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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6.
        2003.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예이츠는 일생에 걸쳐 그의 문학과 그의 신비주의적 관심을 함께 연결시키려고 노력해왔으며 이는 사후의 세계와 우주의 섭리, 천국과 지옥의 실체 등 인간이 인식하지 못하는 것들에 대한 지적 호기심이며 창조적 탐구의 과정이었다. 이런 신비한 것에 대한 관심의 직접적인 접촉은 물론 블레이크적인 접근이었지만 그 뿌리를 거슬러 올라가면 크게 몇 가지로 분류되는데 이는 철학적 접근, 밀교적 접근, 아일랜드의 신화전설, 낭만주의적 접근, 신학적 접근, 그리고 이 논문에서 언급된 고대 기독교적 접근 등이 그것이다. 기독교적 접근이라고 분류되는 것은 성경에 기초한 교조적인 해석이 아니라 어느 정도 신비주의적으로 기독교의 전통에 따라 보이지 않는 것들, 즉 사후의 영적 경험과 천국과 지옥의 존재의 증명 시도를 의미한다. 예이츠의 기독교 신비주의에 영향을 끼친 두 신학자는 스웨덴보리와 보엠이 있다. 예이츠는 스웨덴보리로부터 주로 사후의 세계에 대해 영향을 받고 있다. 비록 스웨덴보리가 기독교의 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약점에도 불구하고 사후세계의 존재인식과 인간과 신, 혹은 우주가 통신한다는 개념들은 예이츠의 인간영혼의 불멸성과 거대기억의 이론에 직접적인 근거가 된다. 그의 중심사상은 자연계와 영계의 통신이며 이는 우주와 개인, 신과 인간, 사후의 세계와 현세, 귀신과 사람간의 연결이며 합일이다. 영적인 세계는 천당이나 지옥이 아니라 그 중간의 세계이며 죽은 영혼들이 윤회로 다시 태어나거나, 혹은 최종의 목적지에 도달하기 전 잠시 머무는 임시영역이다. 예이츠는 이 영역에서 아니마 문디가 정화되고 거대기억이 형성된다고 보았다. 따라서 이 영적인 세계에서는 우주와 인간의 영혼이 서로 통신하며 실제로 교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보엠은 좀 더 인간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그의 인간과 신의 합일사상이 블레이크의 신성인간이며 예이츠의 황금새벽의 이상형이다. 우주의 질서와 조화를 강조한 보엠은 예이츠에게 시적 상상력이 신성과 같은 단계이며 시인은 마치 영매처럼 우주와 영혼, 즉 인간의 세계와 신의 세계를 볼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견자(seer)이며 연결할 수 있는 통신자(correspondences)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5,800원
        108.
        2000.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4,800원
        112.
        2022.04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19세기에 중국에서 󰡔依經問答󰡕, 일본에서 󰡔美以敎會問答󰡕, 그리고 조선에서 󰡔미이미교회문답󰡕이라는 제목으로 순차적으로 번역된 미 북감리회 교리문답서를 그 연구 대상으로 하여, 각 판본의 번역 및 출판 과정을 밝히고, 번역 과정에서 기독교 용어가 어떠한 창출·변용·적용의 과 정을 거쳤는지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하였다. 1865년 매클레이가 번역한 중문본은 영문본을 저본으로 하였으나, 기독 교에 대한 이해가 없는 중국인 독자들을 위해서 문제의 내용을 바꾸거나 첨언하는 경우가 있었고, 새로운 문항도 2개 추가되었다. 1876년 소퍼가 번역한 일문본은 영문본을 기본으로 하되 중문본도 함께 참고하면서 용어 에 있어서 약 45%가 중문본과 일치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한글본에는 2가지 번역본이 있는데, 그 중 플랑시가 수집한 번역자 미상, 연대 미상의 󰡔미이미교회문답󰡕은 1885년 이수정에 의해 번역된 것임이 본 논문을 통해 밝혀졌으며, 이수정역은 일문본을 저본으로 하여, 용어의 약 68% 가량이 일문본과 일치하였다. 이후 1889년 존스가 다시 번역한 󰡔미이 미교회문답󰡕은 영문을 저본으로 하였지만, 중문본과 이수정역에서 차용한 용어가 각각 37%, 17% 정도 되는 등 앞선 번역본들도 참고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이수정과 존스가 한글로 창출한 단어들은 현재 대개 사용되지 않고 있 으며 한자 용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는데, 이는 용어의 유통에 있어서 는 번역자 뿐 아니라 언어를 함께 사용하는 대중의 역할이 더욱 크다는 것 을 보여준다.
        113.
        2021.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1920년대 한국 농촌을 위한 YMCA와 국제선교사협회의 협력은 계급 이데올로기 혁명을 기획하는 국제공산주의, 정치군사적 통제를 모색하는 제국주의, 또한 상업적 착취를 통한 경제적 부의 확장을 추구하는 강대국 민족주의와 구별되며, 본질적으로 민족의 상호협력과 인류애라는 보편가치를 추구한 기독교세계주의이다. 서구 선교사들은 교회와 국가의 역할을 구별 하는 파송 국가의 정부정책에 순응했지만 국제선교사협회는 거시적인 틀에서 한국의 민족주의자들과 협력하며, 식민정부의 주요 착취대상인 한국의 농부를 위해 종교적, 과학적, 물질적, 인적자원의 국제적 재배치를 총괄 함으로 여타 국제적 흐름과의 차별성을 시사한다. 국제선교사협회는 민족과 인종의 경계를 초월하는 기독교세계주의를 추구했는데, 한국의 농부를 위한 이러한 연대성은 세속국가의 외교경쟁이 가져온 한계에도 불구하고 초국가적 보편가치를 추구하는 중요한 국제주의의 흐름으로 포착된다. 국제선교사협회의 예루살렘대회는 한국의 다양한 교회기관이 교회 자체의 생존에 대한 관심을 넘어 사회병리적 문제의 해결을 위한 범교단적 협력과 기독교 농촌연구회의 조직을 고무했으며 태평양문제연구소로 하여금 한국 학자의 토지문제연구를 지원할 토대를 마련하였다. 또한 대한민국공화국의 토지개혁을 구상할 정부 요원에게 현장지식과 훈련기회를 제공했다. 제국 주의에 관한 거시적 이론을 넘어 구체적인 YMCA농촌운동에 참여하는 국제선교사협회의 활동에 대한 면밀한 자료의 검토는 기독교세계주의가 한국의 민족주의를 폄훼하기 보다 도리어 약소국의 민족역량을 강화하는 자양분으로 작동했음을 입증한다. 한국 YMCA농촌운동과 국제선교사협회의 협력을 연구함에 한국의 민족주의 틀을 넘어서, 일본 식민주의, 피압박민의 민족주의를 대체하며 활동한 국제공산주의, 강대국의 제국주의와 구별되는 기독교 세계주의의 취급이 요청된다.
        114.
        2021.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연구의 목적은 기독교 채식주의 전통에 대한 역사적 연구에 기초하여 기독교 채식주의의 본질을 이해하고, 그 전통에 내포된 사회윤리적 담론을 고찰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식생활 관행에서 육식 금지의 전통은 수도사들의 금욕주의적인 삶에서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런 관행은 수도원의 주요 규례가 되었고, 사순절, 사계제일 등과 같은 전례에 의해 강조되면서 기독교 신앙 전통으로 유지되었다. 그러나 분파주의자들의 엄격한 육식 금지의 관행, 수도원 금욕주의의 완화, 종교개혁자들의 수도원 관행 비판 등의 요소들로 인해 기독교 신앙 전통에서 육식 금지의 식사 관행은 계승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식 금지를 근간으로 하는 기독교의 채식주의 전통은 동물 복지와 사회 질서유지의 차원에서 사회윤리적 담론을 포함하고 있으며, 현대 사회에 서 이러한 기독교 식생활 관행을 성찰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특별히 채식이 기후변화의 위기를 해결할 수 있는 대안적인 식단으로 강조되고 있는 21세기에, 기독교는 채식주의 전통에 내포된 생태윤리적인 담론을 성찰하여, 그 실천 적 지혜를 계승할 필요가 있음을 제안한다.
        115.
        2021.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황무지』 전체의 핵심어에는 ‘기독교’가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Ⅴ부인 「천둥이 말한 것」에는 기독교적 시각으로의 연구가 수행되지 않았다. 그래서 이 연구는 기독교를 핵심어로 설정하여 추적해 보았다. 사실 「천둥이 말한 것」이란 제목의 출현부터 『성경』에서 출발했으며 이어서 엘리엇은 기독교의 핵심축인 예수 그리스도의 체포와 예수 그리스도의 부재를 물과 가뭄의 이미지로 사용하며 또한 천둥 역시 『성경』에도 그대로 나타난다. 아울러 자기 희생과 헌신에 대한 이야기 역시 기독교 『성경』에 그대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천둥이 말한 것」의 핵심에도 기독교가 자리 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116.
        2020.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해방 이전과 이후로 시기를 나누어 군산지역의 화교 기독교 공동체의 역사에 대해 살펴보았다. 해방 이전에는, 1928년에 조선과 중국 선교사들의 지원으로 3달에 걸쳐 이루어진 중국인 전도대 전국 순회집회 의 결과, 1929년에 호남지역에서는 처음으로 전주와 군산에 화교 기독교 공동체가 조직되었다. 특히 전주의 남장로회 윈 선교사가 화교에 지속적으 로 관심을 쏟으면서 신앙공동체가 유지될 수 있었는데, 다만 중일전쟁, 태 평양전쟁, 한국전쟁을 겪으면서 단절되었다. 해방 이후에는 미북장로회에서 중국인사역 전담 선교사를 다시금 초빙 하였는데, 그때 내한한 매클레인 선교사와 군산화교 2세인 조계지 권사의 노력으로 1959년부터 다시금 군산에 화교 기독교 공동체가 조직되었고, 1963년에 정식으로 교회가 설립되었다. 이후 군산중화교회는 중국인 인구 구성의 변화에 따라, 구 화교 중심의 지역교회에서 점차 신 이민자들의 정착을 돕는 ‘이민자 교회’의 모습으로 역 변이되어 나갔다. 또한 중국어 교실을 운영한다든지 중국선교단체를 돕 는다든지 하는 방법으로 한국인 및 현지 한국교회와도 협력관계를 맺어왔 다. 하지만 중국인 수의 감소 및 목회자의 부재 등의 연유로, 현재는 단 두 명의 교인이 교회를 지키고 있으며, 교회는 이제 새 시대의 역할을 모색하고 있다.
        117.
        2020.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에른스트 파베르(Ernst Faber, 1839-1899, 중국명: 花之安)는 독일 선교 사로서 중국선교에 일생을 바친 인물이다. 그의 대표적 중문 저서인 󰡔자서 조동󰡕(1884)과 󰡔경학불염정󰡕(1898)은 19세기 동양 지식인들에게 큰 영향을 준 서적으로 당시 유교 사회의 형식주의를 지적하며 기독교 선교의 길을 제시했다. 본 연구는 그의 이 두 저서에 기초해 어떻게 격물치지를 이해해 나가는지 고찰했다. 특히 그는 격물치지에서 사물마다 궁리하는 과정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런 궁리가 인식 주체인 인간의 마음을 추구하는 길로 나가야 한다고 보았다. 즉 격물은 마음을 정미하게 해 자세히 살피는 것으로, 이런 마음을 찾아 나가는 길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길이라고 보았 다. 오직 하나님만이 천하의 참 주인으로 이를 섬길 때 인간 마음의 지혜 가 격물의 길로 나갈 수 있다. 본 연구는 파베르가 격물치지에 대한 기독 교적 해석을 통해 중국 전통의 태극, 리를 하나님의 종처럼 그 창조와 주 재 시에 사용하는 도구로 보고자 함을 고찰했다. 분명, 파베르는 선교적 관점에서 하나님의 절대성을 강조하기 위해 이런 태극, 리를 폐기하기보다 이를 하나님의 창조물로 보는 기독교적 관점을 견지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를 통해 19세기 기독교와 유교의 또 다른 대화의 면모를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118.
        2020.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 논문은 로마 사두체제(주후 303년〜311년)가 기독교를 박해하게 된 원인을 통해 로마 제국과 기독교의 관계를 연구한 것이다. 본 논문에서는 지금까지 연구된 박해의 원인을 기초로 하여 로마의 전통적인 종교관과 사 두체제의 기독교 박해의 관계를 찾을 수 있었다. 그 결과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도출할 수 있었다. 사두체제에서의 박해는 첫째로, 전통 종교에 대한 로마 사회의 절대적인 믿음이 기독교를 박해하는데 다양한 원인의 기초였다는 점이다. 둘째로, 로마의 황제들도 종교를 정치의 정책으로 이용했고, 통치의 방법으로 활용 했다. 그러나 그들이 종교를 단순히 통치의 방법으로서 활용한 것에 그치 지 않았고, 그들에게 종교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있었다는 점을 찾을 수 있었다. 셋째로, 로마 사두체제의 기독교 박해는 종교관에서 뿐 아니라 사 상적, 철학적인 지지를 받아 실행했다는 점도 발견할 수 있었다.
        119.
        2020.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근, 현대교회사에 해당하는 시기에 새로운 신학사 상체계가 수립되고 새로운 교회체제인 교파(교단)제도가 출현하게 되었다. 루터교, 성공회, 개혁교회, 침례교, 급진종교개혁세력등으로 대표되는 개신교는 저마다 교단의 정체성을 확립하는 과정에서 여러 신앙고백과 신학체계를 확립했고 교단의 운영체제인 감독정체, 장로정체, 회중정체등도 각 교파가 처한 여건과 상황속에서 발전시켜 나갔다. 한국교회사학회 창간이후, 지난 50년 동안 학회지에 실렸던 72편의 논문들은 각 교단 관련 신학과 교회정체, 그리고 일반적인 주제들(교회일치운동 포함)을 다루었다. 하지만 특정 주제가 차지하는 비중이 상당했으며 이에 주제의 다양성 확보와 보다 다양한 교단참여와 적절한 성비 비율을 위한 대책이 시급해 보였다.
        120.
        2019.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오늘날 기독교 신앙고백은 한 순간에 만들어 진 것이 아니라, 시대와 상황에 따라 발전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다. 성경에 나오는 1세기 초기 단계의 신앙고백부터 공의회의 결과물로 나온 4세기 발전된 신조에 이르기까지 기독교 신앙고백은 계속 발전했다. 이러한 발전과정에서 정통신앙고백이라고 판단하는 기준은 각 시대마다 존재했고, 초기에는 대부분 사도적 기원으로 판단했다. 물론 성경 그 자체가 기준이었지만, 다양한 성경해석의 문제 앞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기준은 바로 사도였다. 그러므로 사도들의 성경해석과 그들의 신앙은 정통이라 인정받았고, 이러한 사도성에 기준을 둔 신앙고백은 발전해서 4세기 공의회를 통한 신조까지 이어졌다. 본 논문은 성경에 나타난 신앙고백 이외에 사도들로부터 인정된 초기 기독교 신앙고백들의 내용을 밝혀내려는데 그 목적이 있다. 특히 그 범위를 성서시대를 넘어선 1세기 후반부터 2세기 중반 ‘신앙규범’(regula fidei)이 등 장하기 전까지 나타나는 기독교 신앙고백의 초기단계를 살펴보았다. 이에 클레멘스 제 1서신과 이그나티우스의 일곱서신과 아리스티테스 저서와 순 교자 유스티누스의 저서를 다루면서 사도들의 신앙고백의 요소들을 찾아내고 이를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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