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결과

검색조건
좁혀보기
검색필터
결과 내 재검색

간행물

    분야

      발행연도

      -

        검색결과 229

        41.
        2019.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서예는 문자를 매개로 하여 자신의 성정을 나타내는 특수한 예술이다. 논서시는 내용 전달에서 서예를 주제로 삼아 시의 형식을 빌려 서예를 논한 것을 일컫는다. 이는 서예의 명칭․원류․도리․서예가․서예작 품․서예사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이를 또한 운문 형식의 시로 표현 하였기 때문에 산문형식의 서예이론에 비해 상징적․추상적․은유적 성격이 강하면서도 완곡한 의미를 함유하고 있다. 한국의 논서시는 신라 최치원이 효시를 이룬 뒤 고려 문인들이 한국과 중국의 서예와 관련된 내용들을 다각도로 작시(作詩)하였다. 조선시대의 서예개황은 고려말기 만권당을 통해 송설체가 유입된 이후 조선 초기 송설체의 대가 이용이 나왔고, 중기에 들어와 김구의 인수체(仁壽體)와 성수침의 청송체(聽松體)로 이어졌다가, 마침내 한호의 석봉체(石峯體)가 완성되었다. 조선시대의 논서시에서 초기를 대표하는 이용은 필법․자태․근골․정신이 뛰어났다. 그러나 송설체는 말류의 폐단을 나타내자, 성리학자들은 논서시를 통해 이를 걱정하며, 서예의 근본을 추구하는 경향을 나타내었다. 중기에서 자주의식을 갖추고 조선 미감을 대표하는 한호에 대해 송설체를 벗어나, 왕희지를 추구하는 논서시들이 나타났다. 후기의 이광사는 논서시를 통해 왕희지체를 전범으로 삼은 바탕에서, 조선 서예의 토착화를 모색하였다. 말기를 대표하는 김정희의 공허한 성리학보다는, 실사구시의 금석고증학을 기반으로 한 북학을 학문과 예술로 승화시켰다. 이러한 조선시대 논서시의 특징은, 조선 서예사의 반영, 조선인의 예술적 정감을 표현, 시대마다의 서예 비평 등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서예를 논한 운문의 논서시는, 논리의 체계를 갖추고 의미를 전달한다는 면에서, 비록 형식의 서사시로 쓴 서론 보다는 미흡하지만, 표상적이며 최상인 문인서예에 더욱 걸맞은 것이라 하겠다. 연구를 폭 넓게 확대하여 논 서시에 대한 관심을 갖는다면, 문인서예발전에 이바지 할 뿐만 아니라 새로운 서예 창작에 많은 도움을 주어 서예에 건실한 표석이 될 것이다.
        8,600원
        42.
        2019.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연화문(연꽃문양)은 다른 역사문화유산(나전칠기, 회화, 금속 공예, 기와 등)에서와 마찬가지로 고려·조선시대(임진왜란 이전) 도자기 문양에서 압도적인 비중이고 모습도 다양하다. 그 모습은 자연 생태계의 모습과 가깝고 닮은 경우(原연화문·蓮池연화문), 氣·化生을 적극 나타낸 경우로 구분된다. 이 시기 도자기에는 분명 연화문임에도 불구하고 연화당초문·모란문· 菊花文·寶相華文·如意頭文으로 잘못 불리는 문양들이 있다. 이 가운데 연화당초문은 연화문과 덩굴문이란 독립된 두 문양의 단순한 결합으로, 모란문은 연꽃잎과 연잎사귀 모습을 분리하여 꽃나무 모습이 되자 꽃봉오리가 비슷한 모란으로 착각하며, 국화문은 子房에 비하여 연꽃잎(연판)을 가늘고 길게 표현하자 비슷한 국화로 착각하며, 보상화문은 연꽃잎에 기· 화생이 많이 표현되어 다소 복잡한 모습이 되자 다른 꽃으로 여기며, 여의두문은 연꽃잎이 如意의 머리처럼 보여 각각 부여된 이름이다. 연화문은 한 도자기 안에서도 한 모습보다 여러 모습인 경우가 더 많고, 原연화문부터 연속 덩굴 연화문에 이르는 단계도 보여 준다. 또한 原연화문·蓮池연화문보다 기·화생을 더 나타낸 덩굴 연화문 쪽이 많다. 이 현상은 우리 先人들이 연화문의 다양한 모습은 물론 성격, 기·화생의 강약, 표현 위치 등을 철저하게 이해하며 표현하였음을 의미한다. 이 시기 도자기에 있는 기·화생을 담은 연화문들은 물론이고, 중앙에 서 외곽으로 또는 위쪽으로 상승하는 표현들, 나무처럼 표현한 연꽃, 산을 화생하는 연꽃 표현 등은 중국에서 또는, 불교와 함께 전래된 불교를 상징하거나 관련되는 표현이 전혀 아니다. 우리 겨레의 역사문화강역 안에서 신석기·청동기시대부터 믿음과 전통을 담아 치밀하고 높은 수준으로 전개된 표현이다.
        9,000원
        43.
        2019.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As a part of the research on existing structures of private homes from Joseon Era. Focusing on one hundred twenty five-purlin houses, the current study investigated the features and characteristics of the house structure from style, size, proportion and roof pitch, and measurements of key parts, and developed the following conclusions. Most are single-houses (89, 83%), and among them, there are 47 single front-terrace houses (39%), which is the highest number. The sizes of lower house structure do not differ greatly depending on the vertical structure, and single rear terrace house and double-house have relatively larger side sizes. The size of upper structure is larger in double-houses compared to other vertical structures, indicating a relatively higher roof. The cross-section measurement of major parts show that double-houses are larger than single-houses by 3cm in pillar, 3-4.5cm in crossbeam length, and 4.5cm in crossbeam width. However, Janghyeo width was consistent at 7.5 to 10.5cm, maintaining uniformity regardless of vertical structure of the houses. In addition, the cross-section measurements decreased from sixteenth to nineteenth century, with the size of pillar size decreasing the most. The result that the Janghyeo width is not related to the house structure house confirmed that the Janghyeo width was kept consistent regardless of the size of the house structure.
        4,000원
        44.
        201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When identifying the dancheong during the Joseon Dynasty, a great number of the terms used [e.g., dancheong(丹靑), geumbyeok(金碧), danhwak(丹雘), danbyeok(丹碧), dannok(丹綠), danchil(丹漆), hyuchil(髹漆), hyudong(髹彤), etc.] are found in literature records. However, the details are still veiled. This study investigated the characteristics of dancheong-related terms by analyzing their usages and contents based on literature records from the Joseon period. Architecturally, geumbyeok, danbyeok and dannok were used in temples, and dancheong was painted on walls. In the royal palace, danhwak was adopted while dancheong was also painted on these walls as well. Specifically, danchil was applied to the columns inside and outside buildings while hyudong was painted on rafter, walls and roof tiles. In addition, hyuchil was applied to the inside of the royal palace.
        4,300원
        45.
        2018.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동북아시아에서 神山은 불로장생하는 신선이 용ㆍ봉황 등 상서로운 동물들과 더불어 살아가는 곳, 별천지ㆍ낙원ㆍ이상향, 혼탁하고 각박한 현실을 벗어나 도달하고 싶은 곳으로 여겼다. 바다 멀리에도 신산이 있다고 여겼으며 이를 본고에서 편의상 ‘海中神山’이라고 命名하였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해중신산은 세 개의 섬으로 구성되었다고 여긴 ‘三神山’이다. 옛 先人들은 이 해중신산ㆍ삼신산을 찾아보려 하였으며 노래나 문학 그리고 닮은 모습(造形 작업) 등으로 표현하였다. 해중신산(삼신산 포함) 圖像은 본 연구에 소개한 조선시대 후기인 18 세기에 만든 도자기의 그림에서처럼 다양하다. 그 중심은 섬(산)이고, 物象으로 동물(새ㆍ사슴ㆍ거북이ㆍ어류(물고기ㆍ게ㆍ새우 등), 식물(연꽃 ㆍ소나무ㆍ대나무ㆍ不老草), 태양(대개 산의 위쪽), 바다의 표현인 물결, 구름, 배(운송 수단), 집(누각 포함), 인물(신선) 등이 있다. 그 典型的인 모습은 부여 외리 출토 산수문전(도3)~(도5)ㆍ부여 능산리 출토 백제금동대향로(도1)와 符節처럼 연결되는 (도12)이다. 즉 바다 물결 위에 경사가 급한 바위 절벽이 둘러있는 산과 그 산을 배경으로 동물(날짐승ㆍ길짐승)ㆍ식물(소나무ㆍ불로초 등) 등의 물상을 표현하였다. 이외에도 산을 원경으로 배치하고 그곳으로 갈 배를 부르거나 도착한 모습, 산을 근경으로 배치하고 물상을 더 자세하게 나타낸 경우, 산은 생략한 채 뭍 또는 물 속의 물상 중심으로 나타낸 경우도 있다. 물상은 여러 종류인 경우가 많지만 때로는 몇 종류로 그친 경우도 있다. 우리나라 해중신산(삼신산 포함) 도상은 조선시대 도자기 이외의 역사 문화유산에도 다양하다. 이 도상의 원류는 우리나라 신석기ㆍ청동기시대로 소급된다. 그리고 삼국시대에 이르면 공주 무령왕릉 출토 은제 탁잔(도2)(도2-1)ㆍ부여 외리 출토 산수문전(도3)~(도5)ㆍ부여 능산리 출토 백제금동대향로(도1) 등에서 보듯 매우 精緻한 단계에 있었다. 이 도도한 흐름은 (도12)에서 보듯 조선시대 후기인 19세기까지도 큰 변동 없이 전개되었다. 조선시대 도자기 그림 가운데 해중신산 圖像이 있다는 본 연구의 결론은 우리나라 도자사ㆍ회화사 연구에서 첫 주장이다. 이 논문을 계기로 고려ㆍ조선시대 도자기의 그림을 고유의 믿음ㆍ사상ㆍ종교의 전통과 토대에서 탄생한 역사문화유산으로 바라보았으면 한다. 뚜렷한 근거도 없이 산수화(경기도 광주 司饔院 分院 일대의 漢江과 주변 풍경, 중국의 소상팔경을 그린 그림)ㆍ정물화로 보거나 또는 불교ㆍ중국 중심으로 해석하고 또는 그 영향을 받은 것으로 판단하는 기존 학계의 잘못도 시정 되었으면 한다.
        8,600원
        46.
        2018.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study will introduce the foods recorded in Gyemiseo and disclose the substantive characteristics of traditional Korean food in the early stage of the Joseon Dynasty. Gyemiseo is a cook book manuscript written in the Chinese language that was rebound into book format at the end of the Joseon Dynasty in 1911, some 358 years after it was originally written in the 163rd year of the Joseon Dynasty (1554) While the majority of cook books begin with recipes for various types of wines and liquor followed by those for fermented sauces, fermented vegetables (such as kimchi), vinegars and storage methods, etc., Gyemiseo begins with recipes for fermented sauces, followed by recipes for various kimchis, how to make vinegars, main meals, side dishes, rice cakes and confectionaries, with recipes for wines and liquor introduced last. Therefore, it can be assumed that the methods of brewing wines and liquors were additionally recorded for bookbinding. There are a total of 128 recipes recorded in Gyemiseo, including 13 for fermented sauces, 14 for kimchi, 11 for the main meal, 26 for side dishes, three storage methods, four for rice cakes and confectionaries, and 44 for wines and liquors. It is believed that contents of Gyemiseo will provide a foundation on which to pursue researches on the process of transition of cooking methods of traditional cuisines of Korea during the Joseon Dynasty.
        4,800원
        47.
        2018.06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한국도로학회 회원인 도로기술자가 조선시대 도로역 사를 살펴보게 된 동기는 대한건설협회 창설 70주년을 맞아“한국건설통사”발간을 위한 원고 요청이 있어, 지난 1년 동안 조선시대 도로역사를 쓰느라 많은 공부 를 하면서 조선조 역사를 되돌아보게 되면서였다. 우리시대와 가장 가까운 조선조 518년간은 조정 중신 들의 사리사욕과 끊임없는 당파싸움 속에서, 나라의 미 래를 위한 상업·산업·민주정치는 염두에 없었으므로 국력시장의 원동력이 되는 도로정비보다 성곽 쌓기에 만 집착하다 보니 국력은 쇠퇴해져 세계 최빈국으로 추 락했다. 그럼에도 반성 없이 국정을 운영하다가 결국 일본 침략에 의해 조선국은 멸망하고 세계지도에서 36 년간 사라졌었던 경험이 진정 되풀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하겠다. 지난회지 제7편에는 제7절 조선조 말의 도로실태 중에 서 6. 일제침략과 도로개수사업, 도시 가로망 정비, 전 차의 첫 등장, 자동차 등장, 연락선 운영과 한일합방 후 도로 현황 등을 게재하였고, 마지막으로 금회 제8편에 서는 제8절 조선조가 남긴 도로업적들 중 태조의 경국 대전 편찬과 한성 천도, 장영실의 톱니바퀴와 수레 개 발, 조선 지도의 우수성, 실학자들의 도로 활동과 왕명 (35건)과 제9절 조선시대 도로역사에 대한 평가 등을 기술하였는데, 만일 전체 원고 내용이 필요하신 회원님 은 연락(tkp3588@naver.com) 주시기 바랍니다.
        4,000원
        50.
        2018.04 구독 인증기관·개인회원 무료
        유교국가였던 조선은 중국의 개량형이라 할 만큼 중국의 문화를 수용하는데 적극적이였다. 그러나 그것은 수용의 단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창의적으로 계승 발전시킨 점에 주목해 해석한 의미이다. 중국과 한국이 대륙과 반도라는 지정학적 위치와 한자문화권의 영향으로 한·중간의 외교와 문물왕래를 통한 문화교류가 학문과 예술사조 전반에서 나타난다. 원나라때 성리학의 계승이나 송대 목조건축에 의한 우리 목조건축의 발달, 당대 남종화풍의 영향은 우리 미술사에서도 발견된다. 과거 중국의 유교사상으로 인해 문인들은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매우 중시했기 때문에 원림의 소재가 되는 꽃과 나무의 경우도 중국의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했다. 본 연구에서는 조선시대 발달한 백과사전류에서 나타나는 꽃과 나무에 대한 출전분석을 통해 중국의 것을 인용한 사례에 주목하여 그 현상을 파악하고자 하였다. 나름대로 독자성을 추구했던 농서분야의 경우에도 농사 직설은 중국의 풍토와 다른 우리나라에 실정에 맞게 편찬된 농서였으나 우리나라 역시 지역의 풍토가 다르다는 점을 인식하지 못했다는 한계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 양반사회 의 전유물이다시피 했던 꽃과 나무들에 대한 내용들을 포함 한 백과사전류에서는 어떠한 특성을 보이고 있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홍만선의 산림경제에서는 꽃을 다룰 때 대부분 송대의 화훼서가 인용의 주를 이루고 있는데 중국 송대는 당대에 등장한 화훼서의 영향으로 민간인들에게도 화훼가 가장 유행했던 시기이다. 대나무 심는 법을 자세히 기록한 월암종 죽법에 보면 “도랑을 깊고 넓게 파고 말린 마분과 고운 진흙 을 고루 섞어 높이 1자 정도로 메운다. 마분이 없으면 간겨를 대용해도 된다. 여름철에는 성글게, 겨울에는 빽빽이 채운 다음에 대나무를 심는다.” 고 기술되어 있는데 이러한 자세한 재식방법의 서술은 조선시대 양반들이 따라할 만한 비법으로까지 통했다. 또 양반의 서화취미와 관련되어 꽃과 나무의 격을 품평하는데 있어 해당 종의 생육조건을 아는 것은 형태와 그 의미를 발굴하는 기초적 소양이 되었다. 서유구의 임원경제지 예원지편에는 명나라 왕상진의 군 방보, 박주목단사, 낙양목단기 등이 가장 많이 인용되었다. 낙양에서 유명한 모란의 인기는 조선시대에도 유행하였다. 특히 임원경제지에는 금화경독기의 인용도 많이 등장하는데 이 책은 중국의 것이 아닌 서유구의 저작으로 중국 것과 비교하여 우리 풍토에 맞도록 새롭게 적용한 것이다. 과실수와 조경수목을 다룬 임원경제지 만학지에는 역대 중국 약학서를 집대성한 명나라 이시진의 본초강목, 명나라 왕상진의 군방보, 당나라 곽탁타의 종수서, 양안 상순의 화 한삼재도회, 명나라 광번의 편민도찬, 명나라 서광계의 감 저소 등이 주요 인용서로 제시되었다. 백과사전류의 집필유 행에 의해 해당분야 지식기반이 풍부해지자 당시 관련 중국 책자와의 비교를 통한 현지적용이 발달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현상은 꽤 오래전 부터 있었던 사실이다. 일찍이 15 세기에 화훼류를 집성한 작은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는 강 희안의 양화소록에는 원나라 거가필용사류전집이 다수 인용되었다. 강희안의 양화소록은 중국의 출전을 그대로 인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오랫동안 관찰한 우리나라 환경을 적용해 자세히 그 차이점을 일러주고 있다. 동생인 강희맹도 같은 경향을 띤다. 그들은 식물에 대해 설명할 때 먼저 폭넓게 수집한 전거들을 인용했다. 이는 당시 학문의 성향이 출전에 의해 그 근거를 대는 것을 기본교양으로 삼았기 때문에 보여지는 현상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 화목을 가꾸는 것과 감상하는 것은 인간의 심성을 도야하는데 필요한 수단이였으며 유학의 격물치지와 그 맥을 함께 한다. 당시 중국의 꽃과 나무에 대한 책자들의 인용에서 나타나는 현상은 먼저 지식인층이 중국에서 유행한 문화와 그 본보기로 책자들을 수용한 후, 이를 탐독하여 현지풍토에 맞춘 창의적 개량을 한 것을 세상에 백과사전류의 편찬을 통해 내놓는 수순을 밟은 것이다. 임원경제지와 같은 시기에 유희의 물명고와 같은 사전형 식에도 초와 목이 소재로 등장한다. 백과사전류의 편찬유행에 영향을 준 것은 이용후생의 실 학적 사상의 영향을 들 수 있다. 당시 조선은 공법과 도량형이 표준화되지 않았고 모든 행위와 공정에 체계가 없는 상태 였고 재료에 대한 지식 또한 없었던 점은 중국의 것을 적극 수용할 수 있는 다양한 기회가 되었다. 중국에서 먼저 유행 한 문물에 대해 관심이 많았고 이러한 지식을 조선에 먼저 전하려 한 선구자적 입장도 있었다. 이러한 현상은 중국문물을 전문으로 수입하는 상인세력과 함께 발달하게 된다. 실학파의 입장에서는 실사구시의 형태로 본격화 되면서 꽃과 나무의 이름 붙이기와 품종의 구별, 의미를 따지는 품 평이외에도 파종이나 접붙이는 법, 재배나 재식 등과 관리 도 총망라되는 실용적 전문서 경향도 보이게 된다. 조선시대 꽃과 나무를 다룬 백과사전류들은 중국책에서 얻은 견문을 활용하고 당대의 관련 정보를 집대성하면서 이를 통해 우리환경에 맞춘 독특한 식생이나 전통지식을 덧붙이는 도구로 사용되어 그 편찬과정을 반복하면서 당시 정원경영과 원예유행의 지식기반으로 작용되기도 했다.
        51.
        2018.03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4,200원
        52.
        2017.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study attempted to analyze how dancheong for palace tablets during the Joseon period was designed as related to what plans and what materials were being used. It also investigated how this unique culture formed. The results found the following: First, the tablet dancheong unveiled through literature was designed using diverse techniques such as jinchae and yeokcheongchil. In jinchae, shell powder was applied to the tablet as the first lacquering, and then was colored. Second, in lacquer, maechil, chaesaekchil and jeohyeoptaechil were used. In yeokcheongchil, vegetable black, oil ash and perilla oil were applied to bitumen. Third, during the Joseon Dynasty, dancheong was applied to a tablet after first lacquering just like the danpihoe lacquering of Jiangsu Sheng, China. This tablet dancheong technique was developed based on a unique Korean lacquering culture that had been handed down from ancient times.
        4,300원
        53.
        2017.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4,000원
        54.
        2017.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Altar architecture is a kind of sacrificial building, mainly formed in altar. Central architecture of Altar architecture is relatively simple. However, various attached building are necessary for worship. Among them, Sinsil which is a place to seal a God’s tablet, is very important. The central government of the Joseon Dynasty attempted to define the local sacrificial system and make it customary as a way to strengthen the centralization based on Confucianism. Nonetheless, the altar architecture of the province without detailed regulations, were managed and underwent repairs according to the political situation of the state and local circumstances. Sinsil, which is an important component of the altar architecture, best reflects this situation. Therefore, it was possible to grasp the situation of the altar architecture of the province in the Joseon Dynasty by analyzing the Sinsil through various documents. As a result of analysis, it was divided into six types. In addition, It is also found that there are temporal relation between these six types.
        4,300원
        55.
        2017.09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4,200원
        56.
        2017.08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조선시대 태일전(太一殿)은 나라에서 太一이란 별에게 제사했던 건물이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조선 成宗시기에 태일전의 방소를 옮겨서 제사하는 이방(移方)의 문제가 본격적으로 논의되었다. 조선의 태일전과 太一殿의 移方은 高麗의 태일초제(太一醮祭)의식을 계승한 것이다. 고려에서는 귀주(龜州) 화령 (和寧)충주(忠州) 부평(富平)에 太一宮觀을 移方하였다. 조선에서도 고려의 인식과 법식을 계승하여 통천(通川) 의성(義城) 태안(泰安)의 순서로 태일전을 移 方하였다. 太一殿의 移方의 원리는 天文曆法에 근거한 易學인 太乙數가운데 五福太乙法이다. 고려와 조선에서는 중국보다 더 太乙數의 五福太乙法을 충실하게 따라 移方하면서 太一醮祭를 행하였다.
        5,700원
        1 2 3 4 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