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글은 황해도굿에 등장하는 무복과 무구인 오방신장기의 연 원과 향방을 살핀 글이다. 황해도굿 뿐만 아니라 한국의 무속 에서는 오방색은 감각적 측면의 표현보다는 주술적, 종교적 의 미로 오방색을 받아들이고 활용하여 왔다는 것을 파악하였다. 특히 적색은 복을 기원하는 가장 기본적인 색으로 다양하게 활 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남색 역시 벽사의 힘을 가졌다 믿는 장군·신장의 무복에서 많이 나타났다는 것을 알 수 있었 다. 무속에 나타나는 오방색은 중국의 경극에서도 나타나는데, 무복과 경극의 의상을 비교분석하였다. 무복과 오방신장기에서 나타난 오방색은 <오제설>에서 비롯된 것이며 오방신장기는 방위의 의미와 함께 신장이라는 신령과 결합하여 다양하게 활 용되고 있음을 살폈다. 마지막으로 오방색의 사상적 배경을 밝 혔으며, 오방색으로 구성된 무복이 가지는 미의식을 색채관으 로 서술하였다.
이 논문은 부산지역의 무속의례인 ‘재수굿’의 구성과 연희양 상을 살펴보고자 한다. 부산지역은 세습무와 강신무가 혼재되 어 활동하고 있는 특별한 지역이다. 특히 불교의 세력이 왕성 한 지역으로 무속의례인 굿에 무불습합의 현상이 뚜렷하게 나 타나고 있다. 이런 지역적 특성을 가진 부산지역의 무속의례 중 가장 많이 연희되고 있는 재수굿에 대하여 연구하고자 한다. 먼저 부산지역 무녀들의 재수굿을 상호 비교 분석하여 중부 지방의 대표적인 굿인 서울의 재수굿·황해도의 재수굿과 어떤 공통점이 있으며 부산지역에서만 나타나는 굿거리는 무엇이며 어떻게 연희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았다. 연구 결과 부산지역의 재수굿은 예전부터 전승되어 온 굿의 양상에서 벗어나 중부지방의 굿거리에 많은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하지만 천왕거리 등 몇 거리는 예전부터 전승되어 온 굿의 원류를 보존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 논문을 계기로 ‘부산 굿’에 많은 관심과 연구가 진행되었 으면 한다.
본고는 황해도 굿에서만 볼 수 있는 도산말명거리의 명칭이 가지고 있는 의미와 신격을 고찰하여 도산말명거리의 중요성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먼저 도산(塗山)의 역할을 규명하고 동시에 말명의 어원을 찾아 말명의 신격을 밝힘과 동시에 이 굿에서 연출되는 ‘방아찧기’가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도 논하고자 한다. 도산은 그 당시 주변국들이 모여서 현안을 논의하는 곳으로 주변국들 간의 갈등과 반목을 해소하고 상호 유익한 결과를 도출하여 제족 간의 화합과 번영을 위하여 함께 모인 장소가 바로 도산이다. 이 도산회의가 후대 신라의 화백제도와 몽골의 쿠릴타이 제도로 발전하였으며, 현재의 국제연합과 같은 기능으로 발전하였다고 볼 수 있다. 도산회의에서 제천의식을 담당한 신녀, 즉 무녀를 만명이라고 불렀으며 변음 되면서 말명이 되었다. 방아찧기의 과정은 도산회의에서 제족간의 오해와 갈등을 극복하고 뜻을 모아 인간에게 유익한 결과를 도출해 내었다는 것을 해학적으로 풍자한 것이다. 방아찧기 재담에서 주고받는 익살스러운 성적 재담은 단순히 음담패설을 늘어놓는 것이 아니라 그 재담 속에는 음양의 조화와 생산의 장려 그리고 풍요를 기원하는 의미가 있다.
죽은 사람의 영혼을 극락세계로 보내고자 하는 망자 천도 굿으 로 알려진 진오기 굿은 전국적으로 다양한 형태가 있으며 전승본 또한 상당히 많다. 그 중 오래 전부터 서울 지역의 대표적인 의 례로 사용되어 온 진오기 굿은 바리공주 무가가 포함되어 있다. 바리공주는 다음 해(길년)에 결혼해야 아들을 얻는다는 무속 인의 조언을 듣지 않고, 혼인한 오구대왕의 일곱째 딸로 태어 났다. 그러나 태어나자마자 부모에게 버림을 받았다. 그 후 부 모가 병환이 깊어져 승전내시, 제조상궁뿐만 아니라 손위 공주 들 모두가 부모를 보살피려고 하지 않았다. 단지 바리공주만이 부모를 위해 효행을 떠나 무장승을 만나 일곱 아들을 낳고 약 류수를 구한 뒤 돌아와 부모를 구하였다. 그 후에도 바리공주 는 지위를 복원하기보다는 무속인의 삶을 택하였는데 이러한 일대기를 바리공주 무가에 담고 있다. 특히 바리공주 무가는 서울 굿의 말미에 행해진다. 이는 다른 지역에서 전승된 무가에 비해 이야기의 전개가 논리적이고 바리 공주의 일련의 행위가 지닌 교훈적 의미와 재생적 무속의 의미가 잘 나타나 있다. 그러나 서울지역에서도 구전되는 내용과 표현에 다소 차이가 있다. 그러므로 서울 굿을 중심으로 현재 구연되는 바리공주 무가를 보다 상세하게 분석하고자 하였다. 그리고 바리 공주 무가에 효에 관한 내용이 중심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현대 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더욱 바리공주의 신분과 범상 치 않은 일대기를 통해 무속인의 태생적 신분을 암시하고 있음을 알았다. 아울러 진오기굿 내에서 망자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후 손을 치유하는 역할을 하였다. 그러므로 이는 후대에 계속적으로 전승될 것으로 보이며 더욱 연구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선교명령은 복음명령 외에도 세상에서 살되 세상문화와 구별된 대조·대항·대안적 문화를 퍼뜨리면서 살아가라는 문화명령(창1:26-28)이 있다. 하나님의 선교는 그리스도인들을 세상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살아갈 수 있는 하나님나라의 문화를 만드는데 헌신하도록 초청한다. 선교적 교회는 보냄받은 곳에서 삼위일체 하나님과의 사귐의 삶을 실천한다. 삼위일체의 결속적 관계는 상호성·평등·열린대화의 관계를 낳는 친교의 모델이며 성령은 진정한 친교가 가능하도록 회복시키는 능력이다. 교회는 하나님사랑과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공동체들과 연대하여 종말론적 하나님나라 구현에 동참해야하며, 한국사회 문제들에 선교적으로 대응하는 공적역할을 감당하기 위해 모든 사회구성원들의 공동선을 추구해야한다. 건강한 노동과 조화로운 삶을 통해 새 문화를 창출하는 굿컴퍼니들은 통전적인 하나님의 선교의 길을 여는 파트너이다.
기장오구굿은 2박 3일간 이루어지며, 절차는 크게 청신ㆍ오신ㆍ송신의 세 부분이다. 청신은 부정굿ㆍ골매기 서낭굿ㆍ입문경ㆍ문굿, 오신은 초망자굿ㆍ방오구굿ㆍ하직굿ㆍ수리굿ㆍ시왕탄일굿ㆍ영산맞이, 송신은 꽃노래ㆍ뱃노래ㆍ초롱등노래ㆍ탑등노래ㆍ허개등ㆍ정정밟기ㆍ꽃사름ㆍ시석까지이다. 이중 불교적 요소가 매우 짙게 나타나는 절차는, 청신의 부정굿ㆍ문굿, 오신의 시왕탄일굿ㆍ영산맞이, 그리고 송신의 절차 대부분이다.
기장오구굿에서 절차명과 용어는 무속적인 은어 사용이 빈번하다. 이는 무속인들만의 언어라는 측면에서 불교의 것과는 차별성을 두려고 하는 면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같은 발음을 사용하면서도 완전히 다른, 새로운 단어를 생성하기도 하고 불교의 용어로 착각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다. 이는 불교의례와는 차별되는 무의례만의 의미를 부여하고자 한 것으로 보인다. 굿당을 장식한 장엄물 역시 대부분 불교의례의 것을 그대로 수용하였다. 그러면서도 그 유래나 내력은 무속적으로 새롭게 해석을 더하고 있어서 불교의례와의 차별성을 확보하려는 의지가 드러난다.
본래 무속의 내세관은 모호하다. 이런 무속이 불교의 내세관을 받아들여 시왕탄일굿에서는 극락정토왕생을 발원한다. ‘극락이라는 좋은 곳이 있다는데 보내줄 수 없느냐’는 민중의 바람에 호응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동해안 오구굿은 불의의 사고 등으로 세상을 떠나게 된 사람들의 한을 풀 어주고, 그들을 극락으로 천도하기 위한 의례이다. 동해안 오구굿에는 망자가 공간 이동을 하는 모습과 함께 망자의 존재 변화가 나타난다. 이는 통과의례의 특성과 부합한다. 통과의례는 의례의 대상을 새로운 집단에 편입시키기 위 해 그 존재를 변화시킨다. 동해안 오구굿에서 망자는 저승 그 중에서도 극락에서 살아갈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완전히 죽은 자’, 궁극에는 ‘조상신’으로 변화하고자 한다. 그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망자는 지옥도 극락도 이승도 아닌 저승 어디인가에서 이승의 제장으로, 마지막에는 극락으로 공간 이동을 하게 된다. 이는 동해안 오구굿이 명백히 통과의례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동해안 오구굿에는 ‘물속(저승) – 이승의 제장 – 극락’이라는 망자의 공간 이동이 상징적인 행위를 통해 나타난다. 이 공간 이동 과정에서 망자는 ‘자각 하지 못한 망자 – 현 상태를 자각한 망자 – 자신이 되어야할 바를 인식한 망자 – 변화’로 인식의 변화를 거친 후, ‘변화를 시작한 망자 – 극락에 적합한 존재로 탈바꿈한 망자(조상신)’으로 존재의 변화까지 이루어 낸다. 망자의 ‘비정상적인’ 죽음을 ‘정상’의 상태로 되돌리는 동해안 오구굿은 세대와 공간의 이질성을 뛰어 넘어 ‘조상’과 ‘후손’이라는 이름으로 가족공동체가 유지시킨다. 동해안 오구굿은 다른 세계로 편입되어야 하는 ‘죽은’ 가족을 돕고, 자신들도 이승에서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위해 삶의 한 지점에 마련한 지혜로운 의례인 것이다.
이 글에서는 불교의례 생전예수재와 무당굿 산오구굿, 산씻김굿을 비교하 여 불교의례와 무속의례의 상통점을 찾아보고 이를 바탕으로 불교와 무속의 상관성을 살펴보았다. 두 의례는 분명 종교배경이 다르다. 하지만 최근 무형 유산이라는 범주 속에 불교의례와 무속의례가 모두 조사, 연구되고 있다. 국 가지정 무형문화재 제도 속에는 불교의례와 무속의례, 유교의례를 구분하지 않고 모두 전통의례로 바라보고 있어 종교를 넘어서서 공통적인 시각으로 접근해볼 필요가 있다. 비교를 통해 생전예수재의 운수단에서는 사자에게 명부의 여러 권속을 불 러 모실 것을 청하는 것이 핵심이라면, 산오구굿이나 산씻김굿은 모두 망자 를 굿청으로 청하는 것이 핵심이다. 청하는 대상이 확연하게 다르다. 생전예 수재에서는 명부의 권속이라고 하여 망자가 중심이 되지 않음을 나타내지 만, 산오구굿이나 산씻김굿은 망자가 중심이 된다. 그러므로 생전예수재가 본격적으로 진행되는 상단, 중단, 하단은 모두 산 사람들은 배제되고 철저하 게 성중과 명부의 권속이 중심이 된다. 하지만 산오구굿이나 산씻김굿은 철 저하게 산 사람과 망자가 중심이 된다. 생전예수재는 설행된 장소에 명부의 여러 권속이 오기를 청한 후 받들어 모시고 대접하여 미리 덕을 닦는다. 생전예수재는 현실세계에 명부세계가 들어와 의례가 진행된다. 하지만 산오구굿이나 산씻김굿에서는 이승에 남아 있는 산 사람의 영혼을 망자로 대우하면서 온전하게 한을 씻고 풀면서 저승 으로 가기를 청한다. 산오구굿이나 산씻김굿에는 명부의 모습이 나타나지 않는다. 생전예수재를 명부세계의 권속을 현실로 모셔와 대접하기라고 본다 면, 산오구굿이나 산씻김굿은 현실의 산 사람이 무사히 명부(저승)로 떠나가 기를 기원하는 의례이다. 생전예수재와 산오구굿, 산씻김굿은 살아있는 이들이 사후를 위해 거행하 는 의례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그 구성방식이나 저승에 대한 인식은 사뭇 다 르다. 이러한 인식의 차이가 어디에서 연유했는가를 논하기는 매우 어렵다. 다만 불교보다 무속이 현실을 중요하게 여기는 측면이 큰 것은 분명해 보인 다. 이러한 비교를 통해 산 자들이 사후세계를 위해 기원하는 의례가 보편적 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탐색한 것은 의미가 있다. 이러한 차이의 철학적ㆍ세 계관적 의미는 좀 더 깊이 있게 따져볼 필요가 있어 과제로 제시했다.
본 연구는 굿판을 21세기의 살아있는 연행 현장이며 지금-여기의 연행 판으로 보는 관점에서 출발한다. 따라서 본 연구자는 이 논문에서 한국과 시베리아의 전통 굿을 ‘총체연행물’로 대 할 것이다. 악가무일체인 총체연행으로서의 굿에서 가장 특징적인 점은 무당이 자신이 모시는 몸주신과 접신상태에 이르는 현상이다. 그리고 굿판에 참여한 관객들도 이런 무당을 따라 드물 지 않게 접신체험에 빠지는데, 이러한 현상을 일컬어 ‘무감서기’라고 한다. 무감서기에서 제 의 참가자는 무당과 더불어 거대한 집단 엑스터시 상태를 체험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굿판 을 구성하는 중요한 두 연행원리는 엑스터시 체험과 무감서기인 셈이다. 한국의 강신무와 비슷한 시베리아의 샤먼도 엑스터시의 기술자로 불린다. 그러나 시베리아 샤먼 은 엑스터시 상태에서 탈혼 곧, 무당의 영혼이 타계 여행을 한다는 점이 특징적이다. 반면에 한 국의 강신무 계통은 신이 무당의 내부로 들어오는 것이 특징이다. 하지만 이러한 차이에도 불구 하고 무당과 샤먼의 굿에서 핵심적인 요소는 엑스터시체험, 곧 망아적 경험에 의해 신과 접속한 다는 사실이다. 본 연구에서는 우선 시베리아 샤먼의 굿에서 볼 수 있는 여러 동물춤이 지닌 의미를 들뢰즈 의 ‘되기’개념으로 풀어 볼 것이다. 그리고 무당과 샤먼의 엑스터시 체험과 무감서기를‘탈기 관체’개념을 통해 해석할 것이다. 이러한 논의는 한국의 강신무 굿과 시베리아의 샤머니즘을 하나의 맥락에서 파악하는 것이며, 이것을 통해 두 지역의 굿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엑스터시 체험이 초월적 세계로의 잠입이 아니라 초월론적 차원의 생명에너지와 합일하는 존재론적 체험이라는 결론에 이를 것이다. 우리 나라와 시베리아 굿판은 모방과 재현의 개념을 넘어서는 무한한 카오스의 세계를 드러내는 초 월론적 체험의 장으로서 존재론적 체험을 가능케 한다는 공통점을 갖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