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orldwide, oral cancer accounts for 2%–4% of all cancer cases. It is estimated that more of 90% of all oral neoplasms are oral squamous cell carcinoma (OSCC). The aims of this study were to evaluate follow-up outcomes in patients with OSCC invading the mandibular body bone who underwent primary radical resection and reconstructive surgery by fibular free flap or CAD-CAM T-mesh with pathological study on two cases. In this article, two cases of mandibular reconstruction in patients with OSCC invading the mandibular body bone are reported. A 68-year-old male patient visited the authors’ clinic with pain on the left mandibular region. After wide excision and segmental mandibulectomy on the mandibular OSCC, a enterocutaneous fibular free flap from right leg was used to cover the intraoral mucosal defect. The other 51-year-old female patient visited the authors’ clinic with pain on the right mandibular region. After wide excision and segmental mandibulectomy on the mandibular OSCC, reconstruction was done with a reconstruction plate and a fibula free flap from right leg. Unfortunately, fibular free flap was lost due to infection of the flap at post-operative 1month, secondary reconstruction using a custom-made type T-mesh and iliac PCBM was done to repair on the mandibular defect after four years postoperatively. The customized CAD-CAM T-mesh was made prior to the operation according to mirror image of remained jaw. Patients with OSCC invading the mandibular body bone are required an accurate segmental mandibulectomy immediate reconstructive surgery with various methods and followed by adjuvant radiation with or without chemotherapy in order to improve the quality of life through the restoration of the oral function and esthetics after surgery. Postoperative CCRT was determined according to the final pathologic findings such as lymph node metastasis and main lesion free margin safety, and this has an essential relationship in the prognosis of postoperative recurrence. We reviewed reliable treatment options on two patients of OSCC in mandible with pathologic findings.Worldwide, oral cancer accounts for 2%–4% of all cancer cases. It is estimated that more of 90% of all oral neoplasms are oral squamous cell carcinoma (OSCC). The aims of this study were to evaluate follow-up outcomes in patients with OSCC invading the mandibular body bone who underwent primary radical resection and reconstructive surgery by fibular free flap or CAD-CAM T-mesh with pathological study on two cases. In this article, two cases of mandibular reconstruction in patients with OSCC invading the mandibular body bone are reported. A 68-year-old male patient visited the authors’ clinic with pain on the left mandibular region. After wide excision and segmental mandibulectomy on the mandibular OSCC, a enterocutaneous fibular free flap from right leg was used to cover the intraoral mucosal defect. The other 51-year-old female patient visited the authors’ clinic with pain on the right mandibular region. After wide excision and segmental mandibulectomy on the mandibular OSCC, reconstruction was done with a reconstruction plate and a fibula free flap from right leg. Unfortunately, fibular free flap was lost due to infection of the flap at post-operative 1month, secondary reconstruction using a custom-made type T-mesh and iliac PCBM was done to repair on the mandibular defect after four years postoperatively. The customized CAD-CAM T-mesh was made prior to the operation according to mirror image of remained jaw. Patients with OSCC invading the mandibular body bone are required an accurate segmental mandibulectomy immediate reconstructive surgery with various methods and followed by adjuvant radiation with or without chemotherapy in order to improve the quality of life through the restoration of the oral function and esthetics after surgery. Postoperative CCRT was determined according to the final pathologic findings such as lymph node metastasis and main lesion free margin safety, and this has an essential relationship in the prognosis of postoperative recurrence. We reviewed reliable treatment options on two patients of OSCC in mandible with pathologic findings.
Background: Mucoepidermoid carcinoma (MEC) is the most common malignant epithelial tumor of the salivary gland in the oral cavity. In South Korea, it occurs most frequently in the palate, retromolar area, floor of the mouth, buccal mucosa, and other areas of the oral cavity. MEC is rare in children and adolescents under 20 years of age, but it is the most common malignant salivary gland tumor in this group. Reconstructive surgery is often required due to cystic lesions or resection of malignancy in the oral cavity. Buccal fat pad (BFP) is a flap that is reliable and suitable for reconstructing oral defects because it has a low complication rate and small volume change over time. Case Presentation: We report the case of a 12-year-old female patient with low-grade MEC on light soft palate with no neck metastasis. After tumor resection the palatal mucosal defect was reconstructed with a BFP flap. Conclusion: The purpose of this article is to discuss the features and treatment methods of MEC that is rarely occurring in children, and the usefulness of BFP for reconstruction. Therefore, we will make a precise diagnosis and treatment as we examine the clinical feature and review the literature.
서론 안동 하회마을은 문화적 전통과 민속을 보존하고 계승하 고자하는 국가 차원의 정책 목표 아래, 1984년 최초 민속마 을로 지정되었다(김창민. 2009). 이후 하회마을은 조선시대 가옥형태와 전통적인 삶이 그대로 전승되고 있는 생활공간 으로, 주민들이 세대를 이어 삶을 영위하고 있는 살아있는 유산(Living Heritage)으로 가치를 인정받아 2010년 세계문 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이렇듯 하회마을은 ‘민속마을’ 혹은 ‘세계문화유산’이라는 이름으로 전통적 가치를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자연과 삶이라는 유기체적 범주에서 전통 경관보존을 위해 상호 조화되는 과정에는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 하회마을 형태를 구성하는 수직경관요소는 담장, 건축물, 수목이고, 이 세 가지 구성요소는 마을경관변화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방문객의 입장에서 살펴봐도 마을길 을 따라 보이는 제한된 관람환경임을 고려할 때 건축물과 담장을 제외한 수목은 생장을 하며, 계절에 따라 개화 및 단풍을 연출하는 등 마을경관변화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 경관요소이다. 그러나 마을 내 전통경관을 보존하기 위해 그동안 수행되었던 종합정비계획 및 기타 연구 자료는 건축 물의 보수와 정비에 초점을 둔 수리보고서 성격이 대부분이 다. 하회마을 식생경관과 관련하여 식물연구가 진행되었지 만 대부분이 식물상 조사에 그쳤으며, 더구나 식물상조사의 경우는 연차적인 모니터링 결과가 중요함에도 불구하고 단 발성 연구에 그치고만 한계를 보이고 있었다. 연구의 부재 뿐만 아니라 마을 내 유입되는 수목의 반·출입 기록은 고사 하고, 현재 생육하는 수목의 현황조차 파악되지 않는 실정 이다. 그리고 하회마을은 사유지가 대부분으로 개인취향에 의한 무분별한 식재, 혹은 지자체 합의에 의한 주체적인 경 관식재 등이 조성되면서, 전통마을에서 최소한 유지되어야 할 고유 식재경관이 점점 변화되고 있다. 이에 문화 및 생물 학적 가치에 우선한 수목분석을 통해 정비·보존되어야 할 식재경관의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고자 한다. 조사방법 하회마을 동측 진입부 수계를 경계로 한 135개소의 가구 별 정원수목과 기타 마을 내부에 생육하는 수목의 전수조사 (2017.2.∼2017.9.) 자료를 바탕으로 자연적·문화적 가치를 평가하여 도면분석을 실시하였다. 먼저 수목의 전수조사는 조사대상지 내 자연발생이 아닌 인위적으로 조성된 교목을 연구 범위로 설정하였고, 근원 3cm 이하 또는 수고 1m이하의 경우 조사범위에서 제외하 였다. 단 앞의 조건에 의해 제외된 수목이지만 인문적 요소 가 가미되거나 정원수로 가꾸어 수고가 높지 않은 경우는 연구자 판단에 의해 조사범위에 포함하였다. 하회마을 ‘식생경관 보존’을 최종목표로 한 평가항목을 설정하기 위해 수목의 가치를 대변할 수 있는 모든 요소를 나열하고 유형화하는 반복과정을 통해 자연적 가치 5가지 와 문화적 가치 5가지의 세부평가항목을 선정하고, 추출된 평가항목의 요소별 평가값은 하회마을 수목현황을 근거로 상대적으로 부여하였다. 생물학적 가치는 수목자체가 지니 는 생육상태를 기존 선행되었던 노거수 자원평가보고서(문 화재청, 2006) 건강성평가항목을 참고하여 설정하였고, 여 기서 도출된 등급자체가 수목가치의 절대값을 대변하지는 않는다. 역사적 가치 평가기준은 인문현황과 관련한 자료의 진정성정도에 따라 등급을 구분하였다(Table 1). 도면중첩분석은 지도상에 공간적 정보를 통합하여 합성 하는 과정으로 주로 토지이용의 최적지 타당성 분석 등에 주로 활용되고 있다. 그러나 도면중첩은 평가항목별 누적된 결과에 대한 위치별 가치평가가 가능하기 때문에 하회마을 내 식생경관 가치의 계량화 분석이 가능하다. 전수 조사된 수목을 1:1000 수치지형지형도에 CAD로 작성하고, 도면에 표현된 수목심볼의 실측값(Point)에 더 큰 가중 값을 주어 보간하는 IDW(Inverse Distance Weighted)를 활용하여 문 화적·생물학적 요소의 가중치를 중첩하여 분포결과를 도출 하였다 결과 및 고찰 하회마을 연구범위에 식재된 교목은 총2,483주(상록교목 709주, 낙엽교목 1,774주)로 집계되었다. 성상은 상록교목 총15종으로 가이즈까향나무, 구상나무, 노간주나무, 반송, 백송, 비자나무, 선주목, 섬잣나무, 소나무, 스트로브스잣나 무, 실화백, 전나무, 주목, 측백나무, 향나무이고, 낙엽교목 총 48종으로 가중나무, 감나무, 고로쇠나무, 공작단풍, 꽃사 과류, 노무라단풍류, 느릅나무류, 느티나무, 단풍나무, 대추 나무, 두릅나무, 두충나무, 때죽나무, 마가목, 매화나무, 모 과나무, 목련류, 밤나무, 배나무, 배롱나무, 버드나무, 벽 동, 복숭아, 산딸나무, 산사나무, 산수유, 살구나무, 석류나 무, 소사나무, 아까시나무, 음나무, 오갈피나무, 왕벚나무, 은행나무, 이팝나무, 일본목련, 자귀나무, 자두나무, 중국단 풍, 참나무, 층층나무, 팥배나무, 팽나무, 헛개나무, 호두나 무, 회화나무로 조사되었다. 생물학적 평가항목인 수목의 근원직경(수관폭), 수령, 수세, 수형, 특수성 총 5개의 기준으로 가중치를 적용하여 분석한 결과 1등급 8주(0.3%), 2등급 281주(11.3%), 3등급 400주 (16.1%), 4등급 463주(18.6%), 5등급 1,331주(53.6%)로 나 타났다. 역사적 중요도를 반영한 문화성, 역사성, 기록성, 시대성, 문화재지정여부 유지 총5개의 항목으로 도면에 데이터 코 딩을 실시한 결과 1등급 3주(0.1%), 2등급 267주(10.8%), 3등급 4주(0.2%), 4등급 112주(4.5%), 5등급 2,097주 (84.5%)로 나타났다. 생물학적 가치와 문화적 가치가 합산 된 수목의 평가값은 1등급 4주(0.2%), 2등급 269주(10.7%), 3등급 28주(1.1%), 4등급 714주(28.8%), 5등급 1,468주 (59.2%)로 분석되었다. 본 연구는 안동하회마을 내 생육하는 수목의 가치분석을 통 해 현재 변화하고 있는 식생경관 재건을 위한 기초자료로 제 시하고자 하였다. 수목의 가치에 영향을 주는 자연적 가치 5항목과 문화적 가치 5항목을 선정하고, 분석의 최종단계에 서 종합가치5등급을 제시하였다. 그 중 수목종합가치가 1등 급으로 나타난 삼신당 느티나무 등 4주와 2등급에 해당하는 만송정 숲 일원 소나무 등 267주는 마을 역사의 흔적을 포함 하는 수목으로 가치가 우수하며, 추후 하회마을 식생경관 관 리계획에 있어 우선에 포함해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이상 안동하회마을의 식생경관 재건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볼 때, 마을에 식재된 수목의 진정성 확보를 위한 평가항목의 추가 적인 보완과 세부적인 보존·관리방안 관련 연구는 추후 과제 로 남기고자 한다.
만투머르컨 은 퉁구스 샤머니즘의 특징이 잘 반영되어 있는 허저족의 대표 적 무속영웅서사시라 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만투머르컨 서사에 나오는 만투의 여행을 퉁구스족 샤머니즘 문화가 반영되어 있는 샤먼으로서의 마을재 건여행으로 바라봄으로써 그 해석의 지평을 확장하고자 하였다. 즉 만투의 서방 여행이 표면적으로는 부모를 찾아 그 원수를 갚는 것이었으나, 이면적으로는 주 변 신령들을 통제함으로서 대샤먼이 되어 부족을 재건하고자 하는 목적의 마을 재건여행이었음을 주장하고자 한 것이다. 바리데기 와 니샨샤먼 에서 질병 혹은 죽음이 영혼의 상실로 인해 생긴 것이기에 그 영혼을 찾아 저승여행을 떠 나고 있다면, 만투는 부족의 질병(폐허)이 부모의 부재로 인한 것이기에 마을재 건을 위해 부모를 찾아 떠난다. 선대 샤먼의 죽음으로 생긴 빈자리는 후대 샤먼 이 세워짐으로서 채워지는 것이다. 만투는 보조령으로 등장하는 여신령들의 도 움을 받아 남성 샤먼 신령들을 통제 하에 넣고 잔치를 벌이며 황폐화되었던 마 을을 재건하기에 이른다. 마을재건이 중시되는 허저족 구비서사시의 이와 같은 특징은 허저족을 포함한 퉁구스족의 씨족공동체 중시 문화와 연결될 수 있다.
Naejeon area at Chandeokgung Palace means the areas of Huijeongdang and Daejojeon area. Huijeongdang or Hall of Brilliant Rule is made for the king, and Daejojeon or Hall of Great Creation is made for the queen. These areas were located nearly and repeatedly burned down and rebuilt several times together, but their forms were largely unchanged. However in 1920, they rebuilt in a very different way. The purpose of this study was to estimate construction plans, progress and completion of Naejeon area’s rebuilding. They were reconstructed into eclectic structures as the exteriors were built using basic materials from Gyeongbokgung Palace. So they have traditional-looking appearances, but the interiors consisted of modern equipments and were built by applying foreign style construction techniques. The main floored room of Daejojeon and the area of Huijeongdang were built in standing style by installing radiators and French furnitures. Also, the porch, corridor, storage space and veranda were constructed under the influence of Japanese construction. After the reconstruction, there were changes in the usage of some spaces. Huijeongdang functioned only for Alhyeonso or audience chamber rather than Pyeonjeon or state hall. New organizations created by the Japanese such as Chansi or secretaries office and the Chief secretary’s office were included in Naejeon area.
Osteoblastoma is a very rare disease and in case of the jaw, maxilla infrequently occurs more than mandible. On account of difficulty to discriminate from other benign tumor or sarcoma, we need to pay attention to make differential diagnosis based on clinical, radiographic, pathological findings. A tumor on the maxilla and maxillary sinus could lead to a bad result for aesthetic appreciation and function. Therefore, reconstruction after maxillectomy is one of the most important issues concerning a surgery. The aim of this study is to report a case of osteoblastoma on the left maxilla which was misdiagnosed as ossifying fibroma and was treated with hemimaxillectomy and reconstruction using deep iliac circumflex artery musculo-osseous flap which resulted in satisfactory result.
The North Korean mission is inseparable from the South-North unification policy. In addition, the opinions of neighboring counties are also important. Such are the perimeters of the North Korean mission. This study attempts to examine North Korean mission, particularly the reconstruction of North Korean Church within the process of South North unification process. The reconstruction of the North Korean Church, as North Korean mission and unification movement, is a policy issue amidst the unification process. It is a policy that can create a basis within the North Korea and effectively manage the personnel, financial and mission resources of the South Korean Church. At the same time, the reconstruction of the North Korean Church joins the reunification process of the Korean peninsular with the North Korean mission purposes. The current situation is created by the ideological conflict between the conservative versus liberal elements within the Korean Church in regard to the North Korean mission and unification movement. In addition, there is a great disparity in the approach towards the reconstruction of the North Korean Church. The problems are three-fold: 1) Who is the protagonist of the North Korean mission? Is it the South Korean Church? or is it the North Korean Church? In case it it’s the latter, the term North Korean mission does not apply. 2) The phrase “North Korean mission” implies an imbedded view of the South North division. 3) Should the North Korean “Chosun Christian Association” be accepted as a partner in the North Korean mission? Or should it be viewed as a mission object? The best means of North Korean mission is to have the “Chosun Christian Association” take the leading role in the reconstruction of the North Korean Church. Since, however, it is the South Korean Church that is taking action to prepare for such an event, mutual cooperation between the two is essential. The reconstruction of the North Korean Church cannot be achieve by the South Korean Church alone. In addition, the reconstruction of North Korean Church is linked to the Korean war, a factor behind the division of the Korean Church into the liberal and conservative camp. The anti-communist stance of the South Korean regime was another factor that unified the right wing Christians. Attempts by the “Korean Christian Association” to reconstruct the North Korean Church within this approach involved, not only efforts to reconstruct the North Korean Church, but various aid programs. However, such aid programs were commonly perceived to be the work of mission organizations and not the conservative South Korean Church. Furthermore, the “Korean Christian Association,” which advocated the reconstruction of the North Korean Church, were mistakenly criticized as an organization that were only interested in the reconstruction of the Northern Church. Therefore, the reconstruction effort of the Northern Church must be newly reinterpreted. The role of the Church, from a mission history perspective, is to be a bridgehead of mission, a center of training for workers, and center of mission field. As such, though the reconstruction of the Northern Church is premature, efforts to prepare for such an event, financial preparation, training center for mission workers and confidence building between the South and North through information and assistance projects can be viewed within the context of the unification process. The North Korean mission through the reconstruction of the Northern Church within the context of the unification process can promote the unification capability of South and North. It is futuristic unification policy of the Southern Church. Precedents for the reconstruction of the Northern Church must be found from similar cases following the liberation from Japan and post-Korean war and examined strategically. The North Korean mission must conclude with the reconstruction of the North Korean Church.
이 글은 한국 장로교 여성 가운데 최초로 목사안수를 받은 최덕지 (1901-1956)가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굴복하여 무너진 한국교회를 회복 하기 위해 해방 직후에 전개한 교회재건 운동을 살펴보고, 그의 교회론에 대한 신학적 해석을 시도한다. 그의 교회론에 대한 교회사가들의 평가는 지금까지 대체로 매우 부정적 이었다. 대부분의 학자들은 그의 교회론을 ‘극단적 분리주의’ 혹은 ‘극단적 분파주의’ 혹은 ‘도나투스주의’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이들의 평가는 최덕 지의 재건운동에 대한 자세한 분석과 교회론에 대한 깊은 신학적 해석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본고는 이런 연구의 공백을 메꾸기 위한 하나의 시도 이다. 최덕지의 교회론을 정확하게 평가하기 위해 그의 교회재건 운동을 해방 직후의 구체적인 역사적 상황에 위치시키고 ‘도나투스파 교회론’을 해석학 적 도구로 사용하여 그의 설교를 분석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최덕지의 교회론을 ‘극단적 분리주의, 혹은 분파주의’ 혹은 ‘도나투스주의’라고 단순하게 말하기는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하지만 동시에 그의 재건운동과 재건교회 설립은 그가 의도하지 않았던 교회의 분열을 낳았고, 그의 교회 론에 도나투스주의와 매우 유사한 성격-장점과 한계 두 측면 모두에 있어 서-이 많은 것도 부인할 수 없음을 확인했다. 전체적으로 보자면 최덕지의 교회재건 운동은 교회의 거룩성 회복을 위 해서는 큰 공헌을 하였으나, 교회의 일치 유지를 위한 노력은 부족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당시 역사적 상황에서 교회의 거룩성 회복이야말 로 보다 중요한 시대적 과제였던 점을 감안하면, 그의 공헌이 한계보다 훨 씬 높이 평가되어야 한다. 최덕지의 교회론이 지금 주님의 몸을 수없이 많은 조각으로 찢어놓고 만신창이로 만든 한국교회에 주는 교훈은 실로 무겁다. 참된 교회의 회복 을 위해서는 ‘일치를 해치지 않는 거룩성’과 ‘거룩성을 해치지 않는 일치’ 를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연구가 최덕지의 교회재건 운동에 대한 재평가를 위해 그리고 오늘 한국교회의 분열된 현실의 뿌리 이해와 일치의 길 모색 그리고 더 나아가 통일 이후 북한교회가 직면하게 될 해방직후와 유사한 배교자 치리 문제를 예견하고 미리 준비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