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논문은 김춘수가 이상에 대한 비평에서 ‘이상은 왜 키르케고르의 길을 가지 않았는가?’를 물은 데 착안하여, 시인으로서의 존재론적 지향점이 김춘수는 초월성을 향해 갔으며, 이상은 내재성을 향해 갔다는 전제 아래에 논증되었다. 초월성을 지향한다는 것은 차안으로부터 피안의 신, 존재, 진리, 선을 추구한다는 것이며, 내재성을 지향하는 것은 자연으로부터 유래한 인간의 본성과 생명력을 신뢰하며 자기의식의 체험을 긍정하는 것이다. 김춘수는 초월성의 관점을 키르케고르의 신학에서 취한 바, 이 논문 또한 그의 사상을 원용하여 논증해 나아갔다. 이상 문학의 절망, 불안, 권태 등은 키르케고르의 1단계 심미적 실존에 머문다. 이상은 키르케고르적인 신학적 세계관과 아가페적 사랑을 추구하지는 않았지만, 천재로서 절망과 불안을 감내하며 내면의 자유를 추구하여 예술의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는 데 기여하였다. 결론적으로, 키르케고르의 신학적 길을 간 것은 오히려 릴케의 영향을 받은 김춘수였다. 한국현대시사에서 모더니즘의 두 거장 이상과 김춘수는 ‘내재성’의 사상과 ‘초월성’ 사상의 두 축을 담지하여 한국의 정신사를 풍요롭게 하였다.
보들레르와 김춘수의 시세계는 고통의 감각으로 점철되어 있다. 보들레르는 그의 시론인 인공낙원 과 일련의 시편들에서 마약중독으로 인한 고통을 승화 하는 양상을 아름답게 형상화한다. 김춘수는 그의 시론인 고통에 대한 콤플렉 스 와 일련의 시편들에 고문 체험으로 인한 고통을 승화하는 양상을 아름답게 형상화한다. 이 시인들은 궁극적으로 예술작품의 창작이라는 승화를 통해 고통 스러운 콤플렉스를 극복하고, 예술적 이상으로서의 인공낙원의 건축으로 새로 운 시인상을 만들어냄으로써 자기 치유를 추구한다. 이러한 고통의 감각은 정신 분석학적으로 인간의 근본조건으로서의 죽음충동이 반복강박적으로 시적 주체 를 공격한다는 데 있다. 결론적으로 이러한 고통의 극한에서 상징적 죽음으로서 의 무의 지점을 발견한 보들레르와 김춘수는 무로부터의 창조를 해 나아간다. 그 결과 보들레르는 인공낙원과 미학적 천국에 이른다. 이와 대조적으로, 김춘 수는 신학적 천국으로서의 인공낙원, 즉, 천상과 지상의 일치에 이른다.
이 논문은 상징주의자인 발레리와 김춘수의 신화시를 비교연구 하기 위하여, 카시러의 신화론의 관점을 원용하였다. II부에서는 근본감정인 신성함의 구현으로서의 신화시가 논의되었다. 발레리의 「나르시스는 말한다」와 「나르시스 단장들」 , 그리고 김춘수의 「나르시스의 노래」는 ‘나르시스’가 자신의 내면세계를 형상화하는 시인의 신화적 원형을 보여주었다. III부에서는 세계를 형성하는 정신적 힘으로서의 신화시에 관하여 논의되었다. 발레리의 『젊은 파르크』와 김춘수의 『처용단장』은 신화를 하나의 인식형식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시인으로서의 인생의 역경을 극복하게 하였다. IV부에서는 순수 존재로서의 신을 현현하는 신화시가 논의되었다. 발레리의 『해변의 묘지』, 그리고 김춘수의 「신화의 계절」과 「밝안제」는 신화적 근원 시간으로 인간을 되돌려 순수 존재로 거듭나도록 하였다. 폴 발레리와 김춘수의 신화시는 신화라는 형식을 빌려 상징의 언어로 내면의 존재계를 형상화하였다는 공통점이 있었다. 세계문학사에서 폴 발레리와 김춘수의 신화시는 존재론적으로 인간이 추구할 수 있는 이상적 존재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데서 그 고결한 가치를 지닌다.
We report the structural characterization and electric heating performance of carbon thin films (CTFs), which were prepared from negative-type SU-8 photoresist by deep UV exposure and following carbonization. The prepared CTFs were found to have pseudo-graphitic carbon structures containing partially graphite domains in the amorphous carbon matrix. The CTFs showed a very smooth surface morphology with a roughness of 0.42 nm. The 107 nm-thick CTFs exhibited an excellent electric heating performance by attaining a high maximal temperature of 207 °C and a rapid heating rate of 13.2 °C/s at an applied voltage of 30 V. Therefore, the CTFs prepared in this study can be applied as electrode materials for high-performance electric heaters.
There are six volumes of Sushi蘇軾 that has records related to Zigushen子姑神. Among them, 〈Zigushenji〉 is the record about Sushi’s observation of a shamanic ritual at a house in Huangzhou. Here, Sushi had a conversation with a spirit named Zigushen, and recorded the details of the conversation. This paper discusses three main points focusing on Sushi’s records. The first point is the discussion of the credibility of his story by comparing with five other works of his. The second point is the credibility analysis of the contents of the conversation with the spirit. The spirit claimed that she was a woman name Hemei during the Tang dynasty. And she described events during and after her life to Sushi in detail. She also wrote several poems after the conversation with Sushi. The third point is about how to explain this phenomenon if her words were truthful, and why Sushi slightly doubted the phenomenon. Considering these points, this work concludes as follows. Not all Zigushens in ancient Chinese literatures are Hemei, but the one in Sushi’s work is. The concreteness of the conversation and the phrases from the poems support the idea that it is not fictional. Modern Chinese scholars treat these ancient records as literary works. They argue that these fictions are of intellectuals expressing their concerns through ghost stories.However, this view is based on materialistic thinking. We can understand the mental world of ancient Chinese people, if these stories are treated, not just as literary works, but as records. There are thousands of similar stories in 《Taipingguangji太平廣記》, an ancient Chinese literature. Jiyun紀昀 of the Qing dynasty has also written many stories about shamanic rituals. His writings are relatively objective and detailed. This paper analyzes contents of Sushi’s work with Jiyun’s writings. Of course, not all phenomena of shamanic rituals are believable. Spirits can be deceitful, even when the conversation coincides with the reality. It is for this reason that Sushi was doubtful toward the Zigushen phenomenon.
Zheng Su Wen is an important colloquial dictionary written by Hao Yixing in the Qing Dynasty. It is the part of foreign words in the last two volumes that specially makes significantly differences from other dictionaries which also specialized in collecting common words. At present, its value has been found, but comprehensive description and investigation are still rare. Therefore, this paper makes a detailed survey of the two volumes of collected words and described them from the basic situation, regional distribution, vocabulary source and historical stages. And it also observes Hao’s interpretation, citation and textual research of foreign words, so as to summarize their characteristics which are as follows: firstly, these foreign words are influenced by regions and Buddhist culture; secondly, bibliography of these words covers a wide range of both Chinese history and domestic and foreign regions; thirdly, Kangxi Dictionary may closely be related to them. Lastly, this paper divides words into two categories according to whether the dictionary and other dictionaries are included as a judgment standard. Some words should be emphasized in the future, while some words should also be supplemented and demonstrated.
본고에서는 소식의 계자로 잘 알려진 소과의 시 가운데 부친의 생일을 축하하며 남긴「大人生日」의 시 11수를 분석하고, 이들 시에 드러난 부친 소식의 형상을 살펴보았다. 오대시안 이후 소식은 유배령을 받고 황주에 안치되는데 이 때 도성에는 소식이 ‘신선’이 되어 승천하였다거나, 병으로 세상을 떠났다는 유언비어가 빠른 속도로 번져나간다. 1차 황주 유배 이후 지방관으로 임직하던 소식은 다시금 신법파의 타겟이 되어 혜주와 담주에서 2차 유배를 겪게 되는데, 이 기간에도 소식과 관련된 유언비어는 지속적으로 생성된다. 그런데 혜주·담주에서의 유배기간 동안 부친 소식과 함께 생활했던 소과의 시를 살펴보면 소식에게 신선의 형상과 목민관의 형상을 부여하였음이 발견된다. 소과의 시 속에서 소식은 비방과 시비가 가득한 속세마저도 초월하여 고도의 정신적 승화를 이루어 낸 신선과도 같은 존재이자, 유배를 오기 전에는 善政을 행하였던 목민관의 형상을 획득함으로써 유언비어에 의해 무력화된 존재감을 회복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은 정치적 사건을 겪으면서 실추되어야 했던 한 개인의 명예를 문학적 형상화의 과정을 통해 다시금 회복하고자 했던 시도였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할 것이다.
이 글의 목적은, 1960년대 내부 간행물로 출판되어 1980년대 가장 많은 영향력을 발휘한 서구 모더니즘 문학의 수용과정과 그 영향력을 고찰하는 데 있다. 케루악과 샐린저가 1980년 대 중국작가들에게 끼친 막대한 영향을 왕쑤오와 쑤퉁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서구 모더니 즘 작가들이 중국 문학가들에게 끼친 영향은 그 이전 1960∼70년대 “내부 발행” 도서에서부터 시작되어 확장된 것이었다. 이 “내부 발행” 도서는 중국의 세계인식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징표이다. 중국에서 비트 세대라는 기호는 21세기 초의 중국문학과 문화의 새로운 길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해준다. 더욱 중요한 것은, 중국 사회주의시기 이후의 문학은 사회주의시기 문학과 단절된 것이 아니라 침잠하는 잠재성을 통해 연속되고 있음을 증명해주는 분명한 징표라는 점이다.
詞의 風格은 蘇軾에 와서 일변한다. 晩唐이래로 이어져 오던 婉約한 사풍이 소식에 와서 豪放하고 淸新한 풍격으로 바뀐다. 이렇게 사풍이 변하게 된 뒤에는 소식의 정치적 처지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자신이 쓴 詩가 문제가 되어 ‘烏臺詩案’이란 筆禍를 겪게 된 소식은 시를 대신하여 詞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토로했다. ‘시를 쓰듯 사를 쓴다(以詩爲詞)’는 평가는 여기에서 나왔다. 소식은 당시 文人士大夫들의 관심의 대상이 아닌 사를 통해 貶謫으로 인한 복잡한 감회를 사를 통해 거침없이 쏟아내었다. 폄적으로 인한 여러 가지 복잡한 자신의 심경을 豪放하고, 淸麗하고, 超脫한 풍격의 사로 노래했다. 결과적으로 소식의 폄적은 전통의 婉約한 풍격의 사와는 다른 새로운 풍격의 사를 탄생시켰고 이는 다시 당시 문단에 영향을 주어 송대 詞風의 변화를 이끌었다.
이 논문은 포스트-트루스 시대의 진리와 비진리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그 시사점을 김수영의 「반시론」 을 통해 얻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포스트-트루스는 사실보다 감정이 정치적 영향력을 미치게 된 현상을 의미하는 단어로, 2016년 옥스포드 사전 올해의 단어로 선정된 신조어이다. 진리와 비진리의 문제는 역사의 혼란기마다 반복되어 왔다. 그러한 점에서 김수영이 어두운 시대의 비진리를 폭로하고자 했던 「반시론」 은 현재에도 큰 시사점을 던져준다. 이 논문에서 진리와 비진리의 문제는 「반시론」 에 등장하는 철학자인 하이데거의 『존재의 시간』에서 비은폐로서의 진리를 가리키는 알레테이아라는 개념을 통해 접근하였다. 이를 통해 김수영의 「반시론」 에 대하여 밝혀낸 것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시인은 죽음을 향한 존재이고, 둘째, 시인을 예언자적인 반신적 존재이며, 셋째, 반시는 비진리의 폭로를 통해 진리의 효과를 내는 실험시라는 것이다. 이러한 점을 통해 우리는 김수영의 「반시론」 으로부터 포스트-트루스 시대에 어떻게 진리를 지킬 것인가에 대한 역사적 교훈을 얻을 수 있다.
박두진은 기독교 세계관의 관점에서 인간의 원죄의식과 타락한 본성, 이를 대속하는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시로써 노래하였다. 그에게 예수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실현한 인물이자 죽음을 이기고 인류를 구원한 하나님의 아들이었다. 특별히 사도행전 연작에서는 그리스도의 군사된 소명의식으로 시대와 민족을 향한 사도적 의지를 강하게 표출하였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주어지는 고독과 고통을 기꺼이 감내하려는 정신주의자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김춘수는 역사가 주는 폭력을 체험한 후 역사의 실체에 대한 탐구의 결과로서 예수를 소재화하였다. 그에게 예수는 가장 무력한 자의 본보기로서 역사의 희생양이었다. 실체를 드러내지 않는 역사라는 괴물 앞에 예수는 사랑의 화신으로 삶을 마감한 인물이었다. 또한 예수는 부활이라는 알레고리를 통해 인류에게 하나의 심리적 진실로 자리한 신화적 인물이기도 했다. 박두진이 자신의 실존의 의미를 그리스도를 향한 열망으로 시화하였다면 김춘수 시인은 역사의 이율배반성에 대한 인간 존재의 슬픔과 그의 고통 콤플렉스를 시 쓰기 작업으로써 극복하였다.
횡룡입수로 결혈되는 혈은 그 위치에 따라 세 가지의 유형이 나타나는데 유형별로 구분하여 부르는 경우도 있지만 일반적으로 동일하게 ‘횡룡입수’로 여기고 있다. 이는 횡룡입수에 대한 개념이 풍수학계나 술사들 사이에서도 명확하게 정의되어 있지 않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본 연구는 현재 혼용하여 인식되고 있는 횡룡입수에 대한 세 가지 유형의 결혈조건과 결혈 원리를 분석하여 그 특징을 규명하는 동시에 횡룡입수의 개념을 정립하는데 목적이 있다.
횡룡입수의 세 가지 유형별 형태에 대하여 분석한 결과 각각 결혈조건이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 제1형의 경우 세 가지, 제2유형은 여덟 가지의 결혈조건이 있으며, 제3유형은 직룡입수와 동일한 결혈조건을 갖추고 있다. 횡룡입수의 각 유형별 결혈조건을 고려한 지기입력의 원리는 제1유형의 경우 당배 귀사가 뒤에서 쳐주어 혈장 쪽으로 지기를 입력하는 원리가 되며, 제2유형은 당배귀사의 힘에 의하여 일정거리 내려오다 혈장으로 지기를 입력시키는 혈 형성 원리가 성립되며, 제3유형은 일반적인 직룡입수혈의 형성원리가 성립된 다. 이러한 결혈조건과 지기입력 원리를 근거로 횡룡입수를 유형별로 개념과 용어를 정리하면 제1유형은 ‘횡룡입수’, 제2유형은 ‘횡락섬룡입수’, 제3유형은 ‘횡락직룡입수’라 정의할 수 있다.
淸代의 哲學은 明道救世와 實事求是였다. 즉 ‘도를 밝히고 세상을 구 하려는 것’이며. 淸代 學術 變遷의 요점은 史學으로 經學을 포함하는 것 이었다. 淸代의 學術은 乾嘉考證學이 으뜸이긴 하나, 淸朝의 특색이 진 보적이고 창의적인 시대에 걸 맞는 思想이 없다는 것이 아쉽다.
博學多識한 楊守敬은 金石學을 좋아하고 考證學에 저명한 학자로, 수 많은 자료들을 섭렵하여 목록을 작성하고 다방면의저술을 편찬하여 淸 末에서 民國 초기의 가장 걸출한 인물로 회자되고 있다.
楊守敬의 學書과정을 보면, 顔眞卿을 宗으로 삼았고, 阮元과 何紹基 의 書를 배웠으며, 그는 전통적 기법을 학습하고, 다른 碑帖에 있는 특징 들을 반영하며, 학습 상 相互 補充的이며 다른 碑帖과의 관계를 辨證的 으로 인식하였다. 그의 書를 보면, 篆書의 書體는 書法에 대한 求學精神 이 나타났고, 楷書작품은 風格이 각기 달랐으며, 결체 상 에서 새로운 조 형을 구현했다. 행서는 “碑帖融合”을 지향한 그의 書學思想이 반영된 결과이며, 蘇東坡, 黃山谷의 훌륭한 점을 傳受하였다.
楊守敬은 서예가이며 서예 이론가이기도 했는데, 그의 저서『學書邇 言』에서는 우수한 書藝家가 반드시 갖춰야 할 素養인 ‘五要’를 주장하였 고, 필법에 있어서는 ‘八面出鋒論’과 ‘楷法源頭說’을 주장하였다.
특히, 그는 중국 정통 서예를 일본에 전하여 日本 書藝界에 큰 영향을 끼쳤으며 ‘日本 書藝 近代化의 아버지’라 불린다.
또한 그는 中國의 서학사상과 서예를 學問的으로 정리하여 中國 書藝 史에 큰 業績을 남겼고, 韓國과 日本의 書學, 地理, 圖書 등에도 큰 족적 을 남겼다.
楊守敬의 著書로는,『激素飛淸閣評碑記』『楷法溯源』『激素飛淸閣評帖 碑』『楷書邇言』외에 83種이 있으며 40만권의 책을 소장한 藏書家였다.
Quoc su di bien is a historical book written in Sino language which recorded the events taking place under Nguyen dynasty, from the reign of Gia Long King to the reign of Thieu Tri, and was compiled by Phan Thuc Truc around the 4th to 5th years of Tu Duc title (1851-1852). The work at present has two variants: one of them is the handwritten version code A.1045/1-2 stored in the Institute of Sino – Nom Studies and the other was printed from microfilm, code A.1045/1-2 of the Old French School of the Far East, which was edited by researchers in the Institute of New Asian Studies, Chinese University of Hong Kong and whose Sino language version was produced by Tran Kinh Hoa and printed in 1965 in Hong Kong. When reproducing, Mr. Tran Kinh Hoa tried his best to restore the special Nom and Sino characters of Vietnam and all the unclear cases were marked O for further inspection. However, due to use of scanned materials, there remained a lot of mistakes. The work provided a deep analysis on the mistakes and errors of the version QSDB printed in Hong Kong in order to show that Vietnamese, like some other people influenced by Chinese culture such as Japan and Korea, had created their own Sino character system different from China’s. For proper explanation about the unique Sino character system of each country, the researchers should facilitate themselves with the sound knowledge of national culture, history, language and psychology of such country. Therefore, we may avoid the mistakes due to insufficient knowledge.
We review recent results on superhump period variations in SU UMa-type dwarf novae. Our statistical studies have revealed that the evolution of the superhump period is basically composed of three stages: stage-A, during which the superhump period is long and constant, stage-B, during which the superhump period increases as the superoutburst proceeds, and stage-C, during which the superhump period is short and constant. We also introduce a new method of estimating a mass ratio using the stage-A superhump period. This method can extend to, for example, low mass X-ray binaries or AM CVn stars if the stage-A superhump period is well determined.
In this work we present the results of light curve analysis for two cataclysmic variables detected recently in the SDSS project: SDSS J090350.73+330036.1 and J150240.98+333423.9. Photometric observations of the rst were obtained during a superoutburst in May 2010. Our observations clearly indicate the presence of superhumps in the light curves, suggesting SDSS J090350.73+330036.1 is an SU UMa dwarf nova. We determined the period of the superhumps. We also carried out fitting using a spiral-arm model in order to determine parameters of the accretion disk, hot line, and other components of this system. Photometric observations of the second, J150240.98+333423.9, were obtained during the post-maximum decline, during April-June 2012. Photometric variability of this system has been studied in an inactive state. We obtained its parameters via a combined model fitted to the observed light curves by X2 mini- mization.
蘇軾은 중국 北宋시기의 문학가, 정치가, 사상가, 서예가이다. 현재 전해지는 그의 그림이 매우 적기 때문에 학계에서는 畫史 에서 그의 존재를 거의 논의하지 않았다. 그러나 실제로 소식 의 畫學사상은 宋代이후의 畫壇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본고에서는 3부분으로 소식의 화학사상을 천명하였다. 첫째, 그는 화가에 대해 ‘人品’을 요구하였다. 그는 고아한 人格이 畫 道의 근본이라는 견해를 제기하고, 회화는 ‘技’에서 ‘道’로 나갈 수 있는 통로하고 천명하였다. 이러한 견해는 회화를 ‘技’에서 ‘道’로 한 단계 끌어 올려 文人畫가 정식으로 확립하는데 중요 한 공헌을 하였다. 둘째, 그는 화가에 대해 ‘涵養’을 요구하여 ‘士人畫’라는 개념을 명확하게 하였다. 셋째, 그는 회화의 ‘意境’ 이 총체적인 주요사상이라는 것을 제기하였으니, 곧 ‘畫中有詩’ 라는 것이다. 이외에 필자는 明代胡應麟이 열거한 소식의 주요 친구들의 신분분석을 통해 소식의 친구들 중에 화가 혹은 화단과 밀접한 인물들이 50%를 초과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따라서 宋代에 출현한 주요 화학 저술은 대부분 소식과 직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소식이 畫史에서 지위가 견고한 것은 그가 회화기교가 뛰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그가 문단에서 영수적인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그의 화학사상이 문단에 광범위하게 영 향을 주어 화단에 깊이 침투되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총괄적으로 말하면, 중국 문인화의 4개 요소는 ‘人品’, ‘涵養’, ‘意境’, ‘筆墨’인데, 그중에 앞의 3요소는 모두 송대에 이미 형성 된 것으로, 소식 및 그 학파가 이를 처음으로 제창하였다고 할 수 있다. 모종 의의 상에 소식은 중국 문인화 이론의 기초를 다졌다고 할 수 있다. 게다가 소식은 중국 문인 중에서 특수한 지위와 영향력이 있어 그의 문인화에 관한 이론이 신속하게 화 단의 주요 사상으로 자리 잡게 되었다. 이는 宋이래 ‘抒情寫意’, ‘筆恣墨韻’을 중시하는 문인화가 되어 魏晉이래 ‘尊神權’, ‘重教 化’, ‘重形似’, ‘勾勒填彩’의 院體風格을 타파하였다. 그 결과 중 국 전통회화예술의 풍격이 크게 전환하는 직접적인 계기를 마 련하였다.
조선이 19세기 말 20세기 초 제국주의 세력으로부터 국가적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할 때 다수의 서구인들이 조선을 방문했다. 이들 중의 일부는 모국으로 돌아간 이후 자신들의 경험을 다양한 형태의 글로 재현했다. 특히 미국에서 파송된 선교사들의 경우 편지, 잡지기사, 팸플릿 안내문, 연설문, 일기, 여행기, 및 기독교 소설과 같은 ‘잡다한’ 글들을 기록했다. 미국 선교사들이 남긴 다양한 출판물 중에서 본 논문은 엘라수 캔터 와그너(Ellasue Canter Wagner)의 김수방과 조선에 관한 이야기들 (KIM Su-Bang and Other Stories of Korea)과 애니 배어드(Annie Baird)의 '동트는 조선' (Daybreak in Korea)을 산문이론으로 접근한다. 일부 학자들은 김수방과 조선에 관한 이야기들이나 '동트는 조선'과 같이 기독교로 개종한 조선인들의 삶을 기록한 서사를 ‘선교소설’로 구분한다. 기존의 주장과는 달리, 본 논문은 배어드와 와그너의 글을 ‘여행서사’로 분류한다. 배어드와 와그너의 작품에 등장하는 조선인들의 삶과 당시 두 선교사 작가들이 글을 쓸 때 처해있던 상황을 볼 때 이들의 글을 여행서사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하다는 것이 본 논문의 쟁점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98호 경기도도당굿 군웅거리 선굿춤의 순서와 시작위치, 방수밟기 방향에 대한 규칙성을 찾아 이론을 정립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무녀 오수복은 1990년 10월 66세에 보유자로 인정되어 2005년까지 경기도도당굿을 직접 연행했다. 82세 무렵 병석에 들었고 2011년 12월 87세에 사망했다. 오수복의 군웅 선 굿 영상자료는 1986년부터 2003년까지의 것을 사용했다. 영상 14편을 도표로 만들고 그 내용을 비교 분석하 였다. 영상자료 분석 결과는 다음과 같다. 군웅거리 순서는 크게 두 개의 형식으로 연행되었다. 첫째는 ① 부채방울놀음-② 장삼놀음-③ 소머리놀음 -④ 징놀음-⑤ 닭놀음(활놀음 포함)-⑥ (소매놀음)-⑦ 쌍군웅의 순서이다. 둘째는 ① 부채방울놀음-② 장 삼놀음-③ 소머리놀음-④ 닭놀음(활놀음 포함)-⑤ (소매놀음)-⑥ 징놀음-⑦ 쌍군웅의 순서다. 1993년과 1994년, 그리고 2000년 이후 현재까지 연행되고 있는 방식은 첫 번째이다. 선굿춤 시작 위치는 실제 마을굿과 공연용에 차이가 있어야 마땅한데, 오수복은 보유자로 인정된 후 공연용 위치에서 선굿을 시작했다. 마을굿 형식은 1986년 이용우의 지시로 단 한번 굿상의 남쪽에 서서 북쪽을 향해 선굿을 했다. 1990년 이후의 영상은 모두 본상과 군웅상의 중앙에서 남쪽을 향해 군웅굿을 연행했다. 하지만 공연과 굿을 구별하여 전통 의례 방식을 정립하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군웅 선굿춤의 방수밟기 방향은 14편의 영상 중 9편이 좌회선으로 돌았고, 4편이 우회선, 1편만 좌회선과 우회선을 혼용하여 돌았다. 1990년대 영상들은 주로 좌회선이다. 90년대는 오수복의 2000년대 활동 상황에 비하여 신체적․정신적 건강이 양호한 때이므로, 신체기억에 의한 좌회선 표현이 자연스럽게 몸에 익어서 동 작된 것이라고 보았다. 본 연구는 오수복 사후, 이수자들의 군웅거리 집전에 있어서 특히 혼란을 일으키고 있는 선굿춤의 순서와 시작위치, 방수밟기의 원형성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하고자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