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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
        2016.08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연구는 러시아의 극동진출과 제국주의 팽창과정에서 만들어진 측량과 그 성과물인 지도에 대해 분석하고, 해안선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실제 측량성과에 따라 한반도에 관한 지리정보가 신속히 유럽에 알려지게 되었음을 논증한다. 북경조약과 블라디보스토크항의 건립시기인 1860년을 중심으로 시작된 러시아의 군사용 지도 제작은, 1884년 조러 수호 통상 조약을 통해 조직적으로 이루어지면서 1902~3년 19매의 축척 1:420,000지도를 작성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1905년 러 ․일 전쟁 패배 이후로 한반도를 대상으로 하는 지도제작은 중지된다. 당시까지 가장 대축척인 이들 지도들은 유럽에 전파되어 한반도에 대한 가장 상세한 지리정보를 전달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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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
        2016.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In order to obtain scientific information for the conservation of Utricularia japonica Makino, rare plant species, we investigated life history, phenology, growth and distribution in the east coastal region of Korea. Seven habitats of U. japonica were confirmed in this study. Turion of U. japonica rests overwinter at the bottom and ripens at the water surface and then usually germinate and sprout when the water warms in spring. A single shoot grown from turion divided into several shoots. Shoot decomposition started in October and formed a new turion at the end of the decomposed shoot. Flowering period was from early July to late October. Percentage of flowering ramets was significantly low as 6.3%. U. japonica showed the fastest growth rate from April to July, the maximum growth in August and the highest biomass in October. U. japonica tended to be concentrated in larger ramets in the water depth of 50 cm~150 cm in Cheonjin lake. The main factors affecting the growth of U. japonica were water temperature and turbidity. The establishment and growth of U. japonica in Cheonjin lake were determined by responses to water temperature with seasonal change and to light conditions caused by the different plants. These conditions affect the temporal and spatial distribution of U. japonica and population change. The findings of this study would be helpful to provide the basic information needed for the conservation and restoration of U. japonic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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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5.
        2016.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Imcheong-gak[臨淸閣] was a familial residence constructed in the early half of the Joseon dynasty period. It was partially destroyed by a fire during the 1590s war[壬辰倭亂] with the Japanese, and another fire that was caused between 1631 and 1634. The inner chamber[An-chae] and the Sarang section[Sarang-chae] today is the result of a partial reconstruction that took place back in 1626 and again around 1634. The residence also went through some changes because the new Ondol[溫突] heating system had to be applied to the structure. Based upon sections that remain in their original forms, we can presume that the Imcheong-gak residence originally had an inner chamber which was composed of the following elements: A main structure which was built upon a foundation featuring a Matbae[맞배] roof, two “Ik’rang[翼廊, flank]” sections on the East and West sides of the inner chamber, and a “Haeng’rang[行廊, passage]” structure on the opposite side of the main structure. Unlike the main structure, other portions of the inner chamber were all built directly upon the ground, and showed multiple stories, with Matbae roofs of their own. We can also assume that the Sarang section in the south would have been a pre-Ondol[溫突] bedroom, with a Board platform[板房] and a Gomi-ceiling[Gomi-banza] fash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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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6.
        2016.04 구독 인증기관·개인회원 무료
        우리나라는 동북아 문화선진국으로 반도라는 지리적 특수 성을 활용하여 독자적 문화를 창출하고 자연환경을 비교적 잘 보전해왔다. 여기서 자연환경은 국가의 법률과 정책을 통 한 노력으로 그 가치와 상태를 유지·보전하게하고 국민들이 이를 통해 다양한 혜택을 향유할 수 있도록 하는 법률적 대상 으로서의 자연을 의미한다(문화재청, 2011). 특히 우리의 금 수강산을 배경으로 빼어난 자연환경은 기념물로서 천연기념 물이나 명승으로 지정되어 보호되고 있으며, 일부는 세계유 산으로 등재되는 등 국내를 벗어나 세계적으로도 그 우수성 을 인정받고 있다. 문화재로 지정된 자연환경은 일제강점기 이후 한국전쟁, 국토개발로 대별되는 근대화의 시기를 거치 면서도 독자적인 보호정책을 수립하고 관리하는 등의 문화 적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오늘날에 이르러 국가유산 정책은 자연환경 관련 정책이 오염방지와 오염에 따른 피해 구제가 강조되어 의례적으로 환경부나 산 림청을 중심으로 자연환경이 취급되고 문화유산은 문화재청 이 관할하는 것으로 인식되는 경향이 일반적인 견해로 통용 되고 있는데 자연환경 보호의 효시는 문화재분야였다는 사 실을 아는 사람은 드물다. 이에 본 연구에서는 자연환경 정책의 관점에서 관련 문화 재에 해당하는 천연기념물과 명승을 대상으로 정책의 역사 와 그 특성을 살펴봄으로써 자연유산의 가치를 제고하는데 그 목적이 있다. 자연환경 정책의 흐름을 살펴보는 과정으로 는 문화재보호법 상 자연환경을 다루는 조항들을 살펴보고 오늘날 천연기념물과 명승의 지정기준이 개정되는 양상 속 에서의 특성을 도출하였다. 국내 자연환경 관련 정책의 시원을 살펴보면 자연문화재 의 보존·관리를 위한 제도로 1933년 천연기념물 지정 및 관 리를 포함한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제령 제6호)」 과 「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호령시행규칙(제령 136호)」 가 제정된 이후 1945년까지의 기간을 초기로 볼 수 있다. 당시 조선총독부에서는 명승과 천연기념물은 이전에 보호할 수 있는 법령이 없어 근시 교통의 발달, 내외 관람객의 격증 등으로 훼손과 망실이 발생하고 있어 적당한 법규를 설치하 여 보호한다고 입법 취지를 밝히고 있다(김대열, 2008). 이는 문화재의 범위 내에 보물이나 고적 등 문화유산에 해당하는 요소 외에도 천연기념물과 명승으로 구분되는 자연문화재 즉, 자연유산까지도 문화재의 범주로 포함하고 있음을 알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총 248건의 지정문화재 중 명승은 1건도 지정되지 않았으나 16건이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다. 그러 나 광복 이후 국가 전반에 걸쳐 여러 분야에서 나타나는 과도 기적 혼란과 한국전쟁의 발발 속에서 문화재의 보호를 위한 정책 여건형성이 여의치 않았다. 이에 따라 일제강점기에 제 정되었던「조선보물고적명승천연기념물보존령」을 원용하 는 수준으로 머물러 있다가 1962년「문화재보호법」이 제 정·공포되면서 법적인 기본 틀을 갖추게 되었으며 1964년 「문화재보호법 시행규칙」을 제정하면서 구체화 되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천연기념물은 동·식물, 지질·광물, 천연 보호구역으로 구분하여 그 지정기준을 설정하였으며 명승은 전제조건으로 경승지를 지목하고 있으며 폭포, 협곡, 동굴 등 저명한 자연환경을 중점으로 지정기준을 마련한 바 있다. 이와 같은 지정기준의 마련에도 불구하고 명승은 한건도 지 정되지 못하였으며, 최초로 명승이 지정된 것은 명주 청학동 소금강이 지정된 1970년이다. 이후 1983년에는 명승의 지정 기준에서 동굴이 제외되었으며, 1999년에는 천연기념물의 기존 지정기준 외에 자연현상을 별도로 신설하여 관상·과 교육상의 가치가 현저한 것을 지정기준을 마련하였다. 2001 년에는 천연기념물과 명승이 공히 지정기준의 개정이 이루 어졌는데 천연기념물의 경우 ‘문화ㆍ민속ㆍ관상ㆍ과학 등 과 관련된’, ‘문화적ㆍ과학적ㆍ경관적 가치’, ‘생활ㆍ민속ㆍ 의식ㆍ신앙ㆍ문화’ 등 접두사 및 단어를 추가하여 기존 자연 환경을 대상으로 하는 지정범위에 문화성을 부여하고 비슷 한 기준을 통합하여 명확히 하고자 한 것이다. 또한 ‘세계문 화및자연유산의보호에관한협약 제2조의 규정에 의한 자연 유산’을 지정기준에 추가한 점은 유네스코의 세계유산의 기 준을 우리나라의 「문화재보호법」에 도입하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다. 또한 천연보호구역 1개 기준을 3개의 기준으로 확대하였는데 기존 지정기준 외에 ‘다양한 생물적ㆍ지구과학적ㆍ문화적ㆍ역사적ㆍ경관적 특성’을 추 가하였으며 ‘지구의 주요한 진화단계’, ‘중요한 지질학적 과 정, 생물학적 진화 및 인간과 자연의 상호작용을 대표하는 일정한 구역’을 추가하여 학술적 가치를 부여하였다. 한편 명승의 지정기준을 살펴보면 ‘특별히 빼어난 자연미를 지닌 지형 또는 지역이나 그 안에 있는 조형물’, ‘자연과 문화적 요소들이 결합되어 뛰어난 조망경관을 형성하는 곳’에 해당 하는 지역을 지정기준에 추가하였으며 천연기념물과 동일하 게 유네스코의 세계유산 등재기준을 도입하였다. 이후 2007년에는 천연기념물과 명승의 지정기준이 전면 개정되었는데, 천연기념물의 경우 1962년 제정 이후 46년간 한 번도 개정하지 않은 지질ㆍ광물의 지정규정을 대폭 개편 하여 지정기준을 세분화 하였으며, 명승의 경우 2006년 명승 지정·보호활성화 정책을 배경으로 사적이나 천연기념물 지 정기준과 유사한 부분의 조정, 다양한 유형의 역사문화명승 포함을 위한 시도가 나타났다. 또한 2010년에 천연기념물과 명승의 지정기준이 개정되었는데 이는 기존의 지정기준에 특별한 변화는 나타나지 않았으나 용어의 수정이나 한자표 기의 병기 등을 통해 법제상의 개념을 구체화하는데 주목하 였다. 이와 같이 여러 차례에 걸친 천연기념물과 명승 등 자연환 경 관련 문화재 정책의 개정과 보완의 결과는 오늘날 천연기 념물로 지정된 동물 101건, 식물 261건, 지질·광물 82건, 천 연보호구역 11건 등 총 564건에 이르며, 명승은 109건에 이 르는 등의 성과로 이어졌다. 1933년 「조선보물고적명승천 연기념물보존령(제령 제6호)」의 제정 이래 오늘날 문화재 보호법에 걸쳐 이어져온 특성을 살펴보면 천연기념물 중 동 물분야의 경우 대표성, 희귀성 등을 중점으로 하는 일제강점 기 때의 기준과 유사하지만 오늘날에는 문화·민속·과학적 측 면을 더욱 강조하고 있는 추세를 띄고 있다. 식물분야의 기준 은 각각의 식물이나 생태, 서식지 등 자연과학적 측면을 강조 하였던 일제강점기에 비해 문화적, 역사적, 경관적 특수성을 강조하는 추세로 발전해왔으며 동물분야와 함께 세계유산 규정을 고려하여 지정 기준에 추가로 포함시키고 있다. 지질· 광물의 지정기준은 일제강점기에 비해 세부 기준 항목이 전 반적으로 다양해졌으며, 천연보호구역의 지정기준에는 인 문·문화적 요소가 추가되었다. 이는 천연기념물 분야에서 다 루는 자연환경과 야생동식물 보호제도와의 차별성을 나타내 는데, 야생동식물보호법은 멸종위기의 야생식물을 대상으로 생물의 멸종예방과 환경보호에 중점을 두고 있으며 천연기 념물은 역사적·예술적·학술적·경관적 가치가 큰 동식물을 대 상으로 삼는데 그 차이가 나타난다. 또한 그 성격의 측면에서 도 야생동식물보호법의 성격은 멸종위기 해소 시 해제되는 제반사항과 함께 문화성과 자연사에 대한 고려는 나타나지 않는 반면, 천연기념물은 멸종위기의 여부보다는 진귀성, 문 화성, 역사성, 자연사 자료로서의 가치를 중요시하고 있으며 이러한 문화적 속성은 인간의 생활과 관련된 재배식물 또한 그 범주에 포함시키고 있다. 한편 명승 분야에서는 초기 문화 재 관련 법령이 제정될 때부터 자연환경을 내포하고 있으며 ‘저명한’, ‘특색 있는’ 등의 경관적 가치에 주안점을 두고 있 었다. 이후 2007년 명승지정기준의 개정과 함께 자연명승과 인문명승이 구분됨에 따라 각 분야에 특성을 고려한 보존관 리정책을 시행하였으며, 명승은 자연환경이 지니는 가치와 인문환경이 지니는 가치가 복합적으로 내재된 복합경관으로 서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다. 이러한 특성들은 천연기념물과 명승으로 지정된 대상이 단순히 생태계로서의 자연환경만을 지칭하는 것이 아닌 자 연환경에 인문, 역사, 문화, 학술적 가치들이 중첩된다는 점 에서 자연과 인간의 문화가 공존하는 가치 기준상에 차별성 을 나타내고 있다. 현재 자연문화재로 지칭되는 명승과 천연 기념물은 그 유산적 가치를 반영하여 자연유산의 개념으로 체계를 개편하여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문화재청(2011), 자연유산법 제정연구 김대열(2008), 우리나라 명승 지정 확대방안 연구, 한경대학 교 석사논문.
        207.
        2016.03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is research seeks ways to convert the landscape resources of rural village forest into a tourist resource. The study area was restricted to rural village forests in the city of Namwon; we selected 10 village forests using the evaluation indicators of size, landscape, accessibility, connectivity, historicity, and enhancement possibility. We selected five historic/cultural type groves among the preselected village groves as final target areas for planning and then carried out an analysis of their current status and conditions, which has been included in this research. For Naein village forests, themes concerning the winds of Inpoong-ri and the poongchinadae form of feng shui were used. For Haengjeong village forest, preferentially considered ecological of carpinus laxiflora but that introduced the Dokkaebi, which concerns village forest legends. In the Sagok village forest, the beauty of old pine trees and the champan (vice minister) forest were symbolized; in the Jeonchon village forest, the Battle of Hwangsan was symbolized by connecting it to a location in the neighboring village, the Hwangsan Battle Monument site. The themes of Walgil village forest included the historical culture of the village forest, such as Cheonikseong (a person’s name), a famed doctor who practiced good deeds, stonepiles (stacking of stones), and the pine resin delivery of the Japanese colonial era (the Japanese collected resin from the pines). The tourism resources of village forests is expected to provide residents with a amenity space for relaxation and leisure activities and visitors with a space to experience history and cultu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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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8.
        2016.0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흔히 512년 이후에 울릉도와 독도는 신라의 영토가 되었다고 한다. ‘우산국이 귀복하여 해마다 토산물을 바치기로 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우산국은 신라의 영토에 편입된 것은 아니다. 만약 신라의 땅이 되었다면 『삼국사기』 지리지에 신라의 땅으로 울릉도나 독도, 아니면 우산국의 기록이 나와야만 한다. 도리어 울릉도가 역사적으로 우리나라 땅이 분명한 이상 우산국 성립부터 한국사의 영역 속에 포함시켜 설명하는 것이 훨씬 더 설득력을 갖고 있다. 탐라국․우산국․가야 등의 역 사를 포괄하는 고대사를 그려내야 할 시점이다. 우산국이 강성해지자 신라에 조공을 바치는 대신 우산국이 아슬라주와 실직주 등이 침범함으로써 신라지역이 큰 피해를 입음으로써 512년 이사부의 우산국 정벌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신라의 지증왕으로서는 동해안 제해권을 확보하지 않는 한 삼척, 강릉 등의 지역을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을 것이며, 이로 인해 결국 우산국의 정벌에 나서게 되었을 것이다. 지증왕대의 우산국 정벌은 이후 법흥왕과 진흥왕대에 이르러 함경도지역까지 진출하는 교두보의 확보라는 면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를 통해 동해안 지역의 경제력 확보, 제해권의 확보를 통해 고구려에 대한 서해안과 동해안의 양동작전을 가능하게 하였다. 신라에 귀복하여 신라와 연합 동맹을 구축하면서 공물을 바치는 복속국가로 존재하면서 보다 높은 신라의 문화를 받아들인 우산국체제는 후삼국을 거쳐서 고려 시대까지 이어졌다. 11세기 초반의 동여진 해적들이 동해안을 통해 고려를 침공하기 시작하였다. 동여진 해적의 내침을 막는 것이 심각한 현안으로 인식하고, 이를 막기 위한 군사 정책을 수립하며 동해안 방면 축성과 수군, 함대 배치하는 데 주력하였다. 그렇기 때문에 현종 3년 이후 고려 침공에 어려움을 겪은 동여진 해적들은 이후 공격 목표를 현종 9년~13년까지 우산국, 일본으로 돌려 많은 피해를 입힌다. 동여진의 침략으로 인해 우산국은 더 이상 자립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렀고 그 주민의 대다수가 고려에 망명하여 고려 군현에 편적될 정도였고, 농기구의 지원의 명목이지만 고려의 관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 과정에서‘우산국’이란 명칭은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고 더 이상 등장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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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9.
        2016.0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old house at No’eun-ri, located in Hongseong-gun Hongbuk-myeon of the Chungcheong Nam-do province, really seems like the old house of late Seong Sam-mun who died in 1456. The original structure of the house seems to have been symmetrical, in terms of its left and right sides, and the females’ chamber(Anchae) as well as the guest quarters(Haeng’rang-chae) would have featured a Matbae(맞배) fashion. The flank chamber and corridor would have displayed a multi-storied shape, and people would have been able to traverse the inside of the house all the way to the second story of the residence. We can see such shapes and dispositions from other ‘口’-shaped houses — found in Chungnam and Gyeongbuk regions — which are now considered as distinct characteristics of certain residences constructed before the war with the Japanese in the 1590s, confirmed from extant vestiges and historical records of that time period. It can be concluded that the old house at No’eun-ri does harbor the traits and elements that resembled the upper class residences of the Joseon dynasty’s early half peri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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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0.
        2015.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는 우리나라에 있는 자연사박물관 전문 인력들에 대한 현황을 분석하여, 향후 건립될 국립자연사박물관 에서 근무할 전문 인력들을 어떻게 양성해야 하는 지에 대한 제안을 하고자 한다. 지난 20여 년간 여러 학술단체와 전 문가 그룹의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을 위한 다각적인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져왔다. 그 중에서도 한국지구과학회는 자연사박물관과 과학관에 관한 여러 논문 발표를 통해 활발한 논의와 연구를 수행해오고 있다. 향후 건립될 국립자연사 박물관은 숙련된 전문인력들을 필요로 하며, 한국지구과학회에서는 이와 관련된 맞춤형 전문과정을 설치하여 다양한 분 야에 맞추어 양성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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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1.
        2015.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The aim of this study was to assess the interaction between Daphnia similis and various organisms related to the rice paddy ecosystem. We selected several organisms that are likely to prey on D. similis and evaluate predation rate as well as responses of D. similis to the chemical compounds exuded by these organisms. As a result of predation experiment, larval dragonfly (Anax parthenope) and Triops longicaudatus were clearly shown decreasing abundances of D. similis. Especially, Triops longicaudatus was observed higher feeding rates on D. similis than larval dragonfly. Chemical compounds from the vertebrates such as fish (Misgurnus anguillicaudatus, Pseudorasbora parva, Micropterus salmoides) and tadpole of frog (Rana nigromaculata) did not affect the life history of Daphnia. However, a potential predatory fish P. parva induced significantly longer tail spine in Daphnia. In addition, among the invertebrates (T. longicaudatus, A. Parthenope, Micronecta spp., Palaemon paucidens), chemical compounds exuded by T. longicaudatus induced shorter body and significantly longer tail spine in D. simil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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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2.
        2015.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대만학계의 중국해양사 연구는 모든 시대와 분야에 대해 고루 연구되었다기보다 연구인력 의 한계로 말미암아 명청시기와 같은 특정시대와 분야에 집중되었다. 특히 해양사연구의 대 세가 중국해양사에서 대만해양사로 바뀌면서 더욱 그러하다. 이 글에서는 주로 대만학계의 명청시기와 근대시기의 중국해양사 연구현황을 주요 저서와 『중국해양발전사논문집』에 실린 논문들을 중심으로 소개하고자 한다. 본문 2장에서는 해양사연구의 출발을 알린 중앙연구원 의 『중국해양발전사논문집』을 소개하고, 3장과 4장에서는 명청시기와 근대시기의 중국해양사 연구성과를 해양관련 키워드를 중심으로 정리할 것이다. 나오는 말에서는 대만학계의 해양사 연구에 대한 한 두 가지 특징을 언급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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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3.
        2015.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내란기의 사색 은 아일랜드 내란이 촉발한 예이츠의 시들 중 하나이다. 시에 내재된 주제인 유산이 예이츠의 윤리관이 반영되고 있는 것을 찾기 어렵지 않다. 이 시에서, 예이츠 자신은 예술가로서 혹은 시인으로서 역사에 참여하는데, 과거와 미 래를 다루는데 중심적 역할을 한다. 또한, 그는 자신을 역사적 유산의 상속인과 피상 속인으로 본다. 그는 건강한 역사적 상속을 받았으며 미래의 세대들에게 전할 자신의 건강한 유산을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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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4.
        2015.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문은 바흐의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이 그의 여타 작품들 및 서양음악의 창작 유산들과 구별되는 수용의 역사, 즉 작곡가 사후 오늘날까지 부단히도 해석, 재생산, 창작의 범주에서 예술음 악과 대중음악 간의 뚜렷한 경계마저 넘나들며 활기차고도 압도적인 생명력을 유지해온 역사에 주 목하면서 그 ‘특별한’ 수용사의 요인들을 역사의 흐름 안에서, 작품의 내부에서 찾으며, 다음과 같은 결론에 이른다. 다양하고 때로는 매우 이질적인 시대, 양식, 장르, 음악적 콘텍스트로의 탁월한 동 화력과 시대, 양식, 장르의 초월성으로 귀결되는 양면적 가치가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의 ‘특별한’ 수용사를 일군 주요 요인이었다.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에 기댄 후대의 작품들은 역사적, 예술적 가치를 부여받기도 했다. 《평균율 클라비어곡집》의 수용사는 결국 이 작품이 품고 있는 가치와 속성, 음악적 가능성과 잠재력이 역사의 흐름을 타며 한껏 발현되고 호응될 수 있는, 역사적 · 예 술적 위상의 담보가 될 수 있는 성질의 것이라는 점에 기반을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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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5.
        2015.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司饔院의 分院官窯는 조선 도자기 역사의 연구에서 가장 핵심적이 고도 근원적인 연구 주제이다. 분원 관요를 준거로 하여 시기구분을 비 롯한 도자 양식 연구 및 官職연구, 관요의 명칭 문제 등 여러 세부 주제를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더욱이 조선 왕실의 정책의 단면을 파악하고 문화와 생활 등을 구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선 분원 관요의 연구가 필수적이다. 주지하듯이 분원 관요는 朝鮮前期에 京畿道廣州일대에 설치되어 조선 말 민영화되기까지 조선 왕실과 궁궐 및 관청에 도자기를 납품한 막중한 임무를 수행했다. 따라서 국가의 정책이 곧 관요의 도자기 제작 과 양식에 직간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는 구조였다. 관요를 중 심으로 왕실 및 궁궐자기가 대량생산되었고, 관요 백자 양식이 탄생했 으며, 도자기 제작 판도에도 변화가 일어 분청사기가 쇠퇴하고 백자가 성행했다. 그러므로 이 글의 목적은 분원의 개념과 명칭 및 설치시기에 대한 학 계의 공통된 견해를 수렴하여 통합된 학설을 세우려는 것이다. 따라서 1960년대부터 2010년대까지의 분원 관요에 대한 학술적 성과, 즉 官窯 址의 발굴과 지표조사, 특별전, 학술대회 등의 주요 성과를 연대별로 정 리했다. 아울러 전문 연구자들의 논저를 집중적으로 검토하였다. 검토한 시대는 조선 초부터 분원 관요가 설치되고 조선 말 민영화되기 전까지 다. 학술적 성과는 국립중앙박물관, 국립문화재연구소, 경기도박물관과 경기도자박물관(구 조선관요박물관),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 해강도자 미술관을 주축으로 한 국공사립기관의 참여와 활약으로 축적되었다. 학 술 활동이 가장 왕성했던 시기는 1990년대와 2000년대였고 2010년대는 2015년 현재까지 다소 저조한 편이다. 광주 관요 출토의 중요한 도편은, ‘內用’명 백자편, ‘見樣’명 백자편, 기린문 청화백자편, 운룡문 청화백자편, ‘좌’ 또는 ‘우’명 백자, 각종 干支 및 숫자가 기명된 백자편, 중국 연호명 백자편, 각종 点刻銘백자편 등 이며, 이를 근거로 편년이나 도자 양식의 규명이 가능했다. 분원 관요의 개념과 명칭에 대해 학계의 주요 논저에서는, ‘司饔院이 세운 沙器製造場으로서 조선 전기부터 존재한 조선을 대표하는 최대의 관청수공업장’이라고 정의했다. 즉 분원은 사옹원이라는 관청이 세운 가 마이며, 이를 압축하면, 본원인 사옹원의 분원이다. 아울러 ‘광주 분원’, ‘광주 분원 관요’, ‘광주 沙器所’, ‘광주 燔造所’, ‘광주 磁器所’, ‘분원 번 조소’ 등이 조선시대의 명칭을 계승한 것이다. 조선시대의 관찬기록에 의하면, 번조소와 자기소는 주로 광주 분원 관요에 한하여 지칭한 명칭 이었다. 이에 반해 사기소는 전국적으로 분포한 가마를 지칭할 때 두루 사용된 명칭이었다. 또한 분원의 설치시기에 대해서는 필자가 1467년 4~12월이라는 연대를 발표하였다(본문 각주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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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6.
        2015.12 KCI 등재 SCOPUS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In Korea, the College Scholastic Ability Test (CSAT) was introduced in 1993 as the official national college entrance examination. Over the 22 years since its inception, the CSAT has gone through numerous changes in its policies regarding the test structure, test administration, test writers, item bank, item difficulty, test materials, score reporting, and the use of test scores. The present study reviewed these policies and policy changes regarding the CSAT, with a focus on the English section ofthe test. The study found that while some of the policies were laudable for beneficial effects on students and the society, some other policies had detrimental effects on the quality of the test and for stakeholders including students, teachers, and parents. More active involvement of testing professionals is suggested for the improvement of policymaking processes and the policies themsel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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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7.
        2015.12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Foreign language education in Korea commenced from the period of the Three Kingdoms. During this period, which lasted until 7th - 8th century AD, the Kingdom’s close relationship with China prompted Chinese language education. Similarly, interaction with Japan started the education of Japanese language. Education during this period was reserved for the children of the upper class. From the end of the Three Kingdoms era until the early 19th century, education of four languages including Mongolian and Manchurian, as well as Chinese and Japanese took place. A government agency, Sa Yeok Won, trained translators during this time. Education of English, German, French and Russian languages started from the end of the 19th century, because the newly formed diplomatic relationships with these countries required the knowledge of their languages for communication. That was the beginning of the modern-style public education, which the foreign language education in the 20th century was based on. Currently, foreign language education takes place in high schools and universities. In high schools, the first foreign language is English, while the second foreign languages offered are Japanese, Chinese, German, French, Spanish, Russian, Arabic, Vietnamese and Classical Chinese characters. Universities offer both compulsory and elective courses on foreign languages. In addition to the languages taught in high schools, African and Southeast Asian languages are available for students to study in univer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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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8.
        2015.11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논고는 기독교 선교 전략을 모색하는 차원에서 다민족, 다문화 지역에 대한 선교 전략을 어떤 방식으로 접근할 것인가, 그리고 어떻게 그에 합당한 전략을 모색할 것인가를 러시아연방 내의 북카프카스 지역을 사례로 들어 논증한다. 즉 하나의 국가 내에서 다문화 이해를 통한 선교 전략에 대한 논의를 러시아연방 북카프카스 지역의 인문지리, 역사, 정치적 상황을 통해 통찰적으로 분석하는 내용이다. 본 논고에서는 북카프카스의 다민족 국가의 선교 접근 전략을 북카프카스를 중심으로 살펴보는 것과 동시에 북카프카스에 속하는 체첸 민족을 북카프카스 민족 그룹의 대표 주자로 선정하여 체첸 민족을 중심으로 역사, 정치, 사회적 관계를 다루고 있다. 하나의 소수 민족을 연방 내에서 분석하는 것은 다민족 선교에 매우 주요한 관점을 제공한다고 판단된다. 체첸이 소연방 해체 이후 독립을 추구하였는데, 이 사실은 다민족 국가에 속하는 민족 그룹의 역사적, 정치적 특성들을 연구할 수 있다는 점에서 다민족, 다문화 선교전략의 모델이 될 수도 있겠다. 본 논고는 북카프카스 인문지리 특성, 그리고 체첸공화국의 인문지리, 역사적 기원, 러시아 민족과의 관계, 체첸 전쟁 등 현재의 정치적 상황을 통해서 다민족 국가의 선교전략을 도출하는 내용으로 구성되었다. 본 논고에서 필자는 다민족 국가의 선교전략은 치밀한 지역연구를 통해서 그 전략적 방향성을 재고해야 한다는 입장을 피력하였으며, 민족의 종합적 상황을 통해 구체적인 선교전략을 추진해야 한다는 당위성을 제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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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9.
        2015.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월동기간 동안 월동조류의 생리 및 영양학적 상태는 이후 번식지로의 이동성공과 번식성공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러나 환경적 요인들이 월동기간 동안 어떻게 몸 상태에 영향을 주어 장기적으로 이동과 번식에 영향을 주는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본 연구는 월동기간 동안 온도변화와 월동지에서의 인간 활동에 따른 방해가 개체수준에서의 월동하는 조류의 생활사에 미치는 영향과 번식지로의 이동 및 잠재적 번식 성공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보기 위해 동적상태의존 월동 생활사 모델을 개발하였다. 모델에 사용된 지수는 월동개체군에 대한 연구가 잘 수행되어 있는 철원의 두루미 자료를 이용하였다. 모델은 온도 변화나 인간의 방해요인의 영향이 생존과 번식지로의 이동을 위한 에너지 축적 그리고 누적된 스트레스의 감소를 위한 자원 분배에 영향을 주는 것으로 예측하였다. 특히 월동지에 도래한 두루미 몸무게의 회복률은 기온변화가 적고 방해요인의 영향이 낮을수록 빨랐으며, 체내의 누적 스트레스는 기온변화가 크고 방해요인의 영향이 높을수록 회복속도가 낮을 것으로 예측되었다. 또한 월동지의 취식지를 공유하는 다른 종의 밀도가 높을수록 두루미의 몸무게 회복률이 낮은 것으로 예측되었다. 끝으로 모델의 예측된 결과를 통해 월동지에서의 월동조류 보전전략에 대해 고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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