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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
        2017.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논문은 울산 무거동 옥현유적의 자료를 중심으로 옥현유적의 취락구조와 출토유물양상을 검토하여 주거지의 규모나 배치양상에 따라 주거군집을 설정하고, 출토유물양상에 따른 각 주거군집의 특징을 파악 하여 당시의 생업경제활동이 취락 내에서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파악하고자 하였다. 옥현유적에서 확인된 주거지는 독립 구릉의 능선부에 형성된 4개의 정상부와 그 사이 소곡부를 기준으 로 4개의 주거군집으로 나누었다. Ⅰ·Ⅱ군은 주거지 2~3기가 소군집을 이루고, Ⅲ·Ⅳ군은 대형주거지 3 기와 다수의 중형, 소형주거지들이 소군집을 이루고 있다. Ⅰ·Ⅱ군은 Ⅲ·Ⅳ군에 비해 공지가 많아 취락 전체의 집회나 회의 등의 장소인 광장의 기능이 보다 더 강조되었을 것으로 보이며, Ⅲ군은 주거지의 밀 집도가 높고 농경구를 비롯하여 모든 생업경제활동과 관련된 유물이 출토되어 논 경작을 중심으로 생업경 제활동을 주도한 주거군으로 파악된다. 옥현유적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 논은 논경작에 유리한 입지선정 과 논둑과 수구, 수로 등 물을 이용하는 시스템을 통해 당시의 농경기술의 체계화가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울산지역 취락에 대한 기존의 연구성과를 토대로 옥현유적과 비교하면 한 구릉내에서 정형화된 구조의 주거지가 축조되고, 일정한 배치양상을 가지고 주거지들이 군집을 이루고 있는 양상이 공통적으로 확인된 다. 대부분의 취락이 주거중심의 생활공간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생업경제활동에 있어서도 울산지역에서 옥현, 입암리유적을 제외하면 비교적 큰 규모의 경작유구(논)가 확인된 예가 없고, 출토유물 중 농경구보 다 수렵구, 어로구의 비중이 더 높다는 점에서 청동기시대 전기의 수렵과 어로를 통한 생업경제활동이 울 산지역에서는 청동기시대 중기에도 활발하게 지속된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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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2.
        2017.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논문은 북한강유역에 분포하는 공방에서의 석기 생산방식을 살펴보기 위해 작성한 글이다. 공방의 물질적 지표로는 공방 내에 남겨진 내부시설과 생산흔적을 비롯해 돌감과 부산물, 제작도구, 각종 (미)완 성 석기류, 실패품, 토기류 등의 출토유물들이 있다. 지표분석을 통해 공방은 석기 생산을 주목적으로 한 별도의 생산 전용공간이며, 내부에서는 타격과 고타, 마연기술을 이용해「정형(1단계)-세부표현(2단계)-마무리(3단계)」의 보편적인 생산과정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한편, 분석과정에서 드러난 생산방식상의 특징과 공방의 성격은 다음과 같다. 첫째, 분기별로 공방에서 생산된 석기의 종류와 점유율 변화는 기본적으로 해당 시기의 수요 충족에 있다고 판단된다. 하지만 미완성 석기에 비해 완성석기의 점유율 격차가 큰 석부류는 생산과정에서 초래될 수 있는 실패율에 의한 것으로 추정되며, 현재까지 특정 기종만을 생산하거나 생산과정 중 일부 기법(술) 이나 과정만을 담당한 특수한 공방의 존재는 확인되지 않았다. 둘째, 공방에서 생산된 석기류 중에는 재사용 또는 재활용된 석기류가 많고, 완성 석기의 점유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편에 속하는 석부류는 생산에 실패한 개체들이 많다. 공방 내에서 생산된 석기의 교환(역)의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지만 교환(역)이 일정한 수준 이상의 생산기술과 생산량 확보를 전제한다는 점에서 자체수요를 주목적으로 석기를 생산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셋째, 공방은 파손된 도구를 보수해 재사용(reuse)하고 생산과정에서 발생하는 실패품과 폐기된 토기류 등을 재가공해 다른 용도의 도구로 재활용(recycling)하는 장소로 활용되었다. 이와 같은 방식은 자원의 희소성을 극복하면서도 생산에 투입된 노동력과 시간을 절감하기 위한 효율적인 생산방식이다. 종합하면 북한강유역에 분포하는 공방은 공방이 속한 주거군집과 취락단위의 수요를 주목적으로 운영되었으며 새로운 석기의 생산과 더불어 보수와 재활용 등 다양한 방면으로 활용된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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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
        2016.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부장행위는 죽은 사람에 대한 애도와 존경 등의 표시로 피장자나 분묘의 주위에 표현된다. 이는 의도적인 행위의 결과물로서 중요한 고고학적 자료이다. 부장행위와 관련된 고고학적 자료를 해석하기 에는 어려움이 따르지만, 부장행위의 존재를 부정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청동기시대의 분묘의 부장행위를 검토하기 위해 부장유물의 부장양상을 살펴보고자 하였다. 청동기시대 분묘의 부장행위는 지역에 따라 부장유물 및 부장위치·형태의 차이가 파악된다. 이는 지역이나 집단에 따라 부장풍습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존재하였던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남부지역의 부장풍습은 전기 후반에 피장자를 위한 위세품으로 출현한 뒤 점차 부장양상(형태, 세트 관계, 부장위치)이 다양해지며 지역성이 뚜렷해지기 시작한다. 피장자를 위한 위세품에서 의례적인 성격으로 변모하고 부장행위가 보편화된다. 부장풍습은 기존과 다른 매장 관습으로 인해 발생하고, 동일한 의미를 공유하면서도 집단의 차별화가 부장풍습의 상이성으로 표출되는 것으로 보인다. 부장양상의 차이는 분묘를 축조한 집단의 성격이나 의례행위, 피장자의 신체적 특징이나 매장방법 등과 관련하여 의도하는 바가 다르다는 점을 추정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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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4.
        2016.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 연구에서는 경기서북지역의 중·소형주거지에 대한 검토를 통해 중·소형 주거지의 시간적인 위치와 변천과정을 검토하고, 주변 지역과의 비교를 통해 그 성격을 파악하였다. 중·소형주거지는 경기 서북지역 이외의 지역에서도 확인되고 있으나, 이 글에서는 경기서북지역에 해당하는 소지역권내의 세부양상을 분석하였다. 청동기시대 중·소형주거지는 일반적으로 늦은 시기의 역삼동 또는 송국리단계와 병행되는 주거형 태로 이해되며, 중부지역 중기의 시작은 송국리적 요소의 확인 또는 역삼동유형 자체 변화에 주목한 연구가 진행되어 왔다. 유적별 검토 결과 경기서북지역 중·소형주거지는 크게 세 시기로 구분할 수 있으며, 대략 BP 2850 이후부터 주거지의 소형화가 진행된 것으로 나타난다. 1기는 이중구연토기, 구 순각목+공렬, 구순각목, 공렬, 무문양 모두가 공반된 시기로, 장방형주거지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며, 2 기는 1기의 세트관계에서 이중구연토기만이 탈락된 시기로, 중심기둥구조를 가진 방형주거지가 다양 화되면서 급증하며, 재지요소와 함께 송국리유형의 요소가 발현되기 시작한다. 따라서 이 시기를 경기 서북지역 청동기시대 중기의 시작으로 보았다. 3기는 2기의 세트관계에서 구순각목+공렬, 구순각목이 탈락된 시기로서 공렬, 무문양 일색의 공반 양상을 보인다. 주거지 형태의 가시적인 변화는 전기 중엽 이후에 해당하는 장방형계 주거지의 소형화를 시작으로 하여, 중기의 시작인 2기에 방형계 중심주공의 기둥구조를 비롯한 다양한 형식의 주거지 형태변이가 이루어지며, 중산동·도내동 유적과 같은 소형 주거지 중심 취락이 본격적으로 형성된다. 이후 이러한 주거지의 전개와 함께 토기상에서 공렬, 무문양의 양상이 두드러지고, 전기에 유행하던 면적 중·대형 의 세장방형, 장방형주거지는 개체수가 감소하며, 중·소형주거지와 공존한다. 주변 문화와의 관계는 송국리문화의 직·간접적인 유입과 서북한지역 석기상의 잔존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러한 특징은 재지적 요소의 지속과 함께, 타문화의 중심 분포지와 거리가 있었던 경기서북지 역내에 각 문화의 요소들이 차별적이고 산발적으로 확인되는 양상이다. 이와 같이 경기서북지역의 청동기시대 중·소형 주거지는 전기 중엽 이후에 형성되어, 전기 문화의 지속과 함께 타지역 중기문화의 특징과 혼재되며, 단위 유적의 취락을 대표하는 주거 형태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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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5.
        2016.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연구에서는 최근 관련 유적이 다수 조사된 춘천분지 일원 청동기~초기 철기시대 유적군의 획기와 편년 체계를 구축하였다. 춘천분지 청동기-초기 철기시대 I단계는 타원형 석상위석식노지 방형 주거지·이중구연거치문토기· 사장경호·무경식석촉·장방형어망추·장방형석도, II단계는 위석식노지 장방형 중심 주거지·각종 돌대 문토기·이중구연토기·구순각목토기·복합문토기·무경식석촉·장방형어망추·장방형석도, III단계는 (퇴화형 위석식노지+)수혈식노지 세장방형 중심 주거지·천발형토기·발형토기·호형토기·공열토기·적 색마연소호·무경식석촉·이단경식석촉·일단경식석촉·이단병식석검·타원형어망추·제형석도·주형석 도, IV단계는 수혈식노지 장방형 중심 주거지·기존 토기 외 다양한 적색마연토기(발형토기, 호, 대부소 호)·무경식석촉·일단경식석촉·타원형어망추·이(일)단병식석검·주상편인석부·주형석도·어형석도 등이 공반하는 단계이다. V단계는 전형적인 천전리식 주거지·무경식석촉·일단경식석촉·일체형석촉· 원통형어망추·일단병식석검·유경식석검·유구석부·주형석도·어형석도, VI단계는 소형 수혈식노지 방 형 중심 주거지·순수 무문토기 중심 토기·일체형석촉·일단병식석검·검병두식·유구석부·주형석도, VII단계는 소형 수혈식노지 말각방형 주거지·점토대토기·두형토기·흑색마연토기·조합식우각형파수· 우각형파수·봉상파수·삼각만입석촉·검병두식·유구석부·주형석도 등이 공반하는 단계이다. 각 단계 의 시간적 범위는 기원전 12~11세기(I단계), 기원전 11~10세기(II단계), 기원전 9~8세기(III단계), 기원전 8~7세기(IV단계), 기원전 6~5세기(V단계), 기원전 4~3세기(VI단계), 기원전 3세기 전반~1세기 중엽(VII단 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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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6.
        2015.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에서는 청동기시대 형산강유역의 문화적 양상과 특징을 해석하기 위해 토기와 주거지를 중심으로 검토하였다. 주거지에서 출토된 토기의 구연부에 시문된 문양분류와, AMS연대측정치를 통한 상대편년과 시간적 단계를 설정하고, 주거지의 형식분류를 통해 입지와 지구(地區)에 따라 상이하게 나타나는 양상을 통해 각 시기별ㆍ지역적 변화양상에 대해 확인하고자 하였다. 검토결과, 주거지의 평면형태는 세ㆍ장방형→방형, 규모는 대ㆍ중형→소형으로의 변화가 확인되며 각 시기별 변화와 시기별로 선호되는 주거지 특정형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기별로는 조기ㆍ전기 전반은 돌대문토기, 석상위석식노지를 설치한 방형의 대형주거지(Ⅰ3식)가 평지 형 입지에 조성되는 특징을 보였다. 전기 후반은 이중구연계 복합문, 구순각목문과 공렬문이 시문된 토기 가 공존하는 단계로, 수혈식노지에 장방형의 중형 주거지(Ⅱ3식)가 주로 나타나며 세장방형 주거지도 함께 조성된다. 형산강유역 내 상류지역과 대천유역을 중심으로 산지형입지를 선호함을 확인하였다. 중기 전반은 홑구연의 흔암리식 토기가 중심이 되며, 수혈식노지를 갖춘 장방형의 소형 주거지(Ⅱ1식)가 주로 나타난다. 입지에서 전기와 큰 차이점은 없으나 평지형입지(가1, 가2)에 유적이 조성되는 비율이 다소 높아진다. 중기 후반은 검단리식 토기가 중심이 되며, 수혈식노지를 갖춘 방형의 소형 주거지(Ⅰ1식)가 급증한다. 주거지는 전기~중기 전반에 비해 평지형 입지에서 대규모 취락이 조성되는 것이 특징이다. 주거지 의 형태 및 내부구조는 흔암리식의 전통을 유지하며, 단일 주거의 규모는 소형화되는 것이 특징적이다. 이러한 형산강유역의 문화변동양상은 전기 중서부지역과 동해안지역에서의 영향을 받는 등 관련성을 가진다. 중기 이후 한반도 남부지역에 송국리문화가 확산됨에 따라, 이들 문화와 대응하며, 전통성을 유지한 발전을 이룬 검단리 유형이 확산이 확인되는 공간으로서의 의미를 가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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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7.
        2014.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필자는 요시무라 레이 吉村怜의 불교미술에 등장하는 연화화생 도상에 관한 연구를 통하여 불교미술에 등장하는 연꽃 문양은 몇 변화 단계를 거쳐 불·보살·天人(飛天)으로 化生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를 토대로 관련 연구를 계속하면서 아래 사실이 있음을 알게 되었다. <요시무라가 주장한 연화화생 도상은 넓게는 화생 가운데 하나이며 더욱 넓게는 기의 표현 가운데 하나이다. 그리고 이 모든 기의 표현은 조금씩 차이가 나지 만 범세계적으로 전개되었으며 불교미술에 국한하지 않는다. 우리나라의 경우도 불교 전래 이전부터 도도하게 전개되었다. 특히 기(화생 연화화 생 포함)에 등장하는(표현하는) 여러 문양은 단순한 장식 문양으로 그치 지 않는다. 이들은 기(화생 연화화생 포함)를 표현하고 전달하며 상호 同格을 이루고 互換交互하며 連繫된다.> 필자는 위 견해를 1993년 발견 백제금동대향로 해석에 적용시켰다. 본고는 우리나라 신석기시대부터 기의 표현이 이미 존재했다는 것을 알 리고, 더불어 백제금동대향로 제작 특히 연화화생 등 기의 표현도 당시(6 ∼7세기) 이웃나라(특히 중국)의 영향이 아닌 우리나라의 오랜 전통을 따 른 것임을 알릴 목적으로 출발하였다. 이 논문에서 例示한 토기와 청동기에서 보듯 우리나라 신석기시대부터 삼국시대까지 기 화생 연화화생의 표현은 광범위하고 보편적으로 전 개, 전승되었다. 또한 앞애서 주장한 것처럼 기 화생 연화화생 표현 에 등장하는 여러 문양들은 상호 동격을 이루고 호환 交互하며 連繫된 상태를 어김없이 보여준다. 신석기시대 토기에는 주로 點文(점선문) 직선문 (연속)삼각문으로 표현하였고 기타 연화문 화염문 파상문 당초문 등으로 표현하였다. 이들을 통하여 산 태양 연꽃 또는 그 관련 기 화생을 표현하였는데 대 개 간단한 구성이다. 이 가운데 가장 흔한 (연속)삼각문(그 안 직선문 포 함)은 삼국시대에 이르면 분명 山文으로 정착되었다. 그리고 연화문을 나 타낸 웅기 송평동 출토 토기(도2), 연속 삼각문과 유사한 모습의 연화문 을 나타낸 통영 연대도 출토 토기(도7) 등을 통하여 볼 때 신석기시대에 도 蓮華化生山즉 ‘연꽃으로부터 山이 화생되는 표현’도 있음을 알 수 있 다. 이 山文이나 연화화 생산 표현을 계승, 발전시킨 도상 가운데 하나가 백제금동대향로이다. 청동기시대 기 화생 표현은 주토 청동기에 ‘짧고 조밀한 연속 직선 문’ 점문(점선문) 원문圓文(연속)삼각문 파형문巴形文당초문 등으로 나타냈다. 기본 바탕은 신석기시대의 것을 계승하였지만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정교하고 치밀한 구성이다. 이들은 불교미술 등 후대에 깊 은 영향을 끼쳤다. 삼국시대(가야시대 포함) 토기에 보이는 기 화생 표현은 그 문양 등 에서 보듯 신석기시대 토기(기원전 5000년경∼기원전 2000년경)와 청동 기시대(기원전 2400년경∼기원전 600년경) 청동기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 이다. 기 화생 표현은 더욱 다양화되었고 확산되었으며 특히 연화화생 표현은 더욱 보편화되었다. 연속 산문을 위시하여 원문 半圓文당초 문 연화문 인동문 등으로 나타냈으며 역시 철저하게 상호 동격을 이 루고 호환 교호하며 연계된 구성을 보여 준다. 이상을 통하여 우리 선조들의 강역(오늘날 滿洲와 한반도 지역)에서 신석기시대부터 7세기 중엽에 이르기는 시기에 전개된 기 화생 연화 화생 표현은 독자적 영역을 이루며 전승된 것으로 결론 내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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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8.
        2014.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남한강유역의 청동기시대 주거지에서 출토된 유물을 통해 토기문화를 정리한 것이다. 그간남한강유역에 대한 연구는 강원영서 또는 충청권에 편중된 연구로 인해 남한강유역 전체에 대한 연구가 미진했다. 그리하여 본 연구에서는 남한강유역 전반을 대상범위로 설정하여 주거지에서 출토된 토기 문양의 각 속성을 기준으로 발생순서배열법을 통해 단계를 설정해 본다. 이후 토기기종과 AMS연대를 보완하여, 종합적인 편년을 설정함과 더불어 전개과정을 살펴보고자 한다. 남한강유역의 청동기시대 토기문화는 총 4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조기후반은 돌대문계요소와 이중구연계요소가 이른 시기부터 등장한다. 전기전반이 되면 이중구연계요소와 공렬문계요소가 단독 또는 복합되어 나타난다. 전기후반에는 흔암리식토기를 중심으로단독문의 공렬문계요소가 확인된다. 후기는 공렬문계요소만 확인된다. 남한강유역 청동기시대 문화 전개양상은 조기후반에는 미사리식 토기문화가 남한강 상류에 분포한다. 전기전반에는 가락동식, 역삼동식 토기문화가 남한강유역 전 지역에 분포하고 있다. 전기 후반에는 가락동식 토기는 쇠퇴한다. 그리고 흔암리식 토기문화가 지속되는 가운데, 역삼동식 토기문화는 남한강유역 전체에 확산된다. 후기에는 남한강 하류와 상류 일부에 유적이 확인되며, 유적의 수가급감한다. 유적이 급감하는 이유로는 첫째, 발굴조사 자료의 부족. 둘째, 주민의 이동. 셋째, 문화의장기존속으로 나누어 살펴 볼 수 있다. 시·공간적으로 살펴보았을 때, 동북계와 서북계가 상류와 하류에 달리 나타나며, 이들 문화는 접점에서 공존하고 있다. 또한 후기에는 북한강유역과 공존하고 있는데, 이를 미루어 보아 남한강유역의토기 문화는 재지문화를 중심으로 주변의 문화와 접하였고, 주변문화를 재지화 하였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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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9.
        2014.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청동기시대 전기 취락의 구조와 변화과정을 통해 당시 취락사회의 성장과 그 배경에 대해 검토해보고자 하였다. 전기의 이른 단계에 소규모 취락단위로 이주해온 집단은 대규모 노동력을 필요치 않는 화전과 같은 농경방식으로 생계를 꾸려나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후 안정적으로 취락을 유지하고 자원예측성을 높이기 위해서 농경에 대한 의존도가 강화되고, 그에 따라 취락의 규모가 확대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산만지역의 전기 유적에서 확인되는 탄화미 등의 자료로 보아, 당시에 벼재배는일반적 현상으로 생각된다. 천안 백석동 취락의 규모와 구조로 볼 때 수전의 경영도 가능하지 않았을까 추정해 보았다. 당시의 소규모 취락의 경우, 주변의 취락사회와의 관련 없이 단독으로 영속하기 어려웠을 것이며,주변의 취락사회와의 상호관련성을 유지하기 위한 네트워크가 형성되었을 가능성도 고려할 수 있을것이다. 또한 취락사회의 안정을 얻고 생태적·사회적 압력을 극복하기 위해 개별 취락조직의 확대를꾀하였을 것으로 보았다. 이렇게 형성된 대형취락들은, 일정한 공간적 거리를 두고 분포하는데, 사회경제적 요인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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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0.
        2014.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글은 가락동유형의 중심시기인 청동기시대 전기를 이분 또는 삼분으로 나누는 틀에서 탈피하여 세분된 편년을 기반으로 한 개별취락의 미시적 분석결과를 통해 금강유역 가락동유형 취락의 변천과 정을 검토하고자 하는 의도에서 작성되었다. 금강유역 가락동유형 취락의 변천상을 지역적으로 나누어 살펴본 결과, 미호천유역의 취락은 초현기의 양상이 타지역에 비해 뚜렷하지만 전반적으로 소규모의 단위취락 중심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갑천유역은 최초 용산동취락을 중심으로 국지적인 형성을 나타낸 이후 재지화되면서 주변으로 확산되고, 이러한 과정속에서 단위취락과 중위취락으로 발전하게 되며 4단계에 최대 성장기를 나타낸 다. 그런데 이와 같은 성장은 대부분 5단계를 기점으로 쇠퇴하기 시작하지만, 6단계에도 중층의 구조를 갖는 관저동취락에 결집하여 상위취락을 형성하고 있다. 금강 중류역은 2단계부터 상위취락인 송담리를 중심으로 취락의 본격적 성장이 확인되는 점이 타 지역과 비교되는 특징이다. 3단계에는 취락 성장의 균질성이 나타나는 특징이 있으며 외부로부터 파급된 문화가 금강유역 전역에서 재지화되는 시점으로 파악되는데, 주변으로 확산되면서 대부분 중위 취락을 형성하고 있다. 이와 같이 각 취락별로 성장의 동력이 분산되지만, 4단계에 이르러 상위취락인 송원리로 다시 집중된다. 송원리취락은 이후 6단계에 이르기까지 상위취락을 유지하는데, 특히 금강유역 일원에서 전기의 취락 대부분이 쇠퇴하는 6단계에서도 송담리와 함께 상위취락을 유지하고 있다. 끝으로 전기 마지막단계에는 취락의 영역이 축소되어 주거밀도가 높아지는데, 상위취락을 유지하는 송원리취락 등의 공간범위가 직경 약 150~200m 정도이며, 갑천유역의 6단계 상위취락인 관저동취락도 직경 150m의 공간범위이다. 이와 같이 취락영역이 줄어드는 점은 대외적 취락 영향력의 감소가 예상되지만, 오히려 취락내 구성원간의 유대감과 동질성의 향상을 통해 효과적이고 집중화된 취락의 운영이 가능해진 것으로 볼 수 있다.
        8,300원
        31.
        2013.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청동기시대 석제무기에 대하여 영남지역의 취락과 무덤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청동기시대에는농경의 발달에 따라 집단 간에 원시전쟁 수준의 싸움을 전제로 전용무기가 제작되었을 가능성을 상정하였다. 무기는 專用무기와 用途轉用무기로 구분할 수 있는데, 기본적으로 무기의 형태를 띠고 있는것은 석검, 석촉, 석창이 있다. 석검은 상징적인 위신재로서의 성격이 강하나 후기의 석검은 실제 무기로서도 가능한 것으로 추정된다. 석촉이나 석창은 생계를 위한 수렵도구이면서 유사시에는 무기로사용되는 즉 수렵구와 무기의 구분이 모호한 병용의 시대였을 가능성이 높지만 수렵용에서 무기로의기능적 변화를 추정해 보았다. 이외에 주거지에서 출토되는 석구를 볼라의 가능성으로 추정했으며,생활도구라도 유사시에는 타격무기로 용도전용이 가능한 무기로서 석부, 석겸 등을 들었다. 무기는제작기법에서도 변화가 확인되는데 신석기시대~청동기시대의 전기에 사용되던 찰절기법과 타격기법이 효율적인 생산기법인 양극기법으로 전환됨을 알 수 있다. 각 유구에서 확인된 무기의 비율과 조합양상의 차이는 계층화를 반영하는 것으로 보았다. 지역별로는 무기류의 부장비율과 주거지 출토비율이 대비되는 서부경남권과 대구권의 해석을 토대로 충적지가 발달한 지역일수록 농경의 비중이 높아 사회적 긴장이 높았으며, 이로 인해 무기부장이 일부계층에 집중되고, 생활유적에서는 무기의 비율이 높게 나타난다는 가설을 수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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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2.
        2013.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본고는 경기지역의 청동기시대 취락을 대상으로 기본적인 자료를 정리하여, 유적의 시기별 편년을검토하고, 이에 맞는 주거지의 배치를 통하여 취락의 구조를 연구하는데 목적이 있다. 중부지방의 청동기시대 취락의 시기적 구분은 조기, 전기, 중기, 후기로 구분한 안과, 전기(전·중·후), 중기(전·중·후), 후기로 나눈안으로 크게 대별될 수 있다. 두 구분 모두 토기문양과 유물의 조합을 기준으로 나누는데 있어서 큰 차이점은 없지만, 후기를 점토대토기단계로 인정하는 것은 공통점이며, 돌대문토기 단계를 조기로 인정할 것인의 여부, 구순각목공렬토기의 중기여부의 차이라 할 수 있겠다. 본고는 토기문양의 계기적 변천과정이 잘 나타나는 후자의 안을 기준으로 시기적 특징을 살펴보았으며, 시기별 주거지 배치관계도 살펴보았다. 전기취락의 구조는 정상부의 능선을 중심으로 구축하였고, 계획배치 형태보다는 주거지간의 공간확보차원에서 조성되었고, 중기에는 구릉사면에 집중화되는 현상이 나타나며, 후기에 들어서서는 외곽으로 배치되고 있는 특징이 확인된다. 이는 중기중반이후에 인구가 줄어드는 양상과도 부합되는 현상으로 풀이된다. 한편, 중기에 분묘가 확인되기 시작하는데, 집단묘보다는 소규모로 조성되는 현상이 간취되는데, 이는 분묘공간의 확대로 정의될 수 있으며, 농경과도 연관된다. 대형 및 중형취락의 기준에 대해 살펴본 결과, 김포 양촌, 소사동, 토진리·양교리 주변 일대 유적을 대형취락으로 판단하였다. 특히, 소사동유적은 전기~중기에 걸쳐 시기별로 고른 분포를 보이면서,마을이 운영된 점이 돋보이며, 양촌리, 토진리·양교리 주변 일대 4개유적은 중기에 집중된 유적으로,유적 상호간의 거리가 근접거리에 위치하고 있어, 한단위의 취락으로 판단하였다. 경기지역 청동기시대 취락의 시기적 변천은(물론 지역적 변천은 인정하며), 중기전반에 가장 취락의 규모가 융성한 것으로 나타났다. 물론 전기에 있어서 평택 소사동유적과 같은 규모가 큰 유적도 존재하지만, 대체적으로 중기전반에 규모가 최정점을 이루다가 중반이후로 규모가 쇠퇴하기 시작하는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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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3.
        2013.04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최근 발굴의 증가로 돌대문토기를 중심으로 하는 조전기 주거지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고있다. 돌대문토기를 중심으로 하는 조기는 돌대문토기 뿐만 아니라 이중구연토기, 거치문토기, 공렬문토기 등이 함께 확인되고 있어, 이를 이른 시기의 양상으로 보려는 경향이 있다. 남강유역에서도 이러한 토기들이 돌대문토기와 공반되고 있는데, 이 중에서도 돌대문토기와 형태가 유사한 폭이 좁은이중구연토기가 확인되었다. 이 이중구연토기와 돌대문토기는 서로 공반하기도 하고, 단독으로도 존재하기 때문에 양자의 관계는 남강유역의 청동기시대 성립기와 관련해 중요한 문제이다. 즉, 돌대문토기만을 중심으로 하는 단독기의 설정이 가능한지, 혹은 돌대문토기를 비롯한 이중구연토기, 거치문토기, 공렬문토기 등을 포함하는 조기의 설정이 가능한지의 문제와 관련된다. 이것을 밝히기 위해 개별주거의 분석과 함께 돌대문토기와 이중구연토기를 중심으로 하는 토기의 편년을 진행하였다. 주거지와 유물의 편년을 통해 남강유역의 조전기주거지는 4단계 2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1ㆍ2단계는 돌대문토기와 이중구연토기a를 중심으로 하는 남강유역 Ⅰ기로, 기존의 조기와 전기를 포함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1단계에는 돌대문토기가 중심이고, 향후 신석기시대와 관련된 양상이 확인될것으로 판단한다. 2단계는 돌대문토기와 이중구연토기a를 비롯한 다양한 문화가 남강유역에 유입되면서 정착해 가는 시기로 보인다. 3-4단계는 이중구연토기bㆍc와 구순각목문, 공렬문을 중심으로 하는 남강유역 Ⅱ기로 설정 할 수 있다. 기존의 전기 전반 일부와 전기 후반을 포함하는 시기이다. 가락동식토기가 출토되는 3단계는 주거지의 수적 열세가 있고, 2단계와 주거지에서 공통되는 점도 있지만, 돌대문토기가 소멸된다는 점에서 1ㆍ2단계와는 구분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4단계는 흔암리식토기가 다수 확인되고, 이중구연이 흔적으로만 남아 공렬문만 시문되거나 단사선문만 시문되는 경우로변화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주거지의 소형화와 함께 나타나는데, 공렬문이나 구순각목문, 구순각목공렬문의 비중 또한 점점 높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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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4.
        2012.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중서부지역 청동기시대 전기 주거의 기둥배치, 노지, 저장공, 출입구와 같은 내부구조를 파악하여문화상의 일면을 살펴보았다. 가락동식과 역삼동식 주거지가 노지형태 차이에 의해 구분되는 것과 같이, 주거 내ㆍ외부 구조도 차별된다. 가락동식 주거지는 ‘주심도리+이열-도리ㆍ보식 구조(Ⅰa)’의 우진각형(또는 팔작형) 지붕이며, 역삼동식 주거지는 ‘주심도리식 구조(Ⅲa)’의 맞배형 지붕이 대표적이다. 전자는 상부구조의 안정성이 장점이지만 증축이 상대적으로 힘들고 목재 사용량이 많은 단점을 가진다. 후자는 증축에 매우 용이하지만 지붕 하중을 견디기에는 다소 불안정하다. 따라서 두 형식의 주거는 장ㆍ단점이 모두 존재하기 때문에 취락별로 선택 채용된 것으로 판단된다. 이후 두 구조의단점을 보완하는 점에서 ‘중앙 초석 또는 주열 구조(ⅡㆍⅢcㆍⅢd)’가 등장한 것으로 생각된다.주거의 기둥배치는 선호된 열(도리)×행(보)의 간격이 존재하고 있어, 칸(間)의 개념과 함께 목조건축 기술이 보급되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벽체는 주심구조에서 판재형 나무를 사용한 형태로바뀌며, 이는 목재가공과 결구 기술의 발전을 보여준다.노는 소형이 주거 안쪽에 설치되고, 중ㆍ대형이 출입구와 인접한 공용공간에 위치한다. 소형은 취사와 난방에 모두 사용되는 노의 기능 가운데 취사에 효율적이며, 난방이 필요하지 않는 시기의 제습과 조명에도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저장공은 노 반대편인 출입구 주변에 밀집 분포하며, 저장량은 식량자원 공급이 원활하지 않는 겨울과 초봄 정도만 소비할 정도로 여분의 잉여는 존재할 수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주거 내부구조는 취사공간, 공용공간(작업ㆍ식사ㆍ취침), 저장공간, 출입구 등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된 것으로 생각된다.청동기시대 전기 대형주거지는 단독 출입구, 집중된 저장공, 노의 사용으로 보아 ‘공동생산ㆍ공동소비’가 이루어진 사회경제 체제로 판단된다. 이후 주거가 소형화되고 내부 저장공이 점차 소멸해 가면서, 생산ㆍ분배ㆍ소비ㆍ잉여 재분배 등과 같은 사회경제 체제가 다각적으로 변화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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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5.
        2012.10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이 논문은 중부지역 돌대문토기의 속성과 시간적 범위를 통한 편년연구이다. 중부지역 돌대문토기의 제작방법과 형태, 그리고 공반양상에 대한 검토결과 1ㆍ2ㆍ3단계의 단계별 변화가 있음이 확인되었다. 다만, 1단계의 경우 돌대의 부착위치에 따른 시간성과 유물들의 공반양상에 있어서 약하게 시간적인 흐름이 나타나고 있을 뿐 아직까지는 해당시기의 유적이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오히려 다수의 유적들이 2단계의동일한 시간적 범위안에 밀집되고 있는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미사리유적을 논외로 하더라도 중부지역의 대부분 돌대문토기는 2단계에 위치하며, 공반관계상 청동기시대조기의 후반에 해당한다. 3단계에서는 주변의 다양한 토기문화유형과의 接變現像이 관찰되는데 구순외연각목토기ㆍ외반구연 공렬토기의 증가, 토기문양의 혼합(공렬, 구순각목 공반), 가락동계 이중구연토기의 점유율 증가와 같은 양상이 나타나고 있어 돌대문토기가 청동기시대 전기의 전반까지 유지되고 있음을 확인하였다.결국, 중부지역에서 확인되는 돌대문토기의 시기를 설정함에 있어 전ㆍ후반을 구분할 만큼 뚜렷한근거는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이는 토기뿐만 아니라 석기 및 주거지에 관한 연구에 있어서도 명확한시기구분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따라서, 시간성이 확인되는 토기의 속성과 공반유물의 양상을 근거로 현재까지 확인된 중부지역 돌대문토기는 조기 후반의 양상으로 파악되고 있으며, 전기 중반을넘지 않는 시기에는 이미 전국적으로 확산되어진 다양한 토기문화 속에 쇠락한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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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6.
        2011.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동해안지역 청동기시대 무덤은 지석묘, 석관묘, 석곽묘, 주구묘, 토광묘, 묘역지석묘 등 다양하게 확인된다. 하지만 남한지역의 다른 지역과 마찬가지로 청동기시대 조기, 즉 돌대문토기단계에 속하는 무덤은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또한 조사된 취락 내 주거지 숫자에 비해 무덤 조사수는 극히 적은 편이다. 동해안지역 청동기시대 무덤의 입지는 대부분 낮은 구릉에 입지하며, 일부 충적대지에서 확인되는데, 동시대 취락의 입지 경향과 대동소이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영동지역 양양 송전리에서 발견된 토광묘 1기는 사구지대에 자리 잡고 있는데 이러한 입지는 극히 예외적이라고 할 수 있다. 동해안지역 청동기시대의 가장 이른 단계에 등장하는 무덤은 토광묘이다. 영동지역 양양 송전리 토광묘, 울산 굴화리 토광묘에서는 삼각만입촉, 유혈구이단병식석검 등이 출토되어 청동기시대 전기 중엽에 편년된다. 반면 포항 삼정리 토광묘에서는 단도마연토기와 방추차, 울산 모듈화산업단지에서는 이단병식석검과 일단경촉이 출토되어 전기 전반으로 편년된다. 석관묘는 동해안지역에서 가장 많이 조사된 무덤이다. 토광묘와 비슷한 전기 중엽에 등장하여 원형점토 대토기 단계인 청동기시대 후기 까지 지속적으로 축조된다. 석관묘는 원형점토대토기 단계인 청동기시대 후기에 이르면 점차 소형화되며, 석관의 형태도 정연하지 못하다. 송현리 B유적을 포함한 영동지역의 석관묘와 포항 학천리 석관묘가 이 시기의 무덤에 해당하며, 유물은 마제석검, 석착, 검파두식 등이 출토된다. 석곽묘는 경주지역 문산리 유적에서만 확인된다. 유물은 일단병식 석검이 출토되어, 청동기시대 중기 후반으로 편년된다. 주구묘의 평면형태는 세장방형과 장방형, 방형으로 구분된다. 세장(장)방형 주구묘는 전기 후엽으로, 방형은 전기 후엽~중기후엽으로 편년된다. 울산지역 주구묘는 장방형에서 방형으로 변화하고, 매장주체부는 토광(목관)의 구조를 가지는 것이 특징이다. 지석묘는 동해안지역에서 제일 많이 분포하고 있는 무덤이지만 실제 발굴조사된 지석묘가 적어 정확한 시기설정이 어려운 상황이나, 동해안지역에 지석묘가 도입되어 축조되던 시점은 타 지역과 유사한 것으로 판단된다. 동해안지역의 지석묘는 많은 수가 조사되지 않았지만 묘역시설이 확인되지 않고 독립적 분포양상을 보이고 있는 것이 특징이며, 축조규모나 형태 등으로 보아 자체적인 발전양상은 미비하고, 타 지역과 마찬가지로 점토대토기 단계까지 존속하다가 소멸해 버린 것으로 판단된다. 최근 경주와 울산지역에서 묘역지석묘가 확인되고 있어 경남지방 묘역지석묘와의 비교검토가 이루어져야 하며, 울산 산하동유적과 경주 어일리 유적 등 해안에 인접해 위치한 유적을 중심으로 조사예가 증가하고 있는 주구형 유구에 대한 성격규명도 좀 더 자료증가를 기다리며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할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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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7.
        2011.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호남지역의 청동기시대 전기 문화는 아직까지 조사예가 많지 않다. 그러나 최근 자료가 증가하고 있고, 유구의 밀집도는 떨어지지만 호남전역에서 확인되고 있다. 호남지역 청동기시대 전기 문화는 미사리유형을 비롯하여 가락동유형, 역삼동유형, 흔암리유형 등이 모두 확인된다. 이들 각 유형은 분포양상에 있어 차이를 보이는데 미사리유형은 현재 순창 원촌과 담양 태목리에서 확인되었으며 미사리유형의 한 요소인 미사리식토기는 익산 영등동, 섬다리에서도 확인된다. 가락동유형은 대체로 북서부지역과 중서부지역에 분포하고 있으나, 중부내륙지역에서도 확인된다. 역삼동유형과 흔암리유형은 북서부지역과 중서부지역에서는 거의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대체로 동부내륙과 동남해안지역을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으며 중부내륙지역에서도 확인된다. 호남지역에서 조사된 전기유적은 주거지와 출토유물을 통해 모두 3기로 분류하였다. Ⅰ기는 각목돌대문토기를 특징으로 하는 미사리유형과 이중구연단사선문을 특징으로 하는 가락동유형으로 미사리유형은 동부내륙의 순창 원촌유적에서 확인되며, 가락동유형은 북서부지역과 중부내륙지역에서 확인된다. Ⅱ기는 가락동유형이 북서부지역은 물론 주변지역으로 확산되고 새롭게 역삼동유형과 흔암리유형이 등장하는 시기이다. 가락동식토기는 이중구연의 요소가 퇴화되지만 아직까지 이중구연의 요소는 남아 있다. Ⅲ기는 (세)장방형 주거지의 비율이 현격하게 줄어들고 방형으로의 평면이 정형화된다. 전기의 특징적인 노지는 설치되지만 Ⅲ기 후반의 가장 늦은 단계에는 일부 지역에서 새로운 형태의 원형 송국리형주거지가 등장하고 그 영향으로 방형주거지에 설치된 노지가 사라지고 원형 송국리형주거지의 특징인 타원형구덩이가 설치되는 등 주거지의 변화가 확인되고 토기의 문양은 대부분 사라지고 무문화된다. 그러나 동부내륙지역과 동남해안지역과 같이 일부지역에서는 역삼동식토기의 특징인 공열문 요소가 늦은 시기까지도 지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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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8.
        2011.12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호형토기는 청동기시대 전기 유적에서 출토되는 대표적인 토기로 그 생김새와 체적이 다른 토기에 비해 특징적이어서 저장의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추정된다. 호형토기는 출토량이 많지 않고 완형으로 확인되는 경우가 드물어 그동안 연구의 주체가 되기보다는 보조 자료로써 활용되어 왔다. 본고에서는 청동기시대 전기 유적의 주거지에서 출토되는 호형토기를 주체로 하여 속성을 분석하고 형식을 분류하였다. 그리고 각 형식과 공반유물을 통하여 단계를 설정하였으며, 단계에 따른 변화상을 용량의 변화상과 함께 살펴봄으로써 호형토기의 변화가 가지고 있는 사회·경제적 의미를 알아보았다. 호형토기를 각 크기에 따라 변화양상이 다르다고 판단하여 대·소로 구분하여 연구를 진행하였다. 각 크기에 따라 속성을 분석하고 형식을 분류하였다. 그 결과, 대형에서는 동체형태에 따른 변화상을 확인하였고, 소형에서는 구연형태에서의 변화상이 시간적 흐름에 더 민감하다고 보았다. 이러한 결과를 용량분석과 종합하여 보았을 때, 소형토기는 단기저장용기로, 대형토기는 장기저장용기로서의 기능을 지녔다고 상정된다. 청동기시대에서 시간의 흐름에 따라 사회가 분화되고 핵가족화 되는 과정에서 장기저장용기는 동체형태의 변화를 통해 용량의 변화를 보이며, 단기저장용기는 구연형태의 변화를 통해 기능적 변화의 모습을 보인다. 즉, 호형토기 형태의 변화는 용량의 변화로 연결되며, 이러한 용량의 변화는 곧 사회·경제적 변화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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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
        2011.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폐기라는 행위는 단순히 버린다는 행위뿐만 아니라 다른 여러 가지 의도가 내포되어 있다. 이러한 폐기 양상을 통한 폐기 양식을 분석하여 청동기시대인의 행동 양식에 접근하고자 하는데 이 글의 목적이 있다. 폐기는 故意(의도적) 폐기와 不意폐기로 구분된다. 故意폐기는 주거인의 의도에 의해 폐기된 것으로 이동으로 인해 폐기하거나 폐기장ㆍ토기요지ㆍ야외노지ㆍ의례ㆍ무덤 장소로 전용되는 경우 등이 있다. 不意폐기는 주거인이 의도하지 않은 불의의 상황이나 자연 재해로 폐기된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失火ㆍ飛火ㆍ放火등의 화재, 홍수, 화산 및 지진 등에 의한 자연 재해 등이 있다. 이러한 폐기 원인에 따라 방치ㆍ해체ㆍ소각 행위가 보이며 유물 위치 및 수량에 따라서도 구분됨을 알 수 있다. 각 유적 내 개별주거지에서 보이는 폐기 양상을 분석한 결과 송국리문화의 폐기 양식은 시기별ㆍ지역별ㆍ규모별로 확인된다. 시기별 폐기 양식은 주거지의 평면 형태 및 중복 관계, 유물 등으로 보아 폐기장으로 전용된 주거지가 유적 내에서 늦은 시기에 해당함을 확인할 수 있다. 지역별 폐기 양식은 서해안지역에서 확인되는데, 특정 위치에 완형 유물을 정치한 폐기 양상이 서해안지역에 집중되어 보이고 있다. 규모별 취락의 폐기 양식은 위에서 세분한 폐기 양상들이 다양하게 보이는 취락을 오랜 기간 존속되어 온 대규모 취락의 폐기 양식으로 파악할 수 있다. 이에 반해 계룡 입암리 유적의 경우는 소규모 취락의 폐기 양식으로 이동성이 강한 반복 점유 폐기 양식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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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1.06 KCI 등재 구독 인증기관 무료, 개인회원 유료
        금강 중류역의 청동기시대 전기 문화는 일반적으로 가락동유형으로 대표되어왔다. 이 지역에서 가락동유형은 둔산식 주거지와 가락동식토기를 표지로 한다. 둔산식 주거지는 과거 둔산식-용암Ⅰ식-용암Ⅱ식으로 분류하였으나 최근의 조사 자료를 재검토하여 세분된 분류안을 제시할 수 있다. 가락동식 토기와 기타 공반된 토기의 문양요소에 대한 분석을 통해 가락동식토기 고유의 문양요소는 출현과 소멸의 과정이 진행되는데, 주거지의 변화상과 연관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다음으로 최근 이 지역에서 기존의 가락동유형과는 다른 양상의 청동기시대 전기 취락유적이 조사되었다. 대평리유적은 충적지에서 취락이 조사되었는데 미사리유형의 취락으로 판단된다. 대율리유적은 환호취락으로서 그 성격에 대해 다양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 외에 일부 유적에서도 가락동유형과 다른 성격의 주거지가 조사되어 금강 중류역 청동기시대 전기 문화는 이제 다양한 양상으로 접어들고 있다 가락동유형의 취락은 지형적으로 구릉의 평탄면에 입지하며. 하천과의 관계속에서 볼 때 주로 2차 하천의 주변에 위치한다. 취락의 형태는 취락지리학의 성과를 참조하여 (단독·분산)점상취락-면상취락으로 구분한 후 각 유적을 검토하였다. 이를 통해 금강 중류역의 가락동유형 취락은 세대공동체 중심의 소취락을 기본구조로 조성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특히 지역별 변천상을 통해 중대형 취락을 중심으로 주변으로 확산되고 시간에 따라 취락의 분포상도 증가함을 알 수 있으며 형태는 점상취락에서 면상취락으로 변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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