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행물

한국성곽학보 KCI 등재후보

권호리스트/논문검색
이 간행물 논문 검색

권호

叢書 34 (2026년 3월) 3

1.
2026.03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후백제지역의 호족세력 축조 산성은 백제의 성곽을 그대로 이용한 산성, 앞 시기의 산성을 이용하면서 증축한 산성, 완전히 새로 축성한 산성 등 3가지 유형이 나타나고 있다. 백제의 성곽을 그대로 이용한 산성은 광양 마로산성, 장수 합미산성 등과 같이 성곽의 둘레 가 500m 내외로 작은 규모이다. 증축한 전주 동고산성과 새로 축성한 순천 봉화산성 등은 그 둘레가 1km를 넘는 대형이다. 이러한 대형 성곽은 성 내부에 대형 건물지를 포함하고 있 는 것도 큰 특징 가운데 하나이다. 이 시기 체성 축조기법의 특징은 장대석을 이용한 지대석의 등장, 체성의 들여쌓기 방법, 잘 다듬은 성돌로 ‘品’자형 쌓기 등을 들 수 있으며, 그 밖에 편축식과 협축식의 축조·양 방법의 혼용법 등의 특징이 있다. 그리고 지대석에 그랭이기법을 사용하여 성벽이 밀려나지 않도록 축성하여 체성 축성의 발전된 기술 면모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새로운 기법이 적용되어 축성된 성곽들은 호족과 관련된 지방세력에 의해서 축성 혹 은 개축된 것들이며, 이 시기의 산성에서 출토된 수막새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는 전혀 보이지 않던 신형식으로 지방화된 양식이다. 통일신라의 기와양식을 철저히 배격한 새로운 양식의 수막새를 창안하여 그 지역의 독특한 문화양상을 창출하고 있다.
8,400원
2.
2026.03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대구읍성은 삼국시대 신라 달성에서 출발하여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 평지 읍성으로 전환되는 장기적 공간 재편의 흐름 속에서 형성된 역사적 공간이다. 본 연구는 대구읍성의 형성과정과 시기별 축성법의 특징을 통시적으로 검토함으로써, 대구읍성이 단순한 방어시 설을 넘어 지방 통치 전략의 변화, 행정 중심지의 재구성, 교통·물류 거점 기능의 확장과 긴 밀히 연관된 복합적 역사 공간이었음을 규명하고자 한다. 달성은 삼국시대부터 조선 초기까지 대구 지역의 치소성으로 기능하였으며, 고려 공양왕 2년(1390)에 석성으로 개축되었다. 세종대에 관아가 평지로 이전되면서 달성은 읍성으로서 의 기능을 상실하였고, 이후 약 150년간 무읍성 시기가 지속되었다. 이후 선조 24년(1591), 임진왜란 직전에 평지 읍성이 초축되었다. 선조 34년(1601) 경상감영이 대구에 상설 설치되 면서 대구는 영남 지역의 행정·군사·물류 중심지로 확고히 자리매김하였다. 축성법 측면에서 초축 성벽을 토성으로 보는 기존 견해는 재검토가 필요하다. 동시기에 축조 된 청도·성주·삼가·영천·경산·안동·상주 읍성이 모두 석성으로 조성된 점을 고려할 때, 행정 위계가 높은 대구읍성만 토성으로 축조되었다고 보기에는 설득력이 낮다. 오히려 임진왜란 과정에서 석성 외벽이 파괴·붕괴된 이후 토성처럼 인식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북벽 구간 발 굴조사에서 확인된 기저부 축성법의 차이 역시 이러한 해석을 뒷받침한다. 영조 12년(1736)의 수축은 여장의 정형화, 총안 배치의 체계화, 성돌 규격화 등 구조적 기술 혁신을 수반한 축성사적 사건이었다. 이는 『기효신서』 수용 이후 조선 후기 축성기술이 성숙 단계에 도달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준다. 고종 7년(1870)의 재수축에서는 회삼물을 활용한 여장의 전면 신축과 돈대·포루·표루의 입체적 배치를 통해 방어 기능이 한층 강화되었으며, 임노동 기반 고용체제로의 전환이라는 조선 후기 사회 변화도 반영되었다. 대구읍성은 산성 중심의 군현 방어체계에서 평지 읍성 체제로의 전환을 상징하는 유산이자, 조선 후기 축성기술의 발전 단계가 집약된 대표적 평지 읍성으로 평가된다. 또한 「영영축성 비」와 「수성비」라는 두 금석문이 현존하는 유일한 사례로서, 조선 후기 지방 행정력과 사회 조직, 노동 체계를 보여주는 탁월한 1차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6,700원
3.
2026.03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고는 진주성 촉석루를 대상으로 일제강점기 실측도면, 관련 공문, 한국전쟁 이후 복원 설계도면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여 촉석루 복원의 고증과정과 근거를 규명하는 데 목적이 있다. 촉석루는 군사·의례·교육·문화 기능이 결합된 성곽 핵심 건축물로, 전란과 소실을 반 복하면서도 지속적으로 중수·중건된 특징을 지닌다. 특히 1957~1960년 중건 과정은 1942 년경 작성된 정밀실측도면과 유리건판, 기존 기단 및 초석 자료 등을 기반으로 이루어진 원 상 복원사업으로 확인된다. 본 연구는 이러한 실증 자료를 통해 촉석루가 단순 재현이 아닌 고증에 기반한 복원임을 입증하고, 성곽 건축 복원에서 요구되는 자료 활용 방식과 고증 절 차를 체계화하였다. 나아가 개별 사례 분석을 통해 성곽 건축 복원의 진정성 확보와 방법론 정립에 기여하고자 한다.
9,8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