로 구성해갔지만 당시 해부학에 대한 심리적 거리를 줄이는 과정에서 예술가의 도움을 받아 기존 예술품을 차용해서 인간의 신체를 표현하고 도상학적 지식을 함께 전달했다. 이 과정에서 의사와 예술가는 모두 개체를 설명할 수 있는 보편적 사유 구조를 공유할 수 있었고, 예술가는 이를 바탕으로 다양한 표현을 확장해갈 수 있었다. 이런 점은 매너리즘 이후 아카데미의 설립 과정에서 진행된 해부학의 논쟁이나 바르톨로메오 파세로티의 <해부학 수업>의 사례에서처럼 유파의 분류 기준으로 변하는 과정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따라서 해부학 전문 서적의 삽화들은 대상이 아니라 대상을 보는 문화적 사유 구조를 바탕으로 각 분야의 독립적 담론을 구성하고 학문적 자율성을 부여하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고 볼 수 있다.
This paper investigates the influence of chronophotography on twentieth-century modern art. Etienne-Jules Marey, nineteenth-century French physiologist, invented chronophotography to analyze the locomotion of animals. Although Marey’s experiments with photography were resulted from his scientific intention to investigate movements, his chronophotography has a substantial impact on twentieth-century art. First of all, French academic artists had corrected the leg positions of galloping horses by referring to photographic records provided by Marey and Eadweard Muybridge. However, scientific instantaneous photography was not well received by the art world. It had to counter fierce criticism from the artists, Auguste Rodin in particular, and writers who believed in artistic conventions. Since Marey’s death, a number of artists have reevaluated the significance of his photography and adopted it in expressing their individual visions of modernity. František Kupka in Puteaux Group was one of the first avant-garde artists who were deeply influenced by Marey’s photography. Marcel Duchamp referred to Marey’s chronophotography, which introduced him to the idea of mechanization as an alternative to a sensible beauty. Italian Futurists also used Marey’s photography as their visual reference to express the dynamic sensation of the passage of time. Giacomo Balla was familiar with Marey’s photography and directly influenced by his chronophotography. While taking Marey’s image as a model, Anton Bragaglia tried to overcome the limit of his instantaneous photography by stressing the continuous trajectory of movement, with which to address photodynamism. Despite its strong impact, Marey’s photography encountered stiff resistance from the art world, which valued the conventions in art over the novelty in technology. It should be noted that Umberto Boccioni criticized Bragaglia’s active use of photography because Boccioni did not accept photography as art medium. The apparent conflicts and ambivalence in accepting Marey’s photography by the Futurists, who promoted the idea of dynamism, show the complex relationship between art and science, art and photography.
This paper is to examine Gerhard Richter’s“ Atlas” as an artistic symbol of the memory archive with the theme of aporia which is one of the characteristics of the modern art.“ The Atlas” which is composed of 800 huge tafels reflects Richter’s perspective where we can recognize his psychological and work’s source. It is obtained through examining 10,000 pictures, and is also a unique document that shows the life of the artist. The contents of“ the Atlas” have been added and expanded continuously, which make it said to be finished, but it still remains as a non-complete work. According to Derrida, the desire for an archive is an illness that reaches for the death and is a part of the desire of finding and possessing the beginning or origin of everything. Derrida realized through the archive fever in“ Moses and Monotheism”, Freud’s desire of possessing the beginning of everything. This fever is to be seen in situations where death is urged. Therefore, the archive fever is a journey towards the death. The desire to make an archive comes from the inquiry of repeating something, and according to Freud, this desire for repetition can be seen as going towards death. When Derrida was studying Freud’s“ Moses and Monotheism”, he did not overlook Freud’ s archive fever. This has a connection to Richter’s archive fever in“ the Atlas”, reflected in the war and ideology due to the repetitive compulsion of trauma. Derrida said that the reason for Richter examining the same theme repetitively was the archive fever and is at the same time a movement towards the death. Consequently, trauma exists through the archive, and the archive continues through the trial of finding the beginning. Nothing can stop this except the death and that is why death is to be found at the end of the journey. This paper examines Richter’s memory archive in the three directions. First, I illustrate the repetitive compulsion shown in“ the Atlas” and resulted from trauma in an aporaic way to concentrate only on the archive, and examine the aporaic narrative of the author. Second, I examine the various methods of different modern artists to express their “after death memory” when they overcame their trauma. Finally, I examine the aporaic method that is illustrated through the process of fusing and transforming photographs, which shows the objective truth with art. In other words, I examine the method that is exposed between the photographic truth and artistic creation.
The history of art during the first half of the last decade was founded the discussion with highly impressive and confident. The art might establish its unique area based on self recognition at that era. The self-confidence of modern art may be possible on enlightenment, which is the firm relationship for knowledge and reality. However the faith of modernism which shows rational tendency, objective, and the existence of universal knowledge has been drastically doubted and criticized thereafter. A internal ideological system which had leaded the modern art was exhausted. Postmodernism revolved to the dramatic openness leaning against the deoedipalizational confession. According to the dissipation of the vitality of modern art postmodern art has been evolved and then various phenomena which follow the trends has been emerged. The avant-garde and resisteive attribute of modern art was diluted fast due to the influx of popular culture. As time goes it can be attracted by spectacle taste than metaphysical peculiarity. It has to inevitably justified the drift of light and quick themes, contents, and images. Such as these phenomena realistically shows fact that postmodern art had been failed to open a new chapter of consilience which intermediates beauty and usual communication to overcome the solipsism of modernism. A trial to pursuit the opened esthetics conceived more ‘heroic’ ‘Star-Subject’ than before by dismantling the modern ‘Hero-Subject’. Postmodernism has been recorded as a regression of art, which is the technology of profound spirit that mitigates antagonism and confrontation and mediates mutual encountering of human being. Prevailing of postmodern freedom had been accompanied by popularity, osetentation consumption, marketing, gambling level exitement, mixtures of desires with price fluctuations. We witness ‘self-confinement’ and ‘lasting absence of exit’ phenomena in postmodernism ideology and practice. We have to deal postmodernism as an ‘ideology which closes the discussion for the future’ in the context of ‘absence of way’ at this point. We are going to investigate how postmodern ideology and practice takes part in the prospection beyond thereafter through discussion. We also pay attention to the ‘absence of prospection’ as a internal problem in itself nevertheless mention the three merge points such as tradition or memory, earthy thought, the self who confrontation others as the clue of prospecting thought which is allowing coming over postmodern absence.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ultimately subjected to the Orientalism, even though this deals with some positive effects in the realm of art and architecture as the scope of study, because through which the relationship between two different cultures will be discussed. That is to say, this research focused not only on how the presentation of ‘avant-garde’ visual art, which is explained as formal ‘purity’ and ‘abstraction’ as the characteristics of modern arts, could be made in the transition to the 20th's World, but also on what is the role and meaning of Eastern thoughts, which is popular in that time, for the new philosophical background of the artistic revolution. As a result, this study found that a lot of ‘avant-garde’ architects such as F. L. Wright, M. Mahony in Prairie School and L. Sullivan, D. Burnham, J. Root in Chicago School, and Lauweriks, H. P. Berlage who introduced Wright's works into the Europe, had possessed the ‘Universal Philosophy’ including Unitarianism, Transcendentalism, Deism, and Theosophy which are all influenced by Oriental religions and thoughts through historic western philosophers, although it is generally well-known that W. Kandinsky and P. Mondrian were belong to that. Furthermore, they gave attention to the Oriental religions and thoughts in that time, eventually made a historical progressive process of unification of thoughts between East and West. In a word, the new universalism was the philosophical background that made the artist's idea and presentation on ‘from Being into Becoming’.
This study researched the art-educational thoughts as a modern idea influenced with the social and philosophical transitions in the 19th century. Moreover, this study focused on Frank Lloyd Wright's educational thoughts, because those educational revolutions had appeared as one of the results that Western society's character was rapidly changed by those revolutions, so called, Industrial Revolution, American and French Revolution, and Cultural Revolution of Romanticism, from late 18th century, and eventually because that revolutionary educational ideas had closely and basically many relations with Wright's thought. As a result, even though Wright's education such an apprenticeship was a traditional shape, which was not the old-fashioned educational method discipling to the skillful man, but against the existing education through the self-learning from experiences in nature. That is similar to transcendentalists such as Emerson who searched for having an inspiration in Nature. Namely, Wright himself had struggled against the existing dualistic educational concepts through Wright's monistic thoughts on art-education including architecture based on not naturalism but the philosophy of nature by romantic idealistic philosophers such as Shelling, Fickle, Kant, Hegel including with his Master, Sullivan, and by revolutionary educators such as Freobel, Ruskin, Dewey, and above all by his Unitarian doctrine. However, Wright's thoughts was at that time so radical, and as Wright himself acknowledged that, 'because the philosophy back of it, of course, as you know, is midway I guess between East and West', such all philosophical objects to influence on Wright were so abstruse idea which is usually called 'Romantic' or 'Mystic' that is mingled with East's and West's essence. That is, because Wright himself catched that the theories and methods of the art-educational thoughts would not be easily perceived, and he judged that in a word as a character which could not be taught. After all, Wright's romantic progressivist art-educational thoughts have not been perceived, disseminated in general and widely.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find the Modern Movements which had done important roles on the development of modern church architecture and sacred art in the first half of 20th century. I had investigated the background and process of the movements, and analyzed the buildings which represented the movements. And I compared the architectural fruits of 'Riturgical Movement' and 'L' art Sacré Movement. The results are summarized as follows : First, there are two important movements in Catholic church in the backgrounds of the innovative changes of modern church architecture, Those are 'Riturgical Movement' which pursuits to establish a closer relation between clergy and congregation, and to make the positive participants in the service not mere observers and 'L' art Sacré Movement' which pursuits to accept modern secular art into church. Second, both movements had been developed on the bases of the theological studies with tow monasteries - Benedictine Order and Dominican Order - as leader. And the main concept was a kind of revival movement which recovers the Christian tradition. Third, The two movements began from the different themes and in the different regions. But they exerted influences each other, and achieved successful fruits in the Catholic churches of England and Swiss in 1960'. Fourth, 'Riturigical reformation' and 'Acceptance of modern art' had been officialized and generalized through the second Vatican Council(1962-1965).
오늘날에는 현대미술관들은 전문가들의 지식 교류의 장인 동시에 예술과 문화와 삶의 경험의 공간이 되어가고 있다. 관람 할 미술관을 검색할 때, 대중들은 SNS를 통해서 검색하여 전시회의 내용을 스마트폰으로 쉽게 접한다. 이런 사회적 트렌드 는 현대미술관의 변화 뿐만 아니라 전시를 홍보하는 방법도 변화시키고 있다. 본 연구는 SNS마케팅 및 홍보 디자인 전략을 일본 모리미술관과 영국 테이트 갤러리를 중심으로 분석하였다. 두 미술관을 선정한 이유는 모리 미술관과 테이트 모던은 각 나라의 수도에 위치하고 있어, 그 나라의 문화예술의 대표성을 띈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므로 그 나라를 방문하 는 외국인에게 반드시 방문해야 할리스트에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다. 모리 미술관은 일본의 인스타그램의 높은 인기로 인스타그램 활용율이 높다. 반면에 테이트 갤러리는 전 세계 트렌드에 맞춰 페이스북 중심으로 미술관 SNS마케팅 전략적으로 펼치고 있다. 모리미술관의 전략은 첫째 문화 예술은 경제적 이익보다 우위에 있다는 철학 반영한 브랜딩을 하였다. 둘째 모리미술관은 전시관 내 사진 촬영 허용 및 체험이 자유로운 관람 문화로 변화를 일으켰다. 셋째 모리미술관은 내부의 커뮤니케이션 및 SNS담당 전문가 고용하여 미술관 계정 사진 및 게시 순서 관리하고 있다. 그리고 테이트 미술관은 일관성 있는 브랜딩으로 품질 보증하여 신뢰감을 높이는 작업을 먼저 하였다. 둘째 테이트 디지털팀은 Facebook과 Tate Modern 홈페이지 긴밀하게 연결시키는 SNS전략을 활용했다. 셋째 테이트는 전 세계 관객을 대상으로하는 질문 이벤트, 동반성장 전략을 활용한다. 모리미술관과 테이트모던이 이렇게 국제적으로 높은 대중적 인기를 갖추게 된 데에는 SNS공유 및 콘텐츠 검색이 중심 역할을 했다. 앞서 관람했던 사람들이 좋았던 경험들을 사진, 글, 해시태그로 업로드 하고, 관심 있는 이들을 검색해서 보게 된다. 앞서 경험한 이들이 행복해 보이는 장면을 보고 직접 경험해 보고 싶다는 마음을 품게 되는 것이다. 미술관 관람객들은 그들 스스로 경험할 것을 찾아내고 실천하고 확산시킨다. 우리나라 미술관들도 SNS전략 및 그 기저의 예술의 사회·문화·융복합적 가치를 담은 풍성한 디지털 콘텐츠로 미술관 역량의 확장이 요구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