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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1.
        2015.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엘리엇은 니콜라스 페라의 영국의 종교 공동체인 리틀 기딩에서 자신의 앵글로 가톨릭의 종교적 정체성을 찾았다. 엘리엇은 「리틀 기딩」에서 자신의 신앙과 믿음의 교리인 성육화를 제시했으며 성요한의 십자가나 단테와 같은 가톨릭의 신앙의 전통을 시에서 구현했다. 엘리엇은 리틀 기딩 공동체와 관련된 역사에 주목하며 찰스 1세와 청교도간의 종교전쟁이 인간의 욕망이 신앙의 이름으로 변한 역사적 사건이 역사에서 반복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시인은 시간 속에 영원이 내려오는 성육화가 정점으로 표현되는 신비를 리틀 기딩에서 체험하며 자신의 죄를 깊이 인식하며 역사에서 은총의 순간이 정점이자 성육화라는 앵글로 가톨릭적인 신앙의 정체성을 제시한다.
        122.
        2015.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Eliot was impressed with Charles Baudelaire’s technical mastery and particularly with his employment of symbolic imagery as a means of representing a spiritual or emotional state of modern man. This paper makes it clear that Baudelaire’s decadent metropolitan settings appear in Eliot’s early poetry including “The Love Song of J. Alfred Prufrock.” This paper argues that Eliot not merely presents the imagery of the sordid common life of a metropolis but attempts to transform such imagery to disclose the symbolic landscape in the protagonist’s mind. Eliot recalls from his past life memory and daily observations concrete physical equivalents for intangible feelings of modern humans. This paper shows how all the scenery of the poem, indoor and outdoor, is transferred to the psychological landscape of Prufrock himself. And this paper also argues that the symbolist device of objective correlative, then, in Eliot’s hands, renders the complexity of modern human experience as well.
        123.
        2015.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전지전능한 절대적 존재에 대한 믿음은 T. S. 엘리엇의 인생을 통하 여 드러나는 것이다. 악의 존재와 인간의 근본적인 불완전함에 대하여 날카롭게 인식하고 있었던 엘리엇은 자신이 유니테리언 교리가 상징하 는, 진보의 이상에 바탕을 둔 낙관주의에 동의하지 않았다. 이러한 낙관 주의에 대한 대안으로, 엘리엇은 종교와 문학을 통합시킬 수 있는 길을 찾으려 하였다. 문학에서 종교가 어떠한 역할을 수행하여야 하는지에 대한 그의 생각은 「종교와 문학」이라는 에세이의 서두에서 잘 드러난 다. 엘리엇은 이 에세이에서 문학 비평은 윤리적, 종교적 관점을 통해 보완되어야 하며, 윤리적인 관점과 종교적인 관점이 조화를 이룰수록 문학이 더 풍부해질 수 있다고 주장한다. 엘리엇은 문학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인정하면서도, 그 가치를 바르게 평가하기 위해서는 외부에 있 는 절대적인 그 무엇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종교가 문학에 대한 도덕적 또는 윤리적 판단에 대한 기준을 제공할 수 있다고 본다.
        124.
        2015.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엘리엇은 매우 포괄적인 시인이다. 그는 겉으로는 자신의 선배시인이 나 비평가를 맹렬하게 공격하는 듯해도 실제 그들로부터 많은 것을 배 우고 빌렸으며 이를 자신의 몰개성 시론에 적극 활용하였다. 프랑스 상 징주의자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겉으로는 그럴듯하게 그들의 영향 력을 가렸지만, 시의 자기충족성이나 시어의 기능, 그리고 시인의 임무 나 역할과 같은 중요한 이론과 개념에서 많은 부분을 수용했다. 엘리엇 의 몰개성 시론의 가장 근본이 되는 개념을 발레리와 말라르메가 그들 의 이론에서 이미 예견하고 실행하였으니, 시는 자동성을 가진 몰개성 적 존재이며, 창작의 과정은 인간이 노동력을 매개로 여러 파편을 융합 하여 유기적이며 와해될 수 없는 총체적 존재를 만드는 것이고, 시어는 대중의 언어를 차용한 탓에 근본적으로 몰개성적인 것이며, 시인은 그 스스로가 보편인류를 대변하는 대행자라는 개념은 모두 엘리엇의 시학 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비록 엘리엇이 시어와 시인의 역할 부분에서 이들과 거리를 두게 되었으나, 시의 자동성을 예술의 자기충족성으로, 상징의 몰개성적 특성을 객관적상관물로 전화하고, 궁극적으로는 시인 으로부터 시의 독립성으로 나아간 데에는 이 두 상징주의 시인의 영향 이 지대하였음에 틀림없다.
        125.
        2015.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T. S. 엘리엇의 「텅 빈 사람들」에 나타난 “허공” 의미가 엘리엇이 주장하는 “전통”의 의미와 어떻게 연관관계를 지니고 있고 그 의미가 확장되어 모더니즘 측면에서 스티븐스의 「눈사람」에 나타난 “무”의 의미와 연결시켜 보고자한다. 두 시인이 말하고자했던 “무”가 단 순히 비어있음이 아니고 실재를 둘러싸고 있는 조건이거나 또는 제한된 인간의 시각으로는 규정지울 수 없는 범위를 표현하는 방식임을 증명하 고자한다. 엘리엇은「텅 빈 사람들」에서 “텅 빈 것”과 “채워짐”의 관계를 근접관계 차원에서 접근함으로써 단순한 “허공”의 의미를 어떻게 극복 하는 지를 보여주고 스티븐스는 「눈사람」에서 잠재성이 있는 무와 존재 하지 않는 무로 구분하여 실재에 다가가는 방법을 제시한다. 두 시인의 목소리가 표면적으로는 다른 것처럼 보이나 결과적으로 두 편의 시에서 독자는 같은 것을 고민하는 두 시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된다.
        126.
        2015.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익히 알려져 있다시피 엘리엇은 동서고금의 철학 및 종교에 관심이 많았다. 유니테리언 집안에서 태어나 성장한 엘리엇은 황무지를 집필 할 즈음에는 불교로의 개종을 심각하게 고려하기도 했고, 1927년에는 자신의 종교가 영국 성공회라고 밝히기도 했다. 그의 작품에는 기독교 의 개념이 많이 들어 있으며 기독교의 상징이 많이 사용되고 있다. 그 렇지만 황무지의 제 5부 「천둥이 한 말」이나 네 사중주의 셋째 작 품인 「드라이 셀베이지즈」에는 힌두교의 개념과 상징이 사용되어 있 다. 특히 후자에는 크리쉬나가 직접 언급되어 있고 그의 말이 직접 인 용되어 있다. 이 이외에도 힌두교의 상징 내지는 암시가 이 작품에 풍 부하게 등장한다. 기타와 우파니샤드과 같은 힌두교의 경전 내지는 사상이 엘리엇의 정신적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고 그런 점에서 엘리엇 이 끼친 힌두교의 영향을 부정 할 수 없겠다.
        127.
        2015.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글은 롱기누스의 「숭고에 관하여」에 나타난 그의 창작관을 토대로엘리엇의 창작관과 비교해 보았다. 먼저 롱기누스는 문체상의 우수성을 언어표현의 뚜렷한 탁월성이라 주장하는데 이는 엘리엇에게 평범한 또는 일상적인 언어표현으로 나타 난다. 그러면서 롱기누스는 지나친 과장을 절제하고 적절한 과장을 권 유하면서 창작자의 중간조절장치를 요구한다. 이것이 엘리엇에게는 객 관적 상관물로 나타나고 있으며 이는 롱기누스의 지적통제와 맥을 같이 한다. 다시 말해 작가는 지나치게 독창성을 추구한 나머지 미성숙함에 빠져들어서는 안되며 이를 위해서는 선배작가들의 장단점을 살펴 보아 야한다는 점에 있어서 롱기누스와 엘리엇은 서로 유사하다. 또 한 가지 지시대상의 명확화를 롱기누스는 들고 있다. 이는 청자의 집중력을 의 도한 롱기누스의 주장이라 할 수 있으며 엘리엇 또한 이를 작품에서 그 대로 보여주고 있다.
        128.
        2015.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엘리엇 시 「크리스마스트리의 재배」에 나타난 경이로움과 두려움은 다소 밝고 교훈적이어서 성당에서의 살인에 나타난 경이로움과 두려 움만큼 무겁고 장중하게 느껴지지 않고 있다. 성당에서의 살인에서는 슬퍼해야 할 죽음과 즐거워해야 할 탄생이 평화나 구원 등 기독교의 신 비로 연결되고 있지만, 「크리스마스트리의 재배」에서는 이러한 신비가 아동에게는 경이로운 체험이면서 동시에 두려움으로 정의되고 있어서이 다. 결국 「크리스마스트리의 재배」는 노년과 아동의 순수함과 단순성을 찬양하며 성자 루시의 삶과 순교를 신비롭게 조명한다. 이러한 신비는 아동에게 경외심을 주던 같은 신비이며, 이를 잃어버린 영혼과 세상에 대한 심판을, 즉 죽음의 두려움을 초월한 아동의 순수한 즐거움과 겹쳐 있다. 우선 경이로움이 놀라워 두려움으로 느껴지고, 그리고 두려움은 냉혹한 삶의 현실과 죽음에서 오는 모순이다. ‘크리스마스트리’가 엘리 엇에게 주는 의미는 천사의 예언과 함께 온 예수의 탄생 그리고 아이의 신비로운 경험, 그리고 살며 겪어야 할 수난과 영광, 이어 노년의 행복 한 죽음과 평화에서 찾아진다.
        129.
        2015.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엘리엇의 종교관을 기존의 ‘기독교적’이라는 광범위한 개 념대신에 ‘앵글로 가톨릭주의’로 규명하고 이러한 종교관이 드러난 한 예시로서 대성당의 살인에서 사용된 그레고리안 성가, ‘디에스 이레’ 를 제시한다. 그의 종교관을 규명하기 위해, 본 연구는 당대의 영국 국 교회내의 저교회파와 고교회파와의 양상을 확인하고, 성육화 교리를 중 심으로 그 특징을 파악하였다. 복음주의적 저교회파보다는 전통적 교회 로의 회귀를 주장하던 옥스퍼드 운동에 의해 부흥하였던 고교회파의 앵 글로 가톨릭주의는 엘리엇의 성향과 잘 부합된다. 앵글로 가톨릭주의와 그레고리안 성가의 부흥에는 동일하게 옥스퍼드 운동이 동일하게 유발 하였으며, 기존의 복음주의적 성향의 예배식과 평성가 보다는 더욱이 앵글로 가톨릭주의의 엄격한 수행과 관련이 있었다. 또한 ‘디에스 이레’ 의 심판의 날에 대한 주제는 기존의 복음주의보다는 보다 엄격한 앵글 로 가톨릭주의와 관련이 있었다. 기존의 작품에 대한 텍스트의 접근법 뿐 아니라 작품 속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한 성가역시 작품 속 흐르는 엘리엇의 순교에 의미를 함축적으로 드러내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 다.
        130.
        2015.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T. S. 엘리엇이 유기적 공동체와 유럽 문화의 통일성에 대 해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에 대하여 문학적이며 문화적인 의미와 의의를 검토한다. 그의 유기적 공동체에 대한 모델은 17세기 이전의 농 업 또는 기독교 사회에만 기초한다기보다는, 동시대의 산업 사회, 특히 현대 유럽 사회에 기초한다. 1922년부터 1939년까지 발간된 크라이티 어리언을 통해, 엘리엇은 유럽이란 아이디어와 유럽 문화의 통일성을 동시대의 유기적 공동체가 실현될 수 있는 모델이라고 지속적이며 다양 하게 주장하였다. 그는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이었던 민족, 국민, 종교 라는 개념을 넘어서서 공통된 유럽의 전통에 근거한 유럽 문화의 통일 성을 추구해야 한다는 생각을 폴 발레리, 후고 폰 호프만스탈, 오르테가 이 가셋과 같은 당대의 유럽의 지식인들과 공유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공통된 문화유산으로 통일된 문화를 가진 유럽 공동체를 재건하는데 많 은 노력을 기울였다.
        131.
        2014.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Eliot and Valrie’ ashes are interred in the church, with the inscription, “In my end is my beginning.” After three hundreds years Eliot returned to the home of his forefather, Andrew Eliot, who left East Coker for the Massachusetts Bay Colony of America in 1660. Eliot received the Christian sacraments of baptism and confirmation in Holy Trinity Church at Finstock on the 29th and 30th June, 1927 that belongs to the Church of England. He was made a member of the Holy Catholic Church that belongs to Anglo-Catholicism. Eliot has a doubting belief and finally became an Anglo-Catholic who believes in the doctrines such as Incarnation and Holy Trinity that differ from that of Unitarianism inherited from his family. His conversion was the result of a lifetime skepticism and progression accepting confession, pray, and contemplation for practice not a leap of faith. Eliot underwent a kind of gradual dialectic of reasons for his adopting ideological position throughout one’s earthly pilgrimage. At last Eliot found a historic and religious community of an Anglo-Catholic in East Coker to have certain admiration for the religious belief, for the life of prayer and contemplation, and for those who attempt to practise it.
        132.
        2014.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Surrealism must have influenced myriads of authors, artists and musicians as it was commonly expected as one of the most socio-culturally influential movement ever. However, it is seldom noted that T. S. Eliot may have close connection with Surrealism. Surrealism was originally an artistic movement that was conducted mainly by the works of artists and poets. Even though surrealism had been mainly regarded as the name tag for those who chiefly worked on paintings, it was originally initiated by a group of poets such as Louis Aragon, Paul Eluard, Guillaume Apollinaire, André Breton, Stéphane Mallarmé, Arthur Rimbaud, and Charles Baudelaire. Considering the culture atmosphere of the time when it was written, The Waste Land, in this respect, may possibly be read as the outcome of surrealistic influence upon T. S. Eliot. As a matter of fact, it must be a mixture of Freudian theory and the aesthetic spirit of rebellion against the traditional concept of art. Even though there was unbridgeable gap between surrealism and Freudian theory, they resonate with each other in their burgeoning period. The surrealist movement was first publicly announced in 1924 by André Breton in his famous “Surrealist Manifesto.” The nascent period was overlapped with that of The Waste Land. That is to say, the formation of surrealism had already begun after the world war I, which gave Eliot the sense of horror and emptiness and got him disillusioned from the hypocritical western civilization which found the elemental frame of The Waste Land.
        133.
        2014.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이글은 기독교에 토대를 둔 엘리엇의 정치적 입장이 제3세계인들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라는 질문에서 비롯되었다. 시극 ��원로 정치인��에는 이 같은 의문에 대한 답을 제시하는 요소들이 발견된다. 먼저 극의 등장인물들은 중미에 위치한 국가인 산마르크 공화국을 영국이나 유럽에 비해서 매우 무질서하고 타락한 곳으로 치부하며 거기에 속한 사람들에 대한 폄하를 노정하고 있다. 이처럼 세3세계의 국가는 당시 많은 문제를 노출했던 유럽인들에게 집단적인 그림자로서 작용했으며 엘리엇도 그에 동참했던 것으로 보인다. 나아가 이 극의 주인공을 비롯한 남자 등장인물들은 예외 없이 여성과의 조화롭고 결실을 맺는 관계에 실패하고 있다. 엘리엇의 전기를 반영하는 듯한 이 특징은 배우자 원형, 즉 아니마가 원활하게 작동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 특징은 정치적으로는 어머니원형이 지배하는 단계, 즉 권위에 복종하고 타자의 가치에 제한을 두고자하는 보수적 성향과 관련된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원로 정치인��은 작가가 의도한 원만하고 이상적인 삶의 정리가 아닌 작가와 주인공의 불안정한 심리 상태와 그와 관련된 제3세계인으로서 인정하기 어려운 정치적 태도를 담고 있다 하겠다.
        134.
        2014.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엘리엇은 몇몇 낭만주의 시인들에 대하여 자신의 견해를 밝힌바 있다. 이 글은 엘리엇이 1937년에 작성한 「바이런」을 중심으로 엘리엇의 바이런에 대한 평가의 내용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엘리엇은 바이런의 생애는 비교적 설명이 되어 밝혀졌지만 그의 문학적 특징은 생애에 비해 설명되지 않았다며 그가 이 일을 수행하겠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엘리엇은 우선 작품의 양과 질에 대한 관계로 관심을 돌리며 바이런의 경우 양적인 측면은 한계를 규정짓기가 난해하지만 질적인 측면은 우수하다고 한다. 그러나 시인으로서의 바이런의 경우, 단시는 물론 장시에 있어서도 바이런이 우수하다고 평가한다. 또한 바이런의 악마주의를 지목하며 엘리엇은 이것이 복합적 특성을 지니고 있다고 평가한다. 즉, 단순하게 정의할 수는 없다는 것이 엘리엇의 생각이다. 그리고 「바이런」의 대부분은 ��돈 주안��에 대한 엘리엇의 평가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엘리엇은 바이런의 재담가로서의 훌륭함, 바이런이 창작한 플롯의 우수함, 설화시로서의 훌륭함, 표현 방식의 탁월성 등을 바이런의 장점으로 규정한다.
        135.
        2014.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텅 빈 사람들』은 전기시에서 후기시로의 의도적 전환의 결과다. 근대적 분열로 인한 주체의 다층성에 관한 개인적 내면의 공시적 파악이 전기시라면, 후기시는 극적 글쓰기를 통한 공동체적 주체의 통시적 회복 노력이다. 아감벤의 제의와 놀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엘리엇의 의도는 전통유지의 근대적 제의에 대한 의문 제기이면서 새로운 제의 창조라는 이중작업이다. ‘죽음의 꿈 왕국,’ ‘죽음의 황혼 왕국’과 ‘죽음의 다른 왕국’이란 공동체 질서에 대응되는 ‘텅 빈 사람들’의 약한 영혼들, 가이와 커츠의 격렬한 영혼들과 회개 후 단테의 영혼 등 주체의 위계질서가 입증된다. 구원의 길이 안보이지만 신비주의 전통에서의 새로운 제의 창조가 가능하다. 중층적이며 수직적 주체관계는 수평적 주체관계를 전제로 하는 언어체계에 난경을 만들기에, 새로운 언어체계로 새로운 제의를 창조하려한다. ‘텅 빈 사람들’에게는 끝나버리는 세상에서, 자신의 영혼이 선택한 어두운 밤이라고 믿고 불굴의 의지로 신의 은총을 향해 나아가는 수행자가 있을 수 있다. 엘리엇의 이중작업의 결과로 『텅 빈 사람들』의 독자들은 『황무지』에서의 절망에 이르는 세속적 경험과 후기시에서의 종교적 신앙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게 된다.
        136.
        2014.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니체는 현대 사회의 문제점을 신의 죽음에 의해 만연된 허무주의라고 생각했다. 니체가 진단했던 이런 허무주의적 양상은 엘리엇의 초기 작품들 특히 「게론션」과 『황무지』에서 표현되었다. 그러나 니체가 기존의 교회가 예수의 가르침 중 죄와 심판을 강조하고 사랑을 강조하지 않은 것에서 신의 죽음을 야기시켰다고 주장한 반면에 엘리엇은 성육한 예수의 본질을 인간이 알아보지 못한 것에서 인간의 절망적 상황이 발생했다고 보았다. 니체는 허무주의를 극복하기 위해서 영원회귀 사유를 주장하였다. 니체의 영원회귀 사유에 따르면 생성은 변화이자 생명이며 곧 존재이고, 모든 순간은 의미가 있다. 영원회귀는 일종의 사유실험으로서 인간의 삶에 대한 태도를 시험하는 것이다. 한편 엘리엇의 후기 시 『네 사중주』에서 세상만물은 유전의 법칙에 따라서 변화하는데, 이것은 니체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생성과 연결될 수 있다. 하지만 니체의 생성은 곧 존재로서 가치우위에 있는 반면에 엘리엇의 세계는 유전의 법칙에 지배를 받지만 영원과 시간이 교차하는 순간이 있기 때문에 인간에게 의미와 가치를 준다.
        137.
        2014.08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논문은 엘리엇의 ��에어리얼 시집󰡕중의 한 편인 「머리나」(1930)를 브래들리의 일원론적 인식론의 관점에서 고찰한다. 문학이든 종교든 철학이든 엘리엇의 궁극은 현상의 세계에서의 분열이나 모순을 넘어선 초월적이며 통합적인 세계이다. 엘리엇은 근대의 문명적 정신적 황폐가 데카르트 이래로 서구 정신을 지배해 온 이원론적 인식론에 있다고 진단하고 이의 극복을 시도해왔다. 브래들리의 철학은 물질과 정신, 감성과 이성 그리고 주체와 객체를 하나의 통일체로 보았다는 점에서 일원론적이다. 이 작품의 제사인 세네카의 ��헤라클레스의 광기��와 셰익스피어의 후기극 『페리클레스』의 주제에 근거한 「머리나」의 주제는 극적 인식이다. 엘리엇의 궁극은 일상의 삶에서는 미처 알지 못했던 현상 너머의 세계의 발견을 통한 초월적 경험에 있다. 본 논문은 극적 인식을 통한 초월적 경험을 브래들리의 인식론의 단계에 적용시켜 분석함으로써 이 작품 해석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이를 통해 엘리엇 예술의 본질을 드러내고자 한다.
        138.
        2014.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존 애쉬베리의 작품『세 시』는 T. S. 엘리엇의 모더니즘 시『네 사중주』에 대한 포스트모던적인 반향이다. 엘리엇은 “육화”를 “회전하는 세계” 속에서 궁극적인 “정점”으로 동일시함으로써 기독교적인 중심을 갖는다.『세 시』를 면밀히 분석해보면 애쉬베리가『네 사중주』의 특정한 언어와 생각에 공명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는 우리가 시간에 포섭되는 것을 거스르는 엘리엇의 기독교적인 주장을 해체하고자 했다. 엘리엇의 기독교적 세계관에 기반한 유럽중심적인 고착이 자신들만의 문화적 구조를 바탕으로 세계관을 발전시키는 비서구사회의 독자들에게 문제시될만한 영향을 만들어내는 반면에, 애쉬베리의 보다 평등한 중점은 비서구사회의 문화적 구조에서도 보다 폭넓게 해석될 수 있다. 한편, 애쉬베리의 비정치적인 주체적 병합은, 즉 탈중심화된 주체는 그 자체가 유럽중심주의라는 측면에서 문제시 될 수 있다. 포스트모더니즘 비평가들이 논의해온 것처럼, 탈중심화된 정체성은 비서구사회와 소수민족들이 정체성에 목소리를 부여하는 순간 특권을 갖는다. 애쉬베리의 엘리엇에 대한 비위계적이고 탐구적인 비평은 유럽중심주의에 반하는 좀 더 성공적인 미적 대응 방식을 제시할 수 있다.
        139.
        2014.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동방박사들의 여정 에 나타난 동방박사들의 육체적·영적 여정은 단순히 아기예수의 탄생을 맞이하기 위한 긴 여정일 뿐만 아니라 이교도로서 영적 죽음을 경험하게 되는 고행이다. T. S. 엘리엇은 복음서의 내용과 렌슬럿 앤드류의 설교를 극적 독백 형식을 통해 병치시킴으로써 화자, 청자, 사건 등이 여정에 잘 녹아 있다. 이 작품에서 시인은 동방박사들이 기독교에 동화되어 이교들의 삶을 정리하기까지의 육체적·영적고통을 여정에 투영시켜 개종의 고통을 알레고리적으로 묘사한다. 화자의 회상에 따르면, 그들이 아기 예수 탄생의 장소에 도착했을 때 탄생의 고통과 죽음의 고통을 구별할 수 없었다고 고백한다. 이 논문에서 는 화자가 느끼는 죽음·탄생의 복합적 고통들을 서로 분리하지 않고 공시적으로 의미를 분석해 그 고통의 순간이 엘리엇의 주장하는 정점의 순간으로 보고자한다. 나아가서 그 고통의 감정 속에는 다층적인 의미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알레고리적 읽기로 영적·육체적 여정이 하나의 정점에서 동시에 발생할 수 있음을 입증해 보려한다.
        140.
        2014.05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엘리엇은 20세기 최고의 모더니스트라 평가되며 영미시의 황제라는 칭호를 받을 정도로 그의 문학적 위상은 대단했다. 그러나 이러한 위상에도 불구하고 그의 작품을 감상하기란 하나의 도전이 되고 있다. 그 원인 중에 하나는 바로 시간에 대한 난해한 정의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 연구는 먼저 엘리엇의 네 사중주를 기독교적 시각에서 간략하게 살펴보았다. 즉, 현재를 중심으로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어 하나의 고리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 시간을 나타내기 위하여 엘리엇은 물리적 시간과 형이상학적 시간의 원리를 동시에 사용한다. 물론 정점을 중심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하나의 연결고리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또한 엘리엇은『네 사중주』뿐 아니라『황무지』를 비롯하여 「J.알프레드 프로프록의 사랑노래」, 「게론티온」 등에서도 시간의 이동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특이한 점은 작품 속 화자의 의식의 이동 즉, 현재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미래로 등 다양하게 화자의 시제가 이동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엘리엇은 시간의 이동원리를 구체화하기 위하여 이러한 화자의 의식의 이동원리라는 기제를 사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