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논문은 중국 강소성 소주 운암사 탑과 서광사 탑, 그리고 절강성 금화 만불탑 안에서 발견된 소형 금동불상의 종류와 상태, 그리고 상들이 탑 내 봉안된 의미를 탐색한 글이다. 오대~북송 초, 즉 10세기 후반~11세기 중엽에 조성된 세 탑 안에서는 탑의 제3층 탑신부 혹은 탑 아래에 조성된 석실에서 각기 6구, 9구, 그리고 60여 구의 금동불이 수습되었다. 이 시기 불탑 안에 소형 불상이 안치되어 있음은 잘 알려진 사실이나 안치된 상의 성격이나 그 의미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논의가 이루어지지 못했다. 본 논문은 상의 상태와 제작 시기 를 조사하여 대체로 이들은 탑보다 적게는 50년, 많게는 500여 년 앞서 제작되었으며, 광배 가 결실되거나 상의 일부가 파손된 채 안치된 것이 많음을 확인했다. 파손된 옛 불상을 탑 안에 넣은 이유를 탐색하기 위해 唐宋전환기라 불리는 이 시기 두드러지게 보이는 佛事의 신경향을 주목했다. 개인적인 발원을 담은 소형 불상의 제작이 감소함과 동시에 불상이나 탑내 다양한 공양물을 넣는 불사가 크게 유행했으며, 파손되었을 뿐 아니라 제작된 지 오래되 어 발원의 의미가 희미해진 옛 불상을 매장한 관습이 그것이다. 파손된 불상을 수리하여 사 찰의 경내에 보관하거나 소형 금동불을 불전에 진열해 놓았던 唐 이전의 관습 대신 오래된 상들을 매장하는 것이 당시 중국 각지에서 유행했는데, 江浙 지역에서는 그러한 불교 교장 을 조성하는 대신 탑이라는 공간 안에 옛 금동불을 모아 넣었을 것으로 보았다.
This study examines the process of the introduction of stupa, which has originated in India, to the Xinjiang Uyghur region and the features of the stupas in the Xinjiang Uyghur region in detail. This study examines the layout of the buildings in temple compounds and the types, structural elements, and construction methods of the stupas in the Xinjiang Uyghur region in particular by looking into the content of the Da Tang Xi Yu Ji and remaining stupas, which provide examples of stupas at the time. This study finds that due to the characteristics of dry deserts, stupas in Xinjiang Uyghur region, where assimilation between Eastern and Western cultures is seen, were mostly made by pressing clay into a mold and had no interior spaces. Also, construction materials and techniques had been developed and improved in a way that enabled stupas to combat the challenging desert conditions. However, the stupas in this region differed significantly from the wooden tower-like stupas discovered in central China(zhongyuan 中原). The shape of the dome of most stupas in Xinjiang Uyghur region was chosen under the influence of the Gandharan style. Some of the stupas in the region have taken the general forms of the wooden stupas and the others have taken many forms, from cylindrical drums to towers. Also, there have been forests of stupas and stupas similar in form to chaityas and stupas of Vajrayana. Such different forms were transformed and modified through regional history and it was related to the peoples and cultures that produced and used stupas. Stupas evolved into distinct forms in Xinjiang Uyghur region in this way.
Pagodas in Myanmar can be largely divided into Zedi and Pato. Zedi is a developed form of the early domed pagodas in India and Sri Lanka, which can be found in the introduction of Buddhism in Myanmar and the comparison of early pagodas in India, Sri Lanka and Myanmar. On the other hand, Pato is where statues of Buddha were enshrined, which is why many scholars referred to it as a temple. However, this study proposes that Pato shall be referred to as a temple-style pagoda in a form unique to Myanmar, based on the origin of Pato, definition of pagodas, and Sarira Enrichment Record of Pato. Moreover, it seems more appropriate to name this type of structure Stupa Temple(塔殿) or Stupa Shrine(塔堂) rather than a Buddhist temple(佛殿) or Buddhist shrine(佛堂) for clear distinction. Pato, or temple-style pagodas, has a Śikhara-style structure at the center like Ananda Pato upon entering the Pagan (Bagan) kingdom period, on which Zedi-style structures are built. As a result of examining the integration of various Buddhist schools and religions focused on Theravada during the period of King Anawrahta and King Kyanzittha, the Śikhara-style structure is a symbolic representation of the fact that Theravada embraced Hinduism. The common features shared by pagodas in Myanmar are the centrality of place and the verticality of yǎngtiān (looking up to the sky) in terms of shape. All temples are placed at the most important and central space, and their forms represent strong religious yǎngtiān and verticality. These are the features that stand out most among various pagodas in Buddhist countries.
This paper examines the pagodas during the Bagan period, which are thought to be most valuable among those in Myanmar. They have not been sufficiently studied, in spite of their high Buddhist status. It considers the contemplation of Pato, their formal characteristics in the Bagan period and the formal categorizations of pagodas in the same period. Thus, following seven kinds of conclusions are derived: first, researchers provide opinions to the Pato which should be regarded as the Buddhist shrine-type of pagoda with a unique Bagan form, symbolically indicating that Theravada Buddhism incorporated Hinduism; second, the terraces were characteristic components in pagodas, during the Bagan period, which were built after the enthronement of King Anawratha and are thought to symbolically express the wish to widely spread Theravada Buddhism; third, Shwesandaw Zedi seems to affect not only Shwezigon Zedi, a representative standard form of pagoda in Myanmar, but also Ananda Pato; fourth, it is thought to be proper to examine the terraces by classifying them into lower, central(from pedestals to Angryeon and Bokryeon) and upper part, if it intends to divide a pagoda with bell-shaped body on the terraces during the Bagan period, into three parts; fifth, the Pato may be identified as a form of pagoda during the Bagan period, and such a form can be classified as that of Sikhara on the rectangular terrace; sixth, forms of Myanmar’s pagodas can be classified into fourteen kinds of them, and they may be also grouped into transmitted, general and special type; and seventh, on the basis of the findings, it is thought that the pagodas during the Bagan period may be classified into six forms, and they can be largely categorized into transmitted, general and special type.
As Sri Lanka Stupa had been affected by Indian stupa directly, understanding Sri Lanka Stupa is important to know about the flow of Buddhist Art History, which is showing the variation of Initial Buddhist stupa. Due to invasions and disasters, all Sri Lanka’s Stupa collapsed and became random mound. After restoration works, Stupa shape changed dramatically from the Initial shape to Existing shape. Since it is hard to find out how Initial stupas were like, Sanchi Stupa needed to be an example for the comparative study as an Initial shape.
Sri Lanka Stupa have Square foundation and 3 Basal rings that are supporting the Main Dome. Entrances are on all 4 sides, Railing and Torana(gate) has never found in Sri Lanka stupa. Sri Lanka stupa has been classified with the shape of Dome into 6~8 types according to 『Vijayanta Potha』, the Ancient Buddhist Description, and described by several researchers confusingly. With the inconvenience of using unfamiliar words and irrational gap between the Initial Sri Lanka stupa and Existing Sri Lanka stupa, proposing new classification of Sri Lanka Stupa is necessary. Existing Sri Lanka Stupa can be classified into 4 types : which is ➀Bell type, ➁Pot type, ➂Mound type, ➃Bubble type. This suggestion is for further studies to use Easier and shorter words to describe the types and make it reasonable to use, since the current classification includes 3 stupa types even there is no case for any of them. Restrict Stupa Classifications within existing Sri Lanka Stupa is needed because the current classification had been continued for hundreds of years without any adjustments. Bell type is mainly located in Anuradhapura. Pot type and Mound type is only found in limited area, and Bubble type is located in most area of Sri Lanka.
본 연구는 불탑 중 백제 말기 건립된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조선 중기 보은 법주사팔상 전과의 계통사적 구조체계의 상관성을 고찰한 것으로 다음과 같은 결론을 도출하였다.
첫째, 익산 미륵사지 구층석탑은 내부에 심초석(心礎石)이 설치된 것으로 보아 심주와 사천주가 코어구조체계(core structure system)인 누각형 탑파로 상층기둥의 위치에 따른 체감율이 큰 것으로 보아 퇴칸은 칸물림방식의 전각형이 채택된 절충형식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둘째, 보은 법주사 팔상전은 목탑의 기본적인 구성요소인 옥심주와 사천주가 코어 구조 체계로 채용되고, 주변 협칸과 퇴칸은 전각형 칸물림방식의 중층구조기법을 부차적으로 채택하여 익산 미륵사지 석탑과 같은 계통의 체감율이 큰 특징의 절충형 목탑이라고 할 수 있다.
셋째, 백제시대 불탑구조는 누각형(평좌층식, 포구조식)과 누각형에 전각형을 채택한 절충형으로 대별된다. 불탑은 필요에 따라 탑신의 높낮이를 비례적으로 조절하여 완성미를 높였으며, 처마길이를 충분히 확보함으로써 건축물의 볼륨감(massing)이 풍부한 기능성이 강한 건축물을 축조하였다.
넷째, 백제시대에 창안된 새로운 불탑형식으로서의 절충양식은 백제 말기에 시원하여 문화통치기인 통일신라시대와 지방문화를 정책적으로 장려한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 중기 보은 법주사 팔상전으로 끊임없이 이어져 계승된 백제 고유의 불탑양식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논문은 남북조시대 사람들이 당시의 불상을 바라보던 시각에 관하여 고찰한 것이다. 인도에서는 사원의 중심이 스투파였다. 문헌에 의하면 붓다의 열반 후 스투파는 8기가 건립되었지만, 아쇼카 왕이 이 중의 7기를 해체하여인도전역에8만4천기의 불탑을 세웠다고하였다. 이것은 인도 전역의 거의 모든 불탑은 사실상 아쇼카 왕 시절에 만들어졌고 그 안에는 진신사리가 봉안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남북조시대에 사원을 건립하면서 불사리가 필요했지만, 역사적으로 이를입수하기란거의불가능에가까운일이었을것이다. 때문에 集神州 三寶感通錄에 기록된 바와 같이 아쇼카 왕이 8만4천탑을 세울 때 그 일 부가중국에세워졌고, 그때의사리가발견되어 중국의 초기불탑들에 봉안된 것이라는 설화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설화만으로는 더 많은 불사를 건립하는데 있어한계에부딪쳤을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해결책은 사리를 대체할 수 있는 물건으로도 탑을 세울 수 있다는 개념이었는데, 그러한 아이디어는 석가성도지인 보드가야의 중층누각형식의 마하보디 사당에서 비롯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마하보디 사당은 사리가 아닌 석가성도상을 봉안한 건축물이었는데, 당시 보드가야를 방문한 중국의 구법승들은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특히 현장과 같은 승려는 장안 慈恩寺大雁塔을 세울 때 이 마하보디 사당을 염두에 두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탑 대신에 전혀 다른, 보다 쉬우면서도 직접적으로 숭배의 대상이 될 수 있는 새로운 아이템을 개발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불상이었다. 인도에서도 불상이 있었지만, 이는 주로 탑을 장엄하는 용도였으며 혹, 사리를 봉안한 불상이 불탑만큼 존숭을 받기는 했지만, 그것은 그 안의 사리 때문이었지, 상 자체의 영험함 때문은 아니었다. 그러나 이러한 불상들 역시 불사리처럼 진정성을 획득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에, 아쇼카 왕의 조탑 설화와 마찬가지로 아쇼카 왕 조상 설화가 중국에서 만들어졌으며, 소위 아쇼카 왕상이라고 하는것은 오래 전에 중국에 전래되어 묻혀 있다가 새롭게 발굴되어 남북조 시대 사람들 앞에 다시 현현한 것으로 서당시 사람들에게 믿어졌던 것이다. 또한 이러한 상들은 다양한 기적을 일으켰으며, 만약 똑같이 복제되는 경우, 원본과 같은 기적을 일으키기도 하였다. 따라서 이미지를 복제함으로서 영험함도 복제할 수 있다는 이러한 경향은 보다 쉽게 불상의 진정성을 널리 유포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여기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남북조시대의 일부 불상들은 아쇼카 왕이 만든 상, 혹은 그 상을 복제한 상으로 인식되었다는 점에서 이들 불상들은당시에제작된것이아니라, 훨씬오래전에제작된불상, 혹은오래된 양식으로서 당시 사람들에게 인식되었을 것이라는 점이다. 때문에 이들 불상이 보이는 양식은 당시의 양식이 아니라, 당시보다 더 오래된 양식으로 보이기 위한 의도된 고식, 혹은 고법이라는 점에서 이 시기의 양식을 倚古양식으로 불러보고자 하였다. 한편 이와는 별도로 우다야나 왕 조상설화도 전래되었는데, 이것은 우다야나 왕 시절에 도리천에 장인을 올려 보내 석가모니의 진용을 모사해 와서 조성한 상이므로, 석가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낸 조각으로서의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이는 말하자면 석가의 초상으로서 사실주의를 어느정도 바탕에 두어야했던 것이다. 이러한 개념에서본다면불교미술에서 사실적 양식이라고 언급해 왔던 인도의 굽타 양식이나 이를 받아들인 북위시대 운강석굴 초기의 불상 양식들은 서양의 사실주의와 구분하여 眞容양식이라고 불러도 좋지 않을까 제시해 보았다. 결국 이러한 고찰을 통해 단순히 인형에 불과할 수도 있었던 불상들에 사리를 대신한 진정성을 부여하기 위해 아쇼카 왕 설화와 같은 역사적 전통을 만들어 내거나 우다야나 왕 설화와 같은 시각적 전통에 의지해야 했던 당시의 상황을 짐작해 볼 수 있는 것이다.
중국 불탑은 불교 전래와 함께 인도 불탑이 서북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거쳐 중국에 전해지면서 시작되었지만 인도 불탑과는 전혀 형태를 달리 하는 목조 중층누각형의 모습이어서 그 기원이 주목된다. 중국의 불교 건축은 東漢代불교 전래와 함께 불탑 건축으로 시작되었으며 3세기 이전의 불탑은 3층 이하의 규모로 불사리를 모신 탑묘, 불상을 모신 佛殿, 불교 강연과 행사를 하는 강당, 승려들이 머물 수 있는 승방의 기능을 함께 하는 탑 중심 사찰로 건축 형태와 배치는 전통적인 祠堂과 예제 건축과 닮아 있었다. 탑의 모습도 笮融의 부도사, 四川省昇邡화상전의불탑 형상으로보아 처음부터 중국 전통 목조 건축으로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점도 역시 초기 중국 불교의 격의적인 성격과 불탑의 祠廟적 이해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이로 인해 중국에서의 불탑은 전혀 새로운 모습을 띠고 출발하게 되었다. 4세기 이후 중국은 불교 전래가 본격화되고 많은 대, 소승의 경전들이 번역되면서 격의 불교적인 수준을 벗어났으며 불교가 국가에 의해 장려되면서 비약적으로 발전하였다. 佛事에도 많은 사람들의 참여가 이루어지고 특히 아육왕경의 번역과 유포에 따라 아육왕탑의 조성과 사리 신앙이 고조된다. 이러한 불교의 질적, 양적 확산에 힘입어 아육왕탑의 등장, 불탑의 고층화라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며 사찰도 강당, 불전, 탑, 대문 그리고 승방 등의 다양한 부속 건물을 갖춘 모습으로 정비되기 시작한다. 이 시기 사찰은 규모가 커지고 불탑은 고층화된다. 5-6세기 남북조시대는 서역을 통해 전래된 간다라 탑의 영향으로 목조누각형 다층탑으로 발전하게 된다. 작리부도로 알려진 카니슈카 대탑을 비롯한 간다라, 서역의거대한다층탑과 전통목조 중층누각탑 형식이 결합하여 고층화, 각층 탑신의 상부가 곡선형 尖拱이나 梯形으로 표현되는 감실과 불상장식, 그리스와 페르시아풍 기둥장식 등의 외래적 요소가 나타나는 새로운 모습으로 발전하였다. 이렇게 간다라 양식이 짙게 반영되었던 북위시대 목조 중층 누각형 불탑은 수, 당대를 거치면서 점차 외래적인 요소들이 사라지고 각 시대의 중국적 건축 요소가 강화되면서 중국 고유의 목조 누각식 다층탑 양식으로 완성되었다.
As the corner of wooden pagoda forms the roof by closely bordering left and right eaves on the various purlins and angle rafters, it is designed for every face to be recognized as front whose structure system increases load to bear proportionally. The corner of wooden pagoda is inseparable with the corner bracket set as it becomes stable thanks to the corner bracket set structurally and load burden under restrained structure makes the corner bracket set really important. Accordingly, this study could figure out some facts by analyzing corner bracket sets of Palsangjeon of Beobjusa Temple in Korea, Seokgatap of Bulgungsa Temple in China and Ojungtap of Beobryungsa Temple in Japan which were constructed with pure wooden structure. This study demonstrated that corner bracket set played a pivotal role in keeping balance of concentrated load of corner (corner of opening) in each floor that contributed to the stability of wooden pagoda structurally despite multiple duplications of floors and also figured out the outfit of corner bracket set was subject to the floor type and the cross section of Gongpo installed on top of Pyeongju. Wooden pagodas in 3 countries were two floor types of octagon and square, and employed different connection method between upper and lower floors. The difference between floor and duplication method determines the method of corner, but even different methods were sufficient to have entirety in every side by completing dynamic principle of corner bracket set even though old method had to solve the problem of concentrated load and it also confirms that it was essential Gongpo to prevent any deformation of corner.
Buddhism that has arisen in India began to build the Stupa to enshrine body and Sari of Buddha as an object of worship. The stupa existed as a tome of holy leaders even before the birth of Buddha, which was called stupa or tupa in the Sanskrit and the Pali, the ancient language of India. The stupa was renamed accordingly in each Buddhism transmitted countries such as Ceylon, Tibet, Nepal, Myanmar, Thailand and China and also reshaped according to their own formative style. But its original meaning and type are kept unchanged. The stupa was established in the 4 holy places including the birth place of Buddha, the place where Buddha found enlightenment, the place where Buddha preached for the first time, and the place where Buddha died. Thus, a pagoda to commemorate holy ancient places is called Chaitya, which became differentiated from the stupa in which Sari is enshrined. The stupa means Nirvana, the eternal body of Buddha, and also a place filled with teaching and preaching of Buddhism. It signifies the symbol of Buddha who escaped from the death and rebirth, to achieve complete extinction, i.e. parinirvana, and to reach ultimate eternal world, rather than simply means death. During the non-statue of th Buddha period, people built the stupa to embody Nirvana of the Buddha, and worshipped the tomb where body of holy saints was enshrined. On the other hand, they also sanctified memorial things such as tools that holy saints used, the Bo tree under which one achieved Nirvana, Dharma cakra that implied words, footprint that carried out mission work, and a way to reach to heaven.
This research was to suggest the types according to structural system of the pagoda in ancient East-Asia and analyze the pagoda to the west of Mireuksaji temple site by these types. It will be possible to understand consistently the relation of the various form of the pagoda. The results of this research were described separately as follows. 1. The Buddhist pagodas founded in the ancient East Asia can be categorized according to their structural system, which provide us with insight to understand the interrelationship of categories. The pagoda is mainly classified into three categories. The first consists of two structures, an internal and an external structure. The second exposes its internal structure to the outside, and the third has the external components changing into the internal ones. 2. Although the pagoda to the west of Mireuksaji Temple Site have an internal and an external structures, it actually solves the structural problem by adopting the masonry structure in the outside as well as in the inside. Especially in this structural consideration can be found in the stylobate and the foundation structure of the pillar. The plan of the pagoda to the west of Mireuksaji Temple Site was intended to reveal the plane of the post-lintel layered construction which has a member, a main pillar, and the inner space in the cube with stones.
It is a true fact that the ancient Buddhist temples of Korea were great, important historical influence revealing the transition and developing stages of all the BUddhist temples in Eastern Asia including China and Japan. Before Mahayana arose within India, the monastery and pagoda were united during the conflict and development of the original Buddhism and pagoda faith. With the arising of Mahayana and the introduction of Buddhist statues, the Buddhist temple and pagoda were in conflict and resulted in separation. With the creation and development of the Mahayana Bodhisattva concept, Hinayana and Mahayana started to show doctrine differences and expressed each others' characteristics relevant to the structure of the temple. As a result, the Buddhist Temple having 1 pagoda spread in China together with Hinayana and Mahayana. The Buddhist temple of Hinayana had its temple and pagoda separated and the Buddhist temple that has a pagoda in front was divided into a form of 1 pagoda and 1 main temple. The temple and pagoda for Mahayana in the form of 1 pagoda and 2 temple, where the main statue of the Buddha may be worshipped from both the left and right hand sides, were separated in the form of 1 pagoda and 3 temples to have its original form again. Mahayana was first introduced into Goguryeo through the routes in the northern region and developed from having 1 pagoda and 2 temples, to having 1 pagoda and 3 temples. China was influenced by the southern regions, which is why Abhidharma was introduced into Baekje. Later on, the importance of Bodhisattva increased and the transition speed of the Buddhist temple having 1 pagoda and 3 temples accelerated, as Buddhism became more popular and as Mahayana flourished. The statue of the Buddha on both sides of the pagoda shall gradually move next to the central temple , and the temple shall form large crowds to not only form a tacit boundary with the pagoda but the expansion of Bodhisattva shall also have a wall or a corridor constructed in between the central, left and right hand side temples to form separate areas, and shall have a pagoda built in front of the temples that worship from both sides. In conclusion, independence shall exist among each Bodhisattva within the Buddhist temple, and the status of the pagoda shall fall and appear as the pagoda on both sides in front of the main Buddha stat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