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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색결과 18

        3.
        2019.0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경상우도의 함양에 연고를 둔 덕곡 조승숙은 려말⋅선초를 주요 활동기로 삼아 불사이군으로 표방되는 시대정신을 실천한 충절의 인물이다. 정몽주의 문인이었던 조승숙은 포은과 정치적 노선을 같이하여, 고향인 덕곡촌으로의 귀은을 통해 항절 의지를 실행에 옮기게 된다. 조승숙은 귀은에 돌입한 이래로 강학활동을 전개함으로써, 맹자가 운위한 대장부 정신을 몸소 구현하기도 하였다. 차후 덕곡공파의 파조로 옹립된 조승숙이 남긴 일련의 행적들은, 이 문중의 후손들의 뇌리에 유의미한 삶의 전범으로 각인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정황은 범 덕곡공파 차원에서 간행된 문중용 교훈서인 『함안조씨언행록』를 통해서도 분명하게 확인되는바, 총 5편으로 이뤄진 이 책은 후손 68 인이 선보인 귀감이 될 만한 행적들을 발취하여 재구성한 텍스트다. 조승숙은 시조 조정과 입향조 조영준 및 부친 조경과 함께 「제1편」에 소속되어 있다. 조승숙의 경우 이 서책 전체를 통해 가장 많은 서술 공간을 획득하였고, 또 ‘선생’이라는 호칭을 구사한 정황 등으로 미뤄 볼 때 언행록의 직접적인 연원을 제공해 준 상징적인 인물임이 간취된다. 『함안조씨언행록』은 선생⋅관직 명⋅호⋅‘휘□□’라는 네 종류의 호칭법을 구사하고 있다. 한편 계묘본 언행록은 파별로 나뉘어 독립적인 서술체계를 유지했던 기존 『언행록』 체제를 초극하기 위해 ‘연대(年代)⋅연기(連記)’라는 새로운 편집 원 칙을 적용한 점이 주목된다. 또한 『함안조씨언행록』은 범 덕곡공파 후손들을 대상으로 하여 효우⋅충절⋅학문⋅청렴성⋅위민의식 등과 같은 보편적인 인물 선정 기준을 적용함으로써, 문중적⋅폐쇄적 한계성을 극복하고 극히 보편적인 가치를 담지한 텍스트로 거듭날 수 있었다.
        8,100원
        4.
        2017.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천연기념물 중에서 유일한 늪지식물인 제346호 함안 대송리 늪지식물을 대상으로 방문객의 문화재적 가치에 대한 인식현황과 활용 및 관리에 대한 요구도 등을 분석하여 향후 관리방안의 시사점 제공을 목적으로 한다. 방문객 인식현황을 분석한 결과 대상지의 인지도 및 인식수준은 전반적으로 낮았고 방문동기는 ‘자연 체험 및 교육’, ‘휴식 및 여가’, ‘문화자원 체험’ 순으로 높게 나타났다. 인식수준에 따른 방문동기 차이를 분석한 결과 대상지에 대한 인식수준이 높거나 대상지의 문화재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집단의 경우 단순 휴식 보다 ‘자연 체험’ 또는 ‘문화자원 체험’을 위해 방문하는 경향이 높았다. 활용 측면에서는 안내판 등 관람, 편의를 위한 기본시설 및 적극적인 홍보에 대한 요구가 가장 높았고 늪지식물을 이용한 전통자원 발굴과 자연체험을 선호하는 것으로 조사되었다. 현행 관리의 주요 방해요인으로는 지역주민과 일반 탐방객 모두 체계적인 관리정책 부재와 지역주민과의 소통 부재 등을 문제로 인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적절한 관리방안을 모색하기 위해서는 지역주민을 포함한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협력을 통한 보존과 이용의 조화를 이루는 정책 수립 및 현장 적용이 필요하다고 인식하였다.
        4,000원
        5.
        2017.10 구독 인증기관·개인회원 무료
        함안 대송리 늪지식물은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유일한 늪 지식물로서 이 지역에 분포하는 가시연꽃과 자라풀 등의 수생식물의 가치가 인정되어 1984년 천연기념물 346호로 지정되어 있다(한국환경생물학회, 1987). 특히 람사르 협약 가입(1997)을 기점으로 습지의 가치에 대한 인식이 변화하 기 시작했고, 습지보호지역 방문객 수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국민적 요구도에 발맞춰 우포늪, 순천만 습지 등 국내 주요 늪지의 경우 활용 및 이용에 관한 다양한 연구 들이 이루어져 왔다. 반면, 늪지식물로 유일하게 천연기념 물로 지정된 함안 대송리 늪지식물의 경우 환경부 멸종위기 야생생물Ⅱ급인 가시연꽃과 산림청 희귀식물인 자라풀(약 관심종)의 자생지로서 학술적 가치가 높고 광주안씨문중이 보존하여 온 역사적 유래가 깊은 자연유산에 해당한다. 하 지만 대상지는 지자체에 의해 최소한의 관리만 이루어져 왔으며 지역 내 인지도와 활용도도 매우 낮은 실정으로 지 속가능한 보존 측면에서 보존과 활용을 도모할 수 있는 관 리정책 및 활용 방안 마련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에 따라 본 연구는 천연기념물 활용정책 수립의 일차적 인 연구로 천연기념물 제346호 함안 대송리 늪지식물을 대 상으로 방문객의 전반적인 인식현황과 활용 및 관리에 대한 요구도 등을 분석하여 향후 활용 및 관리정책 수립의 시사 점을 제공하고자 한다. 우선 ‘대상지가 천연기념물임을 알고 있었는지’에 대하 여 지역주민 외 일반 방문객의 경우 약 81%가 모르는 것으 로 나타났고, ‘대상지에 대한 인식수준(지식정도)’은 ‘이름 은 들어봤다’가 48.7%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생소하다’ 라는 응답이 22.7%로 높았다. ‘대상 천연기념물의 문화재 적 가치’와 관련하여 ‘가치가 높다(40.7%)’와 ‘매우 높다 (14.0%)’로 응답자의 과반수가 문화재적 가치를 높게 평가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함안 대송리 늪지식물의 가치 중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항목에 대한 질문으로 ‘야생동·식물 서식처(4.25)’와 ‘우수한 자연경관(4.24)’가 가장 높은 점수 를 받았고, ‘학술적 가치(4.13)’, ‘전통적 생활터전(4.11)’이 높았고 ‘소득창출(3.17)’이 가장 낮았다. 이는 소득 보다 생 태계로서의 가치와 전통적으로 이어져오는 자연적 가치를 중요한 항목으로 인식한다는 특성을 나타내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방문객의 천연기념물 인식수준에 따라 방문동기에 차이가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t-검정을 실시한 결과 천연기 념물임을 알고 있고 상대적으로 대상지에 대한 지식수준이 높다고 인지한 집단의 경우 문화재로 지정되었거나 늪지식 물에 관심이 있어서 방문한 점수가 높았다. 방문동기 요인 분석을 실시한 결과 “자연체험 및 교육(3.52)”, “휴양 및 여가(3.41)”, “문화자원 체험(2.87)” 순으로 방문동기가 강 한 것으로 나타났다. 인식에 따른 방문동기의 차이를 살펴 보면 사전에 천연기념물이라는 것을 알고 있거나, 이름을 알고 있던 사람들은 ‘전통문화 체험’을 위해 방문하는 경향 이 있었다. 문화재의 가치가 높다고 생각한 사람 역시 ‘경관 및 체험’, ‘전통문화 및 역사’의 방문동기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문화재에 대한 인지 수준을 높이고, 문화재적 가치를 높이는 것은 방문동기에 대해 인과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결과이다. 대상지의 활용에 대한 요구도 조사 결과 위치표시판이나 안내판 보완 등 기본시설에 대한 요구와 전통문화와 늪지식물을 연계한 체험 등에 대한 요구도가 높았다. 대상지 관리의 문제점으로는 체계적인 관리정책 부 재와 오염물질유입이 가장 중요하고 향후 관리방향 선정 시 보존과 활용의 조화를 이루고 정책의 전 과정에 지역주 민의 참여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향후 함안 대송리 늪지식물의 활용 및 적절한 관리를 위 해서는 천연기념물의 인지를 높이는 것이 중요한 방문동기 이므로 지속적 홍보를 통해 문화재의 정보에 대해 알리는 것이 중요하다. 이외 주변의 알려진 문화자원과 연계한 홍 보도 한 방법으로 보인다. 보존과 활용 측면에서, 지역주민 과 이해관계자가 협력하여 관리하여야 하며, 동선과 휴게공 간, 표지판의 보수가 필요하다 할 수 있겠다. 마지막으로 인근 학교와 연계하여 전통문화자원을 발굴한 체험활동 프 로그램을 개설하여 생태학습장으로의 이용을 고려하여 지 역 내에서부터 천연기념물 식물의 가치 확산이 필요할 것으 로 생각된다.
        8.
        2011.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With the accumulations of outcomes from archaeological excavations of mountain fortress of three kingdoms period, there have been studies about time-periodic territory range of mountain fortress, difference in the way(method) of construction, defence system and so on from various points of view. This is an empirical study on the construction method of the valley part of stone fortress. First of all, it is required to secure large quantity of fresh water for those who lived at mountain fortress. Especially when builders of fortress construct a fortification at the valley part of stone fortress, in advance they must sufficiently consider several options including the establishment of sustainable water resources. First, when it comes to build a fortification on a ridge[or a slope] of a mountain, you have only to consider a vertical stress. However, when it comes to build a fortification at the valley part of a mountain, You must have more sufficient preparations for the constructing process. Because there are not only a vertical stress but also a horizontal pressure simultaneously. Second, a fortification of mountain fortress built by using unit building stone is a structure of masonry construction like brick construction, and the valley part of it is where the construction of the fortification begins. Third, when it comes to build a fortification at the valley part of a mountain, it seems that they use a temporary method such as coffer dam in oder to prevent the collapse of the fortification due to heavy rain. Furthermore, in response to a horizontal pressure a fortification is built by the way of its plane make an arch, or by piling up the soil with the plate method(類似版築) and earthen wall harder method(敷葉) they increase cross-sectional area of the fortification and its cutoff capacity. In front direction they put the reservoir facility for the fear that the hydraulic pressure and earth pressure are directly transmitted to the fortification. The process of constructing the fortification at the valley part of a mountain is done in the same oder as follows; leveling of ground(整地) ⇨ construction of coffer dam ⇨ construction of the fortification between the both banks of the valley ⇨ construction of the fortification at bottom part of spill way(餘水路) between the both banks of the valley ⇨ construction of spill way(餘水路) & reservoir facility ⇨ construction of the fortification at upper part of spill way between the both banks of the valley. Coffer dam facility seems to be not only the protection device on occasion of flood but also an important criterion to measure the proper height of spill way or tailrace(放水路). This study has a meaningful significance in that it empirically examines the method of reduction of the horizontal pressure which the fortification at the valley part of a mountain takes, the date the construction was done, and wether the changes in climate such as heavy rainfall influence the process of construction.
        4,900원
        10.
        2008.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의 목적은 법수늪 유역 내에 유입되는 비점오염원과 늪지의 유입부의 점오염원 예측지역을 선정하여 수환경의 계절적 변화와 형광광도계(phyto-PAM)에 의한 1차 생산력을 분석하여 늪지 생태계의 관리방안을 위한 기초자료로 사용하고자 했다. 조사 시기는 2006년 2월, 4월, 8월과 11월에 각각 1회 정점 1~5의 수 표면에서 수심 1m사이의 수역에서 채수하고, 법수늪 유역 5개 지점, 늪 중앙을 1개 지점으로 하여 정점을 설정하였다.
        4,200원
        14.
        2016.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clarify the environmental changes and human activities before and after the fortification of the Seongsan Sanseong Fortress (hereinafter mountain fortress) in Haman through using pollen analysis. For this purpose, samples were taken at the Tr-2 site in the Warm-temperate forest. The results of the analysis are as follow. ① Before and after the fortification of the mountain fortress, the area around it has changed from a broad-leaved forest (The HS-I period) into a deciduous broad-leaved forest (The HS-II period) and finally into a the mixed conifer and deciduous broad-leaved forest (The HS-III period). ② The HS-I period (before the middle of the 6th century, compared to the nationwide pollen zone RIIIa during the Postglacial) was covered with cool-temperate southern forests(including some species of Warm-temperate trees) and was very similar to the current climate environment during the Gaya period before the fortification. ③ The HS-II period (mid to late 6th century, pollen zone RIIIa) was covered with typical cool-temperate southern forests after the fortification and the temperature was slightly lower than the first stage. ④ The HS-III period (7th~8th century/9th century, pollen zone RIIIb) is an era of clear human interference, causing the destruction of forests in earnest and paving an active agricultural life.
        15.
        2013.07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충적하천에서 발생하는 하천의 침식과 퇴적은 흐름을 통해 발생하는 자연적인 현상이다. 침식 및 퇴적과 관련된 수치모형을 이용한 분석은 하천에 존재하는 보와 같은 수리구조물들의 유사이송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요소이다. 본 연구에서는 다기능보들의 효과적인 운영을 위하여 낙동강수계에 위치해 있는 창녕함안보를 대상으로 하상변동을 예측하였다. 2차원 모형은 CCHE2D를 이용하여 유사이송이 지배적으로 발생하는 다기능보 상‧하류 구간 12km를 대상으로 침식과 퇴적에 대한 모의를 수행하였다. 2003년 태풍 “매미”사상을 대상으로 모형을 검‧보정 하였으며, 모의결과와 관측값의 비교를 통하여 전체 모의구간에서 신뢰성 있는 결과가 도출되었다. 함안창녕보가 건설된 이후 태풍사상에 의한 하상변동은 상당히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고 하상변동은 유사의 재분배를 야기하였다. 보와 같은 수리구조물들은 하도내 흐름과 유속을 변화시키기 때문에 세굴과 퇴적 문제를 심화시켰다.
        16.
        2013.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咸安을 본관으로 하여 함안에 세거해 온 咸安趙氏는, 趙鼎, 趙丹碩으로 이어지는 上祖가 있지만, 文獻에 의한 고증이 불가능하고, 또 함안과 관계된 기록을 찾기 어렵다. 高麗末 琴隱 趙悅에 이르러서야 함안에 정착한 확실한 기록이 있다. 琴隱으로부터 치더라도 이미 600년이 넘는 오랜 기간을 한 곳에서 살아왔다. 중간에 晋州 靑松 등지로 移居한 일파도 있지만, 대대로 함안에서 최대의 성씨로서 집성촌을 이루고서 많은 인물을 배출하며 살아 왔다. 琴隱의 高麗王朝에 대한 節義를 지켰고, 漁溪가 生六臣으로서 志節을 지킨 이래로 門聲이 더욱 널리 퍼졌다. 丁酉再亂 때 大笑軒이 순절함에 따라 명문이 되었다. 대소헌의 學問과 忠節은 琴隱 漁溪로 이어지는 가문의 전통과 南冥이나 남명의 제자들로부터 받은 실천위주의 교육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동안 9명의 문과급제자, 13명의 忠節 등 많은 인물을 배출해 내는 등 학문과 충절로 이름난 집안이 되었다. 大笑軒이라는 걸출한 인물이 나오는 데는, 오랜 기간 咸安趙氏 가문의 선조들의 온축된 傳統과 기운이 그 바탕이 되었던 것이다. 대소헌이 배출됨으로 해서 咸安趙氏 가문은 전국 어느 가문에도 손색이 없는 높은 위상을 획득했다고 말할 수 있다.
        17.
        2008.03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The landscape commonly refers to the appearance of the land, including its shape, texture, and colours. Among many factors contributing to the landscape, tree and plants factors playa significant role in rural landscape as a colours. Therefore the rural traditional theme village where had been designated under the rural traditional theme village since 2007 in Naegok-ri, Eohang-myeon, Haman-gun has planned to design the tree plant planning for creating a unique rural landscape. The landscape proposal for the new Rural Village in Naegokri, Yeohang-myeon, Haman-gun suggests three main strategies; 1) The riverside area and reservoir area adjoined forest was required to be prepared to offer organization waterside landscape and forest landscape through landscape planting and selecting trees i.e. able to reflect sense of the season that promote high quality values of landscape area in rural. 2) The area adjoined stable was required to strengthen the screen planting and buffer planting with multiple plant layer structure and trees of branches and leaves closeness, shrubs of beauty flowers in order to improve disamenity landscape and odours. 3) The rural traditional theme village adjoined entrance was required to open space such as multipurpose garden, specialized or themed garden which include Landmark factors and prepared to the space with the various theme and visual diversity in order to take charge of function as landmark characteristic in Naegok-ri, Eohang-myeon, Haman-gun, and so on. In conclusion, this winning principal purpose of this study is applied to basic tree plant model for sustainable rural landscape creation in rural areas by selecting beautiful landscape plants and the tree plant planning.
        18.
        2007.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咸安은 학문의 고장이라고 일컬을 수 있는데, 함안에 본격적으로 학자가 배출 되어 학문이 시작된 것은 조선 건국 이후부터이다. 高麗末 琴隱 趙悅과 茅隱 李 午의 咸安 정착이 咸安의 학문 興隆에 있어 하나의 큰 계기가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각 성씨가 함안에 기반을 잡아 번성함으로 인하여 그 후손 가운데서 많은 학자들이 나왔다. 朝鮮 宣祖朝에 寒岡 鄭逑가 咸安郡守로 부임하여 학문을 일으키고 교육을 장 려하고 󰡔咸州誌󰡕를 편찬한 것이 함안의 학문 수준을 높이고, 학문의 저변을 확 대한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특히 󰡔咸州誌󰡕를 통해서 그 당시 함안의 지식인들 에게 그 때까지의 함안 문화의 전모를 알게 하여 함안의 문화적 전통에 대한 자 부심을 느껴, 앞으로 문화를 가꾸어 나가야 하겠다는 사명감을 갖게 만들었다. 仁祖反正으로 침체되기 시작한 咸安의 학문은, 澗松 趙任道의 노력으로 급격 한 쇠퇴를 막고 현상을 유지할 수 있게 되어, 仁祖反正 이후에도 江右의 다른 고을과는 달리 학문이 단절되지는 않게 되었다. 澗松은 南冥學派와 退溪學派의 융합을 위해서 평생 노력한 학자인데, 간송의 노력으로 인해서 함안 지역은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퇴계학파나 남명학파 두 학파의 장점을 골고루 섭취하 는 이점을 갖게 되었다. 인조반정 이후 함안에서 저명한 학자나 비중 있는 저술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이 때 함안의 학자들은 書院 건립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쳐 尊賢과 講學을 통해 서 학문적 전통을 이어나갔다. 咸安에서 스승으로 삼을 만한 대학자가 나오지 않자, 조선 후기에 이르러서는 함안에서 학문을 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사람들은 慶尙左道나 畿湖地方으로 유 학을 가야만 하는 어려움이 있어, 자연히 대부분의 선비들이 향촌의 小儒로 침 체됨을 면하기 어려웠다. 조선말기 性齋 許傳이 金海府使로 부임하여 관아에서 講學을 하자, 배움에 목 말랐던 함안의 선비들이 구름처럼 몰려가 가르침을 들었다. 500여 명의 성재 문인 가운데서 90여 명이 함안 사람이고, 그 가운데서 문집을 남긴 문인만 해도 27명에 이르니, 함안의 학문은 성재의 敎導로 말미암아 완전히 중흥을 이루었 다고 말할 수 있다. 性齋의 문인들은 지금까지 간행하지 못했던 조상의 문집이나 實紀에 성재가 지은 序文을 얻어 간행하여 반포하고, 조상의 재실이나 정자에 성재가 지은 記 文을 붙이고, 조상의 산소에 성재가 지은 碑文을 얻어 새기는 등 先賢들의 學問 과 德行을 선양함으로 인하여, 묻혔던 함안의 학문이 단시일내에 다시 빛을 발 하게 되었다. 性齋의 문인 집단에서 좌장격인 晩醒은 性齋의 學統을 전수받아, 스승 性齋의 문집 간행과 성재를 享祀할 麗澤堂을 지어 성재의 학덕이 천추에 전할 수 있도 록 기반을 마련하여 敎恩에 보답하였다. 그는 또 定齋 柳致明의 제자이기도 한 데, 近畿南人學派의 실학적인 학문과 정통 嶺南退溪學派의 성리학적 특성을 잘 조화시켜 함안의 학문 경향을 정통을 지키면서도 실용적인 방향으로 가도록 했 고, 退溪와 南冥의 학문이 잘 조화를 이루도록 만들었다. 1937년을 하한선으로 할 때, 咸安의 학자들에 의해서 지어진 文集은 기록에 남아 있는 것만으로도 약 200여 종에 이르고, 專著는 30여 종 되는 것으로 파 악되었다. 이 정도로 풍성한 著述이 나온 것은 咸安이 學問의 고장이라는 것을 확실히 증명하는 것이다. 이들 저술 가운데는 아직 간행되어 세상에 공개되지 않은 것이 많고, 개중에는 전란으로 인하여 간행되기도 전에 자취를 감춘 것도 적지 않으리라 생각된다. 앞으로 함안 학자들의 저술을 대대적으로 발굴하여 간행 보급하면, 함안에서 나온 文集과 專著를 현대의 많은 학자들이 본격적으 로 연구할 수 있게 되어, 함안의 역사와 문화가 새롭게 밝혀질 것이다. 특히 지 금까지 거의 방치하다시피 해온 朝鮮時代 咸安의 漢文學이 새롭게 조명되어 각 광을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