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서 공용중인 시설물은 총 172,111개로 집계되고 있으며, 그 중 교량은 34,199개로 사회 기반시설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러한 교량은 공용하중, 온도, 습도 등에 의해 거더간 신축 량이 발생하게 되고 신축량 발생으로 인한 유간거리에 대해 차량의 통행 안정성 및 주행성 확보를 위 한 신축이음장치를 설치하게 된다. 신축이음장치를 설치하여 차량의 통행 안정성 및 주행성을 확보할 수 있지만 누수 및 퇴적물 낙하 등을 직접적으로 방지하지 못하여 고무지수재를 별도로 설치하게 된 다. 하지만 이러한 고무지수재는 다양한 원인에 의해 쉽게 손상이 발생한다. 손상된 고무지수재를 통 해 거더의 부식, 교량하부 인명사고 등 다양한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피해방지를 위한 교량의 유지관리를 지속적으로 수행하고 있지만 고무지수재 특성상 지속적인 교체가 불가피한 실정이다. 따라 서 본 연구에서는 기존 신축이음장치에 활용되는 고무지수재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초탄성 형 상기억합금을 활용한 새로운 지수재 개발 연구를 수행하였다. 이에 대해 초탄성 형상기억합금 지수재 와 고무지수재에 대한 유한요소해석을 수행하고 비교 및 분석하였으며, 하중 제거 후 원형으로 복원되 는 효과를 통해 지속 사용 가능한 지수재 연구를 검증하였다.
예술적 창작의 혁신을 추구하기 위하여 현대의 인장 조각가 들, 그리고 인장 전시관의 시각적 효과를 위하여, 전통적인 한 인장과 고대의 인장 인쇄에서 일부 경험이 많고 재능 있는 인 도인들이 현대의 인쇄 플랫폼에서 새로운 창조적 양식을 탐구 하기 위하여, 도자기 인쇄의 제작 과정과 인장 조각 작품이 제 시하는 정신은 인도인들의 내면적 추구가 추구하는 창조적 변 혁과 일맥상통하여, 인장 조각 예술의 아름다움과 장인 정신의 재미를 강조하고 있으며, 바로 이러한 미적 필요성이 인장 조 각의 새로운 모습을 촉진하는 것입니다. 도자기 인쇄는 두 개 의 캐리어로 구성되어 있는데, 하나는 도자기이고, 다른 하나는 인장이고, 뛰어난 인장 조각가들은 제작에서 점토 선정, 낙하, 모양내기, 주화 만들기, 인쇄면 인장, 글레이징, 소성의 과정을 개인적으로 느낄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행위로부터 원료와의 접촉을 진정으로 느끼고 있습니다. 더욱이 순수 수공예와 소성 과정의 인쇄면의 자연스러운 변화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어 떤 의미에서는 인장 조각가들에게 새로운 도전인 자연소각과 정신문명 재료를 형상화한 고급 제품인 도자기의 업그레이드를 통하여 도자기와 전통 인장 조각에 대한 새로운 미적 의식을 열어주는 것이며, 돌로 된 인장과 구별되는 탐구와 돌파구이기 도 합니다. 이 글은 주로 도자기 인쇄의 발전 과정과 그에 굴절된 현재 의 상황을 이해함으로써 도자기 인쇄의 실천적 의미를 탐구하 고, 도장 조각자들이 창작 과정에서 전통적인 경험의 축적과 기본적인 기술의 숙련을 따르는지를 탐구하는데, 도자기 인쇄 의 실천적 의미는 도장 조각자의 창작을 자극하고, 도자기 인 쇄에 있어서 도장 조각자의 창작 정신과 새로운 시대 양식이 며, 도자기 인쇄 재료의 활성화이며, 도장 조각 예술 창작에 있 어서 도자기 인쇄의 새로운 비전을 열었으며, 또한 중국의 도자기 정신을 계승하고 있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에 서예 도장 조각자들은 창작 작품에 보다 높은 종합적인 예술적 소양 요건 을 반영하기도 합니다.
건설기계와 특장차의 상부와 하부 구조를 연결하는 로터리 조인트는 축과 하우징이 회전하면서 유압을 전달하는데 오일의 유로에 누유를 방지하기 위해 여러 개의 시일이 조립된다. 시일재료는 강성이 커서 조립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자른 후 조립하는 방법을 모 색하였다. 절단면의 모양은 L형과 /형으로 하였고 유압이 작용할 때 누유 기준은 절단면에 발생하는 접촉압력으로 하였다. 시일의 구 조와 재료는 이중 탄성중합체로 구성되며 강성이 큰 PE 재질만 절단한 경우에 대하여 비선형 접촉 구조해석을 수행하였다. 연구결과 절단 길이가 짧을수록 누유 방지에 유리하며 PE와 하우징이 접촉하는 윗면보다 NBR과 PE가 접촉하는 아랫면으로 누유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본 논문은 전서 학습서로 현재까지 발견된 것 중 가장 오래 된 1544년(중종 39) 박영(朴詠)이 편찬한 전중용(篆中庸)에 쓰인 전서체(篆書體)들에 대한 형태적 특징 분석과 고찰이다. 문헌에 남아 있는 금성(錦城) 박영(朴詠)의 기록을 살펴보던 중 일부 논문에 박영(朴詠)의 이름자 영(詠)에 오기가 있음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근거를 본문에서 우선 밝혔다. 전중용(篆中庸)의 전서(篆書) 33체(體)의 명칭별(名稱別) 서 체(書體)의 특징(特徵)을 분석해 보고, 상(商), 주(周), 춘추전국 시대(春秋戰國時代), 진(秦) 등 시대와 국가 및 용도에 따라 다 양했던 전서(篆書)를 박영(朴詠)의 전중용(篆中庸)을 기준으 로 하여 형태별(形態別)로 비교 분류(分類)한 결과 김진흥(金振 興)의 전문자(篆文字) 38 體의 ‘구서(龜書)’, ‘정소전(鼎小篆)’, ‘진새전(秦璽篆)’, ‘고정서(古鼎書)’, ‘태극전(太極篆)’ 5체는 김진 흥(金振興)의 전문자(篆文字)에만 있었다. 이외 33체는 120년 이나 뒤에 쓰인 김진흥(金振興)의 전문자(篆文字)를 박영(朴 詠) 전중용(篆中庸)의 전서(篆書) 33체와 비교하여 본 결과 자형과 종류에 변화가 거의 매우 유사함을 알 수 있었다. 따라서 조선 후기 17세기까지 박영(朴詠)의 전중용(篆中庸) 은 교본서로서 이후의 전서(篆書) 저술(著述)과 학습(學習)에 영향을 주었으며 저자의 바람대로 조선 후기 김진흥의 전서 편찬에도 영향을 준 매우 귀중한 자료임이 확인되었다.
Timely detection of nuclear activity is important for the management and supervision of nuclear materials, and inspections on North Korea as a method of safety measures for this monitoring system seem to be a not far future in the rapidly changing North Korea relationship. However, a simpler and more reliable monitoring device is required since the inspection period is limited and the possibility of revisiting is unclear. The seal is a simple but easily used security device for monitoring forgery and falsification in the IAEA. IAEA presents matters related to 1) project engineering, 2) remote monitoring, and 3) seal development as the three major tasks of the Department of safeguards and Division of Technical Support. The importance of development, modernization, and application of new seal devices is emphasized, and advanced sealing and identification system development is in progress at many research institutes such as JRC, ISCN, and JAEA. Since the existing seal devices used by IAEA and KINAC can only be confirmed through on-site inspections for damage, it is difficult to respond immediately in the event of similar situations such as theft of nuclear materials and loss of continuity of knowledge. Unlike facilities that comply with the requirements for safety measures, such as domestic nuclear facilities, in the case of facilities subject to denuclearization, it is very likely that various hazardous environments will exist that make it difficult to apply safety measures. Hence, a real-time seal device has developed through prior research due to the high possibility of situations in which Continuity of Knowledge (COK) is not maintained, such as damage, malfunction, and power loss of sealing and monitoring equipment. Through previous studies, the real-time seal device was loaded with server-based operating software and improved its performance by utilizing feedback from real users (KINAC) after use. In this study, the effectiveness of the previously developed sealing system was verified through performance evaluation, and the authentication of the equipment was secured through environmental tests.
국내에서 공용중인 교량은 33,177개로 사회기반시설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러한 교량은 공용하중, 온도, 습도 등에 의해 거더에 신축량이 발생하게 되고, 거더간 유간거리에 대한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 신축이음장치를 설치한다. 신 축이음장치에는 교량의 누수 및 퇴적물 낙하 등을 방지하기 위해 고무지수재를 설치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러한 고무 지수재는 다양한 원인에 의해 쉽게 손상이 발생하게 된다. 손상된 고무지수재를 통해 거더의 부식, 교량하부 인명사고 등 다양 한 2차 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피해를 예방하기 위해 교량의 유지관리를 수행하고 있지만 고무지수재 특성상 지속적인 교체는 불가피한 실정이다. 따라서 본 연구에서는 기존 신축이음장치에 활용되는 고무지수재의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하여 초탄 성 형상기억합금을 활용한 새로운 지수재 개발 연구를 수행하였다. 초탄성 형상기억합금 지수재에 대한 유한요소해석을 수행 및 분석하였으며, 복원 효과를 통해 지속 사용 가능한 지수재 연구를 검증하였다.
濰坊은 淸후기 金石學의 핵심지역으로 위상이 높아지고, 西 泉王石經은 皖派·浙派와 차별화된 ‘齊魯印派’의 기초를 다지게 된다. 簠齋陳介祺의 5세손인 陳君藻(1901-1987)는 이를 계승해 서예와 전각으로 일가를 이루었는데, 본고에서는 그동안 전혀 논의되지 못했던 그의 전각을 심도있게 고찰해 다음과 같이 유 의미한 성과를 도출해 냈다. 첫째, 현존 印章은 대부분 1949-1966년 사이에 새긴 것으로, 명성에 비해 그 수량이 매우 적다. 그 주요 원인으로, (1) 사람 됨이 孤高超逸하여 俗人을 응대하지 않고, (2) 근엄하고 치밀해 전각을 새기는 시간이 오래 걸리고, (3) 당시 사회가 혼란해 전 각을 중단하고 전란을 피했기 때문이라고 추론했다. 둘째, 淸말기 저명한 금석학자인 陳介祺의 후손으로, 그가 수 집한 자료와 ‘尙古’사상을 계승해 鍾鼎·陶文·封泥·瓦當등의 古 文字자료를 대거 전각에 활용했다. 또한 漢玉印에 대한 模仿 과 借鑒도 남달랐다. 셋째, 王石經은 古典派를 대표하는 인물로, 陳介祺의 ‘尙古’사 상을 계승해 ‘以書入印’을 실현했다. 陳君藻는 王石經과 그의 아들 王幼泉에게 전각을 직접 전수받아 그 맥을 이었다. 한편, 전각의 邊框에서 王石經은 깨끗하면서 완전하지만 陳君藻는 의 식적으로 깨진 흔적을 추구해 차별성을 드러냈다. 이상과 같이 陳君藻의 전각은 陳介祺와 王石經의 ‘尙古’적 印 學사상을 계승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역대 문물자료에서 새로운 방식을 취하거나 江浙印派의 특징을 수용해 자신의 독창적인 전각특징을 선보이기도 했다.
In order to enhance the transparency of nuclear power, the investigation of nuclear activities is important at the right time. And investigation of North Korea, one of safety measures for such a surveillance system seems essential in the near future. However, the inspection period is limited and the possibility of revisiting is unclear, so it seems easy to install and more reliable monitoring devices are needed. The seal is a security device for monitoring forgery and alteration in the IAEA easily but simple. Since the existing seal devices used by IAEA and KINAC can only be checked through onsite inspections whether it is damaged or not, there is a limit to immediate response in the event of an emergency such as the theft of nuclear materials and loss of Continuity of Knowledge. While the North Korea-U.S. talks and inter-Korean talks are slowly approaching the North Korea’s nuclear issue, it is judged that the inspection of North Korea’s nuclear weapons is not in the distant future. Accordingly, it is necessary to develop a customized seal device for managing and monitoring spent nuclear fuel that can be used for inspection of North Korea. The real-time active seal device consists of a seal equipped with a detection sensor, a translator, and a server, and the translator use wireless communication in consideration of ease of installation and management, respectively. The translator and server use wired communication for data sustainability. The seal device is designed to maintain continuity of knowledge (COK) through wireless communication in consideration of security even in the event of equipment damage, malfunction, and loss of power, while enabling location detection in case of theft or abnormality. Therefore, in this study, a technical investigation on remote data communication was conducted accordingly, and a data communication module for a small amount of broadband data communication was manufactured and applied. In addition, several tests were conducted to determine data integrity and location accuracy according to the communication range.
현대 사회에서는 단체나 조직이 개최하는 전람회나 式典및 행사, 간행하는 서적ㆍ도록 등이 當代전각의 모습으로 널리 인지된다. 그 대표적인 존재가 항저우의 西泠印社와 베이징의 中國篆刻硏究院이다. 현재 서령인사에는 503명의 사원(명예 사원 포함)이 있으며 일본인은 31명, 한국인은 6명의 해외명예사원이 이름을 올리고 있다. 2006해에는 서령인사의 신청에 의하여 전각문화가 ‘金石篆刻’으로 문화부가 정하는 國家級非物質文 化遺産에 등록되었다. 중국전각연구원은 2006년에 중국예술연구원의 한 조직으로 설립됐으며, 중국전각연구원의 신청에 의하여 2009년에 중국전각예술을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단체 결사에 의해서 전개되는 예술 활동을 통하여 전각이 문화유산으로 공적 기관에게 인정된 것은 그 존재 의의를 높이는 큰 성과이다. 중국 전각의 풍조는 혁신파와 보수파로 갈렸고 그 차이가 현저하다. 혁신파로 꼽히는 것이 作者情意의 表現에 特化된 ‘大寫意篆 刻’이다. 회화에 있어서 ‘大寫意’의 개념을 바탕으로 ‘畵理入印 [畵의 이론을 응용한 전각]’의 印風으로 ‘意’의 강조에 특화 한다는 심미 의식 아래 다양한 전개를 보여 전각예술의 신경지라고 할 수 있다. 보수파의 전각은 전각의 역사와 고전에 입각하여 독자적인 풍격을 확립하고 鄧石如에서 시작 된 ‘書従印入、印従書出’의 이념에 따라 ‘書印一致’의 높은 경지에 이르고 있다는 점에서도 공통적이다. 또 鉄心線ㆍ細朱文을 중심으로 한 精細ㆍ工整ㆍ秀 麗ㆍ典雅한 作風은 서령인사 창설 이후 오랫동안 계승된 正統的이고 温潤한 印風이며, 오늘의 계승 작가의 작품은 이 當代 印壇에서 빛을 발하는 존재이다. 대만에서도 대륙으로부터 대만에 들어온 印人들로부터 遺風을 받아 温潤하고 고상한 맛이 풍부한 작풍이 주류이다. 일본의 전각의 주류는 全日本篆刻連盟(1979年〜, 小林斗盦創 設)ㆍ日本篆刻家協会(1985年〜, 梅舒適創設)ㆍ扶桑印社(2000年 〜, 関正人創設)의 3단체에 소속된 전각가로 구성되는 일본미술 전람회[日展]를 비롯한 대규모 공모전 작품 발표를 주 활동 무대로 한다. 미술관 전시 환경에 적응하는 전각 작품들은 대형화하고 5㎝이상의 大印을 刻하는 것이 정착 되었다. 大印이라는 형식을 활용한 線質과 氣韻의 표현이 중시되고 대인 특유의 大胆한 奏刀가 추구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서일본의 주류 작가는 중국과의 교류가 비교적 많은 梅舒適의 소탈한 印風을 발전시키는 동시에 중국 대사의 전각의 풍조를 도입한 대담한 작품을 발표하고 있다. 한편 동 일본의 핵심을 담당하는 작가의 대부분은 대학의 서도 전공을 졸업하고 교육 현장에서 書에 종사하고 書家에게 사사한 경험 을 가지는등 서도의 전문성이 풍부한 사람이 적지 않다. 동시에 ‘書従印入, 印従書出’의 이념에 따라 書印一致의 경지를 의 식한 作風이 전개되고 있다. 혁신·보수에 불구하고 당대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전각가의 作風은, 독자적인 작풍을 확립하고 있다는 점에서 공통되고 있다. 작품에서 개성을 표출하려면 각자가 가진 性情을 어떻게 작품에 표현하는가라는 점이 중요하다. 이런 이념은 향후도 계승되고 발전될 것이다.
도법으로 풀어내는 매체 특징을 가진 전각예술은 중국 서화와 구별될 뿐만 아니라 문화 속성을 가지고 있기에 다른 문화 속 새김 예술들과 차이가 나므로 전각의 주요한 형식 요소로 간주 된다. 현대 문화 속에서, 전각에서의 칼이 자아내는 미적 의미는 중국예술전통을 계승함과 동시에 현대전각의 품평과 평가 기준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했다. 중국의 고대 시품을 기본 형식으로 삼아 당대 정신에 부합하는 미적 계보와 체계적 틀 구축은 그 의의가 매우 중대하다고 본다. 이를 위해 본 논문에서는 원형에 맞는 우아미 등의 평가 기준과 근거로 4가지 미적 유형을 제안한다.
篆刻의 역사는 문자의 형태가 온전하게 갖춰지기 전부터 도기에 문양과 부호를 찍으면서부터 시작되었다. 따라서 印材에 새겨지는 주된 문자는 초기 신석기 시대의 부호표기에서 문자 표기로의 이행기를 거쳐 한자의 서체변천 과정과 밀접한 상관관계를 가지며 형태가 변하여 왔고, 전각의 시대적 요구와 용도의 특징에 따라 내용 또한 변천하여 왔다. 전각이라는 명칭은 印文에 사용되었던 서체가 주로 전서였기 때문에 포괄적으로 붙여진 것이다. 인문의 서체는 당대에 유행하던 전서 서체를 중심으로 갑골문, 금문, 대전, 소전 순으로 변하였고, 이후에는 예서와 해서도 사용되었다. 이는 전각의 용도가 실용에서 신표의 상징, 장식용 및 주술용, 예술적 영역의 표현으로 바뀌면서 인문에 새겨지는 내용 또한 달라졌고, 지역적인 특색의 영향으로 서체형태의 변화와 변형이 이루어졌다고 할 수 있다. 본 연구를 통해 전각의 서체변천은 실용적으로 사용되었던 관인과 사인, 봉니와 건축물의 와당문에서 후대로 갈수록 자연스럽게 간략화시키고 쉽게 쓰려는 형태로 변천해 왔음을 살펴 볼 수 있었다. 이는 하대에 이미 인문도의 紋飾에서 도기상의 부호를 새기는 과정에 갑골문이 탄생하였으며, 금문의 자형 또한 은대 청동기문식에서 1.2자가 새겨짐과 동시에 <은새삼과> 에서 서체변천을 주도하였고, 대전 또한 주대의 새인에서 변련과 인장의 형식을 갖추어 방정함을 띠게 되었다. 이후 중국이 통일을 이룬 진대에는 이러한 서체변천과정에서 소전으로 문자 통일을 이룸과 동시에 전각의 제도적 관리가 이루어지며, 인문의 자형이 소전체로 변해갔으나 사인에 있어서는 전 시대의 서체들이 동시에 새겨졌다. 이러한 제도를 계승한 한 대에는 백화만방한 인문서체의 시대를 열게 하여 전서와 예서, 그리고 춘추전국시대에 성행하였던 조충서, 수전, 무전 등의 다양한 서체가 사인에서 새겨져 예술적 표현 영역을 확대해 나갔음을 알 수 있었다. 이는 전각이 서예의 영역에서 매우 중요한 표현영역을 차지 하고 있으며, 印工에 의해 금ㆍ은ㆍ동ㆍ옥에 새기었던 시대와 문인들에 의해 석인재에 스스로 각을 하던 시대의 풍격은 매우 차이가 났으나 전각의 인문과 측관, 봉니, 와당문에서 새겨지는 서체의 변천은 한자의 字體연변을 주도했으며, 또한 유행서체가 그대로 반영되고 있었음이 밝혀졌다고 하겠다.
PURPOSES : The purpose of this study is to present a cross section suitable for low-traffic road pavement considering the environmental characteristics of Vietnam.
METHODS : The behavior of the pavement with respect to the axial load was numerically analyzed using the nonlinear finite element method. The elastic-plastic material model was applied to material properties such as subgrade, sub-base layer, and base layer, and whether the material yielded was determined. In order to evaluate the adequacy of the cross section of the Vietnamese low-traffic pavement, it was compared with the KPRP Lv 3 road pavement section. And it was compared with the newly proposed MAST composite Pavement. The design life of each pavement section was calculated using the results obtained from the pavement structural analysis.
RESULTS : The cross section of the Vietnamese low-traffic road pavement, KPRP lv3, MAST composite Type1 road pavement did not satisfy the design criteria for fatigue cracking and rutting. MAST composite Type2 was analyzed considering CTAB having 100mm and 150mm thickness and compressive strength of 5MPa, 10MPa, 15MPa and 20MPa, and all of them satisfied the design criteria.
CONCLUSIONS : The low-traffic road pavement section in Vietnam currently used is judged to be inappropriate, and the MAST Composite type 2 proposed in this study is evaluated as an appropriate alternative. Further studies such as field application are needed in the future.
검여 유희강(1911-1976)은 북위 서풍으로 현대 한국서단에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도한 서예가이다. 그는 전각에서도 두각을 나타냈지만 그의 전각작품을 심도있게 고찰한 논고는 전무한 상태이다. 따라서 본고에서는 검여의 유품 중에 전해지는 인장 실물과 그의 서화작품에서 확인되는 낙관의 인영을 총 정리하고 제작연대와 작 품성향을 분석해 다음과 같은 유의미한 내용을 도출해냈다. 첫째, 검여가 직접 새긴 인장은 33점 23세트로, 1952-1966년 사이에 집중되며, 1962년 검여서원 개설을 기점으로 전기와 후기로 나눌 수 있다. 본고에서는 검여 서화작품에서 20점 14세트의 인장을 새롭게 찾아내어 정리했다. 둘째, 전기는 등석여와 조지겸을 중심으로 청대 서가들의 전각을 두루 섭렵해 전각을 본격적으로 학습했으며, 후기는 오창석의 각풍에 주로 심취하면서도 금문과 한인의 자형 결구에 등 석여의 필세를 가미해 중후한 자신의 각풍을 구사하고 있다. 셋째, 검여의 전각돌은 대부분 한국 해남석을 사용했고, 전각기 법은 청대 서예가의 영향을 받아 충도법을 주로 사용했다. 특히 후기에는 오창석의 각풍을 구사하면서 한인과 육조 해서의 강인 한 필선을 전각에도 도입해 중후한 전각 기법을 구사했다. 넷째, 지인이 검여에게 새겨 준 인장은 21점 11세트로, 1964-1973년 사이에 집중된다. 또한 대부분 인장 실물이 현재까지도 보존되어 있어 1964년 이후 우수서와 좌수서 서화작품 에서 모두 확인된다. 다섯째, 검여의 작품에서 자신이 새긴 1-3번 인장과 여초가 새긴 24-26번 인장, 철농이 새긴 27번 인장이 검여의 우수기와 좌수기의 작품에서 낙관인으로 자주 사용됐고, 석봉이 새긴 32번 인장과 석불이 새긴 33번 인장이 두인으로 종종 사용됐다.
The social changes in the Yuan Dynasty had a decisive influence on the formation of Chinese literati's seal cutting art. The Yuan Dynasty under the Mongols' rule had a big blow to the entire Han culture, and many aspects including the traditional social hierarchy, order, and concepts were obviously impacted (Fu Haibo & Cui Ruide 1998). Affected by this influence, the art of literati seal cutting realized aesthetic consciousness. The practice of literati seal cutting has also transitioned from the initial design of the seal surface to the whole process of design and production. And these changes are directly related to the change of people's mentality under the social background of the Yuan Dynasty. This article is mainly divided into two parts. The first part mainly discusses the current mainstream views in the academic circles about the formation time of literati seal cutting art, and reveals the rationality of the formation of literati seal cutting in the Yuan Dynasty through analysis. The second part mainly discusses the root cause of the formation of literati seal cutting in the Yuan Dynasty. This article believes that the real factor that promoted the formation of the seal cutting of the literati in the Yuan Dynasty is the change of the people's mentality under the background of the changes of times. When the literati participated in the practice of seal cutting, there was no ideological burden, and it was possible to realize whether they were doing this as a career or merely responding to their inner aesthetic appeal. The appearance of seal cutters, seal cutting theories, and seal cutting works indicate the formation of the true sense of the art of seal cutting by literati
사용후핵연료를 저장하는 볼트체결 저장용기의 격납경계를 형성하는 주된 구성요소는 금속 밀봉재이다. 이러한 금속 밀봉 재는 열과 방사선에 의해 그 성질이 저하된다. 또한, 금속 밀봉재가 강한 열에 장기간 노출되면 크리프 현상이 발생한다. 이러한 크리프는 밀봉시스템에 응력 이완을 가져와서, 결국 밀봉재의 건전성을 해치게 된다. 이러한 응력 이완은 금속 밀봉재의 밀봉성능 저하로 이어지며, 저하의 정도에 따라 저장용기의 누설을 야기할 수 있다. 또한, 볼트 체결력의 감소도 밀봉성능 저하에 영향을 미친다. 본 논문에서는 금속 밀봉재의 격납건전성과 볼트체결력 감소를 평가하기 위해 수행한 가속화 시 험의 결과에 대하여 기술한다. 전 시험기간 동안 각 시편에서의 누설률, 볼트 변형률, 금속 밀봉재 주변 온도를 계측하여 분석하였고, 금속 밀봉재는 저장기간 50년 동안 격납건전성을 유지함을 입증하였다. 또한, 가속화 시험의 타당성에 대해서 기술하였다.
조선시대 어보는 종묘의 사직을 이어간다는 상징적인 인장으로 왕 실의 끊임없는 영속성과 번영 발전을 기원하고, 조선왕실의 신성한 비장품의 가치를 지닌 존숭의 대상이다. 이러한 어보 보문의 서사인 (書寫人)은 전문서사관(篆文書寫官)이나 당시의 종친이나 문화인이 맡았다. 인문의 새김과 주조장인(鑄造匠人)은 관영 수공업에 종사하던 인장(印匠)·옥장(玉匠)·숙피장(熟皮匠)·주장(鑄匠)·조각장(雕刻匠) 등의 장인이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었다. 상당히 완비되어 있는 인문(印文)은 연구자의 시야로 볼 때, 그 제 작과정에 아래와 같은 문화적 추형(雛形)이 있다고 말 할 수 있다. 첫째, 인문의 자형(字形)은 기본적으로 네모꼴이다. 둘째, 인면(印面) 이 대칭(對稱)이다. 셋째, 인문은 일종의 혼성(混成)된 미감을 갖고 있다. 보문(寶文) 자형의 변천과 특징을 살펴보면, 세종비소헌왕후금보 (110)에서 순조5년(1805) 영조비정순왕후금보(200)까지의 ‘소(昭)’자는 대체로 인면 장법에 따른 구첩전이거나 무전(繆篆)으로 새겨졌다. 그 러나 철종13년(1862) 순조금보(67)부터는 구첩전에서 벗어나 인전(印 篆)의 형태를 띠고 있다. 그리고 ‘헌(憲)’자는 세종비소헌왕후금보 (110)을 제외한 대부분이 구첩전(九疊篆)에서 벗어났다. 또한 ‘지(之)’ 자의 경우 숙종비인경왕후옥보(154)에서 선조비의인왕후금보(132)까 지는 구첩전 형태가 농후하다. 그러나 이후에는 서서히 구첩전에서 인전으로 바뀌었다. 또한 같은 년도에 제작된 동일한 글자인 ‘왕(王)’, ‘후(后)’, ‘지(之)’, ‘보(寶)’, ‘성(聖)’, ‘효(孝)’, ‘현(顯)’자를 보면, 동일한 글자라도 인면 장법상의 균형과 통일을 기하기 위하여 인면에 가득 차게 하는 구첩전이 주로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어보의 인문은 이체자가 대다수이다. 숙종9년(1683)과 고종9년 (1872)에 제작된 태조금보(5와 6)의 ‘강(康)’자, ‘헌(獻)’자, ‘성(聖)’자의 위 오른쪽 ‘입구(口)’ 등이다. 또한 숙종 7년(1681) 같은 해에 제작된 정종금보(7)와 정종비정안왕후금보(109)의 ‘의(懿)’, ‘온(溫)’, ‘왕(王)’, ‘지(之)’, ‘보(寶)’ 등도 이체자의 본보기이다. 더욱 이체자를 넘어 정종 비정안왕후금보의 ‘의(懿, )’자와 예종금조(10)의 <예종흠문성무의 인소효대왕지보> 의 지(之, )자는 오자가 아닌가 생각된다. 결론적으로 어보는 전서에서도 도식적인 구첩전을 쓰고 있다. 그러 나 고종(高宗), 순종(純宗) 이후부터 인문 자체가 서서히 구첩전에서 탈피하고 있음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