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청말민초(清末民初) 서예가 야오망푸(姚茫父)의 비 파(碑派) 서예에서의 예술적 성취와 혁신을 탐구하였다. 야오망 푸는 명청시대 귀주(貴州) 문화 발전의 배경 속에서 독학과 깊이 있는 모사를 통해 한비(漢碑)와 예서(隸書) 등 전통 예술의 정수 를 융합하여며 독창적인 서예 스타일을 점차 형성해 나갔다. 그 의 서예 작품은 전서와과 예서의 필법을 핵심으로 하여 짙은 금 석(金石)의 기운과 소박하고도 안정적인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독 특한 시대적 운치를 담고 있다. 야오망푸의 서예는 단순히 기법 에 그치지 않고, 작품을 통해 사회 변혁에 대한 이해와 응답을 표현하여 문인으로서의 책임감을 드러냈다. 예술적 교류 측면에 서는 제백석(齊白石, 1863-1957), 천스쩡(陳師曾) 등 동시대 유 명 인사들과의 협력과 공명을 통해 그의 서예 예술 스타일은 더 욱 다채로워졌다. 또한, 야오망푸는 서예, 전각(篆刻), 그리고 새 김 동각(銅刻) 예술을 결합하며 비파 서예의 표현 방식을 확장시 켰다. 이를 통해 그는 전통과 현대의 독특한 융합 및 탐구 정신 을 구현하였다. 비록 질병에 시달렸지만, 그는 창작을 멈추지 않 았으며, 굴하지 않는 의지로 풍부한 예술 유산을 남겼다. 야오망 푸의 작품은 비파 서예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넣었을 뿐만 아 니라 후대에 전통의 계승과 혁신이라는 귀중한 모범을 제공하였 다.
평보 서희환은 한글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판본 고체형식에 서 미학성을 발견하고 한자 서예의 원리와 자신의 창작 경험을 바탕으로 고풍스러우면서도 질박한, 이른바 ‘평보체’를 이루었 다. 본 논문에서 평보 서희환의 한글서예를 조형예술의 보편적 조형 요소와 조형 원리를 적용하여 서희환 한글서예의 성취와 한계를 고찰하였다. 본론에서는 조형예술에 속하는 서예를 한글과 한자의 구조와 서예 양식 등을 조형예술의 원리에 적용하여 한글서예의 장점 과 한계를 고찰하였다. 한글과 한자의 구조적 차이로 인하여 서희환이 모범으로 적용하려고 했던 한자서예 양식을 한글서예 에 적용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는 부분이 있음을 밝혔다. 서희환 역시 서예의 유일한 조형언어인 필획(筆劃)만으로는 스스로 이상 으로 삼은 한글서예를 완성하기 어려움을 인지하고, 유동(流動) 하는 형태적 공간의 조형을 택하지 않고, 필획의 질감을 위주로 한 정지된 공간 조형을 구축하였다. 그래서인지 서희환은 “절제 된 단순성과 소박한 무욕 내지는 순수성을 추구하여 획이나 필 력의 개념도 힘의 논리가 아닌 질김의 논리로 이해하려고 하였 다. 그래서 오히려 한글서예의 독창성을 이루었을 소지가 있다. 서희환의 한글서예는 결국 線的서예에서 點과 面의 조합으 로 구축한 ‘고정적’인 성질로 진행되었다. 또 서희환이 추구한 절제된 단순성과 소박한 무욕, 질김, 수졸의 천진이나 질박의 원시성, 무념의 경지에 도달하기 위해서 거친 질감을 내는, 금 석기 있는 선질과 평면적 구조로 진행되었다고 여겨진다.
서예는 중국 문화의 영향 관계 속에서 문자의 아름다움을 예 술적으로 표현한, 중국 고유의 전통 예술이다1). 한자는 노동하 는 사람들이 사물을 기억하기 위해 그림으로 시작하여 수천 년 에 걸쳐 오늘날의 문자로 발전하였다. 현대의 서예는 글을 쓰 는 도구일 뿐만 아니라 중국 전통문화를 전파하는 중요한 수단 이기도 하다. 디지털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함께 중국 전통문 화의 계승과 보급은 새로운 도전과 기회에 직면하고 있다. 오 늘날 디지털 문화 전달자로서 비디오 게임은 문화 전파를 위한 혁신적인 방법을 제공한다. 컴퓨터 기술의 지속적인 발전과 대 중화에 따라 비디오 게임도 발전하고 성장하며 점차 글로벌 문 화 현상으로 자리 잡고 있다. 이 논문은 비디오 게임 디자인에 서 서예의 요소를 분석하고자 한다. 새로운 서예 커뮤니케이션 방식이 서예 교육에 미치는 영향과 현대 과학 기술의 급속한 발전 시대에 서예과 비디오 게임을 통합하는 방법을 분석한다. 본 논문에서는 첫째, 문헌 연구 방법을 통해 서예와 비디오 게 임의 개념과 그 관계를 이론적으로 정리하고, 둘째, 서예와 비 디오 게임의 결합이 서예의 보급과 서예 교육에 미치는 영향을 “검은신화(오공)”과 “왕자영요”라는 두 비디오 게임의 사례 연 구 방법을 통해 분석하고자 한다.
서예는 중국 민족의 오랜 전통 계승되어 온 예술 형식 중 하 나로, 한자 서예 예술의 집약적인 표현이다. 서법은 복잡하고 다양하며 변화무쌍한 예술로써 중국 전통 문화의 사상과 관념 을 깊이 융합하여 독특한 민족적 멋을 보여 주고 있다. 고대부 터 현재까지 서예는 수많은 문인과 묵객들의 사랑을 받았을 뿐 만 아니라, 제왕 및 백성들로부터 널리 애호되어 왔다. 한자가 지닌 상형성과 추상성의 특징은 서예 창작에 끊임없는 영감과 창의성을 제공해 준다. 저수량(褚遂良)의 해서(楷書)스타일을 탐구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한편으로는 저 수량 해서 스타일의 서학과정과 각 시기의 서예 특징을 깊이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며, 저체(褚體) 해서의 연습과 창작에 대 한 지침을 제공한다. 본 논문을 저수량 서예의 정수를 파악함으로써 학습자가 그 기법을 더 효과적으로 흡수하고 자신의 서예 수준을 향상시키 고자 한다. 이는 해서 학습자에게 특히 중요하며, 특히 현재 서 예 교육이 점점 더 주목받고 있는 시대적 상황에서 저수량 해 서 필법의 다양한 변화와 뛰어난 필치는 초심자에게 이상적인 모범이 된다고 할 수 있다. 저수량의 창작 스타일과 작품을 깊 이 이해해야만 그 속에 담긴 서예의 핵심을 파악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는, 저수량의 서학과정과 서예사적 의의를 연구 함으로써 초당 해서 체계의 구성 과정과 그 배후의 문화적 원 인을 더 정확하게 정리할 수 있다. 이는 서예사 연구에 있어 중요한 가치를 지니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대 서예 교육 이론 과 실천에도 유익한 참고자료를 제공한다.
손중산(孫中山)의 서예 작품의 대필 현상은 학계의 관심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이전 연구에 따르면 대필자로는 전동(田 桐), 전항(田桓) 형제 및 왕정위(汪精衛) 등이 있다. 손문이라고 낙관되어 있는 서예인 <동덕서보사(同德書報社)>, <음화식덕 (飲和食德)>와 같은 먹으로 쓴 흔적은 손중산의 작품과 상기에 서 언급한 대필자들의 작품과 확연 다르다. 남궁체(南宮體)의 서예가 뚜렷한 이들 작품을 다시 분석하여 필자가 누구인지를 밝히는 과정 및 탐구할 필요한 실정이다.. 상기 언급한 작품의 시대와 서예적 특징을 기반으로 단서는 모두 악주(鄂州)의 장유쇠(張裕釗) 가문을 가르키고 있다. 장유 쇠는 청나라 말엽 중국서단에서 명성이 높았고, 대표작으로는 <중수남국현학기(重修南宫县学记)>비 등이 있으며, 후세 사람 들로부터 남궁체(南宮體)라 불리웠다. 장씨 후손 중 서예에 가 장 뛰어난 사람은 손자 장효이(张孝栘)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일찍 일본 유학 중 동맹회(同盟会)에 가입하여 학생운동의 중 요한 인물로서, 진보적인 간행물을 창간하고 여러 잡지와 서적 간행물 제목을 쓰기도 하였다. 장효이는 귀국 후 줄곧 손중산 을 따라 혁명 활동을 하였으며, 민국 정부의 사법 계통에서 중 요한 직책을 맡았다. 악주 장씨 서예 가문과 많은 제자 중 장효이의 생애와 필사 의 특징은 상기 서술한 대필 작품의 시대적 배경 및 서법 스타 일과 맞물려 있으며, 이런 계열의 작품들이 모두 장효이의 대 필소서라 추정된다. 이 연구는 민국 서예사 연구를 풍부하게 하고, 장효이 서예 연구의 공백을 메우는 데 도움이 되며, 이론 및 실제적 의의가 있다.
본 연구는 중국 노인 고혈압 환자를 대상으로 서예 활동을 통해 정신건강과 생활만족도에 미치는 영향을 검증하였다. 분 석은 IBM SPSS Statistics 25를 이용하였다. 먼저 실험 전 실 험군과 대조군의 차이를 살펴보기 위해 독립 표본 t-검증을 실 시하였다. 다음으로, 실험 후 실험군과 대조군의 차이를 살펴보 기위해 독립 표본 t-test를 실시하였다. 검증결과 서예 활동은 노년층 고혈압에 정적인의 영향을 미치고, 노년층 고혈압 환자 는 서예 활동을 통해 우울증, 스트레스, 삶의 만족도에 정적의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결과는 서예 활동의 영향을 이해하기 위한 이론적 근거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고령 고혈압 환자에게 여가 활동을 위한 방법을 제공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아울러 이번 연구를 통해서 서예활동이 노년층 고 혈압 환자의 우울증 완화, 삶의 스트레스 완화, 삶의 만족도 등 구조적 관계를 확인시켜 정성적 연구의 단점을 보완하고자 하 였다. 더불어 서예 활동의 역할을 이해하면 고혈압 환자의 노 년 생활에 의미 있는 여가 활동을 제공하고 더 많은 고혈압 환 자가 심리적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 라 사료된다.
본 논문은 평보(平步) 서희환(徐喜煥, 1934-1995)의 독특한 한글 서체가 형성된 과정에 관한 연구이다. 주지하다시피 평보 서희환은 독창적인 서체로 현대 한글 서예사에 커다란 발자취 를 남긴 인물이다. 우리는 흔히 그의 글씨를 ‘평보체’라 부른다. 그렇다면 그의 이러한 서체는 어떻게 창신 되었으며 어떠한 사 상적 배경에서 출발하였는지에 대한 의문이 생긴다. 이에 그 내력을 밝혀 한글서예의 창의적 미감을 확장시키는 것이 본 연 구의 목적이다. 평보는 훈민정음의 각판본(刻版本)에서 한글서예의 뿌리를 두고자 하였다. 그중에서도 특히 석보상절과 월인천강지곡에서 한글서예의 원형을 찾고자 하였다. 아름다운 원형의 조형에 전·예(篆·隷) 필획(筆劃)의 생동감을 불어넣어 판각의 과정에서 오는 필획의 망실을 복원하였다. 이를 위해 평보는 글씨의 연 원(淵I)에 관한 연구와 갑문(甲文), 석문(石文), 한예(漢隷), 북 위서(北魏書) 등 한문서예 전반에 걸친 서체들의 생동미를 한 글에 접목시키는 일을 중시했다. 즉 한글서예가 호방하고 생동 감이 넘치며 문기(文氣) 어리고 신운(神韻)이 감도는 경지까지 끌어올리는 것을 일생의 과업으로 삼았다. 구체적으로 평보 서작의 방법론이자 창신의 개념인 ‘수파리 (守破離)’를 통하여 동일 작품을 시대별로 분석함으로써 평보체 의 형성 과정을 고증하였다.
조선 후기 연행사는 청나라 문인들과 필담을 하거나 간찰을 보냈으며, 서예 비첩을 감장(鑒藏)하거나 금석학 교류활동을 활 발히 전개하였다. 본 연구는 이계 홍양호 『이계집』과 관암 홍경모 『관암전서』·『운석외사』에 기록된 서신, 제발, 서문 등을 확인하여 청대 문인 대구형, 기윤, 섭지섭과의 서예 교류 를 주요 연구 범위로 설정하였다. 위 문집과 『동문신교척독 책』과 『두남신교첩』자료를 활용하여 저서, 비첩, 서찰 교류 측면에서 고찰하였다. 또한 홍양호와 홍경모의 학서 소양, 금석 고증 능력, 비첩 감장 원칙을 논술 및 분석하여 교류 의의를 도출하였다. 홍씨 가문은 양국 문인의 가족적인 서예 교류의 대표적 사례이자 견고한 학문적 토대 위에서 진행된 교류를 의 미한다. 양국의 문인들은 필담을 통해 고금의 서예, 금석 학술 에 대해 전면적이고 심도 있는 토론을 전개하였다. 이러한 다 층적인 문화교류는 한·중 서예문화의 발전을 촉진하였다는 점 에서 그 의의가 있다.
본 연구는 캘리그라피가 노인의 우울과 고독감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내러티브 연구이다. 현재 노인을 대상으로 한 캘리그라피 활동 연구가 미미하다. 그러므로 노인의 심리 치 유를 위한 방법으로 접근해 볼 필요성이 있다. 연구 목적은 우울과 고독감을 가진 노인의 정서 치유에 도움을 주는 기초자료가 되고자 한다. 연구 참여자는 우울과 고독감을 호소하 는 67세의 여성 노인이다. 참여자에게 캘리그라피 활동을 2023년 5월부터 8월까지 총 10회기 실시하였다. 자료 분석은 내러티브 탐구 수행 절차에 맞추었고, 정량적으로는 우울과 고독감을 측정하였다. 본 연구의 결과는 첫째, 참여자의 아픔 은 신체적 통증과 우울과 고독감이었다. 둘째, 참여자의 아픔 의 원인은 선천적인 연약함과 노화로 인한 만성적 통증과 남 편과 자녀의 죽음으로 상실에 따른 우울과 고독감이었고 그 로 인한 사회적 고립이다. 셋째, 캘리그라피 활동에 대한 효 과는 참여자의 표정이 밝아졌고, 상실에 따른 고독과 우울감 이 감소 되었으며 삶에 긍정적인 변화가 있었고 자존감이 상 승 되었다. 넷째, 참여자의 우울과 고독감은 감소하였다. 결론 적으로 캘리그라피 활동은 노인의 우울과 고독감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서예의 미적 패러다임은 근본적으로 사회적 변화에 기초한 다. 현대의 서예는 현상적 측면에서 볼 때 창작의 영역에서 전 통과 다른 풍모와 특징을 나타내고 있다. 특히 인간만의 영역 이었던 서예 예술의 탄생 과정이 AI 서예 로봇이 등장하면서 혼란을 맞고 있다. 현재로선 AI의 서예 창작을 예술로 인정하 기 힘든 분위기지만 급변하는 과학기술의 발전은 미래의 서예 에 대한 추세를 예측하기 힘든 실정이다. 21세기의 서예는 현 대화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과학은 물론 사회학적 요소가 매우 강조되고 있다. 이는 과거의 전통 서예와 다른 형식의 미학적 메커니즘이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전환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 대 서예의 가장 큰 특징은 다원적 시각화 경향이다. 이 이면에 는 서예 미학에 대한 인식의 변화 및 새로운 창작의 형식과 관 련된 문제들이 존재한다. 현대 서예의 창작적 성향은 과거보다 더욱 실험적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다. 이에 서예의 심미적 가치 기준이나 그 미학적 특색을 가름하기는 쉽지 않다. 본고에서는 현대 서예의 변화 과정을 좀 더 체계적으로 규명 하기 위해 서예학 분야의 새로운 패러다임(Paradigm)을 제시하 였다. 현대 서예의 발전과 변화는 결코 서예 예술 내부의 자율 성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새로운 미적 패러다임의 발생은 필연적으로 사람이 중심이 되는 예술사회학의 각도에서 탐구해 야 한다. 진정한 의미의 현대성이란 시간의 개념이 아니라 현 대의 서예가 고대와 다른 새로운 미학적 규범의 전환을 의미한 다. 다만 오늘날 서예의 현대화 과정에서 대두되는 시각적 경 향은 이미 많은 대중들에게 환영을 받고 있지만, 아직까지는 서예계의 공통된 신념으로 정착되었다고 단언할 수 없다.
Among the silk manuscripts unearthed from Mawangdui No.3 Han dynasty Tomb, there are two pieces of silks record the literature which relate to Yi. One of them records Zhouyi and Ersanziwen, and the other one records Xici, Zhong, Yao, Miuhe and Zhaoli. Many scholars believed that the two silk manuscripts were written by the same writer. After comparing plenty of characters, we found that the fonts of these two silk manuscripts have obvious differences in components, strokes and structures. Therefore, we believed that these two manuscripts are probably not be written by one person. Moreover, there still remains controversy about the age of the master copies of these literatures which relate to Yi. After analyzing some special characters and words in these literatures, we speculated that the master copy of Xici which was written earlier than the Qin Dynasty, is influenced by the Chu characters of the Warring States and written by seal-clericle script. The languages of some part of Yao and Miuhe are obviously influenced by Qin dynasty’s language using habits.
본고는 역사학, 도상학, 서예학적 관점에서 공의석굴(鞏義石 窟)의 북조시기 조상제기(造像題記)를 심층적으로 고찰했다. 특 히 조상제기의 내용에 치중한 선행연구와 달리 조상제기의 필 법, 결구, 장법, 풍격 등에 대해 전면적이고 상세한 분석을 진 행해 다음과 같이 객관적으로 유의미한 결론을 도출해 냈다. 먼저, 본고는 역사적 분기와 조상제기의 구체적 특징을 종합 적으로 고찰해 공의석굴의 북조시기 조상제기를 단순히 역사적 분기로 구분한 선행연구의 한계를 극복하고 조상제기의 서풍에 대한 분석을 처음으로 진행했다. 둘째, 공의석굴은 지리적으로 특수한 위치에 있어 북조시기 조상제기의 서풍에서 다원적이고 다층적인 양상을 발견할 수 있다. 즉 여러 왕조의 교체, 문화의 다원화, 지역적 특성과 같 은 요소가 작용해 서풍의 다양성을 표출하고 있음을 증명했다. 셋째, 공의석굴의 북조시기 조상제기에서 위비체(魏碑體)는 줄곧 주류를 차지했고, 동시에 주변의 다양한 요소들을 받아들 여 탈중앙화 경향이 강하게 표출해 예술적 가치가 높은 서풍을 구현해 냈다. 마지막으로, 공의석굴 북조시기 조상제기의 필법, 결구, 장법, 풍격을 치밀하게 고찰해 다소 소박하지만 천진난만한 조상제기 의 서풍을 규명해 냈다. 당시 유행한 복고풍의 예서, 남조 서풍 의 영향 등으로 인해 장엄한 ‘낙양체(洛陽體)’나 연미한 남조의 ‘이왕(二王)’과는 구별되는 공의석굴 만의 지역적 자연미를 표 출하고 있음을 객관적으로 정리했다.
본 연구는 東晉의 王羲之(303-361)가 쓰고 宋人(米芾(1051-1107)로 추정)이 편찬한『草訣 百韻歌』에서 시작한다. 기존 歌訣 해설과 다르게 본 연구는 전통 이론과 실제 붓을 잡고 쓴 경험을 바탕으로, 宋人이 가결을 통해 후학에게 전달하고자 했던 초서의 요체를 새롭게 밝히고 자 한다. 이로써 전통 이론 중, 초서에게 부여된 ‘積其點畫, 乃成其字’, ‘草以點畫為情性, 使轉 為形質’과 같은 간단명료한 원칙의 의미를 더욱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초서 문자 구조에 잠재된 변화규칙과 초서의 ‘連綿’, ‘游絲’의 추론과 설명 방식을 고찰할 것이다. 이는 초서 문자의 해독과 초서 문헌의 이해할 수 있게 한다는데 의의가 있다. 본 연구의 방법 및 과정은 크게 4가지로 구분된다. (1) 『草訣百韻歌』 중 간략하게 서술된 초서 변화의 요체를 해석하고, 점을 찍는 것에서부터 선을 연결하고 문자를 구성하는 기본 ‘結字 法’을 상세하게 분석한다. ‘圓筆’, ‘潤筆’, ‘渴筆’, ‘轉筆’ 등의 필법이 포함되며, ‘楷’에서 ‘草’로 전개되는 과정에서 문자의 틀과 필획의 구조 변화도 설명한다. (2) 초서에서 가로획과 세로획의 교차 운용 법칙을 상세하게 분석하고, 나아가 ‘撇捺改筆’, ‘戈法變換’ 등 획과 선의 배치, 한자 구조의 변화 등도 아울러 분석하고 논한다. 이는 초서 쓰기, 읽기, 이해에 이론적이고 과학적 해결법을 제공할 것이다. (3) 초서 章法의 기본을 해석하고 초서 필획 중 虛・實의 분배와 운용 및 ‘計白當黑’, ‘意連形連’과 같은 필획 구성의 요체를 고찰한다. (4) ‘連綿’을 재구조화하고, 초서의 점과 획의 변화 규칙을 활용하여 ‘連綿’, ‘游絲’의 필법 원리를 해석한다. 또한 고문헌의 해석에 응용하여 ‘龍蛇競筆端’에 포함된 초서로 쓰인 한자의 수수께끼를 풀어낼 것이며, 이로써 초서 筆法字學 학습의 중요성과 그 가치를 밝힌다.
본 논문은 朝鮮王朝實錄을 기초 자료로 삼아 15세기 명나라 사신의 서화 교류의 구체적인 발생 양상을 분류하여 정리하였고, 題畫詩및 題 跋⋅記文등 문헌 자료에 근거하여 서화 교류가 문학 교류⋅우호 외교⋅ 문화 수출 분야에 담당하였던 역할을 밝혔으며, ‘朝中文化交流史’ 및 ‘東 亞藝術史’의 각도에서 15세기 명나라 사신의 서화 교류의 특징과 의미를 고찰하였다. 우선, 15세기 朝鮮使行중 서화 교류의 구체적인 발생 양상은 주로 作 畫留書⋅禮物贈受⋅請書請畫세 가지로 분류된다. 일부 書畫에 능한 명나라 사신은 朝鮮을 방문하는 동안에 서화의 재능을 펼쳐 적극적으로 서화 교류에 나서는 동시에 조선 문인과 詩文唱酬를 진행하기도 하였다. 서화 교류의 결과물, 즉 그림과 글씨는 詩文唱酬의 대상이 되었고 한시는 당시 서화 교류의 형태를 기록하였다. 15세기 명나라 사신은 양국의 우호 관계를 증진하고 문화적인 공동체 의식을 강화하는 데 목적을 두고 서화를 선물하곤 하였다. 명나라 사신은 귀한 선물을 사양하면서 조선왕실에서 증여한 書簇⋅畫簇⋅法帖⋅書帖등 서화 선물을 흔연히 받 아드렸다는 기록도 서화 교류의 융통성을 보여주기도 하였다. 또한, 명나라에서는 조선 서화에 대한 생기면서 명나라 사신은 조선왕실에서 적 극적으로 조선 서화를 청탁하기 시작하였다. 15세기 명나라와 조선 간의 서화 교류는 보편성과 편의성을 가지고 있다. 詩文唱酬를 진행하는 데 참여 인원이 높은 문학적인 수준을 갖춰야 한다는 상황과 달리 서화 교류는 쉽게 접할 수 있는 교류 방식이라 할 수 있다. 따라 많이 배우지 못한 명나라 內史⋅少監도 禮物贈受⋅請 書請畫의 방식을 통해 서화 교류에 많이 참여하였다. 한편, 서화 자체의 특성(휴대성, 적당한 가격, 예민한 문자가 없음 등)은 선천적인 편의성을 가지게 되었다. 따라서 명나라 사신은 비공식적인 자리에서 친한 조선 관원에게 서화를 선물로 하여 우호 관계를 추진하면서 서로 부담이나 불편함을 느끼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朝⋅中문화 교류사’ 및 ‘동아시아 예술사’의 시각으로 볼 때 15세기 朝鮮使行중 발생한 서화 교류는 새로운 ‘畫題’⋅畫法을 도입 하여 15세기 조선 畫壇에 중요한 영향을 끼쳤고, 16~17세기 朝⋅明간 활발한 서화 교류의 성황을 위해 토대를 마련하였다.
본 논문은 역대 서론에 나타난 품평의 개념과 그 내면의 미학적 가치를 분석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다. 역대 서가 들은 서예를 품평하는데 격조, 자연, 대비 등의 방법을 통 해 간결한 언어와 생동감 있는 비유법을 많이 사용하며, 말로 전달하기 어려운 서예적 특징에 대해 깊이 묘사하고 있어 많은 여운을 남기고 있다. 품평의 등급에서는 먼저 ‘능품(能品)’은 필묵의 기교, 필법, 묵법, 결구, 장법 등이 정통함을 뜻하지만 ‘묘품(妙品)’ 보다 서가의 독창적인 개성미, 풍격미, 자연미, 정서미가 확연하지 않으며, ‘신품(神品)’과 비교해 ‘능품’의 서가는 천부 적인 재능이 부족하고 ‘일품(逸品)’에 비해 정취가 부족함을 뜻한다. ‘일품’과 ‘신품’은 모두 서예의 가장 높은 등급으로써 ‘일 (逸)’은 비교적 노장철학의 무위(無爲) 사상과 가까우며, ‘신(神)’은 비교적 공자철학의 중화사상에 가깝다. 기법 중시의 ‘신품’은 마음이 하고자한 바, 법도를 넘어서지 않는 것이고, 기법을 초월하는 ‘일품’은 자연의 묘와 같은 것이다. 따라서 ‘일품과 신품’은 모두 서예의 최고 형식이지만 ‘신품’이 ‘일품’ 보다 낮다고 보는 이유는, 인위적인 흔적이 그래도 존재하기 때문에 아래에 두고 평가한 것이다.
서예는 중국의 개혁 개방 이후 여타 예술 분야보다 매우 발 전되었다. 특히 서예교육은 인생의 궁극적 목적이 ‘세련된 인 격’ 실현이라는 전통적 사상과 현대적 의미를 달성하는데 효능 이 있다는 생각으로, 정부에서는 초ㆍ중ㆍ고등 교육과정에 서 예를 필수과목으로 선정하여 진행하고 있다. 이러한 목적을 실 천하는 과정에서 ‘기능’을 위주로 한 서사교육 방식으로 진행되 면서 ‘예술교육(美育)’의 핵심인 상상력과 창의성이 결여되면서 학생들의 ‘흥미성’을 잃고 있다. 이렇게 흥미 없는 기술 반복 교육은 ‘美育’의 궁극적 목적인 ‘세련된 인격’ 완성에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본 논문에서는 다양한 심미전달 방법을 통하여 흥미 로운 상상력과 창의력을 계발하여 ‘美育’이 ‘흥미’를 통해서 ‘도 덕’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중국 전통 사상인 ‘善美一體’를 실현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였다.
Ya-Bing Wang’s Ink Rhyme is a contemporary dance that interprets the essences of Chinese calligraphy art. The dancers depict the Chinese characters through the movement of their bodies, and each movement reflects the energy and power of strokes and structures. The dance manifests that ‘Life of Ink Rhyme’ is the ‘life of artistic conception of painting’, as well as the ‘life of dance art’. The dance creations of Ink Rhyme reflect upon the learning of traditional Chinese calligraphy. Besides the writing of the characters, the humanism and art contained within the dance could be applied to the development of creative design, thus facilitating cross-domain integration. Between the traditions and innovations, the philosophical thinking of cultural insights can incorporate new media, and deliberate over the display of contemporary diversity in the art of Chinese calligraphy.
본 논문은 중국서화의 사회적 문제를 역사와 문화, 그리고 서화의 관점에서 검토하였다. 첫째, 서화는 사회성이 있다. 중국서화의 사회 성이란 중국서화가 갖고 있는 사회적 기능을 내포하는 것을 말한다. 즉 중국서화는 사회생활의 구성부분으로서 사회생활의 각 방면에 존 재하며 사회생활의 모든 면에 영향을 준다. 중국서화의 사회적 구현 은 기본적으로 중국인들의 사회생활은 서화를 떠날 수 없고 서화는 사회생활의 각 방면에 존재하며 서화는 중국인들의 이상과 신념의 추구를 충분히 표현하고 있다. 이 글은 이어 ‘진인상운’ㆍ‘당인상법’ㆍ ‘송인상의’ㆍ‘원명상태’ㆍ‘청민상변’ㆍ‘현대인상신’ 등 서화의 사회적 특 징을 분석했다.
이 글에서는 서화가 사회성으로부터 갖는 서화의 사회적 영향력을 논술하였다. 예를 들면 서화는 중국사회에서 여론 선도의 중요한 매 개체로 전면적으로 개입시킨 사회생활의 여러 차원이며, 서화는 중국 인들의 정신적인 수양을 쌓게 되고 또 하나는 한자를 매개체로 한 예술로써 중국과 세계 문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글은 서화의 미래를 향한 사회적 영향을 강조하여 미래 서화 활동을 더욱더 중국 사회 각 차원에서 전면적으로 전개되고 중국 서화를 더욱더 꽃피우 게 하는 면을 북돋우며 전통과 현대를 통하여 중화민족과 세계를 아 우르는 공통적인 문제와 개성을 융합한 방향으로 발전하고 더 나아 가 세계 중화문화의 국제적 영향력을 형성하게 될 것이다.
고구려ㆍ백제ㆍ신라 삼국시대는 한국 서예의 시작점이다. 그 중에 고구려는 중국과의 교섭에서 비교적 일찍 한자문화를 받아들이고, 민족의 심미관을 융합해 자신만의 풍격을 갖춘 서예를 형성하였다.
고구려는 동북아의 강국으로서, ‘지역 문화 거점’ 역할을 하여서 신 라ㆍ백제ㆍ일본의 서예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었다. 멸망한 후에도 고구려 서풍이 여전히 통일신라시대와 일본에 부분적으로 지속되었 다. 당나라에서 돌아온 귀족과 그 자손들은 여전히 ‘구양순체(歐陽詢 體)’를 숭상하였는데, 유민 묘지명에 대부분 구양순체의 풍격으로 이루어졌다.
고구려 서예의 대외교섭을 연구하는 것은 한국서예 대외교섭의 시 발점이며, 한국서예 연구의 기초 작업이기도 하다. 나아가 이를 바탕으로 삼아 한국서예의 대외교섭에 관한 다양한 연구가 이루어진다면 보람이 될 것이다.
본고는 당나라 서예가 겸 서예이론가인 손과정이 직접 짓고 쓴 『서보 (書譜)』에 나타난 심미관을 살펴 그의 서예미학사상을 고찰하는데 있다. 손과정은 동진(東晉)시대 왕희지와 왕헌지의 필법을 얻은 서예가로 특 히 초서에 가장 뛰어났다. 더욱 그의 진적인 『서보』는 뛰어난 초서작 품인 동시에 내용에서도 박식하고 고상한 문장으로 서예이론뿐만 아니라 당시의 미학저작에서도 불후 걸작이라 칭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서예로 서의 예술 가치를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론으로서도 매우 가치 있 는 명작이다. 『서보』는 서예의 원류를 비롯하여 각 서체에 대한 기능과 특징, 그 리고 서예를 배우는 태도와 수양을 논술하고 있다. 특히 글씨 쓰는 기본 기법과 서예의 창작 경험들을 총괄하고 있다. 그는 서예의 골기(骨氣)에 있어 ‘양강(陽剛)의 아름다움’과 ‘음유(陰柔)의 아름다움’을 말하고, 의 (意)와 세(勢)의 통일을 말한다. 그리고 충화미(沖和美) 등으로 예술심미 를 논술하고 이들을 ‘도(道)’의 차원에 이입시키고 있다. 그러므로 손과정의 미학사상은 강하고 부드러움의 조화로 유가와 도가 의 서로 보완된 철리(哲理)가 내재되어 있다. 다시 말해서 유가의 “강건 유위 자강불식(剛健有爲, 自强不息)”과 도가의 “청정무위(淸靜無爲)”가 그 의 사상 저변에 깔려 있다. 그래서 손과정의 사상은 그의 서예에 나타난 ‘강하고 부드러움(剛柔)’을 함께하는 심미이상과 부합함을 알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