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연구는 연구개발투자와 기업성과 간의 관계에서 정치적 연계의 조절효과를 관찰 한 연구이다. 그동안 기업의 연구개발투자와 기업성과 간의 관계에 관한 다양한 연구가 진행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혼재된 연구결과로 인해 연구개발투자의 효과성과 중요성에 대한 혼란은 가중 되고 있다. 따라서, 본 연구는 연구개발투자와 기업성과 간의 관계를 보다 명확하게 관찰하기 위해 연구개발투자의 근본적 특성에 초점을 맞추었으며 나아가 비시장전략으로 구분되는 정치적 연계를 조절변수로 채택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본 연구는 우리나라 의료산업에 속한 166개 기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하였으며, 연구결과 의료산업에서 기업의 연구개발투자는 기업성과에 부 (-)의 관계가 있음이 관찰되었다. 더불어 정치적 연계가 기업의 연구개발투자와 기업성과 간의 부 (-)의 관계를 완화시키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 같은 연구결과는 자본력과 기술력이 충분히 갖추어 지지 못한 우리나라 의료산업에서 연구개발투자와 함께 비시장전략의 중요성을 시사하고 있다.
『나선계단과 기타 시들』의 구조는 가이어를 형상화한 것이다. 시집의 서시는 나선계단의 초입 즉 작은 원, 시집의 결론부분인 『젊은 그리고 나이든 여인』은 나선 계단의 마지막 부분 즉 큰 원을 연상시킨다. 이 가이어는 예이츠의 철학과 역사관을 나타내는데 시집의 시작을 신생 아일랜드 자유국의 분열된 정치판을 그리고 시집의 끝을 고대 유럽 특히 그리스의 신화와 희곡으로 맺는다. 이렇게 아일랜드와 고대 그리스를 가 이어로 연결시킨 예이츠의 의도는 분명하다. 비록 지금은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분열되어 있지만 미래에는 아일랜드가 동서양을 아우르는 보다 포용적인 나라가 될 뿐만 아니라 고대 그리스에서 시작한 인류의 문화적 철학적 전통도 계승하게 될 거라는 시인 자신의 철학과 역사관을 표현한다.
오스트리아와 한국은 제2차 세계대전 후 강대국들에 의해 분단되었다 는 과정상의 유사점에도 불구하고, 통일과 분단이라는 상반된 상황으로 진행되어 왔기에, 오스트리아식 영세중립화 통일방안은 국내 통일 연구 의 중요한 주제 중 하나로 고려되어 왔다. 그러나, 최근 국내 연구들이 제시하는 오스트리아식 영세중립화 통일방안의 한반도 적용 가능성은 어 떻게 오스트리아가 영세중립국으로 통일을 이뤘는지 과정을 중심적으로 다루지만, 왜 영세중립화 정책을 택하게 됐는지에 대한 논의는 이뤄지지 않는다. 이에 본고는 1955년 냉전 시기 오스트리아가 영세중립화 통일방 안을 정책으로 택하게 된 이유를 미 국무부 외교문서와 미 중앙정보부 문서에 기초하여 조사하였다. 이를 통해 오스트리아식 방안은 단순한 영 세중립화 정책이 아니라, 냉전 시기 오스트리아에 국한되어 강대국들에 의해 적용된 정책이기에, 동일한 방안을 한반도에 적용하는 것에 대한 연구는 심층적인 재고가 요구되어짐을 논하고자 한다.
이 연구의 목적은 전승4국에 의해 각각 4분할된 전범국 독일의 동서독 분단과 베를린 분할, 소련과 동독 당국에 의한 베를린 장벽의 구축, 그리 고 동독 주민들의 여행 자유 개방에 따른 베를린 장벽 해체 등을 통해 동 서독의 통일을 고찰하는 데 있다. 연구방법으로는 전승4국과 양독2국 간 쟁점이 되어 온 베를린 장벽의 구축과 해체에 관하여 헤겔의 정(正, These)→반(反, Antithese)→합(合, Synthese) 변증법을 적용하였다. ⓛ 전승4국이 전전(戰前) 회담의 산물인 전범국 독일을 동서독 분단과 동서 베를린 분할을 해 놓은 국제질서하에서 패권을 장악하려는 의미에서의 정 (正), ② 그중에서 소련과 동독 당국이 기존 국제질서를 깨고 공산주의 패 권을 유지하고자 베를린 장벽을 구축한 의미에서의 반(反), 그리고 ③ 베 를린 장벽 해체가 의도되지는 않았지만 동독 주민들의 이주와 이탈을 넘 어서 동유럽의 민주화 일환으로 나타난 촛불시위, 동독 SED 대변인 샤보 브스키(G. Schabowski)의 기자회견에서의 ‘즉시, 지체 없이’ 국경개방 허 용 발언의 말실수 등이 ‘부정의 부정’으로 지양(止揚, Aufheben)되면서 베 를린 장벽이 해체되는 수순을 밟게 되는 의미에서의 합(合)인 것이다. 요 컨대 미국과 소련 중심의 전승4국은 전범국 독일을 분할하여 패권이란 국 제질서를 지속하고자 했으나, 오히려 소련과 동독이 베를린 장벽 구축에 나서면서 그들만의 공산권 체제유지를 강화하고자 했다. 그러나 동서독 여 행 자유와 국경개방 시위에 나선 동독 주민들의 자유화와 동독 당국의 개 방에 대한 모호한 태도 등이 중첩되면서 베를린 장벽이 해체되기에 이르 렀다. 따라서 베를린 장벽의 해체는 독일 통일을 앞당기는 단초가 되었고, 정상적인 통일 독일로 자리매김한 것은 더이상 분단 독일이 지속될 수 없 다는 변증법적 논리를 깨우쳐준 사실이 아닌가 한다.
이 연구의 목적은 1945년 이후 해방 이후 70년이 경과 하는 시점에서 오덕 수 감독의 영화 세계가 곧 재일동포 세계라는데 초점을 두고 그가 영화에서 표 현하고자 했던 재일동포란 어떤 존재인가에 대해 살펴보는 데 있다. 오덕수 감 독은 자신은 물론이고 재일동포들이 자신의 역사에 무지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이를 계몽하는 차원에서 재일동포 다큐멘터리 영화를 제작했다. 영화의 주요 내용은 외국인 등록문제, 지문날인제도 문제, 북송운동, 전후보상과 여성차별, 헤이트스피치 등 일본 근현대사를 망라하는 재일동포의 차별문제를 다루었다. 연구결과, 재일동포를 차별의 관점에서 다룬 그의 영화 세계는 다음과 같이 요약된다. 첫째, 오덕수 감독의 영화 세계의 근저에는 와세다대학 졸업과 동시에 도에이 입사 후 노동조합운동의 영향으로 재일동포 지문 날인 거부 운동 등 차별문제에 관한 많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둘째, 오덕수 감독은 일본 영화감독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영향으로 일본 영화 계에 입문하게 되었지만, 오시마 감독과의 관계는 사상적 측면에서 철저 히 분리된 길을 선택하였다. 셋째, 오덕수 감독은 일본을 지배하는 이념 가운데 천황제와 부락 차별이 가장 큰 문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재일동 포 문제를 다루면서 더욱 확신하게 된 것으로 생각된다. 이것은 오늘날 일본 내 헤이트스피치 문제로도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넷째, 오덕수 감독의 재일동포 관련 기록영화의 목적은 재일동포의 삶을 통해 일본의 사회문제를 재조명하여 일본의 불합리를 표현함으로써 또 다른 방식의 일본을 묘사하고 있는 듯하다. 그는 영화를 통해 일본의 문 제가 곧 재일동포의 문제 그 자체라고 규정하였다. 결론적으로 오덕수 감독은 재일동포의 삶을 통해 ‘일본의 존재’를 표현하는 수단으로 일본의 불합리성을 영화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현재 그의 영화는 일본 정부에 의한 재일동포에 대한 이중기준과 불합리, 재일동포 의 디아스포라적 존재로서의 정체성 찾기를 독특한 영상 세계를 통해 보 여주고자 했던 것으로 평가된다.
이 글은 한국의 주요 영토분쟁과 그 해결방향을 총론적 관점에서 분석 하기 위한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의 영토분쟁의 개념·유형·원인·해법, 한국의 영토분쟁의 역사적 추이 및 쟁점: 총론적 이해, 한국의 영토분쟁 의 개별적·다자적 해결방향을 살펴본 후 결론을 도출해본 것이다. 한국은 지정학적 요인이 크게 작용하여 외침이 많았다. 외침 및 한반도에서의 전쟁의 결과로 인적·물적 희생은 물론 영토분쟁문제로 이어지기도 했다. 백두산정계비와 조중변계조약, 간도, 녹둔도, 독도, NLL, 이어도(7광구 포함) 등이 바로 그것이다. 또한 1994년 유엔해양법협약의 발효이후로는 해양관할권분쟁도 부상하게 되었다. 독도와 이어도는 우리가 실효적으로 지배해오고 있지만 다른 영토문제는 통일 후 우리가 해결해야 할 문제도 남아 있다. 문제의 영토와 관련해서 외교적(주로 당사국간 해결을 위한) 대비노력과 군사적 대비(방위충분성전력 확보)노력이 요구된다. 우리의 영유권을 분명히 하고 영토수호능력을 강화해 나가야 하며, 점진적으로 다자적 영토해결노력도 함께 검토·모색해 나가야 할 것이다.
본 연구의 목적은 북한의 특수성을 고려하여 북한의 핵무기와 화학무 기, 생물무기를 포함하는 대량살상무기 폐기를 위한 협력적 위협감소 (CTR) 프로그램의 적용방안을 모색하는 것이다. 북한의 대량살상무기 폐 기를 위해서는 국제레짐, 다자안보협의체 등을 활용한 협력안보 차원에 서 접근해야 한다. 그 대표적인 방안이 미국의 협력적 위협감소(CTR) 프 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CTR 프로그램은 ‘넌-루가 프로그램’이라고도 하는데, CTR은 핵무기뿐만 아니라 화학무기, 생물무기 등 대량살상무기 전반의 제거를 목표로 하는 포괄적 프로그램이다. 구소련 3국에 적용되 었던 CTR은 좋은 선례이기는 하지만, 북한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북한의 특수성이 고려되어야 한다. 그 특수성은 북한이 처한 안보환경의 차이,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투자한 기회비용과 동인, 비대칭 군비통제에 따른 보상방안을 들 수 있다. CTR의 북한 적용을 위해서는 북한의 특수성을 감안한 북한의 안보환경 고려, 북한 대량살상무기 실태 파악, 경제적 보 상과 재원마련 대책, 북한식 CTR 모델 정립, 사찰 및 검증방안 마련이 필요하다.
남한과 북한은 6.25전쟁 후 간헐적으로 신뢰구축과 군비감축을 협의하고 있지만 상호 정치적 욕망에 의한 형식적 논의에 불가하고 실질적으로는 군사력 증강을 지속하여 추진하고 있다. 군사력 증강에 따른 군비경 쟁은 경제발전의 저해는 물론 정치·사회적 비용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러한 비용은 시간이 지날수록 커지며 남북한의 통일을 염두에 두었을 때 그 통일비용은 감당할 수 없는 부담으로 다가올 것이다. 한반도의 통일 은 분단의 역사를 종식시켜 한민족의 번영을 추구하고 세계 평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통일은 남북한의 경제력 차이에 의한 소요비용과 사회적 혼란 등 여러 가지 문제가 야기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통 일에 소요되는 비용을 산출하여 재원을 마련하고 준비를 한다면 경제적 부담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문제점을 설명하기 위하여 본 논문은 통일비용 조달을 위한 예산절감이 군비감축으로 어느 정도 기여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도에서 군비감축의 접근방법과 비용을 미시적 차원에서 산출하였다. 군비감축으로 절약된 예산은 통일비용과 비교하여 설명하고, 군비감축을 통하여 절약된 비용을 축적하여 향후 통일비용으로 활용할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하였다.
2000년대 중반부터 본격적으로 북한에 유입된 남한 미디어는 북한 사회변화의 주요한 지표가 된다. 국내 언론 보도 및 탈북민들의 증언을 통해 폐쇄된 북한 사회에서도 남한 영상물을 시청한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이 분야에 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북한 내외 부정보 확산 현상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의 여부다. 북한에서 외부정보를 접한 북한 주민의 의식과 사회현상 더 나아가 북한체제 변화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가의 문제이다. 본 연구는 김정은 시대에 한국에 입국한 탈북민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통해 북한 내 외부정보 실태를 파악하고, 이들의 인식변화 과정을 분석한다. 의식변화 추이는 남한과 남한 사람, 북한 정권에 대한 인식, 민주주의와 인권 등의 세부항목별로 조사가 이루어졌다. 북한에서의 남한 미디어 이용실태를 바탕으로 향후 남북한 통일과정에서 북한주민의 ‘마음 얻기’를 위한 미디어 활용방안을 모색한다.
이 논문은 민주주의와 시민의 성장 간의 관계를 규명한다. 특히 이 논문은 아이리스 영(Iris Young)의 소통적 민주주의(communicative democracy)에 주목한다. 영에 의하면, 소통적 민주주의란 공적 의사결정과 소통과정에서 사회적 약자의 시각이 배제되지 않는 민주주의다. 이 논문은 소통적 민주주의의 관점에서 민주적 소통이 사회적으로 배제된 시민의 성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밝혀보고자 하며, 사례로서 세월호 운동을 통해 민주적 소통방식이 세월호 운동 참여자들의 성장을 어떻게 견인했는지 살펴보도록 하겠다. 이를 통해 이 논문은 선거민주주의 혹은 제도권 중심의 엘리트 민주주의를 넘어, 민주적 주체와 그 소통방식에 대한 확장된 이해를 가능하게 함으로써, 보다 정의롭고 실질적인 민주주의의 이론정립에 궁극적으로 기여하고자 한다. 결국, 기존의 민주주의는 주기적인 선거 중심으로 정치적 소통과 의사결정 방식에 대해 이해하는 데 그쳤지만, 이 논문은 선거 중심의 협소한 이해에서 벗어나 민주적 소통과 시민적 성장의 의미를 확장하는데 기여하고자 한다.
현재 사회서비스원은 시범사업을 거쳐 전국 광역지자체로 확산되는 시점에 있다. 특히, 대전시의 경우 17개 시‧도 중 10번째로 2021년 1월에 개원하고, 본격 운영 중에 있어 사회서비스원의 공공성 실현을 위한 더욱 더 근본적이고 구체적인 검토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차원에서 대전시 사회서비스원의 성공적 정착과 활성화를 위해 시범 사업의 성과와 문제점 검토 등 현황 분석을 하고, 대전시의 사회서비스원의 설립 시 운영 방안과 예상 문제점을 검토하였다. 이를 토대로 대전시 사회서비스원의 공공성 강화를 위한 방안을 제안해 보고자 한다. 대전시 사회서비스 원의 공공성 강화 방안으로 유사기관 및 계획과의 중복(첩)의 비효율성 해소, 독립채산제 폐기, 많은 재정 및 예산 투자 확보 방안을 제시해 보았다.
본 글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에 송국리형문화를 기반으로 하는 거점취락을 대상으로 사회발전 양상을 살펴보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송국리형문화 단계가 과연 어떤 형태의 또는 어떤 수준의 사회였는지 들여다 보기 위함이다. 이를 위하여 당시 취락사회의 정치, 경제, 사회, 이념체계와 관련되는 고고학적 맥락을 추출하여 사회적 수준과 발전양상을 살펴보았다. 송국리형문화의 취락사회는 Chiefdom 사회에 깊숙이 진입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모든 취 락사회가 동일한 체계로 운영된 것은 아니었다. 우리의 고고학적 환경에서 사회 발전과 변화에 영향 력을 행사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핵심요소들은 거점취락에서 활성화되어 있었다. 족장 성격을 갖는 유 력자의 존재와 지도력, 유력자와 그 공동체 또는 세력집단 간 갈등과 같은 사회현상, 대규모 공사를 위한 노동력의 집결과 부의 재분배, 위세품의 존재와 장거리 교역, 사회적 위계화와 장인집단(전문 화·분업화)의 존재, 거점취락과 지역사회의 유기적인 연계망, 사회결속을 위한 취락의례(제의)의 존 재 등은 송국리형문화단계의 취락사회, 특히 거점취락에서 볼 수 있는 현상들이었다. 비록 모든 취락 사회에 적용될 수 있는 일반화·보편화 현상이라고는 할 수 없지만, Chiefdom 사회의 발전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문화요소들임에는 부정할 수 없다. 송국리형문화를 영위했던 다양한 취락사회는 내적·외적으로 사회적 관계와 지역적 적응 속에서 상사·상이한 체계로 발전해갔을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공통되는 사회발전 양상과 지역성을 고려하여 우리 형편에 맞는 사회발전 모델과 범주의 체계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 연구는 해방 이후부터 제1공화국 시기까지 이승만의 권력 기반이 된 주요 변수를 중심으로 우익 정치세력 내에서 그의 권력 장악 과정을 살펴보았다. 우익 정치세력 내에서의 권력의 장악에는 여러 가지 변수가 작용하였으나 이 중 대중동원과 이를 실현하기 위한 반공 이데올로기를 주요 변수로 삼아 설명하였다. 이승만은 권력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정치 적 힘 겨룸에 우익 대중단체와 경찰, 군부, 청년단체 등의 대중을 적극적 으로 활용하였다. 또한 이승만은 일제의 귀속재산 불하와 미국의 무상원 조 등을 전략적으로 이용하여 측근들을 중심으로 하는 충성과 시혜로 얽 힌 후원-피 후원의 구조를 만들고, 농지개혁을 단행하여 농민을 자신의 지지 기반으로 끌어들여 그의 통치 수단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승만은 '반공'과 '북진통일'을 앞세운 반공 이데올로기를 지배 이데올 로기도 활용하였다. 반공 이데올로기는 실제 대북용이 아니라 대내용이 었다. 북진통일 운동은 주민들을 하나가 되게 하여 철통 같은 반공 태세 를 강화하고, 그것의 영도자인 자신의 권력에 복종하게 했다. 권력 장악 과정에서 나타난 부산 정치파동과 발췌개헌은 이승만이 1960년까지 장 기 집권할 수 있는 토대가 되었다. 제한된 구조적 틀 속에서 이승만이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대중동원과 반공 이데올로기라는 두 요소를 잘 활용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실업·소득급감·소득단절의 고통이 불평등하게 배분되고 있다. 이대로라면 ‘위기가 불평등을 키운다’는 공식이 다시 한 번 입증되는 나쁜 선례가 생겨날 것이다. 이를 막는 방법은 사회보호 시스템(social protection system)이 적시에 제대로 작동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그게 원활치 못한 상황이다. 위기 시 가장 중요하게 작동해야 할 고용안전망과 소득지원체계는 불비하고, 위기 시 상식처럼 통용되는 적극적 재정정책(확장 재정정책)은 재정적 보수주의에 발이 묶여 제대로 가동되지 못하고 있다. 사회경제적 차원에서만 보자면 한국의 위기관리 및 위기 대응 능력은 좋은 점수를 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따라서 이 논문은 이런 한국의 사회보호 시스템을 어떻게 진화시킬 수 있을지 그 개혁 전략을 논의하는 데 초점이 있다. 특히 복지정치적 관점에서 어떤 기획이 필요한지 그 구체적인 방안들(프로젝트)을 제안하고자 한다. 또한, 최근 단행된 한국 사 회보호 시스템의 보강 조치들(예컨대 전국민 고용보험, 국민취업지원제도)을 톺아보고, 향후 어떤 점들이 보완되어야 하는지를 논의하고자 한다. 이 논문은 코로나19를 계기로 한국의 사회보호 시스템이 그 본연의 기능―‘위기조절기제’이자 ‘사회적 방파제’―을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가이드 하는 게 최종 목표이다.
최근 우리나라 문화콘텐츠의 위상은 우리 스스로도 놀랄 정도로 높아져, 전 세계에서 주류 문화의 하나로 자리매김해 나가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전 세계적 한류 열풍의 태동은 중국에서 시작되었고, 중국의 거대한 문화 소비시장이 우리나라 문화 콘텐츠 성장에 밑거름이 된 것은 확실하다 하겠다. 그러나 전 세계적 신(新)한류 열 풍과는 달리 한류의 출발지인 중국에서의 우리나라 문화콘텐츠는 최근 배척되고 심지어 혐한의 분위기마저 강하게 감지되고 있는 상황이다. 따라서 본 논문은 한중 간 문화산업 교류의 유형부터 검토하여, 그 과정에서 어떠한 문제점들이 있어 현재의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는지 정치·경제적 측면에서 분석하여 그 개선점과 시사점을 도출하고자 시도하였다.
역사적으로 중국이라는 단어가 내포하는 의미는 다양하였다. 정치적 개념뿐 아니라 다변하는 지리적 개념, 애매모호한 문화적 개념, 복잡한 민족 개념, 조공체계나 중화제국, 예의지방이나 해양무역을 포함한 개념으로도 설명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이 중국이고 어디까지가 중국인가 하는 문제는 논란의 대상이었다. 이에 현대 중국은 변강프로젝트를 실시하여 새롭게 중국 만들기를 시도하였다. 본고에서는 왜 새롭게 중국 만들기를 시도하는지에 대해 변강프로젝트(동북공정, 신강항목, 서남항목, 북강항목, 티베트항목)를 통해 그 의미를 분석하였다. 새롭게 중국을 설정하는 과정과 방법, 중국 전통 만들기 패턴, 자고이래 중국론의 역사적 적용 그리고 자고이래 중국론의 패러독스를 분석하였다. 중국 범주를 아편전쟁 이전의 청대 영역으로 규정하고 이 지역의 모든 역사는 원래부터(자고이래) 중국 역사로 규정하는 새로운 중국 만들기는 역동적인 역사 변화를 왜곡하는 문제점이 있다. 다민족 국가의 대일통을 주장하며 다원성을 강조하고자 하지만 결과적으로 다원성은 상실되고 획일된 국가주의 역사가 탄생하는 것도 문제이다. 변강프로젝트를 통해 변강안정, 민족단결, 국가통일을 달성하고자 하였지만, 변강지역 민족의 역사적 정체성을 무시하는 몰역 사적 이론 적용의 폐해로 분열과 인접국과의 역사 분쟁을 야기하는 점도 성찰할 필요가 있다.
본고는 『석명』에 수록된 글자 중에서 유가철학적 인식의 특징이 보이는 글자들을 대상으로 분석하고 그 의미를 찾아본 것이다. 漢朝의 신유학은 정치의 시녀로 전락 하였다는 점과 도가와 법가 등 여러 사상이 혼재되었다는 점 등에서 非儒라고 비판 하기도 한다. 하지만 漢朝의 유학과 사상, 문화 등은 이후 중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전반에 걸쳐 직접적인 문화적 영향을 끼쳤다는 점에서 우리는 반드시 다양한 각도에서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시기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석명』의 字釋은 그 당시 사회적 문화적 상황에 대한 작은 정보를 제공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석명』의 仁· 誼·禮와 德에 대한 관념, 그리고 선악과 시비에 대한 유희의 해석에는 선진유학의 전통적인 유가철학적 관점과 더불어 동중서의 신유학적 관점도 함께 공존하고 있어서 동중서의 유학관이 유희가 살았던 漢朝 말기까지 널리 퍼져 있었고 영향을 끼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었다.
프로문학이 갖는 정치성은 어떤 스펙트럼을 보여줄 수 있을까? 蔣光慈는 기존의 평가(혁명+연애의 클리셰)와는 달리 색다른 소재와 콘셉트를 시도하여 프로문학의 地境을 넓혀간 작가임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존재의 외연을 확장하는 일. 감정의 파 동이 일어나는, 가장 내밀한 실존으로의 침잠. 이 모순된 방향의 움직임이 蔣光慈의 서사에서는 동시에 포착된다. 蔣光慈는 혁명의 파고를 관통하면서 첨예한 아이덴티티의 ‘경계’를 경험했던 문제적 인물들을 그려낸다. 주류 서사와 비주류 서사가 공존 하는 蔣光慈의 세계는 좌익문학사에서 독특한 위치를 점한다. 무엇보다 혁명의 관습 과 윤리가 힘을 잃는 내면의 깊은 곳, 그곳에서 마주하게 되는 공허함은 혁명 서사의 圖式을 뛰어넘는 어떤 울림을 선사한다. 본고는 그 울림과 함께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개체’의 존립 가능성을 蔣光慈의 『菊芬』 속에서 탐색해 보고자 한다.
Species composition and variation of catches in the coastal waters of Sinsan of Jeju Island were determined using samples collected by a set net from May 2014 to October 2015. During the survey period, a total of 55 species (51 species, 35 families and 11 orders in fishes, 4 species, 2 families and 2 orders in cephalopods) were occurred, and Perciformes (28 species) were dominant fishes in this area. In the number of individuals and biomass, the small pelagic fishes such as Trachurus japonicus and Scomber japonicus were occurred abundantly, and both species accounted for 95.9% of the total catch by a fishing logbook of a set net. In the results of length-frequency distribution of small pelagic fishes caught by a set net in Sinsan, T. japonicus showed a range from 3.5-19.1 cm (average 8.8 cm) and S. japonicus showed a range from 7.0-25.6 cm (average 16.8 cm). In addition, these were mostly immature fishes.
Dunhuang dance is one of the Chinese classical dance genres, and it is the dance with the most ethnic characteristics in the history of ancient Chinese dance. Incorporating the characteristics of the folk dance of the ancient Western Regions countries, and at the same time having a strong Buddhist color, it shows the ancient Chinese music and dance art, directly or indirectly reflects the living conditions of the ancient people, and contains the form and characteristics of ancient Chinese dances, and Chinese culture and history for more than a thousand years. Dunhuang frescoes preserve a large amount of ancient dance materials, which provide inspiration for contemporary dancers. Through the research and re-creation of Dunhuang mural dances, the dancers reproduced the dance costumes and music of ancient Dunhuang dances and enriched the content of contemporary Dunhuang dance works. However, there are not many academic studies on Dunhuang dance, especially in recent years, the research on the representative work of Dunhuang dance "Yuanqidunhuang" is unprecedented. "Yuanqidunhuang" looks at the creative inheritance of Dunhuang dance, and hopes to contribute to the development of related fields in the future through the systematic analysis of "Yuanqidunhuang". Therefore, this research takes the historical development of Dunhuang dance as a clue, through literature research, case studies, and video research on the Dunhuang dance "Yuanqidunhuang" created and performed in 2015. The characteristics of the work of "Yuanqidunhuang" are the background of its creation. Analyze characteristics, form and content, music, costumes, props, actions, etc. It is hoped that through this research, we can further understand Dunhuang dance, including the long history and rich meaning of Dunhuang culture, and ultimately contribute to the inheritance and development of Dunhuang danc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