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틴 맥도나의 필로우맨은 고통과 도덕적 모호함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예술과 이야기의 힘이 가진 가능성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본 논문은 등장인물이 자신의 이야기를 통해 지배권을 주장하고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는 과정을 통해 실존적 진실에 맞서려는 노력을 프리드리히 니체의 사상과 연결하여 분석한다. 결론적으로 본 논문은 이 극이 스토리텔링, 도덕성, 인간의 고통에 대한 재현을 통해 니체의 주제를 다루며 관객이 가치 창조의 복잡성과 삶에 대한 이해를 형성하는 예술의 역할에 직면하도록 하며 해답과 단순한 도덕적 진리를 거부하는 세상에서 예술가이자 새로운 가치의 창조자로서 우버멘쉬의 잠재력과 한계에 대한 성찰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음을 주장한다.
본 연구는 예이츠의 시에 나타난 프리드리히 니체의 주제를 조사하여 니체가 예이츠의 문학 작품에 끼친 상당한 영향을 강조한다. 두 사람의 서로 다른 배경에도 불구하고, 비교 분석을 통해 예이츠 시의 실존적, 철학적 주제를 조명하면 그들 간의 유사점이 발견된다. 본 연구는 “권력에의 의지,” “영원회귀” 등 니체의 주요 개념에 대한 개관을 시작으로, 예이츠의 시에서 이러한 주제가 나타나는 사례를 살펴본다. 이 분석의 핵심은 역경과 죽음에도 불구하고 초연함을 유지하는 슈퍼맨의 묘사를 통해 니체가 강조한 자기 극복을 반영하는 실존적 투쟁에 대한 탐구이다. 예이츠의 시에서 니체적 개념을 조사해 보면 철학적, 실존적 탐구에 대한 니체의 중요한 영향이 드러난다.
예이츠는 아일랜드의 음유시적 전통과 당대 유럽의 지식사회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부동의 미학을 연결지어 본인만의 독특한 비극론을 전개한다. 유럽 상징주의 드라마가 자신의 연극론 형성에 갖는 잠재력을 예리하게 간파한 예이츠는 특히 벨기에 극작가 모리스 마테를링크가 주창한 “정적 드라마”에 영향을 받는다. 동시에 그리스비극을 아폴로와 디오니소스적 욕망 사이에 존재하는 긴장의 산물로 바라보는 니체의 비극 철학에 매료된다. 본 연구는 예이츠의 비극 이론을 니체철학과 마테를링크의 극이론의 창의적 수용이라는 관점에서 바라보고 분석하며 그 장단점을 논의한다. 특히 ‘비극적 환희’라는 극적 효과가 극형식과 연계되는 지점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에 주시한다. 예이츠는 그가 가졌던 사실주의에 대한 강한 반감 때문에 마테를링크의 일상성과 니체의 아폴로적인 욕망에서 보이는 형식의 중요성을 간과하게 된다.
논문은 예이츠의 후기 시 「자아와 영혼의 대화」를 니체의 관점에서 재해석 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우선, RISS에 발표된 국내 논문의 제목에 자아(Ego)와 자기(Self)란 용어가 어떻게 사용되는 지를 통계학적으로 고찰한다. 그 다음에 융과 프로이트의 심리학적 측면에서 이 두 개념은 어떠한 차이점이 있는지 살펴 본 후에 니체가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자아와 자기, 그리고 영혼에 대해서 어떠한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해 고찰 한다. 마지막으로, 이 시의 1부와 2부 각 연에 반영된 니체의 사상에 대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를 중심으로 심층 분석한다.
예이츠는 지속적으로 이원론적 분열과 갈등을 다루지만, 그의 초기와 중후기 작품과는 차이가 있다. 시인에게 이러한 차이를 만들어 내게 한 것은 니체다. 예이츠 의 초기 시에 등장하는 인물은 현실과 이상사이의 갈등으로 인한 비극을 경험하고 삶을 부정한다. 1902년 니체를 만난 후, 그의 비극론은 예이츠에게 상당한 영향을 준다. 고통으로부터 삶을 보호하고 구원하는 아폴론적 힘과 이를 파괴하고 재창조하는 디오니소스 적 힘의 결합은 비극적 삶과 예술 그리고 “비극적 환희”에 대한 예이츠의 태도에 반영된다. 니체와의 만남 후 예이츠의 인물은 여전히 비극적 삶을 마주한다. 그러나 인물은 의지를 갖고 환희를 창조하며 삶을 긍정한다.
예이츠는 혼란스럽던 당대 아일랜드의 현실에서 영웅적 기상을 지닌 엘리트적 인물의 역할에 주목한다. 니체의 초인사상, 창조적 예술정신과 새로운 가치관, 삶에 대한 관점 등은 예이츠의 시세계에 더 넓은 지평을 열어주었다. 니체에 영향을 받은 예이츠의 귀족주의는 귀족주의적 삶의 양식을 실천함으로써 정치적 이데올로기와 물질적 인 속박에서 벗어나 내면의 자율성을 키워나가게 한다. 그의 귀족주의를 재산과 혈통으로 결정되는 위계질서가 아닌 개개인의 내면을 고양할 수 있는 하나의 가치체계로 이해할 때 더 나은 인간의 자유와 다양성을 이룰 수 있는 계기가 된다. 그것은 하나의 인위적인 예술적 이상향으로 마련된 것이 아니라 현실적 삶 속에 귀족주의적 삶의 영역을 마련하여 예술과 학문의 가치를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나누어 갖자는 의도를 지닌다.
예이츠와 니체는 욕망에 대해서 같은 관점을 가지고 있다. 예이츠와 니체는 금욕주의와 달리 욕망을 적극적인 차원에서 사용한다. 욕망이 가진 자연성과 생명성을 드러냄으로써 인간의 성숙과 궁극적인 진리에 이르려 한다. 예이츠와 니체는 이원론에 의한 투쟁과 갈등의 상황을 통해서 진정한 자아상을 추구한다. 그들의 투쟁적 상황은 끊임없이 반복되기에 계속적인 창조적 가치를 산출한다. 그들의 투쟁의 반복성은 헤라클레이토스의 만물은 변화한다는 탈고정성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예이츠와 니체의 정신세계는 탈고정성에 따라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새로운 가치를 창조해 나아간다. 본문은 이러한 과정을 면밀히 탐구해 나아간다.
니체철학에서의‘춤’은 철학적 논리를 설명하기 위한 개념으로서‘해방’,‘자유’,‘영원성’, ‘디오니소스적인 것’등의 추상적 관념을 상징한다. 니체에 있어서 무용수의 몸과 춤은 현실적인 것, 경험적인 것으로서 주요한 연구대상일 뿐만 아니라 니체사상의 주요한 주제이다. 본 연구는 니체철학의 영향을 받은 현대무용의 안무자들 가운데 마사 그레이엄(Martha Graham, 1894-1991) 의 무용을 고찰하고, 그레이엄의 무용세계에 미친 니체의 영향을 알아보기 위한 것이다. 니체의 철학과 사유를 통해 마사 그레이엄의 무용에 접근하는데 있어서, 첫째는 니체의 미학사상을 토 대로 현대무용의 미학과 발전을 알아본다. 둘째는 그레이엄 무용의 근원적 가치와 의미를 동작 원리와 작품세계를 통해 고찰한다. 셋째는 마사 그레이엄 무용미학에 미친 니체의 영향을 밝힌 다. 이 연구는 니체를 통해 창조적 자기표현과 자기완성의 과정으로서의 그레이엄의 춤을 사유 하도록 한다. 삶과 창조 그리고 숭고의 니체미학이 자연성, 자유, 몸을 근간으로 마사 그레이엄 에 미친 영향은 다음과 같이 정리될 수 있다. 신화 등의 소재를 재해석하는 창작활동에 의해 그 레이엄은 자신의 세계관과 가치관을 표현하였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개척해 나아갔다. 또 한 삶과 예술을 몸의 살아있는 경험으로 미학화 한다. 즉 언어로서 끌어 올리는 데에는 한계를 지닌 감각적인 근본적 세계를 그레이엄은 동작언어로서 재현해내고 창조한다. 그레이엄은 무용 을 통해 디오니소스적 이념 자체의 내용으로서의 도취와 인간의 정열의 확대를 실천한다. 그레 이엄의 신체 개념은 인간의 내면을 드러내고 표현하는 방법과 기술 그리고 내면의 내용에 적절 한 구조의 발굴 등을 모두 포함하며, 단순한 전달의 도구적 기능에서 더 나아가 기술의 습득에 의해 내부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고 자기 자신에 대한 신념을 키워주는 신체, 즉 가벼운 춤의 상태를 이룬 짜라투스트라의 신체와 상통한다.
이 논문의 목적은 예이츠 시에 나타 난 니체의 영향을 확인하는 것이다. 예이츠 시에서 니체의 사고인 영웅, 전쟁, 갈등 찬미, 서구물질 문명 비판, 야수적이고 무서운 미 찬미, 기독교에 대한 거친 비판 및 귀족에 대한 자부심과 비극적 환희 찬미를 발견할 수 있었다. 나아가, 예이츠 시에서 순환적 역사관, 이성보다 열정을 우위에 두는 디오니소스적 삶에 대한 신념과 초인의 도래를 기다리는 니체의 사상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예이츠의 후기 작품은 니체의 아폴로와 디오니소스의 이중성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보다 더 정확하게 이해될 수 있다. 아폴로의 가상은 개인의 삶을 창조하는 힘인데 이러한 생각은 예이츠의 마스크 개념에서 가장 잘 표현된다. 지속적으로 개인의 가상을 새롭게 창조하기 위해서는 아폴로적인 것은 가상을 산산이 부수는 디오니소스적인 힘이 필요하다. 디오니소스적이고 아폴로적인 비극의 개념은 예이츠의 비극적 삶과 예술에 대한 태도를 관통하는 주제이며 특히 “비극적 환희”에서 가장 강력하게 반영된다.
This paper aims to study Yeats and Nietzsche through Nietzsche’s “Will to Power” in some of Yeats’s poems. In 1902, Yeats first read Nietzsche’s works; through Nietzsche Yeats’s voice turned into a manly voice. An internal conflict appears as a Mask theory in Yeats's poetry. Self and Anti-self (Mask) are two components in the Mask theory. While Will is an internal and subjective self, Mask is a social and objective self. The internal conflicts between Will and Mask determine the human mind. Yeats’s “Mask” and “Ego Dominus Tuus” exemplify Will to Power as an internal conflict. Nietzsche’s Will to Power is a concept of quantity based upon the law of energy preservation refusing causality, the movement ascending and descending and the eternal recurrence of the same. Similarly, Yeat in his A Vision has rewritten a European history based upon the theory of opposite forces in a gyre. He classifies personalities into 28 types based one phases of the moon. Assigned to Phase 12, the phase of heroic man who overcomes himself, Nietzsche is a forerunner; who is fragmentary, violent, and subjective. Perspectivism, a kind of Will to Power, is a plural and relative point of view that is classified into 4 categories; Will to Power as knowledge ("Leda and the Swan"), art ("Ego Dominus Tuus"), love ("Crazy Jane Grown Old Looks at the Dancers"), and truth ("Demon and Beast"). In conclusion, Yeats’s later poems achieve a creative and powerful voice when he thinks and speaks with Nietzsche; in particular, Nietzsche’s Will to Power, a philosophy of Being and Becoming, is echoed in some of Yeats’s later poems.
Yeats and Keats differently introduced their notions of time circulation and eternal life. One expressed limitations of human which could be overcome by art. And the other introduced time flowing in harmony and peace. And in one poem, we can see something lively such as young people, birds, trees, salmon-falls, and in the other poem we can find laziness and leisure. However, there is some similarity in that they introduce the subjects of circulation of life and eternal life.
Yeats shows the passage of time by the Great Wheel or gyre which develops in the course of formation, fullness, decline. And Keats also presents the passage of time by using the phrases such as “swell the gourd,” “plum the hazel shell,” “warm day will never cease.” These symbolize swelling and continuance of time.
So we can find the way how time is flowing in their poems. In Yeats's “Sailing to Byzantium,” time travels from a youth to an old age, and in “To Autumn,” time travels from summer to autumn.
In this circulation Yeats's immortality can be reached by the media of art. And Keats gets it by the circulation of seasons. So one continues to voyage with eagerness for Byzantium in which he could find his everlasting life through the mosaic of 15th century, and the other comfortably waits for next seasons. Two poets respectively develop their poems in different ways, but they finally achieve the same subjects of ever-lasting life in the passage of time.
In conclusion, Yeats pursued immortality by separating spirit from the body, because the flesh would be decayed. On the other hand, Keats thought that the immortality could be acquired by being one with time. Unlike Yeats's “Sailing to Byzantium”, Keats's “To Autumn” has a tendency to keep harmony and reconciliation, instead of confrontation. Therefore, autumn enjoys “sitting,” and “asleep” without haste.
비평가들은 예이츠의 『비젼』 제4권, “고대인의 위대한 해”에 예이츠 자신이 니체의 수사학을 이용하여 자신의 중요한 담론으로 구성하고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해롤드 블룸도 이 책을 횡설수설이라고 일축하고 있다. 블룸은 니체가 “영원회기설”에 필요한 영웅주의를 주장하고 있고 또한 예이츠가 영원회기로부터의 구원이 불가능하다는 니체의 원칙을 수용하고 있다는 점을 정확히 잘 지적하고 있지만, 구체적으로 분석하여 설명하지는 못하고 있다. 따라서 예이츠가 니체적인 구조해체적인 수사학을 수용하고 있는 그 이면의 의도를 블품은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것이다. 헬렌 벤들러는 제 4권의 두가지 중요한 관심사를 “위대한 해(영원회기)”와 “그리스도 대 시저”(반)라고 보고 있으며, 니체적인 수사학적 문맥을 간과하고 있다. 본 논문은 니체의 “영원회기설”을 설명하고 예이츠가 니체의 아이러니를 전용한 의도성을 파악하여 예이츠와 니체의 연결에 필요한 시도를 해본다.
니체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신의 죽음에 의해 만연된 허무주의라고 생각했다. 니체가 진단했던 이런 허무주의적 양상은 엘리엇의 초기 작품들 특히 「게론션」과 『황무지』에서 표현되었다. 그러나 니체가 기존의 교회가 예수의 가르침 중 죄와 심판을 강조하고 사랑을 강조하지 않은 것에서 신의 죽음을 야기시켰다고 주장한 반면에 엘리엇은 성육한 예수의 본질을 인간이 알아보지 못한 것에서 인간의 절망적 상황이 발생했다고 보았다. 니체는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영원회귀 사유를 주장하였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유에 따르면 생성은 변화이자 생명이며 곧 존재이고, 모든 순간은 의미가 있다. 영원회귀는 일종의 사유실험으로서 인간의 삶에 대한 태도를 시험하는 것이다. 한편 엘리엇의 후기 시 『네 사중주』에서 세상만물은 유전의 법칙에 따라서 변화하는데, 이것은 니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생성과 연결될 수 있다. 하지만 니체의 생성은 곧 존재로서 가치우위에 있는 반면에 엘리엇의 세계는 유전의 법칙에 지배를 받지만 영원과 시간이 교차하는 순간이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의미와 가치를 준다.
바그너에 관한 숱한 문헌은 서로 갈등하는 해석들로 가득 차 있다. 갖가지 상이한 해석 들은 다양한 정도로 바그너의 작품을 해명해준다. 그 논쟁의 소용돌이 가운데 이 글은 좀 더 기본적인 차원에서 바그너와 그의 음악에 적합하게 반응하는 법을 모색한다. 먼저 철학자에 게 필요 불가결한 존재로서 처음으로 바그너와 치열한 전면전을 벌인 니체로 거슬러 올라가 어떻게 해서 바그너는 ‘하나의 경우’가 되었는지 비판적으로 되짚어본다. 그로부터 오늘날까 지 바그너는 줄곧 철학과 음악의 관계 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해석학적 초점이 되어 왔다. 바 그너를 둘러싼 논쟁의 이런 역사적 배경하에 아도르노의 바그너 비판과 평가를 점검한 다음, 때때로 엿보이는 그의 도식적 해석에 깃들어 있는 함정에 걸려들지 않고서 아도르노의 균열 과 모순이 어떻게 작품을 의미심장하게 만드는지 찾고자 한다. 여기서 음악과 철학의 쟁점에 대한 유익한 가르침을 담은 달하우스의 바그너 해석을 예시한다. 이로써 바그너 안에서 철학 과 음악의 얽히고설킴으로 말미암은 모순에 어떻게 반응할 수 있는지 보이고자 한다. 특히 아도르노의 바그너 해석의 문제와 시의성을 논함으로써 그 해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본 논문은 말러의 음악이 동시대 다른 독일어권 작곡가들의 음악과 왜 다를까라는 질문 에서 시작하였다. 이 질문은 평범하고 진부해 보이지만 음악적 내용만 가지고는 설명되기 어 려운 주제이므로 19세기 독일문화사의 맥락 안에서 그의 음악의 본질에 접근해 보았다. 보 헤미아 출신의 유대인으로서, 세기말(fin du siècle) 빈의 지휘자이며 작곡가로서 그가 경험 한 경계인의 삶을 조명하고, 그가 경외했던 니체, 바그너, 괴테의 사고와 상호연관 시켜봄으 로써 그의 음악적 본질을 니체와 괴테의 몸학(Physiologie) 혹은 신체성과 결부시켰다. 말러 의 작품에 나타나는 진보적인 사고, 즉 여성성, 아이러니, 단편기법(fragmentary style) 등으 로 나타나는 특징을 탈 형이상학적(post-metaphysic) 신체성의 발로로 해석하였다.
The purpose of this paper is to examine how Eliot’s and Nietzsche’s epistemological frames are compatible with each other. Although there is no evidence that Eliot’s literary taste was affected by Nietzsche’s thought, there seems to be a discernable continuity in impersonal theory between them. Philosophy, Nietzsche thought, was bound by epistemological dilemmas. So was it in Eliot’s view while he was a student of philosophy. Both of them meditated on a way out of the fix that philosophy had raised. As a solution, Nietzsche asserts in The Birth of Tragedy the primacy of art over philosophy. In his view the world of art was a Dionysian affirmation of the world as it was without subtraction, exception, or selection. The knowledge of self through art was not a sign that art was purely personal and subjective. Rather, art demanded a triumph over personal will and desire, simultaneously rejecting personal feelings and embodying objectivity. Eliot’s poetics is in substantial agreement with Nietzsche’s in this rega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