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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1.
        2010.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아산만지역은 역삼동·흔암리유형의 취락이 가장 밀집되어 분포하는 지역이다. 또한 금강유역의 가락동유형과는 차령산맥을 기준으로 분포범위가 명확하게 구분되고 있어 양자의 관계를 조명하기에도 매우 중요한 지역에 해당한다. 또한 중기의 송국리유형의 기원 및 형성과 관련해서도 다수의 연구자들에 의해 주목을 받는 지역이기도 하다. 이렇듯 아산만지역은 한반도 청동기문화 연구에 있어 매우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 아산만지역의 청동기시대 유적의 구성은 전기에 해당하는 생활유적이 대부분이다. 일부 중기 단계의 유구들이 전기 단계가 중심인 유적들에서 소수 확인되는 양상을 보이며, 순수하게 중기 단계의 유구로 구성된 유적의 분포는 매우 희박하다. 또한 분묘, 경작유구 등 생활유적 외의 다른 성격의 유적은 거의 조사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본고에서도 생활유적으로 한정된 취락에 중심을 두고 검토를 진행하였다. 그 결과 전기 전엽에는 독립된 생활단위인 개별 주거지가 구릉의 능선을 따라 병렬 배치되는 양상을 보이며, 이후 전기 중엽 단계에 인구증가에 따른 주거지 밀집화가 발생한다. 전기 후엽에는 구릉정상부의 공지를 중심으로 소주거군과 주거군이 형성된다. 전기 전엽과 중엽에 소수의 수혈이 취락 곳곳에 분산되어 분포하였지만, 후엽에는 주거군 내에 군집된 채 확인되고 있다. 이는 주거군에 포함된 구성원들이 공지 인근에 조성된 초·대형주거지를 중심으로 통합된 생활단위를 구성하여 수혈을 경영하였던 것으로 추정하였고, 이러한 양상을 토대로 전기 후엽에 이르러 보다 구조화된 취락의 모습을 갖춰 나가는 것으로 판단하였다. 한편, 전기의 인구밀집지였던 곡교천유역은 중기 단계에는 인구가 급격히 감소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에 반해서 충청 서북부의 서산지역은 반대로 인구가 집중되는 현상이 발생한다. 이후 이러한 인구이동은 차령산맥 이남의 금강유역으로 확대된 것으로 파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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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2.
        2010.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청동기시대 석기의 취락 내 제작 양상에 관한 연구이다. 석기의 제작 단계는 대체적으로 타격에 의한 1차 성형의 1단계, 고타와 약마를 통해 거친 면을 다듬고 세부적인 형태를 조정하는 2단계, 세부 마연을 행하는 3단계로 구분할 수 있었다. 이상 설정된 단계별 미제품과 석기 제작 도구의 출토 양상, 그리고 석기 제작과 관련된 유구 내부의 흔적 등을 종합적으로 비교·검토한 결과, 유적의 점유시기보다는 입지에 따라 제작상에 차이가 있었던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취락 내 석기 제작의 시기별 변화상은 각 유적에서 출토된 미제품과 완제품의 조성 비율을 통하여 살펴볼 수 있었다. 먼저, 가공 도구 가운데 고석의 주거지 당 출토량이 전기에 비하여 후기에 급감하는데, 고타기법이 합인석부의 제작에 주로 이용되는 점과 합인석부가 화전농경에 관련된 도구임을 감안하여 이러한 농경 방식이 청동기시대 후기에 감소하였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미제품과 완제품의 조성비 비교 결과 전기 단계에 훨씬 더 많은 미제품과 파손품이 발생하였음이 확인되었는데, 이는 후기 단계에 석기의 형태가 제작하기 쉬운 형태로 변화한 사실과 관련된 것으로 추정하였다. 이밖에 입지·시기별 변화와 관계없이 주거지 면적이 넓어질수록 미제품과 완제품의 출토량이 많아지는 경향성도 확인되었다. 이와 병행하여 실시한 석기 제작 실험 결과, 선형석기의 제작에 있어서 양극기법의 유용함과 석도의 천공 작업 시 고타 과정을 거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효율적이라는 점을 확인하였다. 또한 석부는 강한 암질의 석재를 대상으로 제작하기 때문에 형태가 비슷한 것을 이용하여 작업을 최소화 하였으며, 특정 부분을 마연하는 경우 가공 대상물을 고정시키고 소형의 지석을 움직이는 것이 보다 효율적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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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3.
        2010.02 KCI 등재 SCOPUS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Benzotriazole (B.T.A) which has been mainly used for the stabilization processing method of excavated copper and bronze artifacts is vaporized within 2~3 years after the usage because it is unstable at the acid conditions and cannot protect the surface of artifacts. In this study, NaOH method which has been used for the steel artifacts was applied as a stabilization process for the method of copper and bronze artifacts to gush chlorine ion out. For the reproduction of excavated samples, copper and bronze plates were dipped in 0.1M HCl for 26 hrs to form CuCl, rusted at 70˚C with RH 75% for the formation of corrosion products, and desalted in 0.1 M NaOH solution. The concentration of chlorine ion was measured by using ionchromatography. During the desalting process, a large quantity of chlorine ions was gushed out in early period and corrosion products were not additionally generated through the re-corrosion experiment. This NaOH desalting process was found to be a method of stabilization process for copper and bronze artifacts from the formation of Tenorite (CuO) during desalting as a protection layer for corros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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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4.
        2009.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논문은 김해 율하리유적에서 조사된 청동기시대의 무덤을 중심으로 시신 매장방법에 관해 검토한 것이다. 유적은 주거+저장+분묘+의례공간으로 구성된 청동기시대 후기의 대규모 취락유적으로, 이중 무덤은 총 106기가 확인되었다. 무덤의 종류는 지석묘(개석식 묘역지석묘, 개석식 지석묘), 석관묘(상형석관묘, 석축석관묘), 목관묘, 토광묘, 옹관묘 등이며, 여기에 채용된 매장주체부의 종류도 상형석관, 석축석관, 石+木棺, 목관, 옹관, 토광 등이다. 특히 지석묘의 매장주체부는 석축석관이 주를 이루지만 옹관을 제외한 모든 형식이 사용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이것은 지석묘의 속성이 기본적으로 상석이나 묘역을 통해 외형적으로 드러내는 것으로 내부적 속성인 매장주체부는 일률적으로 정하는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선택적으로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石+木棺이 사용된 무덤은 최근에 조사예가 증가하고 있는데, 목관이 보다 적극적으로 매장주체부에 수용된 결과라 생각된다. 따라서 목관묘와 토광묘도 다른 묘제들과 함께 청동기시대에 활발히 조성되었던 무덤형식임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한 단위 유적만을 대상으로 하였기 때문에 한반도 전역으로 확대하여 해석하는 것은 아직 한계가 있지만 확인된 무덤의 수가 많고, 다양한 묘제들과 매장주체부가 복합적으로 출토되기 때문에 한국 청동기시대 무덤 매장방법에 대한 하나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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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5.
        2009.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북한강유역 청동기시대 취락의 전개와 석기제작시스템에 관한 연구이다. 주거지의 구조와 출토유물을 통해 볼 때, 돌대문토기문화, 가락동유형문화, 역삼동유형문화, 각형토기문화 등 다양한 문화요소를 받아들인 전기의 문화는 역삼동유형의 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지역성이 강한 중기의 문화 로 전개되며 후기에 이르러 주거지의 규모가 축소되면서 점토대토기문화와도 접촉한다. 전기 중·후 엽 역삼동유형의 주거지의 내부구조가 노지중심의 구조에서 작업공간이 분리되면서 이색점토구역이 설치되고 취락내에서는 공방지가 성행하게 된다. 즉, 중기에는 이색점토구역이 설치된 주거지와 함께 공방지의 수적 증가가 관찰되고 후기에는 규모가 대폭 축소된 방형주거지가 출현하며 공방지 또한 지 속된다. 이러한 전개과정 속에서 주거지의 내부구조변화와 공방지의 출현이 석기의 제작과 밀접한 관 련이 있음을 확인하였다. 인접한 석재 산지로부터 조달된 석재의 보관·선별·분할·분배는 공방지에 서 공동작업을 통해, 분배된 석재를 선택적으로 이용하는 석기의 세부제작공정은 개별주거지에서 행 해지는 병행적인 석기제작시스템의 확립과정을 제시하였다. 이와 같은 석기제작시스템의 확립과정은 건축기술의 차원에서의 주거구조의 변화와 취락내 독립적인 공방지 출현과 관련이 깊으며, 전문생산 체계로의 발전과정에서 과도기로서 농경 위주보다는 다양한 생계활동을 기반으로 삼아 계급사회로 이 행되는 과정으로 파악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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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6.
        200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청동합금인 우리 전통 식기 놋그릇 유기 소재의 항미생물 특성을 연구하기 위해 주요한 식중독 세균인 Salmonella spp., E. coli O157, E. sakazakii, B. cereus의 배양액을 유기, 구리, 주석, 스테인레스 스틸 쿠폰에 노출 건조 후 생균정도를 분석하였다. 이들 금속표면에서의 살균력 측정결과 Gram(-) 세균인 S. Typhimurium, E. coli와 E. sakazakii는 구리가 가장 높았고 유기, 주석표면, 스테인레스 스틸 금속표면 순으로 항균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Gram(+)인 B.cereus의 살균효과는 어느 금속표면에서도 살균효과가 거의 나타나지 않았다. S. Typhimurium, E. coli와 E. sakazakii의 구리이온(Cu+2) 최소생육저해 농도는 25 ppm이었지만 B. cereus의 경우는 50 ppm으로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구리와는 다르게 강한 경도를 갖고 있는 유기 소재를 식품제조 환경에 적용시킬 경우 Salmonella spp.를 포함한 주요한 Gram(-) 세균의 교차오염을 효과적으로 저감화할 수 있을 것으로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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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7.
        200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청동기시대 주구묘는 주구라는 묘역시설로 매장주체부 주변을 구획하는 묘제로서 고고학적인 의미는 몇 가지 점에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주구묘의 최초 등장은 한반도 남부지역 전체에서 거의 동시기인 전기 후반이며, 변화 양상에는 지역적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지만 이전과는 달리 피장자의 차별성을 강조하는 측면이 두드러지며, 특정지역에서 주거공간과 구분된 묘역을 형성하기 시작한다는 점이다. 발생 당시의 주구묘는 일본 야요이시대 방형주구묘와 같은 분구묘적인 개념을 가졌다고 보기는 어려우며, 철정리와 옥방8지구의 경우와 같이 복수의 매장시설을 설치하는 방식이 적용된다고 하여도 전반적으로 분구묘의 매장관념에 적합하지는 않다고 판단된다. 또한 일본 야요이시대 방형주구묘와의 직접적인 계보를 상정하기에는 시기나 매장방식, 구조적인 측면에서 차이가 크다고 할 수 있다. 다음 단계의 묘제인 지석묘로의 대체는 자연스럽지 못한 면이 있다고 판단되지만 영남 남서부지역 주구묘는 형태적인 측면에서 원형과 방형계통이 공존하는 전통은 지석묘 단계에도 자연스럽게 계승되었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주구묘의 발생에 관한 문제는 외적인 요인보다 현재로서는 전단계와 다른 매장관념에서 발생하였다는 점으로 내적인 요인에 의해 다루어져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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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8.
        200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전기 청동기시대에 대한 연구는 유구와 유물의 분석을 통한 편년, 그리고 주거지를 대상으로 한 취락연구가 주를 이루어 왔으며, 이에 대한 많은 진전이 이루어졌다. 그러나 개별적인 유구분석과 연구는 주거지에 국한되어, 주변에서 확인되는 수혈유구에 대해서는 내부에서 출토되는 유물의 양이 적고 구조를 밝힐 수 있는 시설도 없어 연구대상에서 제외되어 왔다. 그러나 수혈유구는 취락의 일부를 차지하면서 변화하며 사회·경제적으로도 큰 의미를 담고 있음을 밝힐 수 있었다. 수혈유구는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 넘어오면서 기능 뿐 아니라 유구자체, 입지와 취락 내 위치, 그리고 분포 양상 등에서 기존과는 다른 모습으로 변화·전개되어 나간다. 초기에 발생한 수혈유구는 신석기시대 저장공과 유사하게 저장의 기본적인 기능을 갖지만 점차 취사 및 의례 등의 여러 기능을 동시에 갖게 된다. 평면형태와 내부시설은 방형의 노지가 설치된 수혈유구에서 원형의 무시설식 수혈유구로 변화하면서 깊이 또한 점차 깊어지게 되고 후기의 송국리형 저장공으로 대표되어 간다. 입지에서도 변화의 양상이 파악되는데, 구릉의 정상부에서 점차 사면부 및 곡부로 이동하는 모습이 관찰된다. 이와 함께 주거군 사이에서 개별적으로 위치하다 점차 주거군의 외부, 즉 취락의 외곽에서 수혈유구는 군집되어 설치된다. 이러한 변화는 취락의 구조 변화와 그 궤를 같이하며 사회경제적 의미의 변화도 반영함을 알 수 있었다. 개인적이며 임시적인 구조물의 성격에서 벗어나 점차 취락 내 중요위치를 차지하며 공공재의 성격을 띠어 나가게 되면서, 전문적 관리자의 등장을 초래하고 이로 인해 계층화의 발생도 일어나는 것을 판단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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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9.
        200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석기는 청동기인들의 실제적인 삶의 필요에 의하여 고안되었기 때문에 기능적 속성 파악을 통한 당시인의 생활방식이나 생계수단 등의 연구에 있어서 효과적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석기분석을 바탕으로 청동기시대 취락의 생계유형과 그 변화상을 검토하고, 더 나아가 취락 간의 사회경제적 측면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물론 석기만의 분석을 통하여 취락의 생계경제를 언급하는 것은 무리가 따를 수밖에 없지만, 고고학적 현상을 해석하기 위한 다양한 접근 방법을 제시한다는 측면에서 나름대로 의미를 가질 것이라 생각한다. 분석을 통하여 확인된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우선 대단위 취락의 생계유형은 공통적으로 농경에 기반을 둔 경제생활을 영위하는 동시에 자연지리적 환경을 최대한 활용하여 수렵이나 채집활동, 유적의 입지에 따라 어로활동까지 병행하는 모습으로 복원되었다. 그리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논농사의 집약화에 의한 생산량의 증대와 농경 비중의 확대, 증대된 생산물을 차지하기 위한 집단 간 갈등과 교역을 목적으로 한 석기 생산량 증가 등의 변화상이 관찰되었다. 다음으로 호서지역 청동기시대 취락의 사회경제적 측면에 대해서는 특수한 역할을 담당하는 취락이 후기부터 등장하였는데, 저장 중심 유적이나 제사 관련 유적이 다른 취락과 유사한 생계경제 방식을 취한데 반하여 교역 관련 유적은 농경에 의존하는 대신 교역 등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통하여 식량의 공급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되었다. 또, 호서지역의 최상위 취락이라 할 수 있는 관창리유적과 송국리유적에 대한 조성비 비교 결과, 생계방식상의 유사성이 확인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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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0.
        200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수렵과 채집은 구석기시대부터 존재하였던 생계 형태로 농경의 비중이 높아진 청동기시대에도 일정한 역할을 담당하였다. 청동기시대 수렵의 종류로는 활수렵과 창수렵, 함정수렵 등이 있는데, 이 가운데 함정수렵의 비중이 높아졌던 것이 신석기시대와 구별되는 청동기시대 수렵의 특징이다. 함정수렵은 수렵에서 손실되는 노동력을 절감함과 동시에 수렵의 시점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러한 장점을 고려하면 청동기시대에 농경의 비중이 높아짐과 동시에 수렵활동에 투입할 수 있는 노동력의 비율이 감소하였기 때문에 함정수렵을 채택하였던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그리고 청동기시대 채집의 양상을 추정할 수 있는 자료는 없지만, 수렵처럼 노동력을 절감하는 방향으로 변화하였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즉, 농경활동을 통해 구축된 협업체계를 통해 단시간에 많은 사람이 채집활동을 실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노동력을 절감하는 형태로 변화하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청동기시대에 수렵과 채집에서 변화가 발생한 시점은 청동기시대 후기로 판단되는데, 이 시점은 수도작이 확산되는 시기에 해당한다. 수렵과 채집에서 확인되는 변화가 노동력의 효율적 사용이라는 점에서 전작보다 수도작의 확산으로 발생한 사회변화가 보다 컸던 것으로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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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1.
        200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청동기시대의 어로활동을 엿보기 위하여 어로구와 수 적게나마 발견되고 있는 패총유적에 대하여 검토한 것이다. 그 결과, 청동기시대의 어로구는 내륙지역을 중심으로 소형의 토제어망추가 주체를 이루고 있으며, 패총유적은 이 시대를 전후한 신석기시대와 초기철기시대에 비하여 패총의 발견예가 현저히 적다는 점을 알 수 있었다. 이 두 현상과 관련한 그 배경과 원인을 청동기시대의 생업활동의 변화 안에서 찾아보았다. 신석기시대에서 청동기시대로의 어로상의 변화는 인구증가와 유적의 입지조건 등의 변화에 동반하는 생업활동의 변천 곧, 농경의 본격화가 그 배경이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식량획득 사회에서 식량생산 사회(농경사회)로 전환되면서 어로구 구성이 변화하였는데, 생업활동의 장인 어장의 전면적인 변화에 기인한 생업 및 사회 전반에 변화가 발생하였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청동기시대의 어로는, 농경이 본격화되면서 어로를 생업의 주된 생계방법으로 이용해 오던 신석기시대와는 달리 농경의 보조적인 양상을 띠게 된 것으로 파악된다. 즉, 청동기시대에는 농경의 본격화로 인하여 경작지에서 가까운 크고 작은 하천을 어장으로 하는 내수면어로가 성행하게 되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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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2.
        200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I look at the images of Maud Gonne in Yeats's "Bronze Head." The bronze head is a sculpture made by Lawrence Campbell, which is in the Municipal Gallery of Modern Art, Dublin. When Yeats saw it, he must be shocked; she is old, and yet she looks "magnificent." In the bronze work, Yeats sees Maud Gonne as "human, superhuman," and "supernatural," as well. He puts down all that occurs to him, from the very first encounter, when "she walks like a goddess," not without wildness, though, to the image of Cathleen-like soul, to the image of her being supernatural with a sterner eye. All this enriching vision is made possible in this last poem of his; it is a conclusion to his poetry that is a history of a great heart craving for life for anther great heart; it is the best paean dedicated to a Goddess in his he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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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3.
        2008.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function of wall posts in pit-houses in the Bronze Age, in the Kyung-nam Province. Wall posts were found as post-holes, created after wooden posts had decayed. In this research, the role of wall posts is newly defined from the perspective of a construction engineering. While existing studies in archaeology regard wall posts as sub-posts that support the roof of a pit-house, this study views wall posts as piles installed to support the soil wall, not as sub-posts. Based on the existing reports on excavation in prehistoric settlement sites by archaeologists, the study examines the remnants of the wall posts and remains after a fire. The main findings of this study are threefold. First, the wall posts were installed not as posts but as piles, cut sharply and hammered along the building lines of a pit-house. Second, wall piles were used to support the walls during earthwork, such as excavating and banking for low ground, mostly because a large amount of soil is often lost during the process. Third, wall piles were used as post piles of retaining walls that enabled the installation of transverse wall panels, which were used to prevent the soil lo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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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7.
        2007.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한반도의 점토대토기문화는 점토대토기와 파수부호, 청동기·철기, 유구석부 등의 유물조합에 의해 다섯 단계로 나눌 수 있다. 그 중 1단계는 한반도에 점토대토기가 처음 등장하는 시기로 중국 동북지방 凉泉文化와 춘추시대 정치적 상황을 고려하여 기원전 5세기대로 볼 수 있다. 한국식동검이 등장하는 3단계는 기원전 4세기대로, 전국계철기와 삼각형점토대토기가 등장하는 4단계는 기원전2세기대가 중심이다. 또 와질토기와 다량의 철기가 보이는 5단계는 기원전 1세기대가 중심이 된다. 한편 점토대토기와 함께 한반도에 전개되는 초기철기문화의 사회문화적 변동은 점토대토기문화가 기존 청동기문화의 연속이라기보다 새로운 패러다임의 문화임을 역설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의 송국리유형까지만을 청동기시대로 보아 청동기시대는 조기(미사리유형)-전기(가락동,역삼동유형)-후기(송국리유형)로 나눌 수 있다. 한편 본고에서 설정한 점토대토기문화 중 1,2단계는 송국리유형과 같은 시기로 볼 수 있으며, 5단계는 원삼국문화와 중첩된다. 따라서 초기철기시대는 앞서 살펴본 5단계 중 3단계와 4단계만을 지칭할 수 있으며 철대연대로는 기원전 4~2세기의 약 300년의 기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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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8.
        2007.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한국고고학에서 청동기시대 시기구분은 1980년대 이후 송국리문화를 특징으로 中期가 설정되어 前期-中期-後期의 3時期區分이 이루어졌다. 3시기구분은 1990년대까지 거의 통설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최근에는 청동기시대 後期의 점토대토기문화를 청동기시대에서 분리하여 초기철기시대로 보고 있어, 청동기시대는 전기와 후기의 2시기로 구분하자는 의견과 3시기로 구분하자는 의견이 팽팽하다. 中期는 지역에 따라 다른 양상으로 나타나는데 남부지역은 송국리문화를 특징으로 하고 있으며, 북한지역의 경우 서북한지역의 미송리형토기문화, 동북한지역의 유정동유형으로 대표된다. 중부지역은 역삼동 Ⅱ유형과 북한강유형으로 대표되며, 영남 동남해안지역은 검단리유형으로 대표된다. 이처럼 청동기시대 중기에는 지역적으로 다양한 문화양상들이 확인되고 있다. 後期는 점토대토기문화를 특징으로 하는데, 점토대토기문화는 靑銅器時代後期, 初期鐵器時代, 三韓時代등 다양한 명칭이 사용되고 있다. 점토대토기문화는 한반도에서 가장 발전된 靑銅遺物이 출토되고 있어 청동기시대 후기로 설정할 수 있다. 중기의 年代는 上限은 전기의 下限과, 下限은 後期의 上限과 맞물려 있다. 전기의 하한과 중기의 상한을 명확하게 구분하기는 힘들지만 전기의 특징적인 장방형주거지가 소형화되고, 토기문양이 소멸되며, 석기에서도 변화가 확인된다. 이러한 변화 양상은 절대연대 자료로 볼 때 기원전 10세기경 시작된 것으로 보이며 특히 중기의 특징적인 송국리형주거지의 연대를 기원전 10세기로 보고 있어 중기의 상한은 기원전 10세기로 설정하고자 한다. 이 시기가 되면 한반도 전역에서 중기문화가 나타난다. 중기의 하한은 점토대토기와 같은 외부로부터 새로운 토기문화가 유입되는 시기로 설정할 수 있으며 한반도에 점토대토기가 유입되는 시기는 절대연대와 요서지역 자료를 참고할 때 기원전 6세기까지 올라가는 것으로 보아 늦어도 기원전 5세기부터 청동기시대 후기로 편년될 수 있으며 따라서 중기의 하한은 기원전 5세기 이전으로 잠정해두고자 한다. 그러나 중기로 편년되는 송국리형주거지의 경우 제주지역에서는 기원전 1세기내지는 기원후 2~3세기까지 축조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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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9.
        2007.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논문은 남한지역 청동기시대 전기의 상한과 하한을 검토한 편년연구이다. 먼저 청동기시대의 시기구분은 조기(미사리유형)-전기(미사리유형,가락동유형,역삼동·흔암리유형)-후기(송국리유형,역삼동유형,북한강유형,검단리유형)의 3단계로 나누었다. 전기단계는 조기에 이어지는 미사리식토기의 존속, 여기에 가락동식·흔암리식·역삼동식토기가 사용된 시기이며, 마제석검과 청동기가 제작되었다. 이와 함께 취락구성에 있어서 장방형 또는 세장방형의 대형주거가 중심을 이루며, 정형화된 분묘와 환호취락의 등장 역시 전기청동기문화의 주요 구성요소에 해당한다. 특히 비파형동검을 모방한 혈구이 단병식마제석검이 성행한 점에서 비파형동검문화기로 볼 수 있으며, 마제석검만 존재한 선동검기와 비파형동검기로 세분된다. 전기 청동기문화의 상한은 미사리식·가락동식·역삼동식토기 등이 지역성을 보이는 기원전 12~13세기로, 하한은 역삼동식토기가 주체를 점하는 시기로서 기원전 9~10세기로 추정된다. 한편 이와 같은 절대연대는 동아시아적인 관점에서 중국의 기년명자료와 공반유물의 검토를 통한 비교연대 연구를 병행하면서 검증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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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0.
        2006.09 구독 인증기관·개인회원 무료
        Diamond segments were fabricated by cold pressing and sintering under pressure at the temperature up to . Based on the results of this investigation, it can be concluded that the segments containing 39wt.% cobalt in the matrix material have the highest bending strength at a fracture probability of 50 % due to the weibull distribution method. According to the weibull statistics, it was also determined that the transverse rupture strength was the best for 39 wt.% cobalt ratio in the matrix material for the fracture probability when the other variables are the sa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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