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유한요소 해석모델을 이용해 아치 형상을 갖는 석션 상판의 거동을 분석하였다. 평판형 및 아치형 상판의 기본적인 구조 성능에 대해 비교함으로써 아치형 상판의 이점을 설명하였다. 또한 아치형 상판의 기하 및 보강재 배치 변화에 따른 거동 변화를 비교하여 각 인자가 상판의 응력 및 변형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하였다. 추가로 아치형 상판 가장자리의 경계조건 영향을 수치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아치형 상판의 보강재 배치와 가물막이 벽체와의 상호거동 영향을 규명하고 이를 통해 보강형 아치형 상판의 구조설계의 기본 개념을 도출하였다. 평판형 상판과 달리 환형 보강재가 아치형 상판의 구조 거동을 확연히 개선시킬 수 있음을 확인하였으며, 방사 보강재의 역할은 상판 가장자리의 구속상태에 의존적이었다.
유연한 지반에 놓인 액체저장탱크의 지진 거동은 유체-구조물-지반 상호작용에 의해 복잡하게 나타나므로, 이 시스템의 지진응답 과 피해를 정확하게 예측하기 위해서는 이를 엄밀히 고려하여야 한다. 이 연구에서는 유체-구조물-지반 상호작용을 엄밀히 고려하여 유연한 지반에 놓인 직사각형 액체저장탱크의 지진응답 해석을 수행하고 그 응답 특성을 분석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지진하중 작용 시 발생하는 유체의 동수압력 및 지반과 구조물 간의 상호작용력을 유한요소 기법을 사용하여 산정한다. 이때, 반무한 지반에서의 에너지 방사를 고려하기 위해 mid-point integrated finite element와 점성 감쇠기를 사용하여 지반 원역의 거동을 모사한다. 이와 같이 산정된 동수압력과 지반-구조물 상호작용력을 구조물의 유한요소에 작용시킨다. 자유장 해석을 통하여 입사 지진파에 의한 유효 지진력을 산정한다. 유연한 지반에 놓인 직사각형 액체저장탱크의 지진응답 해석을 통하여 지반-구조물 상호작용의 효과로 인해 시스템 응답의 변화가 다양하게 나타남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유연한 지반에 놓인 직사각형 액체저장탱크의 내진설계를 수행하거나 내진성능을 검토할 때는 유체-구조물-지반 상호작용을 엄밀히 고려하여야 할 것이다.
적외선 유도 무기 체계의 발달로 항공기의 생존성은 지속적으로 위협받고 있으며, 항공기의 생존성을 향상시키기 위한 적외선 스텔스 기술 관련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적외선 유도 미사일이 항공기와 배경 간의 대비 신호를 탐지하는 것에 주목하여 비행 조건에 따른 항공기의 최적 적외선 신호를 분석하고자 하였다. 이를 위해 항공기의 비행 조건을 고려하여 유동 해석과 대류, 전도, 복사 3차원 열전달 해석을 수행하였고, 동체 표면 온도를 도출하여 항공기 주변 유동 특성을 기반으로 항공기의 적외선 신호를 분석하였다. 더 나아가, 비행 조건 별로 최적 적외선 신호를 갖기 위한 최적 방사율을 도출하였고, 비행 조건 별로 최적 방사율을 동체 표면에 적용했을 때 적외선 신호 저감 효과를 분석하였다.
승객에게 편안한 승차감을 제공할 수 있도록 자기부상열차 차체 연직가속도의 진동크기에 대한 기준을 제시하고 이를 만족하는 가이드웨이 구조물의 처짐한계를 제안한다. 차량-구조물 상호작용을 고려한 해석기법을 사용하여 자기부상열차 시스템의 매개변수 해석을 수행하고, 차체 연직가속도에 대한 기준을 만족할 수 있는 가이드웨이 구조물의 처짐한계를 L/1300 로 제안한다. 이를 실제 자기부상열차 시스템의 동적 해석에 적용하여 제안한 처짐한계의 적절성을 검토한다. 기존의 자기부상철도 가이드웨이 구조물의 설계 기 준과 비교하였을 때, 이 연구에서 제안한 처짐한계를 적용하면 경제적인 가이드웨이 구조물의 설계와 시공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
본 논문에서는 전산구조 해석 데이터를 기반으로 인공 신경망을 활용하여 헬리데크 구조물에 대한 손상 추정 기법을 제안하였다. 헬리데크를 구성하는 트러스와 서포트 부재들에 대해서 절점을 공유하는 부재들을 70개의 모델로 그룹화 하였으며, 최대 3가지 부재 그룹에 무작위로 손상을 부여하여 총 37,400개의 손상 시나리오를 생성하였다. 이들 각각에 대해서 구조 해석 프로그램을 통해 모드 해석을 수행하였으며, 전체 손상 시나리오를 사용 목적에 따라 학습, 유효성 검사, 그리고 검증 시나리오로 분리하였다. 헬리데크의 손상 및 비손상 상태의 동적 응답 특성에 대한 패턴 인식을 위해 PyTorch 프로그램을 활용하여 3개의 은닉층을 가지는 인공 신경망을 구성하였으며, 이에 대해서 다양한 손상 시나리오를 반복 학습함으로써 손실 함수를 최소로 하는 인공 신경망을 도출하였다. 최종적으로 총 400개의 검증 시나리오에 대해서 인공 신경망이 추정한 손상률과 실제 부여된 손상률을 비교하였으며, 그 결과 본 연구를 통해 얻어진 인공 신경망이 손상 부재의 위치와 손상 정도를 매우 높은 정확도로 예측하는 것을 확인하였다.
본 논문는 개폐식 대공간 구조물의 지진하중에 대한 동적응답을 줄이기 위한 목적으로 파라메트릭 설계 기법을 적용한 TMD에 관한 연구이다. 인공지능 알고리즘을 이용하여 감쇠장치의 설치 위치를 자동 탐색하는 컴포넌트를 개발하였다. 이는 구조물의 동적응답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구조물의 감쇠장치 최적의 위치를 찾을 수 있을 있다. 또한, 여러 대안에 대한 감쇠장치 질량의 최적 값을 찾아주며, 지붕의 열린 상태와 닫힌 상태에 모두 효과적으로 적용될 수 있는 설계안을 찾을 수 있다.
본 연구는 '1980년대 후반 일본의 버블경제와 그 초기 수십 년 동안의 발전전략의 관계를 살펴본 후, '거품경제'의 역사적 원인을 분석하고자 한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일본은 1980년대 후반 이전에 성공적인 경 제 발전을 이루었다. 기존 연구에서 금융부의 강력한 개입과 은행을 기 반으로 한 기업집단 간 집중적인 협력이 일본 경제성장의 일차적 요소라 고 종종 여겨져 왔다. 하지만, 장기적인 관점에서 살펴보면 이러한 요인 은 향후 일본경제의 구조적 문제로 전환된다. 일본 경제는 1980년대 후 반 이후 '거품경제'에 시달리기 시작했다. '거품경제'의 원인과 그 결과에 대해 여러 가지 설명이 있었다. 본 연구는 1960~80년 개발정책의 성과 가 1980년대 후반 이후 일본의 경제전환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는 주 장과 함께 현재 일본 정부의 경제회복 노력을 살펴본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전쟁의 형태가 변화하면서 군의 역할 또한 평시의 국민 보호 및 세계 평화의 수호를 위한 행위자로 변화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평화유지군의 경우 평화의 수호자로서 세계 각 지역의 분쟁과 내전이 종식된 지역에 파견되어 민간인 보호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그러나 평화유지군이 가지고 있는 평화 수호자로서의 이미지는 최근 파병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민간인 보호 임무 실패로 인해 재평가 되고 있 다. 특히 평화유지군 파병국가 가운데 내전 및 분쟁 이후 군사통합을 경험한 국가일수록 임무지에서의 민간인 보호 임무 실패가 두드러지게 발생하였다. 그러나 통일 독일의 군사통합 사례를 통해 군사통합으로 새로 이 구성된 군대 또한 국외 파병시 성공적인 임무 수행과 긍정적인 이미지 구축에 성공할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에 본 논문은 이념갈 등 완화, 교차배치정책, 전범 및 인권 탄압 범죄 가담자에 대한 통합 배 제가 군사통합 시 가장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보았다.
본 논문은 독일통일의 사례를 활용하여 북핵 위협 상황에 부합되는 현실적인 통일방안을 제안하기 위한 목적으로 작성되었다. 특히 서독이 동독의 새 정부와 협의 하에 동독 주민들의 의사를 충분히 확인한 다음에 평화적 합의통일을 추진하였다는 데 주목하였다. 분석의 결과, 독일 통일은 평화적 과정을 거쳤고, 주민의 의사를 충분히 반영하여 진행되었으며, 국내적 및 국제적 절차를 착실하게 준수한 것으로 드러났고, 이러한 측면에서 한국의 통일에 유용한 교훈이 될 수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러한 교훈들을 잘 반영할 때 남북한 간의 평화적 통일이 가능할 것이다. 다만, 현재 북한이 핵무기를 보유하고 있다는 것이 큰 변수이다. 따라서 남한은 우선 북핵에 대한 효과적인 억제 및 방어방책을 구비해야 한다. 그런 다음에 한국의 정치지도자들은 평화적 합의통일에 대한 의지와 비전을 토의하여 정립해야하고, 한국 주도의 통일을 보장하기 위한 국제적 여건을 조성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통일의 비전은 평화적 방법과 수단의 사용, 주민의 의지와 의견의 적극적인 반영, 국내적 및 국제적 절차의 준수를 포함하는 내용이어야 할 것이다.
‘箴銘文’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문체로서 주로 스스로 경계하기 위해 작성되는데 중요한 현실적인 의미를 가진다. 조선시대 주자학이 통치사 상과 핵심적인 사회 가치로 수용되면서 성리학의 ‘持敬’・‘愼獨’・‘修身’ 등 경계하는 뜻을 담던 ‘箴銘’은 널리 유전되었다. 조선전기 문인사대부에 게는 ‘箴銘文’이 문학이기 전에 생활이었다. 이런 사회적인 배경 하에 退 溪 李滉은 조선 성리학을 발전시킨 태두로서 ‘善思’의 정신을 가지고 宋 儒의 ‘箴銘’을 註疏・考證함으로써 文義를 투철하게 분석하였다. 古鏡重 磨方의 편찬 및 「聖學十圖」의 작성을 통해서도 퇴계의 뛰어난 학술적 인 성과를 엿볼 수 있다. 이외, 서예에 조예가 깊은 퇴계는 항상 箴銘을 手書하였고 箴銘을 깊이 체인하여 실제로 행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冊板目錄에 의하여 18세기부터 退溪‘箴銘帖’은 본격적으로 간행되었고 「四勿箴」・「大寶箴」・「元朝五箴」・「毋不敬」・「思無邪」・「愼其獨」・「懲忿窒慾」・ 「屏銘」・「箴十帖」・「晦齋所製退溪所書十六詠及元朝五箴」・「思無邪 毋不敬 愼其獨 毋自欺 懲忿窒慾」 등 11종이 開刊되었다. 그중 「元朝五箴」은 17~ 19세기 鎮安・榮川・安東・禮安・慶州 등 많은 기역에 開刊되었고 가장 보편 적으로 간행된 退溪‘箴銘帖’였음으로 확인된다. 마지막으로 ‘端嚴謹重’한 글씨는 退溪의 持敬端正한 마음을 보여주었고 ‘箴銘帖’의 刊行은 퇴계의 治學精神 및 學術思想의 傳承으로 볼 수 있다. 또한, 18~19세기 退溪의 ‘箴銘帖’은 ‘端本正源’・‘衛道息邪’의 사회적인 의 미를 가지고 있었다.
본 연구는 지리학자가 아니라 철학자로서 장소를 다룬 말파스(Jeff Malpas) 의 관점과 중국 도가(道家)의 고전인 『장자(莊子)』의 관점을 토대로 장소와 존재의 근거, 구별, 중첩을 탐구하였다. 장소와 공간은 고대부터 다양하게 논의 되어 왔다. 1970년대 들어 인본주의 지리학자를 중심으로 장소를 공간과 분리 하여 논하기 시작하면서, 장소는 의미 없는 영역인 공간과 달리 인간이 중심이고, 경험과 애착이 더하여진 곳으로 언급되었다. 말파스는 하이데거의 장소 존재론을 확장하여 논의하며, 인간 존재가 근거할 수 있는 것으로 장소를 보았다. 『장자』의 호접지몽(胡蝶之夢)에서 ‘나비’이게 하고 ‘장주’이게 하는 것은 각각의 장소에서 가능하다. 이는 “장소가 주관성 위에 확립되는 것이 아니라 주관성이 장소 위에서 확립되는 것”이라는 말파스의 주장과 통한다. 더불어 하이데거가 주장한 ‘존재’가 그 자신을 열어 밝히기 위해(to disclose) 필요로 하는 그 장소(stätte)로서 이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말과도 통한다. 반면 고대 중국의 사유에서 중국인들은 인간과 분리된 존재를 상정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장소는 인간 존재의 근거가 된다. 장소 존재론을 근거로 생각하면, 각각의 장소에 각각의 존재가 들어서며 구별이 생긴다. 이러한 예는 『장자』 곳곳에서 발견된다. 붕정만리(鵬程萬里)와 관련한 대붕과 매미, 지어지락 (知魚之樂)을 논하는 장자와 혜자 등. 주체의 존재는 복잡한 형태의 공간성의 존재와 ‘동시적’이다. 그리고 객관성의 파악은 공간성의 파악을 요구한다. 이 것은 ‘나비’와 ‘장주’의 장소를 넘어, 이를 인식하고 있는 화자인 ‘나’, 간과 쓸개의 장소를 넘어 있는 ‘관찰자’, 초나라와 월나라의 경계를 뛰어 넘어 있는 ‘관찰자’를 상정할 수 있다. 이것은 분별을 넘어선 또 다른 장소이다. 그래서 내가 자신을 발견하는 장소에 관해 얼마나 폭넓게 생각하는지에 따라 현재 위치에서 다양한 위치들의 상관된 성격을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조 릉지번(雕陵之樊)에 나오는 숲 주인, 장자, 새, 사마귀, 매미는 각자의 장소에 있고, 이 장소의 연결 고리는 계속 더 이어질 수 있고, 어쩌면 이러한 중첩은 무한할지도 모른다. 이러한 장소의 중첩은 각자 자신만의 장소를 근거로 분쟁을 유발할 수 있다. 바로 이 지점이 장자와 말파스가 비판 받는 지점이기도 하다. 그러나 이들의 역할은 여기까지이다. 이상의 장자와 말파스의 장소에 대한 논의를 통해, 각자 자신의 장소에 위치하여 세상을 논하고, 그러기에 장소는 존재의 근거가 되고, 장소에 따라 존재가 구별되며, 각각의 장소의 중첩 속에 많은 가치 판단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정리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 이러한 것을 어떻게 적용시켜 우리가 사는 이곳을 보다 나은 세상으로 만들 것인가에 대한 실천적 문제는 우리 모두에게 과제로 던져졌다.
동서독은 분단 25년만인 1970년부터 독일통일을 이룬 1990년까지 총 7차례의 공식 정상회담을 개최하였다. 6차례 비공식 정상접촉도 있었다. 동서독은 지난 1990년 차가운 이성과 따뜻한 감성이 융합된 지속적인 대화와 교류협력을 바탕으로 평화적인 통일을 이룩해냈다. 통일과정에서 동서독 정상회담이 보여준 ①장기적 안목에 기초한 지속적인 대화의 추진, ②서로 양보하는 대화의 정신, ③실현불가능하고 민감한 문제를 뒤로 미루고 실현 가능한 문제를 우산시하는 현명함, ④서두르지 않고 차근차근 풀어가는 자세, ⑤서독의 동독포용 및 통일역량의 강화노력 등은 통독 30주년이 된 지금에 있어서도 남북한정상회담과 관련해서 많은 교훈 과 시사점을 주고 있다. 우리도 독일통일을 교훈삼아 ①지속적인 남북대 화와 교류협력, ②한반도 통일이해관계국에 대한 평화통일외교의 전개 및 국제사회와의 신뢰구축 강화, ③한국의 평화통일 역량강화를 모색·추진해 나가야 할 것이다.
경상우도에 연고를 둔 함인재 정국채는 19세기 초반 무렵을 활동기로 삼았던 노론 계열의 재야 유학자다. 과거업을 단념한 채 오롯이 학문 연마에 매진했던 정국채는 정주학과 예학⋅농학 세 범주에 걸쳐서 괄목할만한 학적 성취를 이루었으나, 주요 저서들이 모두 일실된 상태다. 게다가 문집인 『함인재유고』도 지금까지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던 탓에, 정국채를 대상으로 한 연구 성과도 극히 일천한 실정이다. 이에 논자는 이미 진척된 기존의 몇몇 연구를 토대로 하여 정국채가 평생토록 주력했던 정좌 수행에 관한 논의를 개진하게 되었다.
그런데 저서가 일실된 탓에 추적이 불가능한 예학⋅농학의 경우와는 달리, 문집인 함인재유고에는 정국채가 행한 정좌 수행을 서술한 내용들이 비교적 풍부하게 수록되어 있는 상태다. 특히 정국채는 그가 사사(師事)했던 스승인 성담 송환기와 경호 이의조에게 정좌법과 관련하여 교차적인 질의를 던진 사실도 눈길을 끌게 한다. 왜냐하면 이 같은 정황은 19세기 무렵까지 전승되어 온 노론계의 학문 방식을 확인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정국채의 경우 정좌의 이론적 전제에 해당하는 주자학적 함양설, 특히 일념이 발동하지 않은 미발시의 심체 상에서의 “정좌시(靜坐時)의 기상(氣像)”을 체인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을 전개하였다. 정국채는 고인⋅선유들도 이처럼 지난한 공부론적 과정을 경유했던 것으로 확신했고, 그에 따라 정좌야말로 위기지학의 세계로 진입하는 첩경임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물론 정좌가 항상 순탄하게 진행되었던 것은 아니나, 그 관심과 열정의 정도란 주자학적 공부론의 또 다른 한 축인 성찰설에 대한 그것을 훨씬 상회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정국채가 타계하기 직전에 남긴 서신에는 “늘 깨어 있는” 경지가 감지되지 않는 대신에, 계속된 병마와 심히 고단했던 일신상의 처지만이 풍겨 난다. 이는 정국채가 주자학적 거경⋅궁리론 중에서, 후자인 독서에 의한 궁 리가 결실한 학문세계와는 판이한 양상인 것이다. 또한 정국채가 취한 정좌가 과연 유학적 종지에 적법한 방편이었던가? 하는 문제점과 함께, 또한 군자유의 도정에서 분명한 실효성을 담지한 교육적 수단이었는지 하는 의문점도 제기된다. 그런 점에서 서계 박세당과 다산 정약용이 순차적으로 제기한 함양설과 선불교 비판은 제기된 두 사안들에 대해 유의미한 성찰의 계기를 제공해 주고 있다.
본 논문에서는 독일 통일과정에서의 동·서독 주민의 역할을 고찰하였다. 독일정치는 경제적 발전과 사회이익을 위한 동서독 통일, 즉 게젤 샤프트(Gesellschaft)를 추구하였으나, 동서독 주민은 이를 위한 게마인샤프트(Gemeinschaft) 복원을 위해 노력해 왔다. 본고에서는 40여 년간의 분단 이후 독일통일은 외적으로 동독에 대한 서독의 흡수통일 의 형태를 띠고 있으나, 내적으로 동·서독 주민의 게마인샤프트 복원의 과정을 거치고 있음을 강조한다. 본고에서는 분단 시기 동서독 간 이주 및 교류 상황을 고찰하고, 포스트 통일 시기 동독 주민의 정체성 형성을 통한 독일의 게마인샤프트 복원 과정을 분석하였다.
본 논문은 민간회화로서 민화의 가치를 인문학적 관점에서 성찰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 동안 민화에 관한 연구는 무명(無名)의 작가에 의해 제작된 ‘생활화’라는 이유로 미술사 안에서 연구가 부진했었다. 이러한 연유로 연구자마다 민화의 개념과 특성을 조금씩 다르게 설정하기도 한다. 이 같은 여건에서 본 논문에서는 민화의 주요한 특성을 민간회화로서 민화만이 갖는 가치가 있다고 보고 이를 주제로 설정한 후, 통속세계의 보편성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민화가 유행할 시기에 중국에서는 민간 연화가 성행하였으며, 다른 동아시아에서도 민간회화가 부흥한 측면이 있다. 여기서는 우리 민화와 가장 연관성이 짙은 중국의 민간연화와의 비교분석을 통해 민화가 지닌 민간회화로서의 미적 특수성을 찾고자 한다.
민간연화는 우리의 문배(門排)에 해당하는 문신(門神)에 기원을 두고 있으며, 그림의 도상이나 내용적 측면에서 여러 비슷한 점을 공유하고 있다. 특히 생산자와 향유자가 같은 층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민간의 사상이나 감성이 집약되어 있는 예술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이것은 문화를 독점했던 계층이 다 수의 대중으로 이동했다는 것을 알려준 것이며, 통속적인 그림의 예술성을 인 정한 최초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본 논문에서는 민화가 최초의 대중예술로 서 가치가 있으며, 이것은 민화의 본질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라는 점을 말하고자 한다.
이 연구의 목적은 독일 통일에 있어 동서 베를린 분단의 종료, 특히 베를린 장벽 붕괴에 영향을 끼친 인과관계에 대해 규명하는 것이다. 여기서 논의될 핵심 요소는 베를린 장벽 붕괴가 독일 통일의 도화선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이 과정은 '동독과 서독의 분단→ 동베를린의 분단→ 베를린 장벽 건설→ 베를린 장벽 붕괴→ 동독과 서독의 통일'의 순서로 전개되었다. 여하튼 베를린 장벽 붕괴 이전에 동서독은 정상회담을 수차례 가져왔지만 베를린 장벽 붕괴 전에는 날카로운 대립만이 팽배해 있었다. 그러나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이후에는 일사천리로 정상회담이 진척된 것만 보아도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동서독 통일에 중차대한 역할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동서독 주민들, 특히 동독주민들의 통일 여망은 베를린 장벽을 붕괴시키는데 제일 큰 공헌을 한 셈이었다. 결국 베를린 장벽의 붕괴는 분단 독일과 분할 베를린 영토에 펼쳐진 장막과 철조망을 뚫고 하나된 독일을 발원시키는 단초가 되었다. 즉 독일 통일은 독일이 민족적으로 밑으로부터의 통일 과정이 뭉쳐서 정상적인 통일 독일과 독일인으로 합쳐짐으로써 가능했던 것이다.
In recent years, China's agricultural listed companies have developed rapidly. This paper studies the operating efficiency of listed agricultural companies in China. exploring the factors that affect the operating efficiency of listed agricultural companies, and proposes targeted countermeasures for the development of listed agricultural companies. And give some suggestions to Korean agricultural companies and A share investors. This paper uses the DEA model, selects the 40 best-developed Chinese agricultural listed companies in 2018 as a sample, analyzes the operating efficiency of these companies, and added two new input variables: asset impairment losses (AIL) and business tax and surcharge (BTS), which will also have an impact on operating efficiency. This paper can provide reliable suggestions for the development of agricultural listed companies, and thus guide the healthy operation of agricultural companies.
밭작물 관리기계는 두둑 사이를 주행하면서 밭작물 포기 사이에서 작업이 이루어지는 관계로 밭고랑을 따라 가면서 밭작물을 손상시키지 않아야한다. 특히 좁은 밭의 새머리 지역에서 작업기를 선회시킬 때에는 작물의 손상 정도가 많아 한계가 있다. 밭작물 기계의 선회작업에 의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하여 밭 두둑 사이를 가로질러 이동할 수 있는 기계를 개발하였다. 바퀴의 승강에 의한 수평이동이 가능하고, 전진주행과 후진주행이 가능한 견인 플랫폼을 제작하고, 밭 두둑 사이를 가로지르는 구동 메커니즘을 실제 구현하였다. 이를 위해 개발한 전동형 시작기의 무게는 416 kg, 주행 속도는 0.45 m/s, 600 mm 간격의 밭두둑을 가로지르는데 90초 가량 소요되었다. 본 연구에서 개발된 밭두둑 횡단주행 견인 플랫폼의 고도화를 통해 기계의 선회작업으로 인한 손실이 없는 실용적인 작업이 가능할 것으로 기대한다.
기원 전후 패자시대 전쟁 발발 전략전술에서 지역적 지리적 계책을 포함한 그 주지적 특징을 갖춘 인물들은 사해와 중원을 지시하는 남북 可合可用의 원칙적 지략을 운용함으로서 그 후속 세계의 정치문화에 영향력을 행사한다. 특히 唐代太宗(626-649) 李世民(598-649)은 三省六部制에 의한 貞觀之治를 통 하여 그 정치, 경제, 문화 부흥에 일조를 한 역사적 사실에서 ‘自古之政’, 그 지역문화와 지리환경의 정책적 향방을 결정짓는다. 그 전거의 일면은 태종 이 세민의 奇正兵法활용도를 통한 전쟁 성패의 가능성 판단력으로서, 『李衛公 問對』에 적시되어 있는 바와 같다.
唐代太宗(626-649) 李世民(598-649)은 李靖(571-649)과의 대화체에서 諸葛亮 (181-234)의 七擒孟獲전략전술을 당시의 최대 관심사였던 대고구려 정벌에 관한 淵蓋蘇文(603-666)의 사회적 지위와 그 평가에 대입하여 신라와의 교섭 및 고구려와의 대치 국면을 논한다. 그것의 전략적 근거는 奇正虛實에 관한 형세에 두고 있다. 또한 상권, 중권, 하권으로 분류한 대화문답의 형식적 기술 내용에서는 기원 전후 전쟁사와 정치사에서 주목한 주요 인물들과 그 관련 사건사고를 통한 그 역사적 전거 진위를 밝힌다. 이는 물론 전쟁 발발 전후 상황에서의 전략전술, 인재상, 군신관, 외교정책, 군사기밀 등에 관한 내용이며 그 사실적 전거의 역사적 고증 해석 방법에서의 모순적 의미와 그 차이점을 추출할 수 있다.
이처럼 『武經七書』를 집대성한 시기 전후 『李衛公問對』에서는, 그 역사적 정치적 군사적 인물들과 당대 시대사조 경향 및 그 사실사건에서의 논쟁적 변론, 그리고 그 주지적 견해는 실제의 실재로서의 사실 상황 평가의 기준으로서 그 전거의 역사적 이론적 심미적 의미 및 그 의의를 담고 있다.
독일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과 패전국이었으나 1989년 10 월 9일 베를린 장벽을 무너뜨리고 1990년 10월 3일 공식적으로 통일국가가 되었다. 독일은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전범국으로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4개국으로부터 서독과 동독이 강제로 분단되고 관리되었다. 독일통일 전 서독은 서구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시장경제를 도입하여 세계 선진국으로 발전하였으나. 동독은 소련식 사회주의 체제와 계획경제를 도입한 결과 국력면에서 서독에 비해 비교가 안될 정도로 많은 격차 를 보였다. 독일통일은 서독이 동독을 흡수한 전형적인 흡수통일방식이었다. 독일통일의 국내외적 환경요인은 국내적으로 동서독이 분단 상황 하에서도 정부와 민간부문차원에서 꾸준한 인적교류와 물적교류를 진행한 것이다. 국제적 요인으로는 첫째, 국제정세가 당시 소련과 동구 사회 주의권 국가들의 붕괴와 미소 냉전체제가 종식된 점, 둘째, 미국이 적극적으로 주도한 미국, 영국, 프랑스, 소련, 동서독이 포함된 ‘2+4체제’ 시스템 가동의 성과이다. 셋째, 독일통일은 당시 유럽지역의 나토(NATO) 와 유럽연합(EU) 등 정치적, 군사안보적, 경제적 이해관계와 전략적 목표가 일치되었다는 점을 제시할 수 있다. 독일은 통일 후 동서독인 간 사회적·경제적·심리적 갈등이 내재돼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이러한 내적 갈등요소들은 하나씩 완화돼 갔다. 이러한 독일통일 갈등요소들은 분 단체제인 한반도와 중국 양안의 통일과정에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중요한 사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