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프로파간다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문화예술에 관한 연구로 독일 나치즘에 활 용된 바그너 음악을 중심으로 고찰하였다. 2차대전 전범국인 독일 나치는 자신들의 정책과 우월함을 과시하고 정당화하기 위해 전체주의 확립에 대표적으로 바그너의 음악을 활용하 였다. 그 예로 바그너의 음악들은 나치의 공식적인 국가행사나 정치쇼에 사용되었으며 게 르만 민족과 자신들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하여 바이로이트 축제를 통해 바그너의 극음악 들을 효과적으로 사용하였다. 이번 연구를 통하여 이익집단이 프로파간다의 목적으로 쓰이 는 모습을 통해 예술의 이용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바라보았다. 전근대 대한민국에서 프 로파간다의 목적으로 예술가의 의도로 또는 의도와 상관없이 쓰이는 모습을 통해, 순수예 술의 목적성을 고찰하여 일반 시민이 경계해야 하는 예술의 모습을 살펴봐야 할 것이다. 이를 통해 문화예술이 이익집단 등 오류집단의 오용으로 인해 문화의 다양성이 파괴되고 획일화되는 위험성을 직시하고 차단 할수 있을 것이다. 이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지속 가능한 건강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문화예술의 긍정적인 모습을 바라볼 수 있게 할 것이 다
이 논문은 예이츠의 시극이론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한 인물 중 하나 인 독일의 작곡가 리하르트 바그너에 초점을 맞춘다. 기존의 예이츠 연구에서 바그너 는 서양지성사의 일반론적 맥락에서 언급된 것 외에 본격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다. 이 논문은 예이츠의 시극 이론과 아일랜드 문예부흥론을 바그너의 악극 이론과 예술론을 통해 새롭게 조명한다. 예이츠 미학의 초기에 발견되는 예술론과 시극이론에 주된 영 향을 미친 인물로 니체보다 바그너에 더 주목함으로써 예이츠 연구에 새로운 지평선 을 여는 데 그 목적을 둔다.
The purpose of the present study is to figure out what the issues faced by architecture were at the time immediately before the transition to modern era centering of the works of Otto Wagner who acted in Vienna, Austria at the Fin de siècle. Therefore, the following points were examined in the present study; first, how were new spaces necessary to accommodate modern lives organized and how were the plans changed; second, how did the external expressions of architecture pursued by Otto Wagner appeared between arts and technologies, between historicism and modernity, and between decorations and functions. Through the study, it could be seen that Wagner began from historicism and traditionalism and tried to compromise them with modernity. Many modern characteristics appeared a priori in Wagner’s works from the construction of ‘Linke Wien Zeile housing block’ in 1898, his works completely broke from the typical historicism styles to open the period of inventive ‘Secession styles.’ At that time, Wagner concentrated on so called ‘flat decorations.’ Thereafter, his residential architecture completed to modern styles with ‘Neustiftgasse housing block’ as the peak. The characteristics of modern housing as above became a cornerstone of the modern functionalism later.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examine the happy relationship between Richard Wagner and his royal patron, the Ludwig Ⅱ in Barbaria. The main portion of this study is to explore the multi-faceted nature of the Barbarian King: that is, Ludwig Ⅱ as a political leader, an art-loving patron and a dreamy platonic lover with homo-sexsual inclinations. What are the political situations in western Europe, including Barbaria, Prussia, and Austria in the second half of the nineteenth century? What are the historic consequences of the king's unconditional love toward Wagner's music? What is the conception of German national hero and how is that conception related to the characters in Wagner's major operas? These are the questions to be answered here.
본 논문은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를 둘러싼 논쟁 중에서 최근까지 가장 첨 예한 대립을 거듭하고 있는 주제 중 하나인 바그너의 사상과 음악이 독일의 제3제국과에 직 접적인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논쟁을 다루었다. 현행 학계에서 이 논쟁은 비판과 옹호의 상호 극단적인 대립을 보이고 개별사항에서 이견이 노출되면서 평행선을 달리고 있는 데, 본 논문은 이 대표적인 주장들의 배경과 근거를 비판적으로 검증․논의하면서, 히틀러의 바그 너 숭배, 히틀러의 반유대성, 히틀러와 바그너 일가의 관계, 그리고 바그너의 서거 이후 히틀 러의 제3제국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서 이른바 “바그네리안(Wagnerian)” 내지는 “바이로이 티안(Bayreutian)”이 어떻게 바그너의 (반유대적 내용과 연관된) 사상과 작품을 의미화했으 며, 확산시켰으며, 수용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추적하였다.
바그너는 음악사상 가장 연구가 많이 되고 오늘날까지 극단적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으 면서 논쟁의 한복판에 서있는 인물이다. 그중에서 바그너의 음악극에 과연 반유대적 요소가 표현되고 있는지의 여부는 바그너 생존 시부터, 그리고 특히 아도르노의 문제제기(1952년) 이후 현행 학계의 가장 뜨거운 쟁점이다. 본 논문은 선행연구에서 부각된 대표적인 찬·반 양론의 주요 주장과 사안에 따라 첨예한 대립 중에 있는 주요 쟁점을 비판적으로 검증·정리 하였다.
리하르트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는 음악사상 가장 연구가 많이 되고 오늘날 까지 극단적인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으면서 논쟁의 한 복판에 서있는 인물이다. 본 논문 은 바그너에 관한 연구 중에서 현행 학계의 가장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는 바그너의 반유대 주의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도모하기 위해 시도되었고, 그 첫 번째 단계로서 바그너의 반유대 주의의 원인과 배경을 다루었다. 논의의 전개에서는 선행연구에서 부각된 주요 주장과 사안 에 따라 첨예한 대립 중에 있는 주요 쟁점을 검증·정리하였다.
바그너에 관한 숱한 문헌은 서로 갈등하는 해석들로 가득 차 있다. 갖가지 상이한 해석 들은 다양한 정도로 바그너의 작품을 해명해준다. 그 논쟁의 소용돌이 가운데 이 글은 좀 더 기본적인 차원에서 바그너와 그의 음악에 적합하게 반응하는 법을 모색한다. 먼저 철학자에 게 필요 불가결한 존재로서 처음으로 바그너와 치열한 전면전을 벌인 니체로 거슬러 올라가 어떻게 해서 바그너는 ‘하나의 경우’가 되었는지 비판적으로 되짚어본다. 그로부터 오늘날까 지 바그너는 줄곧 철학과 음악의 관계 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해석학적 초점이 되어 왔다. 바 그너를 둘러싼 논쟁의 이런 역사적 배경하에 아도르노의 바그너 비판과 평가를 점검한 다음, 때때로 엿보이는 그의 도식적 해석에 깃들어 있는 함정에 걸려들지 않고서 아도르노의 균열 과 모순이 어떻게 작품을 의미심장하게 만드는지 찾고자 한다. 여기서 음악과 철학의 쟁점에 대한 유익한 가르침을 담은 달하우스의 바그너 해석을 예시한다. 이로써 바그너 안에서 철학 과 음악의 얽히고설킴으로 말미암은 모순에 어떻게 반응할 수 있는지 보이고자 한다. 특히 아도르노의 바그너 해석의 문제와 시의성을 논함으로써 그 해법을 제시하고자 한다.
본 논문은 말러의 음악이 동시대 다른 독일어권 작곡가들의 음악과 왜 다를까라는 질문 에서 시작하였다. 이 질문은 평범하고 진부해 보이지만 음악적 내용만 가지고는 설명되기 어 려운 주제이므로 19세기 독일문화사의 맥락 안에서 그의 음악의 본질에 접근해 보았다. 보 헤미아 출신의 유대인으로서, 세기말(fin du siècle) 빈의 지휘자이며 작곡가로서 그가 경험 한 경계인의 삶을 조명하고, 그가 경외했던 니체, 바그너, 괴테의 사고와 상호연관 시켜봄으 로써 그의 음악적 본질을 니체와 괴테의 몸학(Physiologie) 혹은 신체성과 결부시켰다. 말러 의 작품에 나타나는 진보적인 사고, 즉 여성성, 아이러니, 단편기법(fragmentary style) 등으 로 나타나는 특징을 탈 형이상학적(post-metaphysic) 신체성의 발로로 해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