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study aimed to address the increasing demand for technologies preventing mushroom fly damage. By monitoring the annual occurrence patterns of pests over several years and accumulating data, we conducted an analysis to evaluate the efficacy of preventive measures applied before the surge in mushroom fly infestation, typically observed in May. For preemptive control, physical measures involved installing air curtains at cultivation facility entrances and placing sticky traps and insect traps around entry points to block external entry and reduce internal insect density. Additionally, we applied an organic agricultural material, Dalmatian chrysanthemum extract, weekly alongside chemical control measures. To assess the reduction in mushroom fly populations, yellow sticky traps (15×25 cm) were placed at three locations within the mushroom cultivation facility, and the occurrence patterns before and after implementing preventive measures were compared. Compared to conventional practices, the application of preventive techniques resulted in a significant reduction, with a 60% decrease from 15 levels of mushroom flies/m² to 6 levels of mushroom flies/m² in May and a 40% decrease from 10 levels of mushroom flies/m² to 6 levels of mushroom flies/m² in June. While achieving over 50% efficacy during the peak mushroom fly season with preventive measures, we identified complementary actions such as blocking external sources (gaps in cultivation facility doors) and maintaining cleanliness around cultivation facilities (proper disposal of spent substrate) for further improvement. Comprehensive analysis and safety studies, including correlation analysis with contaminants and pathogens, are recommended to ensure the widespread adoption of mushroom fly preventive techniques for safe and stable mushroom production in the agricultural sector.
백제 마지막 수도인 사비도성은 부여나성과 부소산성, 백마강이 도성의 경계를 이루고 그 내부에 도성 핵심시설을 구축하는 계획도시로 천도 이후부터 멸망까지 사비백제의 중심 지였다. 부여 나성의 성벽은 도성의 북동쪽에 위치한 해발 100m 전후한 산과 하천을 경유 하면서 축조되었다. 때문에 지형에 따라 축조 공정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지만, 성벽 전면 을 수직에 가깝에 석축하는 것은 성벽 전 구간에 동일하게 적용되었다. 본고에서는 부여 나성의 발굴 성과를 토대로 성벽의 입지 및 지형별 축조 기법의 양상을 살펴보고 출토된 유물과 주변 유적과의 상관관계를 통해 축조시기를 가늠해 보았다. 먼저, 입지적 특징에 따라 저습지-평지구간, 산지-평지 및 능선구간, 산지-경사구간으로 구분하 였다. 구간별 특징을 살펴보면 저습지-평지구간은 성벽을 조성할 때 하천 등의 연약 지반을 극복하는 부엽공법, 말뚝공법, 치환공법 등의 다양한 기술이 적용된다. 체성부의 축조는 넓 게 마련된 기저부 상면에 토축부와 석축부를 조성하는데 지점에 따라 선토축 후석축 혹은 선석축 후토축 공정으로 구축된다. 산지구간은 기본적으로 사면을 계단식으로 굴착하여 기 저면을 조성한 후 토축부로 체성의 대부분을 구축한 후 외면에 석축을 후축하거나 토축부와 석축부를 서로 동시에 조성하기도 한다. 석축부의 조성은 성외측 기저부에 구를 마련하여 기초석을 쌓은 뒤 그 상부는 장방형의 면석을 品자형으로 수평줄눈을 유지하면서 쌓고, 뒤 쪽은 일정 폭으로 할석으로 뒤채움석을 쌓는다. 부여 나성의 축조시점은 출토유물과 주변 유적과의 관계를 토대로 보면 6세기 초·전엽 무렵을 상한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출토 유물과 주변 유적의 연대자료가 아직까지는 소략 하기 때문에 향후 조사 성과를 기다릴 필요가 있다.
선사시대 사회상을 설명할 수 있는 유력한 자료로서 석기 석재 연구의 필요성에 대한 인식이 높아 지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 이후이다. 그때부터 석재 동정과 석재 산지 분석 결과 등이 발굴 보고서 에 포함되기 시작하였으나, 지질학 전공자에 의한 초기의 연구가 고고학 전공자의 자체적인 연구로까 지 이어지지는 못하였다. 그에 더해 발굴 보고서에 석재 동정 결과마저 언급되지 않는 경우도 점차 증 가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에는 비파괴 분석, 육안관찰 등에 의존해야 하는 석기 석재 동정의 오류 가 능성, 연구자에 따른 동정의 차이 등 연구 첫 단계인 석재 동정부터 여러 문제점이 있다는 것에 그 요인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문제점에 대한 대안의 하나로 석재 환경 조사를 실시하였다. 조사 대상 지역은 상대적으로 청동기시대의 유적이 다수 발견되고 산지에서 저지로 흐르는 하천이 여럿 위치하는 등 고고학적, 지 형적 조건을 고려하여 부여 서북부 지역을 선정하였다. 석재 환경 조사는 ‘1. 조사 대상 지역 선정 → 2. 조사 지역 내 유적 출토 석기 석재의 현황 파악 → 3. 지질도 등을 통한 지질 환경 파악 및 석 재 채집 지점 선정 → 4. 현지 석재 채집 → 5. 채집 석재 동정 → 6. 석기 석재와의 비교 검토’의 순서로 진행되었으며, 총 10개 지점에서 석재를 채집하여 석재 동정 및 주변 지역 출토 석기 석재와 비교 검토를 실시하였다. 이러한 석재 환경 조사는 유적 주변에서 채집된 석재를 기준으로 유적 출토 석기 석재를 동정하기 위한 작업으로, 석재 연구에 있어 가장 문제가 되는 석재 동정에 하나의 유효한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삼국사기』에는 백제가 나당연합군의 침공에 의해 660년 7 월 18일 멸망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일본서기』에는 663 년 9월 7일 주유성(州柔城)이 함락되어 백제의 이름이 끊어졌 고 두 번 다시 선조들의 무덤에도 갈 수 없게 되었다는 한탄이 기록되어 있다.1) 백제의 마지막 수도였던 그‘부여(扶餘)’땅에, 일본제국주의 식민정책의 영구화를 위한 내선일체의 영지를 표 방하는 ‘부여신궁’이 조영되었는데, 이 계획이 어떻게 시작되었 으며 어떠한 과정을 거쳐 계획되고, 공사 진척을 위해 전국적 으로 동원된 인원들과 그들의 봉사일정 등을 언론에 발표된 내 용을 중심으로 시간대별로 살펴보았다. 그리고 국내에서는 사 라졌던 부여신궁 본전 설계도를 입수하여 살펴보고, 현재 입구 가 거의 막힌 채 남아 있는 지하 터널의 용도와 설계도에서의 위치를 추정하여 본다. 기억하기 싫은 뼈아픈 치욕의 역사도 정확히 기억하고, 이를 극복하는 노력이 없으면 되풀이하는 실수를 범할 수가 있다. 실수를 반복하지 않기 위하여서라도 그때 당시를 적확히 찾아 기록하여 후대의 거울로 삼는 것도 의미가 있는 일이리라.
Tomb No. 1 (Donghachong) of the Buyeo Neungsan-ri Tomb complex (listed as UNESCO World Heritage Site), is a royal tomb of the Baekje Sabi Period. One wooden coffin unearthed there is an important relic of the funerary culture of the Baekje. This study examines the production techniques of gilt-bronze objects attached to the wooden coffin excavated from Donghachong. The base metal of the gilt-bronze object is pure copper, with single α phase crystals in a heterogeneous form containing annealing twins; Au and Hg are detected in the gilt layer. We suggest that the surface of the forging copperplate is gilded using a mercury amalgam technique; it is thought that the annealing twins of the base material formed during the heat treatment process for the sheet metal. The gilt layer is three to five times thicker for the gilt-bronze objects found near the foot of the coffin than those near the head. We estimate the plating process is carried out at least three times because three layers are identified on the plate near the head. Therefore, it is likely that the materials and methods used to construct the giltbronze objects found in different parts of the coffin are the same, but the number of platings is different. This research confirms the metal crafting techniques used in Baekje by the examination of production techniques of these gilt-bronze objects. Further, our paper presents an important example of restoration and reconstruction for a museum exhibition, through effective use of scientific analysis and investigation.
‘歷史는 勝者의 論理’라고 흔히들 말한다. 백제가 나당연합군의 침공에 의해 660년 7월 18일 멸망하면서, 百濟의 마지막 수도였던 ‘扶餘’는 불타고 한반도 역사의 전면에서 완전히 사라져 統一新羅時代와 高麗·朝鮮時 代에 걸쳐 ‘작은고을’로 겨우 命脈을 유지해 왔다. 1300여년이 지나 또 다른 침략세력인 ‘日本’에 의해 한반도가 植民支 配를 받는 기간에 아이러니하게도 ‘부여’가 일본 아스카 문화의 뿌리라는 것과 식민지배의 정당성을 구축하려는 숨은 의도에 의하여 역사의 전면으로 재부상하게 된다. 1914년 전국 郡·面統合을 주도한 오하라신조(小原新三,1873.-1953.)는 조선에 오기 전 일본 나라현(奈良県)의 사무관으로 재직하면서 아스카·나라시대의 문화와 백제문화가 깊은 관계가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던 사람 으로, 작은마을이었던 부여군(10개면)을 주변의 3개군(석성군·임천군·홍산 군)을 흡수하여 부여군(16개면)으로 통폐합하여 부여군의 위상을 제고(提 高)하였다. 이어 1915년 충남도장관으로 재직하면서 경복궁에서 열린 공진회에서 ‘부여팔경 디오라마’를 제작하여 116만 여명의 관람객에게 부여를 홍보하는 기회를 갖기도 하였다. 한편, 1915년 ‘공주’와‘논산’에서‘부여’간, 정기 교통편이 개통되는 등 타 도시와 교류 할 수 있는 기반이 만들어졌다. 1927년에 조선팔경 선정시 작은고을이었던 ‘부여’를 선정하는 등 다방면에서 ‘부여’의 位相提高노력이 이어졌다. 이 와중에 예부터 이름이 있던 곳들을 대상으로 부여의 23곳 관련 그림엽서들이 발행되었고, 그 중에서 발행 주체가 명기된 4곳은 부여고적 보존회(1915-1929), 재단법인 부여고적보존회 (1929.2.20.-1939.5.30.), 산구팔경당(山口八景堂), 다까바다게상점(高畠商店) 등이고, 발행 주체 표기가 되어 있지 않은 것들도 다수 살펴보았다.
‘북사’명 토기 출토 건물지는 사비도성의 南北道路에서 동쪽으로 약 30m 정도 떨어진 지점에 자리하고 있다. 이 건물지의 북쪽 1.5m 거리에는 인공으로 조성된 샘이 하나 있고, 여기에서 북쪽 2m 거리에는 동서방향으로 석축이 지나고 있다. 이 석축은 사비도성의 북쪽 경계를 표시하는 석축이다. ‘북사’명 토기 출토 건물지는 절반 정도만 조사 되었다. 규모는 남북 너비가 7.7m이고, 동서 길이는 4m만이 확인되었다. 동서 길이가 제대로 확인되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볼 때 남향의 건물이었음을 알 수 있다. 이 건물지는 소형의 독립가옥 형태를 하고 있는데, 지붕에 와당을 사용하고 있으며, 주변에서 祭器로 사용된 듯한 특수한 토기들이 다량 출토되었다. 그런 점에서 祭祀를 거행한 신성한 장소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사료에 의하면 백제는 사비도성내에 始祖 仇台廟를 모시고 1년에 4차례 제사를 지냈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北舍’명 토기 출토 건물지가 바로 그 始祖 仇台廟가 아닐까 생각된다.
King Seong carried out the large-scale construction transferring the capital from Wungjin (Gongju) to Sabi (Buyeo) in 538. But because most of the Buyeo area was the low swamp in the time, it needed above all to form a site before transferring the capital. Until recently, in addition to the scientific excavation, the relief excavations for the construction of new building or the formation of road were conducted on many sites in the Buyeo area. As a result, many remains which were formed on the low swamp including the temple site of Neungsan-ri, Dongna Castle, the remains of Ssangbuk-ri (280-5 Bukpo, Hyeonnaedeul) and the remains of Gua-ri were identified. Also in these remains, the various engineering construction methods irrespective of the nature of remains were used for the purpose of the soft ground reinforcement as follows: mattress method of construction, pile designation, stone alignment, filing of decomposed granite soil, culverts and storage tanks. Especially, the mattress method of construction and the pile designation are thought to be the traditional engineering construction method at least in that they are appeared since the Three Han Sates era. And these soft ground construction methods had an effect on the construction of reservoir in Japan at the time. In the future, the construction method for soft ground reinforcement shall be concerned and studied further in the architecture and the civil engineering as well as the archeology.
국내 대표적인 장석광산인 제천장석 광산과 부여장석 광산 모암의 암석학적 특성을 통하여 국내 장석광의 성인 및 광산유형을 분류하였다. 제천장석 광산은 거정질의 K장석을 함유한 반상화강암이 풍화되어 잔류물로 나타나는 거정질 K장석이 채취대상이 되는 전형적인 풍화잔류 광산이고 반상화강암의 형성 온도-압력은 840˚C, 5Kb를 나타내며 거정질의 K-장석은 변성기원이 아닌 화성기원이다. 반면 부여장석 광산은 우백질 화강편마암이 주변의 흑운모화강암의 관입으로 열수용액에 의한 교대변질 광산으로 순수한 알바이트 장석과 부수광물로서 석류석, 견운모가 나타나며 치밀하게 재결정화된 광물조직이 특징이다.
The aim of this study is to suggest the quantitative standard of a marginal village. For the purpose, the study selected 43 villages with the population of 50 or less, the classification of a marginal village in accordance with advanced research and 47 villages with the population over 50 in Buyeo-gun region. The common reason of occurrence of a marginal village suggested by advanced research is a characteristic of a village or decline and extinction of a village rather than a simple index of population or aging rate. Therefore, the study assumed that decline of functions of the village would be caused by decline a function of communities consisting of the villagers. The study then assumed that the relatively low or 0 number or rate of participants would result in community functions. The study conducted t-test on basis of population and aging rate and an analysis to find the range with relatively large differences in the number of communities, participants and the rate of the participants, etc. The result showed that the community function began to decline when the population was less than 60~70 and the aging rate over 75%~85%. As the decline of functions of communities began in population of 70, the critical point was met when the population was 40 or less. With population of 40 or less, the young and the old group communities became extinct or showed rapid decrease in the number of participants. The study assumed that decline of functions of a village, a reason of occurrence of a marginal village would be decline of functions of communities, but there was no further analysis on decline or extinction of a village with population of 40 or less. There shall be further studies about whether a village of population of 40 or less is led to decline of a function or extinction of village communities.
충남 부여군 홍산면 일대의 백운사층 셰일에서 산출되는 운모류 광물(혼합상 백운모)과 십자석에 대한 EPMA 연구를 수행하여, 혼합상 백운모와 십자석 생성 과정과의 관계 및 백운사층 셰일의 변성환경을 규명하고자 하였다. 암석에서 산출되는 운모류 광물의 평균 화학조성은 (K1.11Na0.26Ca0.04)(Al3.93Fe0.21Mg0.07)(Si6.08Al1.92)O20(OH)4로 층간 양이온 함량이 낮으며(1.41) 팔면체 자리에 Fe, Mg를 함유한 일라이트, 즉 백운모/파이로필라이트/녹니석 혼합상(Mu70.5Py23.5Ch6.0)의 화학조성을 보인다. 한편 십자석은 암석 내에서 혼합상 백운모, 단일 결정의 파이로필라이트 및 알루미늄 규산염 광물과 함께 산출되는데, 이들 중 파이로필라이트가 십자석 생성에 참여한 것으로 판단된다. 혼합상 백운모에서 분리된 파이로필라이트와 녹니석이 반응하여 클로리토이드를 형성한 이후, 변성도가 증가하면서 파이로필라이트와 클로리토이드가 반응하여 십자석이 생성된 것으로 보이며, 이때 클로리토이드는 모두 소모되어 암석 내에서 관찰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결국 일라이트가 백운모로 전이되는 과정에서 형성되는 혼합상 백운모는 십자석 생성에 필요한 광물을 공급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반응이 300℃ 이상에서 일어나는 점과 혼합상 백운모에서 분리된 파이로필라이트가 약 350℃에서 알루미늄 규산염 광물로 전이되는 점을 감안할 때, 백운사층 셰일은 300~350℃의 변성환경을 경험한 것으로 판단된다.
금강에 위치한 부여취수장 부근에서의 유사이송을 모의하기 위해서 2차원 유한요소모형(RMA)이 적용되었다. 다양한 유량조건하에서 하상변동에 관한 모의수행결과는 과거 이 지역에서의 실측된 값과 잘 일치하였다. 본 연구에서 하도부의 개선과 취수구 부근의 하상저하를 위한 대안으로서 수제공 설치와 밤섬제거가 고려되었다. 수제공의 설치에 다라 좌안쪽으로 주흐름이 변환되었으며, 전 영역에 걸쳐서 비슷한 폭을 가진 하도가 형성되었다. 12,030{{{{ { m}^{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