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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2017.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연구는 북한당국에 의해 자행되는 선교사 납치 및 억류가 증가하는 상황에서의 대북선교 위기관리를 고찰하며 대책을 다루었다. 1995년 이후 북한에 의해 강제실종된 선교사는 10여명이 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당국은 선교사 억류를 최고 존엄과 북한체제 비방, 간첩행위 등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북한주민 단속강화, 탈북자 차단, 지하교인 색출, 선교조직 와해를 목적으로 선교사를 억류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또, 모종의 협상이 필요할 때 선교사 석방을 명분으로 내세우는 것으로 보인다. 선교현장에서의 불필요한 마찰과 희생을 최소화하기 위해 신분노출을 삼가고, 무분별한 북한주민 접촉을 삼가는 것이 위험을 최소화 할 수 있는 방안이다. 선교관련 자료 노출은 선교사 개인뿐만이 아니라 관련된 다수의 사람들과 선교사역 자체에 치명적이 될 수 있으므로 철저히 관리해야 한다. 특히 선교 관련하여 감정적으로 접근하거나, 성과위주로 사역을 하게 되면 큰 어려움에 처하게 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끝으로 대북선교는 네트워크를 통한 정보공유나 선교단체와의 연계가 어렵고, 선교결과를 공개하기 어렵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따라서 후원교회나 선교단체에서는 이런 제한과 한계에 대해 이해하여 선교사의 이름과 사역내용과 선교장소 공개를 삼가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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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2016.05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출(出)애굽이 있으면 입(入)애굽도 있어야 한다.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 본격적으로 정주하게 만든 애굽의 총리 요셉이 입애굽의 주역이 다. 출애굽의 주역은 이론의 여지가 없이 모세다. 입애굽과 출애굽을 이끈 요셉과 모세는 애굽기의 시종(始終) 주역들이다. 그들이 이스라엘 의 애굽기를 열고 닫았다. 아서 글라서(Arthur F. Glasser)는 요셉과 모세를 한 묶음으로 여긴다. 이 연구의 핵심과제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 에 의해 애굽기의 시종 주역들로 쓰임 받은 요셉과 모세에게서 타문화권 선교사의 본보기가 될 요소들을 밝히는 것이다. 주된 연구방법은 귀납 적 성경연구다. 하워드 스나이더(Howard A. Snyder)는 그의 교회 갱신을 위한 열 가지 명제 중 여덟 번째로 성경적 리더십을 꼽으며, “리더십을 위한 세상적인 자격 요건들은 성경적인 자격 요건으로 대체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필자는 이 연구에서 팔로워와 리더의 직무를 동시에 수행해야하는 타문화권 선교사에게 요구되는 ‘성경적인 자격 요건’을 입애굽과 출애굽을 이끈 요셉과 모세라는 불세출의 성경적 지도자들에게서 찾아본다. 야곱의 축복 중 “요셉은 무성한 가지 곧 샘 곁의 무성한 가지라 그 가지가 담을 넘었도다”(창 49:22)라는 구절은 요셉의 일생과 그의 됨됨이를 잘 보여준다. 요셉은 애굽 곳곳에서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말미암아 범사에 형통한 샘 곁의 무성한 가지가 된다. 십칠 세에 애굽으 로 팔려간 요셉은 십육 세에 로마령 영국 서부 해안가 자기 집에서 아일랜드 침입자에게 붙잡혀 아일랜드 영주의 노예로 팔렸던 성 패트릭 (St. Patrick)을 떠올리게 한다. 패드릭은 포로 생활을 한 아일랜드에 타문화권 선교사로 다시 가서 고사 위기에 놓인 그리스도교 교회를 살려냈다. 또한 요셉은 타문화권 선교사가 하나님의 섭리를 참으로 믿고 의지하면 어떤 상황에서도 억울함이라는 감정에 함몰되지 않고 자신에게 주어진 삶에 충실할 수 있게 됨을 보여준다. 요셉은 백십 세를 일기로 죽을 때까지 형제들을 갑을관계로 대하지 않았다. 애굽 왕의 사형수로 태어나 애굽 왕족의 영화를 누리다가, 다시 바로의 사형수가 되어 유리하다가,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던 호렙에서 만난 하나님(출 3:2)에 의해 한 민족을 살리는 지도자로 쓰인, 드라마틱한 모세의 삶과 사역은 타문화권 선교사의 본보기로서 훌륭하다. 모세는 타문화권 선교사가 표본으로 정하여 성숙할 때까지 모델로 삼을 만하다. 모세는 온유한 지도자였다. 성경은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 12장 3)고 간결하 게 진술한다. 온유한 지도자는 인물을 키운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온유함에서 우러난 진정한 겸손을 인정하고 그에게 동역할 사람들을 붙이셨다. 건물을 짓는 선교보다 인물을 키우는 선교가 훨씬 더 중요하 다. 당장은 건물이 눈에 띄지만 세월에 부식하지 않는 인물이 오래 간다. 큰 나무는 나무를 기르지 못하지만 큰 사람은 인물을 키울 수 있다. 인물은 대개 큰 지도자 밑에서 자란다. 그 안에 하나님의 영이 머무는 지혜가 충만한 후계자와 동역하다가 그에게 자신의 존귀를 돌릴 수 있는 타문화권 선교사, 복되고도 복되지 아니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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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2015.07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올해 2015년은 헨리 게어할드 아펜젤러(Henry Gerhard Appenzeller, 1858-1902)의 한국선교 130주년이 되는 해이다. 한국에서 그의 활동은 당시 다른 선교사들과 비교해 볼 때(예를 들어 언더우드의 31년 사역, 1885-1916) 비록 17년(1885-1902)이라는 짧은 기간동안에 이루어졌지만, 아펜젤러는 한국감리교회의 주춧돌을 놓았을뿐만 아니라 한국 개신교의 발전과 한국 근대화를 위해 크게 기여하였다. 이 글에서 필자는 아펜젤러의 삶과 사역을 주로 다루었는데, 그의생애는 두 개의 특성으로, 그리고 그의 사역은 총 일곱 개의 특성들로설명하였다. 우선 아펜젤러는 중생을 경험한 후 감리교인이 되었고,그의 아버지는 아펜젤러가 장로교 목사가 되기를 원했지만 그는 감리교선교사가 되었다. 한편, 아펜젤러는 초기 한국에 온 개신교 선교사들 중의 한사람으로서 선교 초기 미국과 한국 정부의 조언을 수용했던 착한 사람이었다.아펜젤러는 쌀(rice) 혹은 명목상의 그리스도인이 아닌 진정한 기독교인을 만드는 것을 목적으로 사역했다. 물론 여전히 논쟁적이기는 하지만, 아펜젤러는 한국에서 교회를 세운 초기 설립자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또한 그는 한국의 근대화와 기독교 교육의 발전을 위해 공헌했던교육가였을 뿐만 아니라, 당시 한국에 거주하던 선교사들을 포함 대부분의 외국인들을 이끌었던 유능한 지도자이기도 했다. 마지막으로중요한 점은 아펜젤러가 계몽운동가와 독립운동가로서 한국의 근대화,민주화, 그리고 독립을 위해 기여했다는 점이다. 요컨대, 아펜젤러는 영적인 회심을 경험했던 진정한 기독교인이었다. 그리고 당시 외국인들, 한국인들과 사회적으로 좋은 관계를 맺고있었던 착한 사람이었다. 게다가 그는 수용과 저항의 때를 분별할 줄 아는 사람이었다. 즉 그는 한국 사람들이 복음을 들을만한 준비가 될 때까지 미국과 한국 정부의 지시를 받아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미국이 일본과 같은 강대국들의 한국 점령을 암묵적으로 허락하거나 고종이 근대민주국가로의 변화에 대해 거부했을 때는 미국과 한국정부에 당당히 저항하였다. 그러므로 아펜젤러의 한국선교 130주년을 기념할 때, 한국의 모든 개신교회들은 반드시 그의 열정적인 영성,따뜻한 사회성, 냉철한 분별력에 관해 반드시 재고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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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2015.07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하워드 스나이더(Howard A. Snyder)는 신학교 시절에 배운 “우리가 이미 믿고 있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성경이 실제로가르치고 있는 것을 찾기 위해, 그것이 우리의 가정을 단단하게 하기도하고 부수기도 하는” 귀납적 성경연구를 오랫동안 계속해서 추구해왔다고 한다. 이 글은 필자가 나름대로 변혁적 효과를 탐구하며 그 동안 꾸준히 해온 귀납적 성경연구라는 여행의 발견물의 일부이다. 타문화권선교는 무엇보다도 어떤 마음과 태도로 선교하느냐, 즉 선교 자세가 꾸준히 해온 귀납적 성경연구라는 여행의 발견물의 일부이다. 타문화권선교는 무엇보다도 어떤 마음과 태도로 선교하느냐, 즉 선교 자세가 가장 중요하다는 필자의 그동안의 지론의 연장선상에 놓인 글이다. 창세기 12장부터 하나님은 인류를 복 주시려는 새롭고도 적극적인전략을 펼치면서 한 가계를 선택하고 그들에게 집중한다. 창세기 12장 부터는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이 거룩한 역사의 거의 유일한 주제인양 다뤄진다. 아서 글라서(Arthur F. Glasser)는 아브라함이 결과적으로‘선교의 선구자’가 되었다고 정리한다. 필자는 이스라엘의 족장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타문화권 선교사의 롤 모델, 즉 본보기로서 손색이 없다고 본다. 이 글에서 모델이라는 개념은 스코트 모로(A. Scott Moreau)가 분류한 물질적, 은유적, 이론적이라는 세 가지 범주 가운데두 번째인 은유적인 용도로 사용한다. 족장들은 타문화권 선교사가 열망하는 하나의 이상이라는 의미에서 모델이 될 수 있다. 고로 족장들 의 삶에서 타문화권 선교사의 본보기를 추출하고자 한다. 그들이 타문화권 선교사의 전형(典型) 즉 기준이나 규범이 될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 연구를 통해 필자는 타문화권 선교사의 기준이 될 만한 이론적틀을 찾아본다. 아브라함에게서는 관계 성공하는 선교사, 이삭에게서는 우물을 넘겨주는 선교사, 야곱에게서는 우물 아귀의 돌을 옮기는 선교사라는 틀을 찾아낸다. 하나님과는 믿음과 순종의 관계를, 현지인들과는 사랑의 관계를 맺은 아브라함은 가히 타문화권 선교사의 선구자 라 할 만하다. 순종과 양보의 대명사인 이삭의 삶은 이양과 출구전략이라는 측면에서 타문화권 선교사의 훌륭한 교과서로서 손색이 없다. 전략적 계획의 대가로서 타이밍과 목표와 단계적 접근의 중요성을 포괄적으로 잘 활용한 야곱은 타문화권 선교사의 좋은 본보기가 된다.많은 일을 겪으면서 사는 것에 더해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하는 타문화권선교사가, 삼대에 걸쳐 창세기를 아름답게 수놓은 족장들인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이 밟아 마침내 길이 된 타문화권 선교라는 지난한 길을 잘 걸어가는 모습을 그려본다.
        7,000원
        27.
        2015.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간호전문인 선교사로 한국에 입국한 서서평(徐舒平, Elisabeth J. Shepping, 1880-1934, R.N.)이 평신도 그리스도인으 로서 수행한 선교적 삶을 분석하여 서서평을 통해 구현된 선교적 그리스 도인이 한국교회의 선교적 교회 형성에 주는 함의를 논하려 한다. 이를 위하여 먼저 선교적 교회의 신학적 근거를 간략히 서술하여 서서평 의 선교적 삶을 분석하는 틀로 삼는다. 선교적 교회는 신학적으로 교회의 본질을 선교로 이해하고 전신자선교사화를 추구하고 성령이 주는 은사에 따라 각 신자들이 지역사회에서 다양한 선교 즉 통전적 선교를 수행하는 교회이다. 본 논문은 독일계 미국인인 서서평에 대한 생애사적 접근을 통해 간호사로서의 소명과 개신교 복음의 만남과 신앙성장을 논하고, 간호사 평신도로서 미국의 다문화 상황에서 뉴욕의 이주민들을 위한 사회봉사 적 선교를 분석한다. 또한 서서평이 남장로교 선교부의 파송을 받아 타문화권인 한국 광주에서 평신도로서 금정교회(현재 광주제일교회) 를 봉사하고 지역사회에서 간호선교, 교육선교, 복음전도, 사회구제 및 사회선교를 실시하였다. 또한 본 논문은 서서평 선교사가 평신도로 서 그리고 교회지도자로서 어떻게 지역사회에서 선교를 추진했는가를 분석한다. 선교적 그리스도인인 서서평이 선교적 교회 형성에 주는 함의는 다음과 같다. 1) 서서평은 평신도 그리스도인으로서 미국 내 다문화 상황에서 지역사회의 이민자들을 상대로 사회봉사적 선교를 수행했고, 기회가 주어져 타문화권인 조선까지 와서 평신도 전문인 선교를 실시하 였다. 2) 서서평은 타문화권인 조선의 광주금정교회에서 평신도로 등록하여 예배와 신앙생활을 하면서 지역사회에서 성령이 주시는 다양 한 은사를 활용하여 다양한 봉사를 실시하였다. 3) 서서평은 전문인 선교사(교회의 지도자)로서 이일학교를 세워 평신도를 양성하고 훈련 하여 전략적으로 지역사회 선교를 수행하였다. 4) 이러한 지역사회 봉사적 선교는 지역사회가 요구한바 다양한 통전적 선교로 드러났다. 이는 개인에 대한 복음 전도와 교회개척, 교육과 치유, 구제와 헌신을 넘어 사회적 실천과 봉사로 나타났고 또한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제도적 접근 선교로서 학교교육(이일학교), 부인조력회, 사회구제와 금주 운 동, 나병환자치료 운동, 공창제도 폐지 운동 등으로 나타났다. 끝으로 본 논문은 한국교회가 선교적 교회가 되기 위해 필요한 몇 가지 사항을 제안한다. 한국교회는 서서평의 지역사회 선교 개념과 활동을 하나의 준거점으로 삼아 지역사회에서 진정성 있는 선교를 수행함으로서 잃어버린 신뢰를 사회로부터 회복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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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2015.01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도산 안창호(島山 安昌浩, 1878~1938)의 기독교 신앙에 관해서는 이미 선행 연구에서 많은 부분이 해명되었다. 이 논문은 이들 선행연구의 성과를 수용하면서 도산 안창호의 선교사와의 관계를 좀 더 보완해 보려는 의도에서 시도되었다. 그러나 선행 연구에서 발굴 이용한 자료 외에 특별히 다른 자료들을 찾지 못해 기대한 만큼의 성과는 달성할 수 없었다. 도산 안창호는 1894년 선교사를 만남으로써 신교육을 받고 기독교를 믿게 되었으며, 1902년 9월 1차 도미할 때도 선교사의 도움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선교사 밑에 들어가 교회 일하기를 거절하였고, 당시 선교사들의 내세지향적 신앙과 정교분리 정책에는 비판적이었다. 그의 선교사와의 직접적인 관계는 1910년 4월 국외 망명 이후로는 1933년 9월 밀러가 당시 대전형무소에 수감되어 있던 그를 면회하고 안혜련 여사에게 편지한 것 외에는 거의 자료가 없는 것 같다. 이 논문에서는 이러한 상황을 염두에 두고서 안창호가 기독교에 입교하고 제1차 도미하기 이전까지 시기와 1907년 2월 귀국하여 1910년 4월 다시 해외로 망명하기까지의 시기로 나누어 선교사와의 관계를 다시 정리해 보고자 한다.
        8,600원
        29.
        2014.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조선이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 국가적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할 때 다수의 서구인들이 조선을 방문했다. 이들 중의 일부는 모국으로 돌아간 이후 자신들의 경험을 다양한 형태의 글로 재현했다. 특히 미국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의 경우 편지, 잡지기사, 팸플릿 안내문, 연설문, 일기, 여행기, 및 기독교 소설과 같은 ‘잡다한’ 글들을 기록했다. 미국 선교사들이 남긴 다양한 출판물 중에서 본 논문은 엘라수 캔터 와그너(Ellasue Canter Wagner)의 김수방과 조선에 관한 이야기들 (KIM Su-Bang and Other Stories of Korea)과 애니 배어드(Annie Baird)의 '동트는 조선' (Daybreak in Korea)을 산문이론으로 접근한다. 일부 학자들은 김수방과 조선에 관한 이야기들이나 '동트는 조선'과 같이 기독교로 개종한 조선인들의 삶을 기록한 서사를 ‘선교소설’로 구분한다. 기존의 주장과는 달리, 본 논문은 배어드와 와그너의 글을 ‘여행서사’로 분류한다. 배어드와 와그너의 작품에 등장하는 조선인들의 삶과 당시 두 선교사 작가들이 글을 쓸 때 처해있던 상황을 볼 때 이들의 글을 여행서사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것이 본 논문의 쟁점이다.
        5,700원
        30.
        2014.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장기간 타문화권에서 살다가 다시 한국사회에 돌아온 기독교 선교사들이 한국사회에 재정착하는 과정과 그들의 타문화 경험이 어떻게 평생학습을 통해 한국사회에서 개인의 경력으로 개발할 수 있는지에 대한 탐구를 목적으로 한 질적 연구이다. 본 연구에서 차용한 근거이론 방법론에 따라 분석된 정착과정은 다음과 같다. 타문화권에서 돌아온 이들은 한국사회에 정착하는 과정으로서 변화인식기(평생학습 필요단계), 불안정함 표출기(경력개발 추구단계), 문제상황 인식과 돌파기(평생학습 시작과 경력개발 초기단계), 구체적 행동실행기(평생학습을 통한 경력개발 단계)를 거쳐 자신과 타인, 사회 속에서 편안함을 느끼는 환경 속 적응과 정착기에 도달하는 과정을 보여주었다. 본 연구는 선교사 개인의 관점에서 선교지와 한국에서의 삶을 연결하며 스스로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무경계 경력과 프로티언 경력 개발을 위한 적극적 행동과 방법을 제시하였다. 또 이들을 파송했던 교회와 선교단체에게는 돌아온 이들의 심리적 적응을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과 사역의 플랫홈 제공이 필요함을, 사회적으로는 다문화 사회의 사회통합 및 인적자원관리 측면에서 이들의 정착을 도울 것을 제시하였다.
        7,800원
        31.
        2014.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Matteo Ricci, a Jesuit missionary to the late Ming China, translated of Epictetus’ Enchiridion into Twenty-Five Sayings in Chinese for the purpose of Christian mission. His selection of the representative book in the Western stoic philosophy had specific purpose: Introducing one of religious semantic meaning in the Western Christianity, Stoic ethics and its religious similarities with Buddhist frameworks. By doing so, Ricci tried to demonstrate the Western Christianity was same in relation to ethical framework but different in regard to religious implications. He tried to find the point of contact and the point of difference at the same time by comparing Christianity’s stoic characters and China’s Buddhist ethics, which was different from traditional Confucian framework. The Chinese responses, however, show different outcomes. The Chinese intellectuals, who responded Ricci’s missiological intention, read his book with different perspectives. They showed their surprising interests in the newly translated book on the Western stoic philosophy in relation to promote and uphold their traditional Confucian values. The author claims that both missionaries and the responders of the new religious teaching tend to be confused by semantic values in the early period of cultural and religious contact. Without this awareness, both sides of cultural and religious contact would be confused in the proper understanding of the true religious meanings.
        6,400원
        32.
        2013.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re had been many influential protestant missionaries in the last 130 years in the history of the Korean Protestant missionaries but there had not been one who was more influential then John Ross from Scotland. John Ross was not only a missionary in China, but he made the Korean translation of the New Testament. A publication which already existed in Korea years before the American Protestant missionaries came to Korea. It is very rare for any country to have such a missional history of this manner. Nevertheless, the fact remains that there is very minimal data about John Ross in the Korean Church history. In this paper, the Fulfillment Theology from the position of the Missiological Theology is dealt with as we try to better understand John Ross. As he witnessed the emphasize of the Confucianism’s ancestral worship in China, he began to better understood the Fulfillment Theology from the position of the Missiological Theology.In this paper, the life and ministry of John Ross along with his missiological attitude towards other religion and the relationship of Confucianism and Christianity are dealt with. In particular, this paper deals with the efforts of John Ross as he searched for the contact point of Christianity in Confucianism and his desire to lead the contact point to Jesus Christ in his work. His method was to increase the efficiency of the witness of the Gospel.John Ross, in his 39 years of missionary work in China baptized over 4000. And through his faithful efforts his work is still evident in China today as DongGuan Church and DongBook Seminary in Shenyang, China are actively operating. Thus, there is a great significance in studying the Fulfillment Theology from the position of Ross's Missiological Theology. If we obtain a better understanding of Ross's Missiological Theology, it will not only be beneficial to Christianity but essential in witnessing to other religions. The literature review method was used for this paper, as major writings of Ross and primary data founded was used. In addition, to gain a better understanding of John Ross and his work, Ross's home and his grave site in Scotland was visited 10 times and his main mission field, Shenyang, China 15 times.
        7,000원
        33.
        2013.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study aims to study factors affecting level of Korean language proficiency for Korean Missionaries' Kids (MK) dwelling in Turkey. 45 Korean MKs were asked to answer three different questionnaires designated to investigate Korean language proficiency, cultural identity and demographic background. This study adopts altered TOPIK for the evaluation of Korean language proficiency, and focuses on finding out the relationship of Korean proficiency with sexuality, age, age at immigration to Turkey, years of Korean study, self-recognition of cultural identity, cultural identity of Korea, and cultural identity of Turkey. The SPSS for windows 17was used for the statistical analysis.Ethnic Identity Scale was measured with the KAEIS that was developed by Ahn(1999) and Proficiency Test that was selected by TOPIK (Test of Proficiency in Korea) session 19, 20. Cronbach  for cultural identity of Korea was 0.823 and Cronbach  for cultural identity of Turkey was 0.691. Internal consistency reliability for Korean proficiency test was 0.891. The result shows that cultural identity of Korea and age at immigration to Turkey have significant relationship with level of Korean proficiency, especially age at immigration to Turkey has more significant relationship with the proficiency. The result from this study helps to recognize factors affecting level of Korean language proficiency. Especially, the Korean proficiency of MKs who live in Turkey has a close relationship with Korean cultural identity.These facts indicate that not only the Korean education are required to effectively increase the korean education itself, but also developing the pride of being Korean are needed to be followed up as well.
        8,300원
        34.
        2012.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article aims to delineate the definitions of missionary member care and its needs to the Korean churches, suggest its biblical and theological foundations, factors of missionary member care and the Heartstream model, and a cooperative system of missionary member care. Member care can be defined as consistent and systematic supports of sending agencies, sending churches, local ministers to the all mission personnels who are missionary, MK, mission administrators and other participators for their wellbeing, development, and nurturing. Member care deals with the lifelong issues of mission personnels such as selection, training, ministry, reentry, retirement. It's ultimate goal is for the glory of God. The best practice of member care is possibly achieved when self care and mutual care of the member are well balanced to the accountable, systematic and strategic care of the mission organizations and sending churches. Though member care is sustained by well organized care system and programs, the biblical and theological foundations of member care is God's care and mutual love and care of the member. The urgent need for member care has been suggested by a serious issue of missionary attrition. Researches on missionary attrition(ReMap I and II) show the corelation between high rate of missionary attrition and poor member care. This result indicates that the Korean churches and mission agencies have emphasized on sending and visible outcome of mission work without an appropriate care of the mission personnels they sent. In this article the Heartstream’s communitycentered intensive care model(SPARE Yourself) is suggested for Korean mission personnels. It consists of 5 dimensions or streams of member care from an holistic perspective: spiritual care, physical care, actualization, relational care, and emotional care. In order to integrate these five dimensions, sustainable and wellfunctioned member care system building must be needed for an effective member care practice. The member care system can be built on the participation of sending churches, mission agencies, and professional member care centers. These factors of member care are applicable to different contexts or stages that missionaries would face in mission fields. First of all member care must be carried at its best for the purpose of prevention. The preventative care can be performed at best in prefield missionary training. Secondly member care through various methods of intervention focuses on solving the problems finding out those roots and causes. Thirdly crisis management or care is carried in very urgent cases such as kidnapping, death, life threatening physical illness or psychosomatic crisis. These three dimensions of member care can be applied in prefield, onfield, reentry, retirement setting to all mission personnels. The urgent need for member care needs to be keenly recognized by the Korean church and mission agencies. The mission of God begins from the God's heart and He cares for His people and church. This is core of member care.
        7,000원
        35.
        2012.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If you want to write a mission history, academic dilemmas hinder you to sustain objective perspectives due to your confessional orientation. We mission historians believe that God has a grand plan of salvation for humankind and we are witnessing His story in the history of mission. Secular historians, however, do not believe in this kind of confession orientation. Rather they despise this kind of approach as the lack of academic objectivity. We mission historian must find the third way for writing mission history which could be shared not only with our fellow Christian scholar but also secular historians who believe in the objectivity as the primal condition for writing history. This paper suggests the method of Jacob Burckhardt(18181897) who proposed a flexible approaches in historiography. He criticizes that history is neither logic nor philosophy which is logical framework is firm and decisive. History writing should, according to Burckhardt, flexible because the interpretation of history should be open. The present author shows that this kind of flexible historiography could be accommodated in a new way of mission historiography. To show an example the author interprets the early Jesuit Missionary Matteo Ricci from the flexible mission historiography: Push factor and Pull factor. The author claims that writing mission history in more flexible historiography could be achieved by comparing push factor of missionary sending and pull factor of missionary receiving. Early Jesuit mission history will be more flexible if we approach the Jesuit mission from politics(of missionary sending from 16thcentury Europe and missionary receiving from the late Ming China's political situation), culture, and relig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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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2012.06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Chinese Recorder and Missionary Journal』에 기고했던 재중 선교사 티모티 리차드, 존 로스, 및 D. Z. 셰필드의 글들은 19세기에 맺어진 서구열강과 중국 간의 조약들, 그 조약에 포함된 선교적 권리들, 그리고 선교사의 향후 태도에 대하여 서로 다른 견해를 보여준다. 리차드는, ‘조약권리’ 중 기독교 선교와 관련된 항목들이 본국 외교부와 중국 관료들에 의해 이행되지 않으면서 더 많은 중국 신자들의 박해가 일어나고 선교에 큰 장애가 되어왔다고 간주하여, 동 권리의 이행 및 법 개정을 위한 외교부의 노력을 주장하였다. 그는 ‘신자들의 종교자유권’, ‘선교사의 내지거주권’, 그리고 박해자의 처벌을 포함하는 ‘신자 및 선교사 보호권’을 강력히 요구하였다. 그의 주장은 선교현장에서 ‘선교의 자유’를 충분히 얻지 못하고 있던 개신교 선교사공동체의 내적인 딜레마를 잘 보여주고 있지만, 또한 그의 제국주의적 서구의 중국침탈에 대한 인식의 결여를 잘 보여준다. 로스는, 선교사들이 서구열강의 억압으로 쥐어짜낸 ‘조약권리’에서 나오는 선교적 권리를 포기하고, 신자들과 비신자간에 일어난 분쟁을 해결하기 위하여 공사관의 권력에 의지하지 말며, 극단적인 박해사건에 개입하되 관리들과의 ‘직접적인 대화’를 통하여 ‘우호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의 견해는 서구 제국주의의 본질을 통찰하고 중국인들의 입장을 고려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역시 텐진조약이 가져다 준 북부항구의 개방이라는 외교적 조건 안에서 기독교 선교를 수행하는 한계를 안고 있었지만, 선교적 문제해결에서 ‘가장 덜 제국주의적인 방식’의 해결을 제안하였다. 이와 달리, 셰필드는, 기독교선교와 문명의 전파를 위하여 서구국가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였다. 기독교신앙과 진보정신 그리고 우월한 인종을 보유한 서구기독교국가의 선교는 독자적인 가치를 지니며 서구국가들 및 중국의 보호를 받을 만하다고 보았다. 기독교 선교의 방법으로써 말(word)과 힘(power)을 제안하는 셰필드의 견해는 매우 가부장적이며, 나아가 서구제국주의에 대한 무비판적인 태도를 보여준다. 리차드, 로스, 그리고 셰필드는 청말의 동시대에 중국선교사로 일하였지만, 중국의 조약법 및 기독교선교를 위한 조약법의 이행에 대하여 매우 다른 견해를 가졌음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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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2011.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선교 현지에 도착한 선교사들은 피선교지 주민을 향해 근본적인 질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이들은 과연 누구인가? 이들은 우리와 무엇이 다른가? 이들은 과연 하나님을 받아들일 만한 지적 능력을 가지고 있는가? 이러한 “타자”에 대한 초기의 질문을 제기한 사람들이 바로16세기부터 선교현장으로 파견되었던 예수회 선교사들이다. 이 논문은 이러한 초기 질문을 16세기 후반 페루에서 제기했던 호세 데 아코스타(1572-1586)와 17세기 초반 남 인도에서 제기했던 로베르토 데노빌리(1606-1656)의 저술을 통해, 이들 선교사들이 어떻게 최초로 종교적 타자를 이해하고 분류했는지를 분석하고 있다. 호세 데 아코스타는 1590년에 편찬한HISTORIA란 책을 통해 페루 지역의 원주민들이 콜럼버스 이전부터 유지해 오던 토착 종교를 면밀하게분석했다. 아코스타는 이 책에서 이중적인 접근방식을 취한다. 아코스타에 의하면 페루 원주민들은 후아카스(HUACAS)라는 끔찍한 우상 숭배의 죄악에 빠져있지만, 동시에 하나님을 알수있는 능력을 내재하고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이중적인 타자에 대한 이해는 그의 관찰의 프레임으로 작용하고 있는 스페인 시골 주민들의 미신에 가까운 가톨릭 신앙과연관이있다. 16세기 스페인 내부의 종교재판 기록과 아코스타의 페루 주민에 대한 비판을 비교해 보면 명백한 유사점이 발견된다. 깊은 종교성과 동시에 미신적인 의식을 선호했던 스페인 시골 주민들의 신앙에 대한 평가와 페루 주민의 종교성에 대한 평가가 흡사한 이유는, 아코스타가 페루 주민에 대한 해석에 사실상 스페인 시골 주민에 대한 이해를 투영시킨 결과이기 때문이다. 결국 아코스타에 있어서 타자에 대한 해석은 자기 정체성에 대한 내부적 이해와 결부되어 있었다는 것이다. 인도에서 활동하며 이른바 상류층 우선 접근 선교방식으로 큰 논쟁을 불러 일으켰던 로베르토 데노빌리의 경우에서도 같은 투영 현상이 나타난다. 데노빌리는 자신을 인도의 최상위 카스트인 브라민과 동일시하면서, 심지어 브라민의 신 이해를 자신의 신 이해와 일치시키는 신학적 대담성을 보이는 글을 발표했다. 이는 인도 사회에서 브라민 카스트가 차지하는 학문적, 사회적 위상을 자신이 포르투갈 출신의 선교사들과 차별되는 귀족 및 학자의 위상을 투영시킨 결과이다. 이 논문은 이러한 투영의 과정을 1613년 어간의 인도 선교 역사와 비교하면서 로베르토 데노빌리의 “타자”에 대한 이해를 분석한다. 결국 아코스타와 데노빌리와 같은 초기 선교사들은 종교적 타자에 대한 이해에 있어서 자기 정체성의 이해 정도를 투영시켜 타자를 규정하게 된다는 것을 선교 역사적 경험과 남겨진 초기 선교사 문헌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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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2010.07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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