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대부가 창작의 주체인 문인화는 필묵을 숭상하며 채색이 맑고 담백하다. 민화나 궁정 회화에 비해 정신적 의미의 표현 과 화면의 상징적 의미를 더욱 중요시하고 문인의 사고방식으 로 물상을 정신적 차원으로 끌어올려 화가 개인의 정서와 관념 을 투영한다. 이로써 작품은 정신세계의 물질화 형식으로 존재 한다. 그리하여 문인화는 ‘자기 위안’과 ‘유사성을 추구하지 않 고 운율 생성을 추구하는’ 회화 이념을 형성하였다. 문인화는 어떤 기법의 대명사가 아니라 일종의 관념이자 의 식이다. 필묵과 색채의 계승 면에서 채색-흑백-간결한 필묵-필 묵+색채의 발전과정을 거쳤다. 이는 오채의 아름다움을 보여준 당(唐)대에 기원하여 송대에 발전하였다. 당시 궁정 회화가 주 류적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지만, 문인화가는 자신만의 회화의 길을 묵묵히 고수하며 탐색하였다. 북송부터 오대 시기까지 색 채를 벗겨냄으로써 차별화된 흑백산수화가 형성되었다. 원대에 는 복잡한 필치의 준찰(皴擦)을 버리고 깨끗하고 간결하게 화 면을 구성하였다. 대부분 수묵 위주이지만 화가는 ‘묵분오색’, ‘여백’ 등의 형식을 통해 문인화의 독특한 필묵의 언어 및 색채 관계를 형성하였다. 명·청시대에는 고대의 기법을 바탕으로 필 (筆)을 뼈대로, 묵(墨)은 살로 삼고 색으로 정신(神)을 입힘으로 써 필묵과 색채가 서로 돋보이도록 하였다. 본고는 회화 주체의 역할 변화 및 시대적 배경의 관점에서 문인화의 ‘기승전결’을 탐구하고, 문인의 내면 정신과 사고방식 을 결합하여 필묵과 색채 표현 간의 부침을 분석한다. 필묵과 채색으로 화면의 색채를 운용하는 관계에서 출발하여 문인화의 비판적인 색채 계승 및 재창조를 해석하고 문인화의 필묵과 색 채 간 긴밀한 연관성을 정리한다. 그러면 문인화를 더 잘 이해 하고 시대정신에 맞는 새로운 작품을 만들 수 있습니다.
본 논문은 김환기 현대문인화의 ‘소박미’를 고찰한 것이다. 요 즘처럼 황금만능주의 시대에 ‘소박’이라는 주제는 왠지 사회적 요 구와 동떨어져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지금 물질문명에 취해 정신없이 달려온 인간 문명을 반성하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 이처럼 오늘날 인류에게 닥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연에 대한 인간의 근본적 태도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이 오늘날 미학으로서의 ‘소박’이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청되는 이유이자 본 논문의 목적이다. 일상에서 흔히 사용하는 ‘소박하다’라는 말은 사치스럽거나 과하 지 않고 ‘검소하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미학적으로 ‘소박’의 의 미는 그보다 훨씬 심오한 자연에 대한 사유를 담고 있다. 이러 한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다면, 우리의 결정적 과 오가 무엇인지를 찾아내고, 이를 어떻게 보완하고 극복해야 할지 를 가늠하게 될 것이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한국의 ‘소박미’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 고, 이를 바탕으로 한국 현대문인화에 나타난 소박미에 대하여 논술하였다. 문인화는 작가가 마음을 비우고 자연과 물아교융 하는 순간적인 기의 흐름을 통하여 자연의 본질을 포착하고자 했다는 점에서 한국의 소박미를 대표하는 장르로 볼 수 있다. 이에 한국의 소박미가 한국 현대문인화에 어떻게 계승되고 있 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 김환기의 작품을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한국 특유의 소박미가 현대 미술에서도 여전히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음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원대 문인서화가로 유명한 조맹부는 부친 조여은의 취향과 감식안의 영향 하에서 초기 부터 사생과 같은 사실적 기법을 깊이 탐구하였다. 중기에는 희작과 같은 북송수묵화 양식들 을 폭넓게 수용한 뒤, 이를 자신만의 방법으로 변용하고 결합시킴으로써, 사생과 묵희의 개 념을 새롭게 확장시켰다. 장난삼아 사생한다는 뜻의 ‘희위사생’론은 ‘공필사생’과 ‘묵필희작’ 이라는 이질적 기법의 집성을 통해 ‘기운’ 혹은 ‘정성(情性)’을 얻는다는 혁신론이었다. 이는 〈이양도〉를 비롯한 일련의 작품들에서 보이는 고도로 복합적이고 균형잡힌 조형세계의 또 다른 층위를 해석하는 열쇠를 제공한다. 이렇듯 사실적인 회화세계의 토양 속에서 조맹부는 ‘전신의 묘’를 다하지 못한 당시 사부화가들에 대한 비판의식을 발전시켜 나갔다. 본고는 문 인화에 사실적 화법을 접목시키려는 조맹부의 탐구와 혁신적 방법론에 포커스를 맞춤으로써 원대 회화 및 그 향방을 좌우한 그에 대한 기존의 이해를 새롭게 확장시켜준다.
지금까지 문인화는 조선시대 성리학의 영향으로 고고한 선비 의 남성적 문화 도구로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현대에는 성리 학의 영향이 약화되고 문인에 대한 해석이 달라짐으로써 문인 화는 새롭게 정의되어야 하고 또한 여성적 성향으로 변화하고 있는 현상에 대한 진단이 필요하다. 이러한 시대적 관점에서 먼저 현대 한국문인화를 정의하고, 다음으로 동양의 전통적인 미학텍스트라 할 수 있는 사공도의 『이십사시품』의 ‘섬농’과 ‘기려’의 풍격을 기준으로 현대 한국 문인화의 여성적 풍격을 진단하였다. ‘섬농’의 풍격으로 문봉선의 <유수>와 홍석창의 <별꽃>을 분석하였고, ‘기려’의 풍격으로 이철규의 <상생>과 김순철의 <About wish>을 분석하였다. 이러한 연구를 통해 다원화되고 기호화된 현대사회에서 한국 문인화의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모색할 수 있는 하나의 실마리 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동양에서 성행하였던 문인화는 문인의 정신을 일획성의 수묵 기법으로 표현하여 지금까지 우리의 미의식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철학과 예술이 결합된 문인화는 한국의 중요한 문화적 도구로 앞으로 한국미술을 대표할 수 있는 한 축을 담당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본 논문은 논자가 활동하고 있는 현대 한국 문인화단의 제경향 중 단색회화 경향에 대한 연구이다. 이 연구를 통해 현대 한국 문인화의 다양한 정체성을 확인하고, 현대 한국 문인화의 나아갈 방향과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문인사대부들은 우주의 원리나 현상을 자신이 몸소 체험함으로써 그들의 교양의 질(質)과 그 지위를 검증하는 수단으로 문인화(文人畵)의 수묵 정신(水墨精神)을 강조하고 있다. 한편 서양의 현대미술 사조 중 하나인 미니멀니즘이 우리나라에 유입 되어 우리의 정서와 문화에 맞게 변화됨으로써 한국적인 미니 멀리즘, 즉 단색회화(單色繪畫)가 탄생되었는데 그 배경 역시 문인화의 수묵 정신이 바탕이 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본 논고에서는 문인화와 단색회화의 공통분모인 수묵 정신을 비교 검토하고 현대 한국 문인화의 단색회화 경향 작품을 예시하여 이를 분석하고 검증하였다. 이 연구를 통해 서양 회화에 속하는 단색회화와 동양 회화에 속하는 단색회화 경향의 문인화 작품들 모두 문인화 전통의 수묵 정신을 바탕으로 우리나라 특유의 미적 양식과 우리만의 새로운 회화 양식을 추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 시대의 유배는 주로 정치범에게 적용되었던 형벌이었다. 정치 상황이나 죄인의 신분 혹은 죄의 경중에 따라 유배지도 결정되었다. 특히 조선 중기에 들어 당쟁이 치열해지면서 유배는 대부분 섬으로 가게 되었다. 유배는 현대와 달리 비리에 의한 것보다는 당쟁의 결과였으며 정치적인 속성을 띄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본 고는 이를 위하여 유배가 주는 우리의 문화유산을 긍정적으로 보는 측면에서 진행되었다. 이를 조선 후기의 우봉 조희룡의 심미경계를 통하여 고찰하였다. 그는 여항문인화가로 임자도에서 19개월간의 유배 생활을 하였다. 이로 인하여 육체적 정신적 시련과 한계상황을 극복하여 자신의 예술세계를 심화시켰다. 그는 자신의 처소인 만구음관 주변에 자생하는 대숲의 자연을 통하여 묵죽의 문인화에 천착하였다. 이로 인하여 그의 묵죽 문인화는 심미경계를 심화시킬 수 있었다. 따라서 그의 묵죽의 심미경계는 독표성령(獨標性靈)의 심원미학(心源美 學)⋅자출기저(自出機杼)의 심장미학(心匠美學)⋅자성별구(自成別區)의 심득미학(心得美學)에 나아갔다. 심원의 미학은 조희룡의 독자적인 성령론에 바탕을 두고 있으며, 심장미학(心匠美學)은 스스로 우러나와 이루어진 자출기저(自出 機杼)이다. 또한, 심득의 미학은 스스로 자신의 개성을 바탕으로 한 자성별구 (自成別區)였다. 이와 같이 조희룡 묵죽의 심미경계는 심화 경지에 나아가게 되었다. 이와 같이 그의 유배는 역으로 한 예술가에게 자신의 예술에 천착할 수 있는 기회도 주게 되었다. 따라서 우리 문인예술은 유배를 통하여 그 깊이의 세계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음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역으로 이러한 측면 에서 살펴보면 유배문화는 우리 문화예술에서 하나의 선물이었다.
본 연구는 한국의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미래의 한국미술의 한 축을 담당할 한국 문인화의 유파에 대한 고찰이다. ‘문인화’라는 용어는 명대(明代)의 동기창(董其昌)이 처음 사 용하였으나 그 연원은 북송대(北宋代)의 소식(蘇軾)이 화공들의 그림과 상대되는 문인들의 그림을 ‘사인화(士人畵)’라 한데서 찾을 수 있으며 형사(形似)보다 운치(韻致)를 중요시하는 특징 이 있다. 현대의 문인화는 문인이라는 작가의 신분적인 요소보 다 작가의 문기가 표출된 작품이라 정의 하는 것이 바람직 할 것이다. 중국에서 전래된 한국의 문인화는 고려시대부터 조선 중기까 지의 작품은 거의 남아 있지 않아 초기의 수용 체계를 파악하 기는 어렵다. 조선 후기에 남종화가 본격적으로 유입되면서 이 인상, 강세황, 신위, 김정희 등의 작가들을 중심으로 독창적인 한국 문인화의 원류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현대까지 이어지고 있는 한국의 문인화는 세 개의 유파로 분 류할 수 있다. 첫째 유파는 허백련과 손재형의 전통 유지파로 서 현재까지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먹의 농담을 중시하며 한국의 정서에 맞는 편안함과 여유로운 느낌의 표현이 특징이 다. 둘째 유파는 민영익, 김규진, 김용진, 서병오가 주축이 된 중국 신문인화 영향파로서 홍익대와 계명대 그리고 대구지역을 중심으로 문인화의 현대화 작업에 주력하고 있으며, 금석학의 영향으로 중봉의 필법과 강한 채색, 새로운 조형성을 특징으로 하고 있다. 셋째 유파는 김용준으로부터 시작된 일본 신남화 영향파로서 서울대에서 수묵화 위주의 작업을 중심으로 현대미 술을 수용해가며 다양한 변화를 추구했다. 하지만 서울대출신 의 작가군의 고갈로 현재는 영향력이 미미한 상황이다. 이상과 같이 한국의 문인화는 중국에 기원을 두고 있지만 세개의 유파로 발전하여 독자적이고 다양한 표현 방식으로 한국 문인화단을 이끌고 있다. 동아시아에서 성행하였던 문인화는 그 정신성과 수묵의 운치 로 현대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미의식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 다. 지성과 철학이 미술과 결합된 문인화는 한국의 중요한 문 화유산으로 미래의 한국미술을 대표할 수 있는 한 축을 담당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주지하듯이 기존의 한국 문인화에 대한 연구는 미술사가나 미술평론가들이 고전 자료를 중심으로 한 화론적(畫論的)인 내용이나 한국 현대문인화의 문제점 분석 등 관념적인 내용의 연구가 대부분이었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이러한 한국 현대문인화의 본질(本質)을 중시하는 관념적인 내용에서 벗어나 논자가 미술현장에서 직접 체험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국 현대문인화의 실존(實存)을 통한 한국 현대문인화를 전통적 경향과 현대적 경향의 작품으로 분석하여 한국 현대문인화의 새로운 발전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엄밀하게 말해서 작품의 성향을 규정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며 오해의 가능성이 크다. 또 같은 작가라고 해도 각각의 작품의 내용과 방향성은 세부적인 면에서 큰 차이를 갖는다. 하지만 이러한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현대문인화를 전통적 경향과 현대적 경향으로 나누어 구분할 것이다. 구체성에서 멀어진 대신 지극히 단순함이 갖는 이점 때문이다. 이를 통해 한국 현대문인화를 구조적으로 개괄함으로써 복잡하고 다양한 작품들 때문에 접근하기 어려웠던 한국 현대문인화에 대한 기본 틀을 확립할 수 있을 것이다.
미술사는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주로 정치적, 사회경제적, 문화적 맥락 속에서 연구되어 왔다. 그러나 새로운 접근방법에서는 후원자들과 그들의 성별, 사회적인 지위가 작품제작에 어떻게 영향을 주는가, 또는 미술이 특정집단의 사람이 살아온 환경 속에서 어떻게 소통과 자기표현 수단으로 사용되었는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한다. 이러한 새로운 시도들은 조선시대 예술가들을 단순히 중국 수입품에 의존하는 이들로 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관점에서 당시의 미술을 볼 수 있게 하였고 이를 통해 그들의 지적, 문화적 욕구를 표현하기 위한 영감으로써 중국미술의 경향을 어떻게 수용했는지를 보여준다. 조선 초기 회화 특히 안견의 <몽유도원도, 1447년> 와 신숙주의 「화기」는 조선전기 문인들이 아직 사회적으로 확고하게 자리 잡지 못한 시기에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성하기 위해 중국의 이론적 담론, 도상 및 양식들을 사용하였는가를 보여준다. <몽유도원도>는중국의시인인 도잠(연명, 365-427)이쓴 「도화원기」 에서 비롯되었으나 도잠의 시와 중국 도상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고 있다. 「도화원기」의 현실도피적 측면은 안평대군이 당시 처해있는 정치적 상황 속에서 해석할 수 있다. 양식적으로는 <몽유도원도>에서중국 북송대의 화파인 이곽파의특징을 찾을 수 있다.「화기」서론 부분의 한유와 백낙천에 대한 언급과, 소식을 상기시키는 「화기」끝부분의 철학적 담론은 안평대군의 골동수집 취향, 안견의 회화 양식과 당대의 지적 문화적 경향과 잘 부합된다. 곽희 양식에 대한 인식, 도화원기의 도상학, 한유의 미술품 수집에 대한 저술과 소식과 동시대인들의 미학적 문학활동은 고려 왕조의 어느 시기엔가 한국의 학자와 화가들에게 전달되었다. 조선초기까지 이러한 인식은 자신들의 정체성을 형성하고, 자신들의 사회적 지적 정치적 위치를 확고히 하기에 적합하다고 여기는 것은 무엇이든 선택하고 이용할 수 있었던 학식 있는 문인 집단에게 있어서 실질적이고 이론적인 소재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