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연구는 예이츠의 작품 환상록을 중심으로 역사 순환 원리와 헬렌 신화를 분석하였다. 예이츠에 따르면, 인류 역사는 4,000년을 주기로 교차되며, 그리스와 기독교 문명은 각각 2,000년의 주기를 겪어왔다. 그리스 문명은 헬렌의 탄생, 트로이 전쟁, 그리고 헬렌의 귀환과 함께 전환점을 맞이했고, 기독교 문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시작되어 현재까지 찬란하게 발전해 왔다. 예이츠는 마이클 로발츠가 레다의 잃어버린 알을 찾는 신화를 통해 다가올 새로운 문명을 비관적 종말론과 두려움으로 묘사한다. 이 글은 예이츠의 역사 철학을 살펴보며, 그가 예지력과 통찰력을 바탕으로 가이어의 회전과 순환을 적용하여 인간과 문명의 과거, 현재, 미래를 칸트의 이율배반적 변증론으로 재해석한 내용을 다룬다.
이 논문은 예이츠 부부가 행한 자동기술을 이해하기 위해서 먼저 예이츠와 조지가 자동기술을 한 시기의 편지를 읽고 다음은 영향을 미쳤을 수 있는 시들을 보는 것이다. 하나의 방법은 지동기술 이전과 이후의 시들을 비교하는 것인데, 이 논문은 자동기술 이전과 이후의 시와 환상록 발간 이후의 시가 어떻게 다른가를 살핀다. 이 논문의 의의는 어떤 시인들과 평론가들은 그를 마술사로 여기면서 낮게 평가한다. 나는 환상록을 만드는 과정이 예이츠의 시를 풍요롭게 만들었다고 여기며, 설령 그가 마술사가 아니었어도 그는, 그의 초기시들이 보여주듯이, 위대한 시를 썼을 것이다. 에즈라 파운드는 대학 때 예이츠의 초기시에 이끌려 영국으로 건너와 예이츠를 직접 만나고자 했다. 그들의 만남은 결국 현대시의 역사를 바꾸게 된다. 본 논문은 2부로 나뉘어져 있는데, 1부는 예이츠부부의 자동기술의 과정을 들여다 볼 것이고 2부는 환상록 이전에 쓰여진 시와 이후에 쓰여진 시들을 비교하고, 환상록의 의의를 평가한다.
예이츠와 아우로빈도 고시의 작품은 삶의 후반기에 시를 위한 여러 해의 주제, 출처 및 구조로 남아 있었다. 예이츠는 마지막 시기까지 시적 위대함을 추구 했고 아우로빈도 고시는 초의식과 합쳐질 때까지 서사시를 쓰고 영혼의 변화, 영혼의 여정에 대해 몰두했다. 예이츠의 『환상록』은 달의 28위상과 인간 마음과 문명의 원리를 나타낸 기하학적 상징이며, 아우로빈도 고시의 『성스러운 생명』은 영적 진화, 초심적 의식을 향한 초인간적인 분투의 두 방법을 사용하여 물질을 통한 마음의 고양, 초월적 마음, 초의식, ‘존재, 의식, 행복’로의 고양을 추구한다. 예이츠의 철학서 『환상록』은 탁월한 시적 성취를 위한 신화 체계이라면 아우로빈도 고시의 『성스러운 생명』은 궁극적인 현실을 달성하기 위한 미로이다. 삶은 계속되고, 인간이 죽을 때 삶이 성장 하기 위해 호흡이 필요하고, 육체의 기관은 삶을 위해 더 이상 유용하지 않고, 육체의 기능이 상실될 때 삶은 물러난다
호프스태터와 예이츠는 인생의 신비함은 결코 틀리지 않으며, 신비하고, 매혹적이라는 점에 동의하는 것 같아 서로 연관성이 있어보여서 서로 비교하면서 읽게 되었다. 인생의 신비로움을 파헤치는 그들의 노력은 환상적이다. 그러나 읽으면 읽을수록 더 혼란스러워지는 것도 사실인 듯하다. 그러나 거의 따라가는 듯도 하며 책을 다 읽은 지금도 신비의 여운이 감돈다.
예이츠의 가이어는 예이츠의 또 다른 중요한 상징 원 또는 대차륜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예이츠의 대차륜은 달의 28개 월상(月像)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의 상은 인간의 서로 다른 성품을 구현하고 있다. 본 연구의 목적은 『환상록』에 나오는 기하학적인 상징체계인 달에 대하여 살펴보므로 예이츠의 작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는 데 있다. 이를 위해 달의 28 국면을 예이츠의 상징체계에 영향을 준 것과 관련시켜 다루고자 한다.
예이츠는 「자기와 영혼의 대화」에서 연인에 대한 영원한 사랑을 추구한 다. 반면 휘트먼은 「나자신의 노래」에서 신과 인류에 대한 원대한 사랑을 약속한다. 본 논문은 예이츠의 『환상록』을 중심으로, 2장. 상징의 완성의 네 원리와 3장. 영혼의 심판의 영의 사후 상태를 전통적인 신비주의 체험과정을 통하여 비교하였다. 그리고 이를 영/영혼과 다이몬, 정념체와 천상체, 제13원추와 서로 연관되도록 정리하였다. 달의 28상에서 대립상적 성향의 17상 예이츠와 기본상적 성향의 6상 휘트먼의 세계관은 상이하다. 하지만 두 시인은 서정 시인의 창조력, 신념처럼 ‘궁극적 본질을 완성하는 삶’으로 우리를 이끈다.
『환상록』의 근거가 되는 환상록 서류로 알려진 자료를 보면 덜 확정적인 데, 자동기술로 채워진 노트북이나 묶지 않은 서류들, 꿈의 기록들, 카드 카탈로그, 원고초안들은 예이츠와 부인 조지가 공동으로 만든 것들이다. 그러나, 출판된 『환상록』만큼의 저자의 권위는 없겠지만, 이 서류들의 전개과정을 검토함으로써 예이츠와 조지가 가진 체계에 대한 생각을 들여다볼 수 있는 창문의 역할을 할 것이다. 즉, 예이츠가 통상의 시간의 영역 밖으로 시간을 확장하는 것을 전경화시키는 창인 것이다. 그리고 거기서 시간은 그의 작품 속에서 본래의 역할을 하는데, 순간을 세고, 영원을 포용하고, 상징적 힘으로 울림을 만든다.
예이츠의 작품은 다시 찾은 시공과 재창조된 시공에 존재한다. 창조된 시공은 현대시대에서 음유시인의 역할을 재상상함으로써 자신을 위해 만든 것이다. 1937 년 환상록을 완성함으로써 그의 작품은 전통적인 영원성의 시간개념(일순간 인식된 모든 시간)을 반영하기 시작할 뿐 아니라, 『창유리에 쓰인 말』과 『연옥』에서 보이는 현세적인 시간과 영원한 시간 사이에 존재하는 초자연적 시간도 반영한다. 이 초자연적 시 간은 보통 우리가 살아가는 시간보다 더 유동적이다.
모더니즘은 거대한 끈적거리는 생물체와 같거나, 아니면 생태계의 하나의 움직임 같아서, 혹은 생존을 위해 투쟁하는 다양한 주의들 속의 변덕스러운 피막 같아서, 각 이즘은 과거의 이즘(피터 비어랙의 우스운 조어인데)이 되는 것을 피하려고 한다. 미래파, 입체파, 추상, 신조형주의, 모두 허둥대면 서로를 잡아먹으려고 하는데, 이들 중 하나는 서로 경합하는 이즘의 한 부분이나 일부를 삼키는데 성공하여 소화시켜 자신의 몸의 일부를 형성한다. 내 생각에는 예이츠의 『환상록』(본인은 의도하지 않았지만) 조직적인 약도 혹은 전체도가 되어서, 모더니즘의 여러 요소들을 통합아여 하나의 디자인을 만든다.
일부 비평가들은『배우 여왕』이 예이츠의『환상록』의 내용을 알레고리로 극화시킨 희곡으로 무대 상연의 가치가 없다고 평가했다. 이 글은 그러한 비평가들의 해석에 반박하여『배우 여왕』은『환상록』을 몰라도 충분히 즐길 수 있는, 예이츠가 의도한대로 소극으로서 독자적인 가치를 지니고 있는 희곡이라는 주장을 하기 위해 비평가들의 해석을 검토한다.
W. B. 예이츠가 평생을 쏟은 비술연구는 그의 책『환상록』에서 결정체를 이룬다. 그의 문학작품의 기저를 이루는 중요한 자료가 된 이 책에서, 예이츠는 사후세계와 영혼의 영원한 환생에 대해 설명한다. 영혼의 환생사이의 기간은 6단계로 나뉘며, 두 번째 단계인 명상은 꿈으로 되돌아보기와 회기를 포함하는데, 이것은 예이츠의 작품에서 가장 자주 볼 수 있는 단계로, “양치기와 염소치기,”『연옥』,『뼈다귀들이 꾸는 꿈』등의 작품 속 영혼들이 지나간 생을 여러 번 살며 존재하는 곳이다. 또한 “마이클 로바티스의 이중비전” 에서 영혼은 축복의 단계에, 다른 영혼들은 마침내 정화와 예지의 단계에 도달하며, 환생의 영원한 순환 속으로 나아간다.
예이츠의 환상록 속의 신비적-환상적 작품은 두 가지 인식 흐름, 즉 하 향적이거나 상향적 움직임, 다시 말해서 신적 존재의 하향적 목소리와 인간의 상향적 목소리의 흐름을 보인다. 이원적 의식의 흐름은 곧 시인의 인식론적 마음을 표현하는 과정이며, 불교의 중도론적 인식 과정을 대변한다. 예이츠의 신비학도 이 불가지 세계 에 대한 인식론적 반응이며, 대체적으로그의 문학적 의도성은 시인의 원소론적 마음을 드러내는 고정, 심학(心學)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만성제야 시에 드러나듯이, 4 원소 인의 인식 형상이 인식론적 도식화 과정의 어려움을 대변해준다.
이 논문은 『비전』이 창조과정에 대해서 드러내는 것이 무엇인지 찾기 위해서 『비전』의 신비주의적 요소들 초월하려고 한다. 『비전』은 예이츠의 신비주의에 대한 관심과 인간의식의 가장자리 넘어 존재하는 것에 대한 세속적 설명(이를테면, 프로이드의 무의식) 사이에 끼인, 중요한 시기에 나타난다. 예이츠의 "안내자"가 말하는, "시를 위한 메타포"를 제공하는 것 이상으로 『비전』은 시적 영감이 생성하는 과정에 대한 통찰을 보여준다.
예이츠는 자신이 카멜레온의 길(호도스 카멜네온토스)이라 부르는 곳에 너무 깊이 방황하면 자신의 시가 파괴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 길에서는 상상력이 지나치게 넘쳐서 독자가 그 이미지들을 이해하지 못하게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그의 많은 희곡 작품에서 그는 이런 여러 이미지들을 실험한다. 그는 그가 읽은 페르시아 미술사에서 호도스 카멜레온토스와 동일한 이미지들을 발견했다.
This article discusses A Vision so it could be of some help to reading some of Yeats's metaphysical poems. It is true that some of his metaphysical poems are so beautiful but that it is not easy to grasp what they really want to say to the readers, and how and why they appear so haunting and attracting to the general readers. Equally important is that the book itself is a poem of supreme beauty. There are two versions of A Vision. The first version Yeats privately published in 1925. His wife Georgie was a medium, through whom Yeats had talked with his teachers/gods for seven years; as a result, he created a system that classifies man into 28 types following the 28 phases of the moon, made a theory of reincarnation, a history of the world, based on the cyclical and antithetical nature of the moon and the gyre. The second version became a new book. Yeats revised the first version, deleting, adding, polishing much of it, and published it two years before he died. While composing the first book, Yeats said he did not read philosophy, because he did not want himself to be under the influence of the philosophy and distort what his teachers said through the automatic writing. He did read philosophy, however, for four years, to understand his wife's automatic writing accurately, when he revised it for the second publication. Yeats questioned what he had invented, and further contemplated big questions intellectuals of his time raised. All of these efforts grew to be the book of the century that is most elaborate, most abstract and most concrete as well. It is both a book of beauty itself and a book for reading his poetry and plays and his though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