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토마스 핀천의 바인랜드에서의 인물들의 ‘배제된 자’(The Preterite)로서의 역할과 의미를 탐색하고, 미국 사회 속 반-문화 혹은 대항문화의 역사적 의미와 사회적 의의를 문학적으로 접근한다. 핀천의 인물들의 시대성과 자유로운 영혼들의 피난처로서의 바인랜드에 대한 분석을 통해 핀천의 주체에 대한 시각을 권력과 ‘배제된’ 자의 사회 구조를 통해 접근하고, 핀천의 ‘배제된 자’들의 연대감과 그들의 ‘배제된’ 영성의 양상을 연구한다. 미국의 1920년대와 30년대의 노동 운동과 40년대 50년대의 저항 운동, 60년대의 히피 세대의 반문화 운동을 겪은 ‘배제된 자’의 저항의 역사와 문화적 장소로서의 바인랜드에 대한 분석을 통해 그들의 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에 대한 연관성을 연구한다. 이 과정에서 ‘배제된 자’들의 ‘피난처’인 바인랜드는 그들 사이의 연대감과 다른 종교뿐 아니라 소위 다른 세계인 타나토이드라는 존재까지도 아우르는 ‘배제된’ 영성을 통해 서로 권력으로부터 보호하고 자연 속에서 평안을 얻는 구원의 장소임을 보여준다. 결론적으로 핀천은 이 소설을 통해 ‘배제된 자’들은 기독교적 전통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배제된’ 영성에 의한 ‘구원적 대안’도 가능한 것임을 보여준다.
본 연구는 코칭의 미래 발전 방향을 위하여 현대 코칭의 아버지로 인정받고 있는 토마스 레너드의 코칭을 탐색하기 위한 목적으로 연구하였다. 이를 위해 토마스 레너드의 코칭시스템을 살펴보았다. 그리고 토마스 레너드의 코칭시스 템을 통해 코칭의 본질적인 측면과 실용적인 측면과 학문적인 측면에서 레너드의 코칭을 분석하였다. 본 연구의 주요한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토마스 레너드의 코칭은 다른 도움 전문직인 상담, 심리치료, 컨설팅과 아주 다른 독자적인 분야로 자리매김을 하기 위하여 충분하다는 점이다. 코칭은 다른 도움 전문직과는 전혀 다른 패러다임인 Who 패러다임, Pull 패러다임, Outcome 패러다임을 가지고 있다. 둘째, 토마스 레너드의 코칭은 전문코치가 코칭을 탁월하게 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기에 충분하다는 점이다. 토마스 레너드는 누구나 쉽게 코칭을 탁월하게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코칭을 구조화하였다. 셋째, 토마스 레너드의 코칭은 신생학문으로서의 코칭학을 세우는 초석이 되기 충분하다는 점이다. 토마스 레너드가 쓴 6권의 책과 그가 개발한 코치훈련 교육과정 그리고 20년 동안 연구하여 만든 코칭 시스템은 코칭학을 세우는 기반이 될 수 있다. 본 연구가 토마스 레너드의 코칭을 연구하고 적용하는 일이 많아지기를 바라고 이번 연구가 전문 코치의 성장과 피코치 확보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테스』와「약한 자의 슬픔」은 발표된 시기와 문화적 배경이 다름에도 불구 하고, 근대화 시대의 상징 권력에 의해 희생당하는 여성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근대의 상징 권력 하에서 여성은 여전히 쉽게 타자로 간주 된다. 주체적 존재로서의 여성의 삶은 사랑과 종교 담론에 밀접한 관련성을 갖게 된다. 두 작품 속에 나타나는 주인공인 테스와 엘리자베트가 꿈꾸는 낭만적 사랑은 근대화 시대의 상징 권력에 직면하게 됨으로써 취약한 상태에 놓이게 된다. 궁극적으로 사회의 상징 권력에 대한 개인적 태도에 따라서 미래의 삶에 대한 양상은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두 작품의 비교는 과거를 통하여 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기획 하는데 문학적 지혜를 제공한다. 위기에 놓인 인간의 주체적인 삶에 대한 모색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전근대, 근대화, 탈근대라는 역사의 진행 과정에서 각 시대의 상징 권력을 뛰어넘음으로써 참된 사랑의 가치를 발견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이때 사회적 상징 권력에 종속되거나 패배하지 않고 개인의 행복을 꿈꿀 가능성이 담보될 수 있다는 점을 두 작품은 보여준다.
이 연구는 17세기 초의 북부 네덜란드 화가 헨드릭 테르브루헨의 작품 <의심하는 토마스>에 초점을 맞추었다. 이 연구는 우선, 테르브루헨의 <의심하는 토마스>를 카라바조의 <의심하는 토마스>와 비교해 구도가 일치하지 않음을 강조했다. 다음으로, 이 연구는 테르브루헨의 작품을 감상했던 감상자들 이 작품 앞에서 서로 대화를 나누었음을 전제했다. 마지막으로, 이 연구는 감상자들이 테르브루헨의 작품 앞에서 성경원문과 그림전통의 차이에 대해 대화했음을 증명하려 했다. 이 연구의 목적은 테르브 루헨의 작품을 둘러싼 수용활동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T. S. Eliot’s Four Quartets and Murder in the Cathedral inherited the religious and philosophical tradition of Thomas Aquinas’s Summa Theology and Dante’s Divine Comedy. The Anglo-Catholicism, as distinguished from the Roman Catholicism, thereby may be seen to designate Eliot’s religious identity. Dante’s Divine Comedy shows the apex of his contemplation based upon the intellect. Dante illustrates “paradiso” reaching contemplation by using various lights, and Eliot’s Four Quartets similarly reveals a still point that is a mystical experience filled with much light. In Four Quartets the moment of mystical experience can be seen like those in the works of Thomas Aquinas and Dante belonging to a Catholic tradition that reaches sanctification. The action of Archbishop Thomas Becket in Murder in the Cathedral might just sin as a failure to will in accordance with God, which is the choice of good and evil of human acts interpreted by St. Thomas Aquinas’s Summa Theology. For the true martyr is the person who has become the instrument of God, who has lost his will in the will of God, and who no longer desires anything for himself.
M. M. 토마스의 신학방법론은 신학발전과정에서 세 가지 관점으 로 나타난다. 비록 그의 신학발전의 각 단계 사이의 명확한 경계를 구분하는 것이 어려울 지라도, 그것은 그의 적합한 신학적인 틀을 형성하고 있다. 토마스의 방법론적 접근은 그의 신학이 인류학적 접근 에 근거하고 있다. 그는 기독교 신앙이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기 위해서 도전적인 관계와의 접촉점을 찾는다. 우선 그의 방법론은 인류 학과 벌코프 관점의 소통에서 나타난다. 토마스는 기독교 신앙과 간디 주의와 마르크스주의의 두 이데올로기의 소통을 통하여 남아있는 문제 를 풀고자 애쓴다. 신학과 이데올로기 사이의 소통은 그의 예비적인 필요조건인식에서 나온다. 그는 간디주의와의 소통에서 비폭력의 원칙 은 육체의 힘으로 이해된 힘의 실재에 대한 간디의 근본적인 접근이었 다. 그는 간디의 도덕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인식을 사회의 분석을 위한 더 나은 도구로 판단하고, 인도 사회에서 급격한 변화에 영향을 주는 수단으로서 발전시켰다. 사회 현실에 대한 깊은 연구가 그로 하여금 마르크스주의와의 소통을 이루도록 도왔다. 나중에, 종교를 소외의 형태로 이해하는 마르크스주 의적 신학이 종교를 불신앙의 형태로 본 것과 달리 후기 크래머와 결합되었다.
토마스는 선교의 목표가 인간화라고 주장하였다. 이 소고의 주목 적은 인간화를 신학적으로 분석해 보는 것이다. 토마스는 기독교의 사상의 궁극적인 틀은 추상적인 하나님‐인간 또는 오히려 인간을 위한 하나님인 예수 그리스도 또는 하나님의 인간성이다. 토마스는 현대의 혁명적인 변화의 의미와 신앙의 의사전달 표현으로서의 상황에 대한 기독교의 신앙의 함축적 의미를 탐구하는 맥락에서 그리스도의 통치권 을 촉진시킨다. 토마스의 기독론적인 발전단계는 예수 그리스도의 왕적 통치를 묘사한다. 토마스는 역사상의 하나님 나라의 역동성을, 심판과 구원의 메시지를 선포하는 정의와 인간화를 위한 혁명적인 변화 내의 발효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는 그의 견해로 발전시킨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통치권이, 죄와 악의 모든 구조를 극복하고 마침내 죽음 자체와 마지막 사건인 그리스도의 왕적인 통치의 뜻으로서 이해되 는 것, 즉 이 세상의 왕국을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나라로 전환 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고통 받는 인간과의 함께 하심은, 예수 그리스도를 정치적이고 이데올로기적인 투쟁으로부터 도출된 개념적 인 도구의 말로 혁명적인 인본주의를 위한 원동력으로서 나타내는 인도의 기독론을 요한다. 복음의 보편성이 모든 문화와 이데올로기와 종교를 뚫고 들어가서 그것들을 그것의 매개물 즉 소위 “그리스도 중심의 혼합주의’로 변혁시키는 능력 안에서 그러한 표현을 찾아야 한다는 확신을 요구한다. 토마스는 그리스도 중심의 혼합주의로 이끄는 대화를 의미하는 교회가 되어야 함을 말한다. 따라서 “그리스도 중심의 혼합주의”는 타종교간의 대화가 목표이다. 이것은 종교적이고 이데올 로기적인 다원주의 신학의 주요한 논점인 넓은 의미의 에큐메니즘과 열려진 세속주의를 표명하였다. 그가 기독교의 사회적 구조에 대한 구원을 소망하는 에큐메니컬 신학에 거대한 영향을 끼친 영향을 주었으 나, 결국은 그것은 선교에서 편향된 구원을 지향하는 그리스도 중심의 혼합주의를 제안한 것이다.
M. M. 토마스는 20세기 하반에 WCC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들 중의 하나로서 명석하고 지도적인 인도의 기독교 신학자라 할 수 있다. 맨 처음 그는 복음적이고 경건한 훈련으로 출발하였으나 점차 종교와 사회에 깊은 관심을 가졌다. 토마스의 신학은 일반적으로 세 가지 관점으로 되어 있다. 비록 그의 신학적인 발전의 단계 사이의 명확한 경계 구분이 어려울지라도 그 세 가지가 그의 신학적인 틀을 형성한 것만큼은 분명하다. 토마스의 방법론적 접근은 인류학에 근거하고 있다. 그는 기독교신앙이 효과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도전적인 관계와의 접촉점을 찾는다. 특별히 토마스의 인류학과 벌코프 의 관점의 문답에서 토마스의 방법론적 접근은 그의 신학이 인류학적 접근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토마스는 기독교신앙과 두 이데 올로기 곧 간디주의와 마르크스주의와의 만남을 통해 남아 있는 문제를 풀고자 애쓴다. 신학과 이데올로기 사이의 대화는 토마스가 예비적인 필요조건을 알아채는 사실로부터 나온다. 첫 번째 단계는 그와 간디주 의와의 만남으로 시작된다. 비폭력의 원칙은 육체의 힘으로 이해된 힘의 실재에 대한 간디의 근본적인 접근이었다. 토마스는 간디의 도덕 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는 마르크스주의의 인식을 사회분석에 더 나은 도구를 제공해 줄 수 있는 것으로 보고 인도사회에서 급격한 변화에 영향을 주는 수단으로 발전시켰다. 토마스는 간디주의자 로 시작했으나 사회현실에 대한 깊은 연구가 그로 하여금 마르크스주의 를 합류시키게 만들었다. 나중에, 종교를 소외의 형태로 이해하는 마르크스주의적 신학이 종교를 불신앙의 형태로 이해하는 바르트와 혼합되었기 때문에, 그것은 선교의 목표로서의 인간화를 발전시키는 에큐메니컬 선교신학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본 논문은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체험한 ‘회심’과 그 결과를 토마스 쿤이 과학혁명의 구조에서 주장한 ‘정상과학,’ ‘위기,’ ‘패러다임 전환’ 등 몇 가지 핵 심 개념으로 분석하였다. 회심이전, 바울의 구약해석학은 구전토라를 포함한 랍 비전통의 해석학이었고, 회심이후 그의 해석학은 그리스도 중심적 구약해석으 로 전환된다. 그의 구약해석은 이후 기독교도들에게 구약해석의 표준을 제공한 다는 점에서 쿤이 말한 “학제모형”의 성격을 띤다. 또한 그의 회심은 ‘비축적적’ 이고 돌발적인 방식으로 진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이전의 해석학을 새로운 해석 학으로 완전히 대치했다는 점에서 쿤이 언급한 패러다임 전환의 여러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본 논문은 쿤이 언급한 과학혁명의 순서에 따라 바울의 해석 학을 분석하는 방식으로 구성 되었다. 1장에서는 ‘정상과학’과 유대경전의 해석 학을, 2장에서는 ‘위기’와 바울의 해석적학 위기를, 3장에서는 새로운 패러다임 의 탄생과 바울의 해석학적 패러다임의 전환을 다루었다.
This thesis is about John Thomas; the first missionary sent to the KEHC, the first superintendent and the first dean of Kyungsung Bible Institute. The coverage of this thesis begins from his birth in the U.K. and his ministries, how he came to Korea and his ministry in Korea from 1910-1911. In total, John Thomas spent 10 years serving in Korea, therefore assessing his ministry is somewhat out of proportion, however this thesis will focus on the background of his calling to Korea and the beginning of God’s divine works. 1. John Thomas had evident experience in the Fourfold Gospel. 2. His devotion and faith made him a clear model as Christ’s servant. 3. He was a man of prayer. 4. Through the successful ministry in the U.K. he demonstrated the blessings of God’s presence. 5. He made a network of supporters for prayer and financial aid. 6. He was a prominent Evangelical leader of his time and was selected as the main speaker at the annual OMS conference in 1911. 7. He had a call to preach the holiness element. This calling began to spread in the other denominations and missionaries also. 8. He not only loved the lost souls of Korea but also cared for the people of the world. 9. His ministry had a harmony of teaching and ministering. Through his character which was greatly influenced by the holiness element gave him authority to impress many people. 10. Although he had difficulty in learning Korean, his input and effort was vital in setting the foundations of the KEHC and the Bible Institute. 11. The early records of his ministry which influenced many denominations and other missionaries in Korea and Japan shows how influential he must have been in the later years. 12. He contributed to the printing of 10,000 copies of the New Testament, helped set up administrative procedures for KEHC and the Bible Institute and his teaching, church founding and faithful mission works show the bright future ahead. This research focuses on the early days of John Thomas’s mission. There are still more research to be done about his character and the latter part of his ministry. However, the fact that a man of God, such as John Thomas was called to serve as the first missionary sent to the KEHC, the first superintendent and the first dean of Kyungsung Bible Institute proves God’s purpose toward the KEHC and STU. Furthermore, through this research we need to find the elements that need to be continued and carried out in this day and age. Therefore it is inevitable the existence of holiness is revealed not only in Korea but also worldwide. This is the core value of KEHC and STU’s existence.
개종 이후 T. S. 엘리엇은 문학 평가에 있어 엄격한 도덕적이고 종교적인 면을 강조한다. 낯선 신을 찾아서: 현대 이단의 입문서에서 엘리엇은 도덕가로서 ‘전통,’ ‘정통,’ ‘이단’ 그리고 ‘모독’이란 비평의 개념을 전개시키면서 현대 문학의 효용성을 평가한다. 토마스 하디는 불가지론자, 무신론자로서 여러 시를 통해 하나님을 부정하고 구원을 거부하고 예수님의 존재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내용을 표현한다. 엘리엇은 전통적인 종교적 신앙인 기독교 정통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개성을 강조하고, 자유주의적 윤리나 종교, 퇴폐적인 감상주의, 기괴함 그리고 악마적인 요소를 시에 드러내며 자신만의 ‘낯선 신’이나 신화를 찾는 하디를 낯선 신을 찾아서에서 ‘이단’으로 공격한다. 본고에서는 하디의 시를 통해 “믿음의 징조”인 ‘모독’과는 다른 특징을 가진 그의 이단성을 살펴본다.
“모든 부는 불의한 부, 즉 불공평한 부라고 일컬어진다. 왜냐하면 그것 은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분배되지 않고, 한 사람에게는 부족하게, 다른 사 람에게는 필요 이상으로 풍부하게 분배되기 때문이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 나오는 이 인용문은 부의 불공평한 분배가 불의하다는 관념 을 뚜렷하게 표현하고 있다. 이것은“정의는 동등을 함축한다”는 명제로 요 약될 수 있는 토마스 정의론의 핵심적인 관념에 속한다. 이러한 특징을 가진 토마스의 정의론에 비추어 보면, 자본주의 사회에서 허용되어 온 심각한 수준의 경제적 불평등은 부정의를 내포하는 것으로 보 인다. 본고는 현대자본주의의 경제 질서가 양산해 온 불평등 문제를 재평 가할 수 있는 하나의 윤리적 준거점으로서 토마스 아퀴나스의 정의론을 고 찰하는 데 목적이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에 기초해서 본고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대전에 나타난 정의론을 사적 소유권의 한계와 빈민의 권리에 초점을 맞추어 철저 한 원전 분석 방법을 사용하여 연구한다. 이 분석을 통해 다음과 같은 것 을 밝힌다. 토마스는 외적 사물의 관리와 분배에 있어서 효율성, 질서, 평 화를 이유로 사적 소유가 허용됨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외적 사물의 사용에 있어서는 공적 소유를 주장하며, 사적 소유권에 우선하는 자연법의 규정에 근거하여 사적 소유권의 한계를 분명히 한다. 즉 사적 소유권은 생 존에 필요한 것이 결핍된 빈민의 자기보존이라는 자연권에 종속되어야 한 다는 것이다. 이처럼 자연법에 토대를 둔 소유권 이해에 따라 토마스는 빈 민의 권리를 우선적으로 고려하여 부의 불평등 문제에 접근한다. 본고의 연구결과는 토마스의 정의론에 따른 소유권 이해가 무한한 재산 의 축적을 정의로운 것으로 본 현대 자본주의 정치경제학의 전제를 윤리적 으로 재평가할 수 있는 하나의 관점을 제공해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This paper examines how the disabled were considered in the Western Medieval Church. It centers on Thomas Aquinas, St. Louis IX, and some women mystics. The results of this research can be summarized as follows. First, a disability was not always associated with a sin in the Medieval Church. Secondly, the intellectually disabled, who lack cognitive ability to understand the meaning of the sacrament, were not excluded from the Sacrament of Baptism. Thirdly, contrary to the rigorous prohibition against the disabled performing sacred rituals in Leviticus, medieval priests were not prevented from holding their office just because of physical impairment. Finally, disabled people were not considered miserable or beneficiaries of charity but spiritually valuable and beneficial in maintaining a spiritually healthy society.
In view of our findings, the general assumption of modern authors that medieval societies saw a link between sin and disability to the extent that the Church sanctioned the abuse of disabled people turns out to be a prejudice. On the contrary, the disabled in the Medieval Church were never excluded from the order of grace. As H.-J. Stiker, the author of a classical monograph on the history of disability, said, disabled people in the Middle Ages, when compared with those in the previous and following ages, can be found under the influence of ethical and divine love.
Thomas explained God the Trinity using the entis analogia in the revelation of the Bible and didn’t try to prove it. The recognition of the Trinity was fundamentally given through revelation, yet it was exposed by means of analogies from anthropology(word and love). When he elucidated the Trinity, he used the psychological analogy of Augustine as the principle, with the Aristotelian philosophy and entis analogia and the medieval analysis of language.
He was focused on the explanation of the person in the Trinity. And The origin and relation of person, the discussion of the person itself, the exposition of the each person, the comparison of essence, relation, and origin with person, the comparison among the persons, and mission of person were discussed in the questions 27-43 of Summa Theologia I. Focusing the explanation of the person in the discussion of the Trinity, he criticized the three erroneous opinions in reference with the Trinity. First of all, the heresies of Arius and Sabellius fell into an error by understanding the procession as the outer procession. Second, Gilbert misunderstood God’s simplicity by separating the deus and divinity. He proposed the relation as auxiliary. But Thomas proposed that essence and person and relation are the same, yet they are distinct one another as the mode of human expression. We didn’t recognize God as it is, but according to the mode of human recognition. Third, he criticized Bonaventura who counted the unbegotteness as the principle of Fatherhood. He proposed the relation as the important principle of Fatherh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