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의 고난에 관한 논쟁의 중심에는 ‘행위화복관계사상(Tun- Ergehen-Zusammenhang)’이 있다. 이는 욥의 경건과 모범적인 신앙이 하나님의 은총에 대한 등가적 반응이라는 사탄의 도발적 질문과 세 친구의 집요한 추궁에 잘 드러난다. 욥의 신앙은 소위 ‘주고받기식 (give and take)’ 신앙일 뿐이라는 고발에 대해 하나님은 다소 즉흥적으 로 사탄의 분탕질을 허락하고 만다. 선교적 해석학은 하나님의 선교 관점에서 욥의 고난을 인류 보편적 차원의 주제로 수렴하거나 목회적으 로 적용하는 경향이 있는데 여기에는 모호한 측면이 많다. 본 고는 이와 같은 경향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면서 부조리철학의 관점 (absurdism)이 전술한 모호함을 해소할 수 있다는 핵심 논지에 따른 욥의 언어 분석을 통해 행위화복관계사상과 선교적 해석학을 조명한다. 이를 통해 행위화복관계사상과 선교적 해석학이 가진 신학적, 해석학적 한계를 극복하는 하나의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이 논문은 현대예술과 현대 선교신학이 추구하는 ‘참’(본질)의 의미로서 개인과 사회의 아름다운 삶을 위한 미적 실천의 관점이 짙은 연구 글이다. 먼저 현대예술은 예술철학적 관점에서 개인의 삶과 공동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고, 덕을 세우는 등 진정한 사랑에 기인한 예술적 추구야말로 본질적 예술미로 규정한다. 또한, 현대 선교신학은 예전 중심의 예배를 넘어 인자와 공의가 실현되는 하나님 나라 복음의 실천으 로서 삶의 예배를 강조한다. 그러나 현대 기독교의 예술선교는 상황화 관점을 견지하면서도 실용성, 방법론, 문화 상대성 중심의 타문화 선교전략을 강구하고 있다. 이는 그 출발점이 현지인을 통한 선교전략 으로 보기에는 어렵다. 이런 이유로 이 논문은 행위예술의 관점에서 문화적 정서나 다름을 초월하여 자국민의 삶에 나타나는 일상 행위와 존재 방식이 어떠할 때 선교적 의미를 드러내고, 그 기능을 수행하는지 를 연구한 것이다. 곧 ‘선교적 행위예술’(missional performance art)이란, 하나님의 본질적 미(美)를 구현하는 행위로서 그 신학적 기준은 1) 본질적 창조성, 2) 생명적 회복성, 3) 육화적 전인성, 4) 증언적 복음성, 5) 지속적 혁신성, 6) 초월적 현재성이라는 요소를 지닌다.
본고는 지지울라스의 삼위일체적 교회론을 선교적 관점으로 재해 석한 선교적 교회론 연구이다. 지지울라스는 성부의 인격 엑스타시스를 통해 삼위일체 하나님을 구성한 것처럼 세상을 구성하고, 종말론적 코뮤니온을 이루기 위해서 아들과 성령을 세상에 보내시며 코뮤니온을 이룬다고 주장한다. 그에게 선교는 코뮤니온이다. 그는 하나님의 존재 방식에 상응하는 교회로서 코뮤니온을 이루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교회는 존재론적으로 코뮤니온 공동체를 이루는 선교적 차원을 가져야 하고, 지역교회와 교회 일치 운동은 코뮤니온 하나님의 선교에 참여하는 것이 된다. 그의 신학의 중심에 성찬식을 두어, 성만찬이 이루어지는 지역교회는 지역성과 보편성을 지니고 있어, 지역 문화에 배타적이지 않고, 코뮤니온을 이루되 교회성을 지키는 교회가 되어야 하며,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교회는 교회중심으 로 모여 종말을 선취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그의 코뮤니온 교회론은 개인주의와 배타주의를 극복하는 코뮤니온 선교적 교회가 된다.
본 연구의 목적은 성찬을 선교신학적 관점에서 조명하여 그 본디 의미를 고찰하고, 목회 현장에 적용할만한 ‘선교적 성찬’(Missional Eucharist)을 예시하여 교회의 선교적 동력으로 삼으려는데 있다. 이 시도의 신학적 근거는 첫째, 존 웨슬리의 성찬신학에서 살펴볼 수 있다. 웨슬리는 복음 설교자로 유명하지만 동시에 그는 영국국교회의 사제로서 고교회(High Church) 전통의 성례주의자였다. 그가 성찬을 중요하게 여긴 이유는 거룩한 은총에 의한 회심의 변화가 여기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이것은 복음적 성화의 사건으로 선교적 부흥운동의 원동력이 되었다. 둘째, 성찬 그 자체가 이미 선교적일 뿐 아니라 흥미롭게도 그 의미에는 ‘선교적 교회’(Missional Church)의 신학적 관점들이 농후하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성찬은 은총에 의한 회심 체험 이나 변화의 부재로 ‘명목상의 성찬’(Nominal Eucharist)이 된지 오래다. 따라서 선교적 교회의 내적 동력으로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를 추구하는 성찬이 되려면, 감성과 이성, 전통과 신학 그리고 통전성과의 조화로운 결합이 필요하다. 말하자면 본고는 ‘선교적 성찬’을 통해 선교적 성화가 이루어지기를 갈망하는 실제적이고 실천적인 접근이다.
본 논문은 코로나 19의 충격 속에서 코로나 19 이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바라보면서 쓰였다. 코로나 19로 인한 현 상황이 쉽게 끝나지는 않을 것이다. 끝난다 해도 인류는 ‘포스트 코로나’ 라는 새로운 시대의 도전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위해 한국교회가 스스로 갱신해야 할 영역이 무엇인지를 선교적 교회론의 관점에서 연구하였다. 이를 위해 먼저 코로나 19의 확산과 한국교회의 위기상황을 서술하고, 전통교회의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대안적 교회론으로서의 선교적 교회론을 요약한 후, 포스트 코로나 시대를 위해 한국교회가 갱신해야 할 영역을 8가지로 제언하였다. 그것은 1) 모이는 교회에서 흩어지는 교회로; 2) 예식으로서의 예배에 서 삶으로서의 예배로; 3) 연역적 전도에서 귀납적 전도로; 4) 교회의 선교에서 하나님의 선교로; 5) 개교회주의에서 공교회 연합으로; 6) 시공제약(時空制約)에서 시공해방(時空解放)으로; 7) 이원론적 사고 에서 통전적 선교로; 8) 군중에서 선교사로의 전환이다. 이 8가지 영역이 성공적으로 실천된다면, 포스트 코로나 시대는 한국교회에게 위기가 아니라 새로운 기회가 될 것이다.
본 연구에서는 한국성결교회의 기원에 대하여 선교적 관점에서 현지 참여관찰과 원자료 분석 방법론을 통하여 한국성결교회가 동양선 교회에 그 기원을 둘 뿐만 아니라, 동양선교회의 창립자들을 동양에 선교사로 파송하고 선교 목적, 선교 교육, 선교 내용과 신학 그리고 선교 방법 등을 지원한 만국성결교회가 한국성결교회의 모체임을 증명 하고자 한다. 한국성결교회 창립의 과정에서 직접적인 역할을 한 단체는 카우만과 길보른 그리고 나까다가 세운 동양선교회(The Oriental Missionary Society)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동양선교회는 한국성결교회를 창립하고 그 이후 후원하는 과정에서 선교 목적, 선교 교육, 선교 내용과 신학 그리고 선교 방법 등에서 만국성결교회의 지원과 후원을 받았음이 원자료들을 통하여 밝혀졌다. 그러므로 한국성 결교회가 동양선교회의 협력으로 창립되고 유지 발전하였으나, 그 기원을 찾아 올라가 보면 미국의 만국성결교회로부터 비롯되었음이 증명되는 것이다.
본 연구의 목적은 현대 신학교육의 모델들과 커리큘럼을 ‘선교적 제자도’의 관점에서 재고하는 것이다. 동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교육 모델로서 베를린 모델은 교회의 필요에 따라 전문적인 사역자들을 훈련하는데 목표를 두고 있다. 그러나 그 모델은 교실 교육과 교회 현장 사이의 거리가 커짐으로써 학생들에게 실제적인 사역을 준비시키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다양한 과목들을 공부하면서 아카데믹한 부분을 추구하는 반면에 목회자의 신앙과 영성 그리고 인격 훈련이 도외시 되고 있다. 본 연구는 위의 모델을 배제함 없이 ‘선교적 제자도’를 위한 도제교육의 모델을 강조할 것이다. 이로써 이 연구는 신학교육 기관들이 선교적 관점에서 통합적이고 유기적인 커리큘럼의 재고를 제안할 것이다.
본 논문은 ‘미시오 릴레이트’(MissioRelate)에 기초한 스콧 보렌 (M. Scott Boren)의 선교적 소그룹 이론을 살펴보고 그 이론에 비추어 18세기에 활동했던 존 웨슬리(John Wesley)의 소그룹 사역을 분석, 평가하고자 한다. 보렌은 구성원들의 동기와 목적에 따라 소그룹의 유형을 크게 네 가지로 구분한다. 그중에서 ‘개인적 개선’과 ‘생활방식의 조정’은 정도의 차이가 있긴 하지만 개인적인 유익을 위해 소그룹에 참여하는 것들이며, ‘관계의 수정’과 ‘선교적 재창조’는 유기체적 공동체 의 역동성을 기반으로 한다. 그런데 속회와 반회로 대표되는 웨슬리의 소그룹은 보렌의 네 가지 유형 중에서 ‘개인적 개선’과 ‘생활방식의 조정’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반면에 웨슬리의 소그룹은 서로 성결의 은혜를 나누고 섬김으로써 세속적인 집단들과 뚜렷하게 다른 삶의 모습을 보이는 역동적인 공동체였다는 점에서 ‘관계의 수정’에 해당한 다. 또한 가난한 자들과 고통당하는 자들을 도와주었던 그의 사역에는 ‘선교적 재창조’의 특징이 있다. 그러나 그 노력이 소그룹을 통해서가 아니라 사역 전반에 걸쳐서 이루어졌다는 점은 약점으로 평가된다.
오늘날 한국교회는 ‘선교적 교회’라는 용어에 대한 분명한 정의나 이해함 없이 피상적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다. ‘선교적 교회’를 주창한 대럴 구더(Darrell L. Guder) 등의 학자들은 이 용어 사용에 대해 매우 조심스럽게 접근한다. 그래서 그들은 이 용어를 적용함에 있어서 지역을 한정하고 있다. 실제로 ‘선교적 교회’를 논하는 학자들 자신들도 ‘선교적 교회’ 개념이 크리스텐덤(Christendom) 밖의 세상에서 사용 되는 것에 대해서 놀라기도 한다. 필자는 본 논문에서 ‘선교적 교회’ 개념을 그저 학습하고 좇아가기 보다는 비판적 상황화 과정을 거쳐서 “선교적 교회” 개념이 한국 교회에서 정착되어야 한다고 본다. 그리고 서구교회가 크리스텐덤에서 비크리스텐덤으로 변화되어 가는 과정 속에서 직면하고 있는 그들의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서구 교회가 비크리스텐덤의 상황 속에서 교회가 성장해 왔던 세계 교회들, 특별히 비서구지역의 교회들로부터 배울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리고 비판적 상황화의 관점 속에서 선교적 교회를 한국 교회에 적용하고 이해하기 위해서 도출되어야 하는 결론은 다음과 같다. 교회는 ‘선교적 교회’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에 충실하면 ‘선교적 교회’가 된다는 것이다. 즉, 본질로 돌아가서 교회가 교회다운 교회, 즉 교회론 그 자체, 본질에 충실한 하나님의 교회가 될 때 교회의 선교적 기능은 이루어지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메시아적 사명을 감당하신 성육신 사건은 신자들을 위한 구원론의 근거가 되면서 동시에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를 가르치는 사역론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모든 왜곡된 삶의 태도와 사역을 비판하고 진정한 삶과 사역의 원리를 제시한다. 본 논문은 선교적 교회의 실천원리로서 성육신의 신학적 의미를 탐구한 뒤에 상황화의 관점에서 성육신적 사역의 구체적인 실천원리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성육신은 기독교 역사에서 일반적으로 구원론의 근거로 인식되었 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신학적으로 제대로 이해하 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선교적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 예수의 성육신 은 인간의 삶의 현실 안으로 뚫고 들어오시는 하나님의 현존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성육신은 근본적으로 문화적 경계를 넘어 상대방의 삶의 세계로 들어가는 선교를 뜻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선교의 내용과 이유와 방법을 알려준다. 더 나아가 성육신은 선교의 방법론적 모델이 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선교하는 그리스도인 또는 교회의 존재론적 성품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
성육신적 사역은 구체적으로 상황화의 과정을 통해서 구현된다. 필자는 본 논문에서 칼 바르트(Karl Barth)가 그의 『교회교의학』 (Church Dogmatics)에서 제시한 세 가지 통찰 곧 이해, 연대, 책임적 행동의 개념을 통해서 선교적 상황화의 원리들을 제시하였다. 첫째로, 성육신의 정신을 가지고 자신이 선택한 대상에게 복음을 들고 가려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가장 먼저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 누군가 또는 어떤 사람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들이 처한 삶의 환경과 조건을 이해한다는 것을 뜻한다. 두 번째로, 성육신적 사역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과 교회에게 필요한 것은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과의 연대다. 이런 연대는 먼저 일정한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거주하며 죄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들의 문화를 수용하는 용기에 의해 가능하다. 세 번째로, 성육신적 사역의 마지막 과정은 책임적 행동이다. 이 책임은 세상의 실존과 현실 앞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의 미래”(what is to become of it)에 대한 책임,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진정한 통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세상을 “갱신”(renewal)해 야 할 책임을 말한다.
하나님께서 직접 인간의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셔서 메시아적 사명을 감당하신 성육신 사건은 신자들을 위한 구원론의 근거가 되면서 동시에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할지를 가르치는 사역론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그것은 모든 왜곡된 삶의 태도와 사역을 비판하고 진정한 삶과 사역의 원리를 제시한다. 본 논문은 선교적 교회의 실천원리로서 성육신의 신학적 의미를 탐구한 뒤에 상황화의 관점에서 성육신적 사역의 구체적인 실천원리들을 제시하고자 한다.
성육신은 기독교 역사에서 일반적으로 구원론의 근거로 인식되었 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사건을 신학적으로 제대로 이해하 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선교적 관점에서 읽어야 한다. 예수의 성육신 은 인간의 삶의 현실 안으로 뚫고 들어오시는 하나님의 현존을 뜻한다. 다시 말해서 성육신은 근본적으로 문화적 경계를 넘어 상대방의 삶의 세계로 들어가는 선교를 뜻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선교의 내용과 이유와 방법을 알려준다. 더 나아가 성육신은 선교의 방법론적 모델이 되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 선교하는 그리스도인 또는 교회의 존재론적 성품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기도 한다.
성육신적 사역은 구체적으로 상황화의 과정을 통해서 구현된다. 필자는 본 논문에서 칼 바르트(Karl Barth)가 그의 『교회교의학』 (Church Dogmatics)에서 제시한 세 가지 통찰 곧 이해, 연대, 책임적 행동의 개념을 통해서 선교적 상황화의 원리들을 제시하였다. 첫째로, 성육신의 정신을 가지고 자신이 선택한 대상에게 복음을 들고 가려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가장 먼저 그들을 이해해야 한다. 누군가 또는 어떤 사람들을 이해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그들이 처한 삶의 환경과 조건을 이해한다는 것을 뜻한다. 두 번째로, 성육신적 사역에 참여하는 그리스도인과 교회에게 필요한 것은 복음을 들어야 할 사람들과의 연대다. 이런 연대는 먼저 일정한 지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함께 거주하며 죄가 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들의 문화를 수용하는 용기에 의해 가능하다. 세 번째로, 성육신적 사역의 마지막 과정은 책임적 행동이다. 이 책임은 세상의 실존과 현실 앞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세상의 미래”(what is to become of it)에 대한 책임, 다시 말해서 하나님의 진정한 통치가 실현될 수 있도록 세상을 “갱신”(renewal)해 야 할 책임을 말한다.
본 논문은 선교적 관점에서 한국의 미래세대를 위한 목회갱신 방안을 다룬다. 한국교회는 현재 여러 가지 쇠퇴의 증상들을 겪고 있지만 미래세대의 감소와 교회 부적응 현상은 한국교회의 미래마저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필자는 이 현상의 저변에 기성세대와 미래세 대의 문화적 충돌이 깔려 있다고 본다. 기성세대는 주로 한국전쟁과 전후 곧 60년대부터 80년대에 이르는 경제적 근대화시기에 젊은 시절 을 보냈던 사람들로서 물질 중심적 사고와 양적 사고, 억압된 일방통행 식 커뮤니케이션 방식에 익숙해 있는 반면, 미래세대는 90년대 이후에 젊은 시절을 보낸 사람들로서 부모 세대가 이루어 놓은 물적 토대 위에서 자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누리며 사는 데 익숙하고, 탈중심화되 고 다원화된 커뮤니케이션 방식을 선호한다. 이런 미래세대의 생활양식 과 의식은 기성세대에 의해 주도되는 교회의 모든 조직체계와 활동을 불신하거나 혐오하며, 이런 이유로 교회를 떠나는 결과가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필자는 이런 현상과 문제점을 극복하고 미래세대를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고 더 나아가 교회의 미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만드는 목회적 방안으로 아홉 가지를 제안하였다. 첫째, 교회학교를 교회로 생각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둘째, 지식 위주의 교육에서 전인적 교육으로 전환해야 한다. 셋째, 미래세대를 수동적인 학습자가 아니라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학습자로 만들어야 한다. 넷째, 교회에 맡기는 교육에서 가정과 교회가 함께 하는 교육 체계가 정립되어야 한다. 다섯째, 구경하는 예배에서 체험하는 예배로 바뀌어야 한다. 여섯째, 이벤트 위주의 교육에서 진정한 제자훈련이 이루어지는 교육으로 전환 해야 한다. 일곱째, 개인주의 신앙에서부터 공동체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성장하는 교육 시스템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여덟째, 거쳐 가는 사역자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사역을 감당할 수 있는 전문적인 사역자를 양성해야 한다. 아홉째, 획일성이 아니라 다양성이 구현된 목회나 교회 모델을 추구해야 한다.
본 연구는 선교적 교회론의 기원 및 배경을 간략하게 살펴본 후, 선교적 교회론의 바탕이 되는 그리스도의 지상명령, 하나님의 선교, 통전적 선교, 그리고 상황화의 이슈들을 살펴보면서 선교적 교회의 관점에서 본 선교를 논의하였다. 선교적 교회론은 이미 레슬리 뉴비긴과 데이비드 보쉬와 같은 선교신학자들에 의하여 논의되었으며 1998년 대럴 구더를 비롯한 “미국 복음과 우리의 문화 네트워크”에 속한 연구자들에 의하여 더욱 활발하게 논의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명령은 하나님의 선교의 중추라고 볼 수 있으며 이 전도명령에 따라 교차문화적 선교와 지역사회에 대한 봉사가 진행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나 교회가 아니라 삼위일체 하나님이 주체가 되는 하나님의 선교는 복음을 토착민의 심성과 다양한 문화적 형태들에 따라서 전해야 하는 토착적인 교회의 개척과 성장은 물론 제 4의 자아, 즉 토착화 신학의 개발을 요구한다. 더 나아가서, 하나님의 선교는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임하게 하기 위하여 복음전도와 사회적 책임을 통합할 수 있는 통전적 선교를 추구한다. 이 통전적 선교는 선교적 교회가 캐리그마, 코이노니아, 그리고 디아코니아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당시에 행하신 선교를 그분이 다시 오실 때까지 계속하는 것이다. 특히 오늘날 이 시대에 선교적 교회는 모든 경계를 뛰어넘어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이 되어야 하며 변화와 화해의 사신이 되어야 한다.
오늘날 기독교 신앙이 사사화되고 공적 영역에서 기독교 진리의 우위성이 상실된 현실에서 교회의 선교적 본질에 초점을 맞춘 선교적 교회론의 등장은 기존의 기독교 세계에 큰 도전이 되고 있다. 선교적 교회론은 근본적으로 교회의 본질로부터 사역을 이해하고 조직을 구축하려는 논리적 순서를 중요하게 여긴다. 본 논문은 선교적 교회의 관점에서 교회론의 여섯 가지 주요 주제를 다룬다. (1) 교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주권적 선교 안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교회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성취하기 위해 존재한다. (2) 성서에 제시된 에클레시아의 관점에서 볼 때 교회는 하나님께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공동체를 가리키기 때문에 결코 건물, 제도, 조직 구조, 성직자, 모델, 프로그램과 동일시될 수 없다. 교회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선교적 백성 곧 부르심을 받고 보내심을 받은 ‘사람들’ 자체를 가리킨다. (3) 선교적 교회는 모이는 교회일 뿐만 아니라 흩어지는 교회로서 공동체에 속한 구성원들의 삶의 현장에 존재한다. 다시 말해서, 신자들은 모이는 공간을 떠나 자신의 삶의 현장으로 흩어져 하나님의 통치를 증언하는 선교적 백성으로 살아간다. (4) 선교적 교회는 지역교회로서 자신들이 처한 지역 사회에서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 고유한 삶의 양식을 창조해 나간다. (5) 선교적 교회는 거룩성을 지닌 공동체이지만 세상으로부터 분리된 공동체가 아니라 오히려 성육신의 원리를 따라 세상 안으로 들어가 하나님 나라의 진리와 능력을 드러내고 세상 문화를 변혁할 대안 공동체로 살아간다. (6) 유기체적 공동체로서 선교적 교회는 생명을 간직하고 향유하며 나눠주는 사역을 한다. 이 사역은 분립과 후원에 의한 교회개척을 중요하게 여긴다.
이 글은 ‘한국의 교단들이 복음적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추적한다.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서는 일단의 평가기준을 마련할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 적절한 것이 선교적 교회론의 관점에서 교단주의 혹은 교단들에 대한 평가들이었다. 그래서 먼저 2장에서 밴 겔더의 연구 성과물을 중심으로 북미 교단들의 현실과 나아가야 할 방향을 살펴보았다. 북미교단들의 평가가 중요한 것은 한국의 교단들 대부분이 북미로부터 수입되었고, 그 성쇠 패턴이 유사하기 때문이다. 그 평가들에 따르면 북미교단들은 역사적으로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변화, 발전되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리고 현재 각 교단들은 철저히 성서적인 기반 위에 성립되어야 하고, 역사적으로 상황을 중시해야 하며, 사회적으로 다양한 계층들이 복합적으로 모이는 공동체가 되어야 하고, 조직적으로는 통전적인 선교적 교단으로 발전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이때 선교적 교단은 교회를 해체하자는 운동이 아니다. 3장에서 우리는 앞서 추출된 기준과 방향성을 잣대로 삼아 한국 교단을 평가해 보았다. 그 결과 한국 교단들의 통제시스템, 미래예측, 선교자원 활용이 상당히 부족함을 지적하였다. 이것을 극복하기 위해 성경적인 선교적 교단들을 추구해야 하고, 여전히 각 교단들의 상호예의가 필요하며, 사회변화에 따른 다양한 선교대상들을 접근해야 하고, 각 교단들의 선교적 연계성이 필요하다는 점을 제시하였다. 특히 사회적 영향력을 상실하여 교단들의 교세가 감소되는 위기적 상황에서 복음 속에서 그 극복의 단서를 찾고 교회의 본질을 회복하는 교단의 모습과 선교적 리더십을 가진 목회자, 선교적 교회 마인드로 무장된 교인들이 많이 양육되어 배출되도록 하는 시스템이 갖추어져야 할 것을 제시하였다.
한국 교회의 성장과 발전이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선교의 결과라는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이러한 사실로 미루어 볼 때 한국 교회에 하나님께서 민족적이며 시대적인 큰 선교적 사명을 맡겨 주셨음을 확신한다. 세계 선교사에 유례없이, 한국 교회는 지난 1세기 동안 천만에 가까운 그리스도인을 보유하고 5만에 가까운 교회를 세우며 매년 수천명이 넘는 신학생을 배출해내어 왔다. 세계는 한국 교회의 이러한 양적 성장을 부러워하고 있으며, 한국 교회의 저력이 세계 선교의 교두보 역할을 감당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한국 교회도 이 사실을 하나님의 축복으로 여기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있다. 그러나 오늘 한국 교회는 이와 같은 외형상의 화려한 모습만을 자랑하거나 만족해하고 있을 때만은 아닌 것 같다. 오히려 지금 우리는 건강한 신앙의 안목과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우리의 현실과 그 이면에 감추어진 잘못을 다시 점검해야 할 때라고 본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눈으로 한국교회를 성찰하고 오늘의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한국 교회의 성장의 이면에는 긍정적으로만 볼 수 없는 많은 문제들이 있기 때문이다. 가치관의 혼란이 심각한 이때에 한국교회가 민족을 구원하는 교회 본래의 사명과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고 있는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여러 가지 통계자료에 의하면 90년대를 고비로 교회의 성장이 정체되기 시작하였고 오늘에 이르러서는 교단에 따라 성장 둔화 등 위기의 징후가 현저해지고 있다. 이제 그 원인을 밝혀내고, 그 바른 처방이 내려지지 않는다면 한국교회는 유럽 교회들에서의 정체와 위축의 길을 답습할까 심히 염려된다. 따라서 한국교회의 과거를 돌이켜 보면서 무엇이 한국교회의 침체 원인의 문제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대답을 찾아야 할 것이다. 이에 본고에서는 고유의 선교적 관점에서 문제 원인과 그 원인에 대한 처방 및 선교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This paper is intended to explore the relationship of korean churches and the shamanism from the missional perspective. July 7, 2007 the very interesting article was reported in ‘The New York Times’. It bears the title, “Shamanism Enjoys Revival in Techno-Savvy South Korea”. According to this report, there are an estimated 300,000 shamans in south-korea. By contrast it is approximately 120,000 protestant pastors in south korea. Until now the shamanism and the mudangs are estimated so negative by reason of their ‘health and wealth gospel’. Specially the korean church took it as the mammonism. But the health and wealth gospel of shamanism aims the worldy centered worth, not the mammonism. By religious ritual named ‘gut’ they will find a solution to one's problem, but will not accumulate wealth. They think that the most problem of human beings arise from the distorted relationship between the divine beings and the livings. So by the gut they try to reconcile the livings with the divine beings. For this, the mudangs serve their gods with all their hearts; they pray every early morning with the lustral water, support their gods with fresh new fruits. This faithful devotion is called ‘chiseong’ in korean, and this could be comepare with the spiritual discipline. By this ‘chiseong’ the mudangs can be recognized as the spiritual psychics. And this will afford an excellent lesson to the korean churches, for the church as a missionary organ have to witness the presence of the living God in this worl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