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는 개인의 정신적 가치를 존중한다는 이름하에 개인이 가지는 종교적 믿음 역시 다양성의 측면에서 수용하는 양상을 보인다. 이에 반해 종교적 근본주의는 종교적 믿음의 순수성과 해석의 단일성을 강조하면서 인간의 존엄성을 위협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두 관점들은 서로의 극단적인 지향점에만 치중한 채 근본적인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지 않고 있다. 그 물음이란 바로 (1) 종교의 근원은 무엇이며, (2) 결국 인간이 중심인 종교에서 다양성과 배타성 가운데 어느 쪽이 더 근원적인가이다. 윌리엄 제임스는 이러한 물음들 가운데 (1)을 그의 저작인 종교적 경험의 다양성에서 현상학적으로 탐구하고, 「믿으려는 의지」라는 논문에서 (2)를 믿음의 선택이라는 관점에서 탐구한다. 필자는 이 글에서 제임스가 두 저술에서 비판적으로 고찰한 문제의식을 살펴보고, 그가 던지는 종교적 혹은 윤리적 시사점들이 가지는 현대성에 주목하여 그것이 현대 정신문명의 위기를 해결하는 데에 일정한 기여를 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고자 한다.
부버에 따르면 ‘나—너’ 그리고 ‘나—그것’은 사람이 세계에 대해 취하는 이 중적인 태도를 표시한다는 의미에서 근원어라고 불릴 수 있다. ‘나—그것’은 사 물의 세계다. 내가 ‘그것’이라고 말할 때 ‘나’는 타인을 대상물로 소유하고 그것 으로부터 사물성을 이끌어낸다. 이때 나는 대상물을 소유하는 주체로서 세워진 다. ‘나—너’는 관계의 세계다. ‘나―너’는 내가 타인을 대상물로 인식하지 않 으려고 노력할 때 자기중심주의가 극복될 수 있고, 자기중심주의가 극복될 때 자기중심주의 너머에 있는 사이의 영역이 모습을 드러낸다. 자아의 의도에서 도 출되지 않은 이 사이의 영역에서 나는 직접적인 상태로 너와 관계를 맺을 수 있 다. 부버는 ‘나—너’를 다른 말로 만남이라고 부른다. 데이지 밀러: 한 연구 에서 윈터본은 데이지를 ‘나—그것’으로 대한다. 윈터본은 데이지를 본 순간 그 녀의 아름다운 외모에 반해 그녀에게 사로잡힌다. 그는 데이지에게 호감을 느끼 면서도 그녀에게서 냉철한 시선을 거두지 않는다. 윈터본은 데이지를 범주화하 고 관찰하고 연구하면서 그녀를 추론과 인과율의 세계에 가둔다. 결국 윈터본은 데이지가 창녀 같은 여자라고 확신하게 되고 그의 의식에 그녀는 일정한 내용 을 지닌 사물과 같은 ‘그것’으로 저장된다. 결국 윈터본의 이런 태도는 데이지 의 죽음을 초래한다.
본 논문은 제임스 볼드윈의 소설, 『빌 스트리트가 말할 수 있다면』에서 나타 난 볼드윈의 블루스의 정신과 작품 속에 나타난 구원과 사랑의 블루스의 의미를 분석했다. 이 소설에서 볼드윈이 그리는 미국 사회의 흑인에 대한 탄압과 편견과 더불어 이에 대응하는 흑인 남녀의 구원과 사랑의 가능성을 블루스라는 음악적 장르의 적용을 해석했다. 볼드윈이 묘사한 소설 속 블루스의 의미는 흑인의 삶과 투쟁을 표현하고 설명할 수 있다. 볼드윈은 이 소설 속의 젊은 흑인 청년, 파니 헌트가 한 경찰에 의해 보복적으로 강간의 누명으로 잘못 감금되었어도 희망을 잃지 않고, 블루스의 정신으로 이겨내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다시 말해, 볼드윈은 주인공 파니의 역경은 물론 파니를 감옥으로부터 해방시키려는 가족들 간의 사랑을 구원과 사랑의 블루스적 감성으로 그려낸다. 볼드윈이 소설 속에서 그리는 구원과 사랑의 블루스는 흑인의 고통과 좌절의 경험 속에서도 흑인 고유의 자산이자 언어인 블루스의 유산을 통해 극복하게 만드는 희망과 해방의 원천인 것이다. 이러한 볼드윈의 블루스에 대한 문화적, 역사적 이해를 논의하고 분석한다.
이 논문은 세계문학의 관점에서 조이스 문학을 바라볼 수 있는 가능성을 진단한다. 세계문학에 대한 논의가 가져온 새로운 이론적 가능성과 한계를 검토하고 이를 통해 세계문학의 지도에서 조이스 문학의 좌표가 어떻게 새겨질 수 있는지 살펴본다. 결론적으로 이 논문은 세계문학의 개방성과 폐쇄성에 대한 자기반영적 성찰을 통해 세계문학 연구의 학제적 무의식을 밝힌다.
이 논문에서는 윌리엄 제임스의 성인다움에 비추어 그레엄 그린의 『권력과 영광』에서의 위스키 사제가 성인이 되어가는 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제임스는 종교 교리를 배척하고 개인 누구나 노력함으로써 성취할 수 있는 종교적 경험을 강조한다. 제임스는 모든 개인이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종교 또한 동일한 종교가 존재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 개인이 고차원적 존재와 영적 교감을 통해 신성을 경험하게 된다면 자아의 한계를 초월하여 무한한 자유를 누릴 수 있으며 사랑과 조화를 느끼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성인다움은 알코올 중독자이자 술에 취해 얻은 딸을 둔 위스키 사제가 사제의 지위에서 일반인의 자리로 내려와 온갖 고난을 겪는 과정에서 재현된다. 사제는 가톨릭 박해자인 경위의 추적을 피해 도망 다니는 과정에서 사람들을 만나고 그 과정에서 그동안의 사제로서의 임무가 피상적인 것이었음을 인식한다. 딸에 대한 사랑을 느끼는 동시에 사람들에 대한 사랑을 진정으로 인식한다. 사제는 안온한 삶을 살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 상황에서 마지막 사제로서의 임무를 수행하려고 노력하다 체포되고 사형 당한다. 이러한 종교적 경험을 보여주는 사제는 제임스가 주장한 성인다움을 대변하는 인물이라 할 수 있겠다.
『더블린 사람들』에서 제임스 조이스는 아일랜드 가톨릭교 신부들을 이득을 위해 자신들의 영혼을 팔아 아일랜드 국민들을 배반한 유다와 같은 존재로 묘사한다. 작품의 각 중단편의 에피소드를 통해 조이스는 가톨릭교회에 대해 부정적인 시선을 던진다. 그는 아일랜드 가톨릭교회가 맹목적인 순종과 그 권력에 절대 복종하도록 강요한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작품에 묘사되고 있는 신부들의 모습은 대체로 무능하며 성직자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하지 못한다. 이런 이유로 그는 거짓된 권위와 물질주의에 집착하는 가톨릭교를 거부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톨릭교회를 바라보는 그의 마음은 복잡한데, 그것은 그가 가톨릭교회를 거부하긴 했지만 그 제도나 형식을 거부하지는 않았다. 실제로 그는 예수회재단 가톨릭교회의 제도나 교리 등을 작품창작에 적극 활용했다. 그러나 그는 근본적으로는 가톨릭교회나 신부들이 과거의 잘못에서 벗어나 변화되고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논문은 에타 제임스의 후기 재즈 앨범 중 분석 곡으로 선택한 블루스 스타일의 재즈곡에서 나타나는 표현기법인 밴딩과 비브라토를 중심으로 정통 재즈 보컬리스트인 엘라 피츠제럴드(Ella Fitzgerald)의 가창과 비교 분석하여 에타 제임스 버전의 곡에서 어떤 성질이 드러나는지를 보았다. 그 결과 에타 제임스의 대표 장르에서 나타나는 애드립(Ad Lib), 스크래치, 샤우트 창법은 사용되지 않았으며 그 외에 사용된 표현기법은 밴딩과 비브라토이었다. 먼저 밴딩은 반복되는 리듬 패턴 안에서 곡의 지루함을 덜기 위한 기법과 특정한 단어를 강조하기 위해 사용이 되었으며 비브라토의 경우 반복되는 프레이즈 단위와 같은 단어, 비슷하게 발음되는 단어에 사용함으로써 통일감을 주며, 여운을 남기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었다. 또한 정통 재즈 보컬리스트인 엘라 피츠제럴드와 비교하였을 때에, 훨씬 적은 비브라토를 사용하였으며, 상대적으로 스윙 리듬이 엘라보다 더 스트레이트하게 노래했다. 이러한 결과로 정통재즈, 정통블루스가 아닌, 퓨전음악의 느낌을 내는데 더 적합하다고 볼 수 있다.
본고는 영국에서 활동한 미국인 인상파 화가 제임스 맥닐 휘슬러의 작품과 그가 디자인한 <공작의 방>에 구현된 19세기 중 반 이후 영국사회의 중국 청화백자 수집 열광 현상인 ‘차이나매니아(Chinamania)’에 관해 고찰한 것이다. 17, 18세기 중 국 청화백자에서 자신의 예술적 영감의 원천을 발견한 휘슬러에 의해 촉발된 1860년대 영국에서의 차이나매니아 현상 은 <공작의 방>이 완성된 1870년대 후반기에 이르러 부르주아 계층의 주요 소장가 그룹을 중심으로 점차 영국 상류 사회 전반에 확산되어갔다. 1878년 휘슬러에 의해 완성된 <공작의 방>은 19세기 중반 이후 영국사회에서 유행한 중국 청화백 자 소장 문화의 특성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휘슬러의 17, 18세기 중국 청화백자를 소재로 한 회화 작품과 그가 구성 한 <공작의 방>의 제작 과정을 분석하는 연구는 1860년대 이후 영국 상류사회에서 새롭게 등장한 중국 도자기에 대한 미적 취향과 소장 문화의 의미를 파악하는데 있어서 중요한 학술적 의미를 지니고 있다.
현재 스코틀랜드를 대표하는 작곡가로 알려진 제임스 맥밀란(James MacMillan)은, 스코틀랜드 의 전통을 계승하고 스코틀랜드의 음악을 세계적으로 알리는데 성공한 ‘스코틀랜드의 민족주의’를 대표하는 작곡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그는 스코틀랜드의 전통적 자원을 본인의 음악을 구성하는 핵심적 요소로서 다루어 현대적 감각에 어울리는 자원으로 발전시키고 작품 안에 인용함으로써 본 인의 음악어법을 구축하는데 성공하였다. 맥밀란이 이룩한 또 하나의 업적은 켈트(Celt)의 역사를 계승하고 발전시킨 것이다. 켈트의 문화는 그가 어린 시절 자라고 성장한 지역의 전통으로서 종교 적 신념과 스코틀랜드에 대한 애착심을 키우게 된 동기를 부여하였고 그의 음악어법을 결정짓는 핵 심적인 영감으로 작용하였다.
본 논문에서는 맥밀란의 대표 작품인 타악기 협주곡 《오소서 임마누엘》(Veni, Veni, Emmanuel )을 중심으로 그가 계승해온 스코틀랜드의 전통에 대하여 논의할 것이다. 그가 작품에 서 실현한 활용법을 중심으로 분석할 것이며 그가 구사한 현대적인 음악어법에 대해서도 살펴볼 것 이다. 그의 음악은 단순히 역사를 보존하고 답습하는 차원이 아닌 현재의 시대상과 국제적 흐름에 맞추어 재해석된 스코틀랜드 역사의 표출이자 본인의 종교와 고향에 대한 애착심이 달성한 민족주 의 음악의 새로운 지표가 되었다. 이에 대한 관점에서 정통성에 대한 왜곡과 본성에 대한 변질이라 는 비판적 측면에서의 접근이 아닌 현대적 개념에 따른 스코틀랜드 민족주의 성향과 맥밀란의 음악 어법에 대한 이해가 본 논문의 주요 논제가 될 것이다.
The works of James Turrell(1943- ) are composed of light, space where light exists and perceptual experience of viewers perceiving and interpreting them. His early work Projection Pieces(1966- ) created forms of image with light emitted from a projector, while giving a three-dimensional effect to the plane image of light by using the structural characteristics of space. Through works in such a method, Turrell dealt with the thingness of light by forming cubic images of light, as if they physically existed, and led viewers, starting to perceive nonmaterial-like light, to visual perceptual experiences. In the flow of Minimalism starting to appear in the early 1960s, Turrell’s Projection Pieces was evaluated to possess physical characteristics of Minimalism because of its light cubic sculptural shape. However, the theme of his work, called a viewer’s perceptual experience, is the peculiar attribute of Turrell’s works, which cannot be read with the generalized proposition of Minimalism that pays attention to the physical characteristics of works. In this view, this study attempted to carry out a research on the originality and distinction of Turrell’s works by investigating the perceptual process of a viewer perceiving light. As mediums to induce viewers to have perceptual experience so that they might perceive images of light, Turrell used the attributes of light and the structure of exhibition space likely to sustain three-dimensional forms while having visions. In addition, by inducing the visual stimulus and tactual sense of viewers perceiving light, Turrell intended them to be absorbed into elements of work themselves. Such a characteristic helped viewers expose their mental self-awareness, so-called perceptual experiences, by having them perceive visions of light in space where actual objects don’t exist. From Projection Pieces to Ganzfeld APANI, images of light expressed by being materialized were intended to be viewers’ visual visions, and the process of viewers perceiving light and light was suggested through his work. Besides, he also suggested a philosophical thinking of phenomenology that the process of viewing works to grasp the substance of light was ‘seeing a fact that one is seeing.’ Viewers’ personal emotions and philosophical and meditative process of perception leads Turrell’s work even to an experience of sublimity, while appreciating visions of light in space that something exists and nothing exists at the same time. Turrell’s work suggested a research on the concept of spirituality, called viewers perception through simple forms of light images. Turrell also explains well the process of reaching the ‘perceptual art’ called by himself.
캐나다 선교사 제임스 게일(James Scarth Gale, 1863~1937)은 1888부터 1927년까지 40년을 조선에서 사역했다. 게일은 선교사, 목사, 신학자였을 뿐만 아니라, 대표적인 한국학 학자이자 교육가였다. 게일이 만난 조선은 콜레라 전염병이 창궐한 불안정하고 불확실한 세상이었지만, 게일은 ‘하나님의 백성’ 으로서의 신앙적 헌신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제자’로서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자 노력했다. 게일은, 조선 역사와 문화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이를 세계에 소개했던 독보적이고 다재다능한 인물이었다. 이 글의 목적은, 부산과 서울 곤당골(현재의 중구 남대문로1가와 을지로1가 인근)에서 행한 “착목쟈” 제임스 게일의 초기 사역과 경험이, 이후 조선에서의 40년 동안의 그의 복음전도와 사회활동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연구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게일의 초기 사역에 깊은 영향을 준, 헨리 데이비스(1856~1890), 존 헤론 (1856~1890), 해리엇 헤론(1860~1908)에 대한 연구와 함께, 부산과 서울 곤당 골에서의 사역을 정동(貞洞)과 비교하여 연구한다.
본 논문의 목적은 20세기 모더니즘 최고 시인 엘리엇과 모더니즘 최고 소설가 조이스의 1923-1927년 사이의 관계를 전기비평 관점에서 조명하는 것이다. 이 논문은 주로 『T. S. 엘리엇의 서한집』 2권(2009)과 3권(2012), 『제임스 조이스의 서한집』 1권(1957)과 3권(1966)에 수록된 서신들에 나타난 크라이티어리언 편집인 엘리엇이 조지 세인츠베리에 게 조이스의 『율리시즈』 비평문 원고 청탁, 『율리시즈』에 관한 엘리엇 의 비평, 조이스의 눈수술과 가족 숙소에 관한 엘리엇의 관심, 조이스의 『황무지』 패로디시, 조이스의 엘리엇 부부에 관한 안부 등을 탐색하고 있다. 아울러 엘리엇이 「『율리시즈』, 질서와 신화」(1923)에서 리처드 알딩턴의 『율리시즈』 혹평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호메로스의 『오디세이』 와 『율리시즈』의 병행 구조의 “신화적 기법”의 수월성 제시, 엘리엇의 사무엘 로스의 『율리시즈』 해적판과 자신 시의 무단 출간에 대한 비판과 공방(攻防), 실비아 비치 주도 조이스의 로스 소송 일환의 국제적 항의문에 엘리엇의 서명 등을 심도 있게 천착하고 있다. 요컨대, 5년 기간에 걸친 엘리엇과 조이스 및 파운드의 수많은 서한들은 엘리엇과 조이스가 친밀한 관계에서 『율리시즈』 비판과 불법적인 판권 침해에 대해 공동 대처를 모색하는 모더니스트 문학 거장들의 협조 관계로 이르기까 지 상호 강력한 영향력을 시사하고 있다.
제임스 톰슨은 빅토리아 시대 시인으로서, 『두려운 밤』의 도시를 발표했는데, 『황무지』와 『두려운 밤』의 도시는 그 어조와 세계관 그리고 멜랑콜리적인 요소의 연관성으로 볼 때, 엘리엇은 톰슨의 작품을 염두에 두고 『황무지』를 집필한 것으로 추측된다. 실제 엘리엇이 강의했던 내용 중에 제임스 톰슨이 포함되어 있으며, 또한 엘리엇이 처음 톰슨을 읽었던 시기가 비교적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톰슨의 작품이 엘리엇의 문학세계를 형성하는데 중요한 바탕이 되었을 것 이다. 멜랑콜리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도상학적 이미지와 상징 그리고 전형적인 상실과 암울함 또는 희망과 구원에 대한 좌절 등이 두 작품에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는데, 『황무지』는 『두려운 밤의 도시』가 차용하고 있는 상당부분의 멜랑콜리적인 요소들을 반복하고 있다. 특히 작품의 중요한 인유로서 이용되고 있는 단테를 비롯하여, 다양한 중세회화의 도상들은 엘리엇의 『황무지』가 톰슨이 묘사하려고 했던 멜랑콜리적인 세계, 혹은 도시의 모습을 현대적으로 재현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he main aim of this essay is to extract similarities between James Thomson’s The City of Dreadful Night of and The Waste Land. The names of the two poets have often been mentioned in connection, but the relation between their poetry has not drawn a serious attention. This essay is meant to track possible exchanges between the poets by examining mainly The City of Dreadful Night and The Waste Land. My focus has been on how Thomson influenced the urban scenes in Eliot’s poems and the images of the “Unreal City,” which are centered on London.Thomson’s poetry shows much influence from Dante. I have tried to present a meaningful number of verbal details showing that Eliot’s reading of Thomson was not confined to The City of Dreadful Night. Thomson seems to have also been a major influence on Eliot’s general thoughts and techniques. Eliot seems to make a good case of how a later-coming and greater-talented poet can make a more universally-appealing work out of the stuffs a locally-confined predecessor presented to the world.
This paper purports to read “Portrait of a Lady” in terms of Henry James’ influence. Unlike the influence of French Symbolist poets, H. James’s influence has not drawn many critical attentions. Eliot is greatly indebted to H. James in many ways. First of all, it is James from whom Eliot had learned that poetry ought to be as well written as prose. Also, as Eliot himself said, he was stimulated by the method to make a place real not descriptively but by something happening there and to let a situation, a relation, and an atmosphere give only what the writer wants in James’s stories. Under the inspiration of James, Eliot can cultivate his gift for dramatic verse. So, we can say the dramatic quality of Eliot’s poetry which is no less than in James’s stories, is not irrelevant to the Jamesian method. Considering such influence of James, this paper aims at comparing Eliot’s “Portrait of a Lady” and James’s The Portrait of a Lady and “The Beast in the Jungle”, in the light of the character’s failure and frustration. Especially, Eliot’s “Portrait of a Lady” and James’s “The Beast in the Jungle” portray a man who fails in having relations with a woman in common. In both of works, each man is distinctively selfish. We can investigate more concretely in what ways “the egotism of a man” is expressed and presented as a hindrance in human relations in both work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