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문자 기호가 도자 조형에서 어떠한 의미와 형식으로 활용되어 왔는지를 살피고, 이를 조형 디자인의 관점에서 정리하는 데 목적을 둔다. 문자는 기록을 위한 체계에서 출발했으나, 회화, 조각, 설치 등 여러 예술 장르에서 이미지와 더불어 표현 재료로 수용되면서 선, 획, 구조가 시각적 구성의 중요한 요소로 자리하였 다. 도자 분야에서도 문자는 기록, 장식, 상징을 비롯한 다양한 기 능으로 조형 디자인 전반을 이루는 요소로 활용되고 있으며, 글자 의 형태는 도자 표면의 질감, 소성 과정의 변화와 어우러져 다양한 시각적 효과를 만들어낸다. 이러한 특성은 문자 기호가 의미와 형 태가 함께 작용하는 시각 언어로 확장되는 배경이 되었고, 개념적 내용의 표현, 특정 경험을 남기는 기록적 접근, 형태의 조합과 변형 을 중심으로 한 조형적 활용 등 여러 방식으로 나타난다. 최근에는 디지털 기반 제작 방식과 인쇄 기술의 도입으로 문자 기호를 보다 자유롭게 적용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전통적 으로 축적되어 온 상감, 철화, 인화 기법은 여전히 중요한 제작 기 법이며 전사지, 실크스크린 등 현대적 공정과 결합되면서 새로운 조형 방식이 나타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전통과 현대 기술이 서 로 영향을 주며 문자 기호의 표현 범위를 넓히고 있음을 보여준다. 본 연구는 문자와 기호의 개념적 차이와 시각적 구조, 예술 전반 에서의 수용 양상을 고찰한 뒤, 도자 조형에 나타나는 문자 기호를 개념 중심, 기록 중심, 조형 중심의 세 유형으로 나누어 그 의미를 정리하였다. 또한 전통 시문 기법과 현대적 변용을 비교함으로써 문자 기호가 도자 조형 디자인으로 발전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표현 특성과 가능성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이러한 논의는 문자 기호가 도자 조형에서 장식이나 표기 방식, 의미와 구조를 함께 이끄는 조 형 요소로 자리하고 있음을 밝히는 데 의의를 갖는다.
서예는 시각으로 감상하는 조형예술로서, 특히 현대의 서예 계에서는 서예의 공간적 조형구성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 다. 따라서 본 연구는 회인(懷仁) 집자에 의한 <집자성교서>에 나타난 필세(筆勢), 체세(體勢) 등의 특징을 정리하였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결자조형(結字造型) 방면을 중점적으로 분석 연 구하여 왕희지(王羲之)의 결자 처리의 미적 취향을 환원하고자 하였다. 특히 서예의 결자조형(結字造型)과 필세(筆勢) 및 체세 (體勢)는 불가분할의 관계이다. 부동한 용필(用筆) 방식 부동한 결체(結體) 형태에 따라 모양과 미적 효과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본 고에서는 <집자성교서>에 필세와 체세, 행축선(行 軸線)에 대한 회인(懷仁)의 배치와 회인집자(懷仁集字)의 기준 을 포함하여 같은 글자를 다룰 때의 세밀한 고려를 살펴보았 다. 이에 따라 왕희지 서예를 배울 때, 진(晉)나라 사람들의 소 산(蕭散)한 자연 의취(意趣)를 깨달아야 하며 글자의 공간 조형 변화와 대비 관계를 파악하여야 함을 알았다.
본고에서는 한자라는 계열에서 서체라는 개념을 어떻게 분석에 이용하면 좋을지를 이시즈카 하루미치(石塚晴通)의 한자자체론(漢字字體論)을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이시즈카의 한자자체 론은 서체를 글자를 아우르는 표준으로서 상위에 둔다. 이것은 자료 연구의 장에서 탄생한 실지 적인 것임을 학설의 발전 과정을 통해 알 수 있다. 또한 이시즈카가 일컫는 서체는 실질적으로는 문자 체계로서의 차이에 가까운 측면이 있으며, 오늘날 동일한 글자에 대한 서기 방식의 차이로 인식하는 것과는 이질적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그러한 현대적인 감각에 기인하는 오독 사례를 지적하였다. 그런 다음 역사적인 서체와 인쇄 서체를 구별하여 논의할 필요가 있다는 점, 이시즈 카 한자자체론을 화용론적 문헌학 pragmaphilology (Smith, 2020)의 방법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음을 논하였다.
The research aims to explore the Chinese character “jì (既)” in pre-Qin period. The research focuses on the font change of jì (既) in pre-Qin period. Throughout the discussion, the understanding of jì (既), including of different fonts, such as , , can be known. We can know that the pronunciation of jì (既) has a close relationship with qì (氣), according to the use of related characters, for example, ài (㤅), jì (䊠), xì (餼) and so on. Talking about the meaning, there are seven meanings of jì (既), such as finish eating, end, whole, already, since, jì ér (既而, soon afterwards), jì yǐ (既以, farther), xì (餼, foodstuff). The results will be beneficial to facilitate understanding of academic writing materials and expand Warring States research in other aspects.
Taboo is an ancient custom in China. The taboo system was applied to the names of emperors had a long history in China. Beginning from Zhou Dynasty, until to Qing Dynasty. It is true that taboo system has caused confusion of the recording of ancient Chinese books and inconvenience to the study of historical materials, but one will be able to apply its principle to appraise the authenticity of those books and materials of one has a good grasp of it. Taboo studies also have a long history. According to Chen Yuan’s陳垣 Shi hui ju li史諱舉例,there are different ways to avoid the forbidden words, such as change the character, blank character, omit a stroke, change the pronunciation, etc. This paper claimed that besides change the forbidden word to a synonym, other ways to achieve taboos were occurred in Han Dynasty, such as “missing one stroke of a Chinese character”, “change the formation of a Chinese character”, “change the shape of a Chinese character”, etc. That means the old conclusion of Chen Yuan and other scholars may be not true. However, philologists argued that those changes are the result of the variant form of a Chinese character異體字. Scholars stated that the way to avoid a tabooed word in Han dynasty was to change the forbidden word to a synonym. In this paper, according to Louji’s 婁機 Hanliziyuan漢隸字源, Hongkuo’s洪适 Lishi隸釋, Zhou Guangye’s周廣業 Jing shi bi ming hui kao經史避名彙考, we examine the relationship between tabooed character and variant form of a Chinese character. Finally, discuss the importance of variant form of a Chinese character in the aspect of taboo studies.
The emergence and spread of the variant form of Chinese Character are related to people’s cognitive principles. The cognitive modes of Chinese Character formed by identity, assimilation, distinction and integration. On the surface, the variant form of Chinese Character appears haphazardly. It is clearly seen that there are the reason on the evolution of the variant form of the Chinese Character, which mainly lies in the active role of human perception. People’s cognitive principles determine not only the ways of the emergence but the degree of variation of the variant form of Chinese Character.
In an attempt to improve the maneuvering character of hull form renovated tuna purse seiner. A renovation was carried out on the 3 tuna purse seiner fishing vessel. To grasp the progress of maneuvering and resistance on ship B (730 ton class), new bulbous bow was only attached. The ship A (740 ton class) and C (600 ton class) were modified for new bulbous bow, enlarged slipway and rudder. And then the zigzag and the turning test were carried out. According to the turning test, the advance and the tactical diameter were improved very much for the modified ship. The sea trial was carried out for the original and modified ship A. It is showed that the results of sea trial corresponded with that of the tank test on the whole. In the result of the zigzag test on ship B, the turning ability was improved very much, but the yaw checking ability was deteriorated in just some degree. In the result of the zigzag test on ship C, the turning ability and yaw checking ability were remarkably improved. Ship C was greatly improved among the three ships for the maneuvering character of modified hull form.
한자는 오랜 동안 동아시아의 보편 문자로 사용되었으며, 한자의 사용시기는 수천년에 이르고 있다. 초기 갑골문으로부터 시작된 한자라는 문자체계는 시대의 흐름과 쓰기 도구의 변화, 인쇄술의 발달 등을 거치면서 갑골문으로부터 금문, 전국문자, 예서와 행서, 초서, 해서 등으로 발전하였다. 한자의 발달과 변화는 形音義에 있어서 많은 변화를 일으켰다. 인간 의식과 문화의 발달로 말미암아, 표현하고자 하는 ‘어휘’가 증가되었고, 이를 어떻게 표현하는가 하는 문제는 한자의 증가와 밀접한 관련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증가와 생성이 동일한 자형으로만 나타난 것은 아니었다. 지역에 따라서, 시기에 따라서, 필요에 의해서 사용자들은 동일한 의미를 담고 있는 서로 다른 형태의 한자를 취사 선택하여 사용하는데, 이는 당시 한자 사용에 있어 매우 보편적인 현상이었다. 이는 한자 사용의 어려움을 더욱 증가시키는 한편, 서로 다른 문자형을 사용함으로써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가져왔다. 역사적으로 볼 때 몇 차례의 대규모 한자 정리가 시도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한자 정리로 곧 한자 사용이 규범화하고 정형화된 것은 아니었다. 몇 번의 한자 정리가 있었음에도 한자의 이체는 부단히 생성되고 사용되었다. 이러한 현상을 학문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하면서, 이체자의 개념과 용어의 사용에 대해서는 아직도 많은 논란 거리가 있고, 그 정의에 대해서도 연구자들마다 차이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체자 연구는 한자의 정리를 통해 통일된 자형을 이용하고, 이를 통해 전통문화의 계승과 발전, 한자의 발전사를 정리함으로써 가지게 되는 共時性과 通時性, 한자문화권의 보편성과 특수성을 밝히는 연구라는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연구 과제이다. 이체자란 “문자 생활 중 동일한 어휘를 기록하는 서로 다른 자형으로, 異構字와 異寫字로 분류할 수 있다.”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이체자는 크게 광의의 이체자와 협의의 이체자가 존재하는데, 광의의 이체자는 異構字와 異寫字를 포함하는 것이며, 협의의 이체자는 異構字만을 가리킨다. 이 표현은 다른 말로 異形字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실질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다. 실제 근현대 이후 진행된 이체자 정리를 보면 단지 이체자 연구의 대상이 같지 않았기 때문에 수집된 글자가 상이하다는 문제 뿐 아니라, 이체자의 개념 규정에도 차이가 있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이체자의 정보를 수집하는데도 차이가 있어서, 기존의 여러 정보가 통일성있게 정리되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어떤 글자가 한국의 어떤 문집에서 등장하였을 때, 이 글자가 순수하게 한국의 이체자인가 아님 중국이나 일본에서 유입된 이체자인가의 고증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이런 고증이 이루어지고 있지 않으며, 그 출현의 횟수가 1회 혹은 2회 일 때 당시의 다른 저서에도 같은 형태의 이체자가 등장하는가를 살펴보는 노력도 필요하다. 이는 어떤 요인에 의해서 그 글자가 誤刻되거나, 誤寫되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체자를 판정하기 위해서는 공시적이고 통시적인 연구 성과가 하나로 묶여지고, 그 결과를 기초로 하여 이체자를 판정하여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그러한 노력은 어느 국가에서도 이루어지지 않는 듯 하다. 또한, 학계에서도 논란의 여지가 있으나 이체자의 정의와 분류를 어느 정도 합의한 후 그 기준에 근거하여 이체자를 정리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는 정자와 대표자, 광의와 협의의 이체자, 통가자, 가차자, 분화자 등 여러 한자관련 이론과 그 정의, 분류가 필요하다. 또한, 실질적인 자료를 수집하고 이를 통해 한국의 문헌 기록 속에 드러나는 여러 이체자를 고석하는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그러나, 이런 일은 한 개인의 힘으로는 불가능하다. 이 일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관련 연구자들의 참여와 노력 뿐 아니라, 국가적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실정이다.
The bureaucrat-scholars, ruling class of the Choseon Dynasty, used to build small private pavilions for rest and study for themselves. In the early period of the Dynasty, the pavilions had plain shapes with rectangular plan and simple wooden structure without any walls so as to enjoy the surrounding scenery. From the 16th century, the building form began to change into some diverse one by putting in an ondol room, an unique floor heating equipment. The pavilions also began to show regional differences by placing the ondol rooms in the floor. Myonang-jong, a pavilion occupied by a famous bureaucrat-scholar Song Soon, was built at Damyang of the southwest part of the Korean peninsula, so called Honam area, in 1533. At first, the building form followed the ordinary early pavilion shape using simple wooden structure and wooden floor. But when it was rebuilt in 1654 after burning down by war, there happened some changes. An ondol room was put in the center of the floor, of which regarded as a dominant regional characteristic of the Honam area. The change of the building form of Myonang-jong showed that it was the 17th century Honam area got the regional characteristic in the architecture of pavilio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