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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23.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Focusing on Hwaseokjeong in Paju, the work seeks to clarify the social production of Nujeong (樓亭: Korean traditional pavilions) space, which took place over the 1960s and 70s, and its cultural-political implications. To make the effort as such meaningful, a theoretical framework based not merely on the thesis of ‘social production of space’ advocated by Henri Lefebvre but especially on some discussions related to ‘state production of space’ is prepared, according to which Hwaseokjeong is analyzed and explained. As a consequence, two principal arguments are put forward: one is that Hwaseokjeong was a social space which had been built and constructed in accordance with the unique mode of production dominating Korean society at that time called ‘the state mode of production (le mode de production étatique )’; the other is that what lies beneath the denotation of a ‘social space of tradition restoration’ that Hwaseokjeong appears to carry is in fact the connotation of ‘infiltration of anti-communist ideology’. All of these claims are once again supported both by examining Roland Barthes's semiology and mythologies and by considering Hwaseokjeong's Pyeonaek (扁額: a plaque or framed text) as ‘the practice of naming power through J esa (題詞: inscribing dedications)’. While providing a succinct summary, the paper finally evaluates what ‘social production of space’ implies to social practices of architecture and related criticisms by taking into account the relationship between visibility and readability of space including build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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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023.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필자는 교차편년으로 설정된 기존의 남한 원형점토대토기문화의 연대와 출현 과정에 오류가 있음 을 발견하였다. 이에 방사성탄소연대를 이용해 기존의 견해와 다른 새로운 연대 안과 출현과정을 제 시하고자 하였다. 또한 현재 학계에 뚜렷한 견해가 없는 원형점토대토기문화의 성격에 대하여도 새로 운 시각으로 접근하여 원형점토대토기문화의 실체를 규명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다. 남한 원형점토대토기는 BC 12세기 무렵, 비파형동검과 동시에 출현하였으며, 이후 후기 청동기시 대 송국리문화, 역삼동후기문화, 검단리문화 등과 기원전 2세기 무렵까지 장기간에 걸쳐 공존하였다. 남한 원형점토대토기문화 집단은 요동지역‘정치집단’의 이주민이 아니라 청동기시대 조기부터 형성 되어 있던‘요동-서북한-남한’의 네트워크를 통해 남한에 들어온‘청동장인집단’이다. 이들이 남겨 놓은 유적 중‘수석리유적’,‘교성리유적’등은 당시 청동의 원광석을 채광·선광했던 장소로 추정 되며,‘동학산유적’,‘방동리유적’등은 청동을 제련·주조 했던 장소로 추정된다. 이‘청동장인집단’은 재지 사회의 지배층에게 비파형동검 등의 청동기를 제작·공급해서 생계를 유지하던 기술장인들이었으나 점차 정치력을 갖게 되면서 세형동검단계에 이르러서는 당시 사회의 지 배층인‘제사장’이되고, 결국 삼한 사회의 최상위 지배층으로 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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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2023.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연구는 백범 김구의 문화국가 정치사상에서 드러난 국제정치관을 분석함으로써 그의 사상적 특징을 밝히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백범의 국제정치관에서 다른 국가에 대한 군사적 개입을 배제하는 불개입원칙은 평화지향적이고, 방어적인 군사가치관이 명확했으며, 국제 도의(道義)라 는 도덕성을 기반으로 형성하는 협력적인 국제관계를 제시했다. 국가 간 의 주권적, 정신적 평등에 대한 강조는 백범의 평등 사상을 구현했다. 세 계 평화를 창출하고 대동세계(大同世界)를 실현하는 것은 문화국가가 추 구하는 궁극적인 목표이다. 이에 대한 백범의 주장에서 평등, 호조주의 (互助主義), 세계주의, 비군국주의, 평화지향성 등의 사상적 특징을 보여 주었다. 문화국가를 통해 드러난 백범의 국제정치관은 높은 수준의 윤리 와 도덕을 가진 국가 도덕성을 강조한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무력과 폭 력을 배제하고, 문화와 윤리 도덕으로 국가와 천하를 다스리는 왕도(王 道)정치라는 유가(儒家)적 특징이 매우 뚜렷하게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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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022.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한반도 남해안지역에서 청동기는 청동기시대부터 초기철기-원삼국시대까지 주로 사용되었다. 청 동기시대의 비파형동검문화는 지금까지 27개 유적에서 45점이 확인되었다. 남해안지역 비파형동검은 요서·요동지역과 크기와 형태가 다른데, 납동위원소비 분석 결과를 보아도 대부분 남한3지구산(충 청·전라·경북 북서부) 원료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어서 남한지역에서 남한산 원료를 사용해서 만 든 것으로 생각된다. 초기철기시대 세형동검문화의 청동기들은 남한2지구산(강원도 동남부) 원료를 사용한 것이 많아서 역시 남한지역에서 남한산 원료를 사용해서 만든 것으로 생각된다. 원삼국시대에 는 세형동검문화계 청동기와 함께 중국과 일본열도계 청동기도 확인되는데, 청동기는 계통을 막론하 고 원료가 대부분 중국북부산과 중국남부산으로 추정되어서 낙랑군을 포함한 중국에서 원료와 완성된 제품을 함께 들여 온 것으로 생각된다. 전쟁 인류학과 전쟁 고고학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남해안지역에서 정치체의 형성과정을 살펴보면, 비파형동검문화의 무기조합은 원격전용 투사무기(석촉·동촉)+근접전용 단병충격무기(석검·비파형 동검)가 중심을 이루고 있어서 부족사회 단계로 생각된다. 그러나 여수반도 일대에서는 비파형동모가 출토되는 것으로 보아 강제력을 수반한 수장권이 형성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초기철기시대에는 세형 동검문화가 등장하면서 원격전용 투사무기(석촉)+근접전용 단병충격무기(세형동검)+근접전용 장병충 격무기(동모·동과) 조합이 확인되기 시작하므로 이 시기부터 강제력을 수반한 수장권이 형성된 군장 사회로 접어드는 것으로 생각된다. 원삼국시대에는 철제 무기가 사용되면서 원격전용 투사무기(석 촉·철촉)+근접전용 단병충격무기(세형동검·철단검)+근접전용 장병충격무기(동모·동과·철모·철 과) 조합이 정착되고 있어서 『삼국지』에 보이는 국이 형성되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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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2021.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최근 우리나라 문화콘텐츠의 위상은 우리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높아져, 전 세계에서 주류 문화의 하나로 자리매김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전 세계적 한류 열풍의 태동은 중국에서 시작되었고, 중국의 거대한 문화 소비시장이 우리나라 문화 콘텐츠 성장에 밑거름이 된 것은 확실하다 하겠다. 그러나 전 세계적 신(新)한류 열 풍과는 달리 한류의 출발지인 중국에서의 우리나라 문화콘텐츠는 최근 배척되고 심지어 혐한의 분위기마저 강하게 감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한중 간 문화산업 교류의 유형부터 검토하여, 그 과정에서 어떠한 문제점들이 있어 현재의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분석하여 그 개선점과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시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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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2020.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1980년대는 문화정치의 시대였다. 군사정부는 문화정책을 통해, 민간에서는 문화운동을 통해 문화의 헤게모니를 장악하고자 치열하게 대립했다. 문화는 정신을 지배하는 근간이 된다. 제5공화국 군사정부와 민중문화운동 모두 전통민족문화를 통한 역사의 주체성 확립과 민족적 자긍심을 정립하고자 하는 공통의 목표를 가졌다. 그러 나 군사정권이 충효사상을 근본으로 둔 사대부 전통문화를 통해 국가주의를 확립하고자 했다면, 민중문화운동은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규정하며 민중중심주의를 실현 하고자 했다. 이렇듯 양자는 역사를 바라보는 방향이 서로 달랐다. 1980년대는 민중문화운동의 시대였다. 일반적으로 민중문화는 문화 안에 속하는 소범위이지만 1980년대는 군사정권이라는 정치적 환경으로 인해 민중문화운동이 문화운동보다 우위에 있는 특수한 구조가 형성되었다. 민중문화운동은 민중을 역사의 주체로 내세우고 궁극적으로 군사정권의 타도를 목표로 한 문화투쟁, 문화정치였다. 민중문화운동은 사회학, 미학, 철학, 종교 등의 인문학이 중심이 되어 이념을 계발했고, 시위나 집회에서의 현장실천에 있어서는 예술분야가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이념적으로는 마르크스주의와 민족주의가 중심이 되었고, 실천적 방안에는 전통연행예술 이 대표성을 가졌다. 또한 민중미술, 포스터, 판화 등의 시각예술분야의 활동도 매우 적극적이었다. 1980년대 후반에 민주화 열망이 전 국민적 지지를 받고 시위가 대규모로 펼쳐지면서 예술분야의 역할이 증대되었고 따라서 민중문화운동 용어도 민중문 화예술운동, 민중문예운동으로 불리기도 했다. 민중문화운동의 확산에 있어 대학생들의 역할이 매우 중요했다. 민중문화운동에 참여한 반체제 지식인들은 친북적 성향으로 거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했지만, 대학생들의 활동은 민주화에 대한 순수한 열망으로 받아들여져 국민적 공감을 샀다. 반체제적인 운동은 대학가의 문화로 자리 잡아 사회주의 이념을 공부하는 소모임이 만들어지고 특히 연극반, 탈춤반, 농악반 등 전통연행예술 동아리는 이 같은 대학문화를 선두에서 이끌었다. 특히 매년 대학축제로 열리는 대동제는 군사정부에 대한 정치적 집회와 시위를 주도했다. 대학대동제는 역사 속에서 민중혁명으로 무참히 죽어간 희생자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켜 현실에서의 민주화 실현에 대한 결연한 의지, 현실 치유의 희망을 증폭시켰다. 민중의 희생을 환기하는 목적은 민중중심의 세상을 건설 해야한다는 당위성과 필연성을 공고하게하기 위함이다. 민중문화운동은 문화예술이 경제와 정치 분야의 투쟁을 보조하는 역할이 아니라 사회의 이념적 방향을 바꾸게 하는 정신적 가치라는 것을 증명했다. 결국 군사정권은 종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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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2019.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글은 G2(Group of Two)가 된 중국, 탈유교사회인 현대 중국에서 지식인들은 왜 유학담론을 이야기하며, 유학은 왜 부흥했는가에 대해 살펴보려고 한다. 21세기의 탈유교화된 중국 현대사회에서, 중국지식인들은 왜 100년 전에 그들이 폐기처분했던 공자와 유교문화를 신자본주의시 대인 21세기에 자신들의 새로운 ‘문명가치’로 내세우는가? 현대중국에서 유학은 왜 쇠락했는지, 21세기 오늘날의 중국에서 유학은 왜 다시 부흥하고 있는지, 이러한 ‘유학부흥 현상’을 가능하게 한 중국사회의 매커니즘은 무엇인지를 탐색해보고자 한다. 먼저 중국현대사에서 유학의 쇠락과정에 대해 고찰해보았다. 첫째, 신문화운동 시기에 전통은 무엇 때문에 거부되었는지, 둘째, 문화 대혁명 시기에 공자는 왜 비판을 받았는지를 검토한다. 이 글은 특히 문화연구(Cultural Studies) 의 방법론으로 G2가 된 중국에서의 유학부흥 현상에 대해 살펴보았다. 특히, 국가정책과 지식인의 유학담론, 경제발전과 공자학원의 설립, 대학과 당교(黨校)에서의 전통문화에 대한 교육이 제도권의 커리큘럼에 도입된 것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이러한 탐색을 통하여 탈유교화된 중국 현 대 사회의 정치문화 상황과 21세기의 중국에서 유교문화의 부흥은 중국이 꿈꾸는 국가의 미래 상과의 관계는 어떠한지를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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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2011.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paper analyses how cultural ideas come into play and affect the interpretation on a word’s very complex and layered meaning in Diwuyou(第五游) written by Yujin Sim(沈有鎭) in the Late 18th Century, the earliest systematic etymological Dictionary of Chinese Characters of Joseon period. Diwuyou contains 1552 main entries written in the "regular script"(kaishu) followed by “Seal Script”(xiaozhuan), and provides the interpretation of formation, meaning, structure, pronunciation, semantic change and some supplementary comments for each character. We think all dictionaries seem to provide neutral information, but to arrange and interpret various usages of a word consistently, a set of values and attitudes of their editors cannot help being included. However hard editors of dictionaries try to provide objective information, they cannot be value neutral: dictionaries involve both attitudes and values. The aim of the paper is, thus, to analyses and uncover the hidden consent of dominant ideas and value orientation of Yujin Sim’s age reflected in the interpretations of Chinese characters of Diwuyou. The consent was implicit or hidden because Sim tried to be systematic and consistent in his data collection method concerning brush strocks and make detailed records of origin and history of words. Then, defying the age-old tradition of Shuowenjiezi(說文解字), he defined the meanings of words in 18th century Korean contexts. But by reading Diwuyou more deeply, you can find that the content, methodology, and the very culture of Diwuyou were the product of such a dominant ideology of the age as “neo-confucianism” which drove ruling elites very critical against Buddhist doctrine in the 18th century, an approval of “a divinely sanctioned, hierarchical political and social order as a universal and cosmic order and admiration of the core values of peace, non-violence, harmony and modes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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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2003.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In such poems as “The Dialogue of Self and Soul” and “Vacillation”, the antinomies and oppositions which I have traced in the previous issue of this Journal develop in a very complex manner within the frame of such figures as “the sword” and “the tower”, “brand” and “flaming breath”, “burning leaves” and “green lush foliage moistened with dew.” And they are always posited as implying the antinomies of life and death, remorse and joy, body and soul, earthly life and heaven. In the process of vacillating between “extremities”, Self and Heart which figure not only the body but also the poet’s self declines Soul’s request to “seek out reality, leaving things that seem.” Even though Heart vacillates between antinomies, always looking towards what are opposites to itself, it chooses Homer and his unchristened heart as its example and determines to “live tragically.” By opposing the life of a Swordman to that of a Saint and receiving Homer as the figural example of his art, Yeats puts the foundation that his lyric should be understood as tragedy. “The Gyres” and “Lapis Lazuli”, two tragic lyrics composed in Yeats’s last years, embody his idea of the tragic lyric as well as his tragic world view. In “The Gyres”, the poet, invoking his muse “the old Rocky Face” to look forth and view the world’s overall collapse, “but laugh in tragic joy”. And in “Lapis Lazuli”, the tragic heroes of the Shakespearean tragedy are displayed as the opposing powers or qualities to “the hysterical women” of the modern world. In both of these poems, the poet’s tragic joy or exultation springs from the tragic vision that all things “fall and are built again.” The very eternal recurrence of the battle of antinomies and opposite forces is the source which enacts the poet’s strength and energy to exalt in the midst of despair. Therefore, we may be able to say that the poet’s magical aesthetic which is based on the absolute power of death and the tragic sense of life elevates his lyrics to the height of disruptive tragedy, letting the poet to enact tragic authority at the same ti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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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2002.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Most of Yeats’s works are composed of antitheses which are defined by their rhetoric, form, tone and thematic motifs. If the antitheses are Yeats’s central means of perceiving and interpreting the world, what kinds of experience are posited at the center of his life, and in what way and manner are his conceptions of “unity of being” and “unity of culture” connected with his experience of “tragic joy”? This essay attempts to approach the basic frame of Yeats's mind which perceives and interprets the world as composed of contraries, antinomies and antitheses. In such context, Yeats's idea and experience of tragedy are shown to be constructed ideologically in the situation that is divided by the two classes, namely the declining Anglo-Irish Protestant and the powerfully ascending Catholic middle classes. Yeats’s conception and experience of tragedy are connected with what Michel Foucault calls “the absolute power of death”. Yeats thinks that if the modern poet could enact the poetic authority, he should be able to embody the ancient forms of power. Hence his ideology of tragedy and authority which leads him to enact the oral tradition of ancient magical arts. Yeats thinks that, through the poetic mode of ancient magical arts, modern lyric poet can enact the absolute power of death, breaking the comedic power of modern individualism. Yeats's ideology of tragedy and authority, however, is in constant contradiction with “the life-administering power” of modern world. In spite of his desire to enact the tragic power of ancient bard, the space of his later lyrics remains the complex site of ideological conflicts between the residual forms of traditional Anglo-Irish culture and the dominant cultural forms of modern individualism. (The second part of this essay will be continued in the next issu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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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2020.06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본 연구는 한국사회의 ‘인정의 정치’의 일면을 교육감 선거의 공약 측면에서 관찰하고자 했다. 구체적으로, 2014년과 2018년 전국동시지방선거로 치러진 교육감 선거에서 어떤 후보 자가 다문화 관련 공약을 제시했는지 검토했다. 후보자 130명의 공약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결과, 다문화 공약은 후보자의 정치적 진영이나 출마 지역의 특수성을 떠나, 높은 당선 경 쟁력을 갖춘 후보자들을 중심으로 적극적으로 제시되어 온 경향이 관찰되었다. 이러한 결 과는 선거 후보자와 유권자를 ‘정치 시장’의 ‘합리적’ 참여자로 간주하는 ‘행위자 중심적’ 시각으로는 제대로 설명되지 않는 것이다. 대신, 후보자의 공약 제시가 상당한 정도로 ‘적 절성의 논리’에 따라 이루어질 가능성을 강조하는 ‘제도주의’ 가설과 부합한다. 교육감 선 거에서 다문화 공약은 높은 제도적 ‘정당성’을 갖춘 ‘적절한’ 정책 의제로서 주요 후보자들 을 중심으로 제시되어 온 것으로 보인다.
        15.
        2017.12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모바일은 새로운 커뮤니케이션 수단을 넘어서 일상이 되어가고 있으며 현대정치 문화에서도 모바일을 활용한 홍보는 필수적인 요인이 되어 있다. 많은 정치 후보자들이 선거 캠페인 문화 및 전략에 있어 모바일을 비중이 높은 홍보수단으로 활용하고 있지만 이에 비해 모바일을 활용한 정치 광고에 대한 연구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다. 특히 모바일을 활용한 문자메시지 홍보는 현대 정치 문화로 자리 잡아 가고 있으며, 이에 따라서 좀 더 정교하고 유권자들의 호감을 이끌어낼 수 있는 모바일 메시지 활용이 필요한 시점임을 알 수가 있다. 본 연구는 이러한 배경 하에 모바일을 활용한 정치 후보자들의 문자메시지에 대한 인게이지먼트 요인들이 유권자 반응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고자 연구를 진행하였다. 기존 선거에 사용되었던 문자메시지를 수집 분석해 상호 이해형, 조작형, 정보 전달형으로 나누고 선거권이 있는 전국 남녀 120명을 통해 인게이지먼트 속성(만족, 유익성, 주목성)이 유권자 반응에 미치는 영향을 서베이를 통해 분석해 보았다. 분석결과 첫째, 상호이해형 메시지에서 후보자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만족과 유익성이고 투표의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만족인것으로 나타났다. 둘쨰, 조작형 메시지에서는 만족과 유익성 요인이 후보자 태도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고 투표의향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은 만족과 주목 요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셋째, 정보 전달형 메시지에서는 만족과 유익성 요인은 후보자 태도에, 만족과 주목성 요인은 투표의향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따라서 인게이지먼트 요인이 메시지 유형별로 유권자 반응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연구는 효과적인 메시지 운용 전략을 펼칠 수 있으며, 한 두표 차이로 당락이 결정되기도 하는 선거에서 향후 더 발전적이고 정교한 선거 캠페인 문화에 실무적 시사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16.
        2014.01 KCI 등재 서비스 종료(열람 제한)
        18세기 유럽은 프랑스, 영국 그리고 오스트리아와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새로운 정치패러 다임이 등장했다. 1701년 브란덴부르크 선제후는 프로이센 왕국을 건설하고 프리드리히 1세 가 되었다. 그리고 그의 뒤를 이어 프리드리히 빌헬름 1세와 프리드리히 2세는 프로이센을 유럽의 강국으로 만들었다. 베를린 궁정의 음악은 각 왕들의 정치관과 국가의 경제, 그리고 성장기에 경험한 심리적 영향으로 다양하게 변화 발전했다. 그중 음악문화 발전에 크게 공헌 한 사람은 프리드리히 2세였다. 그의 통치아래 프로이센은 최강국으로 성장했고 문화가 크 게 발달하였다. 음악문화 발전을 위해서는 국제정치가 안정되고, 국가 경제가 부흥해야 함을 프로이센의 음악후원의 변화가 잘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