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research was undertaken to examine Masan’s regional food service industry, which experienced drastic changes due to liberation and the Korean war. Analysis of restaurant advertisements in ‘Masanilbo’ revealed a total of 92 restaurants during this period. The numbers of restaurants classified by the time periods are 18 (1946 to 1950), 27 (1951 to 1955), 17 (1956 to 1960), and 30 (1961 to 1966). ‘Gomguk’ gained popularity in the early 1900s and became a speciality of Masan, resulting in the appearance of numerous Gomguk restaurant advertisements. After independence, Japanese foods were predominant in Masan since the population was used to eating Japanese dishes during the colonial era. Moreover, there was a major influence of the people who returned to the homeland. Masan was the place for refugees during the 6.25 war, resulting in the popularity of ‘Naengmyeon’; advertisements largely displayed ‘Pyeongyangnaengmyeon’ during the early 1950s, and ‘Hamheungnaengmyeon’ during the early 1960s. Western food advertisements usually introduced ‘Dongaseu’ and ‘Kareraiseu’, which were deeply influenced by Japanese culture. These various contributions resulted in alterations in the food menu, such as the rise of fusion food which is not bound to any nation, spread of Japanese food culture, and popularity of ‘Naengmyeon’.
As China enters the 21st century, China is strengthening its position as a world power in an international position. However, there are still problems with Three Agricultural(Agricultural, Rural, Farmer) and unbalanced urban and rural villages. China, as one of the largest and most populous nations, values the development of three farms. Strategies such as “The Construction Of New Socialist Countryside” were a policy to solve rural problems, But they were not enough to achieve breakthrough results. In order to achieve more effective results, the Central Committee of THE STATE COUNCIL proposed The Document No.1 of “Opinion on the Implementation of The Rural Revitalization Strategy” in February 4, 2018 and published “The Rural Revitalization Strategy (2018-2022 )”. The Yanbian region, which is the subject of this study, is the home of Korean-Chinese tribes and the Korean autonomous region. As a minority of Chinese ethnic minorities, the Korean-Chinese has their own unique culture, and Yanbian has distinct regional characteristics. As The Rural Revitalization Strategy was raised, Villages is showing positive change in accordance with policy implementation in Yanbian. This study analyzed the current status of policy implementation of The Rural Revitalization Strategy in Yanbian area and analyzed the policy contents and performances based on the of Yanbian Daily News. Based on the results of the analysis, I would like to help in suggesting a more rational development direction and building the villages.
This study, drawing on critical discourse analysis methodologies, aims to show how Chinese international students are discursively represented in a Korean newspaper. Articles from the Chosun Ilbo were collected between 2008-2016. The media has framed social images on Chinese International students quite often from the Beijing Olympic torch relay in 2008. Following van Dijk’s (1998) ideological theory, macro- and micro-level of textual analysis were conducted. It was found that the two groups of ‘us’ and ‘them’ (Chinese international students) were dichotomized. It was enforced by discursive strategies such as conjugation, over-lexicalization, and delegitimization. As for the micro-level analysis, drawing on Halliday’s (1985) systemic functional grammar, three dimensions of analysis (ideational, interpersonal, and textual) were conducted to uncover the power relations under the linguistic forms. This study concludes that Chinese international students were represented by the ideological square of positive self-presentation and negative other-presentation.
This paper deals with architectural activities related to Korean society in Jichang district in North East China, focused on the articles of Manseon-ilbo published there during the Japanese colonial period. Construction-related contents in the area closely connected with topical interest, publicity, and enlightenment as a local media source provide positive grounds about pending issues in colonial situations.
This paper handles with articles issued in the 1940's newspapers just before the Pacific War. At that time Japanese enter in the Chinese continent, and construct a stable basis in the intimate association with Germany and Italy, countering against the United State.
Among articles regarding architecture, most of contents are based on healthcare and public facilities, and urban planning. Overwhelmingly the most popular articles are about new constructions of educational facilities and residential matters. The shortage of goods and the excessive concentration of population resulted in urban and house problems, which were particularly much more serious in Korea society. Such social atmosphere made all activities regarding building constructions, in particular educational facilities, in civil level rather than the helps of the Japanese colonial government. Thus, through education and house matters we can read a slice of Korean society to survive in the colonial environment of Jichang district.
This study examines the details and characteristics of prizewinning plans of Cho-Sun housing plan competition promoted by Daily Cho-Sun Company during Japanese colonial period. The main features of Cho-Sun housing plan competition were that the competition held with an application of popular newspaper readers and a judging committee was composed of only Korean architects, especially Park, Gil-Ryong as the president of the board of examiners. Cho-Sun housing plan competition put ideological factors for the improvement of living as like advancing to the cultured(modern) life, respecting for family life, respecting for privacy of family members and so on. First of all, the competition suggested the direction of the improvement of dwelling spaces which focused on making harmonious home life. This study found common characteristics of prizewinning plans of Cho-Sun housing plan competition as the result. First, Cho-Sun housing plan competition introduced a centralized house plan as a model of the improvement of small-sized houses. Second, architectural orders of western or japanese style mingled with ones of korean traditional style in prizewinning plans as entrance hall, western style reception room(parlour), maid's room, bathroom for example. And a manner of seating using chairs was brought into the style of living which would be assumed in the prizewinning plans. Third, traditional way of composing dwelling spaces was maintained, receiving the characteristics of dwelling spaces of japanese style simultaneously, which central corridor was put at the heart of house for improving arrangement of rooms and flow lines. Fourth, lavatory and bathroom were placed inside of the house.
현재 ‘김교신 일보(日步)’(김교신의 비공개 일기)는 30여 권 중 단 두 권만 남아 있다. 김교신이 1938년 2월 자신의 모든 일기를 불태워버린 것으로 알려져 왔기 때문에 두 권의 일기가 생존하게 된 이유는 아무도 설명하지 못하는 미스터리가 되었다. 그런데 최근 전인수와 류대영은 김교신 일보가 생존하게 된 이유를 새롭게 제시했다. 이들은 일기를 모두 태웠다는 기존의 견해가 잘못되었다는 점에서 동의했으나 일보의 보존 가능성에 대해서는 미묘한 입장차를 보였다. 전인수는 김교신이 일보를 전혀 소각하지 않았다는 입장이고, 류대영은 1930년 5월 이전의 일보만을 소각했다는 입장이다. 이에 본고는 김교신 일보가 어떻게 생존하게 되었는가에 대한 견해들을 재검토하고, 두 권을 제외한 대부분의 일보가 역사 속에 사라진 계기가 무엇이었는지를 추적하였다. 본고는 김교신 일보가 1938년 2월이 아닌 1942년 성서조선사건 때 압수 수색으로 사라졌을 가능성을 제시하였다.
최근 디지털 기술의 발달로 인한 시장 환경과 미디어 패러다임의 변화로 인하여 브랜드의 관계성이 매우 다양하고 복잡해 졌다. 이러한 환경에서 브랜드 간의 관계, 소비자와 브랜드 간의 관계 또는 기타 다른 이해관계자들과의 관계 등에 의한 브랜드 연상으로 얻을 수 있는 브랜드 가치와 리스크를 제대로 파악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브랜드 특수성은 대표 적으로 브랜드 자산 가치를 부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여기에서 리스크가 발생하면 기업이나 브랜드 입장에서는 큰 손실과 손상을 입을 가능성이 높다. 본 논문에서는 브랜드 특수성에 대한 선행 연구에서 그 특성을 이해하여 최근 일어 난 브랜드 리스크 사례에 대해 조사하여 어떤 관계성이 있으며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지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이를 통해 향후에는 모든 기업 또는 조직이 갖고 있는 브랜드를 다변화된 환경에서 보다 효과적인 브랜드 관리 전략을 구축하는데 필 요한 브랜드 리스크 개념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동아일보”는 우리나라 최초의 국한문 혼용체“ 한성주보”(1886) 의 창간 이래 , 민간신문사와 출판사에서 본문용으로 한글 4 호 활자가 가장 많이 사용되어 왔던 , 일변도에서 변화를 추구하였다 . “ 동아일보”는 1929 년 대대적으로 신활자 개발과 최신식 인쇄시설의 확충를 계획했다 . 이 활자의 서체는 한국 최초로 일반인에게 공모하여 , 이원모 원도로 제작되었다 . 이 활자는 제작 후에도 2 년간의 실험기간을 거쳐서 완성도를 높이는데 노력하였다 . 모형활자와 종자의 조각 등은 일본에서 제작되었다 . 그리고 , 당시 식민지시대의 특수한 상황에서 한글 활자 제작을 위하여 명확한 컨셉은 , 한자와 한글의 혼용체의 사용 의도에 따라 , 한자의 명조체에 어울리는 한글 명조체의 개발이었다 . 한국 근대 인쇄 활자사에 있어 ,“ 동아일보”는 1933 년 한국 신문사 최초의 자사 전용의 명조체 한글 활자 셋트 ( 초호 , 1 호 , 3 호 , 5 호 , 7 포인트 ) 와 고딕체 2 호 , 4 호 활자가 탄생하게 된것이다 .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그 가치가 경시되고 있다 . 따라서 , 본 연구는 언제 , 어디서 , 누가에 의해 , 어떻게 제작 되었는가 질문을 가지고 , 자료조사의 실증적 검증과 타이포그래피의 분석을 통해서 명확히 정리했다 .
한국정부는 한·일간 독도영유권 논쟁에 대해 종지부를 찍었지만, 일본은 매년 방위백서를 발간하면서 독도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종래 한국정부는 ‘조용한 외교’를 기조로 하여 강경책과 유화책을 병행하면서 일본과의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러면서 독도의 배타적 영유권에 대한 특별한 가시적 조치를 취하지는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광복절을 5일 앞둔 2012년 8월 10일 전격적으로 독도를 방문해 세계의 주목을 받았다. 그는 독도에서 ‘독도는 우리땅’임을 천명하여 독도의 실효적 지배 강화를 위한 강한 의지를 보였고, 국민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이러한 정치적 행위가 국익을 위해, 독도의 배타적 지배를 위해 절실한 것이었는가 하는 점을 중심으로 대통령의 독도방문을 바라보는 시각은 다양하다. 본고는 영남지방의 대표 신문인 ≪매일신문≫과 ≪영남일보≫를 대상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독도방문에 대한 기사의 보도 유형을 분석했다. 이 과정에서 독도방문의 배경과 저의를 알아보고자 했다. 일왕사관 발언 등 쟁점별 보도 경향을 분석한 것은 언론의 취재와 기사 작성, 그리고 저널리즘의 사명감 등을 동시에 파악하려는 목적이었다. 양 신문은 지방신문이라는 동질성이 있는 반면에 각기 고유성과 정체성이 있었다. 독도 관련 기사를 정치적 성격으로 배열하고 보도하는 경향과 기사의 수에서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또한 대통령의 독도방문에 대해 환영일색의 보도를 유지하면서도 그 한계와 문제점을 지적하기도 했다. ≪매일신문≫보다 ≪영남일보≫가 상대적으로 중립과 부정적 입장을 보였다. ≪매일신문≫이 ≪영남일보≫에 비해 연합뉴스 기사가 적은 것은 기사의 재생산 문제와 관련이 있었다. 일왕사과발언과 위안부 등 역사인식의 기사 보도에서도 일방적인 긍정과 중립적 입장의 상대적 차별성이 있었으며, 영남지역민들의 반응을 보도하는 면에서도 이러한 점은 드러났다. 양 신문은 지방신문으로서 가지는 공통된 입장과 신문사 고유의 정체성을 드러내면서도 대구경북지역민들에게 정보를 제공하면서 언론의 역할을 다하고자 했다.
신문은 정책, 보건의료, 정치, 경제, 문화, 사회와 관련된 뉴스를 심층적으로 전달하는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매체로써 많은 독자층을 확보하고 있다. 세계 신문들은 경영 전략으로 취재와 기사 작성에 대한 편집 방침뿐만 아니라 편집디자인 지침을 갖추어 가고 있다. 본 연구에서는 등소평의 개방 정책 이후 세계 경제와 미디어 시장의 중심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중국의 대표적인 보수신문인 인민일보와 진보신문인 중국청년보의 1면 편집디자인을 연구하였다. 전국인민대표대회가 개최되었던 3월5일(월)부터 11일(일)까지 1주일간의 1면 구성요소인 제호 등의 헤드디자인, 모듈러디자인, 서체, 색채, 부호, 선과 여백을 디자인 관점에서 분석하였다. 그 결과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의 보수신문과 진보신문간의 논조에 따른 편집디자인의 차이는 거의 없으며 디자인 지침 또한 거의 적용되고 있지 않았다. 이는 중국이 디자인 형식을 유지하는 것보다 공산당과 주요 지도층 인사와 관련된 기사의 내용을 중요하게 간주하는 사회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신문들은 편집디자인 지침을 재정비하고 준수해야만 중국이 세계 미디어 제국의 목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