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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2021.09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연구는 강두송 목사의 글 “婦人問題”을 중심으로 1920년대 초 그의 여성인권 신장에 관한 관점을 고찰하고 현재적 함의와 교훈을 살펴보려는데 목적을 둔다. 그는 고린도전서 11장 2절부터 16절까지를 본문 말씀으로 설정하여 이 글을 작성했으며 1922년 일본강점기에 출판된 『宗敎界諸名 士講演集』에 게재되어 있다. 강두송의 글 “婦人問題”에 나타난 여성인권에 대한 성경적 관점들과 그 현재적 함의에 부각된 주요 논지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고린도전서 11장 2절부터 16절 말씀에 대한 그의 사적인 분석을 다루었다. 그는 이 본문에 기초하여 남녀의 인권과 인격의 동등성, 사도 바울의 고린도 여성 성도들을 향한 엄격한 훈계, 시대적 관례 순응과 온건한 개혁추진 등을 제시하고 있다. 둘째, 가정에서의 남편과 아내의 차별대우, 가혹한 오이코스(οἶκος)의 울 타리 철폐, 동등한 교육기회의 부여, 퇴폐문화 퇴치 등에 관한 담론을 살펴 보았다.
        24.
        2019.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의 목적은 20세기 영국 모더니즘 최고 시인 엘리엇과 프랑스 상징주의 최고 시인 발레리의 1920-1925년 사이의 관계를 전기비평 관점에서 조명하는 것이다. 이 논문은 주로 『T. S. 엘리엇의 서한집』 1권 (2009)과 2권(2009)에 수록된 서신들에 나타난 『크라이티어리언』 편집인 엘리엇이 발레리의 「뱀」(1922)의 마크 워들 번역시를 출판인 리처드 콥든-샌더슨과 후원자 로더미어 여사의 협조로 1923년 동지(同誌)에 최초로 출판하고, 이어서 워들의 번역시와 엘리엇의「뽈 발레리의 기법 소서(小序)」가 수록된 『뽈 발레리의 뱀』(1924)의 출판에 사무적으로 중재 하고 있다. 엘리엇의 『황무지』(1922)에 대한 발레리의 호평은 발레리의「영혼과 무도(舞蹈): 소크라테스의 대화술」(1921)에 관한 엘리엇의 혹평과 극명하게 대조된다. 찰스 휘블리와 존 헤이워드는 엘리엇과 발레리의 상호 절친한 친구들로서 그들의 존경스런 우정을 강화시키는 데에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요컨대, 6년 기간에 걸친 엘리엇과 발레리의 수많은 영불(英佛) 서한들은 엘리엇과 발레리가 편집인-투고자 관계로부터 예찬할만한 거장들의 국제적인 우정에 이르기까지 상호 강력한 영향력을 시사하고 있다.
        25.
        2017.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우리나라 근대 관광문화상품에 나타난 특징을 통해 현재 우리나라의 획일적이며 창의성이 부족한 관광문화상품의 질적 향상을 도모하기 위한 필요성에서 시작되었다. 관광산업은 한 가지만 갖춰진다고 활성화 되는 것이 아니라 분야별로 짜임새 있게 일정 수준에 도달해야 가능하다. 관광을 활성화 시키는 주요한 관광인프라 요소는 교통, 숙박, 먹거리, 볼거리, 즐길거리에 추가로 관광문화상품 같은 살거리가 빠질 수 없다. 이런 이유로 관광산업 활성화 측면에서 지난 일제강점기에 제작된 관광문화상품 속에 담긴 디자인적 특징을 도출해 관광문화상품 발전에 기여코자 한다. 연구방법은 디자인적 특징을 도출 할 수 있는 객관적 분석틀 모형을 만들고 이에 대입하여 특징을 찾아내고자 하였다. 연구범위는 우리나라의 근대디자인 자료를 가장 많이 소장하고 있는 근현대디자인박물관의 소장품 중 1920-30년대에 생산된 관광문화상품 중에서 그룹을 지울 수 있는 문화상품군(文化商品群)을 연구 대상으로 삼았다. 이에 연구내용 및 결과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인쇄 및 후 가공의 마무리 수준이 매우 높다. 둘째, 한국적 전통소재와 지역적 특징을 잘 살려 타 지역과 차별화 하였다. 셋째, 신선한 아이디어를 돋보이는 자연친화적인 상품이 많다. 넷째, 장정이나 패키지디자인에 신경을 많이 썼으며 사용설명문이 첨부돼 있다. 이상과 같은 연구 결과로 우리나라 관광문화상품디자인에 자극제가 되어 참신한 관광문화상품들이 생산되길 기대한다.
        26.
        2015.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은 근대의 세례를 받은 기독교 신지식인들이 3.1운동 이후 새롭게 형성된 ‘제한된’ 담론공간 안에서 젠더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어떤 방식으로 참여했는지 고찰한다. 젠더 이슈는 정치적 자유가 허용되지 않았던 일제 식민체제 하에서 근대사회에 대한 사회적 논의를 본격화시킨 촉매제 역할을 했다. 기독교 신지식인들은 새로운 변화에 ‘기대’와 ‘불안’을 동시에 표출하며 ‘근대’와 ‘전통’의 충돌에서 발생되는 파열음을 도덕적 균형으로 최소화하려는 전략을 보여주었다. 개개인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체의 관습과 전통을 거부하는 자유주의 여성들에 대해서는 소비주의와 결합된 도덕적 일탈과 가정으로부터의 이탈을 경계하며 ‘가정’이야말로 남녀평등의 근간이 될 수 있음을 강조했다. 반면에 사회적 불평등에 대한 문제제기와 이에 대한 근본적 변화를 요구한 사회주의 여성들과는 이념적 급진성에도 불구하고 연대의 틀을 모색하고 ‘남녀평등’이 실현된 문명사회에 대한 이상을 공유하고자 시도했다. 이를 기반으로 여성해방논의가 더욱 확장되었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탈정치화된 문화지형의 틀 안에서 생존을 모색했던 만큼 기독교 신지식인들의 젠더 논의는 근본적인 인식의 한계를 드러내기도 했다. 우선 ‘문명사회의 실현’을 근대의 이상으로 제시하는 과정에서 서구적 근대의 사상적 종속을 인식하지 못한 채 서구 중산층의 근대적 욕구를 근대사회의 이상적 가치로 수용했다. 이는 서구사회에 대한 동경으로 이어졌다. 즉 그 어떤 정치적 자유도 결코 허용되지 않았던 식민지 현실에서 ‘남녀평등’과 ‘여성해방’을 중립적 근대가치로 치환시킴으로써 평등사회에 대한 갈망과 정치적 해방의 욕구를 서구문화에 대한 동경으로 해소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했다. 또한 식민지 조선에 대한 현실 인식에 있어서도 일본과 미국을 포함한 세계열강들의 식민주의 확장과 식민체제로부터 파생된 억압적 현실을 간과한 채, 그 근본원인을 조선의 ‘근대적 결핍’에서 찾았다. 이들은 조선여성들의 의지부족이나 미성숙한 정신 또는 교육환경의 낙후성 등을 조선여성운동의 저해요인으로 지목했다. 하지만 자신들 스스로가 식민지 조선에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던 ‘식민화된 근대’의 주요채널이 되고 있음을 인식하지는 못했다.
        27.
        2014.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은 젠더이슈에 대한 논의가 그 어느 때보다 치열했던 1920-30년대 기독교가 젠더담론 형성과정에 어떻게 관여했는지에 관한 연구이다.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며 근대의 아이콘으로 떠오른 신여성의 등장과 ‘여성해방’의 전위를 자처한 사회주의 여성해방론과의 경쟁에 직면하여 기독교가 선점해왔던 ‘남녀평등의 종교’라는 이데올로기적 ‘진지’를 어떻게 지켜나가고자 했는지에 초점을 맞춘다. 더불어 「신학세계」, 「신학지남」, 「기독신보」 등 대표적인 기독교 정기간행물들에 실린 글들을 분석하여 일제 식민치하에서 형성된 기독교의 근대담론이 저항담론이 아닌 서구적 근대이념에 종속된 또 하나의 식민담론이었음을 밝힌다. 기독교계는 선교를 위협하는 ‘신사상들’로부터 기독교 대중들을 지키고 기독교의 외연을 확장해나가기 위해 새로운 담론전략이 필요했다. 대중과 쉽게 공감할 수 있는 전기장르를 통해 ‘남녀평등’과 ‘인류애’가 기독교 정신에서 나온 것임을 설파하고 이를 실현한 역사적 모범으로 영미권 여성들을 소개했다. 다음으로 성서와 기독교 전통 안에서 두각들 드러냈던 여성들의 역사를 여성의 눈으로 새롭게 소개하면서 기독교야말로 남녀평등의 종교임을 재차 확인시켰다. 또한 개인의 도덕성 계발의 강조는 조선이 일본의 식민통치를 받고 있었던 상황에서 사회정치적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대중교육을 지속할 수 있는 기독교가 취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이었다. 덕분에 기독교는 ‘남녀평등’이 근대사회의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정신임을 주지시키고 젠더에 대한 사회적 논의에 불을 지피는데 공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여기에서 드러난 기독교계의 담론전략은 일본의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에서 또 다른 방식의 식민화를 초래하는 종속구조로 작용할 수밖에 없었다. 우선 자신들의 역사로부터 단절을 강요받고 있던 조선의 대중들이 영미권 역사와 영미권 여성들의 업적을 근대의 이상적인 모델로 동경하게 만들었다. 또한 일제의 억압정치와 제국주의적 야만성을 외면한 채 ‘자발적 헌신’과 ‘이타적 희생’만을 강조한 담론전략은 식민체제에 대한 저항력을 약화시키고 억압적 현실에 스스로 순응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손’으로 작용했다. 마지막으로 교회의 젠더 논의에 있어 선교사들의 신학적 성향이 가장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는 것을 허용했다. 이는 조선사회가 처한 현실과 교회의 실질적인 문제들이 논의의 중심에서 배제되는 결과를 초래했다.
        28.
        2011.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독일 음악이 바그너의 영향으로 막다른 골목에 도달했다는 판단이 독일의 젊은 작곡가들 로 하여금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19세기 음악을 더 강하게 거부하고 비판하도록 하였다. 특 히 바그너 이후 작곡된 오페라의 감각적 자극성이 문제로 대두되면서 음악의 감각적 특성에 대한 거부감이 극단적으로 표출되었는데, 이러한 거부감 밑바탕에는 음악의 감각적 특성에 대한 고정관념이 깔려있었다. 흥미롭게도 같은 시기 19세기 음악에 반대되는 음악으로 재즈 가 관심을 받기 시작했고, 이 때 재즈의 감각적인 특성이 유례없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본 논문에서는 19세기 음악의 감각적 특성이 1920년대 독일에서 어떻게 비판되었는지 살 펴본 다음, 재즈의 감각적 특성이 어떻게 받아들여지고 평가되었는지를 알아보고, 재즈에 관 심을 보이고 전폭적으로 자신의 음악에 수용한 쿠르트 바일(Kurt Weill, 1900-1950)의 작품 을 통해 새로운 음악을 추구했던 작곡가들은 음악의 감각적 특성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트릴 수 있었는지에 대해 고찰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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